2022.3.6 사도행전 22:30-23:5 (성령의양심)
1. 구원 때문에 주목하는 양심입니다.
지성인인 바울이 왜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는지, 천부장이 이해를 하지 못해 산헤드린공회를 소집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바울을 늘 회개케하는 스데반을 죽인 공로를 인정받아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인정받았었습니다.
바울이 주목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주목은 바울은 그들을 보며 내가 너희보다 공부잘했는데 알지? 이런것이 아니라 그사람속에 있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주목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무리를 짧은 시간에 죄인의 모습으로 만났는데 하나님은 왜 이런 모습으로 다양한 무리를 보게 하신걸까요? 어떤 사람을 만나도 구원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양심은 내죄를 주목하고, 십자가를 주목하고, 구원을 주목할때, 바르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과 상황에서도 항상 해석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적용 : 사람을 만날때 무엇에 주목하고 있나요? 구원인가요? 겉모습인가요?
믿기전에 옛 동료들을 만난다면 내모습이 초라해 숨고 싶지는 안나요?
2.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는 양심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형제들아 라고 부르는 것이 절박하고 친근한 표현이기에 그렇게 부르며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얘기합니다.
문화나 역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수있지만 모든 인류의 공통된 중심이 양심인데요, 어떤 역사에서도 배신이 좋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범사에 양심을 따라 섬겼다는 것이 나는 잘못없다의 뜻일까요? 이때 양심 단어앞에 해석되지 않은 단어가 있는데 이때 이 단어의 뜻인 선함은 도덕적인 옳고 그름의 선함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나왔던 하나님이 보실때 보시기 좋았더라가 선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에 따라 우리의 내 안의 양심은 제대로 작동합니까? 늘 내 안에 양심이 있으나 쾌락에 따라 이득에 따라 기준이 모호해져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우리의 양심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수 없는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우리의 양심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하나님을 결코 바르게 섬길수가 없습니다.
오늘 바울이 말한 선한 양심 착한 양심을 우리속에서 찾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이 성령의 양심입니다.
이에 따라 내가 얼마나 부패하고 죄가 가득한지 깨달았다면 나를 밖에서 보는것이 성령의 황홀이라 했는데 이것처럼 나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틀렸을 인정해야하며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섬겼노라의 섬기다의 단어는 시민으로 합당하게 섬겼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양심,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모든 기준이 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안의 뜻은 모든면에서 주님과 함께 알고 함께 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섬겼다라는 뜻입니다.
착한것이 양심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알아가는 것, 이게 양심입니다. 우리에겐 선한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생각, 자신의 양심으로 주를 위해 살아보리라 해서 이렇게 살아온게 아닙니다. 그간 아버지를 따르며 알게 된것들이 있죠?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앎이 있어서 바울도 여기까지 온것이고 산헤드린공회앞에서도 당당히 내 아버지를 섬겼노라 말한것입니다.
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도 내 양심이 아닌 성령의 양심으로, 내가 기준이 아닌, 나에게 잘해주는대로, 내고향사람으로 뽑는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뽑아야 합니다.
죄를 인정하는 데까지 가서 멈춥니다. 그리고는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만가지의 이유를 찾아서 합리화하다 인생이 끝납니다. 아버지때문에, 아파서그렇다고, 상처때문에 그렇다고 만가지 이유를 대며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며 그 이유들 뒤에 숨습니다.
-적용 : 여러분은 푸틴이 나빠요? 계부가 나빠요? 엄마가 나빠요?
푸틴은 전세계를 죽이고, 계부는 한 여자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엄마는 자신의 딸을 방치했습니다. 누가 제일 나쁜것 같습니까?
각기 다 다릅니다. 각자의 생각으로 판단됩니다. 그렇기에 내양심은 믿을게 못됩니다. 자기의 유익과 쾌락이 발동이 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환경에 장사가 없습니다. 환경을 이겨가는 사람은 예수도 못믿습니다
-적용 : 내 양심이 알면서도 합리화 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판단 기준은 돈, 체면, 고향, 외모 중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양심의 기준은 자기 옳음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까?
3. 그를 치는 것이 아닌 나를 치는 양심입니다.
바울이 말을 하는데 율법 최고기관인 산헤드린 공회가 하나도 못알아듣는것입니다. 양심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이 율법이란 선안에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하나님의 양심을 얘기하니 화가나 그 입을 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당시 11년이나 집권하며 횡령하고 권력을 누린 대제사장 아나니아 그는 율법주의자지만 율법을 어겼습니다. 바울의 죄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입을 치라 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권력을 가지게 되면 내가 듣기 싫은 말을 하면 화를 내며 그 입을 다물라 합니다. 그 모든 판단 기준이 나입니다. 그 입다물라 하는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아나니아에게 회칠한 담이로다 라며 하나님이 널 치실거라 합니다. 당신은 백성보다 훨씬 나쁘다 라며 아나니아를 비난합니다.
이제까지 바울은 매맞고 갇히면서도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저주의 말을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는 대제사장에게 했습니다. 이런것들이 성령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구원때문에 할말 안할 말을 알기에 하는것입니다.
그런 아나니아가 감히 재판장을 모독했다고 화를 내는데 그에 바울은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성령의 양심은 나를 쳐서 내 약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급하게 공회가 소집되느라 옷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한 대제사장을 몰라봤다는 것입니다. 비굴한 사과가 아닌 팩트로 끝까지 형제로 부르며 내 잘못을 시인한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과 믿음이 있는 사람중에 잘못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거고 믿음이 있는 이들중에는 믿음이 더 좋은 사람이 회칠한 담을 보고 나의 입을 치는 것이 성령의 양심입니다.
우리는 그저 죽을때까지 내 회칠한 담을 보며 내 입을 치며 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양심은 실수를 인정하는것. 이것이 시작입니다.
그 실수가 비굴한 사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인임을 인정하며 고백하는것. 나를 치며 거기서 돌아서야 합니다.
내가 왜그래야 하는데? 라며 내 얄팍한 양심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 해결되는게 없습니다.
-적용 : 내 죄악을 숨기는 방패로 삼고 있는 것은 유전입니까? 상처입니까? 질병입니까?
죄악임을 인정하고 돌아서야 할 때 남의 입을 칩니까? 내 입을 칩니까?
<기도제목>
윤아
1. 나의 양심에 깃든 생각을 버리고 오직 가족의 구원때문에 기도할수있길, 내 결혼이 양쪽집안의 구원이 될수 있도록
2. 생활예배 잘 드릴수 있도록
3. (코로나) 건강때문에, 잘 지켜야할 경계를 지키며 내안의 불안,염려를 하나님앞에 내려놓을수있도록
A
1. 직장내에 코로나문제가 생겼는데, 잠잠해질 수 있도록,
2. 지금 일 관두기 전까지 체력적인 부분 챙겨주시길
3. 일대일양육 하나님이 잘 인도해주시길
다님
1. 내 인간적인 기준과 옳고그름의 양심이 아닌 성령의 양심으로 동생의 구원을 바라고 기도할수있으면
2. 생활예배가 잘 회복이 안되는데 회복되기를
3. 수면의 질이 높아지고 불면증이 좀 나아져서 일상생활 잘 할수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