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양심
본문: 사도행전 22:30-23:5
설교: 김양재 목사
1. 구원 때문에 주목하는 양심입니다.
천부장은 지성인인 바울이 유대인으로부터 핍박 받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상을 알고자 하였다. 산헤드린 공회를 열었는데 과거에 자신이 공회원이었다. 동료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서있게 되었다. 바울은 다양한 무리를 만났는데 왜 만나게 하셨을까? 한결같이 죄인의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오직 구원을 위한 만남이었다. 바울은 당당히 그들을 주목한다. 바울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고 그의 관심이 오직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양심은 내 죄를 주목하고 십자가를 주목하여 구원을 주목할 때 바르게 작동하는 것이다.
Q) 사람을 만날 때 무엇에 주목하고 있나요? 구원인가요, 겉모습인가요?
믿기 전 옛 동료들을 만난다면 내 모습이 초라해 숨고 싶지는 않나요?
2.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는 양심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공회원들에게 형제들이라고 칭한다. 원문에 보면 아가토스라는 착한, 선한 이라는 뜻의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선함은 도덕적 옳고 그름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속의 양심은 다 무너져 내렸다. 내가 행하려는 일이 나쁜 일임을 알고도 유익과 쾌락을 주면 어느새 타협을 해서 그 기준이 모호해진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합리화시킨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시켜서, 누구 때문에, 우리의 양심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법까지 그 기준이 모호해져서 간통죄가 사라지고, 간음죄가 합법화되고, 낙태법이 통과되고 하나님의 창초질서인 남녀 구분의 기준까지 사라지게 한 우리의 현실인 이 양심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바른 섬김을 할 수 없다. 내 속의 양심이 아닌 그 기준을 내 밖에 두는 것이 성령의 양심이다. 나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성령의 황홀이라고 했는데, 성령의 양심도 나를 밖에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 판단이 맞다고 하는 사람은 설령 그 판단 맞다고 해도 조심해야 한다. 성령의 시민으로 내 생각, 내 양심이 아니라 성령의 양심,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게 행해야 한다. 선한 양심은 관계의 문제이다. Doing의 문제가 아니고 Being의 문제이다.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세상의 관계가 안 되는 것은 함께 보고 아는 양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착한 것이 양심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알아가는 것이 양심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 속의 기준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실수와 죄를 인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패한 마음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죄성을 회개하고 거룩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죄를 인정하는 데서 멈춘다. 산헤드린 공회원도 끝에 돈이 있어서 바울의 말을 절대 듣지 않는다. 내 속의 양심, 기분이 제일이니까 지역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옳은 것을 아는 양심이 있다. 우리의 양심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래서 신결혼 해야 한다. 자기의 유익과 쾌락이 발동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모른다. 양심은 알지만 무너져 내린다. 사람은 100% 죄인이기 때문이다. 환경에 장사가 없다. 환경을 이겨가는 사람은 예수를 못 믿는다. 무서운 율법주의가 된다.
Q) 내 양심이 알면서도 합리화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판단 기준은 돈, 체면, 고향, 외모 중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양심의 기준은 자기 옳음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까?
3. 그를 치는 것이 아닌 나를 치는 양심입니다.
율법에 대해 최고인 공회 지도자가 바울의 말을 못 알아 듣는다. 율법이라는 선 안에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서 권좌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분노해서 바울의 입을 치라고 하였다. 입을 치라는 것은 최고의 인격 모독이다. 예수님도 당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바울의 죄도 정하지 않고 치라고 하였다. 권력을 가지면 내가 듣기 싫은 말을 하면 화를 내면서 입을 다물라고 한다. 낸 양심과 기준으로 행하는 것은 남의 입을 치는 것이다. 그 모든 판단 기준이 나이다. 모든 권력자는 곳곳에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한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향해서 회칠한 담이라고 했다. 회칠한 무덤 이야기는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했었다. 회칠한 담은 나도 남도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만드는 다 속는 것이다. 바울이 산헤드린 대제사장에게 회칠한 담이라고 한 것이다. 아무에게도 안 한 가장 심한 저주의 말을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 대제사장에게 하였다. 성령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과 관계가 너무 좋기 때문에 구원 때문에 항상 할 말, 안 할 말을 안다. 회칠한 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즉시 시인한다. 내 입을 치는 것이다. 성령의 양심으나를 쳐서 내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공회가 갑자기 소집되서 의복을 입지 않은 대제사장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굴이 아니라 팩트로 몰라봤다고 하였다. 성령의 양심은 내 잘못을 시인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중독자의 회복은 내가 중독자임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가장 위대한 고백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세상의 양심과 성령의 양심의 다른 부분이다. 믿음이 더 좋은 사람이 상대방의 회칠한 담을 보고 나의 회칠한 담을 보고 입을 쳐야 한다. 지도자 자리에 가면 확신이 너무 맞게 되면 틀리면 안 되니 회칠한 담이 된다. 목자가 될수록 나를 치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양심이다. 창업주들이 예수 믿기 가장 힘들다고 한다. 자기 양심의 확신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믿기가 어렵다. 자기의 회칠한 담을 못 보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내 회칠한 담만 보고 내 입을 치고 가는 것이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회칠한 담이라고 말 해줬다. 성령의 양심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 사소한 것이지만 시작이다. 성령의 양심이 되는 길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를 치며 돌아서야 한다.
Q) 내 죄악을 숨기는 방패로 삼고 있는 것은 유전인가, 상처인가, 질병인가?
죄악임을 인정하고 돌아서야 할 때 남의 입을 치는가, 내 입을 치는가?
A
오늘 말씀의 대한 나눔
나도 같은 질문으로 나눔을 해보면은 나도 이제 구원보다는 겉모습을 많이 보는거 같아.
그게 좀 분명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일을 할 때 여러 손님들을 맞을때 겉모습으로 많이 판단을 하는거 같고 내가 불편해 하고 꺼려하는 겉모습은 좀 이제 단정하지 않은 겉모습 껄렁해 보이고 머리 염색해 있고 이러면은 달갑지 않은 겉모습인거야
그리고 좀 친절해지고 그래서 나도 주목하는게 겉모습을 보는거 같고 그리고 내 양심을 합리화 시키는것을 나눠보면 합리화 하는거 같고 그리고 또 아까 말한 축구 커뮤니티 그거랑 모바일 게임 이런것도 내가 중독인걸 알면서도 사람이 이런 취미나 즐거움 없이 전혀 없이 살겠어 그러면서 합리화 시키는게 있는거 같고
판단기준도 아까 한거랑 연결이 되는거 같고 외모랑 나는 또 이제 내 체면을 의식하는게 있어서 내 체면이 상할까? 안전할까? 이거를 기준으로 할 때가 있는거 같아
B
오늘 말씀의 대한 나눔
저는 믿게 되면서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인지 먼저 보는데 믿지 않는 사람이면 만남때부터 색안경을 쓰게 돼요.
선민의식도 가지고 있고 제가 불신자에 안티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가 안통했던 것이 떠올라서 그들과 가치관이 달라 대화가 안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에 감안 하고 들으려는 것이 만남이나 대화전부터 의욕을 낮추는거 같아요.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부터 확인 하려 하고 불신자이면 돈이나 외모 겉모습이 좋아도 신경을 쓰지 않는데 신자일 경우에는 더 겉모습 외모나 돈 그 사람의 믿음을 행위로 판단을 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더 부러워 하는거 같아요.
아무리 안목의 정욕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 한 주 목장 기도제목
`A
1. 결혼 준비 하루하루 말씀으로 시작하고 시간 사용과 관계에 있어서 지혜와 분별을 가지고 결정해가도록
2. 금전적 염려 하나님께 내려놓고 때마다 길을 열어주시도록
3. 캘리그라피와 관련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 하나님께 내려놓고 현재 할 수 있는 연습과 작업에 성실히 임하도록
`B
1.이력서 제출 적용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좀 더 체휼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혈기를 더 내려 놓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