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0 성령의 시민
사도행전 22:22-29
황홀한 한 주 보내셨나요? 지난주 이렇게 나눔을 했는데 어떤 목자님께서 '저의 황홀한 깊은 만족은 1억이고, 예배와 목장은 죽을 때까지 가는 십자가입니다.' 이렇게 나눔을 하시더라고요. 이 황홀이라는 단어는 밖에서 나를 보는 참 아름답고 선하고 지켜야 될 말이자나요. 그런데 세상적으로는 사단이 굉장히 오염시켜 놓은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황홀하면 이상한 걸 자꾸 생각하자나요. 우리가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 결국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고 이게 회개자나요. 회개가 인간의 최고의 감정이니까 이게 황홀 맞자나요. 그죠? 회개가 최고의 감정인 황홀이에요. 이렇게 황홀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천국 아닐까요? 그러나 이 천국 가는 길이 좁은 길이긴 하죠. 올림픽 금메달 하나 따려 해도 엄청난 지옥훈련이 필요하자나요. 이 땅에서도 그 영광 하나 가지려면 그렇게 지옥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돼야 할 이 성령의 시민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듣가다 신앙은 되기 어렵습니다. (22절)
유대인들이 이 말까지 듣다가 소리를 질렀대요. 이 말이 뭐죠? 지난주일에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자기는 아주 깔맞춤 전도자라고 하니까 주님이 유대인이 아니라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겠다 그러셨자나요. 그러니까 거절을 당했자나요. 바울이. 그런데도 주님 말을 이렇게, 그게 너무 좋은 일이니까 자기 확신이 하늘을 찔렀자나요. 그러면 이제 말을 안 들으면 박해를 당하는 일이 오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손 좀 보시는 거죠. 그런데 바울도 참 당한 것이 많은데도 이럴 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우리에게 바울이 이렇게 반면교사 되게 하시니 하여튼 정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랬는데 자기 은사예요. 우리도 그렇죠. 그 길로 가면 아니기에 말리는데 자기 확신이 많으면 이 듣다가 신앙이 되어서 말릴 자가 없어요. 그러면 뭐 겪어봐야지 어쩌겠어요. 바울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 다 그렇자나요. 그렇죠? 어떤 부목자님이 재혼사이트를 통해서 불신 여성을 지금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딱 목장에 안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그 여자한테 홀딱 빠져있는 상태인데 그 여자분은 다른 남자와 계속 긴밀한 관계를 하고, 또 며칠씩 함께 생활을 하기도 한다는데. 같이 만나다가도 그 남자한테 연락이 오면 막 그쪽으로 가고 이런다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홀딱 빠지니까. 그래서 이 땅의 황홀에 진짜 목이 매였는데 문제는 당장 목장도 안 오시고 예배가, 그 불신 사람을 만나면. 그렇지만 지금 누가 말을 해도 참 듣기가 어려워서. 그래도 지금 목장에 오시라고 했는데 꼭 오시기 바래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안타깝지만 이분이 우리들교회 부목자라는 거죠. 안타깝죠? 그래도 우리도, 오늘 우리 자매가 세상에 저 두바이에 재입사를 거절을 했는데, 왜? 흘러 떠내려갈까봐. 이게 굉장한 건데. 이 부목자님 적용하셔야 돼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영육간의 확신이 시기마다 있어요. 그러나 우리들교회는 영적지수 200을 넘어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으신 것 같아요. 그러니 그런 200이 넘는 분이 15%만 있어도 교회도 살고 다 살아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목장마다 200 이하의 골방 감정들인 분노, 두려움, 슬픔, 무기력, 죄의식, 수치심들이 총 출동해서 늘 난리를 치자나요. 그런데 그 200 이상의 사람들이 목장마다 15%, 그러면 한 명 반, 백분율로 해서. 그러니까 직분 유무, 고하간에 그런 사람 한 사람만 목장에 있으면 그 목장을 살릴 수 있다는 거예요. 목자고 아니고 한 사람만 있어도. 그런데 이제 그 살린 사람을 보고, 그 한 사람을 보고 다들 듣다가 신앙이 되어서 없애버릴 자다,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다 중간에 나가고 말을 끊고 골방 감정을 충만히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의 사도 바울께서 이 길을 미리 보여주신 거예요. 그 살려내는 한 사람이 다 공격한다고요. 왜냐하면 그 골방 감정, 분노, 두려움, 슬픔, 무기력들이 다 모여가지고 겨우 용기있게 넘어간 그 사람을 공격한다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택하심 받은 것 같은데도 경청하는 것 같다가 그냥 듣다가 마는 사람이 참 많아요. 듣다가 그냥 끝나는 사람. 천국에 그럼 입성을 못하죠.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나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던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를 아시죠? 이 똑똑한 사람들이 글쎄 다 신학을 하다가 중단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 같았겠죠. 이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데 하다 보니까 들을 것 없다. 이렇게 됐어요. 듣다가 중단을 하니까. 이런 사람이 세계를 도탄에 빠뜨린 사람들이 된 거예요. 지금도 말씀, 여기 굉장히 오래 되셨는데 이분도 부목자님이세요. 나이 많으세요. 지금도 이렇게 제 말씀은 하나도 안 들리고 너무 똑똑하세요. 그러니까 지금 니체만 읽고 있다 그러시자나요. 니체를 열심으로. '아니 니체 왜 읽어요? 아무개 집사님. 아니 허무주의. 죽음을 신봉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니체는 왜 읽으세요?' 부목자 수난시대네요. 오늘. 적용해보세요.
[적용] 듣다가 만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양육입니까? 목장입니까? 남편, 아내, 자녀의 말입니까?
2. 없애 버릴 자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22-23절)
그래요. 살려 둘 자가 아닌 자를 되살리는 것이 기독교예요. 바울은 그동안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지금 귀에 거슬리는 어떤 표현도 자제하면서 변론을 하니까 유대인들이 시종일관 경청하는 자세로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는, 바울은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단어를 하나 썼어요. 지금 이제 자기가 이렇게 유대인을 전도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아니다, 아니다 이방인을 해라. 그래가지고 이방인 선교를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서 지난번에 그 21절에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썼자나요. 그냥 이거는 그들한테는 그냥 쓰지 못할, 들어서는 안되는 단어가 이방인이에요. 그들이 이방인을 그렇게 미워하고 낮은 계급으로 여기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은 하나님께 선택 받지 못한 버림받은 부정한 존재였던 거예요. 유대인의 율법의 가장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가 부정한 걸 멀리하라는 거예요. 그들이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것 또한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서예요. 자신들의 삶에 부정한 것들이 있다면 예배 드리고, 제사 드리고, 제물 바쳐서 이 부정한 것들을 없애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유대인들은 본인들이 너무 거룩하기 때문에 이렇게 오픈하는 이런 간증들 너무 찌질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떻게 저런 일이 다 들고 일어나서 없애버릴 자다. 이러는 거죠. 우리가 간증하면 일어나서 없애버릴 자다. 이러는 거죠. 하나님이 유대인만을 사랑하신다고 믿는 이 배타주의적인 태도로 그들은 자기들과 나머지 인류를 구분하는데 그냥 천 오백 년 동안이나 지금 애써 왔어요. 우리는 너희들과는 달라. 그러니 이방인 그 한 마디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미 무리는 바울을 21장 36절에 변론 시작하기도 전에 없이하자 그랬는데 이 변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그를 없애 버리자 그래요.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자.가 아니라 아예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같은 하늘 아래 살려 둘 수가 없다. 개역 한글에서는 이러한 놈이라고 그랬어요. 한마디로 이따위 놈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3주에 걸쳐 자세히 살펴봤지만 바울이 얼마나 마음을 써서 죽을 각오까지 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디테일한 이 간증을 했습니까. 하지만 당장 그에게 나타난 결론은 이렇게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했지만 결국은 바울의 변론은 실패로 끝난 셈이 되었어요. 선민 의식과 고정 관념은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무서운 거예요. 그러니까 경건주의, 사회주의 이런 이즘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 다 이즘, 물질주의 다 이렇게. 우리도 오늘날 동일하게 외칩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하지만 어떻습니까? 없애 버리고 다 제거해버린다면 결코 내 삶에, 내 인생에 예수님은 오시지 않아요. 이럴 때 좀 THINK를 해봐야 돼요. 지금 유대인들이 가장 없애 버리고 싶은 대상이 누구예요? 바로 바울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바울의 입으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지금 다가가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지금 바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고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내가 가장 없애 버리고 싶어하는 그 존재, 그 사건과 상황을 통해서 나에게 예수님이 다가오시는 것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를 성령의 시민으로, 그 나라 같이 살자고 식구로. 그래 식구로 삼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세상은 복음이 이 땅에 올 때 다 없애려는 시도를 하죠.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모세가 태어났을 때 바로는 모든 아이들을 죽여서 구원의 통로를 막으려 했어요. 그리고 죄의 노예 생활을 하던 우리를 구원해 줄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이 복음이신 아기 예수를 헤롯 대왕은 수많은 아기들을 죽여 구원의 씨앗을 없애려 했어요. 그리고 헤롯까지 갈 것도 없어요. 마리아의 남편 의롭다 여김 받던 요셉도 처녀가 잉태했다고 하니까 그 의로움으로 너무 마리아가 불결해요. 어떻게 처녀가 잉태를 할 수 있어. 그러면서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어요. 그러니까 무엇을 이렇게 없애 버리고 싶을까요.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가지게 된 뱃속의 아이, 앞으로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은 이 존재예요. 아유 정말 저 사람만 내 삶 속에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 수 없이 외치면서 내 삶을 저주하고 옷을 찢고 티끌을 날리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지금 수없이 울부짖고 있지 않으세요? 지금 유대인들처럼 무엇을 그렇게 없애 버리고 싶습니까? 하지만 바로 그 없애 버리고 싶은 그 존재와 이 사건을 통해서 내 삶에 예수께서 오시는 거죠. 저 역시 결혼해서 불행해졌다면서 침 삼킬 틈도 없는 시집살이로 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죠.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봐도 결국 어느 누구도 없어지기엔 다 너무 완벽했기에 가장 바보같고 불완전한 존재인 나를, 나를 옷을 찢고 티끌을 날리면서 내 생명을 없애고자 두 번이나 자살 시도까지 했었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던지고, 아내의 옷, 엄마의 옷을 벗어 던지고 집을 나가 가출도 했었죠. 하지만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시댁과 밤낮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 때문에 결국은 내 죄가 보여서 내 삶에 예수께서 오셨죠. 그건 없애 버리고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환경이 말씀이 들리며, 내 죄가 보이며 회개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인 거예요. 내가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바로 그 사건, 그 사람을 통해 예수께서 내 삶에 들어오시는 것이죠. 이는 나를 성령의 시민으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거 바울, 어머나 너무나 안됐어요. 바울을 다 죽이려고 그러지? 이렇게만 생각하면 큐티가 안되죠. 아셨습니까? 항상 나한테 내가 없애 버릴 자구나, 바로 내가 살려 둘 자가 아니구나. 나한테 적용을 좀 하셔야죠. 나한테 적용을 할 게 아니라.
23절에 떠들며, 던지고, 날리니가 현재 분사인데요. 나란히 세 차례 사용됨으로 그들이 얼마나 격렬한 분노와 흥분으로 설치고 날뛰는지 너무나 난폭한 군중들의 모습이 지금 표현되고 있어요. 자 여러분 한 사람도 죄인인데 죄인들이 모인 군중이 얼마나 악할 수 있다는 거, 이걸 아셔야 돼요. 이 군중은 악해요. 죄인들끼리 모였기 때문에 활활 불타고. 성령의 사람들도 불타지만 악인들도 불타요. 그래서 혼자는 맨날 이러다가 군중이 되면 막 힘이 생기자나요. 내가 성령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 온 군중이, 온 식구가 이해타산에 따라 다 악하게 달려들 수 있어요. 그러면서 나를 살려 둘 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본 회퍼 목사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에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 자신을 깊게 한탄하면서 아직도 자신은 참 신앙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이렇게 반성을 하셨어요. 여러분도 사소한 일로 쉽게 분노하기 보다는 참 사소한 일로 인해 쉽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이런 성숙한 신앙인이 되셔야 될 거예요. 적용해 보세요.
[적용] 내 눈이 돌아가게 하는 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내 삶에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사건, 상황은 무엇입니까? 사소한 일에 분노합니까? 분노하는 자신 때문에 아파합니까?
자 사건 때문에 늘 분노하는지 분노하는 내 자신 때문에 아파하는지 그거 딱 생각해보면 아실 거예요. 이 택자는 항상 이걸 좀 생각해야. 왜 맨날 분노하세요? 그 분노하는 내 자신 때문에 좀 마음 아파하면서 요 길로 좀 발전이 되셔야 돼요. 발전이. 그러니까 또 이제 여기는 어떤 부목자님이에요. 또. 여기는 여자 부목자님. 남편이 도박 중독인 거예요. 남편을 도박장에 못 가게 해야 되는데 이 집이 글쎄 온 집안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아내만 확진이 된 거야. 그래가지고 남편은 확진이 안 됐어요. 그런데 따라갈 수가 없자나 도박장에 격리가 돼야 되니까. 그러니까 왜 저인간이 확진이 돼야 되는데, 격리가 돼야 되는데 하나님 거꾸로 하셨어요. 그러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그러니까 정말 도박하는 남편이 얼마나 없애 버릴 자입니까. 그런데 남편을 향한 판단이 멈추게 되고 예목 과정을 통해서 남편만 중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으로부터 예수님이 오셨다는 거예요. 자기도 충동적인 소비를 하는 쇼핑 중독이 있음을 보고 남편과 다를 바가 없는 중독과 충동적인 사람임을 고백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도박하는 남편이 없애 버릴 자였지만 살리는 사람이 지금 된 거예요. 살리는 사람이. 할렐루야. 그러니까 이 해석이 해결이 되는 거예요. 해석이. 내가 사랑해야지. 이렇게 해결이 되는 게 아니고 말씀을 통해서 해석을 해야지.
3. 알고자 하며 물어야 합니다. (24-26절)
자 이제 여기서 천부장이 알고자 하여라는 표현은 천부장은 믿지도 않지만 바울이 히브리어로 설교를 하니까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이해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 설교를 듣고 났더니 갑자기 유대인들이 흥분해서 지금 떠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떠들다라는 단어는 짐승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를 묘사하는데 쓰이는 단어인데 이건 언제 또 쓰였냐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광기에 차 소리지를 때도 이 단어를 썼어요. 여기도 군중들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미완료로 꽤 오랫동안 바울을 죽여라! 없애 버려라하는 외침이 오랫동안 지속이 되는 거예요. 진짜 이 바울이 그냥 열심히 전도하려고 그러는데 이런 일이 오네요. 이 천부장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글쎄 어떻게 합니까? 지금 로마에 시민인 이 천부장은 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헬라어를 잘하는지 감탄까지 했으면서 헬라어에 능통한 바울에게 묻지도 않아요. 그리고 그가 먼저 취한 행동은 이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려고 하는게 아니라 이 상황을 통제하고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채찍질인 거예요. 채찍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익숙한 방법이고 자신의 권세며 힘이었어요. 쇠갈고리 채찍을 휘두르고 심문하고 정보를 얻는 것은 이 땅의 시민들이 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결국은 그렇게 하면 내 살점도 상대 살점도 떨어지고 피가 낭자하자나요. 천부장은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의 권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채찍을 준비하고 바울을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서 가죽줄로 바울을 기둥을 안고 맸다 그랬자나요. 서서 맸어요. 왜냐하면 때리는 것도 지네들은 힘이 안 들어야 되니까 이렇게 묶어놓고 뒤에서 있는대로 쇠갈고리로 해야 되니까. 왜냐하면 기둥에 안 묶으면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할 거 아니예요. 그렇게 하고 완전히 채찍질도 전문적으로. 그런데 이게 또 이제 바울 얘기가 아니고 우리 얘기자나요. 우리 역시 내 권력, 내 권세를 쓰면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묶고 결박하면서 채찍을 휘두르는 거예요. 쇳덩어리가 아니라도 이 독이 섞인 말과 눈빛으로 우리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니 잘못이야. 니 탓이야. 너 때문이야. 너가 왜 태어났어. 너 왜 그모양이야. 이런 얘기를 채찍질인 거죠. 쇠갈고리 채찍질이에요. 당장은 이 방법이 통해요. 아기한테 그렇게 함부로 하고 믹 화내는 거는 쇠갈고리 채찍이에요. 당장은 그 방법이 통해요. 애들은 힘이 없자나요. 그걸 다 쌓아 놓습니다. 그러면은 이제 짐승의 울음소리만 더 커질 뿐이죠.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항상 먼저 알고자 해야 되는 거예요. 모른다면 물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채찍질부터 나가는 게 우리의 모든, 화부터 내고, 독한 눈부터 쏴 대고. 우리는 가장 사랑해야 할 내 자녀뿐 아니라 이제 더 나가서는 자신에게도 나는 왜 이 모양이야? 채찍질을 나한테 하는 거죠.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내가 하면 안 돼. 정죄의 말로 나에게 채찍을 휘두릅니다. 이 방법이 늘 익숙하니까 그렇게 이제 너무나 엄격한 잣대로 나를 휘두르는 거죠. 내 마음의 살점들이 다 떨어져 내려가서 자존감이 바닥이 되니까 영혼이 상하는 거죠. 대부분 이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대합니다. 바울은 지금 여기서, 자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은 바울처럼 이 형벌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해요. 사실 죽기를 각오한 바울이 이미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바울이 채찍질이 두려웠겠습니까? 죽음이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죽고 싶어도 죽으면 안 되는 순간이에요. 지금 바울은 로마는 보아야 하리라의 사명이 있자나요. 그 사명을 완수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비겁해 보이고 수치스러울 수 있고 그리고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어도 살아야 되는 거예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너 사명이 있자나. 그래서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합니다. 유대인들 앞에서는 안 했어도 지금 죽기 직전이니까.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로마 시민권 자체를 의지하거나 그것을 대단히 여기는 게 아니죠. 성령의 사명을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시민권을 지금 사용하고 있을 뿐이에요. 로마 시민권이 목적이 아니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한 순단으로. 이 때를 알아야 돼요. 자기의 이익이나 자존심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결정적인 순간을, 타이밍을 알 수가 있게 돼요. 분별을 할 수가 있게 돼요. 이기적인 사람은 이 타이밍을 놓쳐요. 그런데 우리가 사명과 자존심을 분간하기 참 어렵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 둘이 뚜렷이 구분이 되질 않아요. 사명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이익과 자존심을 탐하는 욕심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 생각 자체가 타락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맨날 사명을 빙자해서 자기 욕심을 하면서 사명을 앞에다 내놓죠. 그래서 이제는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성령의 시민이 된 우리들은 물어야 합니다. 이게 특권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목장에서 예배로 말씀으로 대답해 주시기 때문이에요. 물어야 본질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이 상황이 나에게 왔는지. 바울이 지금 혼자 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혼자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믿음의 공동체가 배후에 있고 성부, 성자, 성령 거룩한 공동체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고 계신 거예요. 택했을 때도 예수님 택한 것처럼. 그 다음에 이렇게 에크아포스톨로스라고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바울을 이렇게 보호해주신다 그랬자나요. 우리 성도는 그냥 어디서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래요. 그러나 가시적인 공동체가 천국이니까 우리는 이제 목장에서 여기서, 저기서 물어야 돼요. 이제 우리는 내 생각 자체가 타락됐다는 것을 늘 인정하시고 가서 물어야 돼요. 내가 선한 게 하나도 없어요.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니 이 산 더러, 저 산 더러 옮기라고 해도 옮기우리라 그랬자나요. 내가 믿음이 없어요. 너무 정말 빈약해요. 그러니까 잘 물어보고 큐티하고 이런 게 순종인 거지 내가 선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니까요. 적용해보세요.
[적용] 나는 말로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결박하며 스스로 정죄하고 있지는 않나요?
남도 결박하고 나도 정죄하고 그래요. 그러면 정죄하는 게 남들이 보기에 또 겸손해 보이자나요. 그렇지 않아요. 나를 정죄하다가 다 죽자나요. 그래서 자살들을 해요. 자기를 쳐 이제 회개가 아니고 이렇게 후회를 하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이게 분별이 안돼요. 회개인지 정죄인지. 그러니까 이단들이 맨날 죄 얘기하면서 사람을 갉아 매고. 그리고 우리 보고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게 영적이어야지 분별이 되죠.
4. 시민권자의 권세가 있습니다. (27-29절)
그냥 천부장이 너무 깜짝 놀라가지고 직접 바울에게 가서 니가 로마시민이야? 물었어요. 너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말하지 않아야 될 이 천기누설인데 자기가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얻었는지 밝히는 거예요. 아니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두고 얻었는데 이거 말하면 안되자나요 천부장이. 이거 비밀인데. 그런데 니 따위가 그거를 얻었냐. 워낙 로마가 전세계에 식민지를 다 가지고 로마가 혼자 독야청청 종주국이자나요. 그러니까 차별을 둬야 되니까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대단한 권세를 줬어요. 그거 자체로 자기네들이 뻐겨야 되니까. 그래서 당시 로마 시민이 되는 정상적인 방법에는 모두 5가지가 있었는데요. 첫째가 당연히 로마 시민의 자녀로 태어나는 거예요. 둘째는 로마 시민권이 수여되는 도시의 시민이요. 빌립보처럼 로마의 식민지가 그렇죠. 셋째가 로마를 위해 동을 세워서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넷째는 임무 잘 마치고 제대하는 군인들에게 하사되는 경우가 있고, 다섯째는 로마 시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노예가 주인에 의해서 해방되는 경우예요. 이것이 정상적인 방법이에요. 그런데 천부장은 여기에도 다 못 속해요. 그래가지고 글라우디오 황제 때 불법으로 뇌물을 줘서 돈을 많이 주고 샀어요. 지금 시민권을. 그리고는 그냥 글라우디오 루시아자나요. 그러니까 글라우디오 때 자기는 시민권을 받았다고 그냥 그 이름을 거기다 붙이면서 자랑을 하고 있어요. 시민권도 그때는 비쌌는데 점점 오면서 서로가 통하기만 하면 유리병 깨진 것 몇 개 주고도, 그렇게 싸졌어요. 비싸다가. 나는 비싸게 줬는데 너는 싸게 줬지? 지금 이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너 유리병 몇 개 주고 샀지? 니까지껏 시민권 시민권도 아니야. 지금 이렇게. 그런데 이 촌로인 바울이 나는 나면서부터인데?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1등이지. 최고. 순수한 나는 시민권자고 황금 수저를 넘어서 다이아몬드 수저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그냥 천부장이 갑자기 바울의 이 권세에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만약에 바울이 이거 아닌 말을 하면 바울 그 자리에서 사형이에요. 아닌 말 하면. 거꾸로 지금 천부장이 사형에 처하게 생겼어요. 요럴 때, 결정적일 때 시민권을 사용해요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시민권을 뜻하는 단어가 있는데요. 성경에서 딱 한 번 빌립보서 3장 20절에 쓰였는데요.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니까 시민권이 대단해도 실상은 로마가 아니라 하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다시 오실 그 하늘 나라가 바울이 속한 진짜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시민권은 로마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죠. 자 그렇지만 로마 시민에게는 이렇게 권세가 있었어요. 그냥 그 시민권자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결박에서 지금 풀려날 만큼 로마 시민권에는 권세가 있었어요. 요즘에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 시민권이 이렇게 효과가 있어요. 아주 권세가 또 있어요. 시민의 의무가 있는가 하면 그 시민임에 분명한 권세가 있는 거예요. 잘 살아갈수록. 그러니까 이제 시민권이라는 거는 하나님이 주인이 돼서 나를 도와준다는 거자나요. 내 자식을, 하나님 천국 시에 우리가 주민이기 때문에 그걸 하나님이 돕는 거예요. 나라가 이렇게 대단할수록 정말 내새끼인데. 그런데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1976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유명하자나요. 거기서 북한군들이 미군 장교 두 명을 도끼로 죽인 도끼 만행 사건 기억나시나요? 여러분 늙었으니까. 도끼 만행 사건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장교 두 명을 잃은 미국은 이성을 잃었어요. 그래서 일본 오키나와 공군기지에서 F4 팬텀 전투기 24대가 한꺼번에 이륙하기 시작했고 미국 본토에서도 전투기 20대가 출격을 했고 여기에 핵폭탄을 실을 수 있는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움직였고, 특히 항공모함에는 전투기 65대와 군인 4천명이 승선할 수 있었어요. 이 무슨 말입니까? 미국은 이것을 빌미로 북한을 초토화시키고 평양까지 진격할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했는데요. 이게 뭔 말이죠? 미국 시민 두 사람을 국가가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대가를 이렇게 치른 거죠.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미국 시민의 권인 거예요. 권. 어디를 가든지 그냥. 그런데 그때는 그냥 미국이 이성을 잃었다고 그랬자나요. 보는 앞에서 도끼로 만행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어요. 천국 시민을 이렇게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거죠. 러시아가 금메달 때문에 그 어린 선수들에게 도핑을 하게 한 것은 지키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그들을 이용한 거죠. 이걸 이제 이단이라고 그래요. 어떻게 나라가 그럴 수가 있어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그 시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금 풀려났자나요. 미국 시민, 로마 시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우리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성령의 시민인 우리는 미국 시민하고 비할 바가 없는 권세가 있는 것이죠. 믿습니까? 단순히 육신의 매인 채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망 권세에서 자유를 선포할 권세가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의 시민인 거예요. 어떤 집사님이 남편 집사님와 늘 이혼을 생각하고 피터지게 한 번은 싸웠는데 자신이 돈 벌고 집안일 하고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달파서 돈도 못 벌면서 집안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남편이 너무 무시가 되고 싫어서 이 남편을 무시하는 말을 막 하다가 싸움이 번졌어요. 그런데 그 싸움을 보고 있던 7살 아들이 엄마에게 싸우지 말라고 '내가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한마디만 하면 돼.' 엄마한테. 그냥 그 말에 자신의 마음과 상관없이 억지로 남편에게 '잘못했어. 미안해.' 말을 하니까 글쎄 말도 안되는 화해가 일어나가지고 평화로운 한 주를 보냈대요. 너무 신기하다는 나눔을 해주셨답니다. 성령의 시민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죄인임을 아는 권세인 거예요. 최고의 권세예요. 내 잘못을 알기에 어디서든 '고마워.', '미안해.'를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이 땅에서 잘 살면 뭐해요. 이런 권세가 없으면 맨날 지옥을 살아요. 맨날 '당신이 잘못이야. 내가 왜 이러고 살아.' 이거 지옥이에요. 지옥. 그런데 '고마워.', '미안해.' 한마디가 마법이 되어서 나를 옭아매던 미움, 분노, 원망에서 자유케하는 권세예요. '미안해.', '고마워.' 믿지 않는 형식적으로 하는 말 한마디도 이런 권세를 가지는데 예수님 앞에 참된 죄인임을 회개하는 자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는 핵폭탄급 위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의 원수 마귀가 너는 죄인이야. 그랬을 때, 맞아요,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그 사람이 니가 잘못했자나., 맞아요. 이렇게 고백을 하면 사단이 죄의 굴레로 우리를 잡아넣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내 죄의 깊이를 아는 자만이 오직 예수 십자가를 붙들게 되며 주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죠. 천부장은 로마 시민권을 돈을 주고 샀는데도 이런 큰 힘이 있는데 나면서부터 바울의 로마 시민권은 훨씬 더 값지고 대단한 것이죠. 마찬가지로 흉내만 내도 이런 힘이 있는데 성령의 택하심으로 나면서부터 성령의 시민이었던 우리가 이렇게 잘못을 깨닫고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할 때 얼마나 큰 권세가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한 사람의 죄인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사람들 앞에 고백할 때 황홀, 성령의 황홀을 느끼면서 놀라운 권세를 같이 모인 우리 목장에서, 우리 교인들이, 믿는 사람들이 성령의 시민들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적용] 내 말 한마디가 엄청난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나요? 남편에게 아내에게 낯간지러워서 평생 하지 못한 고백이 있으십니까?
기도제목
듣다가 만 신앙이 있는데 계속 붙어가면서 인정하고 갈 수 있도록
엄마 피부병 아직도 낫지가 않네요. 영육간에 회복시켜 주시고 이 사건으로 주께 기도하기를. 적용하면서 복이 되기를
여동생이 일본으로 유학 가는 생각을 접을 수 있도록 취업으로 유턴하는 적용할 수 있도록
엄마가 하는 말에 옳소이다가 되도록. 무엇보다 가족들과 다같이 예배를 드리게 될 수 있기를
남동생 지혜를 구하고 기억력을 붙들어 주시길.
신교제, 신결혼 우리 목원들 저를 포함해 소망하는 바 축복이 있기를
미혜
나의 초라함, 나조차도 나를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 스스로 짊어지며 정죄하지 않고 예수님께 낱낱이 말씀드려 그분의 값없는 은혜를 더욱 사모하기를
회사 직원 채용 공고 잘 낼 수 있도록
피해의식과 분노가 많은 아빠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주시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 예수님의 은혜를 누리며 한 주 살기를
예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하루에 여러 가지 몰아서 하려고 애쓰지 말고 꼭 해야 할 일 잘 분별해서 하나씩만 하도록
두려움이 올라올 때 나의 연약한 어린 아이 같은 모습 그대로 기도하도록
실업급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계에 맞춰 잘 신청하고 순조롭게 절차가 진행되어 받을 수 있도록
매일 운동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