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0 성령의 시민 (행 22:22-29) 김양재 담임목사님
지난주 나눔에서 무엇이 황홀했는가 했더니 짝사랑 첫사랑 등등 이라고 했다. 어떤 목자님은 황홀한 깊은 만족은 1억이고 예배와 목장은 죽을 때 까지 가는 십자가라는 나눔을 하셨다.
황홀이라는 단어는 밖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답고 선하고 지켜야 할 말이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보면 사단이 굉장히 오염시켜놓은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황홀 하면 전부 야리꾸리한 것들만 생각나게 한다.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결국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이니 나를 깨닫는 것이고 유턴이고 회개이다. 회개는 인간 최고의 감정이다. 그러니 회개가 가장 황홀한 것이다. 이렇게 황홀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천국이다.
그러나 천국가는 길이 좁은 길이긴 하다. 이 땅에서 올림픽 금메달 따려 해도 엄청난 지옥 훈련이 필요하다. 이 땅에서도 그 영광 하나 가지려면 그렇게 지옥 훈련을 해야 한다. 공부 스펙이 다가 아니라 했지만 입시 치뤘었던 나는 입시 하나를 하려 해도 지옥 훈련을 했다. 무언가 성취하려면 지옥훈련이 필요하다. 천국 시민도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되어야 할 천국 시민에 대해 보겠다.
성령의 시민은
1. 듣다가 신앙은 되기가 어렵습니다.
22절
유대인들이 이 말까지 듣다가 소리를 질러 바울을 없애버리자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지난주 말씀에 바울이 자신이 유대인에게 딱 맞는 전도자라 하니 주님께서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에게 보낸다고 거절하셨다. 그런데도 그게 너무 좋은 일이니 자기 확신이 하늘을 찔렀다. 바울이 너무 선한 사명을 가졌고 핍박도 받았으니 그 뜻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말을 듣지 않아서 박해를 허락하신다.
바울이 당한 것이 많은데도 이럴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우리에게 바울이 반면교사 되게 하셨다. 우리도 그렇다. 그 길이 아니기에 말리는데 자기 확신과 고집이 많으면 듣다가 신앙이 되어 말릴 자가 없다. 그러면 겪어봐야 하니 어쩌겠는가.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그렇다.
어떤 장년부 부목자 분이 재혼사이트에서 불신여자분에게 홀딱 빠졌다 한다. 상대는 다른 남자와 긴밀하게 만나고 심지어 만나고 있다가도 그쪽으로 가고 같이 생활하기도 한다고 말해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 땅의 황홀에 목이 매였다. 문제는 불신자를 만나시고는 당장 목장도 안 나오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듣기가 어렵고 자기 확신이 자기 고집이 충만하다. 이분이 당할 일이 안타깝다.
우리가 영육간의 확신이 시기마다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다른 사람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우리들 교회에는 영적지수 200을 넘어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 이 200을 넘어서는 사람이 15 프로만 있어도 나머지를 살린다고 한다.
목장마다 200 이하의 골방 감정들이 총 출동해서 목장에서 난리를 친다. 그런데 200 이상인 사람이 15프로만 있어도, 즉 한명 반만 있어도, 직분 유무 고하 간에 목장에 그런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목장을 살릴 수 있다 한다. 그 사람이 목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주님 만나니 직분 없어도 목장 나가면 항상 살리는 것이 된다. 내가 기도 한번만 해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다. 직분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 살리는 그 한 사람을 보고 다들 듣다가 신앙이 되어 없애버릴자라고 하며 중간에 나가고 말 끊고 골방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이 길을 미리 가르쳐 주신다. 살려내는 한 사람을 다 공격한다. 골방 감정 ampndash 분노 두려움 슬픔 무기력 ampndash 들이 다 모여서 겨우 용기 있게 넘어간 그 한 사람을 공격한다.
이렇게 택하심 받은 것 같은데도 듣다가 마는 사람, 듣다가 끝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면 천국에 입성하지 못한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칼막스나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던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를 아시는가? 이 똑똑한 사람들이 전부 신학 하다가 중단했다 한다.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이 궁금해서 말씀 듣는 것 같은데 하다보니 들을 것 없다가 되었다. 듣다가 중단하니 그렇다. 이런 사람들이 세계를 도탄에 빠트리는 사람이 된다. 지금도 나이 많은 어떤 부목자님은 너무 똑똑하신데 제 말씀은 하나도 안들리셔서 지금도 니체만 읽고 있다고 하신다.
적용) 듣다가 만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양육입니까, 목장입니까? 남편, 아내, 자녀의 말입니까?
2. 없애 버릴 자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22절
세상에 살려둘 자가 아닌 자를 되살리는 것이 기독교이다. 바울은 그동안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귀에 거슬리는 어떤 표현도 자제하면서 변론을 한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시종일관 경청하는 자세로 듣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바울은 유대인을 자극하는 단어를 썼다. 이방인 이라는 단어이다. 자기가 유대인 선교 하려고 했는데 주님이 자꾸 말려서 할 수 없이 이방인 선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21절에서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에게는 쓰지 못할, 들어서는 안되는 단어였다. 이방인이라는 말만 해도 유대인이 난리가 났다.그들에게 이방인은 단지 미워하고 낮은 계급으로 여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높고 낮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방인은 선택 받지 못한 부정한 버림받은 부정한 존재였던 것이다.
유대인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정한 것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것 또한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거룩해야 하기에 자신들의 삶에 부정한 것이 있다면 예배드리고 제사드리고 제물 바쳐서 이 부정한 것을 없애야 하나님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이 유대인들은 본인들이 너무 거룩해야 하기 때문에 오픈 하는 이런 간증들이 너무 더럽고 찌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없애버릴 자라고 하는 것이다.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만 사랑하신다고 믿는 배타주의적 태도로 자기들과 나머지 인류를 구분하는데 1500년이나 애써왔다. 우리는 너네와 달라 한다. 그러니 이방인이라는 그 한마디를 도저히 넘어가지 못한다.
이미 무리는 바울이 22:36절에서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 없이 하자, 죽이자 했는데 이 변명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그를 없애버리자 한다.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자가 아니라 아예 세상에서 없애버리자고 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살려둘 수 없다 한다. 개역 한글에서는 이따위 놈이라고 했다. 우리가 3주에 걸쳐 자세히 살펴봤듯이 바울이 마음을 써서 죽을 각오를 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손발 가는 적용으로 디테일하게 섬겼지만 그 바울의 변론의 결과는 실패로 끝난 셈이 되었다.
내가 너보다 잘났다 하는 선민의식과 고정관념은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율법주의, 경건주의... 이런 이즘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바벨론 앗수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지만 로마시대 이후에는 이즘이 가장 대적이다.
이것이 우리와 어떻게 연관되나? 우리도 오늘날 동일하게 외친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버리자 한다. 하지만 어떤가? 없애버리고 숨기고 제거한다면, 내가 싫은 사람을 다 제거한다면 내 삶에 주님이 오시겠는가? 이럴 때 곰곰히 THINK 해봐야 한다. 지금 유대인들이 가장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대상이 바울이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 바울의 입으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무슨 말인가? 내가 가장 없애버리고 싶은 그 존재 상황 사건을 통해 나에게 예수님이 다가오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를 성령의 시민으로 삼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음이 이 땅에 올 때 늘 없애려는 시도를 한다.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바로는 모든 아이들을 죽여서 구원의 통로를 막으려고 했다. 그리고 죄의 노예생활을 하던 우리를 구원해줄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셨을때도 복음이신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헤롯 대왕은 수많은 아기들을 죽여서 구원의 씨앗을 없애려 했다. 헤롯까지 갈 것도 없다. 마리아의 남편, 의롭다 여김받던 요셉도 처녀가 잉태했다 하니 그 의로움으로 마리아가 불결하다며, 처녀가 잉태했다며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다.
무엇을 우리가 이렇게 없애버리고 싶을까?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가지게 된 뱃속의 아이, 앞으로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은 존재이다. 저 사람만 내 삶속에 사라져버리면 좋겠다고 수없이 외치며 내 삶을 저주하며 옷 찢고 저주하며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울부짖고 있지 않는가?
지금 유대인들처럼 무엇을 없애버리고 싶은가? 하지만 바로 없애버리고 싶은 그 존재와 사건 상황을 통해서 내 삶에 예수께서 오신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서임신한 아이들은 아이를 낳았기에 다 주님을 만났다. 그런데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살려야 하는데 없애버리려 한다. 저 역시 결혼해서 불행해졌다 하며 침 삼킬 틈도 없는 시집살이로 내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봐도 어느 누구도 없어지기에는 다 완벽했기에 가장 불완전한 존재인 나의 옷을 찢고 티끌을 날리면서 내 생명을 없애고자 두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아내의 옷 엄마의 옷-을 다 벗어던지고 가출도 했다. 그러나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시댁과 밤낮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 때문에 결국 내 죄가 보여서 내 삶에 예수께서 오셨다. 늘 없애버리고자, 살려둘자가 아니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환경이 말씀이 들리고 내 죄가 보이며 회개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다. 내가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바로 그 사건 그 사람을 통해 예수께서 내 삶에 들어오신다. 이는 나를 성령의 시민으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그러니 왜 바울을 죽이려 하지 하는 생각만 하면 큐티가 안된다. 항상 내가 없애버릴 자, 내가 살려버릴 자가 아니구나 하고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
23절
떠들고 던지며 날리니 가 3차례 사용된다. 나란히 세차례나 사용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격렬한 분노와 흥분으로 설치고 날뛰는 것을 보여준다. 너무나 난폭한 군중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100프로 죄인이다. 한사람도 죄인인데 죄인이 모이면 얼마나 악하겠는가? 군중은 악하다. 죄인들끼리 모였기에 활활 불탄다. 성령의 사람들도 불타지만 악인들도 불탄다. 그래서 군중이 되면 힘이 생긴다. 내가 성령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 온 군중과 온 식구가 이해타산에 따라 다 악하게 달려들 수 있다. 그러면서 나를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본 회퍼 목사님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시에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 자신을 깊게 한탄하면서 아직도 자신이 참 신앙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반성하셨다. 여러분도 사소한 일에 쉽게 분노하기보다는 사소한 일에 대해 쉽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면 좋겠다.
적용) 내 눈이 돌아가게 하는 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내 삶에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사건, 상황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사소한 일에 분노합니까, 분노하는 자신 때문에 아파합니까?
사건 때문에 늘 분노하는지, 분노하는 내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엄마 때문에 날마다 분노하는가, 분노하는 나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가? 그것으로 여러분의 신앙의 점수가 매겨진다. 왜 맨날 분노하는지, 나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이 쪽으로 발전이 되면 좋겠다.
어느 여자 부목자님 이야기
남편이 도박중독자였고, 아내분은 남편을 도박장에 못가게 말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온 집안이 다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아내만 확진되었다. 남편은 확진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기가막힌가. 그러나 격리되어야 해서 도박장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저 인간이 확진되어 격리되어야 도박장 못가게 하는데 하며 하나님 거꾸로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었다. 도박하는 남편이 얼마나 없애버릴 자 같았겠는가. 그런데 남편을 향한 판단이 멈추게 되고 예목과정을 하면서 남편으로부터 예수가 오셨다 한다. 남편만 중독이 있다 생각했는데 자기도 집에 있다보니 충동적으로 쇼핑하는 것을 깨달았다 한다. 그래서 결국 남편의 중독과 자기 중독이 다를 것이 없는 충동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한다. 이 도박하는 남편이 없애버릴 자였지만 살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해석이 해결이 된다. 내가 사랑해야지 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 해석해야 한다.
성령의 시민은 듣다가 마는 신앙이 되면 안되고, 없애버릴 자를 살려야 한다. 근데 어떻게 살리는가?
3. 알고자 하며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모른다. 눈만 뜨면 살 수가 없다.
24-26절
여기서 천부장이 알고자 하여 라는 표현은 천부장이 믿지도 않았지만 바울이 설교를 히브리어로 하니 뜻도 말도 몰라 이해를 못했다는 것이다. 자기와는 헬라어로 이야기 했는데 히브리어로 설교하니 이해도 못했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갑자기 유대인이 흥분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떠들다 는 짐승이 크게 울부짖기 시작한다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광기에 차서 소리 지를 때도 이 단어를 썼다. 여기도 군중들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라 미완료로 나온다. 꽤 오랫동안 크게 울부짖으며 바울을 죽이라 없애버리라를 지속적으로 외쳤다. 바울이 열심히 전도하려는데 이런 일이 온다.
그런데 천부장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어떻게 하는가? 지금 로마의 시민인 이 천부장은 이 상황을 통제하기 전에 먼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헬라어에 능통한 바울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이 왜 이리 되었는지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했다. 그 방법이 채찍질이다. 채찍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익숙한 방법이었고 자신의 권세이며 힘이었다. 채찍질은 쇠갈고리가 달렸다. 채찍 휘두르고 심문하여 정보를 얻는 것은 이 땅의 시민들이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하면 내 살점 상대 살점도 다 떨어지고 피가 낭자하다.
천부장은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의 권력으로 통제하기 위해 채찍을 준비하고 바울을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서 가죽줄로 바울을 기둥에 묶어 맨다. 힘들지 않게 때리기 위해서였다. 채찍질 하는데 바울을 그냥 세워두면 때릴 때 마다 쓰러지니 때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원통형 기둥을 안게 만들어서 그대로 묶어두면 채찍으로 때려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면 살점이 더 잘 뜯긴다. 정말 죽이려고 묶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바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 역시 내 권력 권세를 쓰며 아이들을 통제하며 묶고 결박하며 채찍을 휘두른다. 쇠갈고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독이 섞인 말과 눈빛으로 우리 살점이 떨어져나간다. 네 탓이야 니 잘못이야, 너 때문이야 너 왜 그 모양이야 하는 것들이 쇠갈고리 채찍질이다. 이것이 독이다. 아이에게 함부로 하고 화내는 것은 쇠갈고리의 채찍이다. 당장은 그 방법이 통한다. 아이들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 쌓아둔다. 그러면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더 커질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알고자 해야 한다. 모른다면 물어야 한다. 그런데 채찍부터 나가는 것이 우리이다. 화부터 내고 독한 눈으로 쏘아댄다.
우리는 가장 사랑해야 할 내 자녀 뿐 아니라 더 나가서 내 자신에게까지 난 왜 이모양일까 하며 정죄의 말로 채찍을 휘두른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나는 안되 하며 정죄의 말로 나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이 방법이 익숙하니 그렇게 엄격한 잣대로 나를 휘두른다. 내 마음의 살점들이 다 떨어져내려가서 자존감이 바닥이 되니 영혼이 상하게 된다. 대부분 우리는 이렇게 자라왔기에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대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바울처럼 이 형벌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한다. 사실 죽기를 각오한 바울이, 이미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바울이 지금 이 채찍이나 죽음이 두렵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죽고 싶어도 죽으면 안되는 순간이다. 바울에게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는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사명 때문에 죽고 사명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비겁해 보일 수 있고 수치스러울 수 있어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서 나는 로마 시민이라고 한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로마 시민권 자체를 의지하거나 이것을 대단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 말이지만 성령의 사명을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시민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로마 시민권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구원 때문에 주는 것이다. 로마 시민권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목적의 수단으로 결정적일 때 사용한다. 자기 이익 자존심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결정적인 순간을 분별할 수 있다. 이기적인 사람은 타이밍을 놓친다.
근데 우리가 사명과 이익, 또는 사명과 자존심을 분간하기가 참 어렵다. 우리 생각에는 이 둘이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사명인 것 같으나 그 이면에는 이익과 자존심을 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생각 자체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 자체가 욕심이 깔려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매번 사명을 빙자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사명을 앞에다 내놓는다.
그래서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성령의 시민이 된 우리들은 할 일이 무엇인가? 알고자 해야 한다. 물어야 한다. 물을 수 있는 것이 특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목장에서 예배로 말씀으로 대답해 주시기 때문이다. 물어야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피로 값 주고 사신 공동체에서 물어야 한다. 왜 이 상황이 나에게 왔는지 물어야 한다. 믿음이 있어서 잘나서가 아니다. 돈 있고 없고 배우고 안 배운걸 떠나서 묻는다는 것에 대해서 답을 해준다. 물으면 본질을 알기가 쉽다. 그래서 왜 이 상황이 나에게 왔는지 물어야 구속사를, 무언가 떠드는 소리에서 답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런데 찌질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영원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유대인처럼 유리하면 성령의 시민이 될 수 없다.
바울이 지금 혼자 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혼자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믿음의 공동체가 배후에 있고 성부 성자 성령의 거룩한 공동체이신 삼위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고 계신다. 택했을 때도 예수님께서 택하신 것 처럼, 삼위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해 주신다.
우리 성도들은 어디서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란다. 믿는 사람들은 공동체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묻고 독대하고 묻고 공동체에 묻고 성경에서 묻고... 물어야 한다. 우리는 선한 것이 없다. 가시적인 공동체가 천국이니 목장에서, 여기서 저기서 물어야 한다. 우리는 내 생각 자체가 타락했다는 것을 늘 인정하고 가서 물어야 한다. 내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옮기라 해도 옮기우리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이 없다. 정말 빈약하다. 잘 물어보고 큐티하는 것이 순종이다. 내가 선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적용) 내가 말로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결박하며 스스로 정죄하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휘두르고 내가 못견딘다. 자기 죄를 보면 평화가 오지만 정죄하면 괴롭다. 우리는 남도 결박하고 나도 정죄한다. 그런데 정죄하는 것이 남들이 보면 또 겸손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를 정죄하다가 다 죽는다. 그래서 다 자살들을 한다. 내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하니 그렇다. 안믿는 사람들은 회개인지 정죄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러니 이단들이 매일 죄 이야기 하면서 사람들을 갉아매고, 우리보고 이상하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영적이어야 분별이 된다.
성령의 시민 4번째
4. 시민권자의 권세가 있습니다.
27-29절
결박당한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 하니 천부장이 너무 놀라 바울에게 직접 가서 너 로마 시민이냐고 한다. 별볼일 없는데 왜 로마시민이냐 한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돈 많이 주고 샀는지 아냐고 한다. 너무 별볼일 없는 바울이 로마시민인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가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얻었는지, 이것이 말하지 않아야 할 천기누설인데도 밝히는 것이다. 너 따 따위 어떻게 얻었냐고 하는 것이다.
워낙 로마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로마는 특별하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어야 한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일부러라도 대단한 권세를 줬다. 때리고 결박하면 큰일 났다.
당시 로마 시민이 되는 정상적인 방법이 다섯가지가 있었다. 첫째 로마 시민의 자녀, 둘째 로마시민권이 수여되는 도시의 시민(ex. 빌립보), 로마를 위해 공을 세워 시민권 받는 경우, 임무를 잘 마치고 제대하는 군인들에게 하사하는 경우, 로마 시민을 주인으로 모시던 노예가 주인에 의해 해방되는 경우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천부장은 이 다섯가지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라우디오 황제 때 불법으로 뇌물을 많이 줘서 샀다. 그리고 글라우디오때 시민권을 받았다고 이름을 붙이며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권도 처음에는 비쌌는데 나중에는 싸졌다고 하는데, 바울보고 너는 싸게 주고 로마 시민권 산 것 아니냐고, 자신은 비싸게 주고 샀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은 시민권도 아니라 한다. 난 이만큼 돈 주고 샀는데 넌 어떻게 샀냐 하는 것이다. 근데 바울은 자신이 나면서부터 시민된 자라고 했다. 완전히 첫번째 조건,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니 천부장이 바울의 권세에 갑자기 눌렸다. 바울이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 자리에서 사형이다. 그러나 천부장이 도리어 사형당하게 생긴 것이다.
성경에서 시민권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 성경에서 딱 한번 빌3:20에 써 있다.
빌 3:20 ampndash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로마 시민권이 대단해도 실상은 로마가 아니라 하늘이,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거기로부터 다시 오실 그 하늘나라가 바울이 속한 진짜 나라라는 뜻이다. 바울의 시민권은 로마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어쨌든 이처럼 로마 시민에게는 권세가 있었다. 그 시민권자라는 그 한마디로 인해 결박에서 풀려날 만큼 로마시민이라는 권세가 있었다.
시민은 분명한 권세가 있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나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 시민은 하나님께서 돕는다.
1976년 8월에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북한군들이 미국 장교들을 두명 죽인 도끼만행 사건이 있었다. 장교 둘을 잃은 미국은 이성을 잃고 전쟁할 준비를 했다. 미국은 이것을 빌미로 북한을 초토화 시키고 평양까지 진격할 작전을 세웠다. 무슨 말인가? 미국시민 두 사람을 국가가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룬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시민의 권위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천국 시민도 이렇게 지키신다.
그러나 러시아가 금메달 때문에 어린 선수들에게 도핑을 하게 한 것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그 시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채찍에서 놓임 받고 결박에서 풀려났다. 미국 시민 로마시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성령의 시민인 우리는 다른 나라와 비할 바가 없는 권세가 있다. 단순히 육신에 매인 채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망 권세에서 자유를 선포할 권세가 있다. 이것이 성령의 시민이다.
어떤 집사님 나눔
돈도 안벌고 까딱도 안하나는 남편을 무시하다가 싸움이 크게 일어났는데, 7살 아들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한마디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자신의 마음과 상관 없이 억지로 사과 했더니 화해가 일어났다고 너무 신기하다는 나눔
성령의 시민의 권세가 무엇인가? 바로 내가 죄인임을 아는 권세이다. 인정하는 것이다. 내 잘못을 알기에 어디서든 고마워 미안해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잘 살면 뭐 하는가, 이런 권세가 없으면 매일 지옥을 산다. 매일 당신이 잘못했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 하면 지옥이다. 그러나 고마워 미안해 한마디를 하면서 나를 옭아매던 미움 분노 원망에서 자유케 된다. 믿지 않고 형식적으로 하는 한 마디도 권세를 가지는데, 예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한 자의 미안해 의 한마디는 핵폭탄급 위력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원수 마귀가 너는 죄인이라고 정죄할 때 우리는 주님께 내가 죄인이라고, 둘은 다른 죄인임을 의미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이상 사단이 죄의 굴레로 우리를 잡아 넣지 못한다. 그러니 그 죄의 깊이를 아는 자 만이 오직 예수 십자가를 붙들게 되며 주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나면서부터 얻은바울의 로마시민권은 값지고 대단했다.천부장의 로마 시민권은 돈으로 사도 큰 힘이 있었다.흉내만 내도 이런 힘이 있는데, 성령의 택하심으로 나면서부터 성령의 시민이었던 우리가 그 잘못을 깨닫고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한다면 얼마나 큰 권세가 있겠는가? 그래서 결박한 천부장이 오히려 두려워하는 놀라운 권세가 성령의 시민만이 가지고 잇는 시민권이다. 한 사람의 죄인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사람들 앞에 고백할 때, 성령의 황홀을 느끼며 목장에서 믿는 사람들이성령의 시민들이 되어서놀라운 권세로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줄 믿는다.
적용) 내 말 한마디가 엄청난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나요? 남편에게 아내에게 낯간지러워서 평생 하지 못한 고백이 있나요?
결혼 20년만에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무릎꿇고 목장에서 목장 처방으로 한 목자님이 있다. 고백한것과 안한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이다. 성령의 시민들이 모인 곳이다.
미국 시민권자이나 천국 시민권을 사모하여 교회와 목장 때문에 좋은 임무가 나왔음에도 한국에 남기로 고민했다는 미국인 제리 라이더 부목자님의 간증
외국인들도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열악한데도 목장이 몇 개나 되고 있다. 강에서 바다로 가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 말씀맺음 ]
성령의 시민은 듣다가 마는 신앙은 안된다. 끝까지 들어야 한다. 없애버릴 자를 살리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알고자 하여 물어야 한다. 내 고정관념의 채찍을 휘두르면 안된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 시민권자의 권세가 주어진다. 죄를 보는 권세이다. 이것이 대단한 권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고쳐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좁은 길이다. 성령의 시민은 좁은 길 지옥훈련이다. 왜 일이 왔는지 날마다 하나님께 이웃에게 공동체에세 물어보고 고쳐달라 해야 한다.
[ 기도제목 ]
*크리스틴
1. 맡겨진 일과 리포트를 해낼 수 있는 마음과 체력 주시길
2. 말씀 가까이하며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3.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 보련
1. 직장 인도함 받도록
2.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 보며 하루 살기
* 승희
1. 내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보이스로 들리는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2. 때마다 생각하고 동행하는 삶 살아갈 수 있도록
3. 사촌동생 결혼식 휴무 직장에서 잘 허락받고 다녀오기 (나를 먼저 아끼는 선택 할 수 있도록)
* 지향
1. 4/2일 신결혼 합니다. 살려주시고 도와 주시고 로마까지 안전하게 동행하는 천사를 보내시도록 기도합니다.
* 은선
1. 3.4 논문계획발표 성실히 준비해서 잘 마칠 수 있기를
2. 직장 불평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잇기를
3. 진로 인도해주시기를. 관련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4. 성령의 시민권을 주셨음을 깨닫고 이번 주 감사할 수 있기를.
5. 마음이 편해서 큐티 잘 안하게 되는데 지친 영육을 말씀으로 회복시켜주시기를
* 교희
1.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내 삶의 뿌리가 되어 주시기를
2. 스스로를 결박하고 정죄하기보다 받아주도록
3. 이사 순적히 진행되도록
4. 동생 구원과 엄마와의 관계 분별
* 은우
1. 작품이 고장난 것이 꼭 있어야 하는 일인 줄 알고 끝까지 전시 마감할 수 있도록
2. 프로젝트들 주님께 묻고 앞서지 말고 겸손히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3. 전시 철거가 있는데 도움 없이 할 수 없음을 알고 잘 마무리 되도록
4. 천국 문 앞에 설 때는 1,2,3에 대한 어떤 것도 묻지 않는 다는 것 알고 천국 시민 권세로 하루를 말씀에 잘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