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시민
본문: 행 22:22-29
설교: 김양재 목사님
황홀이라는 단어는 밖에서 나를 보는, 아름답고 선하고 지켜야 될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보면 사탄이 굉장히 오염 시켜 놓은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 결국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고,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인간의 최고의 감정이기에 황홀이 맞습니다. 황홀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천국 아닐까요? 그러나 천국 가는 길이 좁은 길이긴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 하나를 따려해도 엄청난 지옥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되어야 할 성령의 시민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성령의 시민은)듣다가 신앙은 되기 어렵습니다.
22절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지난 주일에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자기는 깔맞춤 전도자라고 하니,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아닌 먼 이방인에게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은 일이니, 자기 확신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말을 안 들으면 박해를 당하는 일이 오게 하십니다. 바울도 당한 것이 많은데, 그럴 수가 있습니다. 참 위로가 됩니다. 우리에게 바울이 반면 교사 되게 하시니,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는데, 참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 길로 가면 아니기에 말리는데, 자기 확신이 많으면 듣다가 신앙이 되어서 말릴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겪어봐야 합니다.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육 간에 확신이 시기마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교회에는 영적지수가 200을 넘어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이런 200이 넘는 분이 15%만 있어도 교회도 살고 다 살아 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목장마다200이하의 골방 감정들인 분노, 두려움, 슬픔, 무기력, 죄의식, 수치심들이 총 출동해서 늘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 200이상의 사람이 목장마다 15%, 백분율로 해서 1명반, 직분유무 간에 그런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그 목장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그 한 사람을 보고 다들 듣다가 신앙이 되어서, '없애버릴 자다!' 하면서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다 중간에 나가고, 말을 끊고, 골방 감정을 충만히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의 사도바울께서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살려내는 한 사람을 다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그 골방감정- 분노, 두려움, 슬픔, 무기력들이 다 모여서 겨우 용기있게 넘어간 그 한 사람을 공격합니다. 이렇게 택하심 받은 것 같은데도 경청하는 것 같다가 듣다가 마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입성을 못합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나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던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 - 이 똑똑한 사람들이 신학을 하다가 중단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 같았겠죠. 그런데 하다보니 들을 게 없다가 되었습니다. 듣다가 중단을 하니, 이런 사람들이 세계를 토탄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적용] 듣다가 만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양육입니까? 목장입니까? 남편, 아내, 자녀의 말입니까?
2.(성령의 시민은)없애 버릴 자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22절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살려둘 자가 아닌 자를 되살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바울은 그동안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귀에 거슬리는 어떤 표현도 자제 하면서 변론을 하니, 유대인들이 시종일관 경청하는 자세로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는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단어를 하나 썼습니다. 지금 바울이 유대인을 전도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니다, 아니다, 이방인을 해라.' 그래서 자신이 이방인 선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서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쓰지 못할, 들어서는 안 되는 단어가 이방인입니다. 그들이 그저 이방인을 미워하고, 낮은 계급으로 여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높고 낮음에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은 하나님께 선택 받지 못한 버림 받은 부정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가 부정한 것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것 또한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자신들의 삶에 부정한 것들이 있다면 예배 드리고, 제사 드리고, 제물 받쳐서 이 부정한 것들을 없애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본인들이 너무 거룩하기 때문에 오픈하는 간증들이 너무 지질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얘기를..!' 다 들고 일어나서 '없애버릴 자다!' 다 이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만을 사랑하신다고 믿는 이 베타주의적 태도로 그들은 자기들과 나머지 일류를 구분하는데 1500년 동안이나 애써왔습니다. 그러니 이방인 이 한마디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미 무리는 바울을 21장 36절에 변론하기도 전에 '없이하자!' 했는데, 이 변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 그를 '없애버리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없애버리자, 같은 하늘에 살려 둘 수가 없다', 개역한글에서는 '이런 놈이(이 따위 놈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마음을 써서 죽을 각오까지 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디테일한 간증을 했습니까? 하지만 당장 그에게 나타난 결론은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했지만, 결국 바울의 변론은 실패로 끝난 셈이 되었습니다. 선민의식과 고정관념은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무서운 것입니다. 경건주의, 사회주의, 물질주의 등 이런 이즘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은 다 이즘입니다. 우리도 오늘날 외칩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하지만 없애버리고, 다 제거해버린다면 결코 내 삶의 내 인생에 예수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가장 없애고 싶은 대상이 바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예수님이 바울의 입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가장 없애버리고 싶은 그 존재, 그 사건과 그 상황을 통해서 나에게 예수님이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를 성령의 시민으로 식구로 삼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 땅에 복음이 올 때 다 없애버리는 시도를 합니다.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모세가 태어났을 때, 바로는 모든 아이들을 죽여서 구원의 통로를 막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노예 생활을 하던 우리를 구원해줄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셨을 때도 복음이신 아기 예수를 헤롯 때 왕은 수많은 아기들을 죽여 구원의 씨앗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까지 갈 것도 없고, 마리아의 남편 의롭다 여김 받던 요셉도 처녀가 잉태했다고 하니까 그 의로움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무엇을 우리가 그렇게 없애 버리고 싶을까요? 내 의도와 전혀 상관 없이 가지게 된 뱃 속의 아이, 앞으로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은 존재들. 지금 유대인들처럼 무엇을 그렇게 없애버리고 싶습니까? 하지만 바로 없애버리고 싶은 이 존재와 이 사건을 통해서 내 삶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이는 나를 성령의 시민으로 삼기 위한 구속사입니다.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떠들며, 던지며, 날리니가 현재분사인데, 나란히 세 차례 사용됨으로 그들이 얼마나 격렬한 분노와 흥분으로 지금 설치고 날 뛰는지, 너무나 난폭한 군중들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죄인인데, 죄인들이 모인 군중이 얼마나 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죄인들끼리 모였기 때문에 군중을 악합니다. 내가 성령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 온 군중이, 온 식구가 이해타산에 따라 다 악하게 달려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 해퍼 목사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에서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는 자신을 깊게 한탄하면서, 아직도 자신은 참 신앙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사소한 일로 쉽게 분노하기 보다는 사소한 일로 인해, 쉽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이런 성숙한 신앙인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적용] 내 눈이 돌아가게 하는 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내 삶에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사건, 상황은 무엇입니까? 사소한 일에 분노합니까? 분노하는 자신 때문에 아파합니까?
3.(성령의 시민은)알고자 하며 물어야 합니다.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여기서 천부장이 알고자 하여라는 표현은 바울이 히브리어로 설교를 하니 하나도 못 알아듣고 이해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나니, 갑자기 유대인들이 흥분해서 막 떠들기 시작합니다. 떠들다라는 단어는 짐승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를 묘사하는 데에 쓰인 단어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광기에 차 소리 지를 때도 이 단어를 썼습니다. 여기도 군중들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미완료로 꽤 오랫동안 '바울을 죽여라! 없애 버려라!'는 외침이 오랫동안 지속이 된 것입니다. 천부장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로마의 시민인 천부장은 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어에 능통한 바울에게 감탄을 하면서도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취한 행동은 이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통제하고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채찍질인 것입니다. 채찍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익숙한 방법이고, 자신의 권세며 힘이었습니다. 쇠 갈고리 채찍을 휘두르고, 심문하고, 정보를 얻는 것은 이 땅의 시민들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내 살점도, 상대 살점도 떨어지고 피가 낭자하게 됩니다. 천부장은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의 권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채찍을 준비하고, 바울을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서 가죽줄로 바울을 기둥을 앉고 맸습니다. 이게 바울 얘기만이 아니고 우리도 역시 내 권력, 군세를 쓰면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묶고 결박하면서 채찍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쇳덩어리가 아니라도 독이 섞인 말과 눈빛으로 우리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네 잘못이야. 네 탓이야. 너 때문이야. 너 왜 태어났어? 너 왜 그 모양이야.' 이런 말들도 채찍질입니다.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기 전에 문제를 알고자 해야 합니다. 모른다면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채찍질부터 나가는 것이 화부터 내고, 독한 눈부터 쏘아 대고.. 우리는 가장 사랑해야 할 내 자녀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자신에게도 '나는 왜 이 모양이야.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내가 하면 안돼. ' 정죄의 말로 나에게 채찍을 휘두릅니다. 이 방법이 늘 익숙하니까, 너무나 엄격한 잣대로 나를 휘두르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살점들이 떨어져서 자존감이 바닥이 되니 영혼이 상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은 바울처럼 이 형벌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죽기를 각오한 바울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바울이 채찍질이 두려웠겠습니까. 죽음이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죽고 싶어도 지금 죽으면 안되는 순간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비겁해 보이고, 수치스러울 수 있고,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어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그래서 로마시민이라는 말을 합니다. 유대인들 앞에서는 안 했어도 죽기 직전이기 때문에.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로마시민권 자체를 의지하거나 그것을 대단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명을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 시민권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로마시민권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한 수단으로 때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이익이나 자존심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결정적인 순간의 타이밍을 알 수 있게 분별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타이밍을 놓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명과 일, 사명과 자존심을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 부분이 뚜렷이 구분이 되지가 않습니다. 사명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이익과 자존심을 탐하는 욕심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 생각 자체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날 사명을 빙자해서 자기 욕심을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성령의 시민이 된 우리들은 물어야 합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장에서, 예배로, 말씀으로 대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물어야 본질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이 상황이 나에게 왔는지. 바울이 지금 혼자 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혼자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믿음의 공동체가 배후에 있고, 성부성자성령 거룩한 공동체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어디서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시적인 공동체가 천국이니까 우리는 물어야 됩니다. 이제 우리는 내 생각 자체가 타락됐다는 것을 늘 인정하시고 가서 물어야 됩니다. 내가 선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믿음이 없고 빈약합니다. 물어보고 큐티하는 것이 순종이지, 내가 선할 수 없습니다.
[적용] 나는 말로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결박하며 스스로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성령의 시민에게는) 시민권자의 권세가 있습니다.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천부장이 너무 깜짝 놀라서 '네가 로마 시민이냐?'하고 물었습니다. 너무나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바울이 로마시민이라는 것을 받아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야 될 천기누설인데, 자기가 어떻게 로마시민권을 얻었는지 밝히는 것입니다. 로마시민권자에게는 대단한 권세를 주었습니다. 천부장은 글라디오 황제 때 불법으로 뇌물을 주고 시민권을 샀습니다. 그라우디오 때 자기는 시민권을 받았다고, 지금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라'라고 말합니다. 결정적일 때 시민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시민권을 뜻하는 단어가 또 있는데, 성경에는 딱 한번 빌립보서 3장 20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로마시민권이 대단해도 실상은 로마가 아니라 하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다시 오실 그 하늘나라가 바울이 속한 진짜 나라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시민권은 로마시민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시민에게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시민권자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결박에서 풀어날 만큼 로마시민권에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시민의 의무가 있는가 하면, 그 시민임에 분명한 권세가 잘 살아 갈수록 있는 것입니다. 시민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그 시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풀려 났습니다. 로마시민과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우리 하나님께서 통치하며 다스리시는 성령의 시민인 우리는 이 땅의 시민과 비할 바가 없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신의 매임, 채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망권세에서 자유를 선포할 권세가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의 시민입니다. 성령의 택하심으로 나면서부터 성령의 시민인 우리가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고백할 때 얼마나 큰 권세가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죄인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고백할 때 성령의 황홀을 느끼면서 이제 놀라운 권세를 우리 같이 모인 목장에서, 우리 교인들이, 믿는 사람들이 성령의 시민들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줄을 믿습니다.
[적용] 내 말 한마디가 엄청난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나요? 남편에게 아내에게 낯간지러워서 평생 하지 못한 고백이 있나요?
*기도제목
유진
1. 남자친구 코로나검사 결과로부터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잘 지나갈 수 있길
2. 코로나로부터 건강하게 지켜주시길
3. 직장에 대해서 목장에 잘 나누고 가지 못했는데, 목장에서 잘 나누고 묻고 갈 수 있길
명연
1. 큐티를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2. 믿음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잘 순종할 수 있고,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송이
1. 이번 한 주 기도하면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지혜 주시길
2. 회사에서의 인정보다 내 자리를 지키면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길
민영
1.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를
2.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큐티와 말씀에 집중하는 한 주를 보낼 수 있기를
에스더
1. 예배와 공동체, 목장에서 끝까지 잘 들으며 갈 수 있도록
2. 사람들의 대해서 긍휼히 여기는목자의 심정을 가질 수 있도록
3. 올 한 해 일적으로 스케줄이나 여러 가지 추진해야 하는 일들 때문에 불안한 마음들이 있는데, 기도하며 주님 의지하며 갈 수 있도록
아름
요즘 진짜 너무 바쁜데 이런 상황 가운데에도 하나님께 묻고 가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