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성령의 황홀 - 김양재 담임목사님
사도행전 22:17 ~ 21
1.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할 때 보게 됩니다.
광야의 양육을 통해 내 죄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돼 성전에 돌아와 주님께 납작 엎드려 기도하니까 성령께서 황홀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저마다 원하는 황홀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각자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를 옥죄는몸, 관계, 재산, 지식, 지위 등 제발 좀 탈출했으면 좋겠다하는 제안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칙칙했다가 황홀한 인생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황홀함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노력합니다.
열심히 놀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기도 하고 열심히 사랑하기도 하고 열심히 미워하기도 하고 황홀한 인생이 되려고 아무튼 무언가를 열심히 합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 잠깐 황홀함을 맛보면 더 강한 황홀함이 당깁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더더 열심히 하고 그러다가 중독이 됩니다.
그 끝은 허무함과 경계를 넘고 또 넘어 엑스타시의 엑스타시를 꿈꾸다가 정말 아무 것도 남지않는 깊은 허무에 빠지고 맙니다.
그것이 누구도 예외가 없는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의 황홀의 결말입니다. 자식도 주식도 돈도 다 이쁜거 같아도 조금 잘못하면 꼴이 보기 싫습니다. 이쁠 때 황홀을 다 경험합니다.
성령의 황홀은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자기를 벗어나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하려면 십자가 지는 길에 서야 합니다. 십자가 길에 서는 게 성령의 황홀입니다.
지금 빠져있던 죄의 자리 죄와 사망의 사로잡힌 자기 고정관념, 확신, 열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생각과 판단에 괄호를 쳐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생각과 판단에 밑줄 쫙 긋고 그대로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말씀대로 하는 기도는 밑도 끝도 없는 내 생각을 정리해 줍니다.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면서 탄식하고 회개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하는 기도를 통해서 늘 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고 사로잡고 있는 중독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고 죽음의 한계 안에서 상처받은 내 존재가 자유롭게 됩니다.
용기가 있어야 수치도 드러내고 두려움도 드러냅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떤 황홀을 꿈꿉니까?
그러나 여려분의 200 아래의 골방에는 어떤 부정적인 의식이 살고 있는지 용기 있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2. 내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겸손한 죄인으로 드리는 기도 중에 바울은 성령의 황홀을 경험합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얻습니다. 그 황홀함 중에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봤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인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무아지경에 상태를 의미하는데 흔히 신비주의에서 이런 엑스타시를 추구합니다. 이건 바울과는 아주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활홀은 오직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신비한 체험과 경험보다도 그 말씀하시는 주님을 봐야 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준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방점이 주님을 보는데 있지 않고 말씀하시는 보뫼 주께서 내게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시는 주님이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황홀한 것 중에 주님의 어떤 말씀을 들었을까요?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은 속히 예루살렘에서 즉시 나가라는 명령입니다. 속도를 강조했습니다.
거부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그 전에 황홀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황홀의 수단이 말씀이 아니고 그 반대입니다.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잘 듣게 하시기 위해서 떄에 맞게 황홀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황홀의 목적이 주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없는 황홀은 인간의 황홀일 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성령의 황홀 최고의 황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알려주실 때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공동체 지체들의 나눔을 통해서 알려 주십니다.
최고의 황홀은 기록된 말씀, 오늘 선포된 말씀,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최고의 황홀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설교를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소리, 소음, 사운드로 듣고 있다면 아무리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해도 그것은 성령의 황홀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지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과 같아야 내게 주신 말씀이고, 내 생각과 다르면 내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태도는 주님의 말씀을 지금 내게 주시는 황홀함으로 듣는 태도가 아닙니다.
머물고 싶어도 주님이 떠나라 하시면 떠나고 있어라 하면 있는 이 태도가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것, 큐티 책을 펴서 공동체와 함께 같은 본문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황홀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황홀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펴시고 큐티책 펴시고 말씀을 읽고 말씀으로 들리게 해주시길 기도하시고 그 가운데 황홀을 허락하셔서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성령의 황홀 말씀의 황홀이 가장 황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말씀의 깨달음이 황홀하고는 비교가 안됩니다.
말씀의 황홀을 깨달으면 이 땅이 작게 보여서 순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의 황홀보다 넘어가는 황홀은 이 땅에 없습니다.
성령꼐서 우리를 택하셨으면 증인의 사명을 주시는데 그 때 황홀함이 없으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의 깊은 만족감은 연봉 10만 달러입니까? 예배와 목장입니까?
현장예배가 더욱 만족도가 큰 것을 경험했습니까?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려고 합니까, 내 생각을 말씀에 맞추려고 합니까?
3.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였을 때 유대인들이 다 믿었으면 복음이 전세계로 퍼져나가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믿었으면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눈앞에서 잘되는 거 말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걸 모르니까 목장에 물어봐야 합니다.
목자가 알아서 처방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같이 나누는 가운데 결론이 도출될 것입니다. 너무 훌륭해서 처방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깊이 만나고 은혜가 많고 오래 양육을 하고 대단한 사역을 해도 우리는 여전히 교만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많을 수록 저마다 확신이 더 강합니다.
각자 끊어지지 않는 판단이 있고 없어지지 않는 기준이 있고 각자 머리로 그어놓은 선이 있어 가지고 그 선을 넘으면 용납을 하지 못합니다.
항상 언제나 상대방 말을 들어주고 해야 하는데 아니~ 왜 그래요? 이 한계를 언제 벗어나요?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나눠 보는 것이 성령의 황홀 중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자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자의 멀리있는 이방인에게로 보내십니다.
삼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는 것이 성령의 황홀의 목적입니다. 말씀을 알게 해주신 음성으로 듣고 이방인에게 보내십니다.
인간의 황홀의 목적은 안주이지만 성령의 황홀의 목적은 보내심입니다. 성령의 황홀을 맛보게 하는 이유는 파송입니다.
이방인을 구원하러 파송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황홀하게 말씀에 깨달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방인은 물리적 거리가 아닌 실전적 거리일 수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그 한 사람입니다. 영원한 타인처럼 멀리만 느껴지는 그 사람이 바로 멀리 있는 이방인입니다. 주님은 나를 그 이방인에게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황홀의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닌 순종입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그 한사람에게 주님께 순종하라고 성령의 황홀 가운데 말씀이 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사람, 먼저 말씀을 들은 사람이 가정에서 그 한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황홀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 그 힘든 사람에게 갈 때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자궁의 점처럼 작아져서 순종할 때 성령 하나님, 삼위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받은 사랑을 알면 감사하고 감사를 깨달으면 순종하게 되있고 이게 성령의 황홀 결론입니다. 결론적으로 순종하는 인생이 최고로 황홀한 인생인 줄 믿습니다.
말씀 하나하나 설득이 되어져서 십자가 길로 놓고 황홀한 인생을 여러분이 사시길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내게 멀리 있는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그에게 보내셨음이 얼마나 믿어지십니까?
나의 황홀은 자기 확신입니까? 순종입니까?
[기도제목]
A.
1. 자매와 신교제가 영원토록 잘 되고 신결혼이 잘 되는 것.
2. 드론 촬영이 잘 되는 것.
3. 말씀이 잘 들리고 적용과 회개를 하고 내 자신을 돌아봄.
4. 신교제를 하기 위해서 음란영상을 않보는 것.
5. 어딜가나 안전운전이 향상될 수 있도록.
6. 애견 미용학원에서 강아지 미용을 잘해서 남의 가게에서 일을 잘 할수 있도록.
7. 나의 아버지의 다리를 다치셔서 빨리 회복하셔서 건강하게 돌아오시는 것.
B.
1. 가족들이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지만 다행이 아무일 없이 지나가서 감사기도 드리고 가족들이 건강 완전히 완쾌할수있게
2. 이번주부터 3월초까지 팀장이 부재중이여서 제가 업무 인수 및 팀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이런거 정말 싫어하지만 팀장복귀하는 날까지 대리팀장역할 잘 할수있게
3. 할머니 재산으로 인해 가족들의 트러블, 끝임없는 분쟁속에 우리 가족에게 꼭 있어야할 사건으로 해석하고 말씀으로 잘 살아낼수 있고 잘 해석하길
C.
1. 2월달에는 회사에서 차량 매입 해줄 수 있도록
2. 22년도에는 신교제 할수있도록
D.
1. 이상한 곳에 취직 되지 않도록
2.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취업이나 창업의 길 열리도록
3. 로또 1등 당첨
F.
1. 공허지옥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