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2년 2월 13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22장 17절~21절
제목 : 성령의 황홀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7절 ampndash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절 ampndash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절 ampndash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절 ampndash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절 ampndash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김양재 담임목사님 말씀
예. 그런데 보통은 이제 면접을 하면은 그게 조금 이제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질문 안할 것 같아요. 부정적인 질문을 이렇게 많이 해서 수준이 높아가지고 이제 그냥 반드시 이렇게 면접에서 하나님께서 후에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 하실줄 믿습니다. 꼭 되야지만 축복이 아니고 와서 동성애 오픈도 하고 굴에서 나와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오늘도 3부때 간증 페스티벌 하는데 우리 청년들 이렇게 대단하게 장치를 했어요. 오기를 바래요. 청소년부도 청년 한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신경을 쓰는데 3부 예배 후에는 간증 페스티벌 할건데 초등학교 때부터 동성애 커밍 아웃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때 하고, 그때 마다 간증하게 하고 동성애가 어려운 거예요. 사회인이 되었는데도 똑똑해요. 동성애가 힘들다고 본인 죄라는데 안되는 거야. 지민이 빠져 나와서 일한다고 생각하고 귀하다고 생각하고 청년부에 18년 동안 부모님 속 썩이다가 사고하나 치고 드디어 오늘 간증하나 해요. 역사적인 일인 것 같아요. 간증 페스티벌 까지 들었음 좋겠어요. 청년부 큐페가 있는 것처럼 청소년부 다음주 달리다굼으로 3일간 18-20일까지 합니다. 2022년 띵크 양육교사 안내문 잘 읽어 보시고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 큐티인, 새싹 큐티인, 청소년 큐티인 큐티인 스프링 구입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스마트 스토어 큐티앱 영문판 다음세대 영어로 나오면은 곳곳에 여러분들 많이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제 청년부 마지막 수련회 제가 이제 특강 강사로 주일 예배 똑같이 하는데 성령의 황홀하고 청년부랑 뭔 상관인가 하겠지만 끝에 가야지 오늘 주제는 어려워도 잘 좀 들으시고, 여러분들 위한 설교입니다. 잘 들으시기 바래요. 찬양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불신결혼 하지 맙시다.입니다. 불신결혼을 하지 말자는것인데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잘 듣기를 바래요. 기도할게요.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얼마나 황홀한 것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러나 그러한 황홀함 말고 진정한 황홀은 성령의 황홀 이라고 하는데 성령의 황홀을 오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지난주 세종의 후궁인 신빈김씨 이야기를 했어요. 예,. 이 공노비에서 성군의 세종의 후궁이 되었으니까 모두 이제 신데렐라 라고 합니다. 예,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황홀 그자체 아니겠습니까? 성군, 세종이 뽑아 주었다고 이렇게 황홀한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신부로 뽑아주시는 이 택하심은 얼마나 황홀 하겠어요? 사실 이 두 개가 비교자체가 불가능 하지만은 이 땅에서는 감히 날마다 비교를 하네요.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황홀에 대해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성령의 황홀은 첫째로, 참 힘든곳에 돌아왔어요. 성전에서 기도할 때 황홀을 보는 거예요. 17절 이예요.
첫 번째,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할 때 보게 됩니다.(17절)
17절 -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자, 지난주일에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을 했잖아요? 바울이 그리고는 아라비아에 가서 3년을 보낸다음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좀 해봤어요. 지난주일에 다메섹으로 억지로 끌려가기는 했지만 엘리트 동료 들에 의해 끌려갔다고 했어요. 사실 바울이 택함 받았다고 해도 당장 무엇을 할수 있었겠습니까? 죽이고자 하는 바울의 간증을 그리스도인들이 믿겠어요? 그리고 자기를 끌고간 그 엘리트 동료 유대인들도 바울을 사람 취급을 하겠습니까? 막상 주님을 만났고 사명을 받았지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거예요. 그리고 도저히 사람들 앞에서도 설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제 혈육과 의논할수도 없었어요.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은요. 그리고 먼저 사도된 사람들의 조언도 구하러 갈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오직 주님 앞에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면서 예, 그렇게 3년을 광야에서 회개의 때를 이제 지냈어요. 아마도 주님께 양육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3년후에 바울에게 카이로스의 때가 왔다고 이렇게 생각이 들겠죠. 광야 신학교를 졸업하고 졸업한 학위는 무엇이었을까요? 빌립보서에 고백이 요약 되었다고 생각을 해요. 3장 7절 부터예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절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절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여기서 이제 핵심이 뭐예요? 자기가 30년 동안 쌓아왔던 높은산 같은 모든 것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기 의와 자기 생각 자기 열심 자기 확신 자기 존재 자체가 실상은 배설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어떤 흠도 없는 인생인줄 알았는데 자기는 어떤 흠도 없는 인생인줄 알았는데 주님의 광채 아래서 보니까 그냥 똥 같은 인생임을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즉시 사도행전 9장과 갈라디아서를 보면은 다메섹에 와서 즉시 각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어요. 그랬는데 그 바울의 전도는 유대인들의 화만 돋아가지고 그냥 다 죽이려는 사람이 생기니까 밤에 몰래 광주리 타고 다메섹 성벽을 타고 빠져 나왔지요. 생각나시죠? 지난번에 읽었어요. 그리고 베드로사도와 야고보를 만나러 들어가는데요. 거기서 15일을 머물르면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어요. 예, 바울이 간증하는 내용은 바로 그때 있었던 내용입니다. 회심한지 3년후에 다시 말해 다메섹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난지 3년만에 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자기가 유대교인 분파주의나 유대교인의 이단이라면 이 유대교인의 본거지 라고 할수 있는 이 예루살렘 성전을
오겠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거죠. 그래서 이사람은 분파가 아니라고요.
예, 볼류라고요. 그런데 지금도 카톨릭은 큰집이고 개신교는 분파라고 하는 사람 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고요. 촛불이 옮겨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죠. 이렇게 광양의 양육을 통해서 내 죄를 알게되고 이제 그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되어서 이제 성전에 돌아와 주님께 납작 엎드려 기도하니까 성령께서 황홀을 경험케 하신 것이죠. 적용해서 이렇게 왔잖아요? 황홀 이라는 말은 엑스타시스 인데요. 예, 여기서 이게 그 에크는요 밖으로 라는 접두어고 스타시스는 서 있는 것을 의미해요. 문자적인 뜻은 내가 서 있던 자리 바깥에 있는 상태를 말해요. 그니까 내 의식을 넘어서는 상태, 내 존재를 넘어서는 상태, 나를 초월하는 경험을 하는 자리가 엑스타스시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자, 그러면 우리한테 적용을 해보면 저마다 원하는 엑스타시스 황홀이 있어요. 바꿔 말하면 각자 벗어 나기를 원하는 한계가 있어요. 나를 옥죄는 몸이나 관계, 재산, 지식 재산 지위 등 제발 좀 탈출 했으면 좋겠다. 하는 이런 제안들이 다 있어요. 여기서 벗어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칙칙했다가 황홀한 인생으로 바뀔 것 같아요. 그래서 제발 좀 탈출하고 싶은 그런게 있어요. 거기가면 황홀함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황홀함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노력을 합니다. 열심히 놀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기도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미워하고 아무튼 무엇가를 열심히 열심히 합니다. 무엇 때문에요? 황홀한 인생 되려고요. 열심히 열심히 합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 더 잠깐 황홀함을 맛보면 어떻게 됩니까? 더 강한 황홀함이 당겨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더더 열심히 하다가 그러다가 다 중독이 됩니다. 주식도 다 이렇게 돼서 중독이 되는 거예요. 그 끝은 어디입니까? 허무함과 경계를 넘고 또 넘어서 엑스타시스를 꿈꾸다가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깊은 허무에 빠지고 말아요. 그것이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의 황홀의 결말이예요. 예, 다 마찬 가지 예요. 자식도 엑스타시스 주식도 엑스타시스 돈, 다 막 이쁜 것 같애도 조금 잘못하면 꼴이 보기 싫어요. 예, 그니까 이쁠 때 이쁠 때 황홀을 다 경험하죠. 자, 성령의 황홀 성령의 엑스타시스는 이런 밑고 끝도 없는 자기를 벗어나는 그런 자아에서 부터가 아니라 자기 확신이 아니라 자기 부인이예요. 자기 부인 하려면요. 십자가 길에 서라는 것이죠. 십자가 길에 서는 것이 성령의 황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빠져있던 죄의 자리, 빠져있던 죄와 사망에 빠져있던 고정관념 확신에서 열심에서 벗어나는 것인데요. 그니까 내 판단에 가로를 치라구요. 그리고 주님이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생각과 판단에 밑줄 쫙 긋고 밑줄 쫙 긋고 그대로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순종을 하라는 것이예요. 그래서 여기 기도가 중요해요. 특별히 말씀대로 하는 기도는 밑도 끝도 없이 하는 내 생각을 정리해줍니다. 그런데 말씀보고 기도하는게 성경보고 기도하는게 안되요. 그게 이상하게 낫놓고 기억자도 모른다 이게 참 어려워요. 그러면서 그니까 말씀대로 기도못하니까 바리새인처럼 내가 저들과 같이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하나님 앞에 당당히 기도 드리는데 그게 아니고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 보이는게 아니라,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하면서 탄식하고 회개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하는 기도를 통해서 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 사로잡게 되는 중독,죄악에서 벗어나게 되고 죽음의 한계안에서 죽음이 자유롭게 되는거예요. 예, 말씀으로 기도할 때
이 성령의 황홀이 이런거거든요? 그런데 이 하버드 대학교 옥스퍼드 포럼 대학에서 강연하고 아주 미국의 유명한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호킨스박사는
의식혁명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책을 냈어요. 제가 2008년도에 이 예화를 썼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2012년도에 이분이 돌아가셨더라고요. 정말 유명하신 분인데 이분이 의식혁명 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어요. 사람의 의식 수준을 영성 지수로 수준으로 나타내서 20에서 1000까지 구분을 했는데요.
가장 낮은 20이 바로 수치심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수치심, 피해의식이 수치심에서부터 나오는 건데 이게 정말 해결되기 힘든게 수치심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그러니까 아 비참하다 아 쪽팔려 차라리 없어져 버릴까? 그래서 여기서 피해의식이 나오기 때문에 나와요. 사실은 피해의식이 가장 사실은 피해의식이 가장 무서운 거예요. 예, 그게 20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죄의식이 30이고, 무기력이 50, 슬픔 70 두려움100
욕망125 분노가 150이고 자존심 175인데 절대 질수 없어. 왕년에 등 200이하의 영성들이 바로 부정적인 나의 골방속에서 사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것이죠. 그런데 영성 지수가 200이상일 때 비로소 세상의 보탬이 되는 존재 라는 것인데요. 그 기준이 용기 라는 거예요. 그 200이 용기라는 거예요. 200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출발점과 같은 것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용기가 있어야 두려움도 드러내고, 수치도 드러내고 이게 다 이제 드러 내는데 예, 바로매터가 바로 용기 200 이라는 거예요. 그니까 용기가 있으면 뭐든게 다 되는 것 같아요. 용기를 가지고 드러내는 것 증용 250 이제 용기를 가지고 다 들어내면 이 자발성 310 이거 350-400 포용인데 그때 그럴수도 있었지대단한거예요. 자발성 제가 한번 해볼게요. 도와드릴까요? 자발성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 500이고요. 그니까 이것이 이해 이성적인 그 넓은 진심으로 포용하는 것, 그거보다 높은 것이 기쁨의 540이고 평화가 600인데요. 널 진심으로 위한다고 이성 500 ampndash사랑 같이해요. 자랑스러워요. 기쁨 540 평화 600 가장 높은 영적 지수가 700 마지막 깨달음 ampndash1000까지 최고의 영성 지수 인데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싶어요. 성령의 황홀은 어디쯤 해당 될까요? 아주 그 미약 하지만 시기마다 있겠죠?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
여러분은 어떤 황홀을 꿈꿉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200 아래의 골방에는 어떤 부정적인 의식이 살고 있는지 용기 있게 드러낼수 있을까요?
성령의 황홀 두 번째는 이제 성전에서 돌아와 힘든곳에서 기도할 때 예, 황홀을 보여주시는데 둘째는
두 번째, 내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18절)
18절 -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똑같은 말씀이지만 우리는 들어야 해요.
이제 겸손한 죄인으로 드리는 기도중에 바울이 성령의 황홀을 경험합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얻죠. 그런데 그 황홀한 중에 무엇인가를 봤어요. 바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봤쬬. 예. 이 황홀 이라는 단어는 욥바의 지붕위에서 베드로가 했던 경험에서도 사용이 되었는데요 이 바울이 하나님으로 인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그 무아지경의 상태를 의미 하는데 흔히 신비주의에서 이런 엑스타시스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건 바울과는 아주 달라요. 그니까 여러 종류와 양상의 황홀을 어, 신비주의들이 이런 무아지경을 얻으려고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이게 굉장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기는 한 대요. 뭐, 초대교회 사막의 교부들로부터 중세의 수도원으로부터 오늘날 기도원에서도 이런 엑스타시스 황홀을 얻으려고 열심히 기도하고 또 열심히 훈련해요. 이런 훈련이 주는 영적 훈련이 있고 또 뭐 앞으로도 있긴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 성경이 말하는 이 성령의 황홀은 오직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는 것이예요. 그니까 어떤 신비한 체험과 경험 보다도 그 말씀 하시는 주님을 봐야해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인대요. 오늘 보매 잖아요. 보매 방점이 주님을 보는데 있지 않고 말씀 하시는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잖아요.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이 중요해요.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자면은 말씀이 핵심이예요. 예, 그런데 이 황홀한 중에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한 것을 들었을까요? 우리가 이제 엑스타시스 황홀을 경험했잖아요? 어, 3년동안 수고하고 그러면 뭔가 그 황홀에 맞는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막 황홀을 크게 해줄듯한 이런 말씀을 주셔야 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이 바울에게 주시는 말씀은 명령이예요. 속히 예루 살렘에서 빨리 나가라 직역하면 서둘러라 예루살렘에서 빨리 나가라 시제도 부정과거로 즉시 나가라 인거예요. 아주 속도를 굉장히 강조했어요. 이상하잖아요? 지금 깊은 기도 가운데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고서 여기가 좋사오니 그랬는데 성전 기도하는 자리도 모자라서 아예 예루살렘에서 그냥 없어져 즉시 나가라는 거예요. 이건 마치 여기가 예루살렘이 내 사역지 인데 복음을 전하려고 온 곳인데 마치 찬물을 촤악 껴 얹는듯한 초치는 말씀을 주셨어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은혜 충만한 뜨거운 성령 체험과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거절의 말씀인 것 같아요. 어느 청년이 간증했는데 거절 당했잖아요? 다메섹에서 전도하다가 박해도 받아보고 사역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 황홀한 중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너가 전하는 복음을 아무도 안들을꺼야. 여기서 있잖아요. 원어를 보면 단순히 듣지를 않는 것을 넘어서 아예. 용납 조차 하지 않아. 아주 듣지도 않아. 아주 강하게 거부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세요. 네. 그니까 이 말씀 이 거부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그 전에 황홀을 허락하신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황홀의 수단이 말씀이 아니고요. 반대입니다. 말씀을 조금 이라도 더 잘 듣게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때에 맞게 황홀함을 경험하게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황홀의 목적이 주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니까 말씀없는 황홀은 인간의 황홀일 뿐이예요. 그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성령의 황홀 최고의 황홀 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이 실패에 대한 예언 이잖아요. 너 실패할꺼니까 시도도 하지 말고 즉시 떠나 사역의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으시고, 근데 이 말 듣기가 쉬어요? 너무 어렵죠. 예, 그러니까 그 사도행전 9장 29절~30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는 바울을 데리고 가이사랴고 가서 다소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너 떠나 그랬는데, 어 9장에서는 제자들이 데리고 떠났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 두 본문이 모순 되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 두 본문 모두 바울이 예루살렘을 왜 떠나는지 어떻게 떠나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어요.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 것은 바울이 기도할 때 주신 주님의 말씀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충고와 도움이었어요. 주님은 그 바울이 왜 예루살렘을 떠나야 하는지 친절하게 이유까지 설명해주잖아요? 너 아무도 안들을 꺼다. 그런데 그 이유를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공동체를 통해서 알려주신 것이잖아요? 이 그리스도인 제자들 이 그니까 바울이 처음에 떠날때에는 이런 공동체가 없었어요. 3년이 지난 지금 바울에게도 지체가 조금 생겼어요. 지체는 어떻게 생기나요? 여러분이 목장에 들어가야 3년이 지나야 조금 지체가 생깁니다. 바울은 3년이지만 우리는 수준이 낮아서 곧 목장에 들어가면 생길거예요. 아마.
그런데 바울이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가지고 인도함을 요구받는데 바울 같은 사람도 이 자기가 보지못한 이 지체들의 도움으로 떠나 잖아요? 예, 그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알려 주실 때, 말씀을 통해서 나눔을 통해서 공동체 지체들과의 나눔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거예요. 성령의 황홀이 이런거예요. 이런거 그니까 최고의 황홀은 기록된 말씀을 오늘 선포된 말씀을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게 최고의 황홀인것이예요. 성경과 성경이 근거한 설교를 나랑 아무 상관 없이 소리 소음으로 사운드로 듣고 있다면 아무리 뜨겁게 기도해도 그것은 성령의 황홀이 아니예요. 지금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듣는 것. 예. 그 내용이 중요하잖아요. 주님의 말씀이 담은 것이 중요한거예요. 내 생각과 같아야 내게 주시는 말씀이고 내 생각과 다르면 내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금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황홀함으로 듣는 태도가 아니예요. 머물고 싶어도 주님이 떠나라 하시면 예, 떠나고, 있으라 하시면 있는 것이 이 태도가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는 사람의 태도죠. 그니까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큐티책을 펴서 공동체와 함께 같은 본문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주님의 황홀 이예요. 아무리 강조해도 이것은 모자람이 없습니다. 황홀을 다른데서 찾을 필요가 없어요. 성경 펴시고 큐티책 펴시고 말씀을 읽고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주시길 기도하시고 그 기도가운데 황홀을 허락하셔서 그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주실줄을 믿습니다. 진짜 성령의 황홀 말씀의 황홀 그니까 이게 가장 황홀한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여러분들이 다 원하는 것을 뭐 학벌이니, 돈이니 뭐 여러 가지 다 원하잖아요. 그것만 있으면 내가 황홀하겠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가지고 싶은 이 소심인적으로 조금 가져봤잖아요? 그니까 이걸 조금 가져보니까 이 말씀에 깨달음에 황홀함에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을 제가 하나 또 세상적으로 또 못가져 봤어. 또 지가 못가져 봤으니까 저러지 그러는데 제가 이 말씀의 황홀 깨닫는 황홀을 깨닫게 되니 이 땅이 다 작게 보여서 순종을 할수 있게 되는것이죠. 그니까 말씀의 황홀보다 이땅의 다음으로 황홀을 보는게 없어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성령 증인의 사명 주시는데 감당할수 없다는 것이죠. 엑스타시스를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세요. 어떤 분이 이제 나이가 늙어서 골프를 해보니까 (제 앞에 서니까) 이게 성경 공부
보다 더 좋다라고는 말을 안 하고~ 성경 공부만큼 좋다고 얘기를 하세요.^^ 여러분은 저 푸른 초원 위의 골프와 성경공부 중에 뭐가 더 황홀하실 것 같으세요?그렇지만 또 이 골프를 안 해봐서 모르시잖아요. 그죠? 해보고 얘기를 해야되는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이런 얘기를 하라고 나한테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경험하게 하신 게 있지 않나. 그러니까 제가 아무것도 안 해봤으면 '지가 안해봤으니까 저러지~' 이럴 거 아니겠어요? 아! 이게 만세 전부터 었구나! 하나님의 컨셉이적용질문 드립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매주 예배에 출석하는 신앙인과 연 수입10만 달러인 직장인 중에 삶의 만족도가 누가 높은가? 자, 전반적인 만족도- 그러니까 뭐 믿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겠죠?- 거기는 직장인이 높았대요. 하지만 깊은만족감은 신앙인이 더 누린다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예배도 자주 참석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어제 신문에서 읽었어요. 10년 전 기사가 아니라 어제 여론조사~! 적용해 보세요.
적용
여러분의 깊은 만족감은 연봉 10만달러 입니까?
예배와 목장입니까? 현장예배가 더욱 만족도가 큰 것을 경험했습니까?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려고 합니까? 내 생각을 말씀에 맞추려고 합니까?
세 번째,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입니다.(19절-20절)
19절 ampndash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절 ampndash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사람들이 네 얘기 듣지 않을 테니까 예루살렘을 즉시 떠나라'는 말씀을 들은 바울이 주님께 이렇게 막 이제 말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자기가 원래 그들 편에 서서 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스데반을 죽인 주동자였음을 아니까! 저같은 사람이 변했으니까! 주님, 제가 유대인들에게 전하면 딱!!이지 않습니까? 내가 그들과 똑같이 이렇게 박해했다고요~' 바울도 뿌리 깊은 유대인이에요. 그리고그냥 앉으나 서나 유대인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방인 선교하라고 하셨는데도 늘 유대인 회당부터 찾아가서 들어가서 복음 전하고 날마다 이제 박해를 막 자처하는 거죠. 이방인에게 가라고 그랬는데 늘 유대인 회당부터 들어가는 거예요.유대인에서 벗어나질 못해요. 이건 우리가 식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하고 같죠.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 바로 '아멘'하지 못하는 바울의모습이 보이시나요? 바울이 30년 동안 쌓아 올린 게 너무 많아가지고 이 3년의 광야 양육으로는 다 없어지지 않는 이 확신이 있는 거예요. 내가 유대인 전도할수 있어! 그리고 해만 해! 내가 유대인 전도는 최고야! 딱 맞춤이야!! 바울에게 이
런 자기 확신이 있어요.근데 사실 지나고 보면 사도 바울이 전도했을 때 유대인이 다 믿었으면, 지금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 못했어요. 마찬가지로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믿었으면 지금 인류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내 생각을 내려놔야 되는데..... 바울도 그런데 우리가 왜 안 그러겠어요. 아무리 주님을 깊이 만나고, 받은 은혜가 많고, 공동체에서 오래 양육을 받고, 대단한 사역을 해도우리는 여전히 교만한 죄인이에요. 게다가 고난이 많을수록 다 저마다 자기 확신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래서 끊어지지 않는 판단이 있고, 없어지지 않는 기준이있어요. 각자 자기 머리로 그어놓은 선이 있어가지고.. 그 선을 넘으면 용납하지못해요. 어떻게 저러는가? 생각하는 이 한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내 생각이 확신인지, 믿음인지그 연약함과 한계를 ... 그냥 우리는 오늘 바울이 주님께 고백하는 거예요. '주님,제가 유대인에게 맞지 않아요?' 이러면서 그냥 치열하게 지금 그 말씀에 맞춰서 자기 생각을 복종시키려고 지금 고백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를 주님 앞에 솔
직하게 고백하고, 그다음에 공동체에서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랬잖아요. 그것이 성령의 황홀 중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제가 유대인 전도에 맞을 거같은데요?' 이렇게 인정을 하고, '떠나라고 하시는데... 주님, 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솔직하게 주님께 늘 기도하고, 고백하고, 공동체에서 나는요~~ 주님은 이러는데.. 나는 정말 여기 가고 싶어요! 이 불신결혼을 하고 싶어요! 이 사업을 하고 싶어요!' 근데 사고치는 사람들은 다 그때만! 말을 안 했다고 그래요. 다들 그때만! 왜? 말릴 거 같아서! 다 그렇게 얘기해요.그렇지만 바울이 오늘 주님께 이렇게 인정하고, 기도를 하니까 주님이 또 말씀을하세요. 21절에요.
21절 -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하셨느니라
나더러 또 이르시되 이런 과정이 필요해요.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지금 주님도 굴하지 않으시고 '가라! 이방인에게로 가라 너 내가 다 뜻이 있는데 왜 그래? 이번에는 시제가 현재예요. 한 번 떠나는게 아니라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떠나야 할- 지속적으로 가야 하는- 그 이방인의길. 이방인하고 유대인하고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하죠. 그리고 너무 무시하는 이방인이에요. '너 그 길을 가!' 십자가의 길이죠. 이방인에게로 향하라는 거예요.'너를 거기로 보내겠다!' 약속을 하십니다. 이 '보내리라' 단어가 사도의 어원이된 [아포스텔로] 보다 좀 더 강한 뜻인데요. 사도를 [아포스텔로]라고 한다는 것 정
도는 좀 기억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여기에다가 앞에 밖으로라는 접두어 [엑스-]가 붙어가지고, [엑스 아포스텔로] 이런 단어를 썼어요. 이 보내리라[엑스 아포스텔로]가 특별히 신학으로 특별하게 쓰인 구절이 있는데요. 갈라디아서 4장 4절과 6절인데, 거기서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할 때 이 단어를 썼어요. 그리고 또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할 때 또 이 단어를 썼어요. 예, 그러니까 성자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을 뜻할 때 쓴 그 단어를 바울에게 또 쓰셨다고요! 그러니까 그 엄청난 성자 하나님을 보내실 때, 성령 하나
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쓴 단어를! 바울을 이방인에게로 보낼 때 '내가 너를 보낸다. 이건 너무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지난주 택하심이라는 단어도 예수님에게 쓴 거를 바울에게 썼다고 그랬잖아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특별히!!! 내가 너이방인에게 보낸다.' 이 사랑이 막 담겨 있는단어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황홀하지 않아요?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황홀한 거예요, 황홀! 이게 세종의 사랑을 받는 거하고 비교도 안 되게 하나님이 나를 신부 삼아 엄청난 특권을 주신 거죠! 이 사랑이 바울에게만 적용되겠습니까? 그렇다면(바울에게만 적용된다면) 이 기록은 성경이 아니라 위인전이죠. 위인전, 역사책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기록은 성경이고요,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럼 이말씀을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주님께서도 각자의 멀리 있는 이방인에게로 보내신다는 거죠. 이것이성령의 황홀의 목적이에요. ★인간의 황홀, 세상의 황홀의 목적은 자기만족, 자기쾌락입니다. 목적이 자기에게 있어요. 성령의 황홀의 목적은 멀리 있는 이방인에게로 보내시기 위함이에요. 여러분들이 너무 부부간에도 좋으면, 진짜 멀리있는 이방인에게로 가셔야되는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에서예수님을 보고 너무 좋아가지고 '우리가 여기서 초막 짓고 이제 살자고'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어딘가로 보내시는 거예요. 보내시는 거! ★그래서 인간의 황홀의 목적은 안주이지만, 성령의 황홀의 목적은 보내심[파송]이에요. 사명지로 보내시기
위해서- 이방인을 구원하러 파송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황홀하게 하시는거지요.그러면 멀리 있는 이방인은 누구일까요? 어떤 경우는 바울처럼 이렇게 문자적으로멀리 있는 이방인들에게 선교사로 보내시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 우리에게이 멀리 있는 이방인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실존적 거리죠. ★내가 미워하는그 사람, 한 이불 덮고 같이 살아도 영원한 타인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그 사람이바로 멀리 있는 이방인이죠. ★주님은 나를 그 이방인에게로 오늘 보내신다고 해요. 그래서 성령의 황홀의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닌 순종인 거예요. '내가 아프리카 선교를 가야지!!' 그래서 이혼하고 다 아프리카 선교 간대~-- '내가 9년을 연
애를 하고, 14년을 살았는데 이제 안 맞는 걸 알아서 맞는 사람하고 선교를 가겠다. 동의해달라!' 그런데 그런 거를 다 보통 또 그걸 또 주님의 뜻이라고 (잘못)생각해요.★황홀을 경험한 결론이 '내가 이런 대단한 엑스타시스[대단한 경험]을 했다!'가되어서는 안 되고요! 그거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게 신비주의함정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니까 영적 엘리트가 되어서 다른 사람 무시하고 자기 확신에 빠져 독불장군처럼 되는 것이 엄청난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의 결론일때가 이렇게 많았어요. 이런 자기 확신을 가지라는 게 아니에요. ★멀리 있는 이방인-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그 한 사람, 미운 그 가족, 그 지체, 그 이웃-에게 보내시는 주님께 순종하라고! 순종하라고 성령의 황홀 가운데 말씀이 들리게 하시는거예요. 그래서 먼저 믿은 사람, 먼저 말씀을 들은 사람이 가정에서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손해라고 생각하면 여러분들에게는 영원히 성령의 황홀이 없어요. 주님이 나를 특별히 택하여 보내셨다는 사실을 보셔야 합니다!! ★나만 적용하니까, 나만 수고하니까 손해 보는 것 같은 그 현상 너머를 쳐다봐야 돼요!!! 치어다 보아야 해요. 치어다.. 치사랑, 아랫사랑 아시죠? 치어다 보아야 해
요. 예, 이거 지난 주일에 말했어요. [아나 블레포]라 그랬죠? 내 현상 너머를 바라보라고! 손해 보는 것 같은 현상 너머에 있는 성령의 택하심을! 성령의 황홀을! 삼위 하나님의 이 사랑을! 보아야 하는 거죠.그러니까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이 점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효과적인 성
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이방인에게 가라는 거죠. ★내가 가기로 결정하면 삼위 하나님이 이렇게 도와주신다고요. 그러면 순종을 하게 돼요. ★★받은 사랑을 알면,감사함을 깨닫게 되고, 순종하게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감사함이 없다는 게이 황홀을 경험하지 못한 거예요. 성령의 황홀의 결론이에요. 그러니까 ★순종하는
인생이 최고로 황홀한 인생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깨달아서- 동의가 돼서 순종을 해야지 무조건 복 받으려고 그냥 순종하는 거 하고 다른 거죠! 그러니까 말씀을 한 절, 한 절 토시 하나하나를 우리가 보는 거죠. 모두 이 황홀한 인생을 좀 사시기를 바라요. 여러분들이 지금 말씀에 안 들리는 사람은 황홀을 전혀 경험못해요. 기쁜 게 없어서 그냥 날마다 괴롭히는 역할로만 역사하는 거예요. 말씀이 안들리니까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
내게 멀리 있는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그에게로 보내셨음이 얼마나 믿어지십니까?
오늘은 청년부 수련회 제가 마지막 설교를 감당을 지금 했는데요. 어려웠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제일 중요한 거는 신결혼하라는 거예요. 오늘 주제가 신결혼이에요. 어디서 신결혼이 왔나? 말씀을 깨닫는 사람처럼 황홀한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황홀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되잖아요. 신데렐라의 황홀에서 자기 자리에서 자기 확신보다 이 순종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가는 택하심의 황홀로 견인되어 간 것처럼 보이는 신빈 김씨 얘기를 좀 더 하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신빈 김씨가 예수를 믿은 것도 아닌데..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어도 로마서 1장에 보면 해달별과 사시사철만 봐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핑계치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 당시도 소수지만 이 믿은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신빈 김씨는 관직이 없는 양반 아버지와 사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 당시 잠시 아버지가 양반이면 그 식구들(자녀들)은 양인이 되는 법을 시행을 했는데 아버지가 자기 사노비인 이 신빈 김씨 엄마하고 이 신빈을 전부 다 양인으로신분을 격상해주면 부려 먹지 못하잖아요. 다 노비인데.. 그래가지고 세상에 그런법이 시행됐는데도 그걸 양인으로 신분을 바꿔주지 않았고, 도리어 신빈을 공노비로 이 딸을 궁에 들여보낸 것에 한이 맺혔어요. 이 신빈이 한이 맺혔어요. 그런데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도 심온의 딸이죠. 그랬는데 태종이 외척을 다 멸문지화를 했잖아요. 그래가지고 그냥 하루아침에 죽고, 엄마부터 모든 형제들이 다
관비가 됐어요. 그 소헌왕후의 엄마가 관비가 되고, 그러니까 관노비인 거죠. 그래서 이거는 신빈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한이 맺힌 거죠. 자기 외척이 다 죽었어요.죽거나 지금 노비를 하고 있어요. 세종이 워낙 소헌을 사랑하니까 이 사람은 안죽었어요.그러니까 세종이 사랑하는 부인 소헌왕후와 후궁의 신분인 신빈이 그렇게 서로 우애한 것은 너무 드문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둘이 고난이 같잖아요. 처절하죠.그래서 너무 우애했어요. 저는 근데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사실은우리나라의 최고의 분수령적인 일은 한글 창제잖아요. 이 한글 창제를 위해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구나. 그러니까 이 세종이 너무 이뻐하는 부인과 후궁들 때문에 노비들의 아픔을 알았어요. 그래가지고 그 공노비를 막 휴가를 주고 막 이런 일도해요. 그러니까 그거를 너무 처절하게 들은 거야. 그래가지고 백성들의 아픔에 동참을 하고, 소통하고자 했어요. 상처가 별이 되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한글 그 창제에 대해서 너무나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이 되는데.. 백성이 글을 알면 양반을 우습게 한다고 절대로 창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 엘리트 반대파 대신들.. 그 있잖아
요, 집편전 학자들 중에서도 성삼문, 신숙주 이런 사람들도 다 반대. 양반이라고이름 붙은 사람들은 한글 창제를 다 반대했어요. (굉장히 제가 똑똑해 뵈는데.. 우리는 어렸을 때 이거 태정태세문단세를 너무 외웠기 때문에 제가 너무 알아요. 이거를.. 제가 또 얘기를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글쎄 그 정도전을 태종이 죽였잖아요. 그 조선왕조의 그 모랄인데. 죽인 그 정도전의 아들과 그 일당들이.. 그러니까 너무 그냥 이 양반들이 우러러보는 정도전. 거기에 모든 학자들과 양반들 이 다 반대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노비를 못 부려먹잖아요. 노예 제도 폐지하는 것처럼. 근데 여기에 신빈과 소헌왕후는 너무 엄청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뿌리 깊은 나무라는 사극에서 봐도 궁극적으로 말하면, 세종은 이 한글 창제를 통해 똘복으로 대변되는 원망으로 가득 찬.. 그 똘복이 한글을 못 읽어서 심온을 죽이라는 거를 갖다 줬잖아요. 글을 몰라가지고.. 그 다음에 그래서 그 백성과 소통을 이루고자 했고, 또 소위로 대변되는 이 문맹인 백성을 구체적으로 돕기 위해서 잠을 자지 않고 한글 창제의 온몸을 던지잖아요.제가 보니까 구속사는 무조건 세종이 나라의 성군 이라고 하지 않고, 세종도 죄를 깨닫고 이 아픔을 통해서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스토리의 동기 부여가 있다는 거예요. 근데 이 한글 창제는 만년 5천년 빈곤 국가에서 10위 나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공로자거든요. 근데 신빈과 소헌 왕후의 그 아픔이 수백 년후에 이렇게 한국의 발전을 엄청나게 가져왔다고 그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했겠어요? 그런데 정말 최고의 약재료가 된 것 같고요. 신빈은 황홀하게 후궁이 되었지만은 만세 전부터 우리나라를 이렇게 부강하게 하시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그 아픔으로 한글 창제를 돕도록 역사하게 하신 이타적인 역할을 한 것이! 진정 황홀한 역할! 창조주 하나님이 뽑아주신 역할!을 한 게 아닌가! 그러니까 남양주에 있는 신빈 김씨 능은 일개 후궁의 능이 아니에요. 사실 어떤 임금보다 화려해요. 낮은 자는 높음을 자랑하라고. 훗날에는 알리라! 천국 가면 알리라 그래서 이 또한 하나님의 세팅이 아닌가 하는데요. 세종의 궁은 저 여주에 있잖아요. 우리가 더 가깝게 보는 건 신빈의 능인데. 하여튼 한번 또 이제 다들 가보시겠죠. 또 신빈의 능을.. 이렇게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제 이거예요. 영성 지수가 200 이상 되는 사람들이 (이제 그때부터 그 사람들이 사람을 돕는데.. 놀랍게도) 15%만 있어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는 거예요. 근데 인생은 다 죄인이라서 모두 골방 속에 부정의 감정들을 숨겨놓고 사는데 무슨 수로 이 수치스러운 일들을 용기 있게 오픈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와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분은 대안을 제시는 못하는데 너무너무 아주 그냥..... 예, 들어보세요. 700의 깨달음을 가진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7천만 명을 상쇄한다는 거예요. 600에 그런 여러 가지 평화의 마음을 가진 600의 한 개인은 1000만 명을 상쇄하고, 5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75만명, 400의 한 개인은 40만 명을 상쇄하고, 300의 한 개인은 9만명을 상쇄한다는 거예요. 근데 그 말이 지금 이제 맞는것이 세종의 이 깨달음으로 지금 7천만 명 아니라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유익을 누렸습니까? 그런데 아주 중요한 건! 한 개인의 경우 특별한 깨달음 이 없는 경우에 일생동안 노력을 해도 5 정도의 상승이 겨우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근데 특별한 경험이나 깨달음을 얻게 되면, 수백 이상의 의식 수준의 상승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의식 수준의 수치는 산술적인 수치가 아니라 대수적인 것. 그러니까 200의 에너지는 100의 두 배가 아니라 100에 10^2(제곱)만큼 곱한 수 100의 100승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지혜로는 이 영성을 얻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 200의 영성도. 그런데 일반 계시로 인한 주님의 만남을 수백의 의식수준의 상승을 가져왔기 때문에 저는 한글 창제를 하는 세종에게 그런 깨달음이 있어서 이 사람이 너무너무 설득하고, 타협의 리더십이에요. 참고, 반대파 황희를 정승으로 임용하고 그랬는데도.. 이 사람이 워낙 신뢰를 얻으니까 이게 깨달음이 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끊임
없는 설득과 타협의 리더십으로 7천만뿐만 아니라 지금 그 몇 백 년, 천 년에 가까운 세월 수많은 백성들. 요즘은 한글이 최고 우수한 글이에요. K-POP까지 영향을 미쳐서 세계 곳곳에서 지금 한글 배우기가 성행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의식혁명>의 책이 데이터는 정확하게 해놨어요. 그러니까 지구상의 인구가 분기점인 200 이상의 의식 수준에 속하는 15%의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85%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킨다는 거예요. 그 15%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만나는 것은 황홀한 중에 가장 첫째가 성령의 황홀인데 오늘 그래서 신결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바울처럼 그렇게 노력을 해도! 남 죽이고 살인하는 것밖에 안 한다는 거예요. 사울이 주님을 만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울 하나가 변하여서 온 인류가 지금 영향을 받았잖아요. 다 살게 됐잖아요! 공부를 천 번, 만 번 해도 이 특별한 깨달음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5밖에 상승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한테 이렇
게 큐티를 시키고, 주님을 만나게 하고.. 이러니까 신빈도, 소헌후도 왕비의 모델이고. 그게 이 신빈은 태종 때부터 이쁨을 받아가지고, 세종의 부인이고, 문종, 단종을 거쳐서 세조에게까지. 낮은 자는 높음을 자랑하라고 그랬는데 그분은 지금 아들도 많고... 그냥 그 모든 영적 엘리트가 될 만하잖아요? 그런데도 세종이 가자마자 하나님만 바라고, 자기는 황홀한 거 다 경험했으니까 돈도 내려놓고, 권세도 내려놓고... 오직 머리 깎고 비구니가 돼 가지고 세종만 위해서 기도하고, 왕실을 위해서 기도하다 갔잖아요. 이게 엄청난 그때의 한글 창제를 위해서 모든 환경을 몰아준 게 아닌가. 결론은 그래서 신결혼! 예수 믿어야지 황홀한 걸 서로 느끼니까 재밌는데.. 우리들교회 학벌이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지금 그냥 몇 백 명을 이렇게 이제 인도하시는 이 장로님, 권사님들이 너무 많잖아요. 진짜 학벌과 상관없는. 오늘 의식 혁명의 결론이 이게 우리들교회가 아닌가! 할렐루야!
적용
나의 황홀은 자기 확신입니까, 순종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황홀은 내가 정말 가기 싫은 곳에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 할 때 황홀을 보게 되는 거예요. 황홀은 정말 내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거예요. 말씀이 황홀하게 깨달아지면 여러분은 소도 잡고, 말도 잡는 거예요. 쉬운길은 아니지만.. 아니, 세종이 가는 길이 쉬웠겠어요?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 아 그냥 아주 그 정도전 일당 밑에.. 그 정도전이 너무 존경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주 그냥 개혁의 아이콘이었잖아요. 한글 창제를 하려고 말도 못하게 십자가 길을 걸은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의 황홀이 있어야 되고,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이에요. 그
찬양합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X2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정작 벗어나야 될 자리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멀리있는 이방인에게 가게 해달라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자 순종하게 해달라고 모두 주여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내 한계에서 어떤 이상한 황홀을 꿈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 고. 정작 벗어나야 할 내 죄악의 자리에서 좀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내 생각을 말씀에 맞추지 않고, 말씀을 내 생각에 좀 맞추게 해달라고. 정말 이 멀리 있는 이방인에게 내가 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것을 믿고, 이제 내가 가게 해달라고. 성령의 황홀을 맛보아서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그 이방인에게 가게 해달라고. 나의 황홀이 자기 확신이 아니고, 이 순종이 되게 해달라고. 이제 우리가 이런 이 나라를 정말 불쌍히 여겨주시고 인구 절벽이 정말 막아지게 해달라고. 이렇게 몇 천년 후를 내다보는 이런 정책이 결정되며, 그런 지도자가 뽑힐 수 있도록.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참으로 바울의 그 황홀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황홀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눈
물의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하시고. 이 땅에 이렇게 온 인류가 구원받기
위해서 엄청난 역할을 이렇게 맡기셨는데. 그 역할을 감당케 하시느라고 이렇게
늘 말씀의 황홀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주님, 아무리 얘기를 해도 우리는 정말 신데
렐라의 황홀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께 뽑힘받는 그런 황홀을 이제 경험해야 하
는데... 날마다 그것을 감히 비교하고 있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참으
로 이 사명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가장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말씀을 깨닫는 황홀이라고 하시는데, 기도하는 중에 광야학교를 거쳐서 오니 주님께서 황홀한 이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지금 말씀이 안 들려서 모든 것이 짜증이 나고, 내가 왜 이런 말씀을 들어야 하나?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 참으로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고, 바울 사도가 오셨는데 우리가 날마
다 옳고 그름으로 이렇게 따지면 같이 갈 사람이 없고, 다 헤어져야 하고, 다 떠나
야 하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 힘든 사람에게로 오늘 들어가라고 주님께서 말
씀하십니다. 성령의 황홀은 자기 확신이 아니고 순종이라고 하는데.. 주님, 참 이 순종이 잘 안됩니다. 그 옛날을 생각해봐도 너무나 무언가를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 십자가를 길로 놓았던 분들이 결국은 이타적인 황홀로 우리를 이렇게 섬기고 유익하게 하는데. 날마다 내 안의 황홀, 자기만족의 황홀을 꿈꾸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참으로 이 말씀이 들리게 도와주시옵소서. 말씀이 사운드가 아니라 보이스로 들릴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주여, 잠재워 주시옵시고! 나의 모든 상처를 이렇게 약재료로 삼아서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듯이 우리가 그저 나에게 오늘 주어진 날 이렇게 순종하고 갈 때에 이 성령의 황홀을 꿈꾸며.. 더 그 역할이 왕후의 역할, 후궁의 역할, 무수리의 역할... 다 각자 역할이 따로 있지만 그것이 가장 이제 사명을 감당하는 큰 기쁨인 줄 알고 말씀을 깨닫는 황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청년들이 참으로 그래서 이 말씀을 알 때 신결혼을 하게 되며, 신교제를 하게 되며, 이 말씀을 깨닫는 주님 만 난 사람들을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청년들이 되며,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아무리 노력해도- 일생 노력해도- 이 5 이상 상승이 안 되는데 예수님 만나서 수백, 수천의 상승이 될 수 있는 아버지! 주님과의 만남! 성령의 황홀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고, 다음 세대를 지켜주시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기도제목>
장혜주
- 제일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 버리기
- 신교제와 신결혼에 대해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기
- 가족 구원에 대한 애통함으로 잊지 않고 큐티에 기도제목 쓰기
- 새로 만날 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김경은
- 다음주에 엄마가 수술하시는데 문제없이 수술 잘마무리되기
- 진로 선택 잘할수있게
- 가족(아빠,동생)구원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할수있게
김성은
- 벗어나고 싶은 내 한계에서 어떤 이상한 황홀을 꿈꾸는 것이 아닌 성령의 황홀을 꿈꾸게 해주세요.
- 저의 죄악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게 해달라고 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할수 있기를 원합니다.
- 다음주 금요일에도 부모님께서 부부목장에 특히 아빠가 참석할수 있도록
*목장 공통 기도제목*
신교제 신결혼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세요!
모두모두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