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허락
본문: 사도행전 21:37-22:1
설교: 김양재 목사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성령의 실상은 역청, 아스팔트와 같아서 내 실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성령의 실상이 되면 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했어요. 사랑하면 오래 참고 온유하게 되죠. 이제 매사에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겸손히 허락을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물어보는 것이 허락을 구하는 태도구요, 목장은 정말 여러가지로 시금석인 것 같고 너무도 유익한 공동체에요. 그래서 여러분의 실상을 알 수 있고, 그리고 내가 너무 이제 목장을 싫어하면서 연습을 하게 되는 거에요. 싫은 사람 만나는... 사회생활에 아주 지대한 공을 세우는 거를 제가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냥 그래서 똑똑한 사람의 처방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물어보는 곳 때문에 하나님은 지나고 보니깐 엄청난 허락을 곳곳에 하셨어요. 오늘은 성령의 허락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성령의 허락은
1. 딱 맞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37-8절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여러분 지금 바울 입장에서 이 때가 얼마나 긴박한 순간이에요. 결례를 행하다가 갑자기 일어난 소동으로 온 무리가 달려들어 때리고, 죽여라, 없애라, 쇠사슬에 결박하여 끌려가는 데도 폭행을 당하니깐 군사들에 들려가면서 지금 죽을 수도 있는 순간에, 안토니아 요새로 막 들려가려 할 바로 지금 그때 입니다. 그럼 여기가 이제 치외법권 지대가 되었으니깐, 소리를 지르고 억울하다고 내 결벽을 이제 주장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 주고 받은 바울의 첫 마디가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며 허락을 구합니다. 자기는 지금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로 말하는거에요. 그런데 군중은 허락 없이도 잘만 떠들었자나요,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들도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막 이말 저말 자기 말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어떤 사람은 분노에 차서... 허락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말하기 바쁩니다. 그래서 군중심리는 너무 무서워요. 그러면 우리들교회도 군중이 모였으니깐 군중아니냐? 할 분도 있을 것인데요... 우리들교회는요, 자기 죄를 보는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군중이란 수가 많고 적어서가 아니에요. 바울은 지금 혼자라도 하나님의 군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이 곳곳에서 안아 주시고 허락해주시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를 무시하는 혼자가 아니고 지금 어쩔 수 없이 복음 때문에 박해 당하여 혼자인 것이죠. 그래서 혼자라도 이제 군대인 사람이 있고, 군중 속에서도 혼자인 사람이 있어요. 이걸 잘 분별해야해요. 왜 입니까? 바울은 성령의 경영에 따라 사명의 길을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으면서 성령의 작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순종하며 따라온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경영했나요? 표면적으로는 이방 교회가 헌금 부조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서 이제 왔죠. 그러나 더 중요한 근본적인 목적은 이방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 왔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냥 내 동족 예루살렘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대적하는 그 유대인들에게 뿌리를 잊지 않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갖고자 그 엄청난 헌금을 들고 와서 생색을 내지 않고 헌금을 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이 들어가는 과정을, 이 상황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많은 장로의 박수를 받으며 설교 강단에 세워진 게 아니라, 오해 받고 누명 당하고 심지어 결박 당하며 죽음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고서, 그것도 부족해서 마지막까지 복음 한번 전하기 위해서 허락을 구하는 자리까지 이끄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경영으로 구원을 향한 목적의 애통함을 가졌기 때문에, 바울은 입을 닫아야 할 때와 열어야 할 때를 너무 잘 분별 할 수 있었어요. 딱 맞는 때가 언제인지 분별할 수 있었어요. 성난 군중에게 공격을 받을 때는 십자가의 길을 앞서 가신 그 예수님과 스데반을 따라서 묵묵히 입을 다물고 고난을 받아냈어요. 그런데 이제 가만히 있으면 위협이 멈추게 될 지금 이 때에, 오히려 바울은 입을 열고 말합니다. 그래서 항상 거꾸로 에요. 거꾸로 적용하면 돼요. 내가 정말 너무 이제 잘 모르겠자나요? 그러면 너무너무 하고 싶은 걸 거꾸로 적용하면 맞아요. 진짜 우리 인간이 그냥 말씀을 잘 못 알아듣더라구요. 바울이 보니깐, 이렇게 늘 우리하고 거꾸로 적용하자나요. 그러면서 첫마디가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 천부장은 그 짧은 한마디로도 바울의 헬라어가 보통 수준이 아님을 그냥 딱 알아챘어요. 네가 헬라말을 알어? 어떻게 그렇게 헬라말을 잘 구사하지? 여러분들은 이것 잘 모르겠지만은, 여기 이제 이 헬라어가 7단어인데, 이거 몰라도 돼요. 하나하나가 너무나 정중한 겸양의 말이며 배려를 요청하며 허락을 구하는 단어들이에요. 여기 티란은 부정대명사를 사용한 것까지도 아주 정중한 요청의 의미를 강조하고 강조하는 단어에요. 무엇보다도 바울의 발음과 억양이 수려한 헬라어고 아테네 식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러니깐 변방인 예루살렘에서, 그것도 도시의 소요를 일으킨 주범이 전통 헬라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서 천부장이 자기도 헬라어 하니깐, 너무 놀랐어요. 그래서 형식상으로 의문형이지만, 감탄문으로 쓴거에요. 사실 천부장은 바울이 예루살렘 수비대를 큰 위협에 빠트렸던 반란군의 지도자인줄 알고 아 로마에 공도 세울 겸 잡으로 간거에요. 그러니깐 너는 소요를 일으킨 그 애굽인 아니야? 라고 물었어요. 그러나 바로 다 죽었다가 천부장의 이런 질문 받을 때가 딱 맞는 그 때에요. 이 질문을 받기까지 고생이 있었자나요. 바로 이게 딱 맞는 그 때에요. 그래서 기다려야 돼요. 그 기다리는 거 어떻게 기다리냐고? 큐티하고 목장 나가고 물어보면.. 그게 그게 기다리는 거에요. 여러분 잘 모르자나요 그죠? 목장에서 물어보고.. 그런데 군중 속의 혼자고, 혼자라도 하나님의 군대는 목장에 가도 자기 얘기 안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요. 목장에 아에 안나가고, 아무 것도 안물어보고, 혼자서 내가 복음식으로 큐티를 하고 그러면은.. 이러면 그 때를 모르는 거에요. 내가 이제 다 하는거죠. 그래서 우리는 참 어려운 것 같지만, 쉽습니다. 큐티를 한다는 것 대단한 일이에요.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혼자라도 군대입니까, 군중 속의 혼자입니까?
가족의 구원을 위해 딱 맞는 그때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작년에 내가 미국 아리조나에 갔을 때 일주일 동안 새벽 오전 저녁 쉬지 않고 중간에는 목회자를 세미나를 하면서 집회를 하다가 주일도 1, 2, 3부 예배 후에 이제 특강 이후에 그 현직 교회 권사님의 이제 불신남편 팔순 잔치 초청을 받았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은, 팔순잔치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거기를 가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의 목장 특강에 다 빠진다고 그래서, 제가 그러면은 팔순 잔치를 조금 늦추고 특강을 하고 제가 가서 예배를 인도를 해드리겠다고. 팔순잔치를. 정말 못 말리는 열심이죠? 그래서 이제 가는 길에 선인장 뭐 사막이자나요. 얼마나 더운지 몰라요. 그런데 비오는 날이 드물었던 그곳에 글쎄 가는데 비가 와서 멈춰서 그냥 무지개가 딱 떴는데, 아리조나에서는 너무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비가 오는데 날씨도 그냥 선선해지고 그래서 참 좋은 날인데, 제가 이제 팔순잔치에 권사님에게 멋진 남편분에게 제가 따로 복음 제시를 해도 되겠냐고 하니깐, 혹시 이 분이 생일날인데 기분 나쁘실 수 있자나요, 그래서 이렇게 좀 얘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못 말리는 열심으로 따로 남편 분에게 가서 저 좀 만나실까요? 해가지고 방으로 따로 모시고 가서 그냥 제가 그냥 짧은 간증을 막하고 복음을 제시를 했더니 글쎄 그 분이 영접기도를 다 따라하시고 영접하셨어요. 제가 있자나요, 그 아리조나는 직항도 없는데 두 번이나 비행기 갈아타고 가서 그 분의 팔순 예배를 인도할지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들교회도 인도를 못하는데.. 그러니깐 우리는 모르는거에요. 그죠? 제가 그냥 그 분 팔순 예배 인도하러 거기 갔네요. 아리조나에. 남편을 구원해 주신 딱 맞는 그 시간, 지금 아니면 안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게 있어요. 그래서 그 저의 그 마음이 하루만에 응급실에 실려가서 간동맥이 파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이 그랬어요. 지금 들어야 한다. 지금 말해야 한다. 구원을 위해 지금 말해야 해. 내일은 없어. 내일은 없어. 이런 것이 바로 딱 맞는 그때 이고 그 마음으로 거기서 두 번 다시 이분들을 못 볼 것이다. 그렇게 여러분들은 성령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제 참았자나요.
2. 구원 때문에 공손함과 단호함의 말로 부탁해야 합니다.
오해 때문이 아니고, 구원 때문에. 오해를 넘어서는 구원 때문에. 이게 참 중요해요.
39절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자, 유대인의 배신자에요, 바울은. 또 성전을 더럽힌 죄인이에요. 그죠? 절기 지키러 왔는데.. 그런데 천부장은 마땅히 죽어야 할 반군의 우두머리로 낙인을 찍었어요. 여러분 한가지 오해만으로도 살 수가 없는데, 그냥 세 개씩이나,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로마군의 천부장으로부터 오해까지 받는데, 이렇게 오해를 받는 다면 여러분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이 오해를 받으면요 다 일단 부인하기 바쁘죠.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바쁘게 부인하다 보면 화가 쌓이고 억울하고 화를 내고, 그래서 부인하고 분노하고 이것이 오해에 대해 대응이에요. 그렇게 부인과 분노로 대응을 하면 오해는 절대로 풀리지 않아요. 더 굳어져요. 더 화가 나고, 더 억울하고..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렇게 오해를 계속 받으면 죽고 싶자나요, 사람이. 바울처럼 이렇게 매를 맞고, 갇히고 하면, 자살도 몇 번 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여러분 지도자가 제일 안해야 되는 일이 자살을 하면 안되요.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제일 절대로 그러면 안돼요. 지도자가 자살을 하면 이제 희망이 없을 땐 다 자살하라 이 말이 아니에요. 제일 그건 나쁜거에요. 갑자기 우리가 자살공화국이 되었자나요. 바울을 생각해보면 죽을 일이 너무너무 많은 거에요. 매 맞는 게 문제가 아니고 오해 가운데 있자나요. 계속.. 그러고 진짜 실제로 죽일려고 하자나요. 그런데 그 오해 하나를 그냥 그걸 참아내지 못해서 얼마나 지금 고위 관료들이 자살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바울은 반군 지도자 애굽인이라는 오해에, '내가 아니다!!' 이런 소리 안해요.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고 화내고 그러지 않아요. '나는 유대인이에요.' '길리기아 다소시민이다.' 분명하게 해요.
당시 세계 지리에 대한 기록을 남긴 스트라보에 따르면 다소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하는 교육열을 가진 도시인데, 도서관도 있고 온갖 수사학 학교들이 다 모여 있었다는데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스승이자 조언자였던 아테네도로스가 바로 이 다소 출신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직언할 고난까지 줬을 만큼 대단한 현자인데, 이 아우구스투스에게 한 조언 중 하나가 화내기 전에 알파벳을 외우라는 거에요. 여러분도 화나기 전에, 가나다라마바사.... 이렇게. 노래도 있자나요. 어우어우. 모르시나봐. 그런 노래가 있었어요. 알파벳을 가나다라를 외우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바울이 다소 시민이라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은 소읍이 아닌 소읍도 작은거자나요, 이중부정을 했어요. 이것 굉장히 문학적 기교에요. 다소가 얼마나 큰 도시임을 강조를 했는데, 유대인 길리기아 다소시민 이렇게 딱 맞는 단어 몇 개로 바울은 그냥 천부장의 오해를 싹 풀었어요. 이어서 바울은 다시 한번 공손히 부탁을 하는거에요. '청컨데 제발 부탁한다.' 매우 정중한 말이에요 이것도. 반복적 의미를 갖는 현재형이기 때문에 거듭하며 부탁한다라는 이제 이런 뜻이 있는거에요. 그러면서도 '허락해달라' 는 부정과거의 시제를 쓰면서 딱 한번만 허락해달라는 거에요. 단호한 의지로 분명하게 피력했어요. 그러니깐 청하는 거는 현재형 반복적의미, 또 이제 허락해달라는거는 부정과거의 시제 딱 한번만. 천부장은요 헬라어의 문법을 딱 알아들었어요. 바울은 천부장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이 백성을 위해서 공손함과 단호함이 공존하는 부탁을 하는 거에요. 알아들을 사람한테는 이렇게 딱 했어요. 공부를 한 것이 이렇게 적대적소에 빛을 발휘 할 줄은 몰랐는데, 이 몇 마디로 바울은 천부장을 사로 잡았습니다. 선교를 하려면 또 이제 목회를 하려면, 언어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야말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지만, 또 생각해보면 베드로와 12사도도 헬라어를 잘 못해요. 그렇다고 복음을 헬라어를 못해서 복음을 못 전한건 아니자나요. 은사가 다르다고 생각을 해야 되겠지만은, 그러나 이제 언어를 잘하면 참 좋겠다 이 생각은 제가 있어요. 제가 얼마나 바울이 대단한 사람인지 몰라요 여러분. 그러나 원어를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까지 다 알아도, 구속사로 읽지 못하면 무엇이 중요한지 숨결을 느끼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돼요 무조건. 그런데 또 이상한 거 하나가 있는데, 바로 로마 시민인 것을 밝힌다면 뭐 이렇게 천부장에게 딱 한번만 말할 기회를 달라는 식의 비굴한 부탁을 할 필요가 없는데, 그 시민권을 쓰지를 않네요. 왜 그럴까요? 빌립보에서도 그랬던 것 기억나세요? 제가 성령의 놓임 설교에서 그 얘기를 했는데, 그 빌립보에서는 잡히고 매맞고 감옥에 갇힐 때까지 로마 시민인 것을 절대로 밝히지 않았어요. 왜 그랬습니까? 그것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들을 귀를 막기 때문이죠. 유대인으로 지금 잡혀가서 맞아야 되는.. 자기들을 화나게 한 바울이 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로마 시민임을 밝히고 그 뒤에 숨었다면, 그러지 않아도 미운 바울이 더 밉지 않겠어요? 가뜩이나 로마 사람에게 대해서 피해 의식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그 억울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로마 시민의 특권을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떠날 때에는 '내가 로마 시민이다' 밝히고 떠났어요. 왜 입니까? 떠날 때는 자기가 떠나고 나서 빌립보 성도들을 괴롭힐까봐.. 이 관리들이.. 구원 때문에 쓰기도 하고 안쓰기도 하고 이러죠. 여기서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유대인들이 괴롭히는데 로마 시민임을 밝힌다면 이들도 귀를 딱 막죠. 지금 오직 바울이 복음 하나 전하기 위해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왔는데, 매 하나 덜 맞겠다고, 자존심 좀 덜 상하겠다고 이 로마 시민권을 쓰면 아주 복음 전할 기회 자체가 날라가는거자나요. 그래서 특권을 쓰지 않고 참아야 되는거죠. 또 천부장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천부장도 바울이 이 상황에서 너무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딱 맞는 때에 딱 맞는 말만 하면서 공손하게 부탁을 하니깐 말할 기회를 허락했자나요. 그런데 이때 만일 바울이 '내가 로마 시민이다.' 하면은 천부장이 너무 놀라가지고 바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즉시 안토니아요새로 금새 데리고 올라가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또 말씀 전할 기회가 날라가는 거자나요. 그러니까 바울의 머리는 구원에 대한 생각으로 그냥 가득찼어요. 구원이 제일 임을 아니깐 특권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를 딱 가렸어요. 지혜롭게 사용해야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게 안 들리면은 제가 어떤 분은 그냥 서울대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하는 분이 있어요. 목사님은 왜 저렇게 자랑질을 하냐. 이게 써야 될 때 있고 안써야 될 때가 있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런데 이제 구속사가 들리면 아는데, 졸다가 서울대.. 하면 '못 다닐 교회다.' 라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말씀을 듣고 구원 때문에 구속사가 들어오지 않으니깐 날마다 오해하는거에요, 모든 것을. 말씀이 안들리니깐 정치, 경제 모두 오해 하는거에요. 제발 좀 말씀이 들르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보고 정치한다고.. 또 왜 정치 안하냐고.. 왜 나라말을 듣냐고.. 왜 나라말을 안 듣냐고.. 그러니깐 이제 뭐든지 오해가 되는거에요. 이거를 보시면서 성경이 정말.. 이게 인간론이자나요. 그래서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이자나요. 십자가를 주시는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지혜가 생기고 가장 좋은 타이밍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내 감정, 자존심이 중요하니깐, 오해를 받으면 화부터 나고, 정작 해야할 말은 하지 못하고, 오해가 커지고, 그냥 작은 것에 집착하다가 큰 것을 다 잃어버리는 거에요. 말씀에 의거해서 성령의 실상을 깨닫고 그 실상을 증언하고자 하면요, 딱 맞는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오해가 저절로 풀려요. 정말 우리들교회에 성도님들 목자님들, 너무너무 지혜로와요. 말할 때와 안해야 할 때를 너무 분별하니깐 사람이 매력있고 세련되었어요. 말을 할 때와 안할 때. 이걸 분별하지 못하면 맨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다 사람들 상처를 줘요. 얼마나 지혜인지 아시겠지요? 지금 바울을 볼 때에. 이해가 되십니까? 너무 똑똑하시죠 큐티 하시는 성도여러분들. 그런데 말 한마디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조심을 하고 청하고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요, 겁도 없이 어떤 부목자님이 초원부목자 모임을 하다가 다른 부목자모임이 나눔을 길게 하자 줌으로 마이크를 끄지 않은채, '아 왜이리 말이 많아'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은데, '그만 말하고 입 좀 닫지.' 어우 그래가지고 그냥 큰 시비가 붙었다는거에요. 부목자님이 이제 인생일대의 고난이 되었어요. 평소 분노 조절장애가 있어가지고, 뭔가 이 분이 AD가 있는가봐요, 남의 말을 잘 못 듣고 제어가 안되고 사과를 드리고 정신과를 바꿔서 진료도 받고 다시 약을 처방 받고 계속 거듭거듭 사과를 했대요. 이게 정말 우리들교회의 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요즘 양육과 목장 모임 초원모임을 하는데, 허락을 잘 받고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조금 길게 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허락을 좀 받고, 성령의 허락이 있는 나눔은 길어도 잘 들리게 하시지만, 물론 이래도저래도 안 들리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부목자님 읽어드렸어요. 여러분들이 나도 똑같다 정말 제가 지난 주일에 요기에 보내야하는 문자를 조기다 보냈어요. 저도 정말 실상이 이것밖에 안돼요. 그런데 제가 또 메일로 보이스피싱 한번 당했다고 하니깐 그렇게 또 위로를 받으시대요, 제가 당했다니깐. 그런데 여러분들 제가 지금 엄청난 나눔을 드렸는데 어떻게 저를 다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요. 어 나는 안그래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지 어 이상한 교회야. 지금 그러고 계세요? 그게 다 내 얘기다 이렇게 이런 얘기를 하면, 내 얘기를 해주셨네, 이래야 되지 않아요? 그런데 왜 답이 안나와요? 목장에 그러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 나는 더 하다 얘기를 해주셔야죠 그죠? 그래서 정말 부목자님 제가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약도 바꾸고 이렇다고 하니깐 박수를 진짜 쳐드리고 싶어요. 그러나 성령의 허락은 오해가 풀리는게 목적이 아니에요. 더 나아가서 구원이 목적이에요. 여러분들 맨날 오해 풀리는게 아니에요. 구원이 목적이니깐, 성령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공손히, 그러나 공손에서 끝나면 안되는거죠 이 참았던 것을 참았던 이유는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자나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 한마디, 그 한마디를 단호하게 부탁해야 할 때가 있어요. 우리가 여기까지 나가야 되는거에요. 두 번 다시 못 보니깐 큐티를 하셔야 되자나요, 목장을 하셔야 되자나요.
40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지금 폭동과 반란의 위험이 큰 예루살렘에서, 그것도 세계 도처에서 많은 유대인이 모여드는 이 명절에 천부장의 모든 관심은 그 예루살렘 이 도시가 안전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소요가 일어났자나요 지금. 그러니깐 이 사태를 빨리 진정시키는 것이 천부장의 할일 이자나요. 그러니깐 그 소요의 주인공이 바울이자나요, 바울과 군중을 분리 시키는게 천부장으로써는 제일 시급한 행정관리로써 할일이잖아요. 그런데 바울이 군중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그러는거에요. 그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천부장에게는 작은 일이 아니에요.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우선 순위를 바꾸어야 했던 일이에요. 그런데 천부장이 들어줄 책임이나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무슨 소리야?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 그러고 영내로 끌고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BUT 천부장이 바울의 부탁을 허락하는거에요. 진짜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령의 허락을 주신 것이죠. 바울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이 성령의 허락을 받지 못했을 것이에요. 그런데 구원을 최고의 목적으로 놓고 백성을 애통한 마음으로 대하고 천부장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며 공손히 대하니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성령의 허락을 내리신거죠. 천부장의 허락을 받은 바울은 또 하고 싶은 말을 바로 하지 않아요. 한 사람이라도 더 듣도록 무리를 조용히 시키는거에요. 워낙 소동이 나서 말이 안 들리는데, 그냥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 손짓을 해서 조용히 시켜야지. 아무리 급해도 이런 일은 또 해야하는거에요. 항상 그 한사람. 사실 그렇게 성났던 무리가 바울의 손짓한다고 갑자기 어떻게 조용하겠습니까? 그것은 천부장의 허락이 아주 주요한거죠. 그런데 그냥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이 조용한 반전이 굉장한거 아니에요? 소동이 일어났다가. 글쎄, 이 조용한 고요함 이라는 명사, 여기 말고 단 한번 쓰인곳이 계시록 8장 1절에, 하늘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용하다, 그랬는데 사실 그것은 엄청난 재앙 전에 오는 고요함이거든요. 오직 바울이 간증하도록 이 고요함을 허락하세요. 그러니깐 바울이 이 손짓 한번 했다고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는데, 그야 말로 순종을 하니깐 복음 전할 때 카리스마가 나오는거에요. 이런 카리스마가 있어야 돼요. 권세말고요.
바울이 간증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서는 헬라어가 아니고 히브리말로 말합니다. 이거 왜 입니까? 고향 동족 유대인이 들어야하니깐, 유대의 종교와 전통과 문화를 부정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으니까 전통 아주 아람어, 히브리 고대 방언 등 말고 요새 쓰는 그냥, 알아듣도록 히브리어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너무나도 헬라어가 편하지만 히브리어로 고향 언어로 말하는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20장 1절에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여기서 있자나요, 우리가 모두 형제라고 그랬어요. 부형들아.. 이 부형들아 는 사도행전 7장 2절에스데반이 한번 쓰고 바로 여기 두 번, 부형들아 는 지금 나를 죽이려고 하는 그 유대인들의 모든 사람들을 최고로 존칭, 존경하면서 내 아버지 어머니 내 형제자매 내 자식들 다 이렇게 원어로 보면 통칭해서 너무 존경해서 부르는 부형들아.. 막 애통한 마음으로 제발 좀 복음 듣고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제 '부형들아..' 불렀어요. 그 자리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던 바울은 스데반을 기억하면서 자존심 센 유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부형들아' 불렀어요. 그러니깐 그 장면을 또 생각해봤어요. 오늘 드라마를 또 이렇게 써야 되자나요. 최고급 헬라어를 쓰다가 갑자기 고향 방언으로.. 이렇게 얘기를 하니깐 겨우 올라갔다가 딱 내려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너무나 친근함이 드는거에요. 그러니깐 이렇게 그 사람의 맞춰서 허락을 받아야 되고, 천부장도 너무 놀라서 말하기를 허락하고, 백성도 너무 놀라서 듣기를 허락한거에요. 성령의 허락이라는게 보통... 이게 보통 섬세하고 예민한게 아니에요.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오해를 받을 때 외면합니까, 부인합니까, 화를 냅니까?
구원을 위해 공손함과 단호함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까?
성령의 허락을 위해 지혜, 타이밍, 눈높이 중에 무엇이 안되는지요?
우리 인간은 이런 생각을 못하거든요. 이기적이니깐 자기 생각밖에 못하는데 이타적인 Thinking 을 주일마다.. 인간의 최고의 정말 퀄리티는 예배에요. 예배를 와야지 이런 것을 듣게 되죠.
3. 억지로 총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37-8절
37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저는 이제 이 38절에 왜 애굽인 자객 얘기가 한절을 차지 했을까요? 성경에 쓸데 없는 얘기가 하나도 없는데.
당시 유대지방에서는 단검을 가지고 활동하는 자객들이 많이 있었어요. 독립운동한다고. 이 자객들 중에 애굽 출신의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AD54에 폭동을 일으켜서 자신을 자칭 선지자, 메시아라 부르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감람산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명령 한번 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다, 그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를 구해낼 것이라고.. 하니깐 많은 유대인들이 미혹되었어요. 글쎄, 유대인도 아니고 애굽인 지도자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미혹이 되었어요. 그래서 오순절 같은 명절 같은 때에 로마의 요인들을 암살을 하고, 로마 편을 드는 유대인 고위관리를 암살을 했어요. 완전 독립군이자나요.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이 세력이요 그새 그 인구도 많지 않은 그때 3만명까지 커졌고 결국 벨릭스 총독이 이끌고 온 로마군에 의해 제압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투옥이 되었어요. 그러자 이 애굽인은 4천명이나 데리고 광야로 잠적을 해버렸어요. 여전히 4천명이나 따라갔어요. 이 애굽인에게 속은 많은 유대인들은 부모형제가 죽으니까 이제 그때부터 그 사람을 미워하는거에요. 반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이유로 천부장이 바울이 유대인에게 몰매를 맞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미워하니깐, 그 애굽인으로 생각을 했다는 거에요. 이해되시죠? 히스토리를 좀 알아야되죠. 그러면 이런 구절이 여기 왜 들어갔을까?
누구보다도 해방을 원했던 유대 민족은 로마 압제에서 구원해주겠다니깐, 애굽인의 말 한마디로 추종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듣고 싶어해요.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갈 때도 포로로 가라고 예레미야가 계속 이야기 하는데,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이렇게 꺾어버리리라, 하며 예레미야 앞에서 큰 소리를 치니깐 사람들은 좋아했어요. 하나냐는 7개월뒤에 죽었어요. 잠시 뒤를 모르고 해방시켜주겠다고, 붙게 해주겠다고 하면 열광을 하고 쫓아가는 거에요. 그러니깐 우리는 무조건 고난은 싫고 얼마나 좋으면 3만명이나 따랐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해방은요 총칼로, 돈으로, 권세로 얻는게 아니에요. 우리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도 죽어짐의 십자가를 길러 놓고 가셔서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는 잠잠하지를 못해요. 그냥 뭔가 날마다 실력행사를 해야하고 다 죽여야 되고 그냥 단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맨날 죽였다는 거에요. 자객이라고 여기 표현 했자나요. 자객. 회개는 싫어. 짠! 하고 총칼로 나의 고난에서 해방 시켜주시기 만을 바라는거에요. 그러니깐 나라도 누군가 와서 짠! 하고.. 애굽인 지도자는 백성들은 다 잡혔는데 자기는 광야로 도망갔자나요? 그런데도 4천명이나 또 따라갔어요. 사람이 이래요.. 지금도 삶에서 예배만 드리면 회개 하나도 안해도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그런.. 그냥 믿고 싶은 것, 그냥 잘 된다는 말 그 자체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로마를 죽여. 로마 편드는 사람을 죽여. 암살단이 횡횡한거에요. 유대인들은 그 애굽인 지도자에게 당했지만, 아이러니칼 하게 로마군인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애굽인 지도자를 제거해주었어요. 가장 복음을 반대하는 자가 지금 동족이에요 동족. 이때 도와주는 자가 로마에요. 그렇지만 후에는 로마가 또 전대미문의 박해를 하게 되자나요? 어려워요? 바울은 결국 로마에 의해 순교를 당합니다. 그런데 로마가 AD313년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나서 중세에 암흑시대로 기독교에 정치가 들어가니깐 교황이 정치를 하고 왕들을 파문하고 성직을 매매하면서 가장 박해를 받을 때보다 더 악한 시대를.. 천년이 넘는 살게 하셨어요. 그렇게 구속사를 모르니깐 역사도 모르고 10년 뒤를 몰라서 오늘 내 앞에 유익한가, 잘 된다고 하는 이거밖에 모르고, 유익한가 만을 따지는 거에요. 그러니깐 성경을 보는게 얼마나 우리를 똑똑하게 하는지 몰라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바울은 이런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한번이라도 전하고자 하는거에요.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분별 못하는 동족을 향해서 해야 될 것이, 총칼 들고 나가고 '다 나가자.' 가 아니라 십자가를 길러 놓는거에요. 그러니깐 지금 우리 악한 남편도 순종을 해야되고, 악한 상사도 순종을 해야되고, 악법도 법이니깐,, 이런걸 할 때 가장 애국자고 가장 현처고 가장 현부인 것을 믿습니까? 때가 되면 구원이 되면은 그것이 최고의 애국 애족이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들교회 통해서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냥 눈앞에서 현실적으로 이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래서 이제 1절에,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한번 들어보라는 거에요. 변명=아폴로기아스 인데, 아포와 로고스의 합성어인데요, 아포는 ~로부터 로고스는 말씀이자나요, 바울과 스데반이 간증을 하는데, 자신을 변명하는게 아니라 그 스데반으로부터 들었던 구속사의 말씀, 그 말씀으로부터 자신을 해명하는거에요. 우리의 모든 사건은 이 말씀으로 증거를 하는거에요. 말씀으로.
사실 바울은 스데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면서 죽이는데 앞장 섰던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면서 제발 이 변명 하는 이 말씀으로 간증하는 말씀 듣고 돌이키는 한 사람 나오게 해달라고 성령의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함이죠. 구원이 성령의 허락을 주시는 목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깐 성령의 가장 큰 허락의 목적은, 말씀을 들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거에요. 말씀 한번 들어달라고, 잘 먹고 잘 사는게 아닌, 말씀 한번 들어달라고 예배 한번 드려달라고 목장 한번 오라고 큐티인 한번 들어달라고 말씀 한번 들어달라고 여러분 바울이 이렇게 매맞고 옥에 갇히고 갖은 그냥 애걸복걸을 다 하면서 말씀 한번 들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틀렸다고 총칼로 권세로 억지로 허락을 받아내고자 함이 있습니까?
성령의 허락은 딱 맞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다리는 거 이걸 다 못하는 것 같아요. 눈앞에서 잘 되는거를... 정말 우리는 군중 속에 혼자가 아니라 혼자라도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야 해요. 사람이 겸손 해야해요. 늘 물어야 해요. 구원 때문에 공손함과 단호한 말로 해야합니다. 한 마디 하기 위해서 평생을 참아야 되는거에요. 그리고 그것은 억지로 총칼로 허락을 받아내는게 아니에요. 십자가를 길러 놔야 하는 거에요. 주님이 일하시자나요. 주님이 일하시게 기다려야 됩니다.
경모:
성령의 허락, 신결혼으로의 허락이 될 수 있기를.
이를 위해 공손하고 대담하게 끈기를 가지고 때를 잘 분별할 수 있기를.
병희:
공부를 비롯한 모든 일에 집중 잘 할 수 있도록.
시험 준비 꾸준히 잘 할 수 있도록.
가족의 건강.
혜국:
너무 힘든 직장 입사를 앞두고 있는데, 직장에서 구원을 위한 적용할 수 있도록.
신교제, 신결혼.
남룡:
직장내 조직개편 가운데 있는데, 슬기롭고 지혜롭게 윗 분의 눈높이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신교제 가운데 있는 중에, 막연한 결혼이 아닌 신결혼을 위해 말씀으로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시간들을 잘 가져갈 수 있기를.
재엽: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