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 '성령의 허락' (행 21:37-22:1), 김양재 담임목사님
성령의 실상은 역청 아스팔트 같아서 내 실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성령의 실상이 되면 떨어지지 않는 사랑이 된다.
사랑하면 오래 참고 온유하게 된다. 매사에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아니라 구원 위해서 겸손히 허락을 구하게 된다.우리가 목장에 물어보는 것이 허락을 구하는 태도이다.
목장은 여러가지로 시금석 인것 같고 너무나 유익한 공동체이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실상을 알 수 있고 내가 목장에서 싫은 사람을 만나는 연습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아주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된다. 똑똑한 사람의 처방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물어보는 것 때문에지나고 보니하나님이 곳곳에 엄청난 성령의 허락을 하신것 같다.
오늘은 성령의 허락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성령의 허락은
1. 딱 맞는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37-38절
바울 입장에서 이 때가 얼마나 긴박한 순간인가? 결례를 행하다가 갑자기 일어난 소동으로 온 무리가 달려들어 때리고 없이 하라 죽이라 하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려가는데도 유대인이 폭행하니 군사들에게 들려가며, 죽을 수도 있는 순간에 안토니아 요새로 들어가려는 그 때이다. 여기가 치외 법권지대이니 소리를 지르고 억울하다 결백을 주장하려 하지 않겠는가? 근데 이때 죽어가던 바울의 첫마디가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냐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자신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로 말하는 것이다.
군중들은 허락 없이도 잘만 떠든다.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들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해서, 어떤 이들은 분노에 차서 허락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말 하기 바쁘다. 군중심리는 무섭다. 그럼 우리들교회도 군중이 모이니 군중 아니냐 할 분도 있다. 우리들 교회는 자기 죄를 보는 하나님의 군대이니 완전히 다르다. 군중의 수가 많고 적어서가 아니다. 바울은 혼자라도 하나님의 군대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이 곳곳에서 안아주시고 허락하시는 일이 일어난다. 물론 공동체를 무시하는 혼자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복음 때문에 박해 당해서 혼자 있는 것이다.
혼자라도 군대인 사람이 있고 군중 속에서도 혼자인 사람이 있다.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왜그런가? 바울은 성령의 경영에 따라 사명의 길을 말씀으로 인도 받으면서 성령의 작정으로 순종하며 따라왔기 때문이다.
무엇을 경영했나? 표면적으로는 이방교회가 헌금한 부조를 예루살렘에 전달하기 위해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근본적 목적은 이방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동족 예루살렘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뿌리를 잊지 않고 복음 전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갖고자 했다. 그래서엄청난 헌금을 들고 와서 생색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 복음이 들어가는 과정과상황을 어떻게 만드셨는가? 많은 장로들의 박수를 받으며 설교 강단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해 받고 누명 당하고 심지어 결박 당해 죽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드시고도 부족해서 마지막까지 복음 한번 전하기 위해 허락 구하는 자리까지 이끄신다.
이처럼 성령의 경영으로 구원을 향한 목적에 애통함을 가졌기에 바울은 입을 다물어야 할 때와 열 때를 알아볼 수 있었다. 딱 맞는 때가 언제 인지 분별할 수 있었다. 성난 군중에게 공격 받을 때는 십자가의 길을 앞서가신 예수님과 스데반을 따라 묵묵히 입을 다물고 고난을 받아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위협이 멈추게 될 이 때에는 오히려 말한다. 항상 거꾸로 적용하면 된다. 내가 잘 모르겠으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거꾸로 적용하면 맞다. 우리 인간이 말씀을 이렇게 못알아먹는다. 바울을 보니 우리와 거꾸로 적용한다.
그러면서 하는 첫마디가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다. 천부장은 그 짧은 한마디로도 바울의 헬라어가 보통 수준이 아님을 알았다.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헬라말을 잘 구사하나 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온 헬라어가 7 단어인데, 하나 하나가 너무 정중한 겸양의 말이며 배려를 요청하며 허락을 구하는 말이다. 여기서 부정대명사도 사용했는데 여기도 정중한 요청이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 바울의 발음과 억양이 아주 수려한 헬라어와 아테네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천부장은 변방의 예루살렘에서 도시의 소요를 일으킨 주범이 정통 헬라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 너무 놀랐을 것이다. 이것은 의문문으로 쓴 것이지만 사실 감탄문이다.
천부장은 예루살렘 수비대를 큰 위협에 빠트렸던 반란군의 지도자인줄 알고 로마에 공도 세울 겸 잡으러 갔다.천부장이 바울에게 너는 소요 일으킨 애굽인 아니냐고 물었다. 죽었다가 천부장에게 이런 질문 받는 때가 딱 그때이다. 이 질문 받기까지 고생이 있었다. 그러나 기다려야 한다.
어떻게 기다리나? 큐티하고 목장 나눔하는 것이 기다리는 것이다. 목장에서 물어보라. 그런데 군중 속에서도 혼자고 혼자라도 하나님의 군대가 있다. 목장에 가도 자기 이야기 안 물어보는 사람이 있고 목장에 안 나가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혼자서 내가 복음하며 큐티하는 것은 그 때를 모르는 것이다. 내가 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쉽다. 큐티 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다.
적용) 혼자라도 군대입니까, 군중속의 혼자입니까? 가족의 구원을 위해 딱 맞는 그때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작년 제가 미국 아리조나에서 쉬지 않고 집회 하고, 주일 1-3부 특강 이후 현지 교회의 권사님의 불신남편 팔순 잔치에 초청받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팔순잔치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그곳에 가야 해서 목장 특강에 빠진다고 해서 팔순잔치를 약간 늦추고 특강 하고 가서 예배 인도 해드리겠다 했다. 못 말리는 열심으로 갔다. 가는 길이 비오는 날이 드문 사막이었는데, 비도 왔고 무지개가 떴다. 비오니 날씨도 선선해졌다. 정말 좋은 날이었다.
이 팔순 잔치에 가서 권사님께 멋진 남편분에게 복음제시 해도 되냐 물었다. 혹시 이분이 생일인데 기분 나쁠 수 있으니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제가 못 말리는 열심으로 따로 남편분께 가서 따로 뵙고 만나 달라 해서 방으로 모시고 가서 짧은 간증 하며 복음 제시했더니 그분이 영접기도를 따라하시고 영접하셨다. 아리조나는 직항도 없는데 두번이나 비행기 갈아타고 가서 그분의 팔순예배를 인도할 지 어떻게 알았는가? 우리는 정말 모른다. 제가 그분 팔순예배 인도하러 그 곳에 갔다.
저는 남편 구원해주신 딱 맞는 그 시간, 지금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어디든 가면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하루 만에 응급실에 실려가서 간동맥이 파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에 지금 말해야 한다, 내일은 없다 하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딱 맞는 그 때이다. 그 마음으로 두 번 다시 이분들을 못 본다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성령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허락 두번째는 그렇게 참았지만
2. 구원 때문에 공손함과 단호함의 말로 부탁해야 합니다.
오해가 아니라 구원 때문이다. 오해를 넘어서는 구원 때문이다.
39절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배신자이고 성전을 더럽히는 죄인인데 천부장에게는 마땅히 죽어야 할 반군의 우두머리로 낙인 찍혔다.
오해를 하나만 받아도 살 수 없는데 세가지나 받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로마군의 천부장의 오해까지 받았다. 이런 오해 받으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오해를 받으면 다들 마음이 급하기에 부인하기 바쁘다. 바쁘게 부인하다 보면 화가 쌓이고 억울하고 화가 난다. 오해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부인하고 분노하는 방법으로 쉽게 대응한다. 그렇게 부인과 분노로 대응하면 오해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더 굳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 오해를 계속 받으면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바울처럼 이렇게 갇히고 매 맞으면 자살도 몇 번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도자가 자살하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절대 그러면 안된다. 지도자가 자살하는 것은 희망이 없을 때는 다 자살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 생각하면 죽을 일이 많다. 매 맞는 것도 그렇지만 계속 오해 가운데 있다. 그래서 실제로도 바울을 계속 죽이려고 한다. 이런 오해를 참아내지 못해 고위관료들이 얼마나 자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반군 지도자 애굽인이라는 오해에도 아니라는 말을 안 한다. 억울하다고 화내고 하소연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유대인이라고, 길리기아 다소시 시민이라고 분명히 이야기 한다.
당시 세계지리에 대한 기록을 남긴 스트라보에 따르면 다소는 아테네와 알렉산더를 능가하는 교육열을 가진 도시라 한다. 온갖 수석 학교들이 다 모여 있다고 했다. 로마 초대황제의 스승이자 조언자가 아테니 도로스가 바로 이 다소 출신이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직언할 권한까지 주었을 정도로 대단한 현자였다.
여기서 바울이 소읍이 아닌 다소 시민이라는 말, 원문으로 보면 작은 소읍이 아니라는 말도 이중 부정을 한 것인데, 이것도 굉장한 문학적 기교이다. 다소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 강조한 것이다.바울은유대인, 길리기아, 다소시민이라는 딱 맞는 단어 몇개로 천부장의 오해를 풀었다. 이어서 바울은 다시 한번 공손히 부탁했다. 청컨대 제발 부탁한다고 했다. 매우 정중한 말이다. 이는 반복적 의미를 갖는 현재형이기에 거듭하여 부탁한다는 뜻이 있다. 그러면서도 허락해달라는 것은 부정과거의 시제를 쓰며 딱 한번만 허락해달라고 단호한 의지로 분명하게 피력했다. 청하는 것은 현재형 반복적 의미이고, 허락해달라는 것은 부정과거의 시제로 딱 한번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부장은 헬라어의 문법을 딱 알아들었다.바울은 천부장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백성에 대해서는 공손과 단호함이 있는 부탁을 한 것이다. 알아들을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 한 것이다. 공부를 한 것이 이렇게 적재적소에 빛을 발휘할 줄 몰랐는데, 이 몇마디로 바울은 천부장을 사로잡았다.
선교하려면 목회하려면 언어가 절대적이다. 저야 말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다. 생각해보면 베드로와 열두사도도 다 헬라어를 잘 못했다. 그렇다고 헬라어를 못해서 복음 못 전한 것은 아니다. 은사가 다르다 생각해야겠지만 그러나 언어를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원어를 다 알아도 구속사를 읽지 못하면 무엇이 중요한지 숨결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 성령 받아야 한다.
이상한 것은 바울이 로마시민인 것을 밝힌다면 일개 천부장에게 한번만 말할 기회를 달라는 식의 비굴한 부탁을 할 필요가 없는데 그 시민권을 쓰지 않았다. 왜 그럴까? 빌립보에서도 그랬던 것 기억하는가? 빌립보에서 잡히고 매맞고 감옥에 갇힐 때까지 로마시민인 것을 밝히지 않았다. 왜 그랬겠는가? 그것이 유대인들이 복음 들을 기회를 막기 때문이다. 바울이 유대인으로 잡혀가서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자기들을 화나게 한 바울이 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로마시민임을 밝히고 숨었다면 그러지 않아도 미운 바울이 더 밉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로마사람에 대해서 피해의식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억울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로마 시민의 특권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떠날 때는 로마시민이라 밝혔다. 왜 그런가? 떠날 때는 자기가 떠나고 나서 빌립보 성도를 괴롭힐까봐 밝힌 것이다. 그러니 구원 때문에 쓰기도 안쓰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유대인이 괴롭히는데 여기서 로마시민임을 밝히면 이들도 귀를 막을 것이다. 바울이 오직 복음 하나 전하기 위해서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왔는데 매 덜 맞겠다고 자존심 덜 상하겠다고 로마시민권을 쓰면 복음 전할 기회 자체가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특권을 쓰지 않고 참아야 했다.
그럼 천부장 입장에서는 어떤가? 바울이 이 상황에서 너무 침착하게 대응하며 딱 맞는 때에 딱 맞는 말만 하면서 공손하게 부탁하니 말할 기회를 허락했다. 그런데 이때 만일 바울이 내가 로마시민이라 하면 천부장이 너무 놀라서 바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즉시 안토니아 요새로 금세 데려갔을 것이다. 그럼 또 말씀 전할 기회가 날아갔을 것이다.
바울의 머리에는 구원을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구원이 제일임을 아니까 특권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를 가려서 지혜롭게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안 들릴 수 있다.제가 서울대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 내는 사람이 있다. 자랑질 한다 한다. 그러니 써야 할 곳 안 써야 할 곳이 있다. 구속사가 들리면 아는데, 졸다가 서울대 듣고 뭐라 한다. 말씀을 듣고 구원 때문에 구속사가 들어오지 않으니 날마다 오해한다. 말씀이 안 들리니 정치경제 모두 오해하는 것이다. 제발 말씀이 들리길 축원한다.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이다. 십자가로 주시는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지혜가 생기고 가장 좋은 타이밍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다들 내 감정,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니 오해를 받으면 화부터 내고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오해가 커지고 작은 것에 집착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린다. 말씀에 의거하여 성령의 실상을 깨닫고 그 실상을 증언하고자 하면 딱 맞는 말을 할 수 있다. 오해가 저절로 풀린다.
우리들 교회 성도님들, 목자님들은 정말 지혜롭다. 말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니 매력 있고 세련되었다. 말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면 매번 말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렇게 말 한마디 하기 위해 이렇게 조심하고 청하고 허락 받아야 하는데, 어떤 부목자님이 초원 부목자 모임 하다가 다른 부목자님이 나눔을 길게 하자 줌으로 마이크 끄지도 않은 채 말이 많다고, 그만 말하고 입 좀 닫으라 했다. 그래서 큰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부목자님께는 이것이 일생 일대의 사건이 되었다. 평소 분노조절 장애가 있어서 남의 말을 잘 못 듣고 제어가 안되고 사과 드리고 정신과를 바꿔서 진료도 받고 다시 약 처방받고... 계속 거듭거듭 사과를 했다 한다. 이것이 우리들 교회의 위력이라 생각한다.
요즘 줌으로 양육과 모든 목장 초원모임 하는데 허락 잘 받고 말하시길 바란다. 성령의 허락이 있는 나눔은 길어도 잘 들리게 하신다. 물론 이래도 저래도 안 들리는 분도 많다.
제가 이렇게 부목자님 이야기 읽어드렸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도 똑같다 해야 한다. 나는 안 그래, 어떻게 그런 실수 할 수 있지, 이상한 교회야하지는 않는가? 나는 더 하다 이야기를 해 주셔야 한다. 이 부목자님께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박수 쳐드리고 싶다.
그러나 성령의 허락은 오해가 풀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더 나아가 구원이 목적이다. 그러니 성령의 허락을 받기 위해 공손히 해야 한다. 그러나 공손한 것에서 끝나면 안된다. 이 많은 것을 참은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단호히 그 허락을 부탁해야 할 때가 있다. 어느 강사가 가서 목장 특강을 잔치 따라가서 한다 하겠는가? 다 잔치 가신다니 하는 것이다. 내가 복음 전하러 갔으니 한 것이다. 그런 것을 단호히 부탁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나가야 한다. 두 번 다시 못 보니 큐티 해야 한다. 목장 해야 하는 것이다.
40절
폭동과 반란의 위험이 큰 예루살렘에서, 그것도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오는 이 명절에 천부장의 모든 관심은 예루살렘의 안전이었다. 근데 소요가 일어났으니 이 소요를 진정시키는 것이 천부장이 할 일이었다. 이 소요의 주인공이 바울이니 바울과 군중을 분리시키는 것이 천부장에게는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근데 바울이 군중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천부장에게는 그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우선순위를 바꿔야 했던 일이다. 천부장이 들어줄 책임이 없었다. 영내로 끌고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천부장이 바울의 부탁을 허락한다.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령의 허락을 주신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이 성령의 허락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최고의 목적으로 두고 백성을 애통하게 대하고 천부장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로 존중하며 공손히 대하니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성령의 허락을 내리신 것이다. 천부장의 허락을 받은 바울은 하고싶은 말을 바로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더 듣도록 무리를 조용히 시킨다. 워낙 소동이 나서 말이 안 들리는데 말하면 무슨 소용인가? 손짓을 해서라도 조용히 시켜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그 한 사람이다.
사실 그렇게 성난 무리가 바울이 손짓한다고 갑자기 어떻게 조용하겠는가? 그러나 천부장의 허락이 아주 주효했다. 소동이 일어났다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것, 그 반전이 굉장한 것이다.
조용함 고요함이라는 명사가 이곳 말고 계8:1에 단 한번 쓰인다. 하늘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 하늘이 반 시 동안 고요하다고 할 때 쓰였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재앙 전에 오는 고요함이다. 오직 바울이 간증하도록 이 고요함을 허락하셨다. 바울이 손짓 한번 했다고 그렇게 조용할 수 없는데 순종하니 복음 전할 때 카리스마가 나오는 것 같다. 권세가 아닌 이런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바울이 간증을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는 헬라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말한다. 왜 그런가?고향 동족 유대인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의 종교와 전통과 문화를 부정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으니 정통 아람어, 히브리 고대방언들이 아닌 요새 쓰는 말로 알아듣도록 히브리어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헬라어가 너무 편하지만 히브리어로 고향 언어로 말했다. 그 첫 마디가 무엇인가?
22:1
우리 모두 형제라 한다. 근데 여기서는 부형들아 라고 한다. 이는 나를 죽이려 하는 유대인인 모든 사람들을 최고로 존경하며 부르는 말이다. 애통한 마음으로 제발 복음 듣고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형들아 하고 불렀다. 그 자리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던 바울은 스데반을 기억하면서 자존심 센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부형들이라고 불렀다.
그 장면을 생각해봤다. 최고급 헬라어를 쓰다가 갑자기 고향방언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갑자기 친근함이 생긴다. 이렇게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허락받아야 한다. 천부장도 너무 놀라 말하기를 허락하고, 백성들도 너무 놀라 듣기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의 허락이라는 것이 보통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 아니다.
적용) 오해를 받을 때 외면합니까 부인합니까 화를 냅니까? 구원을 위해 공손함과 단호함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까? 그래서 성령의 허락을 위해 지혜 타이밍 눈높이 맞추는 것 중 무엇이 안되는지요?
성령의 허락 3번째
3. 억지로 총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21:37-38, 22:1절
성경에 쓸데없는 이야기가 없는데, 38절에 왜 애굽인 자객이 한 절이나 나왔을까 싶었다. 왜 자객 이야기가 나오는지 봐야 할 것 같다.
당시 유대지방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단검을 가지고 활동하던 자객들이 많았다. 이 자객 중 애굽출신의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AD 54년에 폭동을 일으켜 자신을 자칭 선지자 메시야로 부르며 자신의 추종자들을 감람산으로 데려가서 자신이 명령 한번 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다고, 그래서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구원할 것이라 했다. 그러니 많은 유대인들이 미혹되었다. 유대인도 아니고 애굽의 지도자 말을 듣고 유대인이 미혹된 것이다. 이들이 오순절 같은 명절 때 로마의 요인들을 암살하고 로마 편을 드는 유대인 고위관리도 암살했다. 완전 독립군이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세력이 그 때 3만명까지 커졌는데 결국 로마의 벨릭스 총독이 이끌고 온 로마군인에 의해 제압되었다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처형 당하고 투옥되었다. 그러자 이 애굽인은 4천명이나 광야로 데려가서 잠적했다. 이 애굽인에게 속은 많은 유대인들은 부모 형제가 다 죽으니 그 때부터 이 사람을 미워했다. 반감을 가졌다. 이런 이유로 천부장은 바울이 유대인에게 몰매를 맞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미워하니 바울을 그 애굽인으로 생각했다.
이런 구절이 왜 들어갔는가? 누구보다 해방을 원했던 유대 민족은 로마 압제에서 구원해주겠다고 하는 애굽인의 말 한마디로 그를 추종했다. 우리는 그런 것이 듣고 싶다.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갈 때도 포로로 가라고 예레미야로 이야기하는데 거짓선지자 하나냐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어버리리라 하면서 예레미야 앞에서 큰 소리 치니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러나 하냐나는 7개월 후 죽었다. 잠시 뒤를 모르고 해방시켜주겠다, 붙겠다 하면 열광하며 쫓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무조건 고난은 싫다. 얼마나 좋으면 3만명이나 따랐겠는가? 그러나 해방은 총칼로 돈으로 권세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도 죽어짐의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셔서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는 잠잠하지 못하다. 날마다 실력 행사 해야 하고 죽여야 한다. 단도를 가지고 다니며 매일 죽였다고 한다. 회개는 싫어 하며 총칼로 나의 고난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바란다. 나라도 누군가 와서 짠 하고 해결해 주길 바란다.
백성들은 다 잡혔는데 그 애굽인 지도자는 광야로 도망갔다. 그런데도 4천명이나 따라갔다. 사람이 이렇다. 지금도 삶에서 예배만 드리면 회개 안해도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고 싶은 것 같다. 그저 잘된다는 말 그 자체가 너무 좋다. 그래서 로마 편 드는 사람을 죽이는 암살단이 횡행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 애굽인 지도자에게 당했지만 아이러니하게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들을 위해 애굽인 지도자를 제거해 주었다. 가장 복음을 반대하는 자가 동족이다. 근데 이때 도와주는 자가 로마이다. 그러나 후에는 로마가 전대미문의 박해를 하게 된다. 어렵다.
바울은 결국 로마에 의해 순교한다. 그러나 로마가 AD 313년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나서 중세 암흑시대가 되었다. 기독교에 정치가 들어가고 교황이 정치를 하고 왕들을 파문하고 성직을 매매하며 가장 박해받을 때 보다 더 악한 시대를 천년 넘게 살게 하셨다. 이렇게 구속사를 모르니 역사도 모르고 십년 뒤를 몰라서 오늘 내 앞의 유익한 것만 따진다. 그러니 성경 보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똑똑하게 하는지 모른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바울은 이런 유대인,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한번이라도 전하고자 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분별 안되는 동족 향해서 해야 할 것은 총칼 들고 다 나가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길로 놓는 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악한 남편도, 악한 상사도, 악법도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애국자이고 가장 현처 현부인 것을 믿는가? 때가 되어 구원이 되면 그것이 최고의 애국 애족이고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들 교회 통해서 그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저 눈 앞에서 현실적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서 1절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한다.
변명은 아폴로게하스, 아포와 로고스의 합성어 이다. 아포는 ~으로부터, 로고스는 말씀이다.
바울과 스데반이 간증 하는데 자신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으로부터 들은 구속사의 말씀으로부터 자신을 해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사건은 말씀으로 증거된다. 사실 바울은 스데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며 죽이는 데 앞장섰던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면서, 제발 변명하는 이 말씀으로 간증하는, 말씀 듣고 돌이키는 한 사람 나오게 해달라고 성령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다. 구원이 성령의 허락을 주시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령의 가장 큰 허락의 목적은 말씀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살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 한번 들어달라고, 예배 한번 목장 한번 큐티인 한번 들어달라고 바울이 이렇게 매맞고 옥에 갇히고 갖은 애걸복걸하며 허락 구하는 줄 믿는다.
공동체 고백
천부장 같은 분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허락한 나눔
: 장물거래 위반으로 벌금 물고 큰 금액을 보상해야 했던 목자님의 나눔
[말씀 맺음]
성령의 허락은 딱 맞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들 기다리는 것을 못한다. 구원 때문에 공손함과 단호함의 말로 부탁해야 한다. 한 마디 하기 위해 평생을 참아야 한다. 그것은 억지로 총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려야 한다.
[기도제목]
* 보련
1. 여전한방식으로 예배,큐티,말씀 듣기
2. 실업급여 받으면서 이것저것 할수있는것 찾아보기 (일 알아보기 등등)
* 크리스틴
1. 리포트를 오랜 시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리포트를 잘 쓰던 못 쓰던 사명 감당할 힘 주시고 마무리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 허락해 주세요.
2. 상담과 약처방 하는 병원을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 은총의 은혜 잘 받고 누리고 구원의 약재료 될 수 있도록
* 지향
1. 오해를 풀기 위해 분노하지 않고, 구원을 위한 공손함과 단호함으로 가족들 대할 수 있도록
2. QT하면서 지혜/타이밍 분별하기 위해 남은 과정들 목장에 잘 붙어 묻고 가도록
3.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총칼 권세로 결혼해달라는 기복적인 기도하지 않도록
* 은선
1. 대략적인 학위논문 주제 2가지 정도 잡았고 2.15일까지 논문계획서 제출 및 심사위원 교수님 정해야 하는데 기한이 촉박해서 불안해지고 있음..교수님께 면담 요청 메일 드렸는데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교수님과 잘 상의해서 주제 잘 잡고 진행 잘되기를 인도해주시기를
2. 다음학기에 졸업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싶은데, 내 욕심 내려놓고 차근차근 잘 준비하고 말씀잘보고 공동체에 잘 붙어가기를
3. 아빠, 외삼촌의 영혼구원
4. 엄마에게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뭐라고 하며 싸우지 않고 나부터 말씀 잘 보고 회개하기를
* 교희
1. 하나님이 나의 왕, 나의 근원 되어주시기를
2. 영육 회복을 위해 방주에 잘 갇혀 공동체에 잘 물어보고, 성령이 허락하실 때까지 잘 머무르도록
3. 가족 구원을 위해 성령의 허락을 구하며공손함과 단호함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4. 대출 등 전세 관련 절차 순적하게 진행되도록
* 예랑(방문 참여)
1. 사별에 대한 사건 병원에 가서 꼭 상담 받고 말씀이 들리는 베들레헴 목장으로 속히 옮겨 주시고 인생이 말씀으로 해석되도록
2. 군중속의 혼자 유리하는 신앙이 아니라 군대와 같은 목장과 함께 힘써 일어날 힘 주시도록
3. 부모와 분리 되지 않고 결혼 한것에 대한 회개와 적용으로 부모/나의 모습 객관화 할 수 있는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도록
* 은우
1. 성령의 딱 맞는 그때를 위해서 매일 하루 만 잘 살 도록
2. 억지로 받아내지 않으시고 인격적인 주님 의지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