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영접
본문: 사도행전21:14-18
설교: 김양재목사님
성령의 전송을 받았기 때문에, 지난 주제 성령의 각오로 두로아와 돌레마에 가이사랴에서 결실을 맺고 화해가 일어났습니다. 똑같은 각오이지만, 나의 각오를 위해 너를 죽일 때는 다 원수가 되었는데 성령의 각오를 위해 내가 죽어지니까 화해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주님 위해 나가는 자는 어떻게 응답해주실까요? 새해 첫 주일에 주님께서 영접 해주신다고 합니다.
1.(성령의 영접은)예루살렘에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4절, 좋은 사람과 만나면 결과도 좋아야 하는데, 오늘 그렇지 않다고 간증을 들었습니다. 염려를 맡기는 구조가 참 중요합니다. 다 말렸지만, 바울의 우리 공동체는 늘 나누고 묻고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바울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이 각오의 한자는 깨달을 각,깨달을 오 입니다. 들린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바울의 말씀이 들려서 같은 말씀으로 양육 받은 동역자요 제자였습니다. 자기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고집처럼 보인 바울의 각오지만, 그 각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바울 개인의 뜻도 아니고, 자기들의 뜻도 아니고, 오직 주의 뜻이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의 뜻의 핵심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류가 아니라, 그렇게 항상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올라가는 게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라고 합니다. 같이 가는 그 우리가 너무 중요합니다.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5절,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100km인데, 3차 전도여행에 긴 장정의 마지막 구간입니다. 거리는 사실 짧지만 올라가는 것이 해발 800m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오르막만 있기 때문에. 그런데 결박과 핍박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복음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예루살렘에 올라 가려고 했을까요? 복음 전하는 것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이유는 헌금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라면 가서는 안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너무 바울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그 이유가 그들만 선민이기 때문에 이방인이 선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굳센 고정관념이 깨지기가 너무 힘듦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바울을 보면서 잡아 죽이려고 하고, 쫓아내며 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바울을 그렇게 미워하는 본산인 그들의 소굴로 지금 가야겠다고 합니다. 일부만 만나도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데, 본 산지에 자기 발로. 왜 그럴까요? 그들에게 헌금 때문만이라면 얼마든지 아시아 일곱 교회 대표 지도자들만 보내도 됩니다. 그런데 이 헌금이 아니면 예루살렘 지도자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고 거기고 교회고 회사고 집이고 끝에 돈이 있습니다. 다 돈 때문에 싸웁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흉년의 힘든 이 때 헌금을 가져가면 바울을 받아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이 헌금을 받아드리면, 이방 교회에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와 다른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헌금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평생 소원이 자신의 혈육 유대인들에게도 구속사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의 고정관념은 너무 깊었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돈까지도 너무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흉년이 아닐 때는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반드시 받게 해야 되고,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 때문에 안타까운 이 간절함이 다가오십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이방인 교회인 두로의 제자들과 화해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인공인 전도자 빌립과 화해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미리 기뻐하실 일을 해야 이방인과 유대인이 화해하는 모습을 미리 실물로 보였습니다. 그래야지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에서 인정을 한 것입니다. 화해의 열매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드디어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헌금을 전달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방 교회에서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라는 것을 인정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헌금이 다 이렇게 쓰이는 것이고, 헌금도 전할 때 안 전할 때가 있는데, 복음을 위해서는 이렇게 꼭 전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항상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하기 위해서 쓸 데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두로에서도 화해를 합니다. 이것이 쓸 데 없는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큐티의 행간을 읽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적용해야 될 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니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큐티 하나 잘했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구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메세지입니다.
[적용] 나의 힘든 예루살렘은 무엇 때문에 올라가고자 합니까? 나의 이해타산 때문입니까, 복음 때문입니까? 즉 나의 묶인 환경에서 견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성령의 영접은) 의외의 몇 제자가 여장을 꾸립니다.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15-16절,여러 날 위에 여장을 꾸렸다고 합니다. 빌립과 화해하고, 가이사랴에서 이 바쁜 사람이 꽤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빌립한테 기대를 한 것입니다. 같이 혹시 가지 않을까?하고.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사명의 인생은 또 여장을 꾸려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처럼 자녀가 품질이 좋고, 내 자녀가 다 예언을 하고, 또 내 남편이 품질이 좋으면, 딱 달라 붙어 떠나기가 싫습니다. 내 가족 역시 구원을 위해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임을 깨달아야 하고, 내가 사는 이 곳은 구원을 위해 내게 허락한 곳이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알고, 내가 이 땅에 여장을 늘 꾸려야 하는 나그네임을 늘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난으로 인한 사명은 우리를 늘 여장을 꾸리게 합니다. 부유함은 힘든 오르막길인 예루살렘으로 어찌 떠나고 싶겠습니까. 또 예루살렘에 올라갈 마음만 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각오를 했으면 실제로 여행을 위해서 몸을 준비하고 짐을 꾸리는 실제적인 준비를 해야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큐티할 각오를 했어!'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에 옮겨 실제로 큐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실제적인 예루살렘행에 여장을 꾸리는데 동참을 할까요? 오늘 몇 제자가 나옵니다. 가이사랴 성도들은 빌립과 바울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봤습니다. 오랜 긴장과 어색함이 말씀 안에서 해석이 되어서 해결이 되는 화해를 봤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동조해주지 않아서 섭섭했지만, 늘 자신을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기를 바라는 바울은 일절 티를 내지 않습니다. 바울의 말씀에 은혜 받고 화해가 되었기 때문에 가이사랴 성도 중에 몇 사람이 바울을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각오로 환란과 결박 뿐 아니라 죽기까지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바울과 함께 가는 지체가 되는 수고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함께 들어가서 머물 집을 준비해주는 수고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받을 비난과 박해도 각오해야만 하는 수고를 했는데, 이 수고를 그 대단한 빌립이 한 것이 아니라 무명의 제자 몇 사람이 했다는 것입니다. 빌립이나 바나반처럼 유명한 지도자들은 끝까지 바울을 돕지 못했는데, 이 이름없는 소수의 제자들과 나손처럼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힘들 때 바울과 함께 갔고, 그를 도왔습니다. 그 중에 오늘 나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는 그를 오랜 제자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제자라는 뜻입니다. 바울보다 먼저 제자가 된 사람인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성령께서 강림하시던 그 오순절에 이 땅에 가시적으로 세워진 첫 번째 교회의 첫 번째 제자라는 뜻입니다. 120 문도 중에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는데, 나손의 이름이 헬라식 이름인 것으로 보아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구브로 출신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돌보던 가이사랴 교회와 친밀했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 집이 있는 것을 보니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0명이 넘는 사람의 숙소를 제공할 정도면 부자였을 것입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100km니 사흘 정도 걸렸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예루살렘 교회 개척 맴버이자 또 핵심 맴버였던 나손이 예루살렘을 오래 떠나 있었던 바울에게 당연히 여러 가지 정보를 얘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이방인 선교, 베드로 성도가 한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지, 중풍병자 에니아를 고치고, 욥바에 도르가를 만나고, 가이사랴의 고넬료를 어떻게 만났는지 등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통해서 정보를 다 습득을 했습니다. 나손은 바울을 지지하고 따라 나섰기 때문에 물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장을 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무작정 올라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머물 곳도 생각해야 하고, 특히나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상해 있을 때에는 직접 만나면 큰 일입니다. 한마디에 감정이 폭발하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사정을 잘 아는 나손을 통해서 미리 듣고 기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목장을 하면서도 새가족이고, 저 사람은어떻고, 이것을 목자가 연구하고 기도해서 그 사람에게 맞게 해야 구원이 이루어 집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현재 일어나는 일이 삶의 결론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오래 들은 사람이 있고, 처음 듣는 사람이 있고, 새가족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정보를 가지고 구원 때문에. 목장은 좋은 곳이라서 가는 게 아닙니다. 피로 값주고 사신 주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목장에 가면 내가 얼마나 교만한 지를 보라고 가는 것입니다. 목장에 가면 사람이 싫어서 회개할 것 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목장 가서 상처 받을 일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목자들은 구원을 위해 여장을 꾸려야 합니다. 구원을 위한 정보를 알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기고 이기는 목표만 가져도 잘 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 야망일 때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모르고는 백성을 사랑할 수도 사랑을 지을 수도 사랑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백프로 악하고 백프로 아비마귀에서 났는데, 인간에게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랑해서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것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상대방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참고 또 참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영접해주시는 사람은 늘 의외의 사람입니다. 나손이 바울과 일행을 자기 집에 묵게 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뒤에를 보면 일주일 후에 바울이 체포 되었습니다. 나손에게는 그렇게 작정하여 예루살렘으로 갔지만, 일주일 밖에 못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이 일주일인 지 알았다면 따라 나섰을 것입니다. 다들 일주일일 지 모르고 떠났는데, 사실 나손은 이 바울과 같이 간 열흘 정도가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여기 몇 제자도 오후 5시에 온 일꾼처럼 마지막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같이 예배드리고 큐티하면서 만나는 것이 그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같은 대단한 서신을 썼어도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문안으로 끝납니다. 디모데후서도 유언장이지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대한 문안으로 끝납니다. 어떤 목회나 어떤 지도자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안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쓰면서 드러비모가 병든 것까지 알려줍니다.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같이 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제자 양육이 되어 2천년 동안 바울과 그 어려운 예루살렘행에 동행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품으로 한 일은 언젠가는 생색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내 자신보다 구원이 더 중요함이 인정이 되어야 십자가 지고 앞장 서는 한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습니다. 평지를 걸아가는 것도 아닌데 해발 800m는 계속 오르막길, 아무리 각오를 했어도 실제는 힘듭니다. 성령의 영접으로 끝까지 도와주셔야 할 것을 믿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여장 꾸리는 의외의 몇 제자가 되고 싶은가요,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구원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도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원을 위해 나손의 정보를 얻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를 하십니까?
3.(성령의 영접은)이 땅의 질서를 인정해야 합니다.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7절,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을 합니다. 큰 환란이 닥칠 것을 미리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기쁘게 영접합니다. 여기서 형제들은 나손의 집 식구들을 비롯해서 당연히 일부 헬라파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약간 열렸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마게도냐, 아가야, 헬라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그 이방교회 대표 일곱 명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수많은 교회들의 헌금을 모아서 왔습니다. 그리고 도착한다고 연락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대표 중에 한 명도 영접을 안 나왔습니다. 사도 직분을 받은 어떤 사도도 나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숙소도 마련해주지 않았습니다. 숙소도 전부 바울이 알아보고 왔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온 바울에게 예루살렘 교회는 이렇게 대단합니다. 나손의 집에 머문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찾아가서 격려하고 그랬을텐데, 저녁이라도 먹자고. 오히려 바울은 쉴 틈 없이 그 이튿날 바로 선교 보고를 하러 들어갑니다. 그만큼 예루살렘 교회의 선민의식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예루살렘의 마지막 방문에서 유대인 폭도들에 의해서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하고 급기야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잡혀가게 됩니다.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8절, 오늘 18절까지 항상 등장했던 우리라는 표현이 27장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가가 바울과 우리를 분리한 게 아니라 이제 바울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우리가 한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아얘 우리를 뺐습니다. 내 십자가는 어느 누가 대신 질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모두 이렇게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질 때 옆에 어떤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손과 제자들이 옆에서 정보는 주고 도움은 되지만은 결단은 내가 해야 되고, 십자가는 내 손과 발이 수고해서 피 흘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튿날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납니다. 이 야고보는 우리가 사도행전 15장에도 봤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로 구성된 핵심 맴버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은 이 때 선교활동의 주력을 했는지 예루살렘 동생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가 있는 곳에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15장에서는 사도와 장로들이 모두 기록되었는데, 여기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일부러 떠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12장에서 베드로가 야고보에게 전하라고 하고 사라졌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한 명의 감독과 칠십 명으로 이루어진 장로회, 당회로 구성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일을 결정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로부터 헌금을 받고 선교보고를 들을려고 다 모여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해서 낳은 육적인 네 명의 아들 중에서 첫째 아들, 첫째 동생입니다. 마리아가 낳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혈육이라는 것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절대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야고보에게 들어가니 라고 했는데, 이 들어가다는 성전에 들어가다의 표현과 똑같은 표현을 써서, 예수님의 혈육이라는 것 때문에 야고보를 성전과 동일 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까지의 베드로처럼 사람 살리는 역사도 없고, 삼천 명이 돌아오는 역사도 없고, 13장부터의 바울의 기가막힌 행전도 박해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당시는 야고보의 리더십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도 형제 중에는 훌륭합니다. 유다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단 사설을 다루는 데는 야고보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 후에는 야고보가 바울과 베드로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에 문화와 전통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가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기애로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무시하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왔는데, 이것이 어찌 바뀌겠습니까. 바울이 누구보다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방인을 땅 끝까지 전하라고 했는데, 말씀대로 하는데, 말씀대로 하는 바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도의 대상이 이방인으로 바뀌니까 맹렬히 비난하다 못해 다 죽이려 했습니다. 나의 기득권, 내 자리가 익숙하면 그 누구도 넘어 가지를 못합니다.
[적용]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해야 한다고 순종 하십니까? 인정받아야 한다고 소리를 드높입니까? 그래서 맨날 나이 타령, 계급 타령, 남녀 타령, 직분 타령을 하십니까?
*나눔: 2021년 한 해는 어땠나요?
최혜신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지 잘 모르겠다. 시험을 더 칠 에너지는 안 남아있다. 힘이 없어서 마음을 조금 추스려야 말씀이 더 잘 들리지 않을까 싶다. 현재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1월은 많이 쉬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되나 싶어서 조금 답답하긴 하다. 무엇을 구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욕심을 많이 내려놓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잘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좋다.
권희경
한 해 동안 할 일이 많고 바빴던 것 같다. 그리고 도전을 했는데 안되고 있어서 안타깝고, 올 해도 같은 학교에서 있겠구나.. 뭘 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같은 부서에 있는 선생님들은 좋아서 같이 계속 갔으면 하는 생각은 있다.그 와중에 또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안타깝다.
목자: 올 해는 어떻게 보내고 싶어?
올 해는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은희
올 해는 작품 때문에 이런 큰 작품을 하게 되면 연습하고 준비하고 공연 올리다 보면 한 해가 다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올 해도 연초부터 텝스트테이닝 시작해서 공연 일산 왔다 갔다 하면서 연습하고 극장 와서 리허설하고 공연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 한 해가 후딱 간 느낌이다. 한 해 바쁘게 하면서 살아서감사하다. 이런 공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는데, 이런 공연 하는 것을 못하는 배우들도 매우 많다. 내가 작품을 같이 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큰 축복인 것 같다. 일을 하면서도 코로나 때문에 멈추고 다시 하고 멈추고 다시 하고 해왔는데, 그래도 이런 시국에도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다음 작품은 2월 말부터 연습을 하게 된다. 4~5개월 공백 후에 다음 작품 <마틸다>를 들어가게 된다. 이번에 처음으로 차기 작이 정해져 있어서 안정감과 감사한 마음이 있다. 올 해도 작품을 하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든다. 지금 작품도 무사히 잘 마무리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에스더
매달 알차게 산 것 같다. 사람도 많이 알게 되고, 일도 많이 하고, 또 오래 지냈던 안암을 떠나 큰 이사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한 달 한 달 핫이슈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해석 하면서 가는 게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제일 큐티를 통해서 해석해가는 한 해였던 것 같다. 매일 말씀을 보려고 하고, 해석해가니 사건에 당황하고 충격 받아 슬럼프까지 빠지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를 먼저 하는 게 귀찮고 몸이 안 일어나진다. 그래도 경험을 해보고 그것이 살 길이라는 걸 아니까 조금 더 절제가 되고 가능해지는 것 같다. 올 한 해 가장 큰 배움인 것 같다. 작년에 오래 사귄 사람과 헤어지고 처음 한 해를 보냈는데, 잘 못 지낼까봐 두려움이 있었는데 너무 생각보다 잘 지내서 감사하고, 헤어지고 8-9개월이 되어서야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던 것 같다. 전 연애에서의 해석도 많이 됐다. 나의 문제도 참 많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 목장 아쉽게 온라인 목장으로 마무리 하지만, 또 만나요!! 사랑합니다

*기도제목
김은희
1. 늘 건강하게 해야할 일들을 잘 감당할수 있는 체력, 능력, 은혜 부어주세요
2. 아빠의 우울증 회복과 엄마와 할머니 오빠의 건강또한 지켜주시고 우리가족 올 해는 좀더 밝은 나날들이 있을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주세요
3. 남자친구가 좀 더 마음을 열고 주님 만날수 있도록 구원의 은혜 내려주세요
4.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예배와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타협하며 합리화하며 말씀보는것에 게을러지지말고 좀 더 예배와 말씀에 나아가고 기도하는 내가 될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문에스더
1. 2022년에 허락하시는 목장을 귀히 여기고 내 역할에 맡는 자리를 지킬 수 있길
2. 매일 새벽에 가장 먼저 큐티와 기도를 할 수 있길
3. 복음을 위해 사람을 대하고, 사건을 해석하고 결정할 수 있길
4. 매사에 오래참음과 인내하는 적용이 있길
권희경
1. 할머니가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셔서 화요일에 시술받으시는데 담당의사에게 능력 주셔서 평안하게 회복되는 은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2. 방학중 생활기록부 작성 및 외부특강 실수 없이 마무리하도록 힘주시기를 소망합니다
3. 다음학기 너무 부담되지않는 업무에 배정을 받아 부서 선생님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직장에서도 함께 기도하여주고 힘이 돼주는 공동체 이룰 수 있길 소망합니다
4. 작년말 작은 회계 문제가 생겼는데 지혜롭게 대처하여 학년말 잘 마무리할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5. 올해동안 세상에 필요한 전문성과 능력 더 계발할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6. 5월에 동생이 자격증 시험보는데 마음 흔들리지 않고 잘 준비하여 주의 일꾼 사회의 일꾼으로 크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최혜신
1.올 한해 힘내서 잘 살아낼 수 있도록
2.사명따라 하루하루 정확하게 살아내도록
3.사랑이 많은 목자로 목장 식구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4.좋은 학교로 인도함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