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년 12월 19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21장 1절~6절
제목 : 성령의 전송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절ampndash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절 ampndash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절ampndash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향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절ampndash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절ampndash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절ampndash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김양재 목사님말씀
인생의 최고는 떨어짐이 아니었나 붙회떨감도 이해했고, 오늘 서약하고 세례식을 베풀겠습니다. 너무 밀렸기 때문에 원래 세례를 하면 안되는데 두주일에 계속해서 세례를 계속해서 하려고 합니다.
네. 우리 김집사는 청년부 출신이거든요. 결혼도 잘하고 이러니까 너무 이제 돈벌고 싶었나봐요. 그런데 이제 작곡도 하고 음악도 하니까 목소리도 좋잖아요 11번의 사업을 실패했다고 하는데 아인이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서 아인이 세손가락 중에서 한손가락 살렸다고 그것을 표징으로 삼아서 영원히 기억할수 있는 표시가 되었어요. 오늘 간증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업을 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길대로 법대로 하고 축복하게 되는 간증을 할 줄 믿습니다. 아멘. 크리스마스 트리가 성령의 안아주심이래요. 이름이요. 그래서 트리도 말씀대로 하면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씀 대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그랬음 좋겠어요. 그러고보니까 딱 맞는 것 같아요. sg공동체 백신 방역 지침에 따라서 229명으로 재 조명 되었고, 이번주 수요일은 간증있는 찬양 콘서트로 진행되고 수요 저녁 예배는 현장예배 없이 온라인 예배만 진행됩니다. 성탄 예배는 2부만 30분 당겨서 합니다. 교회에서는 별로 진짜 나온대가 있지만 교회처럼 안전한대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스크 쓰되 방역 마스크 kf94 꼭 쓰시고요. 다 이겼습니다 요한계시록 세번째를 50분에 걸쳐 소개를 했어요. 큐티엠에서 올려서 공유해서 요한계시록 큐티할 때 도움 되라고 사둬야 하는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소개도 하고 그랬음 좋겠고, 예. 그렇습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이땅을 살면서 떠내보내고 보내고 하는 일들을 많이 하는데 그 모든 떠남과 보냄이 성령의 전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령의 전송에 대해서 듣고자 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나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언제 2021년이 왔나 싶은데, 또 이제 2021년을 두 주일 후면은 보내야 합니다. 우리 말로
전송하다는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다 라는 의미가 있어요. 자, 여러분은 잔치를 베풀어 2021년 잘 보낼수 있으시겠어요? 성령의 작정을 하고 성령의 감독자들에게 성령의 부탁을 하며 전송을 하면 잘 떠나고 잘 보내는 성령의 전송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의 전송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번째 목적지가 확실할 때 입니다. (1절~2절)
1절 -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절 ampndash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자, 오랜만에 지도를 한번 보겠습니다.
예, 이제 처음에 고스로 갔고, 고스가 나왔어요. 밀레도에서 고스로 갔어요.


그리고 이제 로도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해안을 따라 바다라로 갔습니다.


해안선 타고 베니게 가려면 큰 상선을 타고 650km 되는 길이인데 배를 타고 직행해서 구브로를 옆에 두고

두로에 도착했다는 것이 오늘 설교의 어떤 배경이 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여정이예요. 이 베니게, 두로, 시돈이 있는데 자 지도가 이해가 되셨어요?
예, 잘 안보인다고 하셔서 이렇게 비쳤습니다. 예, 그 동안 이제 바울은 1,2,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물불 안 가리고 전도하고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21장 16절부터 새로운 장르가 17절 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펼쳐집니다. 이제 전도 못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바울의 위인전이 아닙니다. 아, 우리는 바울처럼 전도해야지 우리도 목숨 걸고 나가야지 이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전도하자 로 결론이 나면 안되는 거예요. 이제부터 이어지는 바울의 주역을 이제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십자가의 사명의 시작이 되는데요. 그러려면 힘든 사역 이기 때문에 성령의 전송을 받고 떠나야 합니다. 작별이라는 단어는 수동태로 쓰이면 딱 붙어 있는 둘을 아주 고통스럽게 떼어내는 이 이별을 뜻합니다. 딱 붙어있는 돌을 억지로 떼어내다 인데 고통스러운 의미를 뜻해요. 그 어느 때보다 함께하는 우리가 필요한 상황인데 홀로 그 짐을 지셔야 하기에 그들을 떠나시는 그 주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죠. 어떤 일이 있어도 맡기신 사명이어도 그 길을 완주해야겠다는 목적이 있기에 완수해야 한다는 적용이 있기에 어떤 일도 해낸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기에 이 어려운 작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성도들과 사랑하지만 지금 떠나는 작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항로를 따라서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지났습니다. 세계적인 지도자 바울이 가는데 고스에서로 로드에서도 바다라에서도 뭐, 베니게에서도 다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름은 금그릇 이라서 예수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생각하면 예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예요. 이 사람들은 이 땅이 천국이니까 예수가 필요가 없는것이죠. 자, 고스는 밀레도에서 70km 떨어진 히포크라테스의 도시로 의학이 유명한 곳인데 예를 들면 내 옆에 유명한 의사가 예수 믿는 바울이나 나를 못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120km 떨어진 로도섬에는 수사와 웅변의 큰 대학이 있습니다. 로스쿨로 본다면 유명한 판검사가 못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도에서 다시 100km
을 가량 남동쪽으로 향하면 바다라에 도착하는데 바다라는 수백척의 그 선박이 머무는 곳인데 유명한 해운회사 회장이 사장이 바울과 예수 믿는 나를 못알아본다는 것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예수가 필요없죠. 그러나 그들만 필요 없는게 아니고 바울 쪽에서도 보면은 고스는 아름다운 경치와 맛 좋은 와인으로 유명하고, 기후도 좋고 온천까지 있어서 로마 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인기 있는 휴양지 였습니다. 로도로 바다라도 지형과 위치 덕분에 해상교통의 요지인 부자도시였습니다. 예술과 교육이 아주 발달했죠. 그런데 그들도 바울을 안 보겠지만 바울도 이 유명한 이 섬들을 바로 갔다고 그랬습니다. 전혀, 시간을 허비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어떻게 강행군을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데 행복에 목적을 두면 여기저기 기웃 기웃 거리겠지만 바울이 목숨걸고 가는데 바로 갔다고 했습니다. 직행했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직행 기억나시지요? 사명의 길을 가려고 가장 아끼는 제자들과 헤어지는 어려운 작별까지 했는데 아무리 유명하고 좋고 너무 경관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지금 그런데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라 까지는 직행했습니다. 바다라는 큰 항구를 가진 항구도시인데요. 지금 이제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곡물을 운반할 때 선다는 중간 기착점으로 삼던 주요 항구였습니다. 그래서 바다라라는 지역에서 바울은 지중해를 아까본 것처럼 황단을해서 베니게로 건너가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요. 가기 위헤 베니게로 건너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도 힘들지만 그 당시 배 타는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뱃멀미는 이거 안해 본 사람은 모르잖아요. 배타고 5일 이상 가야 하는데, 배의 항로를 적극적으로 찾게 하시고 항로대로 가게 하시고 내려서 기다리게 하시고 그런데 몇 시간도 아니고 하루 종일 배를 타고 또 하루 저녁 쉬고 그 다음에 또 타고, 그리고 여기는 계속 닷새를 배를 타는 것인데 이 바울 노인이 쉬지 않고 배를 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길이 너무 급합니다. 그래서 이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강행군을 하겠습니까? 목숨을 조금도 귀한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니까 지금 이제 가는 것입니다. 베니게는 그 두로와 시돈이 있다고 했잖아요. 아시죠? 속해있는 베니게 지역이예요. 그런데 여기서 이제 두로와 시돈이 포함된 이스라엘 북쪽의 방향이예요. 2절에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만나서는 단순히 찾다가 아니라 강한 뜻으로 적극적으로 찾아서 발견했다는 뜻이예요. 강렬하게 찾았다는 뜻이예요.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여기에서 만나서는 단순히 찾다 보니까 강한 뜻으로 적극적으로 찾아서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베니게 행 배를 바울이 너~~~무 적극적으로 찾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650km 이나 되는 먼 항해길이 었기 때문에 큰배, 큰상선이 필애요했습니다. 배가 큰 상선이 필요했어요. 그러면 생각해보았습니다. 선교 보고 하러가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지금 바울이 다른 것도 아니고 선교보고 하러 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1,2,3차 전도여행하고 지금 얼마나 피곤하고 지쳐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이때쯤이면 초월적인 주님이 그 능력으로 짠 하고 번쩍 들어서 바울을 딱 내가 너에게 상을 주련다. 딱 베니게로 옮겨 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주님은 그럴 때 좀 역사하시는 분 아닙니까? 그런데 예루살렘 가는 길이 너무 바쁘지만 이 배의 항로를 찾게 하시고 항로대로 가게 하시고 이제 가서는 또 기다리게 하시고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 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참 중요한 적용점을 생각해보았는데요. 십자가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평범 그 자체예요. 십자가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평범 그자체 예요. 내 생활에서 질서 잘 지키고 생활예배 잘 드리는 것이 제일 어렵고 제일 십자가 예용.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깨달았다고 득도했다고 하고 성자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학생의 때, 며느리의 때, 아내의 때, 남편의 때, 전도인의 때를 잘 살아야 기본기가 능숙해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예뻐하십니다. 하루가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쌓여서 평생을 이렇게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나중에 대통령 하려면 이 모든 법을 어려서부터 잘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라고 하면 누가 지킵니까? 말씀 속에서 큐티를 해서 주님을 만나서 자발적으로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이렇게 큐티를 시키시는 것은 또는 가족이 나누는 것은 너무 중요한 성령의 전송이 되는 비결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후보 부인은 우리들교회 여자목장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후보님 아들은 청년목장으로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진짜 막 해결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완전해서 오라는게 아니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분들도 좋을텐데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말 할때 없어서 어떡하나 진짜 예수가 없으면 모두가 해석이 안되서 안될 것 같애 바울이 평범한 생활 속에 순종을 잘 하니까 하나님이 예. 그제서야. 왜 그런 사람에게 기적을 안 보여주시겠습니까? 무슨 기적인가 하면 바울의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서 미리 베니게를 통하여 해상교통을 발달하게 하신 것입니다. 타고 갈 배가 있는 것입니다. 예. 이게 일반 은총의 기적인것이죠. 저는 이런 것이 예비된 기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우리는 초월적인 기적하고 우리랑 상관이 없어요. 평범히 우리가 따라가야할 이 모범. 성령의 전송을 받을 자격이 되는 것 같아요. 자, 그래서 이제 바울이 평범한 생활속에 순종을 잘하니까 미리 이 베니게를 통하여 해상 교통 발달하게 하시고 정비케 하신 기적이예요. 초월적인 기적은 누구나 따라 할 수가 없어요. 평범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은 목적 앞에다 놓고 배를 찾고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가는 것이 이 땅에서의 성령의 전송을 받을 자격이 되는것 같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더라도 목적이 확실한 사람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기다리는것이지 바울이 없는 세상에서 잘 따라 가는 거예요. 목적이 확실한 사람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 살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큰 믿음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누가가 항로를 자세하게 기록을 했는데 여러분이 자세히 기록해둔 경로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큰 유산이 될 것입니다. 누가 항로를 자세하게 기록했는데 여러분이 자세히 기록해둔 경로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큰 믿음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바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지금 예, 고스와 로도와 바라다의 유명한 의사, 판사, 회장들이 바울 사도를 하나도 못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일단 도착했는데도 아무도 잡지 않았습니다. 1절 2절 읽으면서 2000년 지나고 나서 보니 바울 사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예요? 바울 가족도 다 못알아 봤잖아요. 평생 만나지 못할 사람을 지나쳤는데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이런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 보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하죠. 그러나 예. 정말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예. 가족들도 못 알아봅니다. 그러니까 바울 가족도 그러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천년 동안 안타까워하는 바울의 사랑과 주님의 사랑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고스, 로도, 바다라, 여기에서 작은 섬 큰 섬이 다 있는데 작은섬 큰섬. 예를 들어 작은 자 큰 자에게 지나쳤어요. 또 거절당하고 지나쳤지만 그러나 이 이름이 언급된 것은 바울의 기도 리스트에 올라갔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이천년 동안 이 성경을 읽은 또 복음을 들은 이 지명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 경로를 기록했다고 보여집니다. 그 지명들, 2000년 동안 이 지명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 경로를 기록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에 이것은 이천년 전에 우리 성경을 읽은, 복음을 들은 모두는 이 지명을 위해 기도하라고 경로를 기록했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에 성경을 읽은 사람은 지금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렇죠? 예,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적용해 보면은 제 설교의 제 인생의 기도 리스트에 등장한 모든 분들은 이미 가고 오는 세대에 기도를 받는 리스트에 올라간 분들 이라고 믿습니다. 이미 내 책이 다 언급 되었고, 이것은 영원토록 몇천년동안 갈 것이잖아요. 글로 남기게 됩니다. 40권이 되도록 이미 다 나왔기 때문에 40년 다 넘어갈 것이잖아요. 학교 붙는거하고 문제가 아니야. 이것은 영원토록 기억될 기도 리스트에 올라가는 거예요. 가문의 영광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간증을 읽어줄 때마다 화 좀 내지 마시고 기도리스트에 올라갔구나 하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간증을 주시잖아요. 여기 한번 올라갔을 때마다 놀라운 부흥을 허락해주십니다. 적용질문 드릴게요.
적용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지가 확실합니까?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있습니까?
자, 평범한 삶을 일상을 잘 사는데 무엇인데 어떤 목자님이 영적 일상에 대한 이런 나눔을 하셨어요. 어떻게 잘 사는지 목자님의 나눔을 나눠 드릴게요.
(1)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무릎을 조아리고 이부자리 기도를 합니다. 주로 감사
합니다의 기도를 합니다.
(2) 아침 샤워하면서 새벽 설교를 듣습니다.
(3) 개인 큐티를 합니다. 꼭 목장 식구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4) 극동방송 담임 목사님의 큐티엠 팟케스트 큐티노트를 2번 듣습니다. 한 번만 들으면 놓치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5) 4번까지 모든 항목을 지킨 이후에 다음 일정 (외출, 운동, 전화, TV시청, SNS활동)등을 시작합니다.
(6) 부부목장 단톡방을 통해 어려움에 목장 식구들의 근황을 묻고, 큐티 말씀으로 응대합니다.
(7) 월요일부터 주일예배 설교 말씀을 녹취하고, 부부 목장 준비를 합니다.
(8) 수요일 예배 시간에는 일정을 잡지 않습니다.
(9) 한 주에 1번 이상 목장식구 심방이나 교제를 합니다.
(10) '듣겠습니다. 묻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내 삶을 얘기하겠습니다'를 속으로 3 번 읊조리고 믿는 지체와 믿지 않는 지체들을 만납니다.
(11) 아내에게 오늘 큐티에 대해서 꼭 한 가지씩 묻고 나눕니다.
(12) 목이 굳지 않도록 식사 전에는 반드시 육적으로, 또 영적으로 스트레칭합니다.
예, 이것이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있죠? 목적이 확실한 사람의 성령의 전송이 될 수 있는 비결이었어요. 여러분들도 다 이렇게 사시지죠? 이 분이 여러분들을 대표해서 이렇게 올려 준거죠? 예. 참 너무 훌륭해요 우리들교회 훌륭한 목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분들 우리들교회 목자님들 최고야. 성령의 전송 두번째는
두번째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해야 합니다.(3절)
3절 -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향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참 어려운 것이죠. 여러분 그 옆에 구브로 섬 있었잖아요. 여러분 구브로 기억나시죠? 구브로는요. 바나바의 고향이예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제일 먼저 복음을 전했던 곳인데요. 여기는 아주 그냥 기가막힌 곳이죠. 가슴이 찡한 곳이예요. 그런데 구브로를 바라보고, 바라보고로 여기에 원어 번역된 아나파이노 는 나타나다, 빛으로 가져오다 라는 뜻인데요. 이 주로 뱃사람이 사용하는 표현으로써 그니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마치 없던 것이 타나났다가 있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을 말해요. 이런 모습을 나타내는데요.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마치 기행문을 기록 하는 것처럼 뱃사람의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배 밖으로 섬이 나타나 사라져 가는 것까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바나바 옆에 누가가 계속 열심히 기록 했어요. 자, 이것을 보면서 바나바의 모든 일들이 빛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바나바와의 그 삶이 그 때 비처럼 그때 빛처럼 바나바가 다가왔어요.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어요. 예. 그래서 구브로를 바라보고 왼편에 두고, 여기 너무 가슴이 제가 정말 미어졌어요. 자신을 모두 기피하고 있을 때 살인자라고, 자신을 살인자로 기피하고 있을 때 바나바가 추천해서 안디옥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고 큰 자 사울 이라는 이름이 사울이 작은자 바울 로 변한곳 된 곳이예요. 그리고 선교팀의 팀장이 바나바에서 시작해서 바울로 바뀐곳이 바로 구브로예요. 그리고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다녀와서 마가 때문에 다퉜잖아요. 마가가 1차 선교여행때 중간에 도망갔는데 돌아왔더니 바나바가 그 마가를 2차때도 데려가자고 그러고 바울은 안된다고 해서 다투었습니다. 우리 13장부터 바울의 성령행전이 시작 되잖아요. 2차 선교 여행갈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는데 바울이 한번 도망간 사람은 바나바와 안된다고 다투었어요. 마가를 마가가 1차 선교여행때 중간에 도망갔잖아요. 그래서 돌아갔더니 바나바가 2차때도 데리고 가자고 그러고, 바울은 안된다고 그러고 예, 그때 다퉜어요. 그리고 바나바가 자신의 고향 구브로로 사라져 버렸어요. 바로이 이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적어도 만 하루동안은 꼬박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자기 고향 바나바가 돌아간 곳이 구브로예요. 인생의 종착역에서 그 구브로를 바라보고 하니까 구브로를 왼편을 보고 계속 바라봤을 거예요. 적어도, 적어도 만 하루 동안은 바라봤을거예요. 성경의 한 단어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예요. 만감히 교차하면서요. 정말 빛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잊을 수가 없는 바나바 인거예요. 예수 믿으면서 어떻게 이런 관계가 있을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사도행전은 우리가 믿으면서 사역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총막라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놀라지 말라고, 먼저 바울사도가 겪었던 일이알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 그래서 그 결과적으로 들으면 안되는 거예요. 헤어 졌어야 되는 거예요. 마가라는 조카를 통해서 헤어 졌기 때문에 바울이 이렇게 선교를 잘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바울이 너무나 가슴이 막 미어지고 찢어졌을 것 같은데 그 마음이 체휼이 되는 것 있죠? 사도행전 믿으면서 사역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총 망라 하고 있어요. 무슨일을 당해요. 놀라지 말라. 그래서 먼저 바울사도가 겪었던 일이라고 알려주는 것이죠. 바울 사도가 먼저 다 겪었던 것입니다. 미리 알려 주는 것 같죠? 그렇지만 이 수많은 추억을 가지고 여러분들 일상을 깨뜨리면 안됩니다.
날씨가 쌀쌀 해지니까 이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첫사랑을 찾느라고 배에서 내리면 안돼요. 첫사랑을 잊지 못해 그 첫사랑을 성령께 부탁한다는 나눔도 있더라고요. 예. 하하하 선장님 여기 구브로에서 잠시 내려주시면 안돼요. 바울은 자신이 결박당해 죽을것을 알고 있어요. 그럴수록 우리는 추억을 찾아 해맵니다. 아니되옵니다. 항로를 변경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그렇다고 항로를 변경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구브로를 바라보고 가슴이 미어 지는데 왼편에 놓고 저 이런거 묵상하느라고 혼자서 이렇게 먼산을 처다보면서 구브로를 바라봤던 바울의 그 마음 예. 그러니까 그런게 성경이 어디있어요? 예. 그런데 여러분들이 안깨달아 지는 것은 목장 가서 물어보세요. 저는 그냥 전체적인 줄거리로 할 수 있지만 성경 한절 한절 숨결을 넣어서 생각해서 think를 해보자고 그래서 여러분들 큐티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렇게 한절 한절 하는 것인데 당최 아니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의 바울이 찾아갔다는 내용이 어딨는데 그들이 바울을 못알아 봤다고 그래요? 언제 찾아갔어요?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 숨결이 없는거예요. 구속사로 깨달아 져야 하니까 도덕적으로 또 어떤 문자적으로 설교하는 것을 넘어서 주님이 성경이 활짝 튀어 나와서 주님이 활짝 튀어나와서 나에게 생각을 해보는 거니까 예, 그런데 또 맞잖아요? 제가? 성경에 나오는 단어는 틀린게 하나도 없어요. 여기 예. 구브로를 지금 왼편에 두고 바라보고 한단어가 중요한데 그것을 우리는 쭉 읽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
구브로처럼 항로를 변경할 만큼 특별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장소나 사람이 있나요?
이런거 나눔 잘 못했다가 부부싸움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생각해보라는 것이지
부부 목장에서는 입으로 절대로 나누지 말라고, 그냥 자기 혼자 think해보세요. 다음주에 굉장히 괴롭거든요. 그래서 두로에 도착했습니다. 두로는 우상숭배와 사치와 향락과 부패의 도시입니다.
이 베니게 지역의 대표적 큰 도시가 바로 두로와 시돈인데 우리가 잘 아는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이 바로 이 곳 두로와 시돈의 엡바알의 딸이었습니다. 예부터 바알숭배와 아세라 신앙이 팽배한 곳이었는데 다윗당시에는 이스라엘과 우호관계를 맺어 백향목으로 궁전을 지어주고 성전을 지어준 두로왕 히람, 그래서 도움이 되기도 한 적도 있습니다. 주전 65년에는 두로는 로마에 예속이 되어 자유 무역 도시가 되어 다양한 만남에서 오는 가치관이 혼란ㅇ로 이 지역사람들은 각국의 여러우상을 섬기면서 도덕적 성적으로 아주 타락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닷새동안의 배의 여행이 끝나고 곡물 이니까 짐을 푸는 거예요. 일주일 걸리는 것 같아요. 두로는 두로와 시돈 아시죠? 이세벨이 시돈왕 바알숭배 아세라 신 팽배한 곳이 었던 곳이고, 두로가 워낙에 잘 사니까 평생에 원수가 된 여기 로마시대때도 자유 무역 시대 되어도 계속 잘 사는 거예요. 다양한 만남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세계 각국의 여러우상을 잘 섬기면서 들어와서 너무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아주 타락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문란하고 사치와 향락 부패의 끝판왕이 두로예요. 그러니까 어쨌든 어떻게 이렇게 주전 2500년 정도에 건설된 두로가 계속적으로 부요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취도 없어졌습니다. 부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원수역할을 했죠. 두로에서 짐을 풀려고 했다는 것은 그 배가 650km를 왔으니까 그 곡물을 일단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러니 바울도 거기에서 짐을 풀어야 됩니다. 어떻게 계속 부여 할수 있죠? 그러나 천년이 하루 같은하루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이스라엘 애굽 미약하게 있어요. 두로는 흔적도 없어요. 짐을 내려서 일주일 동안 푸는 거예요. 4절에 ampndash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두로에 배가 짐을 내려야되어서 바울은 이레, 칠일을 머물렀습니다. 밀레도 고스 로도 바다라를 쫙쫙쫙쫙 지나쳤잖아요? 아 그런데 여기서 일주일을 왜 머물고 있죠? 바울이 뭐했냐면 제자들을 찾아 이레를 머물렀대요.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3년동안 피와 땀과 눈물로 삼년 동안이나 피땀과 눈물로 목회했던 에베소에도 시간이 아까워서 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밀레도에서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를 했잖아요. 그러던 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두로에서 일주일이나 머물렀을까요? 물론 지중해를 가로질러 횡단했기 때문에 시간은 많이 절약되었습니다. 일주일을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전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두로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습니다. 두로에서 배타고 떠난 7절의 돌레마이는 율로로 40km가 채 안되는 까닭에 꼭 그 배가 출항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육로로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까운 시간에 7일을 머물렀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이예용. 이것은 Think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냥 복 받는다 이런 것만 좋아하지 말고요.
그런데 이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았다고 그랬는데 이것은 능동태 분사로 적극적으로 찾아냈습니다. 이것은 찾고, 찾고 또 찾을 때까지 찾았다는 것입니다. 7이 완전수잖아요. 두로의 짐을 내려야 해서 7일 완전수죠?
목자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을 때 쓰인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러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래서 앞뒤 성경을 많이 알고 있으면 굉장히 깨달음이 풍성하고 적용이 풍성해집니다.
사도행전 11장 19절 자 그럼 청년들에게 물어볼게요. 이 공동체는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보면
아마도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바울이 앞장서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잖아요. 그때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렀다고 했으니까 그 박해를 피해서 이방땅 베니게에 두로까지 온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또 think를 해봐야 합니다.
이 두로의 대한 인식이 바울의 박해를 피해서 이방땅 두로땅으로 피난갔어. 그러면 그들은 바울에 대한 인식이 좋겠어요? 안좋겠어요? 당연히 나쁘지. 생각을 해봐. 생각을. 시간이 지나도 나쁜 기억은 오래가요. 예루살렘에서 가까워요. 그러면 또 think를 해봐야 합니다. 바울의 잔멸, 환란을 피해 흩어진 사람들이 바울에 대한 인식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두로의 공동체가 바울에 대한 인식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박해를 피해서 갔다고 그랬잖아요. 당연히 나쁘죠. 많은 세월이 지나도 그들의 부모가 바울에게 다 잔멸을 당했으면 그 나쁜 기억은 오래가잖아요. 더구나 여기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 때문에 급히 피할 때니까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로는 바울이 그래도 여기가 너무 자기가 잘못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희망을 거는 것은 그전에 마가복음 7장의 스로보니게 여인의 귀신들이 어린 딸에게 귀신을 나가게 하신 곳, 개들도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야기 아시죠? 하던 그 여인의 딸에게 귀신이 나갔으니 그것을 보고 사도행전 15장 1차 선교여행이 지나고 안디옥에서 할례문제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바나바와 보냈을 때 예루살렘 가는 길에 이 두로 등에 들러 믿음을 격려한 적이 있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그때 베니게에 두로등에 들려서 그 사람들을 잠깐 만나봤어요. 여기가 문제 많고 음란한 곳이지만 바울은 이 두로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십년만에 또 찾아 나섰습니다. 두로에 공을 들리고 힜습니다. 10년 만에 두로의 제자들을 또 찾고 있어요. 왜 두로에 공을 들이고 있을까요? 지금 바울은 너무 중요한 일정으로 예루살렘에 선교보고를 하러 가는 길이지만 예루살렘 가까운 두로에 자기를 알고 자기를 알고 자기를 잔멸했던 사람들이 자녀들이 많이 있을 확률이 높죠. 많이 있죠. 그러니까 왜 고스 로도 바다라는 지나쳤을까요 거기는 예루살렘에서 650km나 떨어진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의 스데반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니 거기는 모두 지나쳤습니다. 그런ㄷ 예루살렘행이 가장 중요한 행선지인데 거기 가까운 두로에 딱 진입한 것입니다. 왜 제자들을 찾았을까요?: 이 주님의 제자들을 찾고, 찾고 또 찾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찾고 찾아서 가해자로써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자 했을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예루살렘에 들어갈수가 없다.
사고 정도가 아니고 내가 살인자라고 내가 주님을 몰라서 그랬다고, 내가 율법에 열심이었지만 주님을 몰라서 내가 당신의 아버지 엄마를 죽인 살인자라고, 그런데 주님이 나에게 빛으로 찾아오셨다고 복음간증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두로에 가서 율법에 열심으로 살인을 했다. 여러분들을 다 죽인 장본인이다. 나를 용서하라고 자신에게 주님이 찾아오신 복음 간증을 했을 거예요.
1,2,3차를 다 지났으니까 바울은 너무 성령이 충만하고 너무 진심으로 사과를 하니 여기 4절 후반절에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합니다.
이제 나는 변하여 새사람 되었다고 율법이 복음이 되었다고, 4절 후반부에 보면 이레를 머물더니 성령의 감동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라. 두로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되었어요. 우리가 간증하는 것은 사람한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한테 하는거예요. 그래서 찾고 또 찾아 다니며 회개를 안하고 나는 복음 위해 죽기로 했다면서 바울은 자기 생명을 내놓고 가기 때문에 체면 없어요. 성령의 전송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큰 일을 앞두고 두로와의 큰 표징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원어는 권유 정도 아니고, 미완료로 줄기차게 명령햇따고 해요. 성령의 감동을 성령의 지시라고 햇어요. 지시를 명령을 한것이예요. 성령의 감동이 결국 사랑의 언어 아니예요? 바울 선생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환난 결박 기다리고 있다는 눈물의 고백을 전햇는데 두로 사람들이 화해를 했는데 네 잘가세요 그러겠어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게 정상 아니예요? 두로의 제자들은 할일을 했는데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22절에 바울이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이러한 바울의 결정을 성령의 명령에 대한 거역으로 하면 안되요. 직접적인 성령의 권면 아니라 성령의 감동된 두로 공동체들의 제자들의 권면 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으로 비롯된 이 사랑의 권면을 사랑의 뜻과 이제 분별을 했어요. 성령의 뜻을 통해서 오늘 제목이 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했다고 했잖아요?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
구브로처럼 항로를 변경할 만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나 사람이 있나요?
나는 주 안에서 피해자 입니까? 가해자 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반대를 분별합니까? 엎어집니까?
세번째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5절)
5절 ampndash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두로의 제자들의 사랑을 분별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해자로써 회개했는데 그들이 가지 말라고 강력하게 명령하는데 나는 떠나겠다고 그러면 너 잘못했다는거야 뭐야? 왜 내 말 안들어? 이럴 수 있잖아요. 그러니 너무 힘들었을 것이고 여러 날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루가 여삼추인데 여러날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이 너무 어려워서 21장에서 이 여러날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이때 제자들은 다 말렸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분량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공동체에 속한 처자와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함께 나와 바울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참된 용서와 회개가 이러우진 현장입니다. 두로의 모든 공동체 식구들이 성문밖까지 따라나섰는데 거기는 완전히 도시의 외곽 모래사장을 가리켰는데 도심에서 굉장히 꽤 먼거리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나와서 바울을 전송했는데 여기 지금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다음 세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나왔다는 표현이 처음 나오는데 바울과 두로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니 다음 세대의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예배가 회복되지 않는 것은 부모에게 아직 회복되지 않은 미움과 상처와 증오가 있고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는 육신의 정욕, 자랑, 이런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날마다 부모가 세상을 좋아하고 날마다 싸우면서 미워하는데 아이들이 공부를 아무리 잘한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냥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너무 좋아하면서 너는 예수 믿어라 이게 되겠습니까? 바울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잘못입니다. 자기 죄가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 언제부터 핵가족시대가 된지 꽤 되어 요즘은 상처가 주제입니다. 집집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되니 나이가 오십이 되어 넘어가는데도 엄마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자녀들이 다 필요없어, 나는 부모에게 못 받은 사랑 내 자녀 내 가족만 챙긴다고 하지만 이것은 똑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입니다. 자녀에 대한 예배회복과 최고의 양육은 누구에게나 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원수를 갚겠다. 자녀의 예배회복을 위해 미움과 증오를 멈추어보면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회복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하고 좋은 학교를 가도 요즘 보면 알잖아요. 다들 좋은 학교 나온 분들이 다 이러잖아요. 6절 ampndash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작별인사는 밀레도에서의 작별인사와 여기 두로의 작별은 단어가 다릅니다. 밀레도의 작별은 오랜 동역자로서의 결속감을 가진 자들의 사랑의 작별이고 두로의 작별은 일주일간 이루어진 작별이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다정하고 친근한 사이에서 행하는 가벼운 작별, 원어는 이렇게 기가 막힙니다. 일주일 동안에는 아무래도 작별이 좀 가볍겠지요. 그러나 그만큼 친근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븡로 돌아가면서 적용들을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엄마, 아들, 딸들이 적용을 했을 것입니다. 집으로는 우리들교회 표어잖아요. 성경에는 자꾸 우리들교회를 띄워주시는 언어들이 나오네요. 그래서 가정 지키는 사역 같습니다. 두로는 문란한 지역이기 때문에 가정 지키는 사역이 최고입니다. 그러면서 각자 내 생명이 너무 귀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 바울 사도를 보니 우리도 생명을 내놓고 무엇을 해야 되겠다, 서로서로 회개하며 감동의 나눔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감동의 작별을 했습니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헤어질 때 인상이 정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프로 죄인인 인생이 첫인상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헤어질 때 반응은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보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더 생각해보았습니다. 배에 오른 우리는 사도바울과 누가 일행입니다. 그런데 두로의 제자들은 정말 고통스럽게 작별하면서 눈물을 흘리더니 각자 집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적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두로에서도 배 타고 떠나는 제자 한 사람쯤 나오면 좋았을텐데요. 두로에서는 바울이 제자를 부르지도 않았고 그 중에 제자를 자원함도 없었습니다. 두로 출신 제자는 기억나는 사람이 없네요. 두로는 여기까지인 것이 있나봅니다. 근본이 너무 부자이고, 유리성에서 화려하게 찬란하고 음란하게 살아서 그럴까요?그래서 여기에서 6절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언제나 선교를 하든 전도를 하든 눈물을 흘리며 화해를 했지만 배에 오르는 우리가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가정을 지켜야 하지만 배에 오르는 그 우리 소수이지만 그 우리도 있어야 합니다. 드디어 두로에서 잔치에서 작벽하는 성령의 전송이 된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
여러분은 시작만 잘합니까,마무리를 잘합니까?
보내고 떠남이 주안에서 성령의 전송이 됩니까? 슬픔입니까, 기쁨입니까?
이제 목장이 바뀌면서 보내고 떠남이 성령의 전송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한테는 다 하나님이 그때에 맞는 이런 보내고 떠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그 목자님의 간증을 좀 읽었는데 이분은 보내고 떠남, 총각박사가 되어서 한번 이혼한 와이프와 살다가 또 이혼하고 또 재혼하고 그러다가 또 이혼하려고 합쳤다는 그래서 보내고 떠나고가 결국은 성령의 전송이 되어서 온가족이 다시 한곳으로 모이게 되었다는 나눔입니다. 저는 낮은 자존감, 자기연민, 우울증, 무력증으로 간신히 하루를 살아내던 아내를 무시하고 회피하다 이혼으로 온 가족을 흩어지게 했습니다. 이혼 후에 예수님을 영접한 아내는 말씀과 목장의 권면에 따라 우리가족의 재결합을 적용했습니다. 저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이기고 이기는 욕망의 전투를 치우어갔는데 딸의 전학과 가출, 아드릐 왕따와 ADHD도 아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회피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우리 가정은 다 떠날뻘 했고 아내의 믿음과 기도, 아들을 양육해주시는 공동체가 없었다면 그리고 가출한 딸을 일단 외할머니집에라도 보내라는 낮목장의 권면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 떠났을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서도 아내와 유일한 소통의 통로가 되고 어디에서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없던 우리 가정사를 나누고 위로받는 목장, 일주일 중 유일하게 밝은 표정이 되어 교회에 가는 아들의 모습, 좋은 싫든 아내를 따라 교회를 가는 딸의 모습, 그러니까 아미 베이비 아워 베이비가 있는 이집입니다. 그런데 턱히 변화된 아내의 생기 넘치는 모습과 가족을 섬기는 태도에 결국 저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난과 죄와 회개를 약재료로 나누고 상처와 수치로 얼룩진 저의 삶을 담대히 드러내어 위로받고 위로해주는 공동체에 영원히 꽉 묶여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매주 목장에서 저의 수치스러운 저의 행동과 생각을 서슴지않고 매주 한가지 이상 나누겠습니다. 이집도 자녀들이 공로자가 되어 이렇게 목자가 되시고 정말 아내는 계탔습니다. 정말 기다리니까 이렇게 다 되었네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전송은 목적지가 확실해야 잘 떠나고 보냅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가해자, 피해자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하는데 우리는 내가 이렇게 화해할 때 우리의 다음 세대 자녀가 구원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실 때 빨리 순종하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찬양합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피 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려하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주가 크신은예 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 많은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함께 가시네
주의 인도 하심 따라 주의 인도 하심 따라 어디 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인생의 목적지를 확실히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하는 것은 너무 어렵지만 그래도 오늘 우리는 분별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해자, 피해자가 화해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편한 사람이 되어야 우리 자녀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처자가 나와서 거렇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두로에서 이런 기적이 지금 일어났습니다. 시작뿐 아니라 마무리도 잘 해달라고 특별히 끝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보내고 떠남이 슬픔도 기쁨도 아닌 성령의 전송이 되게 해달라고 우리나라의 위정자가 한 사람이 잘 세워져야 정말 우리나라의 차별금지법과 태아생명보호법이 제대로 재정될 터인테 그 일을 위해 우리가 다 오고가는 세대 속에서 성령의 전송이 되게 해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노령의 바울사도의 행로를 보면서 참 맘음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밀레도에서 작별을 하고 고스와 로로와 바다라를 지나며 구브로를 바라보고 왼편에 있는 구브로를 바라보고 바나바와의 사랑하는 바나바와의 분별을 위해서 헤어졌던 바울 에베소 장로들의 그 사랑하는 예루살렘 행을 거절하고 떠난 바울 오늘 두로와 기가 막힌 화해를 하고도 그들의 말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주님 참으로 바울의 마음이 찢어지고 바울은 주님께서 그렇게 위로를 해주셨을까요 인간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분별하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목적이 확실하니까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오늘 집사님 간증처럼 그렇게 아침마다 말씀보고 듣겠습니다 묻겠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하겠습니다. 세번 읊조리는 모든 것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반대를 분별해내고 우리는 시작만 좋지 우리의 욕심 때문에 끝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지만 복음 때문에 이렇게 끝이 좋을 수밖에 없는 그것 때문에 두로와 화해하는 기가 막힌 목적 때문에 두로에서 그렇게 여러날을 머물러서 화해를 얻어냈더니 두로의 다음 세대의 가정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자녀들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 우리가 자녀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해주시옵소서. 구원을 위한다고 날마다 입으로는 외치고 아무것도 안되는 것을 주께서 아시는데 주여 보내고 떠나고 하는 이 모든 일들 가운데 성령의 전송이 될 수 있도록 이제 대선이 앞에 있고 성령의 전송으로 떠나고 남게 되는 지도자들이 있을 터인데 참으로 해석이 돼서 해결이 잘 되는 대선이 되며 그런 한 사람의 위정자가 이런 차별금지법과 생명보호법이 제정될수 있도록 그런 한 사람의 지도자를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성령의 전송이 될 수 있는 21년도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 기도제목
❤️이은실
- 수요일 볼 면접 통번역 테스트가 있는데 잘 준비할수 있도록
- 신결혼을 위해서 배우자 기도중인데 믿음과 성품 그리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신분을 위해서 기도 부탁
- 지속적인 큐티
❤️김자영
- 집 가까운 곳에 발령 나기를
- 불안함이 사라지기를
❤️김성은
- 이번주 잘자고, 잘먹고, 약잘먹고, 잘 일어나며 평범한 삶이 비범한 삶이라고 하셨는데 평범한 일상을 생활예배를 드리면서 잘 살아내기를
- 목적지를 향해 구원을 향해 가족의 구원을 향해 성령의 전송이 되기를
- 영적, 육적 정신적 치료 꾸준히 잘 받고 건강 되찾을 수 있도록
-12월 31일 서울에서 종합 검사 받습니다. 결과 주님 가장 선하실 길로 인도하소서
❤️윤지혜
- 무릎기도로 하루 시작하고 마무리 할 수 있기를
- 질서 잘 지키고 생활 잘 하는 평범한 생활에의 순종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내도록
- 구원을 위해 편한 사람이 되어지기를
- 회개와 참된 용서가 이루어지는 가정되어 가정 예배가 회복되어지기를
-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사랑의 권면을 분별하도록
- 사명주시고 감당케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구합니다
- 목장 개편이 우리 모두에게 주님 만나는 성령의 전송이 되어지기를
**목장공통 기도제목**
모두의 진로와 신교제 신결혼 소망주시고 준비시켜주시도 인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