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9
사도행전 21:1-6 성령의 전송
우리말로 전송하다는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은 잔치를 베풀어 2021년을 잘 보낼 수 있으시겠어요? 성령의 작정을 하고 성령의 감독자들에게 성령의 부탁을 하며 전송을 하면 잘 떠나고 잘 보내는 성령의 전송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성령의 전송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목적지가 확실할 때입니다. 1-2
1, 고스-로도-바다라-구브로 옆에다 두고 베니게-두로가 오늘 설교의 여정입니다. 그동안 바울은 1,2,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물불을 안 가리고 전도하고 개척을 했어요. 그런데 21:16부터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펼쳐집니다. 이제는 전도 못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완전히 새로운 십자가의 사명이 시작되는데요 그러하기에 성령의 전송을 받고 떠나야 합니다. 작별이라는 단어는 딱 붙어있는 둘을 고통스럽게 떼어내는 이별을 뜻해요. 어느 때보다 함께하는 우리가 필요한 상황인데 홀로 그 짐을 지셔야 하기에 그들을 떠나시는 주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맡기신 사명의 길을 완주하겠다는 목적이 있기에 어려운 작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성도들과 사랑하지만 지금 떠나는 작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항로를 따라서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지났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바울이 가는데, 고스(히포크라테스의 도시로 유명한 의사)에서도 로도(수사와 웅변의 큰 대학이 있는 유명한 판검사)에서도 바다라(수백 척의 선박이 머무르는 유명한 해운회사 회장)에서도 베니게에서도 다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금그릇이라서 예수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들만 필요 없는 것이 아니고 바울 쪽에서도 보면, 아름다운 경치와 와인으로 유명하고 기후도 좋고 온천까지 있는 로마 귀족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 고스와 해상교통의 요지로 부자도시인 예술과 교육이 발달한 유명한 섬 로도를 바로 갔다고 했어요.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면 여기저기 기웃거리겠지만 바울은 목숨 걸고 직행했다는 뜻이에요. 성령의 직행 기억나시죠? 가장 아끼는 제자들과 헤어지는 어려운 작별까지 했는데 이런 유명한 곳에 머물러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는것이죠. 그래서 바다라까지 직행했습니다. 바다라는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곡물을 운반하는 중간 기착점으로 삼던 주요 항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려고 지중해 횡단을 해서 베니게로 건너가려고 합니다. 그 당시 배 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도 바울 노인네가 쉬지 않고 배를 타는 거에요.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강행군을 하겠습니까?
2, 만나서는 단순히 찾다 보다는 강한 뜻으로 적극적으로 찾아서 발견했다는 뜻이에요. 베니게행 배를 바울이 너무 적극적으로 찾았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650km 이상 되는 엄청나게 먼 항해길 이었기 때문에 큰 상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Think 해봤어요!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선교 보고하러 가는데 초월적인 주님의 그 능력으로 짠하고 반짝 들어서 바울을 베니게로 옮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루살렘 가는 길이 너무 바쁘겠지만, 배의 항로를 찾게 하시고 항로대로 가게 하시고 가서는 또 기다리게 하시고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걸어가게 하세요. 여기서 우리가 참 중요한 적용점을 Think 해봤는데요! 십자가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평범 그 자체인 것이에요. 내 생활에서 질서 잘 지키고 생활 잘하는 것이 십자가에요. 학생의 때 며느리 때 아내의 때 남편의 때 전도인의 때를 잘 살아야 기본기가 능숙해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예뻐하십니다. 하루가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쌓여서 평생을 살게 하시는 거에요. 바울이 평범한 생활 속에 순종을 잘하는데 하나님이 그런 사람한테 기적을 안 보여주시겠어요? 무슨 기적인가 하면 바울의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서 미리 베니게를 통하여 해상교통을 발달하게 하신거에요. 타고 갈 배가 있는거에요. 이것이 일반은총의 기적인거죠. 저는 이런 것이 예비 된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은 이것을 보여주고 가는 것이 이 땅에서 성령의 전송을 받을 자격이 되는 것 같아요. 평범한 일상을 살더라도 목적이 확실한 사람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누가가 항로를 자세하게 기록을 했는데 여러분이 자세히 기록해둔 경로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큰 믿음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바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에서 하나도 못 알아봤어요. 평생 만나지 못한 사람을 지나쳤는데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사람 보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하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가족들도 못 알아보지요. 2천년 동안 안타까워하는 바울의 사랑과 주님의 사랑을 생각해봤어요.로도, 고스, 바다라, 작은 자, 큰 자 모두 거절당하고 지나쳤지만 바울의 기도리스트에 올라갔다는 것은 분명해요. 왜냐하면 2천년 동안 이 성경을 읽고 복음을 들은 모두가 이 지명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 경로를 기록했다고 보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에 이것은 2천년 전의 우리 성경을 읽은 사람은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생각한 것은 제 설교에 등장한 모든 분들은 이미 가고 오는 세대의 기도를 받는 리스트에 올라간 분들인 줄 믿습니다.
Q.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지가 확실합니까?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잘살고 있습니까?
2.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3-4
3, 구브로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제일 먼저 복음을 전했던 곳인데요. 바나바의 고향이에요. 구브로를 바라보고 여기에 원어 아나파이노는 나타나다 빛으로 가져오다라는 뜻인데요. 주로 뱃사람이 사용하는 표현이에요.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마치 없던 것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바나바와의 모든일들이 빛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다가왔어요. 자신을 모두 살인자라고 기피하고 있을 때 바나바가 추천해서 안디옥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큰 자 사울이라는 이름이 작은 자 바울이 된 곳이에요. 선교팀의 팀장이 바나바에서 바울로 바뀌는 곳이 바로 구브로에요. 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가 도망간 마가를 다시 데려가자고 하고 바울은 안 된다고 하며 다투었을 때 바나바가 고향 구브로로 사라져버렸어요. 만감이 교차하는 빛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구브로를 왼편에 두고 바라보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러분 수많은 추억을 가지고 일상을 깨트리면 안 됩니다. 배에서 내리면 안되요. 잠시 내려주세요 하면 안되요. 추억을 찾아 항로를 변경해서는 안 됩니다.
Q. 구브로처럼 항로를 변경할 만큼 특별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나 사람이 있나요?
두로에 도착을 했어요. 두로는 우상숭배와 사치와 향락과 부패의 도시에요. 베니게 지역의 대표적인 큰 도시가 바로 두로와 시돈인데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이 바로 이곳 두로와 시돈 시돈왕의 엣바알의 딸이었죠. 예부터 바알숭배와 아세라신앙이 팽배한 곳으로 다윗 당시에는 이스라엘과 우호정책으로 백향목으로 궁전을 지어주고 성전을 지어준 도움이 되기도 한 적도 있어요. 주전65년에는 로마에 예속되어서 자유무역도시가 되어 각국의 여러 우상을 섬기면서 도덕적 성적으로 타락의 온상으로 부요했지만 지금은 자취도 없어졌어요.
4, 배가 짐을 내려야 해서 바울은 7일을 두로에 머물렀습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3년 동안이나 피땀눈물로 목회했던 에베소에도 시간이 아까워 들리지 못해 밀레도에서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했잖아요. 그러던 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두로에서 7일이나 머물렀을까요?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Think 해보세요! 제자들을 찾아 이것은 적극적으로 수색하여 찾아내었다 찾고 또 찾을 때까지 찾았다는 거에요. 목자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을 때 쓰인 단어와 동일해요. 왜 그랬을까요? 사도행전 11:19 보면 아마도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으로 바울이 앞장서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잖아요. 그때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렀다고 했으니까 그 박해를 피해서 이방 땅 베니게에서 두로까지 온 사람들이었을거에요. 거기서 교회공동체가 세워진거죠. 그러면 바울에 대한 인식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두로의 공동체가 바울에 대한 인식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많은 세월이 지나도 그들의 부모가 바울에게 잔멸 당했으면 나쁜 기억은 오래가잖아요. 자기가 너무도 잘못한 곳이지만 마가복음 7장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들린 어린 딸의 귀신을 나가게 한곳으로 그것을 보고 주님을 영접한 제자들이 있을거라고 희망을 가졌어요. 사도행전 15장 안디옥에서 할례 문제로 예루살렘 가는 길에 베니게의 두로 등에 들러 믿음을 격려한 적도 있었어요. 음란한 지역이지만 바울은 두로의 예수님 제자들을 10년 만에 또 찾아 나섰어요. 왜 두로에 공을 들일까요? 왜 제자들을 찾았을까요? 바울은 너무도 중요한 일정으로 예루살렘에 선교보고를 하러 가는 길이지만 가해자로서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자 했을거에요. 사과 정도가 아니고 내가 살인자라고 내가 주님을 몰라서 그랬다고 율법에 열심이었지만 주님을 몰라서 내가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라고 그런데 주님이 나에게 빛으로 찾아오셨다고 복음간증을 했을거에요.
성령 충만한 바울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니까 4절 후반절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성령의 감동이 임했어요.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복음 안에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게 되니 제자들의 중심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가 회개를 하고 간다면 아무리 오래 지났다고 해도 넘어가서는 안 되는 관계가 있다면 눈물로 회개를 해야되는거에요. 내가 가해자임을 끝없이 인정하고 찾고 또 찾아 용서를 구할 때 성령의 감동으로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갈 때 성령의 전송이 이루어져서 보냄이 일어지는거죠. 보내고 떠나는 것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바울은 내 체면과 자존심이 없어요. 오직 복음을 위해 찾고 또 찾아 용서를 구하는 거죠. 그때에 주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어그러진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며 피해자의 축복과 눈물까지도 허락하시며 성령의 전송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큰일을 앞두고 두로의 화해가 큰 표징으로 여겨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용서가 안 되는 일이 뭐가 있으십니까? 두로에서 피해자였던 그들이 바울을 더 걱정합니다.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바울에게 진정으로 얘기합니다. 여기서 성령의 감동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원어는 권유하는 정도가 아니에요. 줄기차게 명령했다고 해요. 우리가 지난번에 보던 개역한글 성경에는 성령의 감동을 성령의 지시라고 번역했어요. 바울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심정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바울을 권면했던 것이에요. 성령의 감동이 뭡니까? 사랑의 언어죠. 아기는 아기 수준에서 사랑을 하는 거잖아요. 사도행전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_내 생명을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바울의 결정을 성령의 명령에 대한 거역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직접적인 성령의 권면이 아니라 성령에 감동된 두로공동체의 권면이었기 때문이에요!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이들의 사랑의 권면을 바울은 성령의 뜻과 분별을 한 것이에요! 결국 구속사로 분별을 해야지 잘 떠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떠났기에 영원토록 성령의 전송이 되는 것이에요. 자신에게 사명을 주시고 감당케 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이었던 것입니다.
Q. 나는 주 안에서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반대를 분별합니까? 엎어집니까?
3.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5-6
5, 두로의 제자들의 사랑을 분별하는것은 정말 어렵죠. 너무 힘들었을 거에요. 그래서 여러 날이 필요했어요. 그러나 이때 제자들이 말렸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분량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 처자가 나옵니다. 공동체에 속한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함께 나와 바울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처자와 함께 그래서 참된 용서와 회개와 이루어진 현장이에요. 모두가 나와서 바울을 전송했는데 사도행전에서 다음 세대 이야기가 처음 나오는거에요. 아내와 아이들까지 나왔다는 표현이 처음 나오는데 바울과 두로의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니까 다음 세대 예배가 회복되는거에요. 자녀들의 예배가 회복되지 않는 것은 부모에게 회복되지 않는 미움과 상처와 증오가 있고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는 육신의 정욕과 자랑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럴수가 있는거에요. 날마다 부모가 세상을 좋아하는데 날마다 싸우면서 미워하는데 아이들이 공부를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 믿어라 되겠습니까? 바울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잘못이에요. 자기 죄가 보여요. 자녀에 대한 예배 회복과 최고의 양육은 누구에게나 편한 사람이 되는거에요. 자녀예배 회복을 위해서 미움과 증오를 멈춰보면 어떨까요.
6, 밀레도에서의 작별은 오랜 동역자로서의 결속감을 가진 자들의 사랑의 작별이고 두로의 작별은 일주일간 이루어진 작별로 굉장히 다정하고 친근한 가벼운 작별이에요. 그러나 그만큼 친근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헤어질 때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0% 죄인인 인생이 첫인상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헤어질 때 반응은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보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더 Think 해보았어요. 배에 오른 우리는 사도바울과 누가일행이에요. 그런데 두로의 제자들은 고통스럽게 작별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더니 각자 집으로 갔어요.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어요. 집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적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두로에서도 배 타고 떠나는 제자 한사람쯤 나오면 좋았을텐데요. 선교를 하든 전도를 하든 눈물을 흘리며 화해했지만 배에 오르는 우리가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가정을 지켜야 하지만 배에 오르는 우리도 있어야 합니다. 드디어 두로에서 잔치해서 작별하는 성령의 전송이 된 줄 믿습니다.
Q. 여러분은 시작만 잘합니까? 마무리를 잘합니까? 보내고 떠남이 주 안에서 성령의 전송이 됩니까? 그냥 슬픔입니까? 기쁨입니까?
[기도제목]
은우
1. 옛 하늘 옛 땅 성령의 전송을 잘하고 새 하늘 새 땅 잘 받도록
2. 두번째 보고서 자료 말씀 앞에서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3. 아름다운 2021년이였다!! 하며 21년을 성령의 전송하도록
크리스틴
1. 큐티와 말씀에 나를 가져다 놓을 수 있도록. 말씀이 내 안에 잘 심겨질 수 있도록
2. 양육숙제와 리포트 끝낼 수 있도록
3. 포기하거나 자신에 대해서 negative feedback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인
1.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2. 양교 밀린 숙제 한 줄이라도 써볼 수 있도록
3. 아무리 힘들어도 큐티로 하루 시작하기
보련
1. 양교숙제 마무리 잘하길
2. 나를 생각해주고 기도해주는 목장 위해서 기도
3.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있으라는 말씀처럼 말씀과 예배 앞에 살아있기
4. 직장 말씀으로 인도함 받고 잘 인내하기
예선
1. 직장 가운데 탓하지 말고 허락하신 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보내고 올 수 있도록
2. 병원 방문 전 처방전 관련 부분 다시 잘 물어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도록
3. 동생 마음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교회 목장에서 위로와 사랑 많이 받을 수 있게 동생 구원 위해 계속 기도하도록
지향
1.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슬퍼하지 말고, 매일 말씀 보면서 잘 분별하고 마음 잘 지킬 수 있도록
2. 성령의 전송도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갈 수 있도록
3. 방역지침이 격상되면서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운데 양육 온라인으로 잘 할 수 있도록
은진
1. 매일 말씀 묵상하며 중간으로 잘 돌아올 수 있도록
2. 충동이 올라올 때 그것들의 원인을 잘 인지하고 병원 방문해서 잘 치료 받고 회복 될 수 있도록
3. 가족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
4. 아픈이모를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현경
1. 예배의 자리, 목장의 자리, 큐티의 자리에 잘 붙잡혀 마무리할 수 있도록
2. 붙여주신 목장 식구들 영육을 위해 기도하기
3. 가족 구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성품이 아닌 주 안에서 성령의 전송을 할 수 있도록 중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