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년 12월 12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20장 32절~38절
제목 : 성령의 부탁
설교 : 김양재 목사님
32절 ampndash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절 ampndash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절 ampndash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절 ampndash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절 ampndash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절 ampndash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절 ampndash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김양재 목사님 말씀
오래 다니신 분의 간증인 것 같아요. 세례간증은 신앙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1,2,3부때에 세례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세례 신청을 다 해주셔서 세례를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네, 오늘 김집사님 간증 은혜 받으셨죠? 그런데 왜 대답 안해요.
오늘 특별히 드라마틱한 간증이 없어서 은혜 받았어요. 평범한 여러분들도 평범한 간증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고,
최후 진술서도 큐티해서 잘 써주셨을 것 같고 인간이 얼마나 안변하는가를 보여주셔서 생수 한병 두부 한모를 마트에서 훔쳐서
그 자리에서 선고가 났는데 다시 또 구속이 되었다고 그렇게 국산 변호인이 변호해 주었는데 몸에 익는게 어렸을때부터 중요한 것 같고,
우리가 큐티인이 모든 교도소에 좀 들어갈 수 있도록 김집사님? 교도소에 구치소나 큐티인이 좀 들어갈수 있을가요?
예? 잘 몰라?글쎄 나도 갔더니 반입이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생명의 삶은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시고 아는분한테는 전도가 아니라 심심할 때 읽어보라고 툭 던져 주는거라고,
회사에서 여러분도 툭 던져주세요. 만약 힘들다 그러면 심심할 때 한번 읽어보세요.
결혼을 지켜야 하는 11가지 이유 심심할 때 읽어 보라고,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전도하면 좋고 평범한 중에 간증하는 것 너무 좋고,
은혜 받았고요. 이제 그 주일학교 교사로 많이 지원해 주시기 바라는데 많이 교사가 부족해요.
내년에는 모두가 성령의 감독자가 되셔서 일인 일사역 모집 꼭 해봐요.
큐티인 12월달 4종 세트 나왔는데 시편 창세기 마가복음 담았어요. 10주년 되었는데 큐티인 말씀으로
그동안 살아주셔서 감사하고 미국에 베델교회가 미국의 가장 핫한 교회, 세계로 교쇠 고신측 교회에요.
여자 목사는 설교도 못하게 하는데 이걸 쓰기로 하셔서 이것은 성령이 밀ㅇ어 주시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 안올라왔던 큐티인 어린이서부터 12월호부터 1000원씩 가격을 올린다는 것을 알았음 좋겠꼬
전도용으로 많이 구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찬양할게요.
찬양합니다
왕 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부탁하고 싶은 사람이 부모님, 형제, 자매 이기도 한데 오늘 바울은 성령께 부탁을 합니다.
주님 오늘 성령의 부탁이 무엇인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성령의 감독자 말씀을 바로 전한 그 주간에 우리 교회도 공동의회에서 평원지기와 장로를 초원지기를 장로와 권사로 세우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 동안 교회를 위해 수고해 주신 평 초원지기들을 명실상부한 성령의 감독자로 세워 교회를 보살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마다 늘 이렇게 말씀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인도해 주시니 정말 놀랍고 감사할 뿐 입니다.
정말 우리들교회를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해요. 주님이시기도 해요.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감독으로 이 교회가 세워 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린양이신 감독이 우리 주님께서 또 성령께서 우리의 감독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감독이 되면 오늘을 마지막 처럼 살고 늘 상고하고, 경계하고, 기억하고,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이 교회를 성령께 부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부탁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령의 부탁은 첫째로
첫번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해야 합니다.(32절)
32절 ampndash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우리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어디에 누구에게 부탁을 하나요? 유명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 믿을만한 사람, 그리고 또 후임자에게 이런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를 주와 및 그 은혜에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계속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 앞에서 하는 마지막 설교, 그 고별설교를 묵상하고 있어요.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3년 동안 수많은 생명의 위협에도 가르치고 전파하여 세워진 생명보다 소중한 이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아주 그냥 노심초사 걱정을 이렇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잡히는 그 밤에도 베드로가 예, 그냥 그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잖아요.
그 귀까지 붙여주시면서 제자들의 실수를 뒷수습을 하시면서 또 십자가를 향해 가느라고 얼마나 바쁘시겠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실수까지 뒷수습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것과 마찬가지 같아요. 바울도 계속 그렇게 이 복음이 끝까지 전파되어야 될 터인데 여기서 부탁한다는 말의 의미는 파라티테미이예요. 티데미 티데미 하지만 원어는 티테미 인데 성령의 안아주심 설교에서 파라칼레오 기억하나요? 파라는 옆에, 칼레오는 소리치다 옆에서 함께 소리치고 울어주심이 안아주심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파라티테미라는 단어도 파라는 옆에 라는 뜻이고, 이 티테미는 놓아두다 라는 뜻이예요. 즉 부탁한다 파라티테미는 옆에 놓아두다 의 의미인데요. 또 이 구절처럼 이렇게 중간태로 쓰일 때에는 넘기다 위임하다 추천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작가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 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에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해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그러니까 치매걸린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이 뭔가 많이 가지고 역에 도착을 하였는데 길을 잘 아는 서울을 잘 아는 자녀 한 명이라도 역에 나왔다면 그 옆에 있었다면 그리고 항상 몇 발짝시 앞서 걷던 늙은 그 아빠가 엄마 옆에 손만 붙잡아주었어도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다 이런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부탁한다는 것은 옆에 둔다는 것입니다. 옆에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탁하는 대상입니다. 이 교회를 감독자들에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한사람의 리더에게 부탁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오늘 무엇에 부탁하고 있나요?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아주 이렇게 친근하게 표현으르 했어요. 즉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주와 그 은혜의 말씀 그 옆에 둔다는 것이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녀의 감독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내가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를 책임질 수 없음을 깨닫고 할 수가 없는 것을 깨닫고, 내 가족을 내 자녀를 주의 말씀 옆에 놓아 두는 것 이것이 성령의 감독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 내 가족을 내놓는 것이 성령의 감독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가정의 직장의 공동체에 감독자로 삼으셨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말씀 옆에 놓아두는 것입니다. 몇일 전 교회의 정말 급한 기도제목이 올라왔어요. 어떤 집사님이 심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밤에 심한 소동을 일으켜 경찰이 출동을 하고, 그 경찰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니까 급히 강제 입원을 시켰어요. 행정명령을 내려서 입원을 시켰어요. 그런데 그것이 행정명령이 사흘만 효력이 있어가지고 다음날 본인이 스스로 퇴원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신나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온 집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질러 현재는 아주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여하튼 불이 났는지 현재 지금 조사중이지만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까 아주 물 한 방울 없이 온 집이 다 불태워져서 전소가 됐다고 해요. 이 집사님에게는 6살, 4살 두 자녀가 있고, 그 아파트는 옆집 7채에에 피해를 끼쳤다고 하고, 피해보상을 해야 되고,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고 삽니다. 그리고 현재 이제 이혼소송 중 이라고 하는데 이 엄마 집사님은 그 지금 생명이 경각에 달린 딸 보고 니가 잘못되면 나도 살 수가 없다 하면서 그렇게 지금 울부짖고 있지만은 도대체 이 집사님을 어디에, 누구에게 부탁을 이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병원에도 부탁 할 수 없고, 사람에게도 부탁할 수 없고, 이제 부모도 도저히 감당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택한 자녀를 끝까지 보호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타는 환경에서 그 남은 것이 있어 지금 산소줄에 생명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이제 의식이 돌아 왔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이 분을 오늘 말씀처럼 은혜의 말씀 옆에 데려다 놓는 것 밖에 없어요. 현재 말씀이 들리는 곳으로 데려올 수 없다면 기회가 되는 대로 그 분을 만날 때나 통화할 때, 능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의 복음을 옆에 들리도록 전하는 것밖에 없어요. 이 말씀이 안 들리는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를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주여 내가 감독자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부탁합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대화를하고, 말울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들을 말씀 옆에 데려다 놓도록 우리는 순종하고, 사랑하고, 대화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 조울증 조연병인 아내 앤과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정말 참다 참다 참다 결국 이혼을 했는데 거기서 무엇을 발견했냐면 이 신학자임에도 그 아픈 아내하고 그 당시 교회 공동체를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하세요. 그럼 그분은 누구하고 나누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예. 그래서 저는 우리들교회는 공동체가 있어서 훨씬 그 옆에 식구들이 견디는데 도움이 되고, 또 그로 인해 주님을 다들 만나고 있는데요. 그래도 이제 이 집사님이 의식이 돌아왔어요. 살려 주셨잖아요. 이제 이로 인해 은혜의 말씀이 들리게 기도해주시고, 그 모든 식구들이 그 집사님이 살아 남아서 모두 주님께 인도되기를 바라요. 그래도 이 집사님이 남은 자가 되어서 이제 주님께 다 인도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들교회에 출석하시는 이 남편에게 은혜가 임해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이 부탁하다가 바로 파라티데미이예요.
즉 아버지 손에 나를 둔다. 성부 하나님 옆에 나를 둡니다. 라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마지막 말씀 이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내자 녀 내 가족을 말씀 옆에 두는 것이 사명이예요. 이것이 성령의 부탁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내 자녀, 내 가족을 말씀 옆에 놓아두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예요. 그리고 이것이 성령의 부탁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말씀과 상관 없는 나를 그리스도 은혜로 말씀 옆에 내 인생이 놓아졌다면 이제 내게 맡겨준 한 사람을 말씀 옆에 두기를 위함이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씀 옆에 두려고 이렇게 왜 노력해야 하나요? 왜 말씀 옆에 두려고 이렇게 노력을 하나요? 32절 후반부예요.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러니까 말씀 옆에 두었더니 그 말씀이 능히 든든히 세운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능히는 넉넉히 그럴 수 있다는 뜻이예요. 이것이 디나마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다이나마이트 아시잖아요? 여기의 원어예요. 폭발력 있게, 충분히, 든든히,넉넉히 그 사람의 인생을 세운다.는 거예요. 얼마나 이것이 믿음직 한지 몰라요. 무엇이 세워요? 말씀이 세워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강한 힘으로 넉넉하게 든든하게 세운다는 거예요. 세운다는 것이 집을 짓다, 건축하다라는 의미인데 그 말씀이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건축해가고, 세워간가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큐티를 한다는 것은 그 인생을 든든히 세우는 일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터를 닦고 기 반을 가지고 한 발짝씩 한 발짝씩 한 스텝씩 말씀으로 세워 간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건축한다는 것입니까? 거룩하게요. 우리의 인생을 거룩하게 건축한다는 것이예요. 잡초가 있으면 뽑아야 하고, 불법 건축물이 있으면 철거를 해야되도, 더러운 물건들은 치워야하기 때문에 고난이 따릅니다. 이렇게 육이 무너질수록 영이 세워지고, 영이 세워질수록 육이 세워져서, 영, 육이 일원론이예요. 교회 올 때 단정할 때 오시는 것이 그것이 일원론이예요. 육이 무너질수록 영이 세워져서 마지막 종착지 사람을 외모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는데 교회에 막 나와야 하나요?
사람은 외모를 본다고 하잖아요. 사람이잖아요. 단정하게 오는거예요. 여기 하나님이 계세요? 하하하 그러니까 너무 치우치면 안되요. 결국은 하나님 앞에 항상 영이 세워지면 육이 세워지고, 육이 세워지면 영이 세워지고 그 마지막 종착지 기업을 주시는 것이죠. 이 땅에서 슬픔 눈물 아픔이 있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주기 위해서 나를 건축해 가기 위해서 너무 아파요 눈물이 따라요. 그 마지막 종착지 기업을 주시는 것이고,이 기업은 바로 그 기업은 바로 구원 입니다. 이 땅에서의 눈물과 슬픔, 고난과 아픔이 있지만 이 땅은 영원하지 않기에 영원한 그 하나님 나라에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 저 나라에 기업을 주기 위해서 나를 건축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눈물이 따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의 손에 그 영혼을 부탁하셨어요. 아버지의 손에 그 영혼을 부탁하시니, 그 영혼을 옆에 놓아 두셨어요. 그 뒤에 어떻게 됩니까? 죽어서 끝났습니까? 능히 그 영혼을 죽음에서 살리시는 그 능력이 우리 주님을 살리셨죠. 아버지의 손에 그 영원을 부탁하셨어요. 무덤을 깨뜨리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든든히 세우사 기업을 얻을 왕으로 아들로 다시 살아나시며 우리에게 자신을 첫 열매로 보이십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될 것을 지금 보이셨어요. 이 이야기는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위해 내가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데요. 그런데 먼저 그들을 말씀앞에 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파라티테미 하신 것처럼 내가 먼저 말씀 앞에 내 인생을 내 존재를 내 삶을 데려다 놓아야 해요. 그리고 그 말씀 옆에 나를 놓아야 해요. 그 말씀이 나를 든든히 세워 나간다면 내 옆에 한 영혼을 말씀 앞에 데려다 두기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감독자가 해야 할 일이고 및 성령의 부탁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예. 예수님이 나를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어요. 말씀 옆에 놓아 두셨어요. 예수님도 그랬는데 우리가 남을 탓할게 아니고, 그니까 나부터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죠. 성령에게 나와 내 가정을 부탁한다는 신앙 고백인 거예요.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이제 목장이 바뀔 때, 여러분은 다 성령의 감독자가 되셔야 하는데, 먼저 내 영혼을 아버지 옆에 놓으셔야 돼요. 말씀 옆에 놓으셔야 돼요. 힘든 사람을 놓는 것은 그 다음 스텝 입니다. 적용질문 이예요.
적용
나는 매일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나요?
TV 앞에, 핸드폰 앞에, Youtube 앞에 ,술집 앞에 데려다 놓나요? 아니면 말씀 앞에 데려다 놓나요? 내가 가장 부탁하고 싶은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리들 교회는 말씀 앞에 데려다 놓는게 시스템적으로 되어 있어요. 하라는대로 하면은 이제 다 말씀 앞에 두게 되어 있습니다. 자, 은혜의 말씀 앞에 부탁했는데 두번째는 성령의 부탁은
두번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됨을 기억하라고 부탁합니다.(33절~34절)
33절 ampndash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절 ampndash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주의 그 은혜에 맡기며 부탁하며 이제 끝맺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은 중요한 말이고, 마지막 남기는 유언을 통해서 장로들에게 3년동안 바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의 이력서를 지금 상기시켜 줍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기억하지 않아요. 항상 한 문장으로 기억을 합니다. 바울의 인생은 좁은 문, 좁은 길인데, 그런데 이 좁은 길 끝에도 돈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설교의 끝에도 마지막에도 돈으로 마무리를 맺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도 무너뜨리기 위한 강력한 것이 도구가 돈이라고 해요. 범사에 본을 보이라고 하는 이 바울에게도 이 바울이지만 바로 그 당시 그 바울울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현대인의 성경 고린도후서 12장 16절~17절에 보면, '어쨌든 내가 여러분에게 짐을 지운 일이 없어도 간교하게 속임수로 여러분을 착취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서 여러분을 착취했습니까?'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 헌금을 했는데, 그 돈을 바울이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어요. 마게도냐 교인들이 다 구제 헌금을 했잖아요? 마게도냐 교인들이 다 구제 헌금을 했는데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잖아요. 바울이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고 비방을 하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그런 거짓 소문에 휩쓸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돈에 본질에 대해서 알려주고자 함 입니다. 돈은 하나님 자리에 있어요. 돈과 god과 gold는 멀리서 보면 똑같이 보여요. 그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착각을 하게 돼요. 돈에 전능성 모든 것 다 할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돈이 있으면 행복할거야. 좋은 직장가면 나를 좋아할거야.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할거야. 돈이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높게 볼수있어.높게 볼거야.
그러나 제가 늘 간증하지만 제가 가난한 학창 시절에는 훨씬 제가 풍요로웠고, 자유로웠고, 또 부요했어요. 그런데 부잣집에 시집을 갔지만 갇혀있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예. 전혀 그 돈의 전능성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았잖아요. 돈의 전능성과 전혀 상관 없는 것만 맛 보았죠? 그러나 돈의 실상이 어떠합니까?
생명을 만들수도 지을수도 없어요. 사랑을 또 만들수도 지을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돈을 전능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요. 돈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너무 귀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죄성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학 도구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죄성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비방한 사람도 바울의 복음 때문에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라던가 자기 자리가 위태한것도 위태할까 돈 때문입니다. 결국 돈입니다. 옳고 그름의 끝에 돈이 있어요. 그렇게 싸우는 끝 뒤에 모든 친구들, 부부간에 싸움 끝 뒤에는 돈이 있어요. 어쩌구 저쩌구해도 모두 모든 끝에 돈이 있어요. 지역감정, 진영논리, 그 끝에 모두 돈이 있어요. 교회를 위하는 모든 사람들의 끝에도 돈이 있어요. 그러므로 많이 벌어서 에베소 지역을 바꿔라 로마에 선교해라 이걸 부탁하는 것이 아니고요. 아니예요. 이 바울의 이야기는 내가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고 해요. 아니했고, 예. 그니까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어요. 골로새서에서
그니까 탐하지 아니했다. 우리가 의복이 필요하죠. 그런데 탐하지 아니했다. 내 쓸 것을 충당하며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너희도 나와 같이 해라 이것이 이제 바울 설교의 마지막이예요.
이 충당하여라는 말은 선박의 맨 아래에서 노를 젓다라는 의미로 노예들이 하는 일인데 자신의 섬김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쓰고 있어요. 이것은 물론 모든 사역자에게 자비량으로 섬기라는 것은 아니예요. 보통 구약의 십일조 정신을 가지고 그 교회에서 생계비를 주었지요. 그러니까 십일조 정신으로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위를 했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바울은 탐심을 갖지 않고 하나님 나라 일을 했다는 것이죠. 바울에게는 은과 금을 얻을 기회가 많았을 거예요. 이 너무 강력한 말씀 앞에 병자가 낫았잖아요? 귀신이 쫓겨 났어요. 가정이 합쳐졌어요. 그러니까 돈과, 인기과, 명성을 얻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겠죠. 가고 오는 세대 속에서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예. 은혜를 받으면 무엇인가 주고 싶은게 있잖아요. 바울도 의복 다 입고 다녔죠. 그런데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사심을 가지고 이 일을 하지 않았다 이런 뜻입니다. 지나친걸 이야기 하는 거예요. 너도 나와 같이 해라 이것이 바울의 마지막 설교예요. 이번에 제가 미국 오는 공항에서도 은혜받은 성도님이었겠지요. 저를 본 어떤 성도님이 막 불이나케 가게를 가더니 저한테 초콜렛을 사다 주시는 거예요. 처음 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여러분, 처음 본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초콜렛을 사줘요? 그러니까 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사명이 되어서 자신에게 부탁하게 돼요. 성령께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아요. 이것이 돈의 전능성의 착각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아요. 내가 하면 돼잖아요. 성령께 부탁하지 않습니다. 말씀 옆에 나를 두지 않아요. 왜요? 돈이 있잖아요. 내가 의사를 사고, 간병인을 사면 되니까 성령께 부탁하지 않아요. 그러면 천국 문 앞에 섰을 때도 어떠할까요? 예수가 그리스도다 라는 떨리는 고백과 자기가 죄인됨을 고백하지 않겠죠. 그런 방법도 모른채 천국문 앞에 서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는 우리 남편이 마지막에 그 천국문 앞에서 그 예수가 그리스도다 죄인됨을 고백했다는 게 생각 할 수록 기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제 그런 그렇게 죄인으로서 사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바울은 주의 일을 할 때 말씀 옆에 나를 두지 않아요. 왜요? 돈이 있잖아요. 내가 의지하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주님이예요. 내 자아를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의지하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주님임을 고백하는 그리고 이제 그런 예. 그래서 주님에 대한 그 신앙고백을 가장 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물질을 약자와 공동체에 교회를 위해 흘려 보내는 것이예요. 이는 내가 물질에게 부탁하지 않고, 성령에게 나와 내 가정을 부탁한다는 신앙 고백인 거예요.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있게 말합니다.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이 말은 우리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이 문장을 써서 말씀은 아니예요. 그런데 성경 곳곳에 가르침이 그런 주님의 가르침으로 말씀이 나타나는 구절들이 마태복음 19장 21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이 있으리라' 예, 또,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복을 받을려고 우리가 또 열심히 주려고 하지 않겠어요? 십일조 내면 부자되고, 약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니까 이래서 주는 것은 이게 주는 마음 입니까? 받는 마음 입니까? 예? 받는 마음이죠? 입은 잘 터져 있네요. 아리송하시죠? 그런데 이게 다 받는 마음이예요.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예요. 이 말씀은 여기서 복이 있다 여기서 복은 헬라어로 그 유명한 마카리오스의 복인데요. 그러니까 어떤 존재와 환경이 나의 기쁨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과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팔복의 처음과 끝이 무엇입니까?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기억나시죠? 이 가장 최상의 상태의 복은 천국이 저희것임이라 마라카리오스의 복은 사람이 누리는 복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리는 복이예요.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주고 싶은 거예요. 최상의 복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해요. 팔복 아시잖아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바로 이 복이 마카리오스의 복이예요. 팔복 자체가 마카리오스의 복이예요.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과 관계에서 오는 기쁨인 거예요. 처음과 끝이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예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이 마카리오스의 복을 주시고 싶은 거예요. 이 복을 주고 싶으신 것이예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 마음대로 못봤죠. 택자여야만 이 복을 받잖아요? 입이 적지만 그래도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이죠.
우리의 물질뿐 아니라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내 삶의 좋은 부분 뿐만 아니라 나의 실패 나의 연약함까지도 나누어 주는 것까지도 복된인생 이예요. 가장 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돈을 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같은 아픔을 나누어 줄 때 우리는 함께 평안을 누립니다. 마카리오스를 누리는 것이죠.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죠. 마카리오스의 복된 인생이예요. 예, 아까 1부 에서도 보이스피싱 때문에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보이스피싱을 검은 목소리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돈만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것에 넘어갔다는 그 자책감, 후회, 정죄 그런 것 때문에 죽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아까 1부에서도 죽으려고 그러셨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보이스피싱이 대부분 욕심 때문이 아니라 요즘엔 자영업자들이 이제 대출에 허덕여 가지고 아주 이제 싼 이자로 빌려준다고 그러면 그냥 이 생존 때문에 금세 이렇게 그냥 훅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돈 뿐 아니라 생명까지 앗아가는 것이 보이스피싱 이거든요. 그런데 보이싱피싱 걸린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같이 보이스피싱 당한 사람이예요. 그것이 굉장히 위로가 되어요. 지지난주 제가 보이스피싱을 좀 당할 뻔했잖아요? 대책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러고 교회에 왔더니 내가 당했다고 그러니까 당한 부목사가 그렇게 위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갑자기 본인이 당한게 아무것도 아닌게 됐어요. 담임 목사가 당해가지고, 여러분, 요새 그 돈 뭐 하는 이런 것보다도 컴퓨터에 들어가서 누르기만 하면 전체 암호화 시켜가지고 저같이 설교 자료가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못쓰게 해놓고 이제 그거 암호를 풀려면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절대로 아무 곳에서 클릭을 하시면 안돼요.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물론 물질도 많이 흘려보내야 합니다. 예. 하지만 우리들교회는 약재료 우리의 약재료까지 우리의 삶 삶까지 나눠줘야 하는대요. 그러니까 내가 이런 죄인입니다. 이런 고백을 나눌때, '주님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연약한 자예요. 내 삶을 내 가정을 주님 손에 부탁합니다.' 이것이 성령께 부탁드린다는 고백입니다. 적용질문 이예요.
적용
내 주변에 본이 되어 힘든 지체에 다가가 물질로, 삶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인생이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천국의 복됨이 믿어지십니까?
그 인생을 알수가 없은까 돈돈돈돈 하는거지요. 그래서 맨날 지옥을 살아요 지옥을 맨날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죠. 예. 그래서 이제 우리들교회 이야기를 좀 해보겠어요. 우리들교회가 여기까지 온 비결은 재정이 투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몇 년 전 휘문 사건으로도 우리들교회도 재정감사를 교육청과 경찰로부터 받았어요. 저희는 늘 원칙을 지키느라고 힘들었지만 이렇게 국가 관련 기관에서 모든 조사를 받을 때가 올지 그 누가 알았겠어요? 아무 문제가 없어서 결국 아무 제재도 받은 일이 없어요. 도리어 그곳에서 놀란 것 같아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아는 바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척 첫 주부터 재정을 공개한 것은 투명하게 쓰겠다는 것이었고요. 그리고 이제 교회에서만 쓰려고 만들었던 큐티인을 여기저기서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많이 나가기 시작하니까 정식으로 이것을 세금 내고 판매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것이 불법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교회는 이렇게 책 판매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판을 위해서 법인이 필요했습니다. 근데 요즈음 법인은 인가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는데 신청을 해서 실사를 나왔는데 우리가 책 만드는 것이 전부 사실이잖아요. 그 판교의 5층에 그래서 이 교회를 너무 신뢰해서 그래서 힘든 인가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큐티선교회는 2000년도 개척 전부터 있었지만은 이 책 판매를 위해서 2016년도에 경기도에서 법인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QTM 그 정관에 보면 사업 종목 중에 목회자 세미나, QT세미나, 세대별 QT책 출판, 해외 선교사 네트워트 협력 사역이런게 있고요. 또 국세청에서 발행한 사업자등록증에는 종목의 출판 서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QT 선교회는 개인 선교회가 아니고요. 학교처럼 경기도가 감사를 해주는 법인이예요. 어찌보면 교회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곳입니다. 그러니까 경기도에 재정보고를 늘 합니다. 항상 원칙을 지키는 거는 너무 힘들지만 그래서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아는바니 그런데 여러분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예. 약한 사람들은 교회 밖에도 있지만, 교회 안에서도 개척부터 추수감사절 헌금은 성도들을 위해 썼습니다. 개척 1주년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라니까 40명이 신청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비를 지원해서 도왔습니다. 그 후로 추수감사절 헌금은 성도들을 위해서 썼어요. 그런 것도 우리는 자유함으로 또 신청하세요. 그렇게 힘든 사람이 많이 왔음에도 10년 만에 판교 성전을 이렇게 빚 없이 또 헌당을 했습니다. 은혜의 말씀을 옆에 놓아두니까 주님이 보여주신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큰 부자가 헌금한 것이 아닌 개미 군단의 승리 였다는 것이 참으로 성령의 정말 함께 하심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이정도는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안겪어본 사람은 돈이 있어야 쇼핑을 하고 그러는데 진짜 천국의 복을 누리길 원해요
예, 성령의 부탁 세번째는 .
세번째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36절~38절)
36절 ampndash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절 ampndash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절 ampndash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그래서 우리의 모든 부탁은 이렇게 기도로 끝을 맺어야 해요. 우리의 모든 목장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를 해야 하고, 우리의 인생도 기도로 마무리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 교회를 성령께 부탁한다는 고백이며, 기도이며, 내 인생 전체를 성령께 부탁드린다는 고백입니다. 기도로 마지막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것도 내 인생 전체를 성령께 부탁드린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했는데 오늘 기도를 했는데 어떻게 했냐 하면, 오늘 무릎을 꿇고 했다고 해요. 유대인은 하늘을 향해 두 손 벌리고 서서 기도하는 것이 그 당시 일반적인 기도의 형태였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무릎을 꿇고 기도한 장면이 성경에 가끔 등장해요.
진짜 간절할때는 무릎꿇고 기도하는 장면이 성경에 가끔 등장해요. 솔로몬이 성전 건축한 후에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었고요. 열왕기상 8장 예. 또 에스라가 백성들이 이방인과 불신 결혼한 것을 안 후에 무릎 꿇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어요. 에스라 9장 5절 보면 또 다니엘이 하루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지요. 다니엘 6장 10절 이예요. 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죠. 누가복음 22장 42절 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의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어요. 사도행전 7장 60절이죠. 그리고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위해 기도할 때 무릎을 꿇었어요. 사도행전 9장 40절 이예요. 자 언제 이렇게 무릎을 꿇었나요? 아주 특별히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할 때 무릎을 꿇었어요. 특징이 너무 간절할 때, 무엇 때문에 오는 간절함인가요?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고백에서 나오는 간절함 인 것 같아요. 바울은 이제 다시는 에베소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자신이 3년 동안 성령의 제자 양육으로 양육한 그들을 이제는 직접 도울 수가 없어요. 그들을 위해 에베소 교회를 위해 바울이 직접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 맡길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리고 떠나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렇게 떠나는 바울을 비방까지 이제 떠나야 하는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도 생겼어요. 그리고 막 그것도 돈으로 비방을 합니다. 너무 막중한 사명인데 이제 막 떠나야 하잖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으니까 정말 바울이 간절함이 생겼을 것 같아요. 얼마나 위기 입니까? 자신이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절로 간절함이 생겼을 거예요. 이상한 소문을 두고 떠나려니까 더 기가 막히잖아요. 바울이 구제 헌금을 다 가져갔다고 하면서, 장로들은 또 어떤가요?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자꾸 지라는 말씀을 들으면 도망가고 싶은게 우리의 마음이예요. 하지만 오늘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도망갈 생각을 하지 말고,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물론 무릎을 꿇고 기도해도 바울과 작별할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또 성령에 매여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바울의 상황도 바뀌지 않았어요. 그럼 우리가 기도할 때 상황이 바뀌라고 기도를 하는 건 아니예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냥 기도하면은요. 그게 응답이예요. 그래서 아침마다 은혜의 말씀에 부탁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게 응답이 아니고 내가
말씀에 부탁하는게 기도의 응답이예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기도해야 돼요. 그 기도는 내 생각대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기도해서 들어주셨다면 그것은 기도응답이예요. 우리는 기도회 놓고 믿어야 해요. 아침부터 공동체로부터 믿어야 해요. 크게 울어요. 일평생 울어볼까 하는 큰 울음. 구원 영혼을 향한 울음이고 바울의 인생을 성령께 부탁 드린다는 장로의 최고의 고백이자 표현이었어요. 우리는 기도해야 돼요. 그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기도해야 돼요. 그런데 그 상황이 바뀌거나 안 바뀌거나 하는 주님의 마음이예요. 우리는 기도해야 돼요. 내가 원하는거 들을려고 하는게 아니예요. 아무것도 원하는 응답이 안되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기도가 안되었어요.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다 크게 웁니다. 이 울음은 일 평생 한번 울어볼까 할 정도의 큰 울음을 뜻하는데요. 이 울음은 구원을 위한 울움이고, 영혼을 위한 울음이며, 예.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성령께 부탁하듯 바울의 인생을 성령께 부탁드린다는 장로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자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크게 울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안타까운 작별을 했습니다. 서로 크게 울고 입을 맞추고 헤어졌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근심 했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심히 슬프게 하는 깊은 깊은 슬픔 을 말하는데요. 이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느끼는 슬픔, 그 슬픔의 크기가 클수록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연합이 얼마나 견고하고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슬픔 입니다. 이는 부부관계가 깊은 연합이면 슬픔이 큰 만큼, 이 이별도 사별의 슬픔처럼 큰 슬픔이라는 의미예요. 그 만큼 이 이별도 사별의 슬픔처럼 큰 슬픔이라는 의미예요. 이 사별의 슬픔처럼 큰 슬픔 이었다는 거예요. 그만큼 바울과 장로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십자가 안에서 가족과 같은 연합으로 한 공동체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신자의 슬픔은 다시 만날 기쁨에 비례하듯 복음으로 말미암아 저 천국에서 만나면 얼마나 기쁠까요? 우는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눈물이 없는 곳이 정말 포기한 것이예요. 앞으로 닥칠 환난 때문에 울고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예요. 성도의 슬픔은 다시 만날 기쁨의 비례하듯 저 천국에서 보면 얼마나 기쁠까요? 스데반이 죽었을 때 경건한자들이 크게 울었다고 했어요. 눈물이 많은 곳은 이세상에서 소망이 있는 곳이예요. 슬퍼서 오는 것은 복음이 전해질 장소 이니까,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이레저레 기도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죽었을 때 경건한 자들이 크게 울었다 기억나시죠? 그리고 이렇게 바울의 눈물 등 초대교회는 참 눈물이 많았어요. 초대교회 바울이 있는곳에 눈물이 많았어요. 눈물이 많은 곳은 그래도 이 세상에서 그래도 이 세상에서 소망이 있는 곳이예요. 하지만 그들이 무릎을 꿇고 함께 드린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로부터 한 세대 즉, 30년 이상 시간이 지났을 때, 에베소 교회는 여전히 아시아의 중심교회로 역할을 하고 있었죠.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주님께 첫사랑을 버렸다고 꾸중을 들었지만은 그래도 있잖아요. 꾸중을 받을 수 있는 교회로 남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꾸중을 받을 수 있는 교회 또 교인도 많지 않아요. 이 에베소 교회가 그렇게 꾸증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이천년 교회사에 찬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우리들교회가 치리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치리를 받아 내신 분들은 이 교회의 진정성을 알렸기 때문에 저는 갑절의 은혜가 있을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무릎을 꿇리는 사건이 오는 고난은 사실 축복이예요. 우리가 다 저절로 무릎을 꿇을 수 없는 교만한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우리 무릎을 꿇게 하시니 우리가 구원의 길을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처음 사랑을 첫사랑을 잃어버릴 수 없게 하시는 거예요. 그니까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가지고 성령의 매어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한거예요.
우리들교회는 개척 때부터 아둘람 공동체였어요. 간절함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영성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간절한 기도의 영성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어가기를 축복하고,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질문 이예요.
적용
서서 기도하고 싶은 상황에 있습니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습니까? 무릎 꿇고 함께 기도할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습니까,
바깥에서 구경만 합니까?
또 급한 기도제목이 올라왔죠. 4살 아인이 손가락 3개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뭉개져서 절단이 되었어요. 그런데 구급차가 왔는데도 출발을 못하고 한시간 반 두시간 가까이를 아무 데도 못간 것은 열이 38도가 나니까 받아주는 병원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구급차 안에서 무전으로 이렇게 연락을 하잖아요. '받아줄 곳이 없다.' 너무 이제 화가 난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날 진정을 하고 생각을 해보니까 그때 막 손가락 잘려나간 거에서 구급차 타고 갈 때 2개는 찾았는데 3개 중에서 하나를 못 찻았었대요. 그런데 1시간이 넘어서 안전요원이 그 잘린 손가락 하나를 찾아가지고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날 YTN 뉴스를 보니까 안전요원이 에스컬레이터를 다 뜯어가지고 거기서 그 손가락 하나를 찾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손가락 하나를 못 찾아서 하나님께서 대기시키신 거잖아요. 그런데 이 열이 나가지고 이거 안 받아준다고 있는 대로 불평불만을 애가 지금 이 손가락이 이렇게 생겼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이럴 때 그냥 성령의 부탁을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애. 날마다 할 수 있는게 없으면 나중에 시간도 하나님이 다 책임지셨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이제 너무너무 감사한 게 됐어요. 그 쪼그만 4살 아인이의 그 세 손가락 중에 조그마한 거 하나, 이거를 찾느라고 에스컬레이터를 다 뜯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린 그 안전요원 정말 그 감사해서 박수쳐주고 싶어요. 진짜 박수 그런데 이제 이 아빠가 간증하기를 올해처럼 힘든 해가 없었는데 식당을 하게 되면서 힘들어져서 빚지게 되고, 아버지가 그 와중에 돌아가시고, 권찰이 유산을 하고, 고소 사건에 얽히고 섥히고 아인이 문제까지 이제 터진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이제 아인이 사건이 오니까 드디어 최종적으로 내가 정말 다른 길을 가고 있다이 생각이 들면서 자식을 치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붙들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라는 거예요. 이 4년 이라는 시간 동안에 11가지 사업을 했는데 하나도 성공을 못하고,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생채찍으로 이제 무릎을 꿇게 지금 하셨다는 거죠. 그런데 그 구급차에서도 되는거 맞잖아요. 그치요? 죽어져야지 부활이 있잖아요. 이제 지금 다 똑같은건데 이 집 깨닫게 하시려고 청년부 출신인데 이 집 깨닫게 하시려고
진짜 11가지 사업을 할 때마다 잘못된 데다가 화살을 던졌으니까 이게 말씀대로 화살을 던지지 못한 거지요. 다 안되는 데에는 이유가 또 있더라고요. 안되는 것도 하나님이 뜻일 때도 있지만은 진짜 안 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자기의 인생을 한번 되돌아 보셔야 돼어요.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안되나? 성실했나? 진실했나? 정직했나? 이거를 늘 생각해 보셔야 돼요. 정말 내가 얼마나 지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안 된 것이 무엇인가? 물론 이게 무슨 행위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건 아니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 바울이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 부탁을 드려주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 부탁을 드려주는데 이제 그러기 위해서는 아인이 보다도 내가 먼저 나를 말씀 옆에 놓아둬야지 주님께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파라티테미 나부터 늘 말씀 옆에 있어야지. 그게 돼도 안돼도 해석이 돼서 해결이 되거든요. 그런데 말씀 옆에 두지 않으니까 늘 불평이 나오는 거예요. 그 안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인도함ㄷ을 받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다음 일을 또 욕심으로 하게 되는 거예요. 아인이가 이번에 너무 수고를 하고, 우리 온 교인이 눈물로 기도를 하고, 이제 마지막 제 설교에까지 이렇게 등장이 됐어요. 정마 이제 이 집이 하나님의 정말 그 성령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성령의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정말 그 아인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래요. 오늘 화상당한 집사님, 아인이, 기가 막히죠? 이거 누구한테 부탁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성령님께 부탁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치요? 그러니까 전 세계로 이 기도제목이 나가서 정말 다 기도해주시더라고 제가 이 기도제목을 알려 드리는 거예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부탁은 은혜의 말씀에 부탁을 하는 거예요. 파라티테미의 말씀으로 내 옆에 말씀을 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침부터 말씀을 듣고, 읽고, 예, 그냥 그걸로 여러분들이 딴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그리고 공동체에서 물었으면은 그날 되어지는 일이 응답인 거예요. 내가 좋은게 응답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지금 구급차가 움직이지 못한 게 응답이잖아요. 응답. 나는 구급차가 빨리 움직여야 되는데 그러니까 이거를 그걸 어떻게 아냐? 그러니까 우리가 아침마다 말씀대로 듣고, 기도하고 하는게 응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됨을 이 마카리오스의 천국이 저희 것임이다는 이 복을 받으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려면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라고 부탁을 합니다.
찬양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 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험하고 높은 이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내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기도제목 말씀을 내 옆에 놓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언제나 간절하게 무릎 꿇고 정말 기도할 수 있는 이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오늘 등장한 집사님 가정의 회복과 아인이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모든 목장이 원활하게 잘 짜여지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생명보호법을 위한 한 사람의 지도자와 선량을 허락해달라고,
다 주님 한번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성령의 부탁을 하는 바울 사도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주님 참으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음을 너무 잘 압니다.
삼위 하나님의 복이 최고의 복인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주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내 영혼부터 이 말씀 옆에 놓이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오늘 이 화상 당한 집사님 가족과 또 아인이를 생각할 때, 우리는 내 옆에 정말 내 자녀, 내 아내, 내 남편 옆의 지체들을 누구에게,
어떻게 어디에 부탁해야 될 지 모르는 이 가족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주님, 정말 어쩌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성령께 부탁을 하며 이제 참으로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무릎 꿇고 기도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셨씁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성령께 부탁하고 떠납니다. 말씀 옆에 그들이 놓일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내 여펭 말씀을 두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죄부터 보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그 화상 집사님과 우리 아인이가 회복될 수 있도록 특별히 그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차별금지법과 생명보호법이 제정될수 있도록 이제 그 한 한사람의 지도자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기도제목
❤️김이나
- 회사에서 연말 심사평가 있는데 좋은 결과 나오기를 기도부탁합니다
- 관계가운데 인도해주시고 말씀드릴 지혜와 타이밍을 알려주세요
- 중국 심천에서 참석합니다 예배와 목장에 잘 붙어가도록 마음와 환경을 열어주세요
❤️박재은
- 한국정착 7개월되었는데 적응이 안되고 모든게 낮설어요 잘 정착할수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임수빈
- 진로 인도해주시고 목장 붙어가기를
❤️오찬미
-시간과물질을아끼며 갈수있기를
-구체적인적용으로나아가길
-공동체를사랑할수있는마음을주세요
-죽어지지않는나의자아남은부분을보고 가길원합니다
-부서섬기는것에대한기도를 드립니다
❤️이은실
- 다음주 면접 두개 있을 예정인데 주님이 인도하신 곳으로 가도록
- 큐티 생활 게을리하지 않고 건강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신애리
- 독일 생활 빠뜨리는 것 없이 잘 마무리하도록
- 힘든과정없이 술술 잘 정리될 수 있게
- 진로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않도록
❤️김자영
- 가장 합당한 곳에 발령 나기를
- 일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김성은
-이번 한주도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며 살기를(파라티테미 말씀을 옆에 두도록)
- 받는것보다 주는삶을 살도록
- 치료기간 놓치지 않고 잘 치료받으며 정신적 육체적 건강관리 잘하도록
- 자기전 꼭 무릎꿇고 기도하는 시간가질수 있도록
❤️윤지혜
- 내가 먼저 말씀을 옆에 두고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맡겨주신 그 한 영혼 말씀 옆에 두기 원합니다
- 무릎 꿇고 공동체의 모든 기도 제목 놓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애통한 마음 주세요 마카리오스의 복을 누리는 은혜 내려주세요
- 가정과 공동체, 모든 관계에서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질서와 경계를 지키면서 구원의 언어 잘 쓰기 원합니다 저의 연약함 아시오니 불쌍히 여겨주세요
- 조카 치료로 분주한 언니 가정에 심방해주시고 형부 부부목장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에서 손과 발이 가는 적용할 힘을 주세요 우리 가정을 온전히 회복해주시고 든든히 충분히 세워주시기위한 주님의 통치를 받기 원합니다 묻자와 가로되 하며 인도받기 원합니다
- 부서와 선교팀의 모든 준비와 일들 가운데 두려움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감독자와 목자가 되어주세요 필요를 아시는 주님 부족함 없이 채워주세요
- 목장과 마을 식구들 개편될 때에 어디로 가든지 순종하며 잘 붙어가기 원하고 동반자들 남은 과제 할 때에도 은혜 부어주시어 성령의 정돈이 되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특별히 이번주 아영이 대학원 면접 인도해주세요)
- 우리 모두 신교제와 신결혼의 소망 주시고 준비시켜주시고 인도받기 원해요 가정 관계 진로 질병의 모든 문제 해석되기 원해요 응답해주세요 주님
**목장 공통기도제목**
우리의 약재료와 삶을 잘 나누며 가는 목장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