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안아주심으로 유두고같은 사람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이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러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환호를 하고 좋아할까요?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이, 성령의 사람이지요.그래서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때마다 성령의 작정을 해야 구원의 최종 목적을 이룰 수 가 있습니다. 이번주에 수능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작정을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오늘은 성령의 작정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작정 첫 번째는,
1,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우리가 탄 배에 정관사가 붙어서 그 배로 표현이 되었는데, 그러면 그 배를 임대했을 가능성이 있죠. 그러면 바울을 기다릴 수도 있었는데, 바울이 혼자 가겠다고 작정 했기 때문에, 앗소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예요.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작정 했다고 성경에 나와있지는 않지만은 이런 것을 띵크해서 바울의 눈길과 숨소리를 느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바울의 걸어가고자가 너무 크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걸어가고자 작정하여 소지품을 두고 떠났기 때문에, 후에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디모데에게 감옥에서 겉옷과 책을 다시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했어요. 이게 한 35km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요. 거기서 에게해로 흘러드는 강물이 너무 많아서 강과 산을 굉장히 넘어서 걸었어요. 아주 급한 여행길인데, 이렇게 먼 곳을, 유두고 때문에도 힘들고.. 날이 새도록 얘기 했기 때문에 너무 잠도 못 잤는데, 이 먼 곳을 혼자 걸었습니다.
드로아께에서 성령께서 전투에 임하는 비장한 마음을 주신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유두고를 살렸으니 드로아 성도들은 너무 좋아서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위로 받고, 뜨거운 사랑을 나눴잖아요? 큐티를 하고 성령을 앞 뒤를 많이 알게 되면, 적용이, 깨닳음이 풍성해지니까, 처음 듣는 사람은 어려우시겠고 그러겠지만, 그냥 들어두면은 후에는 생각 나리라.(웃음)
그러나 앞으로 들어갈 예루살렘은 지금까지의 예로 보아, 이 살아난 일을 좋아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죽은자가 살아났기 때문에 더 뒤에 24절을 보면 죽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받은 것 같아요. 결국은 후에 로마에서 순교했지요.
죽은자가 살아났가도 그렇다고, 내가 살렸다고 하면 그건 이단의 교주나 하는 일이예요. 그런데 항상 우린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래야 되잖아요? 기억한다면,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을 보여주셨기에, 바로 그 때부터 요한복음 11장 이 후부터 예수님 죽이는 모의가 시작이 되었어요. 그래서 예수님도 가실때가 되신 것을 예감하시고 십자가 지러 가시기 전에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죠. 그래서 바울도 예감하고 걸어가고자 작정을 한 것 아닌가 싶어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고 바울이 유두고를 살린 것은 사람은 할 수 없는 기적이예요. 그런데 세상이 보기에는 유대교나 기독교나 똑같지만, 유대교는 생명을 살린 예수님과 바울이 유대교를 위협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았고 바울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바울은 예감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바울도 참 외로웠겠죠?
사람을 살렸기에 죽이려고 하는 이 전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이 바울은 주님과 혼자 독대하며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주님, 제가 죄인 아닙니까? 제가 성경을 제대로 몰라서 믿는 자들을 잔멸하며, 스데반이 죽는 일에 가담했죠. 그러니 저들도 몰라서 나를 죽이고자 하지만, 그리 할지라도 제가 잘 죽게 하시고. 그들이 몰라서 그러니, 주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저를 찾아서 만나주신 것 처럼, 그들도 만나 주세요. 라고 기도했을 것 같아요.
마태복음 26장에도 보면,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예수님이,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세요. 라고 기도 하셨잖아요?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주님이세요. 45절에 이 잔에 내게서 지나가게 하실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세번째 기도를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떠나신 것 처럼, 바울도 걸으며 기도하며 이 응답을 받았을 것이예요.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가는 그 산과 강의 영상을 보았어요. 2000년 전에 바울 사도가 걸었을 그 길과, 다리와 가다가 물.. 샘물등을 보면서 그냥 너무나 마음이 뭉클하고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요. 여길 혼자 걸으셨구나.. 여러분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쪽을 가게되면,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한 번 걸어보세요.
이제 나중엔, 이런 것 들이 기억이 날거예요. 아마도.
이 후로 바울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지난주일 큐티가 에스겔 41장 1절부터 큐티였어요.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제일 먼저 회개의 제단인 번제단을 적시잖아요. 우리의 더러움을 내어 놓으면, 주님이 성전에서 제일 먼저 씻어주시는 거예요. 그러나 '거룩한 강단에서 어찌 더러운 인간의 죄 얘기를 하냐?' '앞으로 또 죄를 지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간증 하지 마라.' 예. 그렇다면, 하늘의 얘기, 땅의 얘기를 분리하는 거예요.
여러분, 번제단은 짐승의 제물을, 나의 죄를 대신해서 드리는 제물이기 때문에, 그 짐승의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와 핏방울, 피비린내가 나는 곳이예요. 근데 그게 바로 성전에 있어요. 바울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강단에서 간증한 설교들이 2000년 동안 우리를 살리고 있어요. 성전이 그렇게 교양있게 아름다운 곳이 아니예요.
간증이 문화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이단들의 간증은 정말 위험 합니다. 수치만 고백하게 해 놓고, 그 수치 때문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게 이단이예요. 그야말로 망하는 간증입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보는, 구속사적 큐티 간증은 사람을 살립니다. 가정을 살립니다. 그 열매가 증거합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에는 God 이나 Gold나 멀리서 분별이 안 되는 것처럼 이 간증, 저 간증 분별이 잘 안 됩니다. 큐티도 별로 하지 않는 이 시대에, 진정한 큐티 사역이 문화가 되기에는 우리들교회 큐티 사역이 너무 알려지지 않았고, 연륜도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느리 다말과 시아버지 유다의 동침한 간증,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 간증, 이런 것들이 솔직하게 오픈되어 있고, 바로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예요. 유다와 다윗은.
예. 그런데 이런게 솔직하게 오픈되어 있기 떄문에, 이미 선진들이 본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저는 죽을 것 같은 때 하나님과 독대 해가지고 (저 나가지 못했잖아요? 독대하는게 꼭 산으로 올라가는 것 만은 아니예요.) 독대해서 이런 성경이 제가 깨닳아졌기 때문에 제가 죽지도 않았고, 이혼도 하지 않았어요. 공동체 속으로 들어와 보기 전에는, 이런 간증이 이해가 안될 수 있단 걸 느낍니다. 우리들 교회가 소위 부흥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늘 더욱 눈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보고, 지금 유대인들이 곳곳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 죽이려고 하잖아요? 제가 바울은 아니지만, 바울이 너무도 채휼이 되기도 합니다.
적용: 영육간에 가장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유두고가 살아나고, 또 승진이나 합격을 했는데, 이 때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사명 감당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작정 한 적이 있습니까? (아들이 서울대에 붙었는데, 눈물로 사명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 있냐 이 말이예요. 그러니까, 제 설교가 얼마나 어렵겠냐 이 말이예요.)
이런 마음으로 앗소에 도착한 바울이예요. 성령의 작정 두번째,
2. 지체치 않아야 합니다.
14-15절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32km 남짓 된까, 걸어서 하루 이틀 걸렸겠죠? 앗소까지 걸어가서 기다리던 일행을 만납니다. 근데 앗소에서 미둘레네까지, 기호에서 사모까지, 사모에서 밀레도까지 딱 하루씩 걸려서 항해를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급히 갔다는 것은, 이 항구도시에서 머물지 않고, 그 배에서 내리지도 않고 배를타고 계속, 밤에는 머물고 낮에는 항해하고. (밤에는 항해를 할 수 없었어요. 그런 뜻인데요) 이 배가 지난 도시들은 하나같이 너무 유서깊은 곳 이예요. 앗소는 그 유명한 스토아 학파의 2대 지도자 클레언테스의 고향이구요, 미둘레네는, 고대 그리스의 7대 현자인 피타쿠스의 고향 입니다. 기호는 일리아드와 호메로스의 고향입니다. 사모는 우리가 아는 이솝우화의 그 이솝과,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이예요. 밀레도는 탈레스등, 최초의 철학자들의 고향이예요. 배 타고 하룻길 거리에 있는 도시들인데, 이 듣기만 해도 유명인사들이 많이 배출 된 곳인데, 이 유명한 곳에서 전도를 한다면, 얼마나 뜻 있는 길이겠습니까. 하루 이틀 머물며 구경만 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이 모든 도시를 그냥 지나갑니다. 심지어 3년 가까이 사역한 에베소 조차 들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요.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은 불신지역이지만, 에베소는 또 차원이 다른 도시잖아요? 2년 3개월 동안 구속사를 가르치며 눈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주께 인도해서 아시아의 교회 지도자들을 탄생시킨 그런 교회예요. 근데 여기서 지체하지 않았다. 지체하다의 뜻은 꼭 여기서만 쓰였는데요.
시간을 비비고 문질러서 없애다. 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으면 시간을 막 비비고 문질러서 없앴을만한 도시들만 쫙쫙 나왔잖아요. 그죠? 이 항해에서 바울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서둘렀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것, 볼 것이 많은 장소도. 그립고 보고싶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이라도 거기 들리는 것이 시간낭비일때가 있어요. 어떤 때입니까? 더 중요한 최종 목적지가 있을때가 그렇죠. 이번 여행에서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예요.
더 나가서 로마이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후에 25년이 지난 이 오순절에, 엄청난 열매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나눈다면 얼마나 그 곳과 모두가 위로와 격려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이 모아준 헌금을 가지고 지금 예루살렘 교회에 가고 있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죠. 1차 전도여행 후에 한 10년쯤 지났는데 아주 이방인 선교를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이방 선교의 문이 열렸거든요. 그리고 세 차례 전도 여행의 결과, 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니아, 아가야에 많은 이방인 교회들이 세워졌어요.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모교회를 돕겠다고 가는 거예요.
물론 바울은 헌금 전달이 목적은 아니예요. 그건 제자를 시켜도 되요. 그나마 돈 갖다 준다니까 갈 명분이 생겼어요. 아니면, 말씀의 전문가들이 모였는데, 바울보고 오라 그러겠습니까? 그러니까, 복음 전파가 최종 목적이었어요.
저는 그냥 이런것들이 띵크가 잘 되네요. 그런데 이건 욕심 때문에 무서운 열심으로 직진하는거하고 다르고요.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거기를 왜 가는지, 지금 얼마나 와 있는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아는 것이, 최종 목적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의 태도예요. 그래야 때마다 성령의 작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눌러 앉고싶은 곳들이 다 있어요. 그리고 그 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렇게 될 수 없단것도 알지만, 다 발을 뗄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단 것을 알고 있어요. 과거에 상처일수도 있고요. 집착하는 것 일수도 있고요. 중독된 것 일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떠나려고 해도 떠날수가 없어요. 그런데 뭐 요즘에 중독, 비트코인, 비트코인도 유튜브가 있데요? 그냥,. 구독자 수가 2만명 이래요. 도저히 그걸 떠날수가 없다고 그러네요. 비트코인이 무조건 나쁜가.. 은행 대신에 가상의 이런게 생긴건데,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아가지고 시간을 비비고 문질러서 지금 없애고 있으니까, 그것이 목적이 되서, 내가 너무 돈 때문에 예배가 소홀히 될까봐. 그래서 이걸 안한다.. 뭐 이런 적용도 다들 아시는데,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비비고 문질러서 없애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독대한 바울에게는 '우리'가 있었어요. 바울이 앗수르에서 '우리'를 만나니. 이거는 계속적인 미완료 과거거든요.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계속해서 영적 교재를 할 수 있는 우리가 있다는 거예요. 성경이 어쩜 그렇게 날마다 똑 같은 소리를 해요?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사람은 동역자들과의 관계가 잘 되는 사람이예요.
나는 하나님과 혼자 있는 것이 제일 좋아. 하면서 사람들과의 교재를 회피하는 사람은, 그건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예요. 물론 바울은 유대교에게는 배신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잔멸자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그들 모두에게 기피대상 이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바울이 관계가 안돼는 사람으로 보이죠. 그러나 박해를 받는 것과 관계를 싫어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성경을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성경이 인간론이예요. 성경이 구원론이예요. 굉장히 디테일한거예요. 이런걸 모르고 사역을 하겠다,. 목회를 하겠다,. 또 부부관계 이게 정말,. 아무리 소수지만 아무리 소수지만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우리가 있으면, 인생을 헛된 곳에서 지체하지 않고 제대로 성령의 작정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앞에두고, 하나님께 독대하고 기도하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 물으니, 지체할 곳, 지체하지 않을곳들을 일사천리로 결정 합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모두 저한테 하는 얘긴데, 제가 생명을 내놓고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구원이 됐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날마다 살아온 30년의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이런 위기감을 저한테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런것들이 깨닳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잘 되었을때도 제가 눈물로 기도를 할 수가 있겠어요.
적용: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닳아 없애고 있는 이 아름다운 앗소, 번창한 미둘레네, 유명한 기호, 사모, 사랑하는 에베소는 어디입니까?
집착, 중독, 정에 이끌림 등등. 어디에 이끌리고 있습니까?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 같이가는 우리가 있습니까?
시간을 너무 좋아서 비비고 닳아서 없애지는데, 정말 원어를 보면 재밌는게 있어요. 비비고 닳아서 비비고 없애지도록, 주식에 비비고 애인에게 빌고 중독에게 빌고 마약에게 빌고. 이게 참 표현이 재밌지 않아요?
둘 다 다 하나님과 독대하고, 그담에 우리가 지체치 않는 이유가, 성령의 작정 세번째는
3. 거리낌 없이 회개와 믿음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목적이 있는 거예요. 바울의 설교는 세번이 나왔는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에게 구약 성경을 꿰어서 구속사를 좔좔 설교 했어요. 두번째는 아데네에서 이방인을 위한 설교를 했어요. 근데 처음으로 오늘 밀레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설교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설교입니다.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우리가 그때, 이제 에베소에 바울이 왔을 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던 열두명의 제자들이 있었잖아요? 그들이 성령이 임하지 않으니까, 바울이 설명해주고 성령 세례를 받게 했어요. 성령의 세례를 임하심으로 이들이 다 에베소교회 장로가 되었을 것이예요. 그들을 청해서 이른바 유언 같은 고별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별설교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설교 하나 하나가 전부 유언이라고 생각하시고 들어주면 되겠어요.
바울은 고별 설교를 여러분도 아는바니- 라는 말로 시작을 해요. 여러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여러분도 아는바니, 성도들이 모르는데요? 이러면 어떡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더라구요. 미취학에 전도사님 큐티 나눔에서 다섯살 자기 아들이 아이들의 , (우리 미취학도 아이들의 줌 모임이 있거든요) 너무 정말 재밌다는거예요. 그래서 걔보고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그러니까, 큐티 책이 매일매일 집에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랑 우리 가족이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그리고 엄마도 큐티를 하면 좋겠어요 (웃음)
그러니까, 전도사님은 우리 아들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아는 바니- 이랬는데, 아들이, 몰라요- 모르는데- 이렇게 한거하고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안다고 합니까?
바울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시작해서 이 고별설교를 하는 순간까지 항상 한결같이 보여준 그 주님을 섬기는 삶을 너희들이 안다는 거예요. 주를 섬기기 위해서 흘린 겸손과 눈물 그리고 시험을 참는 인내로의 삶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죠. 이 섬긴다는 것은 새 한마리 값도 안된다는 둘로스, 종으로서, 노예로서 ampndash 역할을 다 했다는 뜻이죠. 근데 특별히 오늘 인내에는 뭐가 붙었냐면, 유대인의 간계를 참았다는 거예요. 19절에 ampndash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는거죠. 간계는-악한 꾀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그때도 똑같이 동일한 단어를 썼어요. 악한 꾀로 우리를 성령의 작정을 못하게 하는데, 아니 이 악한 꾀를 로마도 이방인도 아닌, 함께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의 간계라고 하는 거예요.
뱀이 하와를 어떻게 미혹하죠?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미혹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알려주면서, 정령 죽으리라 했는데, 죽을까하노라- 하고 말씀을 살짝 비틀었어요. 유대인의 간계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유대인의 간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동성애자들을 다 사랑하셔. 분명히 죄라고 다 되어 있는데, 말씀으로 하나님을 살짝 비틀어서 지금 법으로 제정하려는 것이 현실이예요. 인권을 주장하며 말씀을 비틉니다. 마치 기독교가 인권을 배격하는듯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하지만 참된 인권, 참사랑됨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만이 이 참 사랑이 시작되는 거예요. 사람속의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죄를 통해 무너진 그 하나님의 형상을 말씀을 통해 바르게 세워나가는 것이 참 인권이예요. 죄를 죄라고 말 하는 것이 인권이예요. 회개의 길인 십자가를 보이며 이것을 보이고 알리고 전하는 것이 참된 인권의 시작 입니다.
동성애자는 동성애가 죄라는거예요. (사람과 죄) 동성애가 죄라고 말해주는게 가장 큰 사랑이라 이거예요. 그게 가장 큰 인권이라 그거예요. 하지만 유대인의 간계로 평화와 화합, 사랑이라는 말씀을 갖고 계속 비틀어요. 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이 후에는 가르친 다음에 뭐 해요? 모든 겸손과 모든 눈물로 참고 주님을 섬기는 거예요.
그런데 유대인의 간계가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세요.
그러나 이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힘들었다고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유대인의 간계로 유대인과 싸우고 다투고 정치를 주장하며 옳고 그름으로 논쟁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유대인의 간계로 말이암아 주를 섬겼다고 하잖아요.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주를 섬겼다고 해요.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유대인의 간계를 어떻게 참았는지 너희도 아는 바라의 인생을 살아야하는 거예요. 안 믿는 사람은 절대로 흘리지 못할 이 눈물. 눈물의 종류가 너무 다른거예요. 그런 눈물과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원어로 보면, 주를 섬긴 겸손. 주를 섬긴 눈물, 주를 위한 인내인 거예요. 그것이 나를 위한 섬김, 자식을 위한 섬김은 오래 못 가는거예요. 결국 나 에게도 자식에게도 그것은 성령의 작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보통은 목사님 장로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우리 권사님 어머님 믿음 좋으시고. 우리 장로님 아버지 믿음 좋으시고. 다들 이렇게 이런 간증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34년 전만 해도 이 장로님 가정에 시집와서 힘들었다고 하는 이런 간증이 너무 드물었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유교적 관념으로 충효를 강조하는 우리 나라에서 부모님은 존경받아 마땅한데,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너무 듣기 싫어하고 불경스러워하는거죠.
저도 맨 처음에는 이 거듭나기 전에는 아니, 왜 장로님이 예배를 못 나가게 하는가? 하는 끊임없이 옳고 그름의 생각으로 ampndash 그래서 결론은 죽고싶었어요. 이혼하고 싶었어요.
믿는 부모가, 믿는 구역 식구가 나를 얼마든지 힘들게 할 수 있더라구요. 오늘 유대인의 간계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오늘 그 간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시험을 참고 눈물로 주 예수를 섬기는 거라고. 이런, 성경이 깨닳아질 때마다 제가 살아났다니까요?
제가 예수 믿은지가 , 4대, 5대 -6대까지 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이제 4대째 모태신앙이고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면서 그러다가, 성령이 임하시고 나서 이 말씀이 깨닳아져가지고 큐티책을 한 권씩 주면서 큐티를 하라고.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도리어 큐티가 뭔데요? 물어보는데, 믿고 또 믿는 사람, 직분자들은 제가 큐티책을 갖다주면, 이거는 왜? 이런거 안해요. 그래서 그 다음에 만날 때 도로 갖다주는거 있죠? 다 믿는 집에서 결혼을 하고 만나 믿는 목사 권사 장로 부모들,. 다 있는데도 전 세계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런 남편, 아내랑 못 살아! 하는 것이 바로 유대인의 간계 입니다. 경제적 문제로 서류상 이혼을 한 것도 다 유대인의 간계예요. 그 빚은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평생 갚다 죽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이 중요한데, 유대인의 간계를 통해서 어떻게 행한 것을 보여줄 겸손과 눈물이 있으면, 그것이 유익이예요.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를 위하는 것 처럼 하면서 불신결혼, 이혼등을 시키는 이 가까운 친척, 엄마, 아버지의 간계가 있는 거예요. 유대인의 간계가 있어요. 그래서 이 유대인의 간계를 어떻게 참고 어떻게 주를 섬긴 것을 거리낌 없이 전하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눈물로 겸손으로 섬기면서 이 거리낌 없이 전하고. 장로들도 이렇게 가르치라고 바울은 마지막 순간에 고별의 시간에 눈물로 외치는 거예요. 장로 세울때가 되가지고 장로 얘기가 나오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그러면, 유대인의 간계로 인해서 복수를 하고 힘으로 찍어 눌러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 간계를 행하는 유대인에게 자신의 회개함과 약함과 믿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내가 증언한거 너희들 알잖아? 그러니까, 너희 장로들도 이제 여기가 아무리 위험해져도 너희가 그렇게 가르치라고. 나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가르치라고.
그러니까, 참는것도 기가막힌데, 거기다 회개를 하는거는, 자기의 수치와 약함을 드러내는 거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전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시댁에 했을때는 ampndash 단 한번도 입도 벙끗 못하고 있다가 ampndash 왜냐하면 이런 것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온 몸에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가, 성령이 임하시고 나서 제가 어떤 힘든 사람에게 모든걸 배설물로 여겼다고 간증을 했더니, 어머나- 어쩜 저하고 그렇게 똑같으세요? 공감대를 일으키고 그 사람, 이혼도 안하고 죽지도 않고 하는 걸 보고 (어? 내 얘기가 사람을 살릴 수 있구나.. 너무나 놀랐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이 되어서 구역장을 하면서 구역에서도 하게되고, 그리고 오늘날 교회까지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해석 되어진, 당하고 미워한 얘기만 했으면, 사람을 살리지 못했을탠데, 이 회개함과 약함을 전하니 이런 설교를 듣고 다 살아나고 그래서 우리들 청년들이 사람 부르는 능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도 이혼을 안 하지요. 영성은 실력입니다. 내가 누구를 골랐는지. 그게 딱 내 실력이예요. 결혼하고 현 주소가 드러날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성령의 작정을 이제부터 갖춰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과 끝이 같을 수가 없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되요.
사랑을 할 수도 만들수도 지을수도 없고, 전적 무능이고 전적 부패를 경험하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죄인임을 날마다 인식해야 해요. 이런 자기 인식. 하나님에 관한 바른 인식에서 비롯되는 이 실전적인 인식이 없으면 우리의 회개와 믿음의 간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 고백을 천주교의 교회 고해성사로밖에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행위구원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간증을 한 번 하면 다시는 그런 간증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게 아니예요. 우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간증하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끊을 힘이 생기는게 아니예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그 순간까지 기도하셨잖아요. 주님의 기도가 쇼는 아니잖아요? 백프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백프로 인간이신 주님은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가지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채휼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밤 구하셨어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랑은 우리 강함이 아니라 우리 약함입니다. 우리가 약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백하고 자랑할 때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큐티는 바로 이것을 날마다 새롭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띵크의 과정이고요. 한 번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내 강함을 자랑하는 것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고,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예요. 예. 비비고 밟아서 시간을 없애는게, 강함을 자랑하는 거예요. 매일 큐티하는 것, 그리고 공동체에서 나누는 것이 처음과 끝이 같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성령의 작정입니다. 큐티도 날마다 작정해야 해요. 그러니,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라고 했는데, 그니까 바울이 행한 것을 행위로 말 한걸까요?
그렇다면 누구도 자격을 갖추기가 힘들어요. 바울은 이미. 교회를 잔멸했던 자이고 나쁜 사람이란 프레임이 일평생 쓰여진 사람이예요. 저런 사람은 두 번 다시 간증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20-21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겸손과 눈물과 인내가 있기 떄문에 거리낌 없이 가르칠수가 있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겸손이 있는 사람들이 확신있게 말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혼을 하지 말라. 이런 확신이 있으니까 하지 말란데, 행위로 생각하면 어떻게 살어 그런 사람하고? 이렇게 되는거죠. 그런데 바울이 전한 행함은 주를 위한 섬김의 눈물과 겸손과 인내로 거리낌없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인데, 거리낌이 없다는 말은, 매 맞고 옥에 갇혔어도 위축 되거나 주저함이 없었다는 의미예요. 복음이 훼방 받을까 걱정되서 걱정이지, 내가 할 말을 못해서 위축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는 거죠. 복음은 문자 그대로 좋은 소식, 굿뉴스예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소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백프로 죄인이잖아요. 세상은 원래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들로 가득 차 있어요. 때문에 복음이 진정으로 복되고 좋은 소식이 되려면 듣는 사람인 내가 죄를 인정하고 이제 회개가 따라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지 좋은 소식이 나에게 단 소식이 되는데, 그런데 교회를 다녀도 유대인의 간계처럼 유대인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죄 얘기예요.
죄 얘기. 귀에 아주 거슬려해요. 그러니까 쓴 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세상에 대하여 쓴 소리예요. 힘든 사람들만 와서 쓴 소리가 달게 느껴지는데, 그런데 우리는 모든 얘기를 하는데, 죄 얘기만 딱 빼고 문자적으로 세례요한처럼 (????)입어라 ampndash 받는줄로 족한줄로 알아. 그리고 이제 세례요한이 틀렸다! (헤롯한테 가서) 지적하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아 그냥 시원하다 시원하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여인이 낳은자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큰자가 없지만 그 보다 더 큰 이가 있으시니 예수 그리스도다. 성령이 임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 요한의 세례만 전하면 열광을 하는 거예요. 그니까, 즉 도덕과 윤리로 이 세상에서 행위로 바람피지 마라 이런 얘길 하면 좋아하지만, 그런건 죄 얘기를 빼면은 구원과는 다른 복음이 될 수 있어요.
늘 행위로 보니까 틀리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 이혼이 줄을 잇는거예요. 쟤가 틀렸기 때문에 이혼하는 거예요. 쟤가 틀렸기 때문에 내가 자살을 하는 거예요. 이 행위구원이란건 들을때는 좋지마는 이제 그러므로- 이 바울이 순서적으로 복음을 써가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하나 하나 얼마나 뜻이 있는지. 걸어가고자 하였다 ampndash 때문에 일주일 내내 제가 은혜받고 눈물을 흘렸어요.
적용: 여러분들의 마지막 유언이 주를 섬기는 겸손과 눈물과 인내입니까? 나와 자식을 섬기는 겸손과 눈물과 인내 입니까? 자녀와 지체들에게 거침없이 단소리를 자주 하시나요? 쓴소리를 자주 하시나요? 거침없다는 것은 큰 소리가 아니라, 또 다시 말하면, 훈육의 가르침 입니까? 회개와 믿음의 간증 입니까?
큰소리 누가 못 치겠어요. 그죠? 그러기 위해서 회개와 나의 수치와 이런 믿음의 간증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오늘 공동체 고백을 보면 우리 평원 집사님이 남편이 두 집 살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힘들어도 두 집 살림하는 것은 인정하고 일주일을 두 번 나누어서 이제 왔다갔다 하다가 시어머니가 입원을 하셨어요. 그 때 이 부인이 원한 것은 요일을 정해서 이 첩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는데, 다 유대인 아니예요? 근데 자기가 가는 요일에 첩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까꿍, 까궁 대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자 참을 수가 없어서 핸드백을 집어 던지고 싸웠다는 거예요. 이 교양있는 집사님이. 이 씨앗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거죠. 그러니까, 다 교회 와가지고 큐티 훈련도 다 받고 다 용서를 했는데, 딱 마주치니까 눈에서 불이 난거죠. 그리고 내가 못 낳는 아들이 거기에 있는거예요. 모든게 뒤지는 거예요. 젊은 여자가 아들도 낳았지. 시어머니가 너무 예뻐하지. 아들에겐 까꿍, 까궁.. 너무 속이 상해서 새벽에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근데 제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제가 그 얘길 듣자마자 아니 어떻게 그렇게, 복음 전할 기회를 놓칠수가 있어요? 야단을 쳤다는 거예요. 본인이 너무나 뚜렸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니, 그 때야 말로 복음 전할 기회가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을 쫙 부끄럽게 하려면 주를 섬기는 겸손과 눈물로 인내하고 그래야 되지 않아요?
못 그러겠죠? 그러면 다 그래요. 목사님 사부님이.. 안 그래봐가지고 내가 모른다는 거예요. 제 옥에 티가 남편이 바람 안 핀건 알아요. 온 교인이 대신 너무 펴주고 있더라고.. 한 가지 고통의 전문가가 되면, 다른 고통도 깨닳아지는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니 두 집 살림까지 허용 했는데, 그걸 왜 못해요.. 그걸 왜 못해요 하는데 여러분들이 다 그걸 못하더라구요. 예
글쎄,. 그렇게 여기서 간증을 했는데 간증 하라고 해서 남편이 들어왔다구요. 그랬으면 너무 받아들여야 되는데 너무 무서워서 문 잠그고 들어갔다는 거예요. 아니 그걸 왜 문을 잠궈요~여기서 간증까지 해놓고.. '뭐 두려운걸 어떡해요. 두려워요 무서워요' 이러는 거예요. 간증은 왜 했어요? ampndash 그러니까, 야단 맞을법도 해요? 그니까, 물론 인간적으로는 핸드백을 집어 던진것도 던진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기도 하더라구요. 다른 한 쪽에서는 으 시원하다! 아주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애. 참기는 뭘 참어, 할렐루야! 잘 했어. 집사님 파이팅! 막 이래가면서
막 박수를 치면서 그렇게 해서 은혜를 끼치고 있지만, 바로 그것이 예수믿는 우리들의 간계, 유대인의 간계, 사단의 간계 아니겠어요? 제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수치와 조롱을 받으면서 한참 가다보면 그런것들이 무게가 이제 덜 느껴지는 때가 오더라구요. 그런데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평소에 화 내고 신경질내고 있다가, 처방만 이렇게 하면 목원들이 듣겠어요? 너희도 아는 바니.. 하는 삶이 있어야 되는거죠. 그 삶이 없으면서 그때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런 말 하면 그 사람은 그 다음부터 목장에 안 나갑니다. 너무 감당 할 수 없는 처방을 내놓고 하라고 하면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옳다고 하는 사람들은 목자 모임이나, 초원 모임 정도는 다 당하고 나서 상처 아무도 안 받아요. 아무때나 이런 얘길 하면 안돼요.
예수님이 수치와 조롱을 받다 가신 것 처럼, 간계에 이기는 비결은 수치와 조롱을 잘 견디는 거예요. 근데 정말 힘든 것이 이 자존심 문제 같아요. 그런데 자존심 상할 일을 평생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 하셨기 때문에 이 교계에서도 자존심 상할 일이 끊임없이 있는데 제가 이제 맷집이 좋아서 잘.. 이렇게 당하고 있죠. 그런데 남자 목사님이 생각하면 너무 어려운 일을 저는 이제 쉽게 하는게 있거든요. 남자 목사님들이 사과 하나를 못해가지고 이 교계가 분열이 되고 쫓겨나고 그러더라구요. 수치와 조롱을 잘 견디는 것. 이거 안 당해보고, 훌륭한 목회만 하다가 인간관계에서 자존심 상할 일 하나가 딱 오면 사과가 안돼요. 그냥 인정만하면 되는데.
어떤 경우는 사표하나만 내면 되는데 그런데 이제 문제는 교회가 갈라지니까 문젠거죠. 그 사과 하나를 못해서 그래요. 그래서 유대인 간계로 때마다 알맞게 우리를 밟아주시는 것이 아주 약이예요. 어떻게 그 환경에서 주를 위하여 참고 섬겼는지가 우리들의 역할 모델이예요. 우리는 시어머니도 나를 무시하더니 며느리도 나를 무시하네. 과장도 무시하더니. 사원도 무시하네. 이러면서 이를 갈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 마음놓고 와서 나를 무시한다는 것을 아셔야 돼요.
그런 얘기를 입에 꺼내도 안돼. 무시하는 환경이 오면 올수록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돼요. 다름 사람들은 자존심이 조금만 상해도 버럭버럭 화를 내는데, 제가 부족한데 지적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걸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사도 바울의 카리스마가 있을줄을 믿습니다. 한 마디를 못 들어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한 마디를 못 들어내요. 그니까 믿음이 연약한 사람한테는 핸드백 집어던졌다고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파이팅! 해줘야지 어떻게 거기서 복음.. 이딴 얘기 하지 마세요. (웃음) 다 사람따라 다르게 처방을 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수치를 안 당해봐가지고 분별이 안돼요. 분별이. 그래서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까지 늘 못 넘어가서 주제가가 힘들고 나 무시당해서 나 못참아 이러는데 안 믿는 사람하고 차이가 있는게 뭐예요. 그러니까, 주님을 섬기는 겸손과 인내와 눈물이어야 되요. 뭐든지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알아야 되고 구원으로 연결이 되어야 지혜가 생기고 사람과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는 성령의 작정을 하게 되는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1.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지체치 않아야 합니다.
3. 거리낌없이 회개와 믿음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 입니다.
■공통
1. 솔희, 다름이가 말씀과 공동체에 잘 붙어가게 해주세요.
2. 다름이가 성경의 경영으로 시작한 일대일 양육에 말씀이
임하고 삶이 해석되는 은혜를 허락해주세요.
3. 윤미, 혜진이, 예인이를 영육간에 지키셔서 집으로 인도해주세요.
4. 센스있는 믿음으로 목장 식구들의 신교제와 신결혼을 인도해주세요.
5. 공동체에 붙어갈 때 고정관념이 없어지고 너그러워지는 성령의 숙녀들이 되게해주세요.
6. 내 안의 아덴을 향해 성령의 격분을 하며 회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7. 정해주신 경계와 연대 속에서 성령의 알리심으로 내 죄가 보이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힘입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명 감당할 수 있게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세요.
8. 어떤 실패와 외로움, 음란에도 성령의 권면을 사랑으로 달게 듣고 돌이키는 그 한 사람 되게 도와주세요.
9. 날마다 성령을 부어주세요.
10. 코로나 재앙이 속히 멈추고, 안전한 백신이 원활히 공급되고, 부작용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장승영
1.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과 독대하는 큐티시간을 사수하며 날마다 말씀대로 성령의 작정을 하고 구체적인 적용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2. 시간을 닳아 없애는 스마트폰을 퇴근후 지체치 않고 베란다로 내몰고 현실의 삶을 성실히 살아내게 도와주세요.
3. 가족, 목장, 동료에게 거침없이 유익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이 아는 주를 섬긴 눈물, 겸손, 인내의 삶이 있도록 하루를 잘 살아가게 해주세요.
4. 제 욕심과 옳고그름으로 말씀을 비틀거나 가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날마다 가르쳐주세요.
5. 가족들의 영육의 건강 지켜주시고, 성전의 목적이 예배임을 잊지않고 모두의 예배가 회복되게 도와주세요.
■차한나
1. 아빠가 술을 끊으시기로 작정하시고 잘 지키고 계시는데 이번 한주도 지켜주시고
나아가 이 것이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어 교회에 나가 실 수 있도록
2. 아빠 헬리코박터균이 있으셔서 7일간
(이 번주 금요일까지) 약드시는데 약이 쎈데 큰 부작용없이 약 잘 섭취하셔서 그 균들이 사라질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2. 엄마의 어깨회복,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한주 되시길
3. TV중독을 (잠자기 전 스마트폰)끊고 대학원 공부와 중국어에 지혜주시고 졸업 후 취업의 길 인도해주시길
4. 차량어머니에게 주보 드리면서 추수감사주일 초청 할 수 있는 지혜와 타이밍 주시길
■정지윤
1. 한 주 큐티가 되어지는것 같다고 됐다! 한 지난주는 다시 이틀뿐인 큐티를 했고
그마저 한쪽은 읽기만 했었네요. 저는 중독자인채로 지난주 실수도 하며 용서받으며 지냈습니다. 이번한주 새 기도 드리는데 하루 하루 큐티로 예수님과
독대하게 인도해주시고 되어진 큐티가 성령의 작정으로 모이도록 도와주세요.
2. 집과 회사에서의 일과 일상에 주님이 균형잡아 주시고 말씀이 머리되는 한주 되도록.
3. 틈틈이 기도하도록 인도해주세요
4. 하나님께 기대지 않던 부분도 주님께 기대고 나누고 의지하도록 도와주세요
5. 필요한것을 주께 목장에 나누고 같이 기도하도록 도와주세요
6. 식사 적절히 하고 잠 잘 자도록
7. 가장 좋아하는것을 10분이라도 예수 이름으로 끊는 시간 주시고 우리들 지켜주세요
■이은영
1. 한 주도 주신 몫에 감사하며 주신 사명 감당하도록
2. 전도 축제에 엄마, 동생 초청해주시도록 (마음 열어주시도록)
3. 외로움이 올라올 때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김솔희
1. 함께 할 부부목장과 여자목장을 잘 인도해주세요.
2. 주님께서 이 가정의 한 목자가 되어주셔서 늘 생수가 흘러넘치는 믿음의 가정이 되도록 인도해주세요.
VIP. 부모님
■임다름
1. 엄마가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으시는데 평안함을 주시고 불면증, 눈충혈이 나으시도록
2. 양육기간 말씀에 집중하고 나의 삶을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3. 학원에서 사람들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욱하는 마음 잠재워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