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4
사도행전 19:32-41 성령의 진정
1. 무리의 분란 때문에 필요합니다. 32
당시 극장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어요. 투표권 가진 로마시민들이 시의 대소사를 결정하던 모인 장소로도 쓰였습니다. 지난주 데메드리오 선동을 듣고 바울을 따르는 세력에게 에베소 우상 아데미여신이 무시당했다고 분노하여 바울의 동료를 붙잡아 처벌하고자 몰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오늘 성경이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어요. 데메드리오의 연설로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며 모인 이유를 모른다는 거에요. 온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인민재판장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내용도 모른 체 각자 자기 소리로 떠들기만 했데요. 누가는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에클레시아라고 부릅니다. 원래 이 단어는 특정 목적으로 모인 군중을 가르키는데요. 오늘날 의회나 국회 같은 것이죠. 신약에서 교회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썼어요. 그런데 예외가 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이 구절이에요. 에클레시아 원래 뜻인 시민의 무리 군중으로 쓰였죠. 교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이잖아요. (사도행전 4:32) 화려한 에베소극장에 모인 사람들에겐 이런 화합과 일치가 없어요. 이름은 똑같이 에클레시아인데 교회같이 모였지만 극장에 모인 군중은 서로 하나가 되지 않고 각자 자기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당시 연극장은 연극 공연뿐 아니라 연설 강연도 했어요. 오늘 연극장에 모였다고 했는데 인생은 연극 같지 않습니까? 맡겨진 역할을 하면서 살겠죠. 누구는 생업을 위해 일생 시간을 쓰다가 가겠죠. 남의 인생 살다가 막이 내리면 다 허무하게 끝나는거에요.
지난주에 쇼팽 국제콩쿠르가 있었어요. 좋은 세상이 되어서 유투브로 결선을 모두 공개오디션을 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대단한 사람들 5백명이 지원하고 결선에 12명이 뽑혔는데 거기 한국 청년 한 명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주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다 붙어도 떨어져도 허무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끝날 때도 가짜를 살았다면 결론 없이 막이 내릴 것이에요. 대단한 콩쿠르에 중국 최연소 18살 우승자였던 리윈디가 어제 성매매로 체포되었다고 해요. 그 소식은 순식간에 8억뷰를 달성했어요. 믿음 없이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극이잖아요. 최고가 되면 결국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다 끝에는 돈이 있다고 했는데 돈이 생겼잖아요. 2십년이 지나도록 누리지 못하면 내가 왜 이렇게 피아노를 치지 하는 생각이 들 것이에요. 잠깐인 인생의 연극무대에 있으면 죽어라고 자기 필요를 외칩니다! 내가 왜 못 누리나! 내가 왜 떨어지나! 경제를 살려내라! 입시에서 건져내라! 보수다! 진보다! 등등 관심 있는 자기 이해타산으로 다 외치는 거에요.
데메드리오에게 선동당했다고 하지만 결국은 다 자기 이해타산으로 가서 외치는데요. 에베소 군중의 특징은 한마디로 분란입니다. 분란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지난주 29절 요란하다는 단어와 같은 어근의 단어에요. 서로 다른 여러 소리가 마구 섞여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는 어지러운 소동을 말합니다. 바벨탑의 혼란과 분란이요. 아무리 좋은 장소에 품격의 이름으로 모였더라도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만 일어납니다. 결국 왜 모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각자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합니다. 자기 소견이라는 것이 100% 죄인인 인간이 어디 선한 것이 있겠어요. 내 소견에 옳으면 그까짓 것이 요즘 세상에 무슨 죄냐! 이러고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내 소견에 틀렸으면 죽어라고 죄라고 합니다. 구원 때문에 생각을 해보는 사람이 없어요. 죄의 바로미터가 자기 소견인거에요. 그래서 싸움이 그칠 날이 없어요. 부부나 교회나 어떤 회사나 자기 소견대로 다 살아요. 바울은 청년시절 용감했어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잔멸 하는데 앞장섰어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후에 그리스도를 안 뒤에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 만난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은 달랐어요. 에베소에서 죽이고자 해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하나님 나라에 증인 된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요. 왜요? 연극배우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해도 내가 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하여 걸어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증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연극 무대에서 떠들며 외치다가 속절없이 이 땅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막이 내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를 얻고서도 스스로 실패했다는 슬픈 유언과 함께 세상을 떠난 미국 최대의 양판점인 월마트의 창업자인 샘 월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군중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니까 한 사람 두 사람 하나님 나라로 입성합니다. 아시아 관리가 돌아오고 아리스다고도 돌아오고 가이오도 돌아오고 이 소수의 사람이 바울을 돕고 일꾼이 되어 2천년 동안 인류를 변화시키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변화시키는 한 사람이 앞으로 오는 세대의 주역이 돼서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Q. 여러분은 연극 무대에서 막이 내려도 갈 곳이 없는 가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갈 곳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까? 예를 들면 암이나 부도로 막이 내릴 수도 있고 진짜 사형 선고로도 막이 내릴 수가 있습니다.
2. 군중심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33-34
아마 무리 중에 아데미를 모역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지적하는 소리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분란하는 중에도 유대인들은 위협을 느꼈겠죠. 로마에서 쫒겨난 일이 여기서 반복될까 두려웠겠죠. 에베소인들은 유대교나 기독교나 똑같이 봐요. 똑같은 분파에서 나오는 하나의 마이너 종교로 보는 거에요. 유대인과 기독교는 다르다고 알리려고 단결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말을 잘하는 알렉산더를 앞에 세워 변명 하려고 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 심지어 이슬람교도 유일신교잖아요. 그러면 아데미여신과 우상에 대하여는 유대교도 같은 의견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요? 그런데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바울과 일행을 에베소 사람들보다도 에베소 사람들을 위에 놓고 다른 무리로 취급하려는 태도는 비겁한거죠. 기회주의에요. 에베소 군중은 알렉산더가 우리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한 것이지 유대인이 아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아니고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을 너무 미워하고 있다!라고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일치단결해서 그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알렉산더든 누구든 유대인 말을 다 듣기 싫다! 입니다. 자기들에게는 오직 에베소! 아데미!가 제일이라고 외칩니다. 무려 2시간이나 외칩니다. 에베소 군중이나 유대인 군중이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니 똑같이 미움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질 못해요. 유대인 군중은 동족 바울을 미워하고 에베소 시민은 두려워합니다. 에베소 군중은 유대인은 미워하고 아데미는 두려워합니다. 거기 모인 개개인들이 서로 생각, 태도, 이권이 각자 다 달라서 미워하는 것이 다르고 두려워하는 것이 다릅니다. 군중으로 모여 하나가 되니 각자 고유한 판단이 마비되어 알 수 없는 군중의 기운에 휩쓸려 누구를 죽이려 하고 누구를 무조건 위로하는 맹목적인 호불호만 표출합니다. 이유 없이 미워하고 이유 없이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에요. 군중심리를 처음으로 의미 있게 분석한 귀스타브르 봉은 개인과는 전혀 다른 군중간의 심리를 본다고 하는데요. 군중 안에 있는 개인은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배운 것이 많아도 군중심리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군중이 나타나는 태도, 감정, 판단은 그 안의 개인에게 거스를 수 없는 본능을 자극하고 피할 수 없는 강한 전염성을 가지며 반대할 수 없는 권위로 다가오기 때문에 군중 속 개인을 지배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문제는 이 군중의 태도나 감정이나 판단이 잘못되기가 너무 쉽다는 거에요. 개인보다 군중이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믿음이 오래가지 않아요. 잠깐 지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또 금방 옮겨가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사람의 모임인 군중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무리든 요란과 분란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힙니다.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분란으로 끝납니다. 이익이 있을 때 유유상종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건이 생기면 분란하고 맙니다. 다 자기 소견이 죄인의 소견이니까 옳은 대로 늘 내편 네편 갈라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도 그렇고 교회도 공동체도 회사도 나라도 늘 죄인의 자기 소견이 각자 다 있기에 성령의 진정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진정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이든 무리든 분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차이입니다. 나는 또 우리 무리 군중은 분란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나를 믿으라 다 자기를 믿으라고 그래요. 우리 모임 가족 무리에는 절대 분란이 없을 거야! 이렇게 착각해서 다 벗어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믿어야 내 인생이 분란으로 끝날 뻔한 인생임을 인정할 수 있어요. 분란이 된다는 것을 안 믿으니까 결혼했다가 분란이 생기면 전부 다 죽거나 이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하는거에요. 믿음의 결혼은 서로를 믿게 한 거 아니고 찌질한것 드러내고 하나님 믿고 결혼했기에 사람이 아니오! 벌레!!! 라는 다윗의 고백이 이제 믿어지는 거죠. 어떤 상황도 놀라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이혼 할 수없는 것이지 내가 잘나서 의로 와서 결혼 못 하는 것이 아니에요!! 믿음의 결혼을 해야해요!!!
이번 주 우리들교회에서도 극단적인 상황이 많아서 경찰 출동하는 그런 일이 많았어요. 매주 일어나는데 결국 아무도 이혼하지 않아요. 어떤 분은 남편이 알콜 중독이 심한데 온라인 예배드릴 때도 막걸리 병을 두고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시고 직장도 제일 오래 다닌 것이 4개월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너무 잘 참고 온유하고 경건 하시는데 참고 살다가 이혼 말 나와서 우리들교회 오셨어요. 목장에서 남편 거짓말에 뻥 치시네! 했더니 온 목장 식구들이 건강해졌다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격려해주셨대요. 또 남편과 다툼으로 딸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남편이 혈기로 폭행하니 딸과 모텔로 피신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도리어 자신의 완악함을 회개하셨다고 해요. 또 한 목자님은 남편이 나가 셋이서 지내는 상황에서 본인이 얼마나 친자식과 차별을 하는지 죄를 보고 회개 되어 눈물이 났다고 해요. 어려운 목원을 감당하고 가다 보니 말씀이 잘 들리고 회개와 적용도 잘 된다고 했어요. 남편이 집을 나가 있으면 그 아들이 더 미운것이 당연한데 영어도 가르쳐 주고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것 같다고 말씀이 있으니 상처받은 가족이 모두 살아나는 것 같다고 그러니까 결혼은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에요.
여러분 인생에 분란이 생겼다면 성령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나를 찾아라! 나를 의지하라!고 부르시는 사인이에요. 분란은 성령의 진정이 있다는 사인이에요. 분란을 당할 때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며 분을 내며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없이는 영원한 분란 중에 죽을 수밖에 없는 내 실체를 인정하고 성령의 진정을 바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이잖아요. 이 시대는 절대적 원칙 진리보다 다수의 여론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에요. 검은 것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희다고 하면 다수가 동조하면 곧 법이요 진리가 되요. 출애굽 할 때 가나안 땅 다 와서 12명 정탐꾼 보낼 때 10명 정탐꾼은 가나안을 부정적으로 보고 메뚜기 같다고 보고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으로 보고했어요. 백성은 다수결 원칙으로 10명을 선택하고 여호수아 갈렙을 돌로 치우려 했고 결국 400년 노예생활 하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 것이에요. 다수결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의 훈련 때문에 다수결도 허락하시고 우리가 아직 거룩에 이루지 못했기에 군중심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캠벨 몰가는 군중심리로 떠드는 말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런 군중심리로 하나님의 교회에 전진을 막지 못한다 그런것은 교회에 위험한 것이 아니고 도리어 정치적으로 도움 받는 것이 교회에 위기의 시작이다. 이 시대는 군중심리가 왕노릇 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조금만 내 비유를 건드려도 대모, 고소, 고발, 이혼, 자살하려 합니다.
군중심리는 실체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Q. 내가 지금 외치는 소리가 군중 심리에 현혹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군중 심리에 현혹되어 지금 외치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지역감정, 진영논리, 주식, 입시, 경제 등등에서 한마디만 하면 못 들어주는 말은 무엇인가요?
3.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35-41
35-36/40-41, 소요가 2시간이 넘게 지속되자 민회를 책임지는 서기장이 나서서 모인 무리를 진정시킵니다. 진정시키다는 헬라어는 제자리를 떠나 무질서하게 마구 튀어 오른 것들을 잡아서 제자리에 다시 잘 넣어둔다는 뜻인데요.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36절 가만히 있어도 진정이 되어서란 말이에요. 진정은요 질서가 가장 중요해요. 역할! 질서!! 소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질서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미물만도 못한 인간에게 세례받으셨어요.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마지막에 십자가로 끝났어요. 질서 지키는 것을 성경은 어디나 똑같이 얘기해요. 당시 로마는 황제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민회가 일으킨 소란을 가만 놔둘리 없었어요. 서기장은 시정부와 로마정부 사이를 오가는 연락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진정시켜야만 했습니다. 말씀이 왕노릇을 해서 구속사를 깨달아야겠는데 억지로 순종하라고 하니까 들고 일어나는 거죠. 교회도 억지로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연극장을 혼란에 빠트렸던 무리의 외침이 서기장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수그러들었는데요. 서기장이 시민들에게 한 연설내용은 크게 2가지입니다.
1)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 신전지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시민들이 크다! 에베소 사람들! 아데미 여신! 이라고 외칠 필요가 하나도 없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합니다. 팩트인데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아데미를 높이면서 진정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2)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대표하는 사람들 즉 두란노 서원에 날마다 모이는 사람들 때문에 너희들은 흥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37-39, 내가 가이오 하고 아리스다고를 보면서 팩트체크 해보니 신전인 아데미여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저지른 잘못이 하나도 없더라. 그들 때문에 분란을 일으킬 이 일이 없더라. 고린도에서도 갈리오 총독이 바울을 잡아서 고소를 했는데 부정한 일도 행동도 없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데메드리오가 대표하는 직공 조합이 피해보상을 청구하려면 정식으로 민회에 고발 절차를 밟으라는 권고를 했어요. 민회가 행정적인 시의회에 등록하는 거에요. 당시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시의회를 소집할 권리와 자유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집회를 가질 경우 처벌이 엄격했죠. 서기장은 이 모임을 소유사건이자 오늘 불법집회라고 규정을 하고 이 모임은 흩어져야 할 모임이라고 규정을 했잖아요. 합법적인 절차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했어요. 이 단어가 민회 에클레시아라는 교회라는 단어와 같은 참 아이로니컬 합니다. 교회도 불법적으로 하지 말고 소동이 나도 성령의 소동이 되며 성령의 진정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해야 하는데 늘 잘못한 사람한테만 잘못했다고 얘기하는데 다른 길이 있다고 자꾸 얘기하잖아요. 자기 소견으로 얘기를 하니까 이런 것을 불법적으로 행하는 것이 많다고 하는 거죠. 원칙이라는 것은 좁은 길이에요. 우리는 서기장이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요. 중요한 점은 그가 연극장에서 일어난 분란 사건을 진정시켜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졌다는 거죠. 그 역할에 충실해서 분란을 진정시켰어요. (잠언 16:4) 우리는 서기장 때문에 너무 기쁘고 이런 것도 안 해야되요. 하나님이 하시는 거에요. 이 사람이 예수 믿었단 소리가 없잖아요. 항상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어요.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있는 거에요. 이 셋팅은 여호와께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러분 선동당한 군중심리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도 사회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고 그 경험이 현재 진행형이잖아요. 선동당한 군중을 막는 일은 아주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니까 데메드리오가 선동만 하고 사라졌어요. 이것이 선동꾼의 실체에요. 교묘한 말로 무리를 선동해서 큰 분란을 일으켜 놓고 책임소재가 생긴다 싶으면 자취를 싹 감추어버립니다. 선동꾼은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하는 사람의 말을 믿으면 안되요. 남은 것은 선동된 무리인데 이들은 잠시 뒤를 모르고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아요. 알렉산더가 나서려고 했는데 알렉산더가 우리는 바울처럼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 이거 맞는 얘기잖아요. 팩트잖아요! 절대로 안 들려요! 왜? 그 말을 했을까? 이런 것 생각 안해요! 서기장의 말은 아무리 성난 군중이라도 끝까지 무시할 수가 없어요. 서기장은 로마 정부의 권세를 대표하기에 끝까지 무시했다가는 자기들도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잖아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 권세가 필요할 때가 있더라구요. 이 한사람 이 한사람의 권세자가 전체를 바꿀 수가 있기도 해요. 그런데 믿음이 좋아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권세를 쓰시는 거죠. 세상 권세가 두려워 세상 말을 들으면 세상 진정으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진정이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매일 소동하는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마음 자체가 사건이 없어도 마음 자체가 죄의 파동으로 소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어요. 소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 술, 담배, 여자, 남자, 돈, 권력을 찾고 무엇이든 나를 진정시켜 줄 것 같은 것을 찾아 늘 헤매고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입니다. 또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동을 일으킵니까? 말씀이 내게 임하면 내 실체가 보이고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가 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납니다. 해석 없이 해결만 찾아 소동하는 마음이 드디어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 진정됩니다.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야 진짜 해결이 됩니다. 소란스러운 사건을 당할수록 하나님 앞에 가만히 있는 시간! 내 외침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조용히 기울이는 시간! 음성 듣는 시간! 큐티하는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을 알아야 인간의 원칙을 알게 됩니다. 소동은 너무 싫고 진정은 좋아요. 그러나 소동이 있어야 내 실체를 감추고 있는 포장이 벗겨져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진정이 되었다고 완주해서는 안 되고 또다시 생기는 소동을 있어야 할 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성령의 진정이고 성령의 소동입니다.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의 진정, 성령 소동도 성령께서 우리의 거룩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동을 소동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 진정이 되어도 절대 성령의 진정이 되지 않아요.
젊은 남편의 치매, 알콜중독이 와서 온 교인이 큐티 기도회에 날마다 기도하고 있어요. 이것 때문에 주님을 만나야 되겠는데 아내 집사님 변하지를 않아요. 이것이 성령의 진정이 성령의 소동이 되지 못해요. 듣고 싶은 얘기만 듣지 말고 우리가 정말 나를 위해서 진짜 얘기를 해주시는 그것을 들어야 하는거에요. 우리들교회 청년부 출신으로 불신결혼 후 남편과 외국에 갔어요. 식당사업 하는데 코로나로 힘들다고 해요. 그러니 공동체가 그립고 외롭다고 합니다. 이번 주부터 목장참석예정입니다 힘들면 생각나는 공동체에요. 소동은 소동이 되어야지 소동이 안 되면 흘러 떠내려가도 그래도 맛을 보면 돌아오더라구요. 믿음이 없어도 어떻게든 나오게 하고 힘들기에 목장에 돌아오더라구요. 성령의 진정이 되려면 이런 모든 것들이 필요합니다.
Q. 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얼마나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은 원칙을 지키십니까? 지금 흩어져야 할 모임에 있는 모임은 무엇입니까?
원칙을 지키려면 영적으로 큐티를 하시고 육적으로 공동체에 들어가셔서 날마다 물어보세요. 큐티하시고 그래야 영육간에 원칙을 지키게 되어있어요. 물어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세요. 이것이 유익을 구하는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서기관은 이 모임을 해산시키는 것이 한계에요.
성령의 진정은 소동을 잠재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낳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도제목]
은우
1. 하나님의 원칙대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로 진행/마무리 할 수 있도록
2. 작품전시가 소동이 아니라 성령의 진정 될 수 있도록
3. 모든 소동에는 끝에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말씀으로 사명 찾아 더 나아가도록
은진
1. 성령의 소동이 올 때 성령이 진정해 주시는 말씀이 생각 나서 에덴으로 걸어 나올 수 있는 힘과 용기 주시도록
2. 어지러움증이 와서 영육이 힘이 드는데 병원 진료 받고 올 수 있도록
3. 화수목 치유 캠프 잘 다녀오고 힘들면 바로 집으로 오도록
크리스틴
1. 말씀, 일, 생활에 발란스 잡으며 한주 잘 살아 낼 수 있도록
2. 두달 전에 네번째 발가락 다쳤는데 아직도 회복되어지지 않아서 걱정이 됩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 될 수 있도록
3. 의사 선생님 추천 잘 받아서 아픈 마음이 치료 될 수 있도록
지향
1. 군중의 소리에 현혹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시간 가지도록
2. 결혼식 아니라 결혼예배가 되고 과정 가운데 성령님 함께 동행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3. 양육 과제가 아니라 예수님 만나는 시간으로 양육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예선
1. 갈곳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자녀, 백성, 시민인 것 알고 말씀 따라서 하루만 잘 살기
2. 말씀이 원칙이 될 수 있도록 양육 잘 끝낼 수 있도록
다인
1. 손이 많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일반은총의 은혜로 손 치료가 잘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2. 불안하고 무기력합니다. 처방 받을 수 있는 힘과 용기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3. 양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열심을 내려두고 주님을 전 인격적으로 만나서 인생이 해석되는 은총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보련
1. 한주 잘 살기
2. 양교 끝까지 잘 받고 숙제 꾸준히 하도록
3. 내가 만족하는 삶 아니라 나의 인생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 알고 말씀으로 매일 기도 할 수 있도록
현경
1. 날마다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것이 원칙임을 알고 나, 가족, 목장 위해서 중보 하기
2. 자립신앙과 구원을 위한 기도하고 양육 잘 끝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