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 여호와께 돌아가자 (겔 28:11-26) 이효숙 평원지기님
여호와인 줄 알아야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있다.
오늘 본문은 화요일부터 계속되는 두로의 멸망에 대한 마지막 말씀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멸망을 선포하고 이어 이방나라 향해 멸망을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은 두로와 시돈에 관한 멸망을 예언한다.
두로는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시돈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부자도시였다. 두로와 시돈은 한 나라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부자이고 이방나라인 두로를 향해 멸망을 외치는 것이다.
이방 향해 믿음의 문이 열리는 사도행전을 묵상해왔는데 이방나라인 두로 같은 저를 향한 말씀이라 생각한다. 실제로는 두로는 그 견고하던 성이 알렉산더대제때 자신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던 그 바다로 하나도 남김이 던짐 받는 철저한 패망이 있게 된다.
이세상에서 가지고 누리는 것은 그것이 인간관계든 가족이든 인정이든 직업이든 인생의 마지막에는 멸망하고 잃어버리게 될 것인데 지금 당하는 나의 고난에서 여호와께 돌아가는 인생이 되어 영원히 멸망치 않는 천국을 얻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해주셨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것에 집착하고 바다 한가운데로의 심판을 경고로 듣지 못했기에 철저히 두로처럼 패망한 저의 삶이었다.
김태현 목사님께서는 본인이 암몬 같다 했는데 저는 망한 것으로 치면 두로 같다 할 수 있다. 그것도 큐티인 며칠동안 계속되듯 여러번 망한 두로 같은 저이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믿는 이스라엘 백성도 이방인 두로 같은 인생도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데 저의 삶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간증을 함께 나누겠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은
1.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1-12절
슬픈 노래 애가는 죽은 사람 위해 장례해서 부르는 것이니 두로가 망한다는 것이다.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세상에서의 모습도 그러하겠지만 하나님이 두로를 바라보시는 마음이 그러셨을 것 같다. 도장이라는 것은 소유자의 신분이나 위치 등을 나타내는 것인데, 유다의 도장 요셉이 사용했던 바로의 도장이 기억난다.
예전에 로마 배경의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반지로 된 인장을 벽에 찍으니 사람들이 그 도장을 보고 다 놀라는 장면이 있다. 그 도장이 그 실물의 대단한 신분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으로 하나님 자체를 나타내는 신분이다. 저는 그런 도장으로 부르셨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도장을 찍으면 주변이 하나님의 가문이구나 하고 깜짝 놀라는 그런 삶으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이끄시길 원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십자가를 길로 놓는 삶으로 도장찍는 인생이어야 하는데,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마음이 부유하고 부자의 특징인 가족신앙과 우상으로 뭉쳐있으니 하나님의 애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저는 불신가정에서 교육자이신 부모님의 첫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모범생인데다 친척어른들과 언니오빠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모두에게 이렇게 사랑 받고 살았는데도 두로의 교만처럼 다 이렇게 사는것이 아닌가 싶어 무엇이 부럽다고 하는 줄 몰랐다. 이런 삶을 살다가 중3때 친구 만나 교회 가게 되었고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방언도 받았다. 두로와 같이 믿지 않는 집인데 하나님께서 저를 택해주셨다.
그때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교회와 예배가 너무 좋았다.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성경을 보는것이 꿀송이 처럼 달았고 믿지 않는 부모님과 형제들, 주변의 친구들이 이 좋은 예수님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부모님과 동생들과 친구들이 교회를 같이 다니게 되는 기쁨도 주셨다. 그때 전도했던 후배가 이번 목사님 미국집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씀의 가치관이 없었기에 삶의 목적을 정확히 몰랐지만 학생의 삶이기에 별반 다르지 않게 공부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S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시절은 내가 누구인지를 통째로 흔들어놓았다. 내게 잘해주는 하나님만 알았기에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통에 대해 해석할 힘이 없었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고 체포 소식을 들었고 교내로 들어온 전투경찰 지나 강의실로 가고 수업거부와 데모 분신사건들 수시로 터지는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기도 했다.
아침기도모임에 참석하여 말씀을 읽고 기도를 했고 믿음의 동료들과 기도원을 가기도 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미팅가고 클럽도 가고 이문세 노래를 좋아하며 대학의 유흥을 즐기는 그야말로 어디에 속한지 모르는 삶을 살았고 어느 모습이 진짜 저인지를 저도 알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열린 뜨거운 구국기도회때 헌신해서 일어나는 크리스천 동료들 사이에서 마음은 뜨거웠으나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랐고 그 결론을 따라 세상 조류를 따라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카리스마 있고 부잣집 아들인 남편을 택해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왔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도장인 제 본분을 잊고 부자 동네 아파트에서 살며 내 가족의 안녕과 행복만 추구했다. 부동산 주식 해외여행으로 돈과 시간을 소비하고 가난한 동네에 있던 교회 지체들을 무시하며 조용히 교양있게 끊어내고 믿음의 공동체는 필요없다 하는 제가 바로 두로였다. 이런 저를 사건으로 부르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인정된다.
친정엄마의 혈액암과 2년의 투병 끝에 소천하시고 장례를 치루고 돌아온 날 남편이 외도로 가출했고, 집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그로부터 남편의 외도는 25년간 지속되었다.
모범생으로 자랐기에 욕먹어본 적 없던 제가 남편에게 매를 맞았을 때는 수치심으로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나는 매맞는 여자여서도 안되고 바람 피는 남편의 아내여서도 안된다는 높은 자리에 앉은 교만이 죄이고, 그 죄가 나를 괴롭히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을 당시에는 잘 몰랐다.
남편은 여자도 있었지만 혈기와 분노조절이 안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나마이트를 품고 사는 시간들이었다. 남편이 한 여자와 25년간 이중생활 하는 것으로 결혼생활 내내 저에 대한 남편의 핍박에는 그 여자의 존재를 피할 수 없었고 제 속 온갖 감정을 계속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남편의 수고가 아니었다면 그 여자를 죽이고 싶은 살인 분노 지옥불에 타는 것 같은 질투의 감정들이 제 속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 같다.
하루를 살아야 했기에 눈만 뜨면 들게 된 큐티책을 보며 내가 생각하던 나,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와 하나님이 바라시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말씀을 통해 나의 죄된 모습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인 나의 진짜 신분을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13-14절
에덴과 비교할 정도로 보기에 좋고 아름답다 하고 온갖 보석으로 단장되고 지음 받던 날에 소고와 비파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하는 인생이라 한다. 말씀을 붙잡지 않고는 살수 없어 매일 큐티를 했고 외출할 때 큐티책을 소지하기 힘들때는 큐티책 하나를 더 사서 그날 본문을 찢어 핸드백에 넣고 나갔다. 남편이 바람을 피는 것은 약간의 믿음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참고 가더라도 한 여자가 계속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는데 제가 남편에게 거절당하고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도장찍는 일이라 느꼈던 것 같다. 정말 찌질하고 거지 같은 감정으로 더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혼을 하든지 죽어서라도 그 상대를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그 두려워하던 일이 다 드러나게 되었다. 그때 큐티가 요한계시록이었다.
제 자신의 죄로 인한 환란이 큐티를 해가면서 말씀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예수님으로의 환란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두렵던 일이 밝혀지니 이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마음에 하나님 앞에 통곡하고 울었다. 많이 참고 견디고 왔는데 남은 인생을 남편 바람과 이중 생활로 제 인생을 다 소비해야 하냐고, 용서해서 마음 편하고 싶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이렇게 하나님께 등돌릴 것 같으면 차라리 나를 천국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도 습관으로 떨리는 손으로 큐티하니
계 1:9절
제가 이미 들은 말씀이 있으니 이혼 할 수도 없고 같이 살면서 남편이 이중생활을 하는 밧모라 하는 삶이 저의 말씀으로 들렸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갇힌 고난 가운데 큐티의 글자가 크게 확대되어 다가왔고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크게 들었다.
이후 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생각한 환란인 남편이 쭉 바람을 피고 이중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제가 당하는 환란으로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공동체 형제의식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남편 바람 고난으로 가장 많이 회개하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 제가 혼자서 제 가정만 생각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고 악한 일인지 알게 된 것이다.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형제라는 것이 절절해졌다. 내 고난보다 내 죄가 더 크다는 것이 깨달아졌고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지듯 이것만은 안된다고 외치는 저에게 남편 바람의 고난을 십자가의 흔적으로 주시고 내 힘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이루어주심이 믿어지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혼동 가운데 살던 저를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으로 살도록 남편 바람의 도장으로 새겨주셨고 반짝반짝 보석으로 닦게 해 주셨다. 출장 가방에서 여자 옷이 나오기도 했고, 저는 명절 3-4일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종가집 시댁 가서 일해야 하는데 남편은 괌 필리핀으로 해양스포츠와 골프를 즐기러 그녀와 여행갔다가 아침에 본가로 오곤 했다. 그런 남편을 견디며 제 고난을 닦아나갔다.
그 당시에는 제가 겪는 남편 고난의 간증을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하게 될 줄을 몰랐다. 예전에는 누가 망한 소식 들으면 우리집은 안 망해서 다행이다 하며 감사했는데 각종 고난 겪는 지체들이 모인 우리교회 목장에서 여러 기가 막힌 고난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내가 다 당할 수 있는 일인데 모든 종류의 고난을 주지는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는 수준 안 되는 나에게 내게 감당하지 못할 고난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 바람의 고난이 내게 딱 맞는 하나님의 완전한 고난임이 받아들여졌다.
계 21장 큐티 하면서 새 예루살렘 성전을 보여주시는데, 제가 성전이고 내 삶이 투명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삶이 되어야 함이 느껴졌다. 우리교회 목장이 새 예루살렘 성전의 성곽과 같다고 하셨다.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오늘 본문의 보석들과 비슷한 것 같다. 나를 위해 죽어지신 예수님 따라 고난 감당하며 내 고난 오픈하며 말씀으로 닦아 보석처럼 빛나게 된다고 목사님께서 요한계시록 설교에서 말씀해주셨다.
목사님 고난은 금강석 같다고 했는데 저는 바람 하면 음란 시기 질투니까 붉은색 홍보석이 아닌가 싶다.
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라는 고백을 여러 사람에게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나 무시했던 레아의 당당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조강지처로 핍박 받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내연녀로 산 곤고함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각자의 구속사라는 것이 인정이 되니 내연녀로 살았던 분과 함께 즐겁게 목장을 해올 수 있었다.
각자의 다른 색의 보석으로 천국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우리들 목장이라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든 지금 처해있는 자기 현재의 고난을 인정하고 고난을 드러내고 보석으로 닦아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모습이다.
적용) 툭 치면 나오는 나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이 고난이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이 인정되십니까? 그래서 이 도장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은
2. 네가 범죄하였도다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15-16절
우리교회 목장에 와서 많은 분들이 죄 이야기에 대해 거부반응 보이는 것을 경험해 왔다. 사랑이신 하나님인데 왜 자꾸 죄 이야기 하는지 부담스럽다고, 심지어 어떤 분은 죄라 하지 말고 치우친 것이라 표현해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죄는 죄이다. 미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말씀을 내 삶의 이야기로 듣게 되는 구속사의 큐티가 안되면 자기 죄를 볼 수 없는 것 같다. 밝은 햇빛 같은 말씀 앞에서 죄의 티가 잘 보이고 말씀의 밝은 빛이 드러난 다른 지체들의 나눔이 거울이 되어 나 자신의 죄인된 모습이 더 잘 보이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 나눌 때 네가 범죄하였도다가 나를 향해 하는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
제게도 끼리끼리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환경에 있는 분들이 모인 우리 교회의 목장모임을 통해 서로가 거울이 되어 내가 범죄하였도다의 말씀이 더 다가오게 되었다.
제게는 벅찬 남편고난이었지만, 목원집사님들의 나눔 통해 저는 듣도보도 못한 처절한 고난을 걸어온 지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아픈 마음이 들었고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모르고 있는지도 보였다.
제가 나름 공부하느라 힘든 삶을 살았다고, 중학교 때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학원 새벽반을 듣고 등교했다고 나눔했다. 그랬더니 어느 집사님이 자기는 새벽 네시반에 일어나 고추 따다가 다른아이들이 학교가는 거 보면 집 가서 늦지 않으려고 뛰어서 학교갔다고 한다. 이런 것은 양반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절한 고난과 아픔가운데 살아오신 수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듣고 있다.
두로처럼 환경이 무역이 많고 풍요할수록 범죄함이 크다. 목사님께서 겸손한 환경이 있을 뿐이라 하는데, 그나마 돈도 없고 환경이 막아지면 강포하기 힘든 것이 있지만 세상적으로 강성한 환경에서는 강포의 범위가 더 커지게 된다.
내가 세상에서 가지고 누리고 즐긴 만큼 심판이 주어진다고 한다. 저도 제가 돈이 있는 만큼 돈으로 다 해결하려 했고 자리가 안되어 못한 것이지 손윗동서 시누이, 엄마 아내의 권세를 부렸음을 알았다. 너를 더럽게 여겨 네 지혜를 더럽혔으며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으며 라는 표현이 19절까지 나오는데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대로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자꾸만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저에게 더럽다 하시고 도저히 참으실 수 없어 쫒아 내고 멸하고 땅에 던지고 불로 사르고 재가 되게 하고 아는 자들이 놀라고 공포의 대상이 되고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내 범죄에 대해 내 죄악과 불의와 더러움에 대해 말씀하신다.
매일 큐티하며 내가 범죄한 것을 알아야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를 할텐데, 범죄한 것 자체를 몰랐으니 어떻게 회개를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불신결혼 이혼 낙태 동성애에 대해서도 죄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았다. 곰베팔이라도 신결혼한다는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았고, 바람 피면 당장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될 수 있으면 낙태는 안해야겠지만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면 낙태해야 하지 생각했다. 동성애도 시대의 조류면 인정해야 하지 않나 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에게서 사랑 받는 자리에서 쫒겨나고 질투와 분노로 불타는 돌들 속에서 멸해졌다.
17-19절
행복한 결혼으로 주변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남편의 바람으로 던져지고 구경거리가 되었다. 거기다 부요하던 집이 부도가 나서 불에 사르게 되고 남편이 감옥까지 가며 더 망하며 재가 되게 하셨기에 우리 가정을 아는 사람들은 다 놀라고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가 언제 이혼하나 하며 우리 가정이 다시 있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하였다.
오랜만에 한 친지를 만났을 때 다들 우리가정이 이혼한 줄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이 정도면 도저히 살 수 없다 생각했다. 부도 나기 전 양육 받으며 3주차에 이사야 6장, 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고 사명을 받는 말씀에서 13절 부분에서 극심한 갈등을 느꼈다. 제 가족만의 행복을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가진 부를 유지하려고만 했고 어떤 불행도 나와 내 가족에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또 제게 주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헌신짝 처럼 버린 죄를 고백하고 사해주심을 경험했지만 그 중 1/10이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우리가정이 경제적으로 망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들렸다.
그때까지 남편바람과 폭력으로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었기에 부도가 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여 질 수 밖에 없었다. 망하게 하려면 진작 망하게 하셔서 익숙하게라도 하시던지, 이제 와서 겪어보지 않은 경제적 고난을 어떻게 걸어가라 하시냐고, 예수 믿고 가는 걸 온 동네가 다 아는데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부도가 나면 가재도구가 다 나가고 빚쟁이들에게 머리채 잡혀 끌려나가면 무슨 덕이 되겠냐며 마음의 항변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속의 갈등이 컸으면 숙제를 빨리 끝내야 하는데 한 자리에서 여섯 시간을 앉아있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정말 성령충만이 갈등충만이 맞다.
그래도 양육되었던 말씀이 있었기에 결국은 말씀이 반감들을 이겼고 적용 란에 부도가 나서 삼키운바가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루터기로 남기실 것을 믿는다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 제 눈에서 회개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바로 직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이 저를 사로잡았다.
지금 와서 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준 안 되는 나를 기다리셨다는 것을, 나와 우리 가정의 범죄함으로 인해서는 벌써 망해도 망해야 하는 것을, 남편 고난에 숨을 헐떡이는 제 수준을 아시고 그냥 기다려주셨구나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졌다. 그러니 앞으로의 환란을 나는 걸어갈 수 없지만 여태까지 나를 행여 부서질까 업고 안고 오신 주님이 뭔지 모를 걸어보지 않을 환란도 함께 걸어가주시겠구나 하는 담대함이 생겼다. 저는 제 자신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후 부도가 나서 집이 경매되고 가재도구가 딱지에 붙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간들을 보냈지만 물불을 잘 통과하며 지나올 수 있었다. 부도가 난 남편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고 교회 공동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적용) 재물 쾌락 권세 능력 부모 형제 친구 자녀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마땅히 여기며 없는 자를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3. 무리가 여호와인줄 알게 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20-22절
시돈은 바알숭배의 본거지로 왕의 호칭을 엡바알이라고 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시돈 왕 엡바알의 땅이었다.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울숭배의 길로 가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심판을 당하게 한다. 심판의 사건을 당할 때 거룩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본 무리도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게 되는 증거가 된다.
사업까지 더 잘되는 부를 누리며 이중생활 하는 간음을 행하고 많은 선교헌금에 여러 후원을 하니 믿음 있다 인정받은 우리 가정이었다. 세상과 간음하며 범죄하고 교회와 주변지체까지도 세상적 가치관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리 가정을 향해 부도와 남편 감옥 가는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대적하시며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시고 심판을 행해서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셨다. 이사건들을 바라보는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되는 사건이기도 했는데, 목사님께서 당시 마태복음 설교를 하며 제 나눔을 이야기해주셨고 큐티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써 주셨는데 그 책을 읽은 분이 가정의 위기에서 우리 교회와 목장에서 가정을 지키게 된 일도 있고, 남편과 함께 감옥에 수감되었던 부인을 전도해서 이혼위기의 가정이 지켜지는 일도 있었다.
남편 바람사건에 어찌할 바 모를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길을 인도해주시면 저도 누군가의 앞길을 비춰주겠다는 서원기도를 했던 것이 생각나는데, 그 기도를 응답해주신 것 같다.
23-24절
남편의 바람으로 깨어진 부부관계 부도로 집을 옮겨 다니고 생활고에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한 결과로 큰아이는 탈선과 행동장애, 작은아이는 ADHD 학습장애로 약을 먹으며 병에 시달리는 시간을 오래 지나왔다. 학교에서는 일진이라는 노는 아이들이라는 그룹에 속해있던 큰 아들은 하루도 쉴새 없이 사건사고를 벌이고 다녔기에 저는 학교에 불려다니며 사건을 수습해야 했고, 모범생으로 인정받던 저는 그야말로 죄인이 되어 선생님들과 상대방 부모에게 혼나고 비난 받는 입장이 되었다. 장물 오토바이를 타다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하고 사고 나서 다리 다쳐 다리 전체를 통깁스를 하고 다니기도 했는데 깁스가 답답하다고 난리치며 자기가 깁스를 망치로 깨고 나가 돌아다니니 치료해주시던 의사선생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린다 하고 부엌칼을 들고 다 죽여버리고 자기도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분노로 밤 2-3시에 베란다 유리를 깨는 일도 있었다. 그야말로 밤낮없는 전쟁이 계속되었고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거리에 피가 흐르고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서 엎드러지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 보다도 제 마음이 상한 것은 큰 아이가 작은아이를 때려 얼굴이 다 터져 피투성이가 되어 응급실에 가고 부러진 코뼈를 수술하게 되었을 때이다. 가해자도 자식이고 피해자도 자식이니 아픈 아이를 있는 대로 혼내고 욕할 수도 없고 다친 작은 아이 때문에 마음껏 울 수도 없는, 그냥 제 속이 찢기고 엎드러질 수밖에 없는 아무 말 못하는 상황이었다.
귀신 들린 것 같은 아들 때문에 저는 정신 줄 놓을 지경으로 부르짖었고 부르짖을 기운도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온 목장식구들과 지체들은 저보다 더 울며 아들과 우리 가정을 위해 애타게 기도해주셨다.
저는 이곳 휘문에 들어서면 춥고 더운 그 때 이곳에서 못 깨닫는 나를 향해 피를 토하듯 외치시는 강단의 목사님과 저와 제 가정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시는 지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병원 퇴원 이후 독한 약 기운 때문인지 널부러져 눈동자까지 풀린 아이를 보며 이 아이를 어쩌실거냐고, 죽이실거냐고 제가 주님 따라 온 결론이 이것이냐고 살려내시라 소리지르며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은 네 새끼가 아프니 가슴이 찢어지느냐, 나는 내 새끼가 아파서 가슴이 찢어진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제 마음을 울렸다. 두로 같은 제가 내 자녀는 무너지지 않겠다고 성을 쌓던 교만이 처절히 무너졌다. 아들이 엄마는 왜 나를 낳았냐고 소리지르는 것을 들으면서, 거슬러 올라가 교회를 다닌 남편이지만 사실은 불신결혼 한 것이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아들의 탈선 행동들을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력함 가운데서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편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아들이 이렇게까지 수고를 하고있구나가 인정되었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간증을 들으면서도 아이에게 무릎꿇는 적용을 못한 것은 제가 대놓고 아이들에게 가해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과는 아이들을 때렸던 아버지나 집 나갔던 엄마가 한 것이라 생각했다. 힘든 남편과 살아온 것도 엄청난 일이라 남편이 아니라 내가 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말씀 듣고 자기 죄를 보는 그 사람이 사과해야 함을 알고 아들에게 무릎 꿇고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제 눈물이 흘렸고 당시에는 야수처럼 변해버린 아들이었지만 예전에는 어린 눈망울로 미끄럼틀을 타며 엄마를 찾고 손을 흔드는 아들의 어릴 때 모습과 바람피는 남편에 대해 분히 여겨 우울한 얼굴로 힘없이 아이에게 손 흔들어주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할 그때에 내 인생을 해석하지 못해 그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가지고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은 그래서 지금 와서 어쩌라고 하며 잡는 내 손을 뿌리치고 나갔기에 그 당시에는 이런 사과의 말이 아들에게는 안 다가간줄 알았다. 한참 더 지나서 아들이 공익 할 때 이 때를 기억하며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속에 빽빽한 구름이 가득 차 있었고 답답했는데 엄마가 그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말을 듣고는 그 구름이 다 걷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행동은 하던게 편하니까 그냥 하고 싶은대로 했지만 마음속의 분노는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큰 아이는 우울증의 밑바닥을 겪으며 학교를 자퇴하고 게임만 하며 밤낮을 바꿔 지내는 생활을 했다. 아이는 분이 나면 욕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다 뒤로하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 보란 듯이 컴퓨터 앞에서 먹곤 했다. 머리는 자르지 않아 길고 수염은 덥수룩한 것을 보는 아들을 보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었다. 내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대단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잘못으로 이렇게 된 아들의 욕을 먹으며 엎어버리는 밥을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것인가 하는 질문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
아들은 김치볶음밥 하면 어제도 먹었는데 내가 이런 것 먹는 것 봤냐고 하며 오므라이스 하라고 명령하고 오므라이스 해주면 왜 맛이 이렇냐고 엎어버리고 일부러 컵라면에 물을 부어 먹었다.
이렇게 애 쓰고 기도해도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데, 이런 것이 사명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이전을 생각하면 많은 것을 포기하며 내려왔지만 이렇게 섬기니 좋아져야 할텐데 하는 욕심이 떠나지 않았다.
큐티가 욕심을 가지치기 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매일 큐티 하며 걸어가다보니 기도 응답으로 제게 허락하신 자녀들의 고난에 대해 깨닫게 해주셨다.
목사님이 주일 설교를 통해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한국인 조승희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부모도 그 사실을 몰랐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저는 적어도 제 아들이 우울증과 분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엄마인 내가 내 죄를 깨닫고 아이를 깨닫고 감당하고 있는 것이 머리도 좋고 예민한 아들이 바깥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속이며 많은 사람에게 피해줄 수 있는 것을 막는 어마어마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승희에게 죽임 당한 아이들과 그 가족들과 친지들까지 합하면 내 아이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안녕을 지키는 사명 감당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었으나 기쁨 없던 일을 기쁨으로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언제 회복될까 하며 초조해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냥 쭉 이대로 내가 죽는 날까지 아들이 엎어버리는 밥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했다.
오픈 하고 온 아들의 모든 사건들은 힘든 자녀들을 둔 부모에게 위로와 증거가 되었는데, 두로 같은 우리 가정의 심판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고 우리가 하나님을 여호와인줄 알게 하는 통로가 되었다.
적용) 어떤 심판의 사건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심판의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애를 써서 고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심판의 사건으로 다른 사람이 살아난 적이 있습니까?
4.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평안히 살게 됩니다.
25-26절
우리 교회목장은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는 믿음의 이스라엘족속이 모인 곳 같다. 두로의 멸망에서 경고 받고 각자의 두로 같은 모습에서 여호와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분들이 목장에 참석하는 것 같다. 세계 각지에서도 목장보고서를 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외하는 분들이 많은데 코로나로 인해 더욱 그 지경은 넓어져서 각 목장마다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목장 참여하는 분들이 많다. 제 목장에도 일본과 대만에 계신 분이 함께 참여하여 그분들의 고난을 해석하고 양육 받으며 가고 있다. 이 목장은 문자적으로도 그분들에게 고국 땅이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야 할 천국의 가치관으로 나눌 고국 땅이고,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거짓말 하는 야곱같은 우리들에게 주신 땅이다. 야곱같은 죄인인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말씀이 어떻게 우리 삶에 이루어지는지를 나누고 가는 것은 내가 여호와께 돌아가기 위한 양육을 위해서도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양육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같은 본문말씀으로 공유하는 공동체에서 자신의 고난의 이야기들을 오픈하고 가는 것은 영육간에 평안히 살게되는 일인 것 같다.
큰아이 고난을 겪을 때 목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큰아이가 처음 가출 했을 때 제가 속한 목장 모임 가서 바로 이야기 했는데, 나름 내 죄도 깨닫고 상황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온 주변에 난리 치며 찾아다녀야할지 알수 없었다. 목장 식구 중에는 어릴 때 가출을 많이 한 집사님이 계셨는데, 자기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아무리 무섭게 인상쓰고 소리질러도 아이는 아직 아이일 뿐이라며, 한쪽으로는 두렵고 떨릴 것이라 이야기 해주었다. 자기도 그랬다고 했다. 처음 가출했을 때는 보통 홧김에 나가기에 준비 없이 나가는데 하루 이틀 지나 가출공동체를 만나면 용기를 얻게 되고 경험자들로부터 조언을 얻어서 장기로 가출할 준비를 하게 되니 집에가서 빨리 현관비밀번호를 바꾸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제가 머리가 쥐나도록 생각해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집에 몰래 들어와 돈 될만한것을 들고나가게 되면 그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고 했다. 저는 목장이 끝나고 집에오자마자 비밀번호를 바꾸었고 그 다음날 낮에 외출하는데 아들이 전화가 와서 왜비밀번호 바꿨냐고 지랄이냐고 소리질렀다. 망 보다 내가 나가는 것을 보고 집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저는 밖에서 배고프지 않냐고 빨리 집에 들어오라고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타일렀고,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반기며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었다. 이후에도 화나면 뛰쳐나가고 친구 집에서 자고온다고 늦게 들어오긴 했어도 가출을 하지는 않았다. 자기말로도 집이 편한데 왜 가출해서 고생하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만만하게 보이던 엄마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고 느낀것 같았다.
목장에서 나누는 것 만으로도 영적으로 해석도 받고 기도도 받고 육적으로도 도움 받으니 목장은 정말 세계적인 대안인것 같다. 날마다 큐티 예배 목장을 하며 날마다 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일을 살라고 하면 갈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날그날의 괴로움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괴로움을 겪지는 않았다.
이런 저에게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딱히 된 것은 없지만 사회복무요원 마치고 안 다닌다는대학에도 복학하겠다고 하는 큰아들이 여자친구가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 같은 아들이지만 그래도 들었던 말씀과 간증들이 있었던 터라 아이를 낳자며 여자친구를 설득했고 곤고한 아들과 여자친구가 예배를 사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낙태의 위기마다 공동체 집사님들이 낙태죄의 회개와 생명을 살려달라는 뜨거운 중보기도로 반대하는 여자친구 쪽 집과 남편 시댁식구들를 설득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믿지 않으시는 유교쪽 식구들이 우리교회에서 본당에서 드리는 결혼예배를 참석하시게 되었고 교회를 떠나있던 남편도 아들의 결혼을 계기로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들의 결혼식 후 한달 정도 지나서 시아버님이 쓰러지시고 2주만에 극적으로 영접하시고 소천하시게 되어 제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았던 꿈에도 바라던 우리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은혜도 주셨다.
지금은 다섯살이 된 손녀와 아들내외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손녀를 돌보는 것이 고난이긴 하나 이전과는 종류가 다른 기쁜 고난이다.
아들 내외는 부부목장 여자목장 잘 참석하고 있는데 경찰까지 오는 육탄전의 싸움도 했지만 목자님들의 수고와 섬김으로 잘 붙어가면서 남편 아빠 아내 엄마 자리를 감당해 가고 있다.
교회를 떠나 한참 떠나 방황하던 작은아들도 편입을 계기로 다시 청년부 목장에 참여하게 되었고, 목장의 처방으로 양육도 받고 아직 연약하지만 청년부 부목자로 부르심도 받았다.
ADHD인 작은아들은 학습장애가 있어서 영어를 아무리 공부시켜도 힘들었는데 그 아들이 전문대 졸업하고 영어로 편입 시험쳐서 한양대로 편입하는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
ADHD인 작은아이는 아무리 큰아이에게 훈련 받았어도 강박적인 저에게는 힘든 것이 많았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생활습관 때문에도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릴 때 부터 무척 이뻐해서 내려놓기도 아까워했던 작은아이의 입에서 저를 향해 대해 매일 쏟아지는 막말과 욕설 문자폭탄이었다.
그런 아들인데 최근 그동안 아들로 인해 흘린눈물을 위로해주시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이 교회를 다니다가 요즘 안다니고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가 다시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말에 아들에게 자기는 하나님이 계신지 이제는 혼란스럽다고 하며 너는 하나님이 믿어지냐 물었다 했다. 아들은 내가 그런 믿음이 있겠냐고 하면서도 그런데 나에게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엄마가 없는거라고 했다고 제게 말했다.
지금은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육적으로는 훨씬 편한 생활하고 있지만 한쪽으로는 많은 괴로움이 있다. 이혼을 막아야 하는 사명을 걸어가는 목자로써 제 목장에 있던 분들이 여러분 이혼을 했다.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 맡고 있는 평원의 집사님들도 힘든 사건들을 걸어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그 사건들을 말씀으로 해석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을 제가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힘이 든다.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지체들에게 때에 맞는 정확한 처방을 못하여 상처를 주고 격려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목장과 맡은 직분이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감사할 뿐이다. 제가 목장을 섬긴다기 보다 제가 날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기 위해 목장하고 양육도 하고 지금 이 설교도 하고 있다. 제가 사명의 길을 똑바로 가도록 목장과 공동체 지체들이 수고하고 있다. 그러나 두로 같은 저도 여호와께로 돌아온 것 처럼, 하나님께서도 이분들도 평안히 살게 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
적용) 무시와 멸시를 받는 환경에 있던 나를 주님이 평안히 살게 해주신 때는 언제입니까? 무엇이 찌르는 가시가 되어 나를 평안하지 못하게 합니까? 예수 믿는 나 스스로를 멸시하며 목장을 피하고 가라앉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만 있으면 뭐하냐고 공동체 지체들을 멸시하지는 않습니까?
공동체 고백
말씀 맺음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인생은 나의 고난이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을 아는 것이고 내가 범죄하였도다의 말씀이 들리고 무리가 여호와를 알게 하는 심판이 있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평안히 살게 되는 인생이다.
두로의 멸망을 경고로 듣고 내 안의 교만과 물질우상에서 돌이켜서 내 죄를 위해 울고 두로 같은 내 옆의 가족과 구원받기 원하는 이들을 위해 애통히 울며 여호와께로 돌아가길 원하는 마음으로 찬양하기를 원한다.
[기도제목]
* 이지현
1. 내가 겪는 관계의 고난이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을 알고 주님께 맡기며 때를 잘 인내하며 목장에 여호와임을 보이며 잘 갈 수 있도록
2. 여호와께 범죄한 나를 우상삼은 죄를 끝까지 회개하고 진멸할 수 있도록
3. 중보기도학교 기간동안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와 매일의 기도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4. 부모님이 말씀의 공동체로 인도되시길
5. 우리 목장 양육에 기름부어 주시고, 목원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의 사랑받는자 임이 깨달아져 오늘 하루 말씀으로 인내하며 믿고 갈 수 있도록
* 김교희
1.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며 애도 기간 잘 보내고 평안하도록
2.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하게 되도록
3. 거절감 두려움 수치심 질투 등의 상처를 하나님 앞에 잘 내어놓고 남은 시간 동안까지만이라도 남자친구 구원을 두고 기도할 수 있게 되도록
4. 전세 만기라는 현실의 불안함 때문에 앞서 결정하지 않도록, 집 문제에서도 하나님 신뢰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