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파한 곳은 후속관리를 합니다.
A/S하는겁니다.여기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입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먼저3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며 고린도와 에베소에 있었던 동안 못 가본1 2 3차 여행 때 전도해놓은 교회들을 다시 찾아보고자 한 것이죠.
왜 방문합니까?글쎄 고린도하고 에베소에서 거의5년 동안 이렇게 날마다 강론하면서 제자 훈련을 시켜봤더니 너무 열매가 많은 거예요.그러니까 자기가 그동안 그냥 막3주일도 지나고3주일만 복음 전하고 거쳤던 이 교회들을 생각하니까 너무 걱정이 되는 거죠.바울은 늘 자신이 전도한 것의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고 늘 돌아보고자 합니다 잘 자라는지 악한 막기 틈타고 있지 않은지 가라지가 와서 악한 씨를 뿌리지 않는지 늘 염려합니다.
그래서 모든 서신서가 이단에 대한 염려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찾아가고자 한 것이 특별히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교회들입니다.마게도냐 지도 좀 보여주실래요?

마게도냐 지방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암비볼리 이렇게 나오잖아요.그리고 밑으로 쭉 내려와서 거기가 마게도냐 지방이고 밑에는 아가야 지방이고 아덴 고린도 겐그레아 뭐 이런 데가 있잖아요.그러니까 발칸반도 저 위쪽이 마게도냐고 아래가 아가야고 그리고 이제 이쪽으로 이제 저기 애베소가 이렇게 보이죠.
에게해 보이죠?그러니까 고린도 저쪽에 빌립보 새 교두보를 바울이 이렇게 전도를 이렇게 잘 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마게도냐와 아가의 교회들을 이제 첫 번째 찾아보기로 했는데.이 마게도냐에서는 루시아를 전도하고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그래서 매맞고 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해서 옥문이 열린 빌립보가 있죠 우리가 복습을 합시다.그리고 성령의 강론을3주일하고 쫓겨난 데살로니가가 있고.날마다 간절히 성경을 상고한 신사적인 배려가 있어요.
그리고 이 밑에 아가야에서는 새 것을 좋아해서 성령의 격분을 한 아덴과 이성 중에 내 백성이 많아서1년6개월 동안 가르친 고린도가 있죠.
좋아서 하는 자발적인 서원을 갚으면서 머리 깎은 겐그래아 등이 그곳이에요 이제 또한 에베소 사역 중에 고린도 교회가 파가 갈라졌어요.
그래서 급히 에베소에 있으면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이제2장1절에 보면 그 돌아온 뒤에도 항상 이제 교회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았어요.그래서 고린도후서11장28절에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아까27절까지 바울의 그 열거했던 그 모든 고난이 있죠.그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교회를 위하여서 눌리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읽어보면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했대요
그래가지고 그냥 그런데 성경에 고대로 바울 사도가 막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했다는 이런 구절이 나오니까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침내 에베소 사역을 마감하면서 다시금 전도했던 그 보고 싶은 이방 교회로A/S하러 지금 이제 떠난 거죠.그런데 여기서 오늘 이렇게 세 곳을 거쳐가고 가고 보고자 하는 그 단어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보고 싶은 그곳은 안 좋아할 곳이 아니라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이 보고 싶은 것은.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했네요 바울은 떠날 이 결심을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그래서 동력자이자 비서였던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니아로 먼저 보냅니다.마게도냐에 도착해서 바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미리 가서 준비하라는 것이죠.
두 사람을 보내고.바울은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며 그 사약을 마무리해요여러분들 내가 막 작정했다고.시간 단적으로 경영했다고 막 서두르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항상 최선의 사명이 나만 나를 더 살펴야 합니다.한 것이 싫고 다른 곳이 좋아서 떠나는 것은 성령의 작정이 아니에요 여기서든 저기서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성령의 작정입니다.여기서 돕는 사람.디아코네오라는 말은 전치사 디아와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의 합성인데 먼지가 일어날 만큼 막 분주하게 움직이고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다는 뜻이에요.그래서 이 집사를 디아코노스라고 하는데요.
바로 디모데와 에라스도가 바로 이런 집사 같은 일꾼이었고 스데반이 바로 이런 이제 집사였죠 사실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서 양육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덧 동욕자가 되어서 이제 단독으로 파견받을 만큼 성숙한 이제 신앙을 가지게 된 모양이에요 에라스도는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같은 인물이 디모데후서4장에 나오는데 그가 이곳에 엘라스도와 동일한 사람이라면 그는 고린도시의 재물을 맡은 사람으로 바울의 회심하여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에베소까지 함께 온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가져 가야 하니까 재무 담당을 보내지 않았나 싶은데요 이것도 성령의 경영이라고 생각이 돼요.여러분 아무리 전도를 하고 말씀이 좋아도 헌금 관리 잘못하면 모든 사역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다시 후속 관리로 이제 돌아보면서 가는 곳곳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요청했거든요 근데 헌금을 요청했지만은 본인은 절대로 헌금을 들고 가지 않아요.그러니 사람을 잘 세워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다 성령의 경영입니다.돈은 꾸지도 꿔주지도 말아야 해요.제가 그렇게 강조해도 공동체 묻지도 않고 이 돈 거래를 하시면 무조건 서로를 망치는 일입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꾸어도 꾸어줘도 치리를 하지 그래서 우리들 교회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항상 마지막에 돈이 있어요.
부부나 교회나 모두가.하여튼 돈하고 연결되면 양쪽 다 흘러 떠내려가요.반드시 공동체에 물어보셔야 돼요 공동체가 허락하는 일이 또 있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걸 지엄한 명령으로 들어야 돼요.아니 돈 꿔줬다가 천국 못 가면 어떻게 해요.
제가 그냥 개척 때부터 이 얘기를 했습니다 재무담당 에라스도를 보냈다고 또 이렇게 제가 생각을 해봅니다.그러니까 두 사람을 보내고 바울은 얼마 동안 더 있으며 아시아 사역을 마무리해요.그래서 있으면은 얼마 동안 더 있으면.지체하다 머무르다는 뜻인데요.이 단어는 그냥 시간을 보내면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붙들고 주의 깊게 사용하여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거를 말하는 거예요 구원을 위한 시간이죠 근데 이걸 시간에 대한 집착과는 다른 거예요.그래서 어떤 부목자님의 나눔인데 자기는 죽기보다 싫은 게 시간에 대한 자기가 집착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9시에 자기로 했으면 꼭 자야 된다는 거예요.그러면9시에 걔가 왜 자야 되냐 하면 그때부터 자기가tv를 보거나 쉬야 되기 때문에 그래가지고9시부터 안 자면 그때부터 이제 아이들을 쪼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부목자 회의도 주일 예배 끝나고 이제 쉬어야 되는데 너무 싫다는 거예요.그리고 또 부목자 모임에 들어갔는데6시를 넘기면 또 싫다는 거예요.싫은 것도 많아(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시간에 대한 집착 그랬더니 목자님이 이분이 또 교수님 아니겠어요.제가 딱 그랬기 때문에 그 심정을 이해하는데요.
제가 깨달은 거는 저에 대해서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걸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9시에 안 잔다고 혼내지 마시고 놀아주세요 아빠하고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돼.금방 지나가요.그리고 빨리 재우는 방법은읽어주는 거예요.책 읽어주는 거야.그리고 아이들한테 두뇌 활동해도 좋아요.주로 이렇게 처방을 해 주시기 바래요 나도 그랬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그 있는 시간을 아주 시간을 붙들고 알차게 썼다는 거예요.
고린도전서16장8절9절에 보면 왜 남았냐 하면 해마다5월에 모이는 아데의 축제를 이용해서 곳곳에서 모여드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에베소에 남았던 거예요.그러니까 너무.이 성령의 경령이 기가 막히잖아요.그러면 그렇게 마게도냐하고.아가야 가기로 그냥 결정한 게 너무 최고의 결정이잖아요.그러면은 그냥 하나님 너 잘했다.그럴 것 같아요.여기 남았는데 이제 다음 주 본문에 나오겠지만 바울의 신변을 위협하는 은장색들의 소요 사건이 그냥 일어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결과적으로는 환란과 진짜 핍박이 아니 환란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어도 성령의 작정으로 인도받고 가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인 줄 믿습니다 예 그래서 이 떠나는 결정을 해도 바울은 항상 복음 전파의 마지막까지 어디가 좋은가를 생각합니다.
전도를 해야 하지만 지금 있는 이곳도 가는 곳도 후속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장소나 상황에 기분따라 움직이면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지금 머문 곳이 싫어서.다른 곳을 찾아가는 게 우리의 일상입니다.그런 마음으로 집이 싫어서 결혼하고 이 남편이 싫어서 똑같은 마음으로 이혼합니다 결혼도 후속 관리가 절대로 필요합니다as가 필요해요.성령의 경영하심이 필요해요 연약하면 관리가 필요하고요.인도함을 조금 더 받는 사람이 용치기 영치하면서 끌고 가야 해요.그래서 이 세상에 좋은 이혼이란 없어요 먼지가 일어날 만큼 눈썹이 날리며 바쁘게 후속 관리를 해 보세요.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전도하고 후속관리 하십니까?목장에서도 주 중 후속관리를 하십니까?결혼도 후속 관리를 합니까?결혼했으면 끝이다 라고 합니까?좋은 이혼이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성령의 경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원칙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후속 관리해야 돼요.
3.뿌리를 잊으면 안됩니다.
이거는 예루살렘 교회 방문을 말해요.그러니까 여기는 보고 싶은 곳이라기보다 가야 할 곳이에요.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은 그가 전도했던 이 모든 결과를 보호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가서 이렇게 전도했다.막 이단이라 그러고 막 오해할 수 있잖아요.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은 이제 그다음에 이제 그 모은 구제 헌금을.예루살렘에 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또 이제 유월절 이전에 도착해서 그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이제 이런 이유가 있었어요 늘 바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었지만 복음의 출발지인 예루살렘 교회 이 뿌리 잊지 않고 윗 질서로 인정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본교회의 선교 보고 있지 않습니다.어렵고 험난한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도 늘 예루살렘 교회를 잊지 않았어요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잔멸해 했던 사람으로 끝까지 책임을 집니다 유대인에게는 배신자 기독교에게는 잔멸자로 박해와 오해를 받지만 늘 자기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비결이었어요.언제나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가서 강론하고 쫓겨나도 그다음에 또 들어가고 왜냐하면 자기 같은 사람인 줄을 이해하니까.두 곳에 대한 애정이 계속되는 걸 봐요 그래서 이렇게 친척 유대인들에게는 이제 복음을 강론하고 잔멸했던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육적인 부족을 끝없이 채워주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만성적인 기근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었어요 게다가 로마 제국의 수탈과 기독교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여러 제약으로 항상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리고 자기가 보기에도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지 못해요.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어요.그러니까 여기가 가난한 데는 그만큼 이유가 있는 거예요.예루살렘 교회가 가난한 데 하나가 안 돼.참 거기 열두 사도가 있는데도 하나가 안 되네.본인은 자비량 선교사이지만 모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은 바울의 큰 미션이었어요.그런데 세상에 훨씬.예루살렘 교회보다 워낙 형편이 안 좋지만은 복음을 들은 이방교회는 너무 헌금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고린도후서8장1절서부터5절까지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 너희가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마게도냐 교회가 뭔지 몰랐다가 사도행전 설교 들으면서 이제 뭔지 확실히 알았죠.확실히 알았죠.여러분들 너무 똑똑하시죠.아까 이거 다 했던 것들이 마게도냐 교회예요 그래서 환난의 많은 실현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극심한 가난이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느니라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가난하지 않은데.극심한 가난이 풍성한 열매를 넘치도록 하게 했대요.내가 증언하노니.그들이 힘들어 할 뿐 아니라 힘이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그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죽게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성경은 기가 막히지 않아요?
바울은 본인도 늙고 이 초로의 노인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의 고통과 박해에는 몹시 더욱 관대하고 너그러웠지만 성도의 궁핍과 가난 앞에서는 늘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예루살렘 방문 계획도 그렇게 가고자 했지만 여기도 또 차질을 빚게 됐어요.우리가 이제 보다시피 환란과 결박이 또 기다리고 있죠.그렇죠 성령의 경령이라고 늘 직진만 하는 게 아니에요 모두 벌써 두 번째 차질이 빚어져요.
그러니까 기도했는데 왜 이러냐고 하지 마세요.
오늘 아침에도 그런 편지를 잠깐 읽었는데.내가 왜 성령 충만을 기도했는데.안 되나요.왜 나는 큐티를 하는데.하나도 기쁘지가 않은가요.왜 나는 사람이 미운가요 네 이런 거 그러니까 그건.여기하고는 이제 거리가 멀지만은 기도했는데.왜 이러냐고 하지 마세요.기도했으면 믿으시면 됩니다.그게 안 되는 거예요.여러분들이 적용해 보세요.여러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받은 바 은혜를 잊지는 않았습니까?부모님은 나를 태어나게 했기에 무조건 예수 믿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까.아직도 신경만 쓰입니까 신경만 쓰여도 예루살렘은 가야 되는 거예요.신경이 쓰여도 예루살렘은 가야 되는 거야.작정했잖아 이제 명절이야.가까이 오면서 벌써 스트레스가 오죠.두통이 오고.그죠.가야 될 걸 생각하니까전도의 열매를 위해서 후속 관리도 해야하지만은 그니까 뿌리를 잊어서 하면 안 돼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받은 바 은혜를 잊지는 않습니까?부모님은 나를 태어나게 했기에 무조건 예수 믿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까?
4.계속 비전을 향해 가야합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왜냐하면 네 번째는 계속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는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에 경영하심이 여기 여기는 안 나왔지만.언어에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로마라고 그랬어요.거쳐야 할 곳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지만 반드시 봐야 할 것 때문에 거치고 가야 할 곳이 있는 거예요 마지막 로마.때문에 에베소 복음화에 성공한 바울은 이제 에개해 양편 연안의 명실상부한 복음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어요 아까도 봤지만 서편에는 빌립보 교회가 또 이제 지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오지에는 고린도 교회가 예예 다시 지도 보여줘도 좋아요.

에게해의 동편에는 유럽에서 소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 에베소 교회가 빌립보 고린도 에베소 교회가 딱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로마에서 전 세계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당시 모든 나라의 권력자들 로마로 다 몰려드는 거예요.
팍스 로마나 시대잖아요.장사꾼은 장사꾼대로 무사들도 명성을 얻기 위해 특별히 노예들도 자유를 얻기 위해 로마로 몰려들었어요.
17세기.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뱅갤은 헬레니즘의 창시자 알렉산더도 로마 제국의 창시자인 신이 저도 감히 이런 생각을 못 했다고 했어요 이 작은 나라팔레스타인의 작고.보잘것없는 할아버지 베냐민 사람인 바울보다 더 크고 위대한 꿈을 가졌던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했어요.그러니까 내가 복음을 향한 꿈이 이 세상 어떤 경영보다 큰 경영이고 최고의 위대한 꿈인 줄 믿습니다 이게 정말 위대한 꿈이에요.바울은 로마서에서 로마의 있는 너희에 대하여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가졌으며 그렇게 로마로 가기를 원했는데 계속 막혔어요.
그런데 좌절하지 않고 바울은 이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복음화시킨 것처럼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이고요.거기서 더 나가서 땅 끝나라 이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스페인까지 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죠 그러니까 지구 끝까지 복음을 이렇게 전하고자 한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령의 경영에도 불구하고 또 바울이 자의에 의해서 로마로 가는 것을 또 허락치 않으셨어요.성령의 경영을 다 막으셨어요
그래서 즉AD 58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됐잖아요 그리고 이제61년에 요새 우리 읽었죠.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했어.그래서63년 석방되기까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또 이제 성령의 경영이라고 하냐 하면 너무나 바울의 목숨을 노리는 유대인의 위협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로마 군대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보호 결국에는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정말 섭리였어요.그리고 이제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그 외에도 다시 로마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다가AD 67년에 체포되었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로마행은 순교의 선물을 주십니다 바울의 마게도야행 예루살렘행 로마행의 경영과 작정이 모두 직진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생각만 해도 그렇게 경영할 것을 생각만 해도 오늘 경영했던 그 마음을 우리가 다 띵크해서 생각해봤잖아요
생각해 봤죠.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런 바울.너무 기뻐하시는 거예요.성령의 경영이라면.그것 자체가 응답이에요 우리는 되어진 것만 응답 같지만 안 된 것을 통해 하나님은 얼마나 복음을 전하셨는지 몰라요.
바울의 경영은 손해 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2000년이 지나도록 전 세계를 변화시킨 줄 믿습니다.이런 믿음이 있어야 돼요.근데 맨날 왜 승진이 안 되나.왜 떨어지냐 왜 죽냐 왜 바람 피냐 왜 이혼하냐.그것 때문에 사명이 있다니까요 사명 우리도 성령으로 인도받는 원칙을 지키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이 되어서 다시 잘 들어보세요 이 성령으로 인도받는 원칙을 지키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이 되어서 그 다음에 자손들에게 싸울 것이 없는 복을 주실 것이에요.
물론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천하보다 귀한 구원의 복은.이거는 돈으로 환상할 수 없는 축복이 자손 대대로 내려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지나간 사도행전을 복습하며 예수까지 했어요.한 번 이렇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막히는 게 최고의 정말 밖에 나갈 것도 막히고 공부할 것도 막히고 교수 될 일도 막히고 다 막히고 우리 남편 하나 보살피고 살았는데 그것 때문에 성령의 경령을 이렇게 하게 하시잖아요.할렐루야.예 제가 이제 없는 동안에도 정말 여러분들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내가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모이고 더 열심히 하시면 제가 이 말씀이 위력이 있는 거죠 우리들 교회가 위력이 있는 거예요.담임 목사 있을 때만 많이 모이고 없을 때는 확 줄고 그런 일은 없었지만은 정말 자립 신앙을 가지고 내가 주 안에서 홀로 서야 되는 거예요.그리고 각자 성령의 경영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아셨죠?!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우리가 성령의 경영과 작정만 해도 그 자체로 응답이신 것을 믿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경령은.그러니까 성령으로 인도받는 게 원칙이 전파한 곳은 또 후속 관리를 해야 돼요A/S해야 돼요 이게 오늘 마게도냐와 아가야 방문이죠 여기 보고 싶은 곳이었어요.여기는 그냥 거쳐가야 된다고 그랬어요.뿌리를 잊으면 안 돼요.여기는 예루살렘 교회 방문이에요.여기 싫어도 가야 할 곳이에요.그러면 계속 비전을 향해 이제 나가게 하세요.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할 이 계획에 경영하심 입니다.예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도록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