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8일 주일설교
심한섭 목사님
주 예수의 은혜로
사도행전 15장 1절 ~ 11절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절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절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절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절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김양재 담임목사님)
너무 반가웠죠 박경철 목사님 찬양 들으니 좋네요 미국에 대한 이민 목회에 대한 마음이 있으시다고 했는데 너무 좋은 교회가 서 사역하게 되고 저도 또 오라고 또 초청도 해주고 사역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제 잘 양육이라는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찬양하고 설교를 하고 그런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심한섭 목사님도 우리들 교회 출신인데 이성훈 목사님 직속 후배가 되어서 같은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미국에 가서 공부하다 보면 그런 디아스포라에 대한 생각이 들게 되는데 말씀묵상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을 볼 때 선교사가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 목사님 잘 들었습니다. 현장예배가 수요일 서부 터 재개가 되는데 아시다시피 너무 작아서 오전 예배는 판교 200 명한 해서 신청을 받습니다. 다음 주 주일예배는 판교 200 휘문은 120명 받습니다. 다 신청하셔야 하고 새 가족과 인도자는 신청 없이 오실 수 있습니다.
청년부큐 페가 아까 우리 감동적인 홍보영상을 받는데 All Here라는 주제로 3부 예배까지 3일간 진행되는데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선택강의가 진행되는데 소그룹처럼 직장 경영 아이티 무슨 이런 우리들 교회의 어마어마한 일타강사들이 모든 것들을 소그룹으로 나누어주실 예정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신청을 해주셔야 조별 나눔으로 됩니다. 선택강의 그것도 짤 수 있으니 수련회에 접수를 끝냈지만 접수를 하고 있어요 홈페이지를 공지되는데 이런 거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해서 다 갖추어서 우리는 그런 선택강의도 다 말씀에 의거해서 베이직한 큐티 말씀으로 모든 것을 듣게 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듭니다. 큐티인 시리즈 9월~10월 호가 나왔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과 에스겔 후반 본문을 다루는데 저의 에스겔 간증으로 많이 친숙한 본문이죠? 구입해 주시고 정말 소망의 표징이 필요한 한 사람에게 전도용으로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몇 주 전에 간증을 했던 이완성 초원지기님의 아들입니다. 심한섭 목사님입니다. 찬양합니다.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심한섭 담임목사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쓸모없는 저를 잊지 않으시고 은혜로 이 자리에 세우셔서 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세우셨으니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죄송합니다. 바울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에베소의 편지에 보내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편지에 인사말을 인용해서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큰일 났네요 울어서 (짝짝짝 짝짝짝 짝짝) 정말 바울이 에베소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여러분 얼굴을 떠올리면서 설교를 적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보이시죠 (ㅋㅋㅋㅋ) 예..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심한섭 목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목사님께서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의논이라는 두 번의 설교로 나누어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저는 오늘 목사님께 그동안 평생 양육을 받아온 제자 입장에서 우리들 교회에 공동체였던 사람으로서 오늘 본문을 조금 자세한 설명은 목사님이 해주셨기에 어떤 율법과 행위에 대한 은혜에 대한 이야기로 재구성해서 전하겠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잘난 척을 하겠습니다.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과 우리가 받아야 할 구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이미 값없이 우리에게 준 구원을 청의라고 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칭하였다고 합니다.
이루어가야 할 구원의 여정 이것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과 동시에 여전히 되었다 함이 없는 그런 인생 속에서 거룩히 됨을 소망하면서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의미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 모두가 저와 여러분 모두가 여전히 계속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 교회가 역사를 가졌다고 말할 만큼 긴 시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휘문고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2006년 부활주일에 오랜 방황에 마침표를 찍으며 이승민 목사님으로부터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중 고등부 청년부 스텝으로 목자로 부목자로 그리고 분당 채플의 간사로 유년부 전도사로 지금은 사라진 주얼리 스쿨의 사역자로 섬겼습니다. 제1회 큐티 페스티벌을 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젊었던 날들을 형제와 같은 지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백 명 수천 명의 교회성도 분들이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우리들 교회는 하나 되어서 움직였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어떤 분도 교회의 일을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예배를 위해서 자기 일처럼 헌신했습니다. 휘문고등학교에서 예배드릴 때 더운 강당에서 예배를 세팅해서 김승조 집사님을 포함해서 여러 집사님들이 헌신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수고했던 실장님이 되신 전선규 간사님과 스태프분들 더운 강당에서 무거운 스피커와 악기들을 옮기면서 섬기던 우리 박종률 집사님과 찬양팀 수련회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삶을 헌신했던 유병철 집사님과 형제자매들 손과 발이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고난의 투성이었지만 모든 부서에 아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들 헌신하셨던 부장 집사님들과 선생님들 스태프분들 어린아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교회에서 밤을 새워서 큐티 페스티벌과 행사들을 주관했던 섬김 들 사실 엄청난 인재들이었지만 밤낮으로 수고해 주셨던 관계자분들 교회 사무실에서 온갖 행정 일들을 처리하던 간사님들 지금까지 이름도 빛도 없이 섬겨주신 집사님들 무엇보다 저와 함께했던 너무나도 사랑했던 목원들 여러분 모두와 함께했던 시간을 교회에 떠나있던 7년 동안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들교회 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살고자 찾아왔던 교회에서 생명을 경험했고 소망을 맛보았습니다. 나의 인생을 사람 살리는 인생이 되도록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의 은혜를 구원을 우리는 모두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살아남의 흔적 열매와 간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목적으로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양육해 주시는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출근할 대 퇴근할 때 밥을 먹을 때 화장실에서 그리고 잠을 잘 때도 우리는 말씀을 듣고 사모하며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양 떼와 같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한 공동체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수치와 제패를 알고 있었고 서로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조언과 필요한 처방을 했지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공격적 폭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더욱 힘든 일을 자처해 왔습니다. 교회의 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한 걸음에 어디서든 교회로 달려오고 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생각하며 회개했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각자의 지체가 되어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며 다음 목사님과 여러 전도사님과 같은 분들에게 양육을 받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믿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섬김을 나눈 우리들에게 여전히 양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이미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가야 활성화의 길 아직도 되어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자라나야 할 이유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어쩌면 우리 드는 누구보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맛보았고 목격했으며 경험했습니다.
어느 교회보다 많은 간증을 경험했고 살아났습니다. 엄청난 자부심과 자산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사도와 장로들입니다.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영적인 자부 시임 있는 사람들 공의회 멤버들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직도 됨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여러분과 저와 우리들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느 부류의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화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어느 정도 원리와 신앙의 그런 것들을 깨달아서 이 집사님은 이렇구나 저렇구나 이렇게 알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분은 믿음이 있구나 이분은 믿음이 없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목자 권찰 초원 평원으로 섬기시면서 내가 이 정도면 믿음도 있고 된 것 같고 말씀 들으면 그런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양육을 받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1.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지금 읽은 구절을 보면 안디옥교회 안에 다툼과 변론이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들의 요지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이것이 요지입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행위의 증표 없이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구별된 살도록 요구하신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하신 법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알게 하고 무엇이 올바른 지 보여줍니다. 존 칼빈은 율법은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는 안내하는 규범과 같은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지 패하러 오신 것입니다. 삶의 방향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선하고 좋은 율법이 행위로서 우리의 구원까지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은 율법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죗값을 대신 치름으로써 율법을 완성시켜주셨습니다. 행위를 성취하는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행해야 하는 일을 말해주고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율법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육의 것인 간의 행위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행위를 통한 행위 구원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 말씀드린 이야기가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려서 지루해할 수도 있습니다. 행위와 은혜는 참 뻔한 것 같은 이유는 2천 년 역사에 정말 오랫동안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 왔고 다툼이 있는 주제입니다. 행위와 은혜는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행위와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많습니다. 두 가지 정도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행위와 은혜를 이해할 때 그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아 제가 17년 만에 이 자리에 여러분 앞에 서서 여러분 참 뭐 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궁금하신 것도 많으실 텐데. 제 얘기를 다 하자면 이제 오늘 밤을 새야 되니까 제 아내가 이제 그 교회를 나가서 이제 그 사이에 제가 결혼도 하고 목사안수도 받고 미국도 가고 또 이제 여러 가지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제 아내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아는 바가 없으시겠죠. 예 그래서 제 아내는 이제 제가 결혼할 때 정말 이제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것은 물론 이제 하얀 피부 이런 것도 참 매력적이었죠. 하얀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얀 것이 참 이게 이 행위를 뛰어넘지를 못해가지고요. 아직 그. 하여튼 하얗고 참 이쁘고 정말 이렇게 자세히 볼수록 더 이쁘고 막 그런 사람인데 근데 정말. 제가 이제 아내를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정말 매력적이었고 정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하고 바로 미국에 갔거든요. 이제 미국에 가서 살다 보니까 미국에서 한국이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족이나 친지분들께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또 뭐 친구들이나 또 뭐 이렇게 여러 가지 주변에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에 가서 보니까 이제 언어도. 한국 말처럼 그렇게 편하게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한 데다가 주변에 뭐 가족도 없고 친지 가까운 곳에 어떤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해서 그래서 이제 미국에서 둘이 살다 보니까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줄 알았던 아내가 세상 두려운 게 이제 너무 많은 사람인 겁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로 늘 걱정하고 마음을 조리고 뭘 하나 살 때도 막 수십 가지 사이트를 뒤져보고 부작용을 다 따져보고 염려하고 사람들이 올려놓은 후기를 읽어보고 그리고 나서 또 구매할까 말까 막 고민을 하고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한마디 할 때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너무 많아서 말 한마디도 쉽게 잘 못합니다. 막 이렇게 말을 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물론 이제 그런 모습이 참 귀여워 보이기도 했고 좋게 보면 아 참 신중한 사람인가 봐. 뭐 이렇게 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제게 참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 저는 담임 목사님께 예전부터 이제. 두려움은 곧 욕심이다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와이프 아내의 그런 행동들이. 두려움과 음료로 이렇게 차 있는 그런 행동들이 야 저 사람 저거 욕심이 많구나. 이제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그러한 행동들이 고쳐지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한편. 제 아내는 불안과 두려움이 많은 반면에 저는 또. 뭔가 제가 이렇게 저랑 예전에 이제 함께 사역해 보신 분들은 좀 아시겠지만 제가 뭔가 정해놓은 룰이나 어떤 기준이 딱 있으면 그게 어긋나는 일이 생기는 꼴을 잘 못 봅니다. 이제 강박적으로 그것에 이렇게 몰두해서 집착하고 막 그런 저만의 어떤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으로 상대방을 옥죄고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어떤 저만의 그런 아주 고약한 율법이 있습니다 물건은 늘 제 자리에. 이게 이제 제 인생의 주제가입니다 야 그런데 이제 하루는 이제 그런 저와 예 두려움. 쟁이인 제 아내와 이제 강박쟁이인 제가 미국에서 함께 사는데. 제 아내는 이제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 이제 참 재미있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요. 이 부엌 찬장에 보면은 이제 왜 양념통 같은 거 집어넣는 이게 찬장이 있잖아요. 그러면은 이제 이런 거를 요리할 때 이제 그런 양념 같은 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와이프는. 찬장을 다 열고 요리를 해요 찬장이 이렇게 쭉 있고 뭐 여기는 뭐 미림이 있고 뭐. 뭐 간장이 있고 설탕이 있고 이제 막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은 그 찬장 문을 다 열어놓고 온갖 양념을 다 꺼낸 다음에 요리를 해요 근데 이제 저는 어떻게 하냐 하면 간장을 꺼냈다가 바로 제 자리에 넣고 다시 닫고 또 필요하면 또 꺼냈다가 다시 넣고 또 닦고.설탕이 필요하면 꺼냈다가 또 쓰고 다시 넣고 닫고 이렇게 해요 그럼 이제 제 아내는 다시 그 찬장을 다 열고 양념을 다 꺼내고 또 이제 요리를 하고 그러면 제가 이제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걸 또 다 제자리에 놓고 또 찬장을 닫고 이렇게 합니다 그니까 저의 강박이 발동하면 이제 혈기가 올라오고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지면 그 혈기는 저의 이제. 터진 혈기가 아내의 두려움을 마주합니다 강박쟁이와 두려움 쟁이가 마주치면 어떻게 되리는지 아십니까. 이제 강박쟁이는 바로 혈기쟁이로 둔갑을 하고요. 그리고 두려움 쟁이는 울보가 됩니다 강박쟁이는 끝까지 그 문제의 원인을 캐고 물어서 너는 왜 그렇게 하냐고. 너는 왜 그렇게 해야 되냐고 따지고 싶어 하고 두려움 쟁이는 그런 강박쟁이가 질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를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저와 제 아내가 서로의 어떤 각자의 두려움과 강박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저희들의 그러한 행위로 드러나는 문제가 결국 은혜로 밖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음을 저희는 간과하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를 경험하게 해줬어야 되는데 오히려 두려움이 많은 제. 아내에게 강박과 혈기로. 제 아내 율법으로 대할 때가 많아서 아내의 구원과 은혜를 더 멀어지게 만들곤 했습니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우리에게 우리 인간에게 율법과 행위라는 문제는 우리 삶에 아주 깊숙히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걸려서 넘어지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아 나는 율법적이지 않아. 그렇지 구원은 율법으로 행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지.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실상 여러분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시면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매일매일 율법적이고 행위 구원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강박이 고쳐지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중독이 끊어지면. 저희 아내가 찬장 문을 다 닫으면 큐티를 매일 하면 부지런해지면 열심히 살면 무언가 내 행위가 변화되면 다시 말해서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라는 식의 율법과 행위의 군례를 우리가 사실은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아이죠 그죠.
숙제를 알아서 잘하면 훌륭한 아이입니다 노래도 있죠 산타 할아버지가 알고 계십니다 누가 착한 애지. 누가 나쁜 앤지 그리고 오늘 그 오늘 밤에 그 심판이 이제 이루어집니다.
할아버지가 다녀가시면 모든 세상이 하고 나쁘고라는 율법과 행위의 군례 안에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이 율법과 은혜에 어.
그 미묘한 관계 속에 순서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그런 문제들은 사실 거의 눈으로 보여지는 문제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더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행위는 은혜의 뒤에 따라 옵니다.
우리 잠시 다 함께. 요한복음 15장 5절을 좀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라.
아멘
행위는 열매입니다.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방식은.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그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먼저고 행위는 나중입니다 이 순서를 자꾸만 우리가 거꾸로 하려고 합니다.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행위로 지은 죄를 생각합니다그러면. 그리고 이제 막 그런 행위로 지은 죄에 대한 나눔들 또한 많이 합니다. 행위의 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행위. 고치면 죄가 해결된다고 착각하기도 쉽습니다 음란을 행한 사람 또 도박을 한 사람 외도를 행한 사람. 중독에 빠진 사람. 또 혈기와 강박이 충천한 사람들 그리고 이런 모두가 우리가 이 행위를 고치는 것에 집중을 자꾸 합니다 행위가 끊어지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인 것처럼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알코올중독이라는 행위를 끊었다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씀드리면 술 중독 여자 중독. 도박 중독을 끊어내면 내 배우자가 밖에 나가서 착실하게 돈을 잘 벌어오면 내 배우자가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으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행위가 변화되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할례를 받았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 행위만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행위의 변화가 우선이 되면 다른 구원이 됩니다. 다른 복음이 됩니다. 구원은 기본적으로부터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행위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위의 죄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혜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떠난 모든 것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제 와이프에게. 이제 저희 아내에게 9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가 계신데요. 이제 일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바르고 의로운 삶을 사셨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십니다. 한국에 와서 기회가 될 때마다 와이프와 함께 할아버님을 만나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루는 사도행전 3전에 3장에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는 안준뱅이 본문을 가지고 죄인에 대한 설명을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청기를 끼시고 구십대가 좀 넘으신 할아버님께서 굉장히 해맑은 표정으로. 아 그 죄인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하시면서 이제 웃으셨습니다 어떻게 평생 법조인으로 바르게 살아오신 법을 지키면서 살아온 내가 죄인일 수 있는지 의아해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래 안 믿는 분들이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적용이라는 이름으로 행위 구원을 부추길 만한 말들을 또 꽤나 많이 합니다 요즘은 게임 안 하십니까. 요즘은 도박 안 하십니까 이제 술 끊으셨습니까. 이제 남편에게 잔소리 안 하십니까. 할례 받으셨습니까. 예수 없이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행위가 변화된다면 그것보다 또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남편분께서 예수의 은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셨는데.술이 끊어지고 모든 행위가 올바르게 변하셨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병원에 가볼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행위의 한계를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제 행위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한 정말 대표적인 죄인입니다.제가 행위로 지은 죄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악하고 이기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저는 선교사였고 신학생이었으며 또 목회자인 순간에도 여전히 제 말과 행동으로 거짓과 음란을 끊임없이 일삼는 야곱 같은 죄인입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아시는 많은 분들 중에는 야.
심한섭이 설교를 한다고. 저 죄인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저는 우리들 교회에 정말 대표 죄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삶의 행위를 생각하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제가 하나님께 지었던 죄를 생각하면. 자다가 잠을 깰 때가 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나도 형편없는 죄인이었음에 몸서리가 쳐질 때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지금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어 제가 이 설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은혜받은 자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은혜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 설교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다른 복음이 됩니다. 저는 제가 받았던 괴인인 제가 받았던 그 은혜를 잃으면 바로 육체의 율법과 예전의 행위만을 강조하던 삶으로 돌아갑니다 제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은혜를 잊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를 짓는 공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 설교를 하며 이렇게 서 있지만. 저는 그저 끊임없이 죄를 짓는 강박쟁이일 뿐입니다 박사를 하고 공부를 하고 이제 어딘가에 설교하라고 저를 부르는 교회들도 생겼습니다 설교를 하러 가면 뒤에 강사 양력을 소개하면서 칼빈 박사 이렇게 써놓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 하지만 저의 어떠한 학력과 보여지는 것으로 거룩한 척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일 순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박사가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이에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 예수의 은혜가 아직. 제가 죄인 되었을 때. 저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신 그 예수의 은혜가 제 안에 있어서 오늘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강박적인 제 모습을 고쳐달라고 기도합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담임 목사님과 어머님에게 삶으로 배워온 것입니다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 내 모든 것을 다 해서 내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 상대방의 율법과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순간에 또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제 아내를 사랑한다고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악한 행동을 다 끊어낸다고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없이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무서운 것입니다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 은혜를 사모하는 것. 그것이 우리 행위의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으면 할례받은 자의 삶을 소망하게 됩니다
둘째로 율법은 인과 응보를 이야기합니다할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하면 복을 받고 안 하면 저주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은 이것을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어떤 기부엔 테이크의 원리로 작동됩니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는 것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세상은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 논리적인 인과 관계입니다 율법은 인과관계이고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이 되지만 그러한 인간의 논리성과 합리성은 은혜를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오랜 시간 목자로 섬기고 전도사도 전도사로도 섬기고 이제는 목사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제 안에 이렇게 율법의 행위를 뛰어넘지 못하는 기복 신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이제 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그럴 때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자기는 뭘 해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제가 아내를 위해서 이제 뭘 했을 때 뭔가 이렇게 제가 아내를 위해서 뭔가 수고를 했을 때 나는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쟤는 나를 위해서 뭘 해주지 이런 생색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줬으면 받아야 되는 게 언뜻 보기에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복신앙이고 율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로부터 받은 은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복을 받는 거라면 이 예배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준 만큼만 받는 것이라면 이 자리에 구원을 얻는 만큼.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부부 관계 속에서 또 자녀를 대할 때 율법으로 대하고 기복으로 대하고 그것을 논리와 합리라고 표현하며 들이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과 인과관계를 들이대는 사람이 관계에서 승리합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할 말이 없게 만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깁니다 이기고 또 이겨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너는 나에게 뭘 해줬지. 니가 해준 게 없으니 나도 해줄 게 없어. 이것이 세상이 승리하는 방식 율법의 행위의 방식입니다 나는 배우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내 자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율법은 논리를 가지고 이기려고 하지만 은혜와 복음은 절대로 이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으로 승리합니다
적용해보세요.
타인의 겉으로 보여지는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나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의 행위의 문제가 고쳐지기만을 바라고 있나요? 아니면 그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2.우리가 기쁨중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절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절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믿지 않는 자들이 믿게 된 간증을 들려줍니다. 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모두 기뻐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사도와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다시 말해서 인간이 행한 율법에 관한 일이 아닌 은혜에 관한 일을 말합니다. 모두가 기쁨으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은혜의 일을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바리세파 사람들도 저희와 같은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저와 여러분 중에도 이런 바리세파의 모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절에 등장한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의 주제가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이었다면 지금 이 바리세파 사람들의 주제가는 마땅하니라 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이게 맞다. 저건 틀리다 이게 옳고 이게 그르다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를 뛰어넘지를 못합니다. 항상 그것을 따지느냐고.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를 따지느냐고.공동체 안에서의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 가깝게 지내던 한 목사님께 제가 여쭤봤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떤 점이 목사님 보실 때 율법적인 것 같습니까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전혀 망설임이 없이 저에게 네 신 목사님은 늘 목사님이 옳다 고 생각하고 그래서 목사님 하고 싶은 말을 앞뒤 안 가리고 하시는 게 율법적이십니다 이렇게 말해 주셨습니다 정말 부인할 수 없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율법을 행하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외치는 이 타이밍은.지금 예루살렘 공동체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함께 들으며 함께 구원을 기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온 공동체가 을 구원 때문에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이 순간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 때문에 공동체의 기쁨은 아랑곳 없이 마땅하니라. 이게 옳다. 이게 틀리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지금 이 기쁨의 순간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저의 모습 같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아 어떤 말을 하고 싶어지면 그걸 잘 참지 못하던 모습이 있습니다.그렇게 항상 제 말을 나오는 대로 하던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담임 목사님께 이제 정말 많은 여러 가지 혼이 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양육을 이제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그 중에서 목사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한서방 잠시 실례지만. 잠시 제가 목사님 성대모사를 잠깐 하겠습니다. 이게 제가. 여러분께 더 생생하게 들려드리기 위해서 어머 한섭아 너는 왜 이렇게 애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있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있다. 내가 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있다.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정말 그런 거 같았습니다 정말 그런 거 같았습니다. 어쩔 때는 너무 좋다가도 갑자기 또 화가 날 때도 있구요. 근데 이유를 잘 모르겠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제안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무언가가 제 율법과 제제 규범을 기준으로 그것이 틀려 보이면 무언가가 잘못돼 보이면 제 마음이 요동치고 울그락불그락하고 오르락 내리락 해지는 것이 있습니다.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니라 라고 앞뒤 안 가리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제안에 늘 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께 양육을 받고도 여전히 바리세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썼고 남도 속고 그래서 우리들 교회에서 양육받고 계신 여러분이 정말 부럽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렇게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 니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모르시겠지만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해야 여러분에게 속지 않고 그것을 말해줄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지금 여러분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살다가 결혼 생활을 하고 살다가 제 자신이 너무 괴로워서 제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도 알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 나는 왜 또 넘어질까 나는 왜 그렇게 훈련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이 모양이 모습일까. 나는 왜 율법이 극복되지 않을까. 나는 왜 행위를 건너 뛰질 못할까 그런데 여러분 나는 왜 이럴까.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여러분이 왜 그런지 여러분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말해주고 들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와 목사님이 계신 것이 그것이 여러분이 참 부럽습니다 잊지 않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 공동체 안에 저와 비슷한 분들이 좀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옳고 그른 것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세상이 옳고 그런 기준이 없이. 그게 어떻게 인생이 사라지냐. 그러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살아도 된다는 얘기냐. 옳고 그름이 없이 어떻게 살아야 되냐. 맞습니다 옳은 것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명확히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윤리가 성립되고 사회가 지속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애타게 찾고 따지시는 그 오음 오름이 있어야 옳고 그름은 있어야 한다. 그 옳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갑 없이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옳은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인 바울의 행동도 옳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행동도 옳지 않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작권을 팔도록 거짓을 일삼은 야곱의 행동도 옳지 않았습니다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의 행동은 정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행동입니다 우리 아이의 아내를 탐한 다윗의 행동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오른 것입니다. 마땅하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 저 같은 죄인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을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이게 옳고 그름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예수의 복음 안에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오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가 드리겠습니다 예수가 옳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공동체가 구원의 기쁨으로 즐거워 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계십니까 적용 질문 두 번째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한다면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무엇이 오른지 그런지 마땅한지 아닌지를 내 기준과 내 생각 내 지식으로 판단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예수의 은혜로 얻은 구원만이 옳은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큰일 났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됐는데. 저는 아직 3번 대지가 남았습니다. 빨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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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지만 여전히 생색과 기복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스스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합니까? 그것이 율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지 아닌지를내 기준과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우리가 끊임없이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6절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절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장로들이 구원의 문제를 의논하러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바로 역 앞에서 목격하고. 제자가 되었던 이들이 여전히 이 문제의 구원의 문제에 확신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되었다이 없이 계속해서 거룩을 향해 구원과 양육의 길을 걸어가야 할 이유입니다 여기 6절에서 11절 사이에 베드로가 가장 눈에 띕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 베드로는 바울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자기처럼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애 제자도 아니었던 사람이 구원을 잘못 이해했다고 자신에게 처방질을 하고 책망을 합니다. 베드로가 어쩌면 인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오늘 바울을 변호합니다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쓴 소리를 하던 그 바울의 편에 섰습니다.베드로는 지금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차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디아크리노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분리하다. 혹은 의심하고 판단하다 이런 뜻입니다.그러니까 철저하게 어딘가로부터 분리해. 내서 또 한 번 의심해보고 판단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차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분리시키고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남들과 나를 구분하고 분리합니다. 나는 목자니까 나는 부목자니까. 목원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초원이고 평원이니까 나는 일반 목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픈 목원들과 나를 분리시키고. 그들을 판단합니다.저 집사님. 너무 아파 이런 말을 정말 자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7절에서 9절의 내용을 한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7절에서 9절의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여기서 베드로가 구원의 핵심을 설명하는데요 7절에서 9절의 내용 중에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7절부터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사람을 통해 된 일이 있습니까 율법을 통해 통해 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로 다시 말해서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그 하나님의 할령 없는 주의 은혜로. 우리는 목자가 되었고 부목자가 되었고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차별을 하십니까 저 집사님이 너무 아퍼. 우리 남편은 정말 이상하다. 우리 아내는 진짜 교만해 그래서요 나는 아프지 않습니까. 나는 이제 괜찮아진 것 같습니까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은혜를 받았던 순간은 제가 가장 아픈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이 예배를 드리고 계신 모든 분들이 정말 아프고 상처 투성이 모습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여러분이 꽤 괜찮고 이제 나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누군가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절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다른 이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별이 없음은 관계의 회복으로만 나타납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애덴 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내가 하나님처럼 안 될 게 뭐 있어 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 난 게 뭐 있어. 내가 이런 얘기를 듣고 살아야 돼 내가 저 사람한테 이런 취급을 당해야 돼 이런 생각들로부터 모든 관계의 단절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차별이 없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관계 회복으로 그것이 나타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내 남편보다 내 아내보다 내 자녀보다 내 동료보다 내 목원보다 내가 아프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나아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주위의 수 의대로 내 마음을 그들보다 먼저 깨끗게 하셨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내가 믿음이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자매들은 자들에게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차별하지 않으며 끊어졌던 관계들을 회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4번이나. 형제들아 라고 언급합니다. 베드로가 형제들아라고 부르는 이 순간에 제가 생각할 때 그 형제들을 향한 베드로의 차별 없는 사랑과 하나님의 차별 없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베드로의 마음 속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그 마음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던 바울의 그 마음에 어떻게 남을 나와 차별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무 자격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을 받았는데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이 되었던데. 어떻게 내 옆에 있는 남편과 아내를 저 사람은 아프고 이상하다며 차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차별 없는 구원을 이해하지 못해서 여전히 단절되어 있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마음 한 구석의 응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저의 율법적인 모습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모습 때문에 상처받은 형제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제가 자신에게 지금 이 말을 하고 계시는 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이 예배를 드리고 계시다면 정말 옳고 그름으로만 따지는 죄인 죄인이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정말 교만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너무나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상처받고 상처 주고. 이제 안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실 때 사람 되기는 글러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 줬는데 나한테 이 따위로밖에 안 해. 이런 생각을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는 죽는 날까지 안 보기로 작정한 사람이 계십니까 목장 모임 할 때 이 집사님만 안 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이제 그런 분들을 한 명쯤 머릿속에 조용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3초만 셀게요. 한 번쯤 머릿속에 한분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가 차별하고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계가 단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회복하고 싶지 않고 손 내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까?내가 그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열정적으로 교회를. 우리 우리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교회를 섬겨온 사람들입니다. 주 안에서 생명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저와 여러분이 이전의 사랑과 회계의 감동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믿음은 있지만 사도와 장로들처럼 이제는 이것이 정말 맞는 건지 확신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양육되어져 가야 합니다.
이 설교는 여러분이 아니라 사실 저에게 하는 설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내 남편과 아내의 삶과 행위가 변하기만을 바랄 뿐 정말 예수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포기해 버린 분들도 있을 겁니다 또 예전에 경험했던 은혜를 다 잊고 이제는 옳고 그릇만을 따지며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옆에 사람들을 차별하고 아픈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생각 없이 지내고 계신 분도 계실 겁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들교회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생명을 경험하고 죽음에서 살아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이제는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서 육이 아니라 성령의 일을 주목하고 옳고 그름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 있음을믿으며 내가 더 아픈 사람이었다고. 내가 차별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먼저 관계 회복을 위해 손을 내미는 주 예수의 은혜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든든히 세워져 가는 우리들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양육되어 져야 하고 거룩한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감히 제가. 마지막으로 감히 제가 여러분께 이런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주. 예수의 은혜로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그 구원의 시간을 기억하시고. 더 힘차고 더 기쁘게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참석인원 : 양재영, 김태규, 김성빈
저번주에는 목자형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쉽게도 목장을 하지 못했으나 다행이 오늘은 목장모임을 진행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4단계 상태에서 심각하게 번지는 코로나로 인하여 다들 다운 상태인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가 제발 이제는 끝났으면 합니다. 지치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참석해준 우리 지체들을 하나님 기억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나눔시간은 총 1시간 50분 입니다.
한주간 근황 및 나눔
재영이형
주중에는 같이 동업하는 대표님이랑 만나 월세 관련하여 미팅을 진행하였고 그 다음에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있는 곳이 월세가 비싸 부담이 됬고 절망도 되었다.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목자모임에서 나누었는데 엘더님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인수 생각까지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지금 당장 인수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문제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하여 오늘 여자친구와 같이 엘더님을 뵈었는데 엘더님께서 교통정리를 해주신 덕분에 생각이 정리 되었다. 사실 이 문제로 인해 마음 고생을 많이 하여 금 토요일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오늘 엘더님을 뵙기 전까지 막막했는데 아침 1부 예배를 드리고 엘더님을 뵈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목자가 되면 별거 아닌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것 같다. 신경써야 할 사항이 많으니 지친다.
태규
이제 이 회사에 입사한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내가 그동안 일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깐깐한 상사들과 일하면서 매 순간마다 긴장의 연속인것 같다. 금요일에는 좀더 분발해 김대리라는 말을 듣고는 힘이 잠시 빠지기도 하였다. 눈이 높은 대표님과 그리고 상사들과 일을 하면서 내가 정말 만족시키는 것을 할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때마다 오히려 무섭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적어도 지킬것은 지키면서 지적하기 때문에 이럴때일수록 더 순종해야된다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이고 항상 업무를 하려고 노력한다. 5일에는 생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줘서 행복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소고기와 쌀국수를 요리해주신 덕분에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고 나도 감사와 사랑을 담아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빠 아들하겠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였다. 전에는 이런 말을 못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표현할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그리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 실력이 늘었다는 칭찬을 선생님이 해주셔서 많이 기뻤다. 토요일에는 전 목장 목원 형이 집까지 놀러와서 냉면과 고기를 사주었다. 그리고 그 형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연애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형이 내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었는데 10년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풀린 느낌이었다. 교회에 와서 대부분의 지체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말해줄때 원론적으로 이야기 한 부분이 많아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원론적인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속에서는 분노가 솟구쳤다. 나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사람 관계에 대해서는 맹탕이라서 몇 번 말해줘야지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원론적으로 말해주니 정말 열이 받았고 이 부분 때문에 작년에 목장에서 한판 싸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 수준을 알고 있는 형이 내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 해준 덕분에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 다행이였고 감사했다. 어제 이형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뼈저리게 느낀것은 누군가의 눈높이 맞추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와 닿는것이 다른것이 인정되었다.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살아가면서 나도 언젠가 이 형처럼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때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주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년에 전 목장에서 싸웠던 것은 원론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그런 모습이 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감정이 폭발해서 싸웟는데 이제 그것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원론적으로만 이야기 하기 보다는 그 상황에 맞게 눈높이 맞추어서 지체를 체휼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담임목사님이 눈높이 맞추어서 그사람에게 다가가는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것을 피부로 깨달으니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성빈
주중에 2차 백신을 맞았고 수요일에 적금을 들었다. 일단 월급받은 돈의 절반이 먼저 날라가고 시작을 하니 의욕이 떨어지고 그동안 나의 소비습관이 많이 해펐던것 같은데 이제는 이런 부분에 대해 개혁을 해야될것 같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내가 듣고 있는 컨셉 디자인 교육비가 비싸서 많이 걱정된다.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 백신 문의 전화로 인해 골치가 아프다. 잔여 백신 신청중에 막바지에 부랴부랴 신청한 사람들이 말을 바꾸는 경우에는 많이 복잡해진다.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지 아닌지를내 기준과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태규
참여할때도 있고 안될때도 있다. 공동체 안에서 축하해줄일이 있으면 서로 기뻐하면서 축하해줄때가 많지만 나에게 가장 약한부분이자 간절한 부분인 연애 부분 만큼은 축하 보다는 걱정과 질투가 난다. 내가 이부분에 대해 많이 맹탕이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과 염려가 많이되어 질투가 되는 것 같다. 내 기준과 내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이 예비한 믿음의 배우자가 아니라는 것이 스스로가 판단된다. 최근 큐티기도회에서도 기도 제목을 바꾼 이유는 내가 막상 믿음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기도하고 있는데 간절한 만큼 기도하며 적용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만큼 내가 나중에 크게 상처받을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기도제목을 바꾸었다. 믿음의 연애와 결혼 안되도 그냥 화목한 가정이라도 꾸리게 해달라고 믿음의 배우자가 내게 해당안될수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고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한명 한명 될때 내가 안되기 때문에 나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부분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생각이 들어 안될수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
내가 차별하고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계가 단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회복하고 싶지 않고 손 내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태규
전문학교 입학 후에 처음 만난 친구와 싸워서 관계가 깨진 적이 있다. 그 친구와 나는 군대 전역하고 나서부터 사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3d디자이너로 그 친구는 컨셉 아티스트로 취업준비를 하였고 나는 복학해서 취업을하였는데 그 친구는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친구가 취업으로 고민이 많을때 취업하고 싶으면 직종을 바꾸는게 어때 등 내가 해줄수 있는 조언을 해주었지만 당장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공부만 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한심해보였고 취업해서 일하고 있을때 이상한 오지랖으로 나에게 이 업계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색감 공부하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서 그 친구랑 1년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그 친구를 저격하는 글을 썼고 이 일로 인해 8년의 관계가 깨졌다. 당시에는 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친구에세 상처주었던 말과 그 친구에게 말할때 배려해서 말하지 못한것이 인정되었다. 그 친구와 1시간 가까이 전화로 고함 지르면서 싸운 기억이 있어 이제는 회복하기도 늦은것 같고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그만큼 싸우면서 선을 넘는 말을 그 친구가 많이 했기 때문에 하고싶지 않다.
성빈
내가 약한 모습일때 나를 무시했는데 막상 이제 내가 잘될때 나에게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정이 떨어지고 손절하고 싶다. 집안 문제와 학벌로 인한 부분으로 겪은 것이 많다.
기도제목
재영이형
1.매일 큐티하기
2.육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도록
3.가족구원
4.신결혼
태규
1.부족한 부분을 서로 상호보완해줄 수 있는 교제와 결혼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2.회사에서 디자인 작업하면서 퀄리티 업그레이드를 하고 조화롭게 지낼수 있기를
3.공동체에서 지적 잘 받고 잘붙들어 갈수있기를(공동체에 더 편하게 나눌수 있기를)
4.치매 초기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외할아버지를 지켜주시고 옆에서 간호하시는 외할머니 또한 지켜주시기를
5.목장 지체들과 초등부 양교 수련회 지체들 그리고 주위 지인 지체들과 동행해주시고 지켜주세요.
6.개인작업과 피아노 레슨 연주때 어린아이 같이 즐기면서 할수 있게 즐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7.나라경기가 침체되어 많은 가정들이 힘들어하는데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가정들을 살려주시기를
8.많은 사람들이 백신접종을 맞아 코로나가 종식이 빨리 될 수 있기를
9.항상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시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부모님처럼 흐트러지지 않게 독립 생활할 수 있기를
10.엄마와 아빠 파병 가 있는 동생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푸른솔
1.다음주 토요일에 계약한 집 입주 시작인데 그전에 별일없이 잘 계약할수 있기를
2.여자친구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큐티를 할 수 있기를
3.여자친구가 교회에 와서 적응할 수 있기를
성빈
1.예방접종 기간인데 잘 될수 있기를
강백
1.건강 회복 하는데 있어서 집중할 수 있기를
2.수술한 상처 아물기를
성은
1.공부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을 위할수 있도록
2.건강하게 이 더운 날을 지낼 수 있도록
성민
1.코로나 진정되길
2.재택근무 시에 힘내길
기도하기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온라인으로 예배와 목장모임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산되는 코로나로 인해 다들 지켜가고 떠내려가기 직전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강한 중심점이 되어주셔서 우리가 떠내려가지 않게 우리를 붙들어주세요. 그동안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랜시간 동안 잊으며 지내온 것이 인정되고 그분들의 대우와 보상에 대해 소홀히 한 것임이 인정됩니다. 이 부분을 회개하오니 이제는 나라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하신분들에 대해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해줄수 있는 대한민국 사회가 될수 있게 도와주시고 지금 잊혀지고 상처받은 분들에게 찾아가주셔서 그분들의 상처를 보듬어주시고 치유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오랫동안 생명의 생사를 함부로 판단하여 낙태의 죄를 범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우리가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수 있게 태아생명보호법을 제정할수 있게 인도해주시고 그 법을 입법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사회 전반적으로 학교폭력 또한 심각한 문제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을 방조하지 않고 제대로된 처벌과 반성을 하여 지금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물려줄수 있게 도와주세요.지금 상황이 어렵지만 어려운 상황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순풍으로 나아간 사도바울처럼 우리도 매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순풍처럼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우리 목장 지체들 재영이형 강백이형 저(태규)성은 푸른솔 상호 성빈 성민 정도 한 사람 한 사람 주님 지켜주시고 함께해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