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작별
본문: 사도행전 18:18-23
한주 나눔
-효정: 관계에서 인내해야할지 작별을 해야할지 고민이 많음. 자존감이 없어서 작별을 못하는 것도 있고 인내를 못해서 더 힘든 것도 있음. 충동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가야될 것 같음.
-도현 :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수면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음.(면담, 과외 등) 부모님이 걱정하실 정도. 동생 소현이가 다행히 건강해져서 출국 전까지 상태가 유지 되었으면 좋겠음
-시은: 요즘 무기력함에 빠진 것 같음, 취업준비를 해야하는데 의욕이 없고 저번에 한번 떨어지 이후로 아무곳도 지원하지 않았음, 요새 헬스를 시작했는데 자존감도 올라가고 점점 재미를 찾아가는 중임.
-언주: 상사와 면담 일정이 있어서 그만둔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마을지기 언니가 엘더님께 여쭤본 후 이야기해보자고 함. 당장이라도 작별하고 싶은 직장이라 매일 매일이 힘든 상황임.
언젠가는 모두와 작별을 하게 됩니다. 바울도 도시를 다닐 때마다 작별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작별은 오늘 본문에만 두 번 나옵니다. 그만큼 특별한 작별이었다. 성령의 작별이었습니다.
1. 성령의 작별은 더 인내하며 머문 후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더 머물렀습니다.. 머물다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의지로 버티며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음란하고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서 더 머물기란 힘들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고발을 했고 법정에까지 갔다 왔고, 지금까지 당한 모든 일을 합친 듯 한 힘든 상황에서도 바울은 고린도를 당장 떠나지 않고 머물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충분히 찰 때까지 머물면서 비비고 닦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힘든 사람 곁에 머물며 오래 있겠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성령의 작별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작별의 결론은 영혼 구원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인내해야만 했다. 자기를 죽여야 했습니다. 최소한 법정 앞에서 모두에게 얻어맞았던 회당장 소스데네가 교회로 들어와 양육받을 때까지 고린도 교회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열매가 주렁주렁할 때 떠났습니다. 복음 때문에 떠나면 또 누군가를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면 동행자가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동행해주었음)
적용 :지금 당장이라도 작별하고 싶은 고린도 같은 사람은? 여러 날 머물러 인내해야 할 상황은?
2. 작별의 원동력은 자발적인 감사의 서원입니다.
갠그레아에서 바울은 머리를 깎았습니다. 갠그레아는 고린도 아래쪽의 무역, 상업이 발달한 항구였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는 나실인의 서원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다섯 종류의 제사가 있는데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날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감사와 찬송이 터져나오는 것이 화목제입니다. 화목제에는 서원제와 감사제가 있습니다. 완성된 사건이 감사해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니 나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해주시면 ~~하겠어요 하는 조건부의 서원이 아닙니다. 이 고린도 사원을 성별되게 하기 위해서 서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까지 ~~~~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겠어요 라고 서원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조건부적인 서원이었다면 고린도 법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는 지긋지긋한 고린로를 떠났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드렸기 때문에 고린도를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서원은 감사의 예물로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적용 : 입시, 결혼, 취업 등 조건부 서원 기도를 합니까? 주의 크신 은혜에 감사해서 나를 써달라고, 나를 인내하게 해달라고 서원합니까?
보통 무엇을 앞두고 금식하는데 중요한 것은 기뻐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서원입니다.
3. 성령의 작별은 사람의 청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합니다.
2차 전도여행의 목적지는 아시아였는데 하나님이 막으시고 에베소로 가게 하셨습니다. 에베소는 넘사벽의 힘든 곳,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상의 세력이 강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후 쉬지 않고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변론하다'란 강론하다, 구속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뜻이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이 숨쉬기와 같은 일상이었다. 그래서 그리도 싫어하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여러분은 복음 전하는 것이 일인가? 숨쉬기인가?
머리 깍은 것이 내 서원의 끝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에베소도 하나님이 일하시고 책임져 주셔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을 붙잡았지만 '만약 하나님 뜻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능동태 미래형, 막연함이 아닌 바울의 의지가 담겨진 표현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것에 대한 서원, 각오와 의지가 담겨진 말이다. 성령의 서원을 한 바울은 자신의 실패와 두려움, 연약함의 한계 가운데서도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의지를 앞세우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오고 싶었던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작별했다. 인본적인 사람들은 때를 모른다. 머물러야 할 때와 떠나야 할 타이밍을 알 수가 없다.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늘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면서 경고의 때와 칭찬의 때를 거꾸로 한다. 그래서 사람이 겉으론 좋아보여도 대형 사고를 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별하나? 구원보다 이익이 목적이면 분별이 안 된다. 몰랐더라도 구원 때문에 결정했다면 하나님이 봐주신다. 믿음의 분량 만큼이다. 힘든 배우자는 작별해야 할 사람인가? 더 머물러야 할 사람인가?
중독은 당장 작별해야 할 대상입니다.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내 이익, 쾌락이 기준이 되면 힘든 배우자는 작별하고 싶고, 중독은 더 머물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물질 중독, 행위 중독... 게임, 성중독, 쇼핑 중독... 등 드러나기 어려운 것이 행위중독입니다. 내 이익이 중심이 되면 그것을 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기에 죄인의 범위에 나를 포함시켜야 하는데 중독자의 식구들은 자기의 중독을 못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을 묵상하고 적용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몸인 교회의 지체들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묵상하고 해석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공동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죄를 보는 공동체에서 날마다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가 죄인임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너도 죄인, 나도 죄인.... 공동체가 없이는 중독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중독 즉 악에서 떠나는 것이 성령의 작별입니다.
적용 :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반대로 적용한 때는 언제인가?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 성령의 작별이 되어 지켜야 할 가정이나 끊어내야 할 중독은 무엇인가? 게임, 쇼핑, 성행위... 등등
좋은 일은 하나님이 원하실 거야 하면서 사람들이 요청한다고 하는 일이 있는가?
4. 제자를 굳건히 하기 위함입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늘 올라간다고 하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선교 보고를 하러 올라갔습니다. 바울은 전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살렘에서 지도자들을 만나 보고한 뒤에 수리아와 안디옥으로 갔다. 3년 이상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면 쉴 만도 한데 안디옥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떠났습니다. 갈라디아 브루기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심방하러 갔습니다. 이렇게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을 굳건하고 견고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고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랜 기간 각종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고난을 받았고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를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강함이 아닌 성령의 견고함이 답 임을 절감했을 것이다. 자기가 흔들리기에 남이 흔들리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말씀의 추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또다시 3차 여행을 떠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작별은 힘든 일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숨는 게 아니라 믿음의 지체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작별은 새로운 사명의 시작과 처음이다. 인간의 작별은 끝이지만, 이기적 관심에서 떠나는 작별이다. 성령의 작별은 자기 사랑으로 가득한 이 세대를 떠나는 것입니다다. 자기 사랑에 사로잡혀 있으면 조금이라도 손해되는 일에서 떠나고 피합니다. 이기심 가득한 작별입니다. 모든 게 해체되고 무너지고 떠난다. 가정도 그렇다. 인권이 우상이 되어서 행위 하나로, 때렸다고, 욕했다고, 망하고 바람폈다는 이유로 이혼을 부추깁니다. 그러면 이 가정에는 결혼이 깨지고 가정이 해체됨만 남는다. 인권이라는 미혹하는 영과 귀신을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작별을 멈추고 성령의 작별을 해야 힙ㄴ다. 말씀의 구조와 성령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야 인권이 왕노릇하지 않고 신권이 왕노릇합니다. 주님의 교회인 목장이 대안이다. 여기 머물러 있을 때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적용 : 나를 굳건하게 세워준 지체들이 있습니까? 지체들을 굳건하게 하기 위한 수고를 기뻐합니까? 아까워 합니까? 멈추지 말고 다시 시작해야 할 구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한주 기도제목
-효정: 회사에서 업무에 지혜 주시기를, 날이 더운데 체력 지켜주시기를, 성령의 결정 잘 할 수 있도록.
-도현 : 코로나 안 걸리고 소연이가 많이 좋아졌는데 출국 전까지 잘 산책 하고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시은: 매일 큐티하기, 취업 준비하기(자소서 쓰기, 토익), 무기력에서 나오도록, 운동 열심히 하기.
-언주: 회사에서 정말 나오고 싶은데 이번 주 인내하면서 잘 버틸 수 있도록, 이직 관련해서 성령의 인도하심 있으시길, 목요일 백신 맞는데 부작용 없이 잘 맞을 수 있도록, 부모님 더위로 인해서 많이 지치셨는데 건강 회복 되시기를, 목원들, 가족들 건강과 안전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