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그에게 준다는 뜻으로 그 사람의 믿음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그 사람이 내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때는 친근감과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 또한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사랑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제목 : 주의 이름은 부르는 자
1. 공동체에 함께 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지니 열한 사도 앞에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임하시면 나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합니다. 지체들이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자기만 알아듣는 방언을 하기 보다는 함께서서 붙잡아 줍니다.
목장을 할때도 전도를 할때도 봉사를 할때도 공동체의 지체들과 함께서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말씀에 붙잡히면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가든 경조사 예배를 드리든 그곳에는 성령의 백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동체와 함께서서 소리 높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다 보니까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이 감사하고 내안의 기쁨이 생깁니다.
구원의 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지체들과 함께서서 소리 높이는 것입니다.
목장도 혼자할 수 없고, 목원들과 함께서서 소리높여 말하는 것이 목장입니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체를 위해서 설명해주고 같이 붙들어 주고 같이 서있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 보면, 나의 내면이 달라지게 되고 나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용서할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되고 미움과 분노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말을 하게 됩니다. 내가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을 넘어가게 해주십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가치의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의 대해서 담대하게 소리높여 말하게 됩니다.
혹 조롱을 받더라도 혈기로 맞받아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영으로 인내하면서 객관적으로 설명해줍니다.
내가 말씀 충만, 성령 충만함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내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조롱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 하는 것은 신비적인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이 한마디를 받아내는 겁니다.
이 한마디를 받아내는 것이 순교이고 내가 죽어질 때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무시하는 그마음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마음이였습니다. 그러면 내 곁에는 지체가 없고 교제가 없는 삶입니다.
적용질문)
나는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 있습니까? 혼자 서있습니까?
누구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까?
나는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 말씀으로 삶을 해석합니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말씀의 성취입니다. 지금 내눈앞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일어난 사건을 겪으면서도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거 버립니다. 예수님이 찾아온 이 구속사의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말씀이 영한 사건, 말씀대로 되어진 일에 대해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조롱합니다.
그럼에도 맞아~ 말씀대로 되어진 사건이구나 생각하고 옷깃을 여며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조롱하더라도 그말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큐티하지만 왜 조롱과 부정적인 말에 휘둘리게 될까요?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을 말씀이 응한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해석하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면 설령 좋게 나왔다 할지라도 우리는 교만하거나 우쭐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회개의 사건으로 받아 들입니다.
반대로 일이 결과가 내가 원했던 것과 완전히 거꾸로 나왔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일을 통해서 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감사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한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말씀으로 해석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 높이고 찬양하게 됩니다.
적용질문)
지금 나에게 일어난 사건 가운데 말씀대로 되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의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가 말세입니다. 저마다의 고난을 겪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자기의 종말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청년들도 자신이 갖고 있던 욕망과 세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 임하는 사건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이땅에 자녀문제 청년문제 노인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해석이되고 해결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공동체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가득찰 것으로 믿습니다.
적용질문)
나는 어떤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고 있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예언과 환상과 꿈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환상과 꿈입니까?
내안에 깨어져야할 편견과 고정관념,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4.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우상으로 삼고 의지하던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찾아오면 칠흑 같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심판의 때는 바로 택자에겐 구원의 때가 됩니다. 바로 그 때가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이라고 하십니다.
그 절대치의 고난 앞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자에게는 어떤 환난과 고통의 사건에서도 구원에 사건이 됩니다.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암담한 사건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니 해달별이 떨어지고 지금 나에게 아무것도 떨어지는 것이 없을 지라도 절망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제 곧 이르겠구나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할 것이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붙잡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말씀 듣는 구조 속에서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흑암 중에 나에게 찾아오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지금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권능이라 하십니다.
오직 내가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불러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나를 죄와 사망에서 중독에서 건저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을 부를 때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적용질문)
나에게 찾아온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열광합니까?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목장 나눔과 기도제목은 다음주부터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