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0
사도행전 18:1-4 성령의 권면
[*조태헌 목사님께서 목장에 함께해주셨습니다]
1. 실패와 외로움이 있을 때 이때 권면이 들립니다. 1
바울이 아덴을 떠났습니다. 왜 실패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게요. 아덴은 오직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에만 시간을 써도 되는 지성으로 똘똘 뭉친 곳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들이 즐비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지금 들어도 자부심이 펄펄 끓는 곳입니다. 17장 바울은 아주 지혜로운 전략으로 조심조심 그들의 언어로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삼위 하나님을 자연 계시를 통한 지식으로 호소했음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복음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위축감이 들었을 것 같아요. 아덴에서 사도바울은 박해도 감옥에도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가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서둘러 혼자 쫓기는 것처럼 아덴을 떠났습니다. 떠나라 헬라어 단어는 마치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그런 아픔과 고통에 떠남을 말합니다. 즉,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해 성령의 격분으로 애타게 성령의 알리심을 전했는데 열매가 하나도 없으니 아덴 전도가 완전히 벽에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곳에서 자괴감을 크게 느낀 것 같아요.
고린도전서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저도 제가 잘하면 설득하면 남편이 구원받을 줄 알았어요. 말과 혀가 아니라 말씀대로 남편에게 복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결국 때가 차야 남편을 성령으로 권면해 주셨습니다. 저와 남편은 믿는 집 자녀들이에요. 처음부터 육적으로도 맞는 것이 없었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 또한 처음에는 둘이 비슷했어요. 저는 주님을 만났으니까 우리 둘의 만남은 육과 영의 만남으로 변해갔어요. 그런데 영과 육의 만남인데 잘 맞았다면 이거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 아니었겠습니까?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왜 그러지?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야. 외쳐봤자 때가 되기까지는 소귀의 경 읽기입니다. 그래서 외로웠어요.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큐티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외롭지 않았으면 전들 성경을 읽었겠어요? 남편이 괴롭히니까 안 보이던 저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상대방이 변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실체가 보이는 것입니다. 죄가 보여야 큐티도 되고 가정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자기 죄가 보입니다. 남편이 저보고 정말 미련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미련한 것을 너무 연습했기 때문에 지금 이 미련한 전도를 해서 구원을 날마다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들 말도 안 되는 부부 생활이나, 회사 생활, 거기에서 전도의 미련한 걸 연습하셔야 해요. 연습하셔야 합니다. 아덴이 바로 처절하게 외롭고 실패한 장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날마다 선함으로 행위를 판단하기에 예수 믿는다면서 왜 저래?라고 말합니다. 그때는 같이 사는 육적 신부였지만 이제 영적 과부였고, 지금은 남편 없는 육적 과부지만 영적 신부로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Q. 여러분의 외로운 아덴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육적 과부라 외롭습니까? 영적 과부라 외롭습니까? (여러분은 영적 과부입니까? 영적 신부입니까?)
2. 음란해도 권면이 들립니다. 1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고린도는 아덴을 포함한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항구가 길목 역할을 했기 때문에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래서 바울 당시 고린도는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를 포함한 그리스 지역의 최대 도시로 로마를 향한 충성심은 빌립보와 닮았고, 경제적으로 번창한 거는 데살로니가와 닮았고 문화적으로는 아덴과 닮았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배와 무역품, 장사꾼, 돈과 경제가 한곳으로 모이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고린도에는 돈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경험해 본 도시 중 최고로 음란하고 크고 강력한 도시에 바울은 실패자로 입성을 했고 동시에 혼자 입성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3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아덴에서 위축이 되었겠지만 진짜 두렵고 떨리는 것은 무서운 음란의 유혹입니다. 음란으로 도배된 그곳을 보면서 사도행전의 여정이 우리의 악과 본능의 여정 같아서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참 인간이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이해타산에 따라서 변합니다. 별 인생이 없어서 다 악하고 음란합니다. 이것을 늘 외우고 살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교묘하게 착하고 성품 좋아서 결혼했다고 하는데 다 교묘하게 속는 것이에요. 착각하면 안 돼요. 그런 환경에 다 달아보지를 않아서 그렇습니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서도 아덴 아니라 그 누구도 바른 시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모르기에 그 자체가 불경건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자기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이상한 열심 때문에 본인은 경건한데 가정생활, 사회생활이 너무나 불의해서 엉망인 교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거룩을 위해서 삶에서 죽어지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순종을 하기 싫기 때문에 날마다 바람 한번 피웠다고 돈 못 번다고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옳지 않으시기 때문에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진노는 내어버려 두는 진노입니다.
로마서 1:24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로마서 1:26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서 1:28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진노는 사랑도 미움도 아니고 내어 버려두는 잊혀 진자입니다.
로마서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로마서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의 예로 동성애를 언급했습니다. 어떤 얘기도 안 들리고 돌이키기가 힘이 든 것입니다. 음란의 끝이 동성애인 것이에요. 그러나 저는 아덴보다는 고린도가 권면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쾌락으로 말하면 이 동성애가 끝이지만은 주님을 만나기가 어려운 거는 정말 막상막하인데 그래도 고린도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을 나에게 주시는 얘기로 들어야 합니다.
Q. 나는 사람과 하나님에게 각각 사랑받는 자입니까? 미움받는 자입니까? 여러분이 음란으로 회피하고 있는 합리화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음란으로 회피하고 있는 합리화는 무엇입니까?
3. 같은 실패를 겪은 한 사람의 권면이 들립니다. 2
홀로된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아굴라라는 한 지체를 보내십니다. 아굴라는 독수리라는 뜻인데 비바람이 몰아칠 때 독수리는 구름 위로 올라가서 비를 피한다고 합니다. 힘이 빠진 바울이 독수리를 만났는데 그 독수리는 또 다른 실패로 로마를 떠난 부부였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남쪽 끝 길리기아 출신이고, 아굴라는 북쪽 끝 본도 출신입니다. 서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고향을 떠났기에 통하는 면이 있었겠지만, 서로 통하는 데에는 출신이 아닌 더 중요한 고난 때문입니다. 2절 로마에서 떠나라는 1절 바울이 아덴을 떠나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도행전에 여기 두 곳에서만 쓰였습니다. 바울도 아덴을 성령의 격분으로 떠난 것처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역시 로마를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고난을 겪었다는 점에서 깊이 통했습니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에서 유숙하며 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지냅니다. 통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니 힘을 받습니다. 같은 고난을 겪은 지체들과 함께라면 고난이 나를 주께로 인도하는 성령의 권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실패를 겪은 우리들교회 목장은 어마어마한 역할을 지금 해주고 있습니다.
이때 바울이 아굴라를 만나고 멀리서만 들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바울로부터 직접 성령의 권면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 이 예수를 만나게 하시려고 황제의 칙령까지 이용하셔서 나를 고린도에 오게 했구나. 온 천하를 움직이셔서 흉년까지 들게 하셔서 그렇게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느끼게 됩니다. 고린도라는 도시가 아니라 이 아굴라 한 사람을 만나려고, 성령의 권면을 하게 하시기 위해 나를 이곳 고린도에 홀로 보내셨구나. 깨닫게 됩니다.
바울 옆에 실라와 디모데가 있었다면 아덴에서 열매가 많았다면 고린도에 와서도 곧장 회당에 들어가서 강론만 했을 것입니다. 옆에 아무도 없고 가장 자신 있었던 설교도 아덴에서 실패했고 학문도 실패했고 그런데 단 한 사람 아굴라를 만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굴라가 떠납니다. 떠나올 때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였는데, 브리스길라의 뜻은 작은 노부인이라는 뜻으로 로마 브리스가 가문의 귀족 출신입니다. 당시 아굴라를 따라 떠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의 결정과 동행이, 남편과 끝까지 함께 한다는 이 마음이, 성령의 권면을 받게 하는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이후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아니라 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칭호로 아내부터 나오는 거로 성경에 바뀌어서 언급됩니다. 남편을 세워주기 위해서 로마를 떠났던 아내가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귀하게 지금 인정받는 것을 봅니다. 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쓴다고 남편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높이 평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따라왔다고가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Q. 나의 아픔이 약재료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권면하나요? 내 자랑으로 권면을 하나요? 그리고 흉년의 때, 떠남의 때에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순종하며 함께하고 있나요?
4. 생업을 같이 함으로 사명의 권면이 들립니다. 3-4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생업이 이제 같았다고 합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인데, 당시에는 천이든 가죽이든 다양한 종류의 천막이 많이 쓰였습니다. (초막, 천막: 텐트메이커 아주 중요한 직업)
바울이 당대 최고의 가멜리엘의 제자이며 학자인데 천막 만들기는 언제 배웠을까요?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아무리 공부를 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도 꼭 몸으로 하는 기술 하나씩은 배우게 했습니다. 탈무드에서 생선을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하잖아요. 바울의 고향 다소 지역은 원재료가 굉장히 발달한 곳이었기에 다소사람하면 천막 잘 만들겠구나라며 알아주는 기술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업이 같아 너무나 잘 통합니다. 이 세 사람이 같이 살면서 일을 했는데, 일하면서 바울에게 생생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복음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생업을 같이 하면서 계속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권면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성령의 권면을 한다고 내 삶의 터전을 다 뛰쳐나가면 안 됩니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사명이 나한테 왔지만, 항상 때에 순종했기 때문에 전도 인의 때에도 제가 순종을 한 것이지, 다 망하고 힘들어서 복음을 전하려 하기에 잘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생업을 하면서 언제든지 내가 돈 벌 준비가 되어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때를 지키니깐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면으로 저를 이곳까지 밀고 또 밀으셔서 교회까지 하게 하신 것입니다.
3절과 4절에 그런데라는 접속사가 연결돼 있습니다. 이렇게 생업이 같아서 둘이 너무 좋아하고 있는데 그런데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을 했다고 하십니다. 가끔 주님이 통하는 지체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주시는 것이 성령의 권면인데, 다들 그 통하는 사람 만남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원칙을 떠나는 것은 어떤 합리화도 통하지 않습니다. 내가 통하는 지체 만났다고 내 집을 버리고 자녀를 버리면 안 됩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 나에게 권면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하는 사람 만나 좋았지만, 바울은 아굴라와의 만남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주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이렇게 우리의 자리를 잘 지키게 되고 사명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 이 권면의 효과라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내가 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힘든 가정을 지키기 때문에 목회도 하고 사업도 하고 다 잘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텐트를 만들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증거를 구속사로 제시해서 증언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라고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강론입니다. 이 강론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 자리를 지켜야 하고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권면으로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게 하십니다.
Q. 참 통하는 좋은 만남으로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내 자리를 지금 떠나고 싶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버티고 있으면 모두 망할 것 같아서 정리한 관계에 대해 죄책감이 있는데 위로하여 주시도록
기복으로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을 불쌍히 여기고 나와 가족위해서 기도 할 수 있도록
맡겨주신 프로젝트 선한 사업으로 사용하여 주시고 붙여주신 지체들 위해 기도에 힘쓸 수 있도록
지향
부모님의 어떠한 반응과 상관없이 건강한 의사 전달할 수 있도록 편지 써보기
아팠던 것들 인정하는 것이 시작인 것 알고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위로 받을 수 있도록
나의 건강한 홀로서기가 가장 중요한 결혼 혼수인 것 알고 평강 누리며 혼수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크리스틴
새로운 팀과 프로젝트 할 때 지혜와 평강의 은혜 부어 주시도록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아서 눌려 하는 나를 보며 위로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재택 퇴근 후 밖으로 나가 휴식 취할 수 있도록
연락 못 한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 보내보고 어머니와는 계속해서 건강한 경계 지킬 수 있도록
예선
허구의 것을 만들 만큼 외로웠던 마음, 주님께 위로받고 아바 아버지 하며 은혜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목장 잘 할 수 있도록
한 주 말씀으로 잘 살 수 있는 은혜 누릴 수 있도록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에서부터 조금씩 유턴하여 괜찮아 할 수 있도록
다인
양육숙제가 아니라 양육의 은혜가 되어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할 수 있는 곳 까지만 하기)
회사에 인사변동된 부분에 요동하지 않고 말씀에 집중해서 평강 누릴 수 있도록
가족 모두 우리들 교회로 인도된 것이 큰 은혜인 것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도록
보련
나의 아픔이 해석되어 다른 사람 살리는 약재료가 되도록
성령이 나와 함께 동행 하셨고,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말씀이 들리는 공동체로 이끌어 주셨다는 것들 기억할 수 있도록
목장에 잘 붙어 갈 수 있게, 직장 또한 허락해 주시도록
동생과 부모님이 힘든 가정환경으로 당연한 것임을 알고, 말씀이 들리는 공동체로 견인되어 인생의 방황이 끝날 수 있도록
현경
그때와 지금은 다른 상황이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살아내도록
회사에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성령님 의지하며 [존버] 할 수 있도록
*존버:존귀하게 말씀보며 버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