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23-34절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쾌락주의나 경건주의나 예수가 없으면 선한 게 없다.
아덴 사람들은 앎을 원했다.
알지 못했기에 두려워 했고 정답이라 생각했기에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것은 종교심으로 이어져서 돌과 신상을 세워 숭배하는 일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 바른 앎을 알게 하십니다.
아르키메데스, 발견의 기쁨은 부끄러움도 잊게 함. (물로 부피를 잴 수 있다는 사실을 꺠닫고)
아덴 사람들은 이 발견의 기쁨에 심취해있었다. 대부분은 아덴 사람처럼 이기고 이기기 위해 알기를 원한다. 이 땅의 삶에 의미, 죽음 너머, 시와 때를 알고 싶어하는데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해 두려워하고 또 알기 위해 두려워 하며 돈, 자식, 학벌, 외모 등 우상들을 세워놓고 그 우상들의 통치를 받는다. 아덴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바른 앎이 없으니 똑똑한 아덴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고 의지하고 절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너희를 옭아매는 앎에서 벗어나게 하는 깨달음을 알게 함이라, 두려움에서 평안을 주는 바른 앎을 알게 하리라
적용질문
여러분의 앎은 두렵게 하는 앎입니까, 편안하게 하는 바른 앎입니까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죽어라고 위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삼위하나님의 사역으로 알리십니다.
하나님은 감춰져 있기에 우리 욕심대로 부릴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삼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알리시는데 그 감춰진 하나님이 결코 멀리 계시지 않지만 인생은 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신다. 고난이 없이는 찾아지질 않는다. 옆에 있는데도 모른다. 기다림이 필수적이다.
바울의 설교는 이 삼위하나님의 사역을 아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소개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구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에 바울은 청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덴의 철학적인 그들에게 스토아 학파 논리를 인용해서 설교를 전한다.
바울은 당대 가장 유명한 명문장들을 인용하며 제발 들으라고 설득한다.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고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기보다 잘 아는 세네카를 언급하니까 입이 다물어진 것. 바울 사도는 그사람의 눈높이에서 말씀을 전한다. 영혼 구원이 목적이면 저절로 된다, 우리는 각자 다르기 땜에 공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어부의 언어로, 목동의 언어로, 세리의 언어로 각자 다 다르게 제자로 부르셨다. 관습과 전통에 알아들을 수있는 그들의 언어로 전하셨다.
우리도 다 언어가 다르다,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갖게 되니 그 사람에 맞춰서 언어를 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우리는 고난이 있어도 특정 문자가 없으면 이해를 못하고, 각자 말씀이 안들리는 부분들이 있다. 아덴 사람들은 아덴사람들의 언어를 해도 못알아 들었다. 삶속에 그들의 언어로 알리는게 성령의 알리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격분을 잘못 이해하여 이해보다 오해하고 알린다며 가르치고 하는게 우리의 모습이다. 공감은 낮아짐과 자기부인이 필요하다. 말로 안됐어 위로받아 해서 위로되는 게 아니다. 삶속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역사하시지 않는다.
26절 오늘 내 혈동 내수면의 연대 내 거주의 경계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시고 알리신다 고 말씀 하신다.
성부 성자 성령 중 예수님의 사역이 정말 중요하다. 왜냐면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이 이땅에 낮아지심으로 이땅의 경계속으로 들어오시지 않으셨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실 수 없었을 것. 이땅의 경계로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기에.
내게 줄로 재어진 구역은 아름다운것에 있으며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셨는데도
이 경계들을 허물어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
자리 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다. 왜 못 벗어나느냐. 돈이 없어서 갈데가 없어서 근데 조금만 힘이 생기면 벗어나려고 한다,
내 경계를 벗어나서 살려고 한다.
나아가서 창조질서 남녀, 부모, 부부, 경계를 허물려고 하는게 우리의 죄성이다.
아담도 창조주가 되고자 선악과를 먹었기에 죄인의 경계를 알게 하심,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고난으로 경계를 자각하여 나아가 경계를 잘 지켜 그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이 그때 자신을 알리시고 더듬어 찾아 알게 하시고 그 우리의 삶에 언어로 하나님을 알리시는 이 말씀이 기억이 나고 거주 혈통의 경계속으로 찾아와 만나시는 것이다. 이게 성령의 알리심이다.
내게 허락하신 이 자리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애통한 방식으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사명의 자리가 된다,
유다는 자기 죄떄문에 평생 겸손하게 된다.
오픈이있어서 우리역시 예배에 눈물이 있다.
그 누가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유다라고 하겠는가.
성경과 구속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오픈을 했다고 모두가 우러러 보는가? 다른 곳가면 여전히 손가락질 받는다.
유다도 그러했다. 그래서 평생 겸손했다, 그러나 요셉은 반대였고,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 자리에 가서 경계를 넘어섰다.
영적 경계를 지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렵다. 유다는 평생 입을 다물고 산다. 우리는 전부 요셉이 주인공인 줄 알고 요셉이 너무 좋다. 아무리 유다가 예수 직계조상이라고 해도 우린 요셉이 좋다. 요셉처럼 경계를 벗어나고 싶고 유다같은 이 집안 나는 싫어 너들끼리 잘먹고 잘살아 하고 벗어나고 싶다. 구속사가 인간의 힘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게 있다. 그러니까 유다를 부르짖는 교회가 얼마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교회일까.
우리의 고정관념이 대단하다. 늘 기도해야한다.
목사님도 이 설교를 듣는 아덴사람들이 설교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참 어렵다.
유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다,
적용질문
내가 넘고 싶은 경계는 무엇인가
내가 지켜야 할 혈통의 자리는 어디인가
부모 형제 자녀의 자리 벗어나고 싶는가
배우자 남편 아내 자리 벗어나고 싶은가
그곳이 아레오바고 같은 전쟁터인가 아니면 편안한 환경이라서 지키고 싶은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사명을 찾아야지 편안하면 흘러 떠내려 갈 수 있다
고난 받은 유다 한사람이 주님을 앎으로서, 온 셰계를 살린다,(고난받은 한사람들이 많은사람을 살리고 혼자 잘먹고 잘살면 거기서 끝남 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을 감당하도록 지었고, 사명을 모르면 늘 불안하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덴사람들에게 니가 경계를 지키고 혈통의 한계를 잘 지키고 있으면 바로 네가 하나님의 소생 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경계를 잘지키고 있으면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야하는 하나님의 자녀 라는 신분의식이 생긴다. 그러니까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희가 알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르더라도 힘입어 살아야하는 존재이기에 알고 떠안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의존해야 하는 존재임을 그들의 언어로 알려주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깨뜨렸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야 하는 존잰데 내가 뭘 하려고 하니까 내 안에 부글부글 끓고 스트레스 받고 두렵고 안식이 없고 주먹을 불끈쥐고 원망하고 살게 된다. 예수 없는 사람이 그런다. 아덴 사람이 지식으로 살고 있지만 두렵고 불안하고 원망 속에 산다. 인생의 전쟁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꺠달아야 하는데 아덴 사람들은 한계상황을 못깨달으니까 말씀이 안들린다. 저 하늘에서 보면 다 똑같은데 자기가 더 낫다고 생각을 하니 말씀이 안들어간다.
4. 회개한 바울의 삶 자체가 성령의 알리심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모를 때 자기 죄를 뼈저리게 알았던 사람이다 근데 그떄 했던 행위를 예수께서 값을 대신 치루셨다 이걸 아는 사람을 회개하게 된다
아덴사람들에게 회개촉구하고 땅을 떠나라고 하면서 예수의 부활을 들었다면 바울 자체가 증거다 핍박자 포횡자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증거를 모든 사람들에게는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 내가 증거이다 알고 나서 행하지 않으면 더 큰 진노가 임한다고 목숨을 내놓고 말씀을 전한다.
말씀이 임하면 성령께서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하신다. 자신의 추악함을 알면 십자가를 붙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증거며 회개와 간증이 증거며 다르이들의 회개를 불러일으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나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임을 전하는 것이 설교의 절정이고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죽은자의 부활 바울설교, 그대로 이야기 했다.
바울도 우리도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것을 알리심.
죽은자의 부활을 들은 아덴사람들은 조롱도하고 네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바울이 떠났다.
미신을 숭배하면서도 도리어 바울을 미신처럼 여기고 조롱한다. (부활을 믿지 않음)
오순절 성령강림을 본 유대인들도 성도들을 조롱했고 아덴 사람들도 바울을 조롱했다
예수를 잘믿는다고 하면 모두에게 조롱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한편 또다른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다시 듣겠다고 한건 믿기를 거부하겠다는 완곡한 거절.
아덴사람들은 정답이 생기는 순간 두려움이 생김.
세상의 지성인들이 복음이 맞다고 생각해도 미꾸라지 처럼 거부하면서 빠져나가니까.
바울은 더듣겠다는 들을맘이 없다는 완곡한 표현을 듣고 떠났다고 한다.
하나님이 믿을만한 증거를 주시는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믿을만한 증거= 믿음
증거를 믿을 수 있는 믿음 또한 우리에게 주신다.
믿어지니까 믿는거지 (은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가까이하다(풀로 붙인 듯 가까이 붙어서 따르다) =딱풀성도가 생김
교만한 도시 아덴에도 소수의 성도가 생겼다.
아덴에서 기록된 두사람. 대단한 것이다.
너무 힘들었을 아덴에서 최선을 설교했다고 믿는다.
적용질문
알지 못했던 시대에 행했던 죄악은 무엇인가
나의 회개한 삶 자체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성령의 알리심이 되고 있는가
기도제목
권민정
1.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와 기도, 운동으로 영육 간에 건강하도록
2. 호르몬 치료 과정 주님께서 지켜 주시도록
3. 진로 인도해 주시도록
4. 신교제, 신결혼 인도해 주시도록
김지수
1. 할아버지할머니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건강지켜주시기를
2. 아빠가 백신을 맞는데 무탈하도록 지켜주시고 꼭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함께 가족끼리 예배드릴 수 있도록
3. 동생이 목장나갈 수 있도록, 신교제신결혼할 수 있도록
4.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지켜주시고 목장에서 자유함 누릴 수 있도록
5. 회사실장님과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어떤 과정과 결과에서도 주님의 뜻과 계획하심임을 믿고 동요하지 않기를
6. 내 죄를 알고 마음의 겸손함과 자유함으로 마음의 평강누리기를
이푸른솔
1. 매일큐티
2. 남자친구의 구원과 회개
3. 외할머니 치매 더 안 나빠지도록, 건강 지켜주시길
4. 회사 일 성실히 할 수 있도로
5. 내 죄 보는 것에 생색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