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5월16일 주일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성령의 신사
사도행전17장10절- 15절
10절밤에형제들이곧바울과실라를베뢰아로보내니그들이이르러유대인의회당에들어가니라
11절베뢰아에있는사람들은데살로니가에있는사람들보다더너그러워서간절한마음으로말씀을받고이것이그러한가하여날마다성경을상고하므로
12절그중에믿는사람이많고또헬라의귀부인과남자가적지아니하나
13절데살로니가에있는유대인들은바울이하나님의말씀을베뢰아에서도전하는줄을알고거기도가서무리를움직여소동하게하거늘
14절형제들이곧바울을내보내어바다까지가게하되실라와디모데는아직거기머물더라
15절바울을인도하는사람들이그를데리고아덴까지이르러그에게서실라와디모데를자기에게로속히오게하라는명령을받고떠나니라
(김양재 담임목사님)
한번 이혼을 하니 가족 간의 문제가 많게 되고 그러니까 진짜 십 년 뒤를 못 내다봐서 다른 환경을 가게 되면 전혀 알지 못했던 환경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대학교 가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술판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반포에서 술 먹다가 청년들이 가는 거고 그렇죠?신학을 하고 전도사를 하니 전혀 알지 못한 세계가 있는데 늘 제가 가정을 지킬만한 최고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땅이 짧고 영원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성경을 원칙으로 주셨어요.상급이 없는 인생 구원이 최고의 상급이지만 왜 믿으라고 합니까?이렇게 간증을 하신 건 대단한 일입니다.그래서 이렇게 지금 남편 집사도 잘 풀리길 바라고 아내가 대신 이렇게 간증했는데 자녀들도 엄마가 간증했는데 모든 상처에서 치유받기를 원합니다.간증은 우리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기도부터 간증부터 그냥 너무 이제 기가 막힙니다.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어떻게 영을 찾습니까?같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참 얼마나 신사 숙녀가 되기를 원하는지 모릅니다.그런데 오늘 성령의 신사에 대해주님 말씀하세요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신사가 되기를 원합니다.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여러 가지 부족해도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우리들 교회 슬로건인데 믿음만 있으면 뭐 하냐 상식과 성품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살아보니 너무 공감되죠?(ㅋㅋㅋㅋㅋ)이 것이 너무 맞는 이야기 같은 것처럼 들립니다.그러나 여러분!부족해도 믿음이 최고입니다.교회 다니면서 이 쉬운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이 이야기하다가 하직할 것 같습니다.너무 쉬운 이야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아주 돌로 칠 때 새입니다.요즘 사도바울이 돌로 맞는 것이 체휼됩니다.유대인들이 어떻게 들었겠습니까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이후 바울을 감탄케 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개역한글에 보면 복음에 대해 매우 신사적인 표현이라고 되어있습니다.너그럽다 보다는 신사가 낳잖아요. 2천 년 동안 알려진 베뢰아의 신사입니다.성령의 신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신사는
1.독불장군이 아닙니다.
10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쪽으로 약80킬로 떨어진 소도시로 그다지 중요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에 대한 소동이나 잡아 울을 빠져나가게 합니다.아주 위험한 밤중 여행이지만 그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 나은 거였죠 야반도주를 비겁하게 볼 수 있지만 성령의 전략에 따라 수치를 무릅쓰고 탈출합니다.
보내다는 단어는 두 번 쓰였는데13장4절에서 바나 바와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파송될 때 받았다고 했어요.
누가는 성령의 전략에 따른 파송임을 표시하기 위해 같은 단어를 썼어요.베뢰아에도 착한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간 것을 볼때 피하는 것이 전략이 아닌 것을 나타냅니다.
관례에 따라 전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가에 갔어요.아시아 전도를 생각하고 유럽 전도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지리부터 풍수문화까지 다 모르는 것 투성이에요.바울이 인정하고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성령의 신사는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형제들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야반도주의 한 밤과 시골인 베뢰아에 순종을 하는 바울을 보면서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할 때는 심히 다투었는데 우리는 바울의 태도가 안될 수 있잖아요.어떤 분은 바울이 유대인과 협력하지 않아서 왕따라고 바울이 관계가 안되잖아요 하는 분도 있습니다.그러니까 가는 곳곳 핍박을 당하니 독불장군이라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구속사와 세속사의 차이입니다.
초심자인 데살로니가 형제들에게 순종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분별합니까?바울이 바나바를 설득해서 끝까지 가려는 것 기억하시죠 떠난 사람은 바나바지 바울이 아닙니다.디모데를 격려하고 베드로를 생각해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보았습니다.똑같지만 복음의 본질과 비본질을 구별해야지 신사입니다.즉시 순종합니다.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바울은 결코 독불장군처럼 하지 않고 협력했습니다.딱풀성도라고 딱 달라붙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라붙어있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이타적으로 행동합니다.바울처럼 동역자를 중시하고 동역자라는 단어가 바울의 단어입니다.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는다고 왕따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그것을 알았어요. 바울이 아무것을 부탁하지 않았아도 주도적으로 사도바울을 도왔습니다.숫자가 많지는 않습니다.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신사와 숙녀가 있었기 때문에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협력의 기운을 받는 신사 숙녀 목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구원을 빙자하여 매사에 독불장군입니까?순종하고 협력하는 센스가 있습니까?
센스라는 것은 믿음은 갈 때 안 갈 때를 알고 그게 너무 센스 있게 비춰줘야 하는 거죠.미련하게 그러시면 안 됩니다.!!
성령의 전략부터 이야기하는데 안 들리기 때문에 엄마들도 이해를 못 하는데 내가 너무 이해하지만 우리 집사님 식구들에게 성령의 숙녀가 되셔서 센스 있게 독불장군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ㅋㅋ)
2.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그런데 아까 집사님만 센스 있지 말고 남편분과 아드님도 센스 있게 목장도 들어오시고 나하고 인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너그럽다는 것은 개역한 것 번역으로 신사적이라는 말입니다.이게 무슨 뜻이냐면 잘났다는 뜻입니다.관대함을 뜻하는 비교급 단어입니다.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더 열려있는 태도를 가리킵니다.그 집도 다 너그러워서 신사적이었으면 합니다.우리 번역으로 이거 이제 너그럽다를 보면 더 베뢰아 사람이 너그럽기 때문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원문의 구절로 면 반대가 맞아요.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묵상했기 때문에 그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비교급으로 더 너그러웠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대상과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잘 자랐다는 뜻이고 고품격 인간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이렇게 고품격인사람의 대표는 진짜 헨리나우엔이 아닐까싶어요. 예 네덜란드 출신의 석학이고. 명문대교 쓰고 어렸을 때부터 헌신해서 카톨릭에 저기 신부 사제였고 아주 명석한 사고에 아주 아주 탁월한 작가고.탁월한 연사 연사요 못하는 게 없어요. 헨리나우엔의책이 유명합니까말도 너무 잘 또 상처입은 치우자라고 부르는 의는 블링크는 이제 아픔을 솔직히 노출시키는 감정 이입 내지 공감대 형성에 아주 뛰어났어요.명문도. 예일과 하버드 교수라는 것도 고품격인데 마지막에 죽기 10년 전부터는 다 내려놓고 라브러쉬라는 정신장애 공동체에 가서 그렇게 살다가 갔기 때문에 신사 중에 신사 아니겠습니까?고품격 신사요 숙녀였다고 합니다.
원어가 필요할 때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이 신사적이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성령을 사모했기 때문에 더 신사적이라는 것입니다.잘남의 기준과 출발점이 다릅니다.우리는 이력서 등록 같은 외적인 자격을 봅니다.내적인 탁월함도 있으면 금상첨화로 봅니다.이런 조건을 많이 가출 수록 고품격 신사와 숙녀라고 믿습니다.이런 가치관으로 보면 믿음도 갖추면 더 좋은 덕목입니다.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것도 성품이나 자질의 문제가 되어버립니다.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봤을 때는 오직 말씀묵상에 있습니다.태생 성품 배움 자격이나 어떤 환경에서 있던 간절한 마음으로 있다면 그것이 잘난 인생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말씀을 대하는 열정도 으뜸이었지만 성경을 사모함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아나크리노라는 단어인데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의미인 아나와 구별하여 판결 결정하다는 동사 크시노가 합쳐진 단어입니다.아나크리노라는 것은 판사가 재판을 하기 위해 증거물을 반복적으로 살펴보아 판결할 때 사용했습니다.말씀에 빚 추어내 삶에 티를 골라내는 것입니다.
적용해서 행하는 데까지 상고하는 것입니다.이런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난 인생입니다.성령의 신사 숙녀입니다. 1차적으로 강당에서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외판단 했을까요?
13절에 보면 유대인이 소동했잖아요 이 사람들도 판단해야 하잖아요 아니라고 하니까 그래서 이제 유대인들의 거짓 가르침을 구분하는 것을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서 말씀을 날마다 붙들고 고민한 거죠 진짜다 하면 말씀을 받았다는 거죠 그러한가라는 단어가 그래서 나옵니다.베뢰아 성도들은 수용을 하면서도 비판적인 질문했어요 안티 한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티를 골라내기 위해 씹어먹은 결과 구약성경을 본 결과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입니다.그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인데 누구든 발견할 수 있습니다.제가 평신도인데 발견했잖아요.그래서 이제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대할 때보다 확실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면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면 말입니다.하나님 보시기에 잘 간 인생입니다.간절하다는 것은 상고함과 분별과 판단이 따라야 합니다.그래서 베뢰아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권하는 것이 큐티를 내게 주시는 말씀처럼 받고 삶의 현장에서 가져가서 고민해야 합니다.요즘 온라인으로 드리니 갈급함이 심합니다.아무거나 듣고 해서는 안 됩니다.목장 큐티도 말씀이니까 간절함으로 갈급함으로 상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목장에 들어가면 말씀 안 듣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생각을 해야 될 것으로 읽으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적용 질문도 생각을 하니까 질색이라고 하드라고요.제 설교가 들리는 사람은 쉽지만 안 들리는 사람은 어렵기 때문에 날마다 들어보셔야 합니다.말씀도 큐티도 안 하는데 저 설교를 들으서야 구속사적인 가치관을 알아야 하는데 한번 들어서는 모릅니다.저를 판단하려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주일 설교 좀 듣기를 바랍니다.그러면 이러죠 자기가 뭐라고 이러냐고(ㅋㅋㅋㅋ)그래서 이게 구속사 세속사가 갈라져 있어서 구속사 세속 주적에는 반감이 들기 때문에 바울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남미에서는 몇 시간씩 예배를 드리는 곳도 있고 미국에서 성장하는 교회에서 설교가 한 시간입니다.그래서 설교시간이 긴 것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ㅋㅋㅋ)예전에2~3시간 할 때가 그립습니다.더 일찍 오셨어야 합니다.이렇게 하니까이고 절 그대로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인 남녀가 적지 않습니다.똑같죠?우리들 교회랑?이런 인생이 성령의 신사고 숙녀입니다.
베뢰아에서는 없습니다.왜 없을까요?바울이 편지를 보지 않을 정도로 잘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를 파송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베뢰아는 빌립보나 데살로니가 보다 더 오래된 도시였습니다.알렉산더 대왕 때에는 두 번째 큰 도시로 성장했는데 그냥 가장 먼저 로마에 항복했다는 거예요. 빌립보 데살로니가만큼 특혜를 받지 못했어요 어떤 도시를 발전을 장담하는 것이 도로잖아요.
마게노니야를 관통하는 에그나티아 도로인데 이 도로는 데살로니가와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떨어져 있습니다.이렇게 보면 베뢰아 사람들이 지역적인 소외감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역사적으로 뒤지자 않는 베뢰아인데 미국에서 중부에 들어가는 켄터키 주 근처 일겁니다.만년 이류 도시라는 피해의식이 이 사람들을 붙잡았을 것 같습니다.더 너그럽다고 하잖아요 간절한 마음을 읽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했는데 그 약점이 바울의 증언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받게 된 것이죠.그러다 보니까 두 도시보다 베뢰아의 열망이 엄청난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죠.잘난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사람이 말씀을 받는 것이 절 말고 품격이죠.그 간절함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마음은 고난과 비례합니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우리 인생에서 버릴 고난은 없습니다.신사적인 것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고정관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신사적인 사람은 너그럽습니다.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요새는 정말 감사합니다.우리가 이렇게 많이 모이는 것도 기적입니다.힘든 것 알지만 신사적이 되길 바랍니다.간절한 것은 반드시 사모함과 분별함과 판단력이 따라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신사적이라 말씀을 찾습니까?오늘도 무사히만 빌며 하나님을 찾습니까?말씀을 찾다 보니 신사적으로 되었나요?고난 중에 하나님만 간절히 찾습니까?
여러분 고정관념은 몇 프로되십니까?신앙은 고정관념이 없는 것 입니다.정말 우리는 무엇이고 품격일까요 예수 믿어 천국 가는 것이 최고의 고 품격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구속사의 가치관입니다.말씀에 대한 진정한 간절함이 있는 것이 있는 겁니다.
적용해보세요
헨리나우엔과 도스토옙스키 중 누가 말씀을 간절히 상고하여 분별하고 판단한 성령의 신사입니까?우리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시죠? (ㅋㅋㅋㅋ)
헨리나우엔이 삶에서 동성애 적용을 못했잖아요.적용에서 행하는 것까지 못했어요.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이 사람 너무 겉으로 신사잖아요 진짜 신사는 도스토옙스키입니다.솔직한 나눔을 해보시길 바랍니다.우리는 헨리나우엔이 멋있게 보입니다 그분이 그냥 너무나 외로워서 친구한테 이렇게 이제 그런 이야기도 많이 써져있습니다.
3.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13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절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절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베뢰아의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바울의 구속사적인 강론을 듣고 믿었다는 소식을 들립니다.그래서 유대인이 배뢰아 까지 따라와서 바울을 잡으려고 참으로 무서운 시기와 열심을 냅니다.데살로니가에서 했던 방식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선동을 합니다 반역을 꾀한다고 선동합니다.이런 유대인의 모습을 보는 게 바울도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바울은 자기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신사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자기 자리를 비비고 닦다 보면 하나님께 맞추어지게 됩니다.자리에 있다 보면 하나님의 소원이 맞추어지게 되는 거예요.목자를 하다 보면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말씀의 능력 때문입니다.자리가 그 사람을 만들 때도 있어요 그럼 안되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래서 사명으로 일을 하다 보면 의지의 성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주님의 뜻에 따라가야 합니다.
아까 구미에서 주말마다 올라오신다고 너무 신사시더라고요.그러니까 아니 구미에서 여기 뭐 하려고 옵니까 그래서 유대인의 선동으로 시끄럽게 되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했던 것처럼 바울을 탈출시킵니다.사명의 길로 떠나보낸다는 뜻입니다.간절한 마음을 가졌던 베뢰아 성도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보다 더 어려웠을 것 겁니다.더 사모했으니까 그런데 성령의 신사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령의 협력을 합니다.이번에는 바울은 혼자 가는 거예요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 남겨둡니다.여기 보니 디모데는 베뢰아에 이미 와있네요.유대인의 박해가 시작된 베뢰아에 실라와 디모데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바울을 혼자 보내지 않아요 아가야 지역에 아덴까지 삼일20킬로 정도 되는데 여기를 같이 동행을 합니다.성령의 동역자가 되어 같이 모셔드리고 옵니다.
어마어마한다 걸어 같다가 와야 하는데 베뢰아에서 아덴까지 육로까지 되어 있는데 바다까지 같다는 것은 바닷길로 갈 수 있었다는 뜻인데 육로로 간 것 같습니다.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같이 돕는 거예요.오래됐다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모든 지체들이 무리 형제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길을 걸어갑니다.방해와 괴롭힘에도 멈추지 않게 하시는 것은 주님이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저 같으면 그만두었을 것 같습니다.다 핑계를 댑니다.나는 어떻게 여기서 있냐 이게 주님이 전적으로 성령의 전력으로 하셨지 그만두어야겠는데못그만 둡니다.맨날 살아나는 사람을 보게 되니까 가장 앞서 인도해 주신 분은 예수님인데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아버지가 일하니 나도 일한다고 합니다.
가정 세상 회사에서 사명의 길에 마침 길을 찍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겁니다.영혼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지혜가 생깁니다.사역에 영성에 건강하지 못하면 직분 포지션이 주어지는 것에 탐하고 이렇게 탐하면 말실수도 많고 말실수에서 천 냥 빚을 만듭니다.구원에는 말이 중요합니다.정말 고품격 신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정말 그렇다고 아름다워라 말하는 것이 아닌 화내도 안 할 말할 말을 하는 것입니다.믿음은 인격입니다.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입니다.구원을 위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그것을 분별해야 합니다.고난의 양만큼 비례하니까 목장에서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만큼 고난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게 맞기신 사명을 길을 멈추게 하려는 사람을 원망합니까?정죄합니까?불쌍히 여깁니까?성령의 신사가 되고자 할 때 형제와 무리가되어 잘 따라가야 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여러분들 가운데 정답은 알아도 마음에 인정이 안되는 지체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나누면서 신사가 되어가는 거예요 자꾸자꾸 변화하는 거예요.진짜 영혼 구원을 위해서 가는 인생이 성령의 신사입니다.
공동체 고백이에요 남편이 도박하고 그냥 다 말아먹고 외도하고 평생 속을 썩이는데 가난한 말기라는 거예요.오늘 내일 한대요 그랬는데 간 이식하지 않으면 죽는다는데 이식하려면 6천만 원이 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요새는 게 살 길이 있다.그러니까 또 이제. 그런데 너무너무 속을 썩이고 돈도 없는데 게다가 또 미식까지 해달라고 그러니까 막 죽기만을 또 바라는 마음도 있는데살아서 괴롭히니까 아주 그냥. 이 안에는 그냥 가슴이 오그라들어는 거예요. 그런데 그새 고등학교 아들의 간 조직이 남편하고 맞는다는.아들도 힘든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냐고 저 남편 때문에 우리 아들을 또 어떻게 해야 되냐 막 이러면서 제가 이식을 해 주시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를 했죠.이식해주시고 그분이 살아나서 이식해주시면 그분이 살아나가지고 또 도박을 할 거예요.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생색내지 마시고. 그러나 그분 위해서 이식해주시면은 그것 때문에 아무도 안 죽잖아요.집안 식구들 영혼처럼 수많은 사람 살리고. 자녀에게 크게 본이 될 것이라고. 자녀도 살릴 거라고. 그 얘기를 했더니 얼마나 이분이 저를 껴안고 울고 갔는지 몰라요.다들 목사님도 안 해줄 거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을 쉽게 하냐. 그건 최고로 성령의 신사가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실 아들이 맞으니까 돈도 안 없어지고 자녀에게 너무 본인이 되기 때문인데제가 주로 이렇게 처방을 하니까 다 무서워서 오기 싫은 거예요. 바람펴도 살라 그러고 이러니까 아마 이런 처방을 기대했을지도 몰라요.아니 돈도 하나도 없는데 무슨 또 육천만 원이나 빚을 져. 그냥 죽게 내버려 둬요 그 도장 받으려고 왔는데 혹 데려다 목을 붙였잖아요. 어차피 짧은 인생인데 내가 산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잖아요 그 남편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간 떼어줬다고. 남편 변하는 거 절대로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돈도 꿔주고 생명도 주는 겁니다. 그 사람이 고마워할 거다 하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렇게 제가 예언을 했는데 예언이 딱 돼가지고 간 아들이 간을 이식해줬는데도 이 사람이 주님을 못 만나는 거예요.도박 바람 다 계속 되었어요. 2008년도에 오셨는데 아직까지 목자가 아니에요 보니까. 부목자도 아니더라도 그런데 최근에 아내가 이렇게 뇌경색으로 아파서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니까 이제 굉장히 성실해지고 바람도 이제 끊어진 것 같은데 이 안에는 요양원 뇌경색인데도 요양원에서 부목자로 목장도 참석하고 목보도 쓰고 있어요.
저는요 2008년도니까 지금 한 10몇 년 됐잖아요 그래도 이 가족이 모두 있잖아. 그 지방에서 꼭 와요. 교회에 모두 교회의 목장에 나오는 게 너무 감사해서 저는 그 시간이 별로 길지 않다고 생각해요.10몇 년 동안 교회 온 게 어디예요. 딱풀 정도로 성령의 신사 숙녀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들도 싱가포르에 갔는데 다 이렇게 아들도 결혼하고 할렐루야. 저는 성령의 신사 숙녀는 잘난 사람들이 아니고딱풀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니 목자도 안 하면서 이렇게 몇 년 저 십 몇년 동안 오는 게 더 힘들지 않아요. 다. 모든 식구가 교회 온다고 안 믿어지는 거.어떻게 간을 이식해줘도 안 믿어져 그거 기다려주셔야 돼요 제가 이상한 이상한 간직만 이렇게 들려드려서 매우 죄송해요 훌륭하게 간을 이식해주고 일했으면 좋겠는데 인생이 별 인생이 없다고.자. 그러니까 신사적으로 해서 상고하는 것에 관절의 성경을 상고하는 게 아니고 상고했더니 신사적이 되더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신사는 독불장군이 아닙니다.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습니다.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참석인원:양재영,김태규
오늘은 오랜만에 오프라인 목장으로 모였습니다. 모인인원은 목자인 재영이형 그리고 부목자인 저(태규) 이렇게 두명이 모였습니다. 오늘도 목자와 부목자만 모였지만 두명이 있다 보니 깊고 진한 나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참여하던 다른 분들의 경우 이번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ㅜㅜ대부분의 지체들이 각자의 사정때문에 모이지 못한것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 상황 가운데 이렇게라도목장이 활성화 되는것에 감사합니다. 지금 목장 모임 자체가 안되는 곳도 많은데 목자형과 단둘이라도이렇게 모여 나눔을 할수 있는 시간이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것 같습니다. 코로나라는 상황은 우리신앙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가끔가다가 과연 우리는 잘 가고 있는 것인가계속 고민하고 저 자신에게 물으며 묵묵히 나아갈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그래도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언젠가 쨍하고 웃을날 오지 않을까 물론 확신할수는 없지만 지금 할수 있는 것은지금 삶의 사역지인 현실속에서 버텨가는 것이 할 수 있는 적용이기에 최선을 다해 우리 모두 버텨요!
나눔시간은 총 1시간 50분 입니다.
한주간 근황
이번주 수요일부터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연봉부분은 맞췄고 집 근처에 있는 회사라 감사하기도 하고 어안이 벙벙하네요 그동안 이렇게 가까운 거리로 회사를 다닌 적이 없었는데 막상 집 근처로 회사를 다니니아직도 믿기지가 않기도 합니다. 이번년도 초에 이직한 회사에서 여직원과 관계로 인해 갈등이 심해져서 회사를 나오게 되어서 그런지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사회 생활 하면서
어이없는 일들을 겪다보니까 이제는 딱히 기대도 없네요 ㅎㅎ 이번주 목요일 금요일에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 남편분과 같이 상세페이지 작업을 진행하면서 의견 갈등이 있어서 짜증나기도 했는데 일단 돈 받은게 있으니 화를 삭히면서상세페이지 작업 끝내고 메일로 보내고 작업을 끝냈습니다.
토요일에는 오전에 코딩 과외를 받았는데 과외 선생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태규님은 비트코인이나 주식하고 싶은 생각이 드시냐? 자기는 요즘 주식과비트코인에 돈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난다. 정석대로 정직하게 살고싶은데 비트코인 혹은 주식으로 돈버는 사람보면 바보되는 느낌이다 라고 솔직히 털어놓으셨는데그 모습 보니까 과거 잠시 현혹되어 다단계를 했던 제 실수가 생각나서 선생님한테 쉽게 번돈 쉽게 나간다 우리가 피땀흘려 이루었던 기반을 한순간의 실수로 잃어버리지 말자고그 실수로 인해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수 있다고 간절히 이야기 했는데 선생님이 그건 맞는것 같다고 말해주셨네요.
오후에는 양육 동반자인 친구와 양육을 진행하였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관계로 힘들어하고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 친구를 보면 과거의 제 모습과 많이 겹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군대 갖다오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가족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 모습이 생각이 났네요. 양육 시간동안 나눔을 하다보면 저도 이 친구가 가족들과의 대화가 잘 안되는 나눔을 들을때마음이 아프고 지금 저와 제 동생의 관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교폭력의 고난의 시간동안 그 상처를 동생에게 많이 풀었고 그 결과로 동생과의 관계는 많이단절되었습니다. 동생과의 대화를 하려고 해도 서로 어색해질대로 어색해져서 이제는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힘들때동생은 제가 학교 폭력 당할 시절에 저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대화도 많이 걸었지만 당시에 그런 동생을 따뜻하게 대해줄 여유도 없었고 그렇게 해줘야할 이유도 몰랐기에많은 핍박을 동생에게 쏟았습니다. 몇년 동안 저에게 많은 대화를 시도한 동생에게 정말 큰 상처를 주었기에 지금 대화의 벽이 많이 차단 되었고 제 삶의 결론임이 인정되네요.작년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낀것은 관계에서도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습니다. 만약 그 시절에 동생을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지금과는 다르게 많은 대화를 할수 있을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동반자에게 해줄수 있는 이야기는 나처럼 이런 실수를 범하지 말았으면좋겠다고 가족과 대화를 할수 있는 시간에 많이 대화하고 사랑할수 있을때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표현할수 있는 시간에 표현 못하면 나중에 가서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말했는데 그 친구에게 제 진심이 닿기를 소망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오늘 목사님의 첫번째 대지 질문부터 확 와닿았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난 독불장군이었다. 가족과 몇몇 사람만 믿고 나머지는 믿지못하는 믿을꺼는 나혼자 나머지는 적이라고규정했단 나는 독불장군이었고 내 의견이 옳고 너희는 틀려라고 다른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였다. 내 기준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 지체를 정죄하고욕하고 더 나아가서는 상처를 주었다. 상처로 힘들어하는 지체를 볼때 마음이 흔들렸지만 난 그 사람을 위해 이렇게 정죄한거야 난 잘한거야 라고 합리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내 옆에 친구들과 지인들은 하나 둘씩 떠나갔다. 그리고 전문학교와서 알게 된 친구와의 절교사건으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친구와의 절교 사건이 일어나고나서옆에 남아있던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했다. 상처주어서 미안하다고 내가 내 기준에서 판단한것 같다고 사과를 하였고 다행히 남아있던 친구들은 내 사과를 받아주어 지금까지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그때도 그때인데 요즘 담임목사님 설교를 보면서 내 과거를 회상하고 돌아보면서 내가 정말 가족들과 내 지인들 친구들에게 독불장군이었던 것이 인정되었다.
잘난 사람이 말씀 잘 받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사람이 말씀을 잘받는다. 간절한 마음은 고난과 비례한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내가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정말 살고 싶어서였다. 교회에 오기전에 폭주기관차처럼 나만의 성공을 위해서 달려왔지만 남은건 지쳐버린 몸과 마음 자해 시도를 하려는 내 모습이 남아있었다.사실 그때 다시 교회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났지만 용기가 안났다. 이미 4년 전에 두번다시 하나님 곁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욕하면서 나갔는데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이제서야 하나님 찾는내 모습이 한심했다. 하지만 내가 죽을것 같으니까 고민이되어 군 복무시절 군교회에서 만난 전도사님에게 연락해서 고민을 토로했다. '저 다시 교회 가도 될까요?' '이미 떠난 사람인데 하나님은저를 받아줄까요?'라고 물었는데 그 전도사님이 떠난건 태규고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어요. 용기내어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되요 라고 말해주어서 고민끝에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다.
담임목사님 설교를 듣고 교회 처음왔다고 교회에 등록하고 싶다고 말할때도 정문앞에서 20분동안 망설였다. 그런데 내가 죽을것 같으니까 어차피 할거 이 교회 다녀보고 여기서 더 가망없으면 그때 자해하던지 자살하자고하고 등록했다. 목장에 처음 왔을때도 살고 싶었기에 간증했던 집사님들과 지체들을 보며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게 된 계기 된것 같다.가족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따돌림과 여러 고난을 깊이 있게 나눈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나누다 보니 옆에 있던 지체들 한명 한명이 경청해주고 체휼해주었고 그게 시작점이 되어따돌림 등 과거의 상처에서 많이 벗어나게 된것 같다. 정말 살고 싶어서 매주 교회 나오고 목장 나오면서 딱풀처럼 붙어있었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붙들었고작년에는 코로나의 시작됨으로 인해 오프라인으로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니까 돌아버릴것 같고 미쳐버릴것 같아서 큐티기도회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어렸을적 교회 다녔던 것 보다지금 이순간이 가장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그때는 왜 신앙을 가져야하는지 몰랐고 기도를 왜 해야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살기 위해서 더 기도하고 공동체에 붙들게 되는 것 같다.
간절한 사람이 말씀을 잘 받고 간절한 마음은 고난과 비례한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기 위해서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간절하게 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공동체의 소중함도 인정된다. 옆에 지체 한명 한명이 붙들어 주지 않았으면 지금 나는 이렇게 평안하지 못하는 것이 인정된다. 참 너무 신기하다 우리들교회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한 순간부터내게는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웃으면서 대화하고 마음의 전보다 많이 평안해진 것 자체가 신기하고 감사하다.
기도제목
재영이형
1.새로운 사업장에서 구원의 통로가 열리길
2.매일 습관적으로 큐티하기
3.부모님이랑 나눔하는 시간 가질수 있기를
태규
0.믿음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게 교제와 결혼 인도해주시고 거룩하고 화목한 가정 꾸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큐티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2.치매 초기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외할아버지를 지켜주시고 옆에서 간호하시는 외할머니 또한 지켜주시기를
3.엄마와 아빠 파병가있는 동생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4.항상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시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부모님처럼 흐트러지지 않게 독립 생활할 수 있기를
5.목장 지체들과 초등부 양교 수련회 지체들 그리고 주위 지인 지체들과 동행해주시고 지켜주세요.
6.몸 컨디션 생각하며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관리 하기.
7.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잘 버티고 두려운데 매순간 마다 버티며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8.개인작업과 피아노 레슨 연주때 어린아이 같이 즐기면서 할수 있게 즐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9.나라경기가 침체되어 많은 가정들이 힘들어하는데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가정들을 살려주시기를
10.백신접종이 하루빨리 완료되어 코로나가 멈추고 오프라인 예배가 열릴 수 있기를
푸른솔
1.이번 주안에 비트코인 본전만 찾을 수 있기를
2.사업 운영에 지혜를 주실 수 있기를
성빈
1.일을 집중할 수 있기를
2.몸이 컨디션 관리 잘할 수 있기를
강백
1.건강 회복 하는데 있어서 집중할 수 있기를
2.수술한 상처 아물기를
성은
1.건강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2.한눈 팔지 않고 공부와 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기를
성민
1.코로나 진정되길
2.재택근무 시에 힘내길
기도하기
오늘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공예배와 목장모임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제한적이지만 오프라인으로 예배와 목장모임을 할수 있게 해주셔서 숨통을 트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렇게 제한적으로라도 지체들을 만날수 있게 하시니 감사하고 예전에 모여서 나눔하고 예배하며 목장하며 부서섬겼던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많이 느껴가고 있습니다.코로나가 지속됨으로 인하여 지금 많은 지체들이 지쳐가고 있고 떠내려가고 있는데 떠내려가지 않게 우리의 강한 중심 점이 되어주셔서 붙들어주시고 우리가 서로에게 실라 같은 지체가 되어 서로를 붙들 수 있게 인도해주시고 공동체를 귀히 여기는 공동체로 될수 있게 하나가 될수 있는 성령의 전략을 세울 수 있게 주님 인도해주세요.오랫동안 생명의 생사를 함부로 판단하여 낙태의 죄를 범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우리가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수 있게 태아생명보호법을 제정할수 있게 인도해주시고 그 법을 입법할수 있는 한사람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사회 전반적으로 학교폭력 또한 심각한 문제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을 방조하지 않고 제대로된 처벌과 반성을 하여 지금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물려줄수 있게 도와주세요.지금 상황이 어렵지만 어려운 상황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순풍으로 나아간 사도바울처럼 우리도 매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순풍처럼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우리 목장 지체들 재영이형 강백형제 저(태규)성은 푸른솔 상호 성빈 성민 한 사람 한 사람 주님 지켜주시고 함께해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