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8
역대하 6:36-42 성전의 기도 이성훈 목사
성도가 지체와 교제하기를 멈추면 사단은 미소를 짖는다고 합니다. 성도가 성경을 멈추면 사단은 크게 웃는다고 합니다. 성도가 기도하기를 멈추면 사단이 너무 기뻐서 폭소한다고 합니다. 기도가 중요합니다. 성도는 기도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는데 성전이 건물만이 아니라 예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 교회 그리고 그곳에 속한 우리가 성전이기에 기도하는 존재가 맞습니다. 성도인 우리에게 기도가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전이 되어서 성전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다면 성전의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1. 회개한 죄인의 간구입니다. 36-38
22-39, 솔로몬이 일곱가지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7가지 상황: 다툼, 패전, 가뭄, 여러가지 재앙이 내리는 경우,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 전쟁 출전의 상황,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 우리가 다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드리는 것이 본 마음이기에, 솔로몬이 왕으로서 선지자로서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성전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도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36절, 일곱 번째 기도 포로로 잡혀갔을 때 기도로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6,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죄의 본질이라는 것은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뜻과 목적을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일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죄인이라는 만성적인 증상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이쯤이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넘어갑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려는 것, 내가 주인이 되려는 것,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죄의 싹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한 순간이 결국 하루가 되고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평생이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야식, 야동, 술, 담배, 과소비, 바람 등 여러 중독이 있는데 중독 가운데 있어도 오늘 까지만! 한번만! 하다가 결국 질질 끌려서 몸과 영혼과 모든 관계가 다 파괴되는 과정으로 이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소한 죄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100%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방관하지 않으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 보시면서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택자 일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잘못을 했을 때 걸리는 것이 복일까요? 안 걸리는 것이 복일까요? 안 걸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택자는 잘 걸리는 사람 같아요.
어릴 적 어머니 방에 들어갔더니 외투가 옷걸이에 걸려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순간 주머니에 돈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을 찰나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걸리고 말았어요. 또 한번은 중학교때 친구들이 성인잡지를 돌려보고 있었어요. 제차례에 보려는 순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걸렸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주차 3분이 지나서 벌금을 냈었습니다. 바로 걸려서 목장안에서 이 죄를 나눌 때 죄가 힘을 잃습니다. 감추고 싶은 나의 잘못들이 걸리고 일어나는 것은 택자에게는 성도에게는 복입니다. 자주 걸리는 만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자로 여기셔서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 보신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죄값을 치르고 있는 징벌상태가 바로 적국에게 사로잡혀간 상태입니다. 죄에 대한 징벌에 메여 있는 상태입니다. 37절은 이것을 사로잡혀간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37-38, 우리가 저마다 사로잡혀간 땅이 있습니다. 사로잡혀간 땅에서 택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3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스스로 깨닫고, 두번째는 돌이키고, 세번째는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에서 세상의 기준이라는 마음에서 돌아선다는 것이에요. 회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이렇게 사로잡힐 사람이 아니라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에서 돌아서서 내가 이렇게 사로잡힘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지!라고 고백하고 인정하는 대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행한 죄악이 내가 사로잡힌 고난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회심에 따라서 나의 몸, 나의 행동, 나의 삶을 돌이키라고 합니다. 회개!!! 사로잡힌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힘을 썼다면 이제는 내 죄를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서 실제로 내 삶이 변할 때까지 메어 있는 환경 사로잡힌 땅에 잘 메어 있기로 적용하는 것이죠. 회개는 자포자기와는 다릅니다. 회개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간구하는 나의 소망이 있어요. 사로잡힌 일이 내가 마땅히 당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내 삶의 끝이 아니라는 것과 내 삶의 결론은 아니라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나를 지으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아파하시고 중보 하시며 내가 돌이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로잡힌 이 땅에서 나를 성전으로 세워가실 주님을 내가 바라보고, 주님께 소망을 두고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전의 기도에요. 사로잡힌 땅에 있지만 그곳에서 회개하며 주님의 성전으로 나를 굳건히 세워가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죄악을 회개하고 주님만이 정답이심을 고백하면서 주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회개한 죄인의 간구입니다.
미국 유학중 박사 2년차에 칼빈 교수님이 계셨어요.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요. 아침 큐티본문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족장들이 성전 건축하기 위해서 예물을 기쁘게 드렸다는 에스라 2장 말씀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열심히 경력을 쌓아서 훌륭한 목사가 되려고 노력했는데, 내 힘과 내 노력만 의지하다 보니 가정하나 지키지 못해서 가정이 무너지려 할 때에 놀라운 은혜로 좋은 교회를 만나 내 죄를 보고 말씀으로 주님을 다시 만나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웠다고 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나 힘든 이야기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말씀에 따라서 무너진 가정의 성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기쁘게 드려야 할 예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무너진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 들었던 것 같아요. 학생들은 당황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이렇게 칼빈 교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었어요.
Q. 내가 사로잡혀 간 땅은 어디입니까? 그 땅에서 원망하십니까? 회개하십니까? 내가 매일 기도하며 용서해야 할, 용서 받아야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
2. 하늘에 계신 주께서 들으십니다. 39-40
39, 회개한 죄인의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 하늘이 계신 주님이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자격 없는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늘은 우리와 멀리 떨어졌다고 말하지 않아요. 주님은 우리 가까이서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4:7)
40,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눈으로 보시고 귀로 기울어 들으신다고 표현할 만큼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가장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 기도에 하나님이 전능하고 거룩하신 성품으로 응답하십니다. 기도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우리가 고백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 일을 돌보신다는 것은 우리 뜻대로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주님의 의로운 심판을 내려주십시오!입니다. 기도한 일들에 대해서 주님의 의로운 심판을 내려 주시고, 우리가 사로잡혀간 땅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에서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하며 인정해야할 내 죄를 깨닫는 것이에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게 내가 100%죄인이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100% 옳으시다를 완전히 인정할 수 있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죄패가 호패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조차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이 땅에서 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심판은 죄사함으로 이어집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성도에게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100% 죄인임을 고백한 결과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에요. 주께서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9) 하늘에 게신 주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 때 우리는 주님께서 전적으로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죄사함을 경험하고 확신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죠. 만남이 성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문제해결이 기도응답이 아닙니다. 문제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성전의 기도에 대한 최고의 응답입니다.
칼빈교수님 수업을 마치고 반년 후 박사과정 종합시험을 보았습니다. 소수 학생의 무사통과, 대부분의 보충 논문, 시험준비 못 본 소수의 재시험을 두고, 저는 만점을 받았고 성실하게 임하며 교수님과의 관계도 좋았기에 무사통과 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시험에 응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과는 괜찮았는데 유독 칼빈교수님의 까다로운 질문들에 힘든 인터뷰시간을 가졌고, 잘 나온 다른 과목들과 다르게 칼빈 교수님은 다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답안을 처음부터 다시 쓰라는 것입니다. 의도를 알 수가 없었기에 인정이 안되어 화가 많이 났어요. 그 때 본 큐티본문이 전도서 1장이었어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이 선생님한테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번뇌와 근심을 하게 하신 사건이었던 것이죠. 저는 아직 그때 주님의 의로운 심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나의 심판으로 인정하지 못했어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너무 잘해서 나를 교만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정이 안되었어요. 결국 안 쓰고 계속 미루었어요. 소심한 항의였죠. 그 후에 시간이 흘러 다음학기 조교배정 알림이 왔어요. 전공이 다름에도 저에게 배정된 교수님이 칼빈교수였어요. 그 분 밑에서 조교로 섬기려니 짜증이 났어요. 그때 큐티본문이 전도서 10장이에요. 제가 주권자가 아닌데 알량한 지식과 자존심으로 주권자 노릇을 하고 있더라구요. 하나님이 아닌 제가 주권자로 행세하고있었어요. 모든 사건을 통해서 저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저의 허물을 조금 보았어요. 저의 교만함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움 심판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인정할 때까지, 내 옥터가 죄의 기반이 흔들릴 때까지, 주님께서 칼빈교수님을 사용하셔서 큰 지진을 일으켜 주었던 것이죠. 그런데 저는 옥터의 사건으로 깨닫지 못했어요. 아무 자격도 없고 믿음 없는 저를 주님께서 은혜로 말씀으로 만나주시는 최고의 응답으로 주셨어요.
Q. 과거에 주께서 들어 주셨다고 고백할 수 있는 기도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요즘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시나요?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여러분으로부터 듣기 원하시는 나의 기도는 무엇일까요?
3. 예수님 때문에 기뻐합니다. 41-42
41,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이 성전을 집으로 삼아서 여기에 들어와서 머물러 살라고 부탁합니다. 솔로몬도 이 요청이 말도 안되는 요청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18절) 하지만 솔로몬은 그만큼 주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임해 주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것입니다. 7장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응답해 주셨어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성전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제사장들이 구원을 입어요. 주의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온 백성이 구원의 은혜 때문에 함께 기뻐하는 거죠. 이 기쁨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왜 구원이고 기쁨일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은 100% 죄인인 내가 100% 옳으신 하나님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생명의 주님과 연결되는 엄청난 사건이에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게 됩니다. 죽었다가 살아나게 되는거죠. 구원이고 구원이 있기 때문에 기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말씀이 들리는 것이에요. 말씀이 들려서 그 말씀대로 내 삶에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교수님 사건에서 전도서 10장으로 옥터가 흔들리게 하신 그 상황에서도 주권자가 되려 했던 교만의 죄를 회개하게 하셨잖아요. 인정하고 회개를 하니 저절로 순종을 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바로 투정부리는 것 항의하던 것을 멈추고 성실하게 답안지를 써서 제출했어요. 칼빈교수님 조교일을 시작하면서 그 학기 시작할 때 첫 미팅을 가는 날이었어요. 아침에 묵상 마가복음 4장이었어요. 주신 말씀대로 적용하라는 뜻으로 받고 교수님을 찾아가서 공손한 태도로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일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지난 시험 과정에 있었던 일과 말씀 묵상하면서 깨달았던 것들을 솔직하게 나누면서 교수님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어요. 교수님께서도 잘 이해해 주셨고 조교도 기쁘게 섬길 수 있었어요. 적용도 모르고 깨닫지도 못하고 믿음도 없는데 말씀을 듣고 문자 그대로 들으면서 순종하니까 그나마 먼 땅에서 이방 땅에서 그때 이 기쁨을 조금 맛보게 해주시도록 조금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 같아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면 눈이 어두운 사람도 내 자신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아요. 내 죄가 깨달아지고 내 자신이 보일 때 성령의 놓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남이 가능한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자격을 갖춘다고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42, 주의 기름 부은 왕 다윗은 예수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예수님입니다. 다윗이 부분적으로 미리 나타낸 메시아의 역할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 이루셨어요. 우리 대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 적용을 통해서 모든 의를 다 이루어 주셨고 이제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예수님 따라서 순종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전을 들어 응답해주시고 만나주실 이유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만 생각하면 심판, 멸망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성전의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고,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지고,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십자가 또는 회개 소리에 불평하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이미 주셨는데 왜 그렇게 죄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냐는 것이에요. 우리가 천국가는 그날까지 죄의 흔적을 각자 짊어지고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회심한 그날 받은 은혜로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시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우리를 배려해 주셨어요.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이에요. 육의 양식뿐 아니라 영의 양식도 일용할 양식입니다. 매일 말씀으로 자신을 다시 보고 내 안에 깊이 숨어있는 죄를 조금씩 깨달아서 회개할 때 주님께서 베푸시는 죄사함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한 걸음씩 따라가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는 만큼 죄를 속량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회개는 슬픈 것도 우울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한 만큼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에 기뻐요. 최고의 감정의 말씀이 맞습니다. 회개는 은혜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에 지신 십자가를 억지로 지지 않으셨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앞서 가셨기에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죄를 보는 아픔을 통해서 가는 길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앞이에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요. 우리는 모든 기도를 예수님의 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서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기도의 응답을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응답을 보장해주시고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있어도 은혜의 보좌 앞에 힘입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 설교하다가 할아버지처럼 목사가 될지 아버지처럼 의사가 될지 고민했다는 나눔을 했잖아요. 저희 아버지께서 일반적인 보통 의사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부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릴 적부터 큰 부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예수를 안 믿었을 것 같더라구요. 제 안에는 주권자가 되려는 왕이 되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안의 힘이 있었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된 것은 제 믿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제 깨달음으로 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으로 만세전에 저를 선택해 주셔서 제가 지금 복음 전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날마다 십자가 지기 싫어서 목사를 선택한 죄악,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과 힘을 의지했던 저의 우상 숭배하는 그 마음 그 욕심과 그 교만을 이제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깊은 죄악까지 사용하셔서 예수 믿게 하시고 사명의 자리에 서게 해주시신 하나님의 은혜를 제가 확신하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성도들과 함께 기뻐할 수가 있어요. 후회가 아니라 회개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선택이 아니라 저를 찾아오시고 저를 만나주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믿음 없는데 만세전부터 하나님이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Q. 내 몸이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믿으며 매일 회개로 청소하고 있습니까? 회개하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주님과 만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내려놓아야 할 내 열심이나 수고는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은우
프로젝트 하는 것들 나의 힘을 빼고 말씀에 물으며 갈 수 있도록
거하시는 성전이 나임을 알고 매일 회개하고 감사와 기쁨 누리도록
예선
양육의 은혜는 성령님만 주시도록
나의 힘을 빼고 주님 만나는 은혜와 기쁨 누리는 한주 되도록
목장 식구들 위해서 기도하기
할아버지 속히 회복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 오시도록
지화
주님 인도하심 가운데 결혼 준비되고 구원의 가정 이룰 수 있도록
남친 세례 받고 목장과 말씀이 들리고 교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양교 받는 것이 최고의 혼수임을 알고 회개하도록
귀 호전될 수 있도록
언니랑 조카 가족들 말씀이 들리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다인
사람과 회사의 상황 묵상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경영하신다는 것 믿고 평강 누리도록
회사에서 거절을 잘 당하고 해야 하는 말 하고 싶은 말 십자가/지혜/타이밍으로 말하고 올 수 있는 용기 주시도록
여러 이유로 할 수 없었던 모든 얘기들 양육하는 동안 말씀으로 해석되어 모두 다 나누고 오도록
언니와 아이 건강하게 지켜주세요.
보련
여전 한 방식으로 한주 동안 잘 살아 낼 수 있는 영육 허락해 주시도록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양육 끝까지 다 받을 수 있는 지혜 체력 허락해 주시도록
나의 인생의 주인/보호자/공급자 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다 아뢰고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직장 허락해주세요.
상처받은 가족들을 위로하시고 식구들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저의 생각을 보호해 주세요.
현경
돈/가족 우상이 조금씩 줄어들어서 진짜와 가짜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주시도록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