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1
역대하 3:1 성전의 터 이성훈 목사
1. 하나님만이 상급이시라는 믿음의 터입니다.
모이아 지명은 성경에서 두 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과 창세기 22:2에 나옵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재물로 바치려고 했던 장소입니다. 사실 이 모리아산 자체가 중요하겠어요? 모리아산이 상징하는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어디든 모리아산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오늘 예배 드리고 있는 이 성전도 모리아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 됩니다. 모리아산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목사님의 창세기 강의 때 들은 것처럼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테스트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려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응답한 장소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엄청난 시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곳이며,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은 곳입니다. 믿음으로 인생에서 아브라함은 가장 간절한 예배를 드린 곳이고, 이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곳입니다. 즉 모리아산은 이 세상 어떤 곳 보다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런 믿음의 터입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듣고 있으니 바울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울도 자기보다 늘 하나님을 앞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단 한사람에게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매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자기가 쓸 수 있었던 로마 시민권인 특권의식을 쓰지 않았어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내가 죽는 것 같은 적용을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시는 믿음! 하나님만이 내 인생에 최고의 상급이시며 목적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터 위에 바울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상급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이죠. 믿음의 터 위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져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보다는 웅장한 구조나 값비싼 재료 (역대하 3장 뒷부분에 나오는 엄청난 성전의 구조와 황금으로 덮은 것과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것)들을 먼저 봅니다. 화려해 보이는 외모나 특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건물의 터는 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건물을 장식하는 보석이나 금은 잘 보입니다. 우리가 터 보다는 화려한 재료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Q. 인생의 집을 어떤 모양으로 무슨 재료로 짓고 계십니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집입니까? 이번만은 높고 화려하게 지어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어떤 경우 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터입니다.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겪으며 끊임없이 회개했던 다윗이 인구조사를 합니다. 인구수를 드러내서 세력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조사된 130만의 수를 보면서 다윗은 그제서야 내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큰 죄를 저질렀구나 하고 자기 죄를 뉘우쳤지만 결국 죄에 대한 벌로 백성 7만명이 죽습니다. 엄청난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 모리아산입니다. 이때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24:17_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원래 이 사건은 사울을 따르다가 다윗을 따랐다가 또 압살롬을 따르는 아무나 쫒아 다니는 백성의 불신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려고 허락하신 일입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다윗이 억울해 보입니다. 백성의 불신 때문에 괜한 죄에 격동이 된 것이잖아요. 하지만 다윗은 백성의 목자로서 백성의 모든 죄를 자기가 책임지며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믿음있는 사람의 모습이죠. 가정과 교회에서 중심 잡는 그 한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찮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편에 서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는 일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환상을 따라서 성령의 직행으로 빌립보에 와서 기가 막힌 일을 많이 당합니다. 매를 맞고 깊은 옥에 갇힙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 곳에서 성령의 찬송을 부릅니다. 바울은 빌립보 변두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울이 사울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그 사람은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바울은 변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의 회심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박해한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닫고 자신의 옛 삶에서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교만했던 사울이 자신은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바울로! 성령의 수행원으로 성령의 동역자로! 빚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터입니다. 어떤 경우 든 자기 죄를 보면서 회개할 때,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Q. 배우자, 자녀, 부모를 향해서 여전히 탓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성전을 위한 회개의 터를 닦기 위해 인정해야 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
3.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난 회개의 장소는 모리아산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입니다. 이곳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한 다윗은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땅 주인 오르난에게 사정을 얘기합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은 예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의 왕께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르난의 선물을 거저 받기를 거절하고 값을 지불하고 돈을 주고 그 산 전체를 구입합니다. 그리고 재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니 재앙이 그칩니다. 오르난과 다윗 모두 자기 자리에서 값을 지불합니다. 오르난은 여부스 사람인데요. 여부스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몰아내야 할 일곱 족속 중에 맨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서 저항했던 족속이에요. 여호수아 때부터 사울 때까지 300년 가까이 이스라엘 사람이 여부스 족속을 정복하지 못했어요. 다윗이 그들을 점령하고 시온성을 세웠습니다. 오르난 또한 다윗에 의해 정복당한 한 사람이에요. 다윗의 적군 중 한 사람이죠. 최후의 적이 다윗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자 하는 최고의 예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대적의 자리를 떠나서 예배자의 자리로 서기 위해서 그 값을 아낌없이 치르는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백성의 죄를 자기 죄로 인정하고 회개했으므로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모두 지불합니다. 당시로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빼앗을 힘과 권한을 가진 왕이지만 다윗이 진정한 분수령 적인 회개를 하였기에 특권의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값을 치르는 적용을 합니다. 오르난이나 다윗이나 각자 자기 자리에서 구원을 위한 대가를 치르는 적용을 하니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에 응답하십니다.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재앙을 그치게 하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강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놓임을 경험하는 샬롬이 되는 것입니다.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삶에도 십자가 지는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회개는 결국 적용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적용이 믿음과 회개의 증거입니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라서 날마다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할 때 우리의 모든 일과 환경과 조건이 영혼구원으로 이어집니다.
말씀 위에 살아 역사하는 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성도로서 여기계신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 받고 가는 것이 감사합니다. 신방을 해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경험자로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 교회에 믿음의 터가 있고 회개의 터가 있고 적용의 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붙어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날이 반드시 옵니다. 조금만 인내하시면서 목장에 붙어 가시길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공동체에 잘 메어 있어야만, 말씀에 잘 메어 있어야만, 놓이는 날이 옵니다. 내가 먼저 예배를 회복하여 주님의 성전으로 조금씩 조금씩 세어져 간다면 주님의 날이 되어 성령의 놓임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공동체 붙어만 있었더니 서로를 무시하고 비난하며 너는 너 나는 나 하던 저희 부부가 조금씩 성령의 동역자로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높고 험한 토로스산맥들이 많이 있고 옥에 갇히는 상황들도 앞으로 많이 있겠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과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같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음이 생깁니다.
Q. 여부스 사람처럼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와 함께 예배자로 서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값,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붙어만 있었더니 누리게 된 평강이 있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성전의 터가 말씀안에 견고하게 세워지도록
예선
양육의 은혜는 성령님만 주시도록
성령의 터가 잘 세워지도록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힘들고 불안한 마음 위로해 주시도록 새롭게 하시도록
다인
양육으로 시험받는 시간이 아니라 치유되고 위로 받는 시간이 되도록
영육간에 강건함 주시길
언니와 아이가 건강하도록
지화
주님 인도하심 가운데 결혼 준비되고 구원의 가정 이룰 수 있도록
남친 세례 받고 목장과 말씀이 들리고 교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양교 받는 것이 최고의 혼수임을 알고 회개하도록
돌발성 난청 치료 잘 받고 귀 호전될 수 있도록
언니랑 조카 가족들 말씀이 들리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보련
사람은 사랑을 지을 수도 만들 수도 없는 것을 알고 예수님 전인격적으로 만나서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도록
외로움 마음은 말씀으로 만 채워지는 것을 알고 양육 숙제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만물과 저의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 의지하며 하루만 살 수 있는 담대한 믿음 허락해 주시도록
영육 보호해 주시도록
현경
현재가 내 삶이 결론임을 아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아팠던 마음 위로하여 주시고 참 평강 누리고 갈 수 있도록
하나님만이 최고의 상급인 것 알고 목장에서 나의 모습 잘 나누고 갈 수 있는 용기 주시도록
급한 일 중요한일에 돈우상 가족우상을 전 자동으로 올려 두는 저의 힘이 조금씩 줄어 들어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허락해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