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영
1. 믿음의 터가 생겨서.. 내 계산으로는 손해도 못보고, 비난도 못 듣지만 하나님 때문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6년에 되어가는 직장에서 성령의 열매, 구원의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제 터를 닦아 주세요.
2. 동생이 세월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했지만 다른 모양으로 똑같이 세월을 아끼지 않는 제 죄는 보지 못했습니다. 잔소리가 아닌 내 회개로 값을 치르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 지난 목장, 직장, 가정에서 함께 예배자로 서기 위해 값을 치르는 적용을 하라고 하시는데 .. 이번주는 기도하고 전화하며 안부를 물을 때 잘 물어보고, 잘 듣고, 잘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정지윤
1. 갑자기 회사 일이 많아졌는데 무사히 일정안에 마칠 수 있도록. 그리고 채력도 잘 세이브하고 귀가 할 수 있도록
2. 띵크양육 그동안 받았던 시간들과 이번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도중 포기 없이 통과를 보고 10주 갈 수 있도록.
3. 양육기간 붙드셔서 누리고 필요 분량에 맞게 회복받고 예수님 만나는 기간 되도록
이은영
1. 엄마 공동체, 직장 중 직장을 먼저 인도해주셨는데 잘 적응하도록.
*엄마와 큐티! 시작하고 공동체 인도해주시길 기도하기.
2. 동생 출장에서 사고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도록.
* 따뜻한 말, 따뜻한 눈길 줄 수 있도록.
3. 한 주도 하나님이 주신 성전의 터 위에 주신 말씀으로 믿음, 회개, 적용 잘 하도록. *큐티 나눔 하기
차한나
1. 양육과제...내 열심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예수님을 좀 더 알아 갈 수 있도록
2. 마음을 다시 다잡고 대학원&임용 공부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핑계하지 말고 잘 할 수 있도록
3. 아빠의 영혼 구원을 위해
4.11. 성전의 터
지난 목요일부터 우리는 큐티인 역대하 묵상을 시작했는데요. 매일 큐티 잘 하고 계신가요?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려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성전이든 궁궐이든 모든 건물은 보통 이렇게, 땅 위에 짓잖아요? 물 위나 허공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평범한 땅이 아니라 정말 특이한 터 위에 지은 예배당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몇 개만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보여주시겠어요?)
네. 저게 예배당인데요, 저 큰 바위산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돌산이라고 해요. 그 꼭데기에다가 저렇게 지금 교회 예배당을 지어 놓은 것인데, 10세기때 지었다고 하네요. 저 위에를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을지 참 궁금하더라구요. 화산 돌산 위에 세워진 예배당.
그 다음사진 보실게요. 저 예배당은 12세기에 또 지어졌다고 하는데 강 위에 세워진 다리 위에 또 놓인 예배당이예요. 여행객들이 다리 건너서 여행하다가 딴 길로 세지 말고 예배 드리고 가라고 이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다음 사진 또 보여주세요.
저게 뭔지 아시겠어요? 나무예요. 나무가 저게 1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저 나무가 어느날 (저건 17세기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저 나무가 어느날 번개를 맞았대요. 번개를 맞았는데 정말 교묘하게 맞아서 가운데 속만 싹 타서 없어지고 그 옆에는 생명이 유지된 거예요. 그래서 공간이 생긴 것을 어떤 사람들이 보고서 여기다 예배당을 짓자. 라고 해서 나무를 터로 삼은 예배당입니다.
그 다음 또 보여주세요. 저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저 건물이 있는데 가운데 구멍이 동그란게 하나 있잖아요? 저게 예배당 지붕이래요. 저게 지붕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저 지하에 예배실이 있다는 것 이잖아요? (그 다음 사진 보여주세요) 저 지붕 아래에 저런 예배 공간이 저렇게 펼쳐져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저건 지하에 터를 뒀다고 해야 될까요?
그 담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실게요. 저거는 이제 협곡에, 계곡에 다리를 올렸는데 그 한쪽 계곡에다가 저렇게 큰 돌로 된 교회를 세웠습니다. 참 이렇게 희안한 터 위에도 예배당을 지을 수 있다는게 너무 희안해서, 또 재미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보려고 준비를 했어요.
여러분에게 만약에 교회를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느 터 위에 예배당을 지으시겠습니까? 혹시 모래위에 지으실 분은 아무도 안 계시죠? 모래위에는 절대 지으시면 안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역대하 3장 1장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터가 모리아 산이라고 해요. 그런데 역대기자는 이 터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보니까, 3가지를 소개합니다.
같은 장소를 3가지로 설명하니까, 뭔가 지금 강조하고 싶은 거예요. 언젠가 무너질 성전.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우리 성도 한 사람 한사람 우리가 다 성령께서 구하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 하셨잖아요? 이 성전 건물이 아니라 성전이 상징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들어야할 주님의 음성이 한 절에 지금 담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역대하 3장 1절 말씀을 통해서 성전터의 3가지 특징을 같이 살펴보시면서 성령께서 구하시는 우리 성전인 우리가 성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터 위에 서 있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전의 터는 첫번째는
1 하나님만이 상급이시라는 믿음의 터입니다.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ampndash 모리아라는 지며은 성경에서 단 두 번 나오는데요, 오늘 본문하고 창세기 22장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 사랑하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ampndash
그러니까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리아 산 자체가 중요하겠어요? 모리아산이 상징하는, 모리아 산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상징하는 그 의미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어디든 모리아산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고 있는 이 성전도 모리아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 되는 것이죠. 그러면 모리아산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때 저희가 들은 것 처럼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테스트해가지고 사람들한테 자랑하시려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응답한 그런 장소 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이 엄청난 시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곳이구요. 하나님께서 책임 지실것을 믿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은 곳입니다 이 믿음으로. 인생에서 아브라함은 가장 간절한 예배를 드린 곳이고. 이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곳입니다. 한마디로 모리아 산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런 믿음의 터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도 행전 말씀을 듣고 있으니. 바울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울도 자기보다 늘 하나님을 앞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그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매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자기가 쓸 수 있었던 로마 시민권 같은 특권을 쓰지 않았어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내가 죽는 것 같은 적용을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그러한 믿음.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최고의 상급이시며 목적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터 위에 바울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상급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이죠
이 믿음의 터 위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이제 세워져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보다는 웅장한 구조나 값비싼 재료,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역대하 3장 뒷부분에 나오면 보시면
그 엄청난 성전의 구조와 황금으로 다 덮은 것과 보석으로 지장하는 것들이 화려한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화려해 보이는 이 외모나 특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건물의 터는 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건물을 장식하는 보석이나 금은 얼마나 잘 보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터보다는 그 화려한 재료들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제 이름은 성훈이잖아요? 성훈. 이 거룩한 공을 새우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이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거룩한 공을 많이 세우겠다는 그런 별난 사모함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그때 가졌던 사모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이라기보다는, 제가 이렇게 높아지고 또 높아져서 세상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고자 하는. 그 사모드라게를 사모하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따르면 저는 4살 때부터 내가 크면 할아버지처럼 목사님 될 거야. 이랬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 요나처럼 요나 아시죠? 물고기 배 속에 들어왔던 그 요나처럼 드라마틱한 일을 겪으면서 그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그런 확신을 가지고서 이제 목사가 되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저는 그런 인생의 드라마가 정말 없습니다. 고난도 없고. 고난을 받기 위한 방황의 길로. 가고 싶어 하는 그러한 욕구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시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교회 가서 예배 잘 드렸고요. 또 시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힘든 일인 줄도 몰랐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혼나본 기억도 없고요. 그 흔한 잔소리를 들어본 적도 사실 거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어떻게 이렇게 살다 보니까, 학교 성적도 잘 나와버렸어요.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간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서울대를 가버렸지 뭐예요?
학원에 정말 제가 엄마가 하도 조르셔서 학원 좀 한번 친구들하고 같이 다녀봐라. 유명한 학원. 그때 고등학교 때 유명한 학원에 이렇게 하도 부탁을 해서 제가 억지로 갔다가 수업이 1시간 반인가 2시간이었는데 1시간을 들어보니까 정말 더 이상 들을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리로 나와서 사무실 가서 환불 받아 가지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교과서만 봤더니 만점 받았다는 재수 없는 성공 사례. 여러분께서 인터뷰로 보신 기억이 있으실 텐데요. 바로 그 성공 사례 중 하나가 이제 제 경우가 된 셈이죠.(웃음) 뭐 그렇죠 그래서 중학교 때는 전교 2등 밑으로 내려간 적이 거의 없고요. 고등학교 때는, 우리 때는 전국 모의고사라는 걸 봤어요.
요새는 시험을 많이 안 봐서 그런 게 없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전국 모의고사를 봤는데 전국 모의고사에서 제가 전국 1등을 한 적도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성적표를 제가 잘 보관을 해두고 액자에다 넣어놓고 이랬어야 되는데 그때 제가 이렇게 또 이제 할 할 줄 몰라가지고 그게 그냥 버려버린 것 같아요. 암만 찾아도 없더라고요. (찾았습니다)
좋은 성적을 원해서 악착같이 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대원외고를 들어갔는데 대원의 입학도 이제 제가 준비하고 계획한 일이 아니었어요.
사실 저나 제 부모님이나 그런 특목고 같은 데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살던 동네도 서울의 변두리였어요. 그래서 거기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특목고에 보내려는 그런 열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 대원외고라는 학교가 있는지도 사실 몰랐는데요.
중학교 졸업할 무렵에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제 대원외고가 있는 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그랬는데 아버지 직장 동료분께서 아니 아들 공부 잘한다는데 그 동네에 좋은 학교 있으니까 한번 시험이나 봐보라고 해라. 그래서 이제 저희 가족이 이제 이렇게 한 주 동안 의논을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래 그럼 시험이라도 한번 봐보자. 그리고 이제 시험 준비를 했는데 제가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서 남은 시간이 딱 3주였습니다.
3주 동안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제일 어려운 문제집 가져다가 항공 그냥 이렇게 쓱 풀고서 가서 시험을 봤는데 그냥 덜커덕 합격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외고를 들어가서 제가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 같이 있다 보니까, 4살 때부터 제가 품어왔던 목사의 꿈 목사 되겠다는 그 꿈이 이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머리가 커지면서 목사의 삶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삶이 아니라 사모드라게처럼 이렇게 높아질 수 있는 삶이 아니라, 고단한 삶이라는 것을 제가 좀 알게 되었고요. 또 목사를 해야만 성훈. (거룩한 공)을 이렇게 세워드릴 수 있는 게 또 아니라는 것을 또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버지처럼 이렇게 외과의사를 해야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가 문과 이과를 나눴어요. 그래서 2학년 들어가면서 그걸 결정을 해야 했는데 그때 이제 1학년 때였죠.
그러니까 저는 이제 이 문과를 가서 목사를 해야 되는지 이과를 가서 의사를 해야 되는지. 할아버지처럼 목사냐, 아버지처럼 이 외과 의사냐. 이것을 제가 인생 최대의 고민으로서 고등학교 1학년 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해 가을에 저희 할아버지께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습니다. 문병하느라고 제가 중환자실을 몇 차례 방문을 했어요. 그곳은 긴장한 의료진들이 뿜어내는 그 생명의 기운과 거기에 누워 계신 환자 분들한테서 이제 스며나오는 그 죽음의 기운이 이렇게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짙게 깔린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이 저한테는 굉장히 크게 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온 힘을 다해서 정성껏 보살펴서 환자를 누워 있는 환자를 다시 살린다 해도 어차피 저분은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 아니냐.. 언젠가 한 번은 죽을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술도 귀하지만 결국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것은 복음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 번뿐인 인생인데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자. 의술도 귀하지만. 아버지처럼 의사 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역시 이 복음 전하는 목회를 해야 되겠다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 문과를 갔고요.
사실 제가 수학을 더 국어나 영어보다 더 좋아하고, (예 아무래도 제 성격을 이렇게 보니까 사람들 섬기고 이렇게 또 앞에 서서 말씀 전하고 막 이렇게 따라다니고 이런 목사보다는 그냥 이렇게 제 기술 가지고 조용하게 사는 의사가 제 성격에는 더 맞을 것 같아서 많이 진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날 이제 그러한 생각을 하고 결심을 해서 문과를 갔고, 대학도 철학과를 가고 신학교에 가서 지금 이렇게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제 이력서는 정말 아무런 흠이 없어요. 정말 보암직합니다. 제가 봐도 제 이력서를 봐도 너무 뿌듯한 거 있죠.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살면서 기분 좋을 때가 이제 몇 시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딘가 지원할 때, 이렇게 이력서 쓸 때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너무 자랑스러운 거예요. 하여튼 이제 그런데 솔로몬이 이제 고급 목재와 황금과 갖은 보석으로 정성껏 성전을 쌓아 올렸듯이 저도 이렇게 좋은 배경과 또 학벌과 또 이렇게 사역지를 화려한 재료 삼아서 성훈 (거룩한 공)이라는 저만의 성전을 화려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며, 바리새인이며 가말리엘의 제자며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의 그 외형을, 겉모습을 그러한 외적인 조건을 같이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이제 다른 것들은 제가 바울을 닮았다고 자신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제가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바울을 닮았다라고 자신할 수가 있는 게 자신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것이 뭘까요? 예? 바로 이 대머리가(웃음) 바울이 대머리였다고 그러는데 이 대머리만큼은 제가 확실하게 바울을 그 외형을 닮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믿음의 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상급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니까
제가 늘 앞날을 걱정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거룩한 공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제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심 기대했던 보상이라는 것은 최고의 상급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얻는 그 명예와 인정과 그 재물이었어요. 믿음 없이
계산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정말 은혜로 불쌍히 여기셔서. 제 인생의 임자를 만나게 해주셨어요. 제가 좋은 재료라고 여겼던 저의 배경과 이 학벌과
이 사역지 정말 자랑스러운 저의 금이었는데 황금이었는데
이것을 정말 마치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처럼 여겨주는. 아내와 지금 제 아내와 하나님께서 같은 멍애를 매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아내는
제가 자랑하는 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아내는 제가 돈도 못 벌어온다고, 가장이면서 돈도 제대로 못 벌었는데, 돈 못 벌어오면 시간이라도 많아야 될 텐데 돈도 못 벌고 시간도 없어서 맨날 바쁘다고. 또 그렇게 그리고 돈 없고 바쁘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되는데 아니 이 사람은 돈 없고 돈 못 벌고 시간도 없고 성격도 나쁘다고. 그런데 이 모습을
뭐 잠깐 그럴 때가 있잖아요. 사람이 잠깐 그랬으면 안 해도 이제 지나갔겠죠. 그런데 이것을 제가 결혼하고서 뭐 10년 동안 매일같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아내의 속이 정말 어땠겠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이제 조금 마음이 헤아려져요. 그런데 제가 그때는.
정말 하나님을 이렇게 상급으로 여기는 믿음의 터 위에 서 있지 못하다 보니까 아내의 이런 비난을 제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말로 듣지 못하고 정말 이렇게 원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만을 상급으로 여겼다면 아내의 그런 비난을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 외치는 그런 외침으로 제가 들으면서
그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고 또 그러면서도 저는 흔들림 없이 이 사명의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제 인생 최고의 상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믿음의 터가 없으니 저는 아내의 말에 분노와 원망으로 응답했고 결국 제 자신도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된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늘 이혼과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믿음의 턱없이 쓸데없는 재료들로 덕지덕지에. 치장만 했던 제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적용: 인생의 집을 어떤 모양으로, 무슨 재료로 짓고 계십니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집입니까?
이것만은 높고 화려하게 지어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의 터. 두 번째는
2.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계의 터 입니다.
일절 두 번째 구절입니다.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ampndash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겪으며 끊임없이 회개했던 다윗은 통치 만년에 또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인구조사를 한 것이죠. 다윗은 백성의 수를 드러내서 세력을 과시하려고 했어요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신 대로 넘버 게임을 한 것입니다. 조사된 130만의 수를 보면서 다윗은 그제서야 내가 하나님을 업신 여기고 큰 죄를 저질렀구나. 이렇게 자기 죄를 뉘우쳤지만. 결국 그 죄에 대한 벌로 백성 7만 명이 죽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 바로 이 모리아산입니다. 이때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 24장 17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또 곧 여호와께 아래에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데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원래. 이 사건은 사울을 따랐다가 다윗을 따랐다가, 또 이제 압살롬을 따랐다가.. 이렇게 정처 없이 자기 원대로 아무나 쫓아다니는 그 백성의 불신
하나님만 바라지 못하는 그 백성의 불신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려고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따지기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다윗이 이 억울한 것 같아요
백성의 불신 때문에 괜한 죄의 이 격동이 된 것이잖아요 하지만 다윗은
백성의 목자로서 백성의 모든 죄를 자기가 책임지며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가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죠 가장 가정과 교회에서 중심 잡는 그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참 하찮게 여길 때가 많아요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지신 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편에 서는 것이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는 일이에요
그런 엄청난 일입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환상을 따라서 성령의 직행으로 빌립보에 왔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도 참 기가 막힌 일을 많이 당합니다.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맞았고 갇힐 필요가 없는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거기서 성령의 찬송을 부릅니다. 그렇게. 바울은 빌립보에 변두리 인생들인 여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울이 사울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그 사람은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바울은 그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의 회심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박해한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닫고 자신의 옛 삶에서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그렇게 교만했던 사울이 자신은 괴인 중에 괴수요.라고 고백하는 이 바울로 그래서 성령의 수행원으로 또 성령의 동역자로 빚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회계의 터입니다 어떤 경우든 자기 죄를 보면서 회개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께서 고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는데요, 그중에 가장 첫 번째 스승이자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저는 그 선생님을 4학년 1학기 때 전학 가서 만났는데요. 그 전학이 저에게는 네 번째 전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학교가 제가 다닌 다섯 번째 초등학교였죠.)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께서 군의관으로 입대를 하시는 바람에 임지를 자주 옮기셨고.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그래서 전학을 이렇게 네 번이나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때 5학년 6학년 때 저를 부르는 별명 몇 개 중에 하나가 동수망발이었어요.
동동수망발. 이건 뭐냐면 제가 다녔던 동북초등학교. 동성초등학교 수요초등학교 망우초등학교 발산초등학교. 이 초등학교 이름을 다 따서 한 것입니다. 변두리만 이렇게 다 돌아다닌 것이죠. 근데 이제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뵌 날 선생님께서 제 생활기록부를 보시더니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전학 그만 다니게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전학을 다니면서도 공부 잘하고 있는 것이 참 기특하네요. 이제는 여기서 졸업을 하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이 제 부모님께 충격을 주었는지 정말 저는 그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예수를 잘 믿으시는 집사님이셨고 제 장래희망이 목사라는 것도 아셨어요. 저는 이제 교회에서도 늘 칭찬만 받고 또 그렇게 전학을 다니면서도 학교 선생님들한테 혼나본 일이 거의 없었는데요. 그런데 유독 그 선생님은 저를 자주 혼내셨습니다. 그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이제 저를 매로 때려주신 일이었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맞아 본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몸이 불편한 친구를, (그 친구가 장애가 있는 친구였는데) 정말 이렇게 밀어서 넘어뜨렸거든요. 특권의식이 배어있던 저로서는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시고서 선생님은 저를 매로 쳐서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계기로 정말 매 한대, 그다음에 그 몸이 불편한 친구를 내가 이렇게 폭행을 했다는 그 죄가 저에게는 너무 죄책감으로 눌리는 그 과정이 시작되었고요.
그래서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정말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그제서야 처음으로 주님 앞에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매화 훈육이 저를 예수님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인생의 첫 은사. 시작 가장 중요한 스승 중 한 분인 셈이죠.
그분의 성함이 이양재 선생님입니다. 네. 그 후로도 저는 여러 스승님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제게, 또 저뿐만 아니라 저희 아내에게. 또 저희 가정에 큰 은혜를 주신 스승님은 우리 목사님이십니다.
김 이렇게 보면 제가 양재라는 이름과 참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양재 선생님 통해서 철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이제 죄라는 것을 생각해서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고요. 양제초등학교를 나온 양제동에 사는 그녀를 만나서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100일 동안 매일같이 양제동으로 출근을 했으나 이혼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혼의 위기에 있을 때 이제 우리 김양재 목사님 만나서 이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그 엄청나고 놀라운 은혜를 받아서.
이제 저와 저의 집이 여기까지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뭐 다른 일은 제가 태어나서 생각해 보지를 않았잖아요. 저는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그래서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어요.
학부와 대학원에서도 뭐 신학하려고 동서양 철학을 이제 이렇게 공부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 또 라틴어로 쓰인 신학의 그 고전들을 읽었고 영어와 독일어와 불어로 쓰인 현대신학의 글들을 공부했으니 제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아는 줄로 이렇게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지식으로는 제 가정 하나 간수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조차 양육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들 교회에 와서야. 제가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지 못하는
그런 죄인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하루하루를 말씀대로 살아내고 계시는 우리 성도님들 앞에서 이전에 제가 솔로몬의 그런 황금처럼 저의 특권처럼 자랑했던 스펙들을 이렇게 오픈하는 것이
사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실 오늘도. 이렇게 재수 없는 저의 이력밖에는 나눌 것이 없어서. 설교 준비해야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별이 돼어 빛을 발하고 계신 우리 성도님들 그 옆에 우리 성도님들. 반짝반짝 빛을 빛내고 계신 우리 성도님들 옆에 제가 이렇게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너무도 영광이기 때문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저의 고백을 나눕니다.
지난 수요일에. 설교하신 초원지기님은 고등학교 입시도 떨어졌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지금 우리들 교회의 초원지기와 목자로서 이렇게 지체들을 잘 돌아보시고 또 초등부 부장으로 13년 이상 섬기시면서 아이들을 살리고 계신 것을 보면. 정말 제가 그분께 머리가 숙여지고 마음 깊이 존경스럽습니다. 최고 학벌을 가진 제가 열등감이 폭발할 지경입니다.
대단한 이력이 있어도, 이력이 없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한 명이
죄인으로 사는 것이고 그 죄를 다 속량해 주신 예수님 만나는 곳이잖아요 별 인생이 없습니다.
별나게 살아도 별 볼일 없이 살아도, 별빛 반짝이는 저 안을 아래 살아도 별빛 같은 나의 인생아를 부르며 살아도 결국 우리의 별은. 예수님 한 분뿐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렇게 목사님과 우리들 교회 만나서 구속사적 가치관을 깨닫게 되니,
이제야 제가 비난과 지적을 조금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부부 목장에 갔을 때. 저는
저를 고발하는 아내의 말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어요 목장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내를 향해서 제가 아니 어떻게 성도님들 앞에서 이렇게 사역자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심한 말들을 할 수 있느냐. 대체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이렇게 싸움을 시작해서 정말 오는 길마다 싸웠던 기억이 많이 있고요.
몇 번은 차 안에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날이 새도록 싸운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의 말 정도는 큰 동요 없이 들어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주 엊그저께 부부 목장을 하는데 목자님께서 저에게 목사님은 죄패가 뭐예요?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우리 적용 질문이었잖아요.
그래서 이제 제가 대답을 하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아내가 갑자기 저를 새치기 하더니 눈이 반짝반짝 신이 나서 갑자기 입이 열려서 말을 쏟아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 사람은 자기 판단만 정답이라고 한다고. 교만하기가 짝이 없다고.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은 사람이라고. 막 이렇게 또 쏟아놓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주 결정적으로 딱 단어를 써서 얘기하는 게 뭐였는지 아세요 이 사람은 학벌 귀신이라고.
이 사람은 박사 귀신이라고 이렇게 저를 대신해서 저의 죄패를 외쳐주더라고요. 제가 진짜 인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고요. 100% 인정을 합니다.
이제 이 죄패가 호패가 되고 또 마패가 되어서 구원의 사명을 위해 쓰여야 되는데 좀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적용: 배우자. 자녀 부모를 향해서 여전히 탓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성전을 위한 회계의 터를 닦기 위해 인정해야 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
3.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 입니다.
1절 마지막 구절입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ampndash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나 회개를 내신 장소는 모리아산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이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한 다윗은 선지자 갓이 전한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땅 주인 오르난에게 사정을 다 이야기 합니다. 그랬더니 오르난이 예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왕께 기꺼이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거저 받는 것을 거절하고 값을 치르고 돈을 지불하고 그 산 전체를 구입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재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니 재앙이 그칩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오르난과 다윗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지불해야 될 값을 치르고 있는 거예요.
오르난은 여부스사람인데요 여부스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몰아내야 할 가나안 일곱족속 중 하나인데 가장 마지막까지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했던 최후의 적이었어요. 그래서 여호수아때부터 사울때까지 300년 가까이 이 여부스 족속을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이 여부스 족속을 정복하지 못했다가 다윗이 비로서 여부스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부스사람 오르난은 다윗에 의해 정복당한 식민지 백성이 된 거예요. 그렇죠? 다윗 입장에서는 원수죠. 오르난이 보기에 다윗이 더 원수 겠고요.
그런데 이 최후의 적이 다윗의 최후의 적 여부스 사람 오르난이 통치를 받으면서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배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최후의 예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대적의 자리를 떠나서 예배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 값을 아낌없이 치르는 적용을 한 것이죠. 하지만 다윗은 이미 백성의 죄를 내 죄라고 인정하고 회개했기 때문에 자신이 지불 해야할 구원의 대가를 모두 지불합니다. 당시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빼앗을 힘과 권한을 가진 왕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분수령적인 회개를 하니까 그런 왕의 특권을 다윗은 쓰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기 위한 값을 다 치르는, 지불하는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다윗과 오르난이 서로가 구원의 대가를 치르는 적용을 하니까 그 두 원수가 서있는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에 응답하십니다.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재앙이 그치게 하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 평강이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강이 이루어 집니다.
성령의 놓임을 경험하는 샬롬이죠. 이렇게 값을 지불하는 적용의 터 위에서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삶에도 이렇게 십자가 지는 적용이 있어야 할것이예요.
믿음과 회개는 결국 적용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적용이 믿음과 회개의 그 증거인 것이예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따라 십자가 지는 그런 적용을 할 때, 우리의 모든 일이, 모든 환경과 상황이 영혼 구원으로 열매 맺을줄을 믿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어요. 나이가 이제 그렇게 지났습니다. 목사 안수식에서, 원래 보통 목사 안수식 받을 때 면 목사 아내들은 (목사들은 가운을 입고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갑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미니스커트와 가죽잠바를 입고 등장했던 것은, 여러분께서 아마 아시리라고 제가 생각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지금 이렇게 반응을 하신 것처럼 안수식에 미니스커트랑 가죽잠바 입고 오는 아내가 참 얼마나 어이없어 보이겠어요. 그쵸?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응원은 제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의 응원은 내 편이다 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서 이번주 설교 준비를 하다가 여러분을 등에 업고 아내를 교육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말이지.. 그때, 목사 안수식때 어떻게 그럴수가 있었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미니스커트랑 가죽 잠바를 입고 올 수가 있었냐.. 앞으로 내가 계속 사역을 할탠데 이제부터는 상황에 맞는, 격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은근히 얘기를 하는 척 하면서 교육을 시키려 했죠. 아내가 그 말을 무표정하게 잘 듣고 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나는 그 때 안수식에 가지도 않으려고 했다. 당신이 크리스찬인것도 의심스러운데 이 목사 안수를 받는다고 하니까, 내가 이 뜬 눈으로는 도저히 그 현장을 볼 수가 없더라.. 그런데 지금까지 한 집에 살면서 싸운 그 의리가 있어서 그래도 내가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옷장 문을 열어서 내 눈에 제일 예뻐보이는거, 제일 좋은 옷을 차려입고 간 것인데, 아니, 지금 같이 그 자리에 가서 사진 찍어준걸 고마워해야 될 사람이 지금 옷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뭔가 제가 전세가 역전된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제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그러네.. 고마워 하고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아내의 말을 제가 그 자리에서 듣고도 바로 인정이 되더라고요. 고마워 했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는 (아 역시 나는 머리가 좋으니까, 죄도 빨리 깨닿는구나..(웃음) 말씀을 잘 깨닫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제가 기분이 막 좋아지는거예요. (웃음) (죄송합니다.)
제가 오픈 할 것이라고는 이렇게 재수없는 것 밖에 없으니까, 재수없는 사람도 이제 이렇게 우리들교회에서 사역을 할 수가 있구나 생각 하시면서 많은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보니까 이렇게 또 이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다 나누고 이렇게 하는거 보면 그래도 제가 아내보다는 죄를 좀 더 빨리 깨닫는 것이죠(웃음) 그죠? 맞지 않습니까?
말씀을 잘 깨닫는거예요 그죠? (웃음)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예요. 도대체 이게 웬 일입니까? 지난 주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주일 저녁에 집에와서 월요일 새벽에 제가 발인 예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준비를 다 해놓고 새벽에 나가야 되니까 평소보다 일찍 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초원 목자님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제 예상대로 목자님 아버지께서 지금 위중하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때가 시간이 10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였는데요. 목자님께 제가 빨리 가겠다고. (제가 거리가 조금 있는 지역이었거든요)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하고 옷을 얼른 갈아입고 떠나려는 그 순간 아내가 제 앞을 막아서더니, '내가 운전 해 주겠다' 이러는 거예요. 갑작스런 제안에 저는 '괜찮다'고 운전 내가 조심히 하고 다녀올 테니까.. 또 가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고 오래 걸릴지 모르니까 내가 갔다 오겠다고. '괜찮다'고 그랬는데 또 굳이 아내는 자기가 또 운전을 해주겠다는 거예요. 내일 또 새벽에 일찍 나가야 되는데 내가 운전 해줄 테니까 차 안에서라도 좀 더 쉬라고. 몇 번 더 사양하다가 괜히 시간만 더 지체될 것 같아서 알았다고 고맙다고 하고서 운전 해주는 아내가 있는 차에 저는 편하게 타고서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날이 새매 입니다.
제가 아내보다 아까 죄도 더 잘보고 말씀도 더 잘 깨닫는다고 그랬는데요,. 그 말씀을 시도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제 아내는 가죽잠바 입은 여자에서 운전대 잡은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놀랠루야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정말 제가 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할 수 있는 일도 없구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전 뭘 해도 어설픈 사람인데, 제가 어떻게 아내를 동감하고 설득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전적으로 공동체 덕이예요.. 지금까지 아내를 성령의 돌보심으로 돌봐주신 여러 목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사)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제 아내를, 그리고 또 저를, 저희 가정을,. 진짜 저희 가정은 다 깨졌,.던 가정인데 가정을 살려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주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그 은혜위에 더 큰 은혜를 받은 자 입니다. 목사님과 우리들교회 공동체 여러분 모두에게 전적으로 빛 자 입니다. 이 빛은 제가 사는동안 평생 지고 가야할 것이고요. 왜냐하면 공동체가 없으면, 저나 제 아내나 바로 원위치 될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역자 라는 것도 자랑스럽고 감사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들교회 성도로 이렇게 불러주신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요. 이렇게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공동체에서 성도로 여러분과 같이 은혜 받고 가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심방을 해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분들이 계세요. 우리 청년들 중에서도 정말 삶이 때때로 안되고. 내가 계획한 대로 안되고. 또 요세 얼마나 여러가지 상황이 어려워요? 그 때 참 낙심이 되지 않습니까? 이런 여러분들에게 정말 제가 경험자로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끝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 교회에 이 성전에 믿음의 터가 있고 회개의 터가 있고 또 적용의 터가 있습니다.
공동체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시면서 목장에 꼭 붙어 계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려요. 다른 방법은 진짜 없습니다. 여러분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정말이예요. 제가 아까 다 돌아다녔다 그랬잖아요. 잘 매여있어야, 내 자신이 이 공동체에 잘 메어있어야 놓이는 날이 옵니다. 내가 먼저 예배를 회복하여 주님이 오시는 성전으로 조금씩, 조금씩 세워져 간다면, 주님의 날 때, 날이 샐 때에 성령의 놓임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공동체에 붙어만 있었더니 이렇게 서로를 무시하고 죽일 듯 미워했던 저희 부부, 너는 너, 나는 나 했던 저희 부부가 조금씩 성령의 동역자로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높고 험한 토루스 산맥이 있고요, 옥에 갇히는 상황들이 앞으로도 많이 있겠지만, 이제는 주님의 이 말씀과 우리 공동체가 저의 옆에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적용: 여부스 사람처럼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와 함께 예배자로 서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붙어만 있었더니 누리게 된 평강이 있으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웠던 헤롯 성전도 결국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뜨려졌어요. 그러나 그 터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회개와 적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사건들에게 드러나는 외적인 것이 우리 삶을 하나님의 성전 되게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상급이 되심을 믿는 이 믿음의 터, 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터,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 위에 서 있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집니다.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믿고 회개하고 또 적용하면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우리 교회가 주님의 성전이 되어서 이렇게 귀한 영혼 구원의 사명, 가정 중수에 쓰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