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년 04월 11일 주일예배
본문 : 역대하 3장1절
제목 : 성전의 터
설교 : 이성훈 목사님
1절 -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김양재 담임목사님 인사말씀
안녕하세요. 큐티인 5월,6월호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기독교 서점 오프라인 서점 온라인 서점을 이용해주세요.
그리고 큐티인 구입하실 때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도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오늘 주일예배 후 현장구입도 가능합니다. 어린이 새싹 큐티인도 구입 가능합니다.
가정의 달에 전도를 해야 합니다. 두달 동안 양인데 4000원입니다.
60명의 간증을 읽게 하는것예수 믿게 하는 것말씀을 읽게 하는것 입니다.
친구들에게도 전도하고 미리미리 떨어지기 전에 구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새가족 청장년들 많이오셨습니다.정착을 잘해주시고
저 개인적으로는 50년도 더 전에 중학교 동창생이 내가 전도도 안했는데 그렇게 와서
등록 해주어서 반갑고 중학교 동창생 3명은 강남에서 학교를 나왔어도 교회 오는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잘 정착해주시길 바라고 어떤 기사를 봤는가 하면은 아이는 결혼한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야 가장 정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인권이 왕노릇을 합니다. 생명 보호법을 날마다 기도하는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시기를 바라고 어제 횟수로 3년만에 주례를 교회에서 했어요.
성전에서 하는 결혼식은 감개무량 합니다. 밖에서 하는거랑 비교가 안됩니다.
어제 결혼식은 청년부들이 최고의 자격을 갖춘 신랑이 백수의 시절을 오랫동안 보내서 깨어져야 질그릇이
보여야 하는데청년의 때 백수로 있는것은 최고의 조건이고 간증문도 잘썼습니다.
말씀이 잘들려서 이것이야 말로 최고가 아닌가요?
그리고 다들 구원을 위해서 다들 간증하고 부모님도 구원을 위해서 눈물로 다 치부 드러내고 간증을 하시니까
결혼식을 보면 밥먹고식은 아무것도 아닌데 1시간쯤 하는데도 아무대도 움직이지 않고 탄선홀에서 했습니다
.4층 6층이 꽉꽉 차서 완전히 구원을 위한 초청의 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혼을 위해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 이쁘게 나오는게 다가 아니라 생애에서의 결혼을 축복의 통로로 예수님을
알게되고 얼마나 보람있나요? 어제 막 울고 다들 돌아 오라고 초청하고 소감을 발표하실 때에도 교회에서 결혼하게
되면은 언제막힐지 모르는데 어디가서는 밥 못먹어서 답례품으로 11시나 일찍오셔서 얼마든지
그것이 익스큐즈가되있으니까요. 그래도 결혼식이 교회에서 열렸으니까 거리두기 하면 본당에서 하면
많이 모일수가 있습니다.여러분들 알고 교회에서 결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제 우리가 부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아주 우리들 교회는 모든 성도들도 그날의 말씀을 통해서
큐티를 하기 때문에 부목사님도 1년에 한번 해도 잘하는게 아니라 그 주의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
어느 본문을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설교하는것도 훈련이 되있어서 수요일날
초원님들 설교하지만부목사님도 설교합니다. 오늘 역대하 3장으로 설교합니다.
지금까지본 장르와 종류가 다른 이상한 고난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분에게도 말씀이
필요한거 있을수 있겠네요.오늘은 이성훈 목사님 설교 하시겠습니다.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전할 자격이 하나도 없는 저를 주님께서 이시간 이렇게 말씀 전하는 자리에
세워주셨습니다. 제가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불쌍히 여겨 주셔서 이 시간 함께
예배 드리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성전의 터에 대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말씀을 잘 들을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지난 목요일부터 우리는 큐티인 역대하 묵상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매일 큐티 잘하고 계신가요? 매일 큐티를 잘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나침반이 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려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있습니다.
성전이든 궁궐이든 보통 건물은 땅위에 짓습니다.단단한 땅위에 터전을 지어 건물을 올립니다.
물이나 허공 위에는 건물을 절대로 지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평범한 땅위가 아니라정말 특이한 터 위에 지은 세워진 예배당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보여주세요.

화산 돌산 위에 세워진 예배당
네. 저것이 예배당인데요.저 큰 바위산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돌 산이라고 해요.
그 꼭대기에다가 저렇게 지금 교회예배당을 지어놓은 것인데10세기때 지었다고 하네요.
저기 위에를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을지 궁금합니다.저는 가본적이 없습니다. 신기합니다.
화산산에 터를 잡은 예배당입니다. 그 다음사진 보실게요.

다리를 터 잡아서 지은 예배당
저 예배당은 12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다리 위에 또 놓인 예배당 이예요.여행객들이 다리건너서 예배를 하다가 딴길로세지 말고 예배 드리로 가라고
만들어 놓았지않았을까 합니다.다리를 터 잡아서 지은 예배당.그 다음사진 또 보여주세요.

작지만 나무에 터를 잡은 예배당
저게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분별되나요? 나무 가 지금 1500년이 넘는다고 추정되는데 저 나무는 이제 17세기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예배당입니다. 그런데 저 나무가 어느날 번개를 맞았대요.번개를 맞았는데,
정말 교묘 하게 맞아서 번개가 쳐서불이 특이하게 나무 속 안에만 태우고 꺼졌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생명이 계속 유지된거예요.살아있는 채로 가운데 구멍이 생기고 공간이 생겼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 옆을 지나가면서저기에다가 예배당을 짓자라고 했습니다.
저기에 다 예배 시설이 있습니다. 그 다음사진 보여주세요.

저 지붕 아래에 예배당
저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저기 가운데 구멍이 있는데 동그란거 보이시지요?
저게 이제 예배당 지붕이래요. 지붕요.저게 지붕이라는 것은 무슨뜻 이겠습니까?
옆으로 건물들이 있습니다.가운데 동그란거 있습니다. 실내공간 지하공간 에다가 지은 공간이 있습니다.

위에다가 암석 위에 지은 예배당
저 지붕 아래에 예배당의 공간이 저렇게 펼쳐져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저건 또 지하의 터를 두었다고나 할까요? 마지막 사진 보여주세요.

큰 돌로된 예배당
예. 저거는 이제 협곡의 계곡의 다리를 올렸는데
그 한쪽 계단에다가 저렇게 큰 돌로된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자 이렇게 희안한 터 위에도 예배당을 지을수 있다는것이 너무 희안해서 재미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보려고 준비했어요 입니다. 희안한 예배 위에 예배당을 짓는것은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여러분에게 만약에 교회를 지을수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느 터 위에 위에 예배당을 지으시겠습니까?
혹시 모래 위에 지으실 분은 아무도 안계시죠? 모래 위에는 안지으시겠죠? 모래 위에는 큰일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역대하 3장1절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터가 모리아산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오늘 본문에 보면서 3가지나 자세하게 이야기합니다.
같은장소를 3번이나 설명하니까 강조하고 싶어 하는데요. 모리아산이 어떤 공간인지를 3가지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성전 자체가 솔로몬이 지은것이 뭐가 중요하나요?나중에 다 무너집니다.
성전이 상징하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의 전인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무엇인가?
강조를해서 3가지나 말씀해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마음대로 사는것이 아니라
성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이 어디에 터를 두어야 할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언젠가 무너질 성전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도 우리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우리가 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성전 건물이 아니라 그 성전이 상징하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들어야할 말씀을
주님의 음성이 한 장에 들어가 있는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역대하 3장 1절 말씀을 통해서
성전터에 3가지 특징을 같이 살펴 보시면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우리가 성전 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터 위에 서있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만이 상급이시라는 믿음의 터입니다. (1절 첫구절)
1절 첫구절 입니다. -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모리아라는 지명은 성경 전체에 두 번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과 그리고 창세기 22장2절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로 나옵니다.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인 이삭을 재물로 받치려고 했던 장소입니다.
사실 모리아산 자체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모리아산 위에 지금 이슬람 사원이 건설 되어 있습니다.
황금돔 이라서 거기 지금은 이교도의 사원이 건설되어 있습니다.
모리아 라는 지역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모리아산이 상징하는 모리아산의 단어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상징하는 의미 가 중요합니다. 그 의미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디든 모리아산이 될수 있는것이죠.
모리아산이 어디든 될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모여있는 휘문고 강단도 될 수가 있고
판교 채플이 모리아산이 될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모든 삶의 순간순간 마다 모리아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읽는것입니다. 모리아산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설교에서 들은것처럼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테스트하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시험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아들을 받치라는 그 엄청난 시험에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믿은 곳이구요.
엄청난 시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 지신다는것을 믿는것 입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예배를 드린곳입니다.
이 믿음으로부터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곳입니다.
한마디로 모리아산은 이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런 믿음의 터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도행전 말씀을 듣고 있을때 묵상할때 바울을 생각해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바울도 자기보다 늘 하나님을 늘 앞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그 한사람 단 한사람에게 대단한 무리가 아니라 그 한사람에게 주목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한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매를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자기가 쓸수 있었던 로마 시민권같은
특권을 쓸수도 있으면서도 쓰지 않았어요. 그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내가 죽는것 같은
적용을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그런 믿음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상급이라는 내 인생 최고의 목적이라는 믿음의 터 위에 바울이 서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에 상급 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이죠.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상급 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으로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져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 보다는 웅장한 구조나 값비싼 재료들 우리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역대하 3장 뒷부분에 보시면
솔로몬이 잘 설계해서 건축합니다. 엄청난 성전의 구조와 반짝이는 황금과 각양 보석으로 치장하고 만들잖아요.
그렇게 화려해 보이는 외모나 특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때가 훨씬 많습니다.
건물의 터는 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잖아요. 우리한테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대신에 건물을 장식하는 밖과 안팎을 치장하는 보석이나 금들은 얼마나 중요하게 보입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터 보다는 화려하 재료들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제 이름이 성훈 이잖아요.
성훈은 거룩한 공을 세우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이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거룩한 공을 많이 세우겠다는 그런 별난 사모함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그때 가졌던 사모함 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이라기 보다는
내가 높아지고 높아져야 세상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고자 하는 그 사모드라게를 사모하는 헛된
사모함 이었던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따르면 저는 4살 때 부터 내가 크면 할아버지처럼 목사님을 한다고 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요나처럼 요나 아시지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처럼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그런 확신을 가지고서 목사가 되신분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저는 그런 인생의 드라마가 정말 없습니다. 저는 그런 목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난도 없고 고난을 받기위한 방황의 길로 가고싶어 하는 욕구도 많지 않았어요.
저는 시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교회가서 예배도 드리구요.
인생을 방황하는 욕구도 없으며 시키지 않아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잘드렸습니다.
또 때가되면 시키지 않아도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억지로 한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힘든일인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께 혼나지도 않았습니다. 그 흔한 잔소리도 들었던 기억도 아무리 생각해도 안나더라구요.
그냥 어떻게 살다 보니까 학교 성적도 잘 나왔습니다.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간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서울대에 가버렸지 뭐예요.그 학원에 정말 제가 하도 엄마가 조르셔서 학원에 친구들하고 다녀봐라.
유명한 학원 고등학교때 하도 부탁을 하셔서 억지로 갔다가
그 수업이 한시간 반인가 두시간이었는데 1시간을 들어보니까 정말 들을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 자리 이후로 나와서 사무실에 가서 환불 받아서 돌아온적도 있습니다.
교과서만 봤더니 만점을 받았다는 재수없는 성공사례 여러분께서 인터뷰를 보신 기억이 있을텐데요.
수능 만점 인터뷰 보시지 않나요? 바로 그 성공사례 중 하나가 제 이야기가 된 셈이죠.
그렇죠? 고등학교 때에는 전교 2등 밑으로 내려가 본적이 거의 없고요.
고등학교때에는 저희때는 전국 모의고사 같은 것도보고 그랬어요. 요즘에는 시험을 많이 안봐서 모를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전국 모의고사를 봤는데요. 1등을 한적도 있더라고요.
지금을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성적표를 잘 놔두고 액자에다 넣어서 보관을 했어야 했는데요.
제가 이런날이 올줄을 몰라서 그 성적표를 버려버린것 같아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딱 한번 보여줬으면 끝장났을 텐데 말이죠. 제가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원해서 1등하려고 악착같이 한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슬금슬금 했는데 점수가 나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대원외국어 고등학교에 갔는데 입학도 제가 준비하고
계획한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나 저희 부모님이나 그런, 특목고 같은데에 관심이 없었고
중학교때에는 제가 살던 동네도 서울에 변두리였어요. 변두리다 보니까 중학교 선생님들이
학교 특목고에 보내려는 그런 열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실 대원외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요.
중학교 졸업할 무렵에 아버지의 직장때문에 대원외고가 있는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되었어요.
아버지 친구분께서 아니 아들이 공부를 잘한다는데 동네에 좋은 학교가 있으니까 시험이나 한번 봐보라고 해라
그래서 이제 저희 가족이 한주동안 고민을 하고 의논을 하다가 한주정도 생각하다가 결심해서 아버지께서
그래 시험이나 한번 봐봐라 고 말하자 제가 시험 준비를 했는데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서 시험 날까지 남은 시간이 딱 3주였습니다. 제가 3주동안 무엇을 하겠어요?
서점에 가서 본고사 문제집이 있었습니다. 삼주동안 풀었습니다. 한번 그냥 쓱 풀고서 가서 시험을 보았는데
가서 시험보고 떡하니 합격을 하더라구요. 네. 그렇게 외고에 들어가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다 보니까
공부를 잘하는 사이에 있으니까 한번도 흔들린적 없었던 4살때부터 꿈꿔왔던 목사의 꿈 할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겠다는 꿈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머리가 커지면서 목사라는 삶이 그렇게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라
사모드라게처럼 이렇게 높아지려고 하는 삶이 아니라 고단한 삶이라는것을 제가 알게 되었구요.
또 꼭 목사를 해야만 성훈 거룩한 공을 세워드릴수 있는것이 또 아니라는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처럼 외과의사를 하는것이 환자들을 살리고 수술하고 살리는것이 적성에 맞는거 같았고,
좋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국어나 영어 보다는 수학을 더 좋아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때 문과 이과를 나누었었어요. 결정을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때 1학년이었죠.
1학년 말에 이과를 가서 의사를 해야 할지 문과에 가서 목사를 해야 할지
그니까 할아버지를 따라서 목사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버지를 따라서 의사를 해야 하는가?
고민으로써 고등학교 1학년때 인생 최대의 고민으로써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저희 할아버지께서 심근경색으로 쓰려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문병을 하느라고 제가 중환자실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들락날락 했습니다.
그곳엔 긴장한 의료진들이 뿜어내는 그 생명의 눈과, 거기에 누워계신 환자분 이제 스며 나오는 죽음의 기운이
이렇게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짙게깔린 죽음에 맞써싸우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이 저한테는 되게 크게 보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렇게 온 힘을 다해서 환자를 누워있는 환자를 다시 살린다 하더라도
어차피 저분은 언젠가 저분은 어차피 죽을것이 아닌가? 언젠간 한번은 죽을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술도 귀하고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것은 복음 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번뿐인 인생인데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자.의술도 귀하지만 아버지처럼 의사되는것도 좋겠지만은,
난 역시 복음을 전하는 목회를 해야되겠다고 이런 결심을 하였습니다.그래서 2학년때 문과를 갔구요.
사실 제가 수학을 더 국어나 영어 보다도 좋아하고 제 성격을 보니까 사람들을 섬기고
이렇게 앞에서서 말씀을 전하고 이렇게 따라 다니고 이런 목사 보다는 제 기술을 가지고 조용하게 의사로
사는 성향이 더 맞을것 같아서 진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날 그런 생각을 하고 결심을 해서 문과를 갔고 대학교를
철학과에 가고 신학교에 가서 지금은 이렇게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겉으로 드러나는 제 이력서는 빈 공간이 없어요.
쉬어본적이 없습니다. 너무 보암직 합니다. 제가 제 이력서를 봐도 너무 뿌듯한거 있죠.
저는 세상에서 살면서 기분 좋을때가 몇 시기가 있잖아요? 어딘가 지원할 때 이력서 쓸때가 그렇게 좋더라구요.
너무 자랑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하여튼 그런데 솔로몬이 고급 목재 각양 각색의 황금과 보석으로 정성껏 성전을 쌓아
올렸듯이 저도 이렇게 좋은 배경과 또 학벌과 또 이렇게 사역지를 화려한 재료로 삼아서 성훈즉 거룩한 공
이라는 저만의 성전을 화려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며 바리새인이며
가말리엘의 제자며 로마시민 이었던 바울의 외형을 겉모습을 외적인 조건을 갖추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제가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모습을 보고 바울을 닮았다고 자신할수가 없어요.
그런데 딱 한가지가 있습니다. 정말 희망을 놓지 않고 이것만큰은 이 한가지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바울을 닮았다고
자신 할수 있는게 있는데 그것이 뭘까요? 예? 대머리가 바울이 대머리였다고 하는데 대머리 만큼은 확실하게 바울의
외형을 닮았다고 말씀 드릴수 있어요. 자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믿음의 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상급이라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니까 제가 늘 앞날을 걱정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목사가 되어서 열심히 사역을 하면서도 제 미래에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열심이 거룩한 공을 세우면 그의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제 머릿속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심 기대했던 보상 이라는 것은 최고의 상급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얻는 명예와 인정과 재물이었어요. 믿음 없이 계산만 했던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은혜로 정말 불쌍히 여기셔서 제 인생의 임자를 만나게 해주셨어요.
제가 좋은 재료라고 여겼던 저의 그 배경과 학벌과 사회복지 그 저의 이 금이였는데황금이었는데
그것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마치 쓰레기처럼 여겨주는 아내와 지금 제 아내와 하나님께서
같은 멍에를 매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아내는 제가 잘하는것이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어요.
자랑스러운 특권 황금같은 외형들 하나도 인정 안해주었습니다. 단 한가지로 비난하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가장이면서 돈도 제대로 못벌어 온다고 남편이 가장이 되어서 무슨 잘난척을 하는가?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돈도 못벌어 오면은 시간이라도 많아야 할텐데돈도 못벌어 오면서
왜이렇게 바쁘냐가 이절이고 삼절은 돈도 못벌고 시간도 없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되는데
아니 이사람은 1. 돈없고 2. 돈못벌고 3. 시간도 없고 4. 성격도 나쁘다고 도대체 쓸데가 어디있냐고
그런데 이 모습을 잠깐 뭐 그럴때가 있잖아요. 사람이 잠깐 그랬으면 뭐 아내도 지나갔겠죠.
그런데 이것을 제가 결혼하면서 십년동안 매일같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아내의 속이 정말 어땠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의 마음이 조금 헤아려져요. 아내에게 비난과 조롱과 무시를 아내가 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년부들 많이 있습니다. 결혼하면 처음에 싸웁니다. 돈 못벌고 시간없고 긴 시간을 공부를 한다고
유학한다고 거기서 10년을 공부하였습니다 학생의 조건을 갖추고 돈 못벌고 시간없고 성격 더럽고
10년넘게 아내가 시달리니까 당연히 그 소리가 나오겠죠?
그런데 제가 그때는 하나님을 저의 상급으로 믿는 믿음의 터 위에 서있지 못하다 보니까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옳소이다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마땅히 들어야 말로 듣지 못하고 정말 원망을 많이 했던것 같아요.
만약 하나님만을 상급으로 여겼다면 아내의 그런 비난을 들었다면 이런 아내의 비난을 나좀 살려줘 나좀 살려줘
라는 외침으로 제가 들으면서 그 마음을 아내의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고
또 그러면서도 저는 믿음의 터 위에 서있었다면 아내와 갈등속에서 흔들림없이 사역 사명의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제 인생 최고의 상급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믿음의 터가 없으니 터 위에 서있지 않으니 저는 아내의 말에 분노와 원망으로 응답했고
결국 제 자신도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도 어느 순간부터 목사가된것을 후회하기 이르렀습니다.
그때 중환자실에 가는게 아니었는데 문과에 가지말고 이과에 가서 의대를 갔어야 하는데 라며 후회했습니다.
돌이킬수 없는 시간을 한탄하며 아내를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혼과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믿음의 터 없이 믿음과 상관없이 쓸대없는 재료들로 덕지덕지 치창만 했던 저의 믿음의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적용
인생의 집을 어떤 모양으로 무슨 재료로 짓고 계십니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집입니까?
이번만은 높고 화려하게 지어 올리수 있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 는 회개의 터입니다. (1절 두 번째구절)
1절 두 번째 구절 입니다. -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겪으며 회개했던 다윗은 통치 만년에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인구조사를 한것이죠. 다윗은 백성의 인구수를 드러내서 자기 세력을 드러내려고 과시하려고 했어요.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신대로 넘버게임을 한 것입니다.
조사된 130만의 수를 보면서 다윗은 그제서야 내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큰 죄를 저질렀구나 하면서
이렇게 자기죄를 뉘우치지만 결국 그 죄에 대한 벌로 백성 7만명이 죽게되었습니다.
엄청난 사건속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다윗에게 나타나신 것이 바로 장소는 모리아산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24장 17절에는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데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원래 이사건은 사울을 따랐다가 다윗이 따랐다가 또 이제 압살롬을 따랐다가 이렇게 정처없이 아무나
따라가는 백성의 불신을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는 그 불신을 하나님께서 징계 하시려고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따지지 좋아하는 저 같은 경우에는 다윗이 억울 한거 같아요.
다윗이 불신 때문에 괜한 죄에 격동이 된 것이잖아요.
하지만 다윗은 백성의 목자로써 백성의 모든죄를 자기가 책임지며 백성이 아니라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제가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죠.
가정과 교회에서 중심잡는 그 한사람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참 하찮게 볼때가 많아요.
그러나 이것은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지신 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편에 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는 일이예요.
그런 엄청난 일입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환상을 따라서 성령의 직행으로 빌립보에 왔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도 참 기가막힌 일을 많이 당합니다. 맞이 않아도 될 매를 맞고 갇힐 필요가 없는 깊은 옥게 갇혔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거기서 빌립보 감옥에서 성령의 찬송을 부릅니다.
그렇게 바울은 빌립보의 변두리 인생들 잉여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울이 사울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그 사람은 도저히 그럴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하지만 그렇게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바울은 변할수 있었을까요?
성령의 회심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닫고 바울이 사울같았던
옛삶을 옛시절을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그렇게 교만했던 사울이 자신은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바울로 성령의 수행원으로 또 성령의 동역자로 조금씩 빚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된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터입니다. 어떤 경우든 자기 죄를 보면서 회개할 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의 좋은 스승들을 만났는데요.
그 중에 가장 첫번째 스승이자 제일 기억에 남는분은 초등학교 4학때 담임선생님입니다.
저는 그 선생님을 4학년 1학기때나 중간에 전학을 가서 만났는데요. 저에게는 그 전학이 네번째 전학이었습니다.
그니까 그 학교는 저에게는 다섯번째 초등학교 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께서 군의관으로 입사를 하시는 바람에 입지를 자주 바꾸었고
일년에 한번씩 전학을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학을 이렇게 4번이나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때 5학년 6학년때 부르는 별명 하나가 동동수망방이었어요.
동동수망방 이것은 뭐냐면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 이름을 다 따서 한것입니다.
변두리만 다 이렇게 돌아 다닌 것이죠.
그래서 교무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선생님을 처음 뵌날 선생님께서 제 생활기록부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진짜 전학 그만 다니게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전학을 다니면서도 공부 잘하는고 있는것이 참 기특하네요.
얘는 여기서 졸업을 하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이 제 부모님께 충격을 주었는지 저는 정말 전학가지 않고
그 초등학교에서 졸업할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예수님을 잘 믿으시는 집사님 이셨고,
제 장래희망이 목사라는것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이제 교회에서도 늘 칭찬만 받고 또 그렇게 전학을 다니면서
학교 선생님한테 혼나본일이 거의 없었는데요.그런데 유독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은 저를 자주 혼내셨습니다.
그중에 잊을수 없는 일이 저를 매로 따끔하게 때려주신일 이었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맞아본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몸이 불편한 친구를 그 친구가 몸에 장애가 있는 친구였는데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밀어서 땅에 꽈당 넘어뜨렸거든요. 정말 특권의식이 베어있던 저로서는
그것이 잘못한 일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서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야단을 치시면서 깨우쳐 주셨습니다.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매 한 대 그 다음에 몸이 불편한 친구를 내가 폭행을 했다는
그 죄가 저에게는 너무 죄책감에 눌리는 과정이 시작되었구요. 그래서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처음으로 태어나면서 제가 주님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작은회심 을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매와 훈육이 저를 예수님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인생의 첫 은사시자 가장 중요한 스승 중 한분인 셈이죠. 그분의 성함이 이 양 재 선생님입니다.
그후로도 저는 여러 스승님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제게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아내에게 저희 제 가정에 큰 은혜를 주신 스승님은 우리 목사님 이십니다.
김 양 재 목사님 이십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양재라는 이름과 참 특별한 관계가 있는것 같아요.
이양재 선생님 통해서 철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죄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서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되었구요.
양재초등학교를 나온 양재동에 사는 그녀를 만나서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100일 동안 매일같이 양재동으로 출퇴근을 했으나 그 여인과 결혼해서 이혼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혼의 위기에 있을때 이제 우리 김양재 목사님을 만나서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의 귀한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그 엄청난 은혜를 받아서 저와 저의 집이 지금까지 지켜줄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보면서 제가 교만한것은 짐작 하시겠죠?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저는 강남에서 안살고 변두리에서 살았습니다.
서울대 가고 변두리 동네에서 얼마나 부러움의 대상이었겠습니까? 저는 강북구에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부때는 예배를 드렸지만 참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똑똑하고 머리가 좋았습니다. 자칭 하나님 말씀을 겸손히 듣지않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했습니다.
예배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청년부때 대학에 입학을 한후에도 95년도에도 청년부에 갔는데
청년부에 가니까 여기는 예배 를 드리는 예배의 장소인지 연애하고 놀러온 장소인지 구분을 못했습니다.
대학생 청년부 학생들이 연애를 하는것이 경멸이 되어서 낄수가 없었습니다.
제 확신이 옳다는 헛된 착각에 빠져서 그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정말 악한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생각하면 명분이 무엇이었느냐 나는 목사기 될 사람이다.
목사 될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를 언제까지 다닐수 없다며 시야를 높여야 된다고
정말 유명한 교회에 큰 교회를 가리지 않고 설교를 듣는다는 명분으로 교회 쇼핑만
돌아다닌 시절이 2년이 넘어요.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관계도 잘안되고, 공감도 전혀 안되고
목사지만 그런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자님들은 앞에서 저절로 무릎꿇어 지는것이 있습니다.
목자님이 다 해주신것을 보면서 놀라고인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의 결함은 많은 부분들을 허비하고,
차지했던 고등부와 청년부시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1. 저도 저 정도의 말은 다 할줄 알아요.
2. 그런 말 그만해요.
3. 나 다 알아요.
4. 뭐 그런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것 좀 그만좀 해요 등등 겉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판단하면서
제 영혼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보면서 대충 보입니다. 미국에 리챠드 멀로 Richard merlot 라는
교수님이 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니네들 학점 잘 받으려고 하지?
그런데 나는 니네들을 맨 처음 수업에 들어와서 한시간만 보면 학점이 다 써있단다
그니까 학생들 이마에 너는 A 너는 D 너는 B 이렇게 학점이 써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무슨말인지 압니다. 저도 설교할 때 성도님들의 얼굴을 보면은요.
속으로 불평과 원망과 이런 것들이 있는분이 계십니다.
경험자로써 교만함의 선배로써 말씀을 드리는데 권유를 드리는데 진짜 그러시면 안됩니다.
그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고 그 시간을 나중에 채울수가 없습니다. 그 시간을 아무도 갚아줄수가 없습니다.
제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댓가로 지금을 치루고 있습니다. 평원사역을 하면서요.
그 공백기가 약점이 되었는지 순간마다 느낍니다.
여러분들 지금 보면 옳고 그름이 있고 내가 제일 잘하는것 같지만 결혼해서 살아보고 직장 생활에서 밟혀보시고
저처럼 목사지만 못하는거 없으면 쭈구러져 오면 후회하는 날이 옵니다.
우리 공동체처럼 진리의 말씀위에 서있는 공동체에게 확신있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태어나서 다른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를 않았잖아요?
저는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어요.
학부와 대학원에서도 신학하려고 이제 동서양 철학을 공부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 또 대학교때 라틴어로 쓰인 신학에 고전들을 읽었고
그리고 영어와 불어와 독일어를 공부해서 현대시대의 글들을 공부했으니 저는 신학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아는 줄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지식으로는 제 가정하나 간수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조차 양육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들 교회 와서야 제가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지 못하는 그런 죄인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어려서부터 배경이 맞지는 않았지만 지식이
제 안에 쌓아있고 실력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천재는 아닌데 천재끼가 있어서 보면 이해가 되는게 있습니다.
맹점이 무엇이냐 하면은 들어서 재미가 없으면 그렇게 졸립니다.
사역을 고등학교때도 선생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수업시간에 수업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책을 펴놓고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책상에 앉아있는 친구보다는 졸지 않으려고 사물함앞에 서서 수업듣는 사람 있었는데요.
졸리때 저도 사물함앞에 칠판을 등지고 서서 책을 놓는 명분으로 안보이니까 다른 공부를 할수가 있었습니다.
대학교대 강의를 들으면은 자극이 없어서 잠이 쏟아졌습니다.
교회에 가서도 설교를 듣는데 재미가 없으면 그냥 자버렸습니다.
곤란했던 사역자와 전도사로 사역한 옛날 교회에서 앞에 앉을때 앞에 앉아있는데 앞에 앉으면 졸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전도사가 앞에 앉아서 졸고 있으면 뒤에 앉은 성도들이 뭐라고 생각할것 같아서 갖은
힘을 다했는데도 잠은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는 4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우리들 교회에서는 잠을 잔적이 없습니다. 무슨말인가 하면은요.
저같은 사람을 잠을 깨우는 설교를 듣고있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수 있어도 그러면 안되고 시간을 아끼시고 리딩을 하는것으로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다른것이 아니고 내가 조금 안다 내 생각이 맞다 저사람이 나보다 모른다 내가 아는게 최고다를 버리는것이
지불해야 할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돈을 내고 무엇으로 돕겠습니까?
적용은 머릿속에 우물안에 있는 생각을 버리고 말씀하시는것을 듣고 순종하는 리딩하는 길이고
그것이 시간을 아끼는 길이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지름길인줄 믿으시고 그렇게 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지식으로는 제 가정하나 간수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조차 양육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들 교회 와서야 제가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지 못하는 그런 죄인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지식이 많이 쌓았다고 해서 지식으로는 가정 하나를 간수할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아내 조차도 양육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야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며 살지못하는 죄인임이 깨달았습니다.
성경이 텍스트가 아니고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고 계시는
청년들과 성도님들 앞에서 이전에 제가 소로몬의 황금처럼 저의 황금처럼 특권처럼 자랑했던 저의
스펙들을 오픈하는 것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재수없는 저의 이력밖에는 나눌것이 없기 때문에
설교 준비하는것이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별이되어 빛을 발하고 계시는
우리 성도님들 옆에 우리 성도님들 반짝반짝 빛을 빛내고 계신 우리 성도님들 옆에 별이 되는
성도님들 옆에 제가 서있는것 만으로도 저한테는 영광이기 때문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저의 고백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설교하신 초원지기님 고등학교 입시도 떨어졌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 교회의 초원지기와 목자로써 이렇게 지체들을 잘 돌보시고
또 초등부 부장으로 13년이상 섬기시면서 아이들을 섬기고 한 영혼을 돌보고 계시고 있는것을 보면
정말 제가 그분께 머리가 숙여지고 마음 깊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최고 학벌을 가진 제가 열등감이 폭팔할 지경입니다. 대단한 이력이 있어도 이력이 없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한명의 죄인으로 서는것 이고 그 죄를 다 속량해주신 예수님 만나는것 이잖아요.
별 인생이 없습니다. 별나게 살아도 별 볼일 없이 살아도 별빛 반짝이는 저 아래 넘어서 살아도
별빛같은 나의 인생을 누리며 살아도 그래도 우리의 별은 예수님 한분 뿐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목사님 한분과 우리들교회 만나서 구속사적 가치관 깨닫게 되니
이제야 제가 비난과 지적을 조금 들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부부목장에 갔을때 저를 고발하는 아내의 말을 도저히 들어줄수가 없었어요.
이제 목장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내를 향해서 아니 어떻게 성도님들 앞에서
사역자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심한 말들을 할 수가 있느냐 도대체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이렇게 싸움을 시작해서 정말 오는 길마다 싸웠던 길이 많구요.
몇번은 차안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차안에서 새벽 두세시 또는 날이 새도록 싸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의 말 정도는 큰 동요없이 들어줄수 있게 된것 같아요.
저번주 부부목장을 이번주에 했는데 줌으로 하니까 목자님께서 저한테 목사님은 죄패가 뭐예요? 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적용질문으로요. 그래서 이제 제가 대답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옆에 조용히 아내가 갑자기 저를 새치기 하더니 눈이 반짝반짝 신이나서 입을 벌려서 말하는 것입니다
아 이사람은 자기 판단만 정답이라고 한다고 교만하기가 짝이 없다고,
자기 의가 하늘을 찌른다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착각하고
자기 말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막 쏟아놓는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단어를 써서 이야기 하는데 무엇인지 아세요?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는 죄패가 이 사람은 학벌귀신이라고 이 사람은 박사귀신이라고
이렇게 저를 대신해서 저의 죄패를 외쳐주더라구요. 제가 인정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구요.
정말 100% 인정이 되더라구요. 이정도 임팩트면 2~3일을 갔을 만한 싸움의 길이가 아내의 비난인데
이제는 죄패가 호패, 마패가 되어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으로 쓰여야 하는데 갈길이 먼것 같습니다.
사명으로 쓰이길 바랍니다.
적용
배우자 자녀 부모를 향해서 여전히 탓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성전을 위한 회개의 터를 닦기 위해 인정해야 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입니다. (1절 마지막구절)
1절 마지막 구절 입니다. -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나 회개를 받으신 장소는 모리아산에서도 구체적으로 근처에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여기 나타나신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한 다윗은 선지자 갓이 전한 하나님 명령된 예배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땅의 주인 오르난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그랬더니 이 여부스사람 오르난은 예배의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자신의 것을 왕께 드리겠다고 해요.
기꺼이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오르난의 선물을 거저 받기를 거절하고 값을 지불하고
돈을 주고 그 산 전체를 구입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재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니 재앙이 그칩니다.
이 장면에 드러나는 오르난과 다윗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집에서 값을 치루고 지불합니다.
오르난은 여부스사람 인데요 여부스사람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몰아내야할 그 일곱 족속 있잖아요.
가나안 족속 그 일곱 족속 중에 하나인데 맨 마지막까지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하면서 살아남았던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했던 족속이었습니다. 여호수아때부터 사울때까지 300년 가까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여부스 족속을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윗 때 비로소 다윗이 그들을 점령하고
시온성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그러니까 이 여부스사람 오르난 또한 다윗을 위해 정복당한 사람 중 한명이예요.
다윗의 적군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이 최후의 적이 다윗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디어 인정을 하고
이제 예배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려고 하는 최고의 예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대적에 자리를 떠나서 예배자의 자리에 서기 위한 값을 아낌없이 치루는 그러한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미 백성의 죄를 자기죄로 인정하고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지불해야 할 구원의 댓가를 또한 모두 지불합니다.
당시로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힘과 권한 뺏앗을 왕이잖아요.
그러나 다윗이 진정한 분수령적 회개를 했기 때문에 그런 왕의 특권을 쓰지않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 드리기 위해서 값을 치루는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오르난이나 다윗이나 각자 자기 자리에서 구원을 위한 그 구원의 댓가를 치루다 보니까
그 자리가 어떻게 됩니까?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에 응답하세요.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재앙을 그치게 하십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평강이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놓임을 경험하는 살롬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값을 치루는 이 적용의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삶에도 십자가 지는 그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회개는 결국 적용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예요. 적용이 믿음과 회개의 증거입니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라고 하셨어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라서 날마다 십자가 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모든 일이 모든 환경과 조건이 상황이 영혼구원으로 열매가 맺을줄 믿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지도 벌써 십년이 지났는데요.
제 목사 안수식때 이제 목사 아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는데요.
그런데 제 아내는 미니스커트에 가죽잠바 입고 온것을 기억하시리라 압니다.
목사 안수식때 미니스커트에 가죽잠바를 입고온 철없어 보이는 아내가 철없다 여기시며 어이없다.
여기며 저를 지지해 줄 을 믿고 굳은 확신을 가지고서 제가 이번주에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아내에게 이제 갔어요. 왜 갔느냐? 교육하기 위해 갔어요 이거봐라 그런데 말이지
그때 목사 안수식때 아무리 그래도 그럴수 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죽잠바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올수가 있느냐? 내가 사역을 계속 할거니까 앞으로는 이 장소에 맞는 상황에 맞는 격에 맞는 옷을 입어라
그것부터 적용을 해라 이렇게 제가 교육을 시키려고 딱 그랬다는거죠.
그런데 아내가 무표정하게 아내가 제 말을 다 듣고 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나는 안수식에는 가지도 안으려고 했다. 당신이 크리스천 인것도 의심스러운 마당에 목사 안수를 받는다니
내가 정말 뜬눈으로 그 현장을 볼수가 없어서 진짜 내가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근데 그때까지 지금까지 한집에 살면서 쌓아온 싸움을 한 의리가 있기 때문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옷장문을 열어서 내눈에 가장 예쁘고 가장 좋은 옷을 나름대로 골라서 예쁘게 차려 입고 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 내가 거기 안수식에 가서 사진 찍어준것 으로도 고마워 할줄 알아라
저는 아내를 교육시킬 그 성도님들의 응원에 부풀어 제 머릿속을 다 끌어서 아내를 등에 업고 들으러 갔지만
결국엔 제가 전세가 역전이 된듯한 상황이 된것 같아서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아내에게 그러게 참 고마워 라고
말하며 끝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의 이런 말을 그 자리에서 듣고도 바로 인정이 되니까
또 고마워보다는 아 역시 나는 머리가좋으니까 죄도 빨리 깨닫는구나 말씀을 이렇게 잘 깨닫는구나
그런 생각에 정말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죄송합니다. 제가 오픈할 것이라고는 이렇게 재수없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아 저렇게 재수없는 사람도 우리들교회에서 사역을 할수가 있구나. 사역자로 살아갈수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우리 수준 높으신 여러분께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제가 목사니까 그죠?
제가 목사니까 이런것 또 다 나누니까 그래도 또 제가 아내보다는 죄를 빨리 인정하는거 같지 않아요?
말씀도 더 잘깨닫것 같지 않아요? 이것도 다 나누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지난 주일에 바로 전주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주일 저녁에 집에와서 월요일 새벽에 발인예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발인 예배 준비를 다 해놓고 새벽에 나가야하니까 조금 일찍 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초원 목자님께 전화가 걸려오는 거예요.
제가 예상했던대로 목자님 아버님께서 위중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가 시간이 밤 10시반이 넘은 시간이었는데요.
제가 목자님께 빨리 전화해서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전화를 하고 이제 꽤 거리가 되는 곳이었어요.
이제 옷을 갈아입고 바꿔입고 떠나려고 하는 그 순간에 아내가 갑자기 제 앞에 오는거예요.
그러더니 막아서더니 아내가 내가 대신 운전을 해주겠다 이런 갑작스러운 제안에 저는 당황이 되었고
그래서 제가 나는 괜찮다. 피곤하다. 거기가서 시간이 얼마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까 집에 있어라.
운전 조심히하고 다녀오겠다고 차안에서 게속 기다려야 되니까 괜찮다고 말렸는데
굳이 나 혼자 가겠다고 하는데 아내는 내일 새벽에 일찍 나가야 되지 않느냐?
차에 오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쉬어라 하는데 저는 사양한다고 저는 몇 번 더 사양하다가 시간이 지체될것
같아서 알았다 고맙다고 하고 아내가 운전해 주는 차에 아주 편하게 타고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날이 새매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아내보다도 죄를 더 잘보고 말씀도 더 잘 깨닫는다고 말씀을 드렸던
말씀 제가 이 자리에서 취소합니다. 제 아내는 가죽잠바 입었던 여자에서 운전대를 잡는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놀렐루야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수 있었을까요? 제가 한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일도 없구요. 뭘해도 이렇게 어설픈 제가 어떻게 아내를 공감하고 설득할수 있었겠습니까?
전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덕입니다. 지금까지 아내를 성령의 돌보심으로 돌보아주신
모든 목자님들 진심으로 제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 아내를 저를 저희 가정을 정말 살려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은 깨졌던 가정이었는데요. 살려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은 주님께 갚을수 없는 은혜위에 또 그 은예위에 은혜를 갚을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과 우리들 교회에게 전적으로 진 사랑의 빚입니다. 이 빚은 제가 사는동안 평생 지고가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공동체가 없으면 저나 아내나 바로 원위치가 되는것 이라고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를 우리들 교회 사역자 라는 것도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들교회 성도로 먼저 불러주신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살아 역사나는 공동체에서 성도로써 여기 계시는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받고 가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심방을 해보면 오랜시간이 지나도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청년부도 삶의 계획한대로 되지 않고, 여러가지 상황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좌절이 되실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경험자로써 확실히 말씀해 드릴수 있습니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것 같아도 우리 교회에 성전에 믿음의 터가 있고 회개의 터가 있고 적용의 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우리가 붙어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시면서 목장에 꼭 붙어가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잘 매여 있어야만 우리가 이 공동체에 잘 매여 있어야만 우리가 말씀에 잘 매여
있어야만 놓이는 날이 옵니다. 내가 먼저 예배를 회복하여 주님의 성전으로 조금씩 조금씩 세워져 간다면
주님의 날이 올때 성령의 놓임이 있을줄 믿습니다. 열매가 있기를 믿습니다.
공동체에 붙어만 있었더니 서로 무시를 하며 너는너 나는나 하던 저희 부부가 조금씩 성령의 동역자로
바뀌어 가는것 같습니다. 아직고 넘어야할 높은 토로스 산맥들이 많이 있고 또 옥에 갇히는 상황들이
앞으로 많이 있겠지만 그때는 주님의 말씀과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같이 이길을 걸어갈수 있기 때문에 믿음이 생깁니다.
적용
여부스 사람처럼 끈질기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와 함께 예배자로 서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값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붙어만 있었더니 누리게 된 평화가 있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화려했던 솔로몬성전은 다 무너졌어요. 그 크고 아름다웠던 더 크고 아름다웠던 이 헤롯의 성전도
결국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졌습니다. 그러나 그터는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회개와 적용은 성경에 기록되어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외적인것이 우리 삶을 하나님
성전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상급이심을 믿는 이 믿음의 터 어떤 경우든 내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터 값을 치루는 믿음의 터 위에 서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집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대로 믿고 회개하고 적용하시면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조금씩 지어져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교회가 주님의 성전으로써
이렇게 귀한 사명으로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가정중수의 사명이 쓰일때가지 기도합니다.
함께 찬양하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찬양합니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있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하네 /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 우릴 막을 수 없네 / 우리 교회는 /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 예배를 예배되게 / 우릴 사용하소서 / 진정한 부흥의 날 /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 교회를 교회되게 / 예배를 예배되게 / 우릴 사용하소서 /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 우릴 사용하소서 / 성령안에 예배하리라 / 자유의 마음으로 /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 진정한 부흥의 날 / 오늘 임하도록 / 우릴 사용하소서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을 상급으로 믿지 못했던 우리를 회개 하십시다. 주님은 저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저희는 주님보다 좋은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기도하시고 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를 하게 해주시기를 기도 하시겠습니다.
회개가 주는 기쁨을 조금 느끼시기를 그 자유를 좀 누리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맡기신 각자 사명의 자리에서 구원을 위해 값을 치루는 적용을 할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연약한 저희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들교회가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의
이 귀한 사명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잘 감당할수 있도록 우리 담임 목사님을 또한 지켜주시고 섬기시는
모든 분들에게 은혜 주시고 또 공동체의 모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지체들의 기도제목을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겠습니다.
태아생명 보호법이 재정되도록 평등법이 막아 지도록 우리 나라를 위해서 다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제가 주님을 최고의 상급으로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임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남탓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보는 손해가 두려워서 또 제가 특권을 이 알량한 특권을 잃을까봐 무서워서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믿음과 회개와 적용의 터 위에
세워있어야 함을 저희에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이 말씀대로 믿고 회개하고 적용하는 삶
교회 머리시며 우리 모두의 기초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연약하고 부족한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가운데 크고 작은 여러 고난들 가운데 신음하고 계시는 많은
성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정말 가정불화로 부부간의 싸움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살기 싫다고 공동체를 떠나고 싶다고 이렇게 울부짖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계십니다.
아버지 심한 육체적 고통 가운데 아파하시는 분들 또한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마음의 병으로
정말 살 소망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아버지 하나님 이 코로나가 길어 지면서
또 이렇게 사업이 어려워지고 일이 어려워져서 살길이 막힌거 같은 그러한 장애물 가운데 낙심하는 분들
너무도 많이 계십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모든 환경들이 성령의 열림으로 열리게 하시고
성령의 놓음으로 놓이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교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통해서 우리 한분 한분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실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담임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모든 사역을 성령의 권능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모든 부서와 목장마다 말씀이 흥왕하여 기쁨이 넘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나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코로나 재앙이 너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의 잘못된 가치관이 정말 막아지게 하여 주시옵고
태아 생명 보호법이 재정되고 차별 금지법과 평등법이 통과 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또한 땅끝에서 말씀 전하시는 우리 선교사님들 한분 한분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 기도제목
이은실
- 새로운 인연에 대한 소망이 없고 지치기만 한 내 마음 어루만져주시도록
- 코로나 시국으로 이직이 어려운데 현재 자리 잘 지키면서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김자영
- 업무 할 때 지혜 구하도록
- 백신 접종을 했는데 건강 지켜주시길
탁미나
- 실패의 경험에서 벗어나 목표한 일을 꼭 끝낼 수 있게 힘 주시기를
- 모든 과정에서 내 힘으로 하려하지 않고 구하며 나아갈 수 있게
신애리
- 큐티하며 나에게 주시는 말씀 묵묵히 묵상하기
- 나태하지않고 꾸준히 공부할때 집중하도록
김성은
-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되기를
- Think 양육 받으며 양육숙제를 최선을 다하며 내 죄 깊게 보며 회개하는 시간되기를
- 실업급여 받을 수 있도록
- 하나님만이 상급이심을 믿고 생활예배 드리기
- 집에서 딸의 권을 부리지 않고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값을 치루기 위해 손과발이 가는 적용 섬김을 할수있도록
- 다음 어린이집 갈때 기도하고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시길
- 신교제 신결혼위해 기도합니다.
윤지혜
-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도록 과제 적용하고 나누기
- 내면의 욕심들, 급한일과 중요한 일 분별하고 가지치기 되어질 수 있도록
- 영육간의 강건함위해 기초를 든든히 세우는 시간 되기를
- 가정과 목장과 마을위해 기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한 주 되기를
- 세상에 대해 깊이 잠들수 있도록
*공통기도제목*
- 신 교제 신 결혼 소망주시고 인도함받도록!
- 모두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