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4
사도행전 16:35-40 성령의 놓임
1.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있습니다. 35
날이 새매는 단순히 날이 밝았다는 뜻이 아니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단어가 날이 새매입니다. 오늘 큐티 본문에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에서 시체만 찾던 울고있는 마리아에게 살아나신 주님께서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무덤에서 끝까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예수님이 날이 새매 성령의 놓임으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습니다. 나를 찾아오십니다. 지난주에 큰 지진으로 옥토가 흔들리는데 여전히 죄는 못 보고 울고만 계셨습니까? 마찬가지로 날이 새매 한 생명을 위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더 이상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밤 온 도시가 흔들리니, 바울과 실라를 아무 죄도 묻지도 않고 유대인이라는 감정으로 매로 치고 가두었는데 그 감옥이 진원지가 되어서 온 도시가 흔들리니 상관들과 관리들이 잠을 한 숨도 못 잤어요. 그래서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명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이 풀어 주십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늘 날이 밝으면 좋겠는데 날이 새매가 인생의 시기마다 계속 올 수도 있더라구요. 분량대로 날이 새는 것 같습니다.
내 죄를 본다는 것은 정죄하고는 다릅니다. 죄를 사하여 주셨지만 그 죄 패를 가지고 자기 십자가 지고 가는 것이에요. 죄 패가 있어야 십자가 잘 지고 갈 수 있어요. 나의 죄 패를 보게 되니 남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갇혀 있을 수 있었어요. 시기마다 죄가 더욱 분명히 보이기에, 결론은 늘 내 죄 때문에 남편이 수고하는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내 죄 패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구원 시키기 위한 평생의 호패에요. 내 죄 패를 가지고 내 옆의 사람들을 위해서 늘 엎드려야 해요. 내 죄를 용서받았지만 내 죄 패는 상대를 용서하기 위해 생각나게 하는 호패입니다. 물론 성령의 효과적인 도움 없이는 때마다 호패가 되는 죄가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죠.
예수님도 마지막에는 자기 십자가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서 죽었어요. 자칭 유대인 왕이라는 죄 패를 붙이고 올라가셨어요. 비하하는 자칭 유대인 왕 죄 패를 수치스럽게 붙였어요.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으시겠어요?! 우리 가운데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의 죄 패는 세계 공용어입니다. 자기 죄만 보면 모두가 알아들어요.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위대하다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간수가 바울의 찬양을 들었잖아요. 예수 믿어 쨍하고 해뜰날이 온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만나 이제 덤으로 새 삶을 살아가며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날이 새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에요. 하지만 예수도 못 만나고 날이 새는 것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놓치는 것입니다.
Q. 평생에 이마에 붙이고 가야 할 죄 패는 무엇입니까? 혹은 시기마다 날이 새매 죄의 종류가 달라지셨습니까?
2. 특권의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36-38
살아난 간수는 샬롬 구약으로 말하면 평안, 헬라어 에이레네 이런 기독교 적인 용어를 쓰면서 믿음으로 평안히 가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얘기는 바울이 간수 집에서 세례 받고 옥으로 돌아갔다는 뜻이잖아요. 바울이 옥으로 들어가 있는데 지금 평안히 가라고 한 것이에요. 그런데 바울이 안 나간다고 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때리고 가두는 것이 맞느냐고 합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로마 사람하고 동등한 특권을 누리면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발레리안법에는 로마시민을 결박하는 것은 극악한 범죄이고 채찍질하는 것은 사악한 악행이고 사형에 처하는 것은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인과 다름없다. 합법적으로 재판을 받을 권리, 유죄로 판결 받더라도 체면을 손상당하지 않을 권리, 잔인한 형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 자백을 받아낼 목적으로 고문이나 채찍질들을 할 수 없었어요. 바울과 실라를 중죄인으로 다루었던 그들이 이제 거꾸로 자기네들이 중죄인으로 죽게 생겼어요. 그런데 바울은 왜 이제서야 로마시민을 주장할까요? 장터에서 매 맞기 전에 밝혔다면 한밤중에 매맞고 감옥에 가는 일은 없지 않았겠어요? 지 지난주 본문 20-21절 바울이 고소당한 이유가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 주어서가 아닌 유대인이어서고, 로마사람들인 우리를 정신없게 하고 선동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내용은 하나도 없는 것이에요. 고발을 한 기준이 지역감정과 인종차별인 것이에요. 생각해 보십시다!! 바울이 이방인을 죽인 것이 아니라 그 동안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자기 동족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잖아요. 비록 이방인을 위해서 선교하지만, 그 빚진 자가 되어 가지고 흩어져 사는 내 동족들에게 길 갈때마다 유대인 회당을 찾아 들어갔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잘 안 듣더라도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광장 장터 한복판에서 나는 로마인이다 하면 누가 가장 배신감을 느끼겠어요? 유대인들이죠!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과 로마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느끼는 감정(안 좋은 감정)인데, 저 사람은 위기가 닥칠 때는 로마사람이라고 하고 복음을 전할 때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이 바울의 입장인데 복음을 전해야 할 우리는 심플해요. 복음을 전해야 할 그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로마 시민권을 내려놓았어요. 특권을 내려 놓고 모진 매를 다 맞고 대가지불을 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고난도 겪지 않고 나를 믿으라고 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더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되었다고 했어요. 죄도 없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고, 아니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니까 우리가 그 분의 십자가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거죠.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이것을 체휼합니다. 그래서 평생 자신의 동족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인 자기 죄를 깨닫게 되니까 자기 특권을 내려 놓은 거죠. 자기가 동족을 죽였잖아요. 특권을 내려놓았어요. 이것이 성령의 놓임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 값을 치룬 것이에요. 이것을 들은 루디아와 그 여종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게 되는 거죠. 이 땅의 특권은 오직 구원을 위해 써야 하고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내려놓은 로마인의 특권을 왜 지금은 또 말하고 있을까요?? 37절을 잘 보면 아무 죄목도 없이 오직 지역감정과 민족감정으로 매질을 하며 깊은 옥에 놓고 한 인격을 말살하는 그들의 불법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에요. 담대할 때는 바울이 담대합니다. 또 깊은 뜻이 있는데 이제 자기는 영원히 머물 땅이 아니잖아요. 떠나야 하는데 자기가 로마 시민을 밝히지 않고 떠나면 자기 자신도 탈옥수가 되잖아요. 그럼 앞으로 전도에 걸림돌이 되죠. 모든 원칙을 지켜야 되는 거에요. 그리고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이 과부에 귀신들린 여종에 간수 이런 연약한 사람들이 빌립보 교회를 인도해 가야하기 때문에 지금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거에요. 로마 사람인 내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남겨놓는 것이죠. 감추려고 한 생명을 얻기 위해 감추는 것이고, 드러내는 것도 한 생명을 얻기 위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는 어떤 수치도 들어 낼 수 있어야 해요. 예수님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듣기만 해도 비아냥거리는 수치스러운 죄 패를 들었잖아요. 구원을 위해서 나의 어떤 기득권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에요. 큐티하게 되면 항상 훗날을 생각해서 원칙대로 적용해야 구원으로 이루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가 살아남은 이유는 정말 작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적용이 안되요. 바울같이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갇힌 자 되는 적용을 주님 때문에 하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큐티 적용이 무서운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기득권을 가질 필요도 있기 때문에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학생의 본분, 직장인의 본분, 아내의 본분, 모두 자기 본분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성취나 보상이 목적이 아니고 구원 때문에 로마시민권 같은 것들을 주님위해 쓰지 않으면 다 썩어질 것들이죠. 그러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쓰임 받을 때는 빛이 나는 것입니다. 날마다 환란당하고 원통한 자 오라고 하니까 우리가 죄인이기에 무시를 해요. 하나님이 그렇게 무시할까 봐 저를 서울대를 나오게 하셨죠. 그래서 전도할 때 도입부때만 사용해요. 하지만 그 도입부 하나도 필요하기 때문에 학생들 자리를 지켜야해요 다 자기 있는 자리에서 성과를 올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Q. 부모의 특권, 자녀의 특권, 상사로, 시민권자로, 부자로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특권의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잘난 척만 합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섬기고 있습니까?
3. 끝까지 말씀을 가르칩니다. 39-40
상관들이 비굴할 정도로 바울이 떠나기를 간곡히 청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적용하는 삶을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이 땅의 시민권 특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도 높이시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과부 루디아는 바울을 제발 자기 집에 머물라고 간청했어요. 귀신들린 여종도 바울을 계속 쫒아 다녔어요. 간수는 자기 집에 모셨잖아요. 누구도 바울을 떠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움켜질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으로 복음을 듣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고난이 축복이 된 것이죠. 바울이 상관 시장들을 살려주었음에도 그들은 가진 것이 많으니까 바울을 집에 들이기는 커녕 이 도시를 떠나 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시장들은 높은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상관이었기에 사회적으로 잃을 것이 많았어요. 잘 믿는 사람 싫어해요. 이것을 상관의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모든 죄수들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을 때, 그 찬양과 기도를 귀를 쫑긋하고 너무 열심히 들었지만 관리 중에는 지나가면서 간수 한 사람만 듣고 돌아왔어요.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맞아요. 모든 상관들 다 떠나라고 해요. 모두가 영접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더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교회가 되는 거에 대해서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성령의 놓임이 환경의 놓임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말씀에 묶인 것이 진정한 놓임인 것이죠. 바울은 감옥이나 초원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다 자유한 것이에요. 이런 사람은 죽음조차 묶여 놓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집착, 주변의 시선, 나를 죽일 것 같은 환경에서 성령의 놓임으로 나아갈 수가 있어요. 믿음의 반대가 무서운 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무서운 열심으로 스데반을 죽였었잖아요. 이 사람이 이 죄 패가 대단한 거죠. 상관들의 간청으로 놓임 받은 바울은 이제 마지막으로 루디아 집에 다시 들립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봅니다. 형제들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이요, 여자요, 과부인 루디아, 평생 귀신과 악한 주인에게 묶여 살던 부모도 지체도 없던 귀신들린 어린 여종, 자결하려던 간수 그리고 한밤중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의 처절한 기도와 찬송을 열심히 듣던 죄수들이 구성원이네요. 도무지 하나가 될 수가 없는 구성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형제로 만납니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가 시작이 됩니다. 감옥안에서 실라하고 둘이서 찬송하며 깊은 한 밤을 지나고 보니까 나와보니, 성령의 형제들이 주렁주렁 맺힌거에요. 연약하고 볼품없고 미약한 이들이 로마의 심장부를 향하는 복음의 칼 끝이 되어 마지막까지 바울과 함께 동행을 합니다. 할렐루야!!!
위로한다는 말은 권면한다는 말인데 성경에서 권면한다는 일관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입니다. 이 땅에 놓임을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다 묶여 있어요. 돈 질병 남편 자녀에 묶여 있는데 권면 중에 최고의 권면은 말씀의 권면이고 최고의 위로가 되는 거에요. 목장에서 최고의 말씀으로 권면하기에 살아나잖아요. 파라갈레오에서 성령 파라클레이토스가 유래된 진리의 성령, 말씀의 성령입니다. 우리 같으면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에게 가서 자랑할 것 많을 거에요. 게다가 생색도 낼 텐데 바울은 그런 말 하나도 안하고 여전한 방식으로 수많은 고난의 여정을 겪고도 일관되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합니다. 저의 모든 간증은 오직 말씀전하는 것에 쓰여요. 그리고 다른 사람 위로 하는데에 쓰여요. 내가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치는 단순한 일반적인 일들이, 모든 환경에서 놓임을 받는 최고의 비결인 것입니다. 성경이 그러네요. 우리는 죄인이라 조금만 놓아주면 흘러흘러 떠내려갑니다. 참된 성령의 놓임은 모든 환경에서 놓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옆의 한 명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며 여전한 방식으로 묶여 있을 때, 이 땅의 위정자와 공중권세를 가진 자들이 제발 놓아달라고 하는 것이 성령의 놓임입니다. 그래서 차별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Q 끝까지 하고 싶은 것이 여전한 방식의 목장 참여이고 목자입니까? 여행이고 쇼핑입니까? 요새 좀이 쭈셔서 어디 가고 싶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죄 패를 붙이고 성령의 놓임 받는 한주 보내도록
목장식구들 양육/양교 성령님 동행 하셔서 위로 은혜 받고 잘 진행되도록
예선
양육 시작합니다. 양육자로 세워주신 동반자와 같이 양육 받는 것임을 알고 가도록
말씀에 붙들려 하루만 잘 살고 성령의 놓임 받는 한 주 되도록
붙여주신 지체 위해 말씀으로 기도하도록
다인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회사에서 매순간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말씀으로 하루 잘 살도록
언니가 건강하도록 지켜주세요
지화
주님 인도하심 가운데 결혼 준비되고 구원의 가정 이룰 수 있도록
남친 세례받고 목장과 말씀이 들리고 교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양교 받는 것이 최고의 혼수임을 알고 회개하도록
돌발성 난청 치료 잘 받고 귀 호전 될 수 있도록
언니랑 조카 가족들 말씀이 들리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보련
내게 있었던 모든 아픔의 사건들이 말씀으로 해석되서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구원 약재료 되도록
양육을 잘 받아서 인생의 규빗과 지경이 넓어지도록
앞날에 걱정하기 보다 현재를 감사하고 말씀으로 하루 살 수 있도록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직장 허락해 주시고 회복되도록
난리치는 동생과 부모님 구원될 수 있도록
현경
양육하면서 덮고 모른 척하고 싶은 것들, 안되는 것들, 자기합리화로 회피하지 않고 나누고 위로받고 섬기며 갈 수 있도록
기도시간 가지기/울림기도회자리 지키기
양육의 시간을 가지는 목장식구들 위해 중보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