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놓임
사도행전 16장 35-40절
우리는 사명을 위해 성령의 놓임을 받습니다.
1.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있습니다
35절: 단순히 날이 밝았다는 뜻이 아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뜻이 있다. 알고보니..짜잔! 이런 의미 = 날이 새매.
큰 지진으로 옥터가 흔들리는데 한 주 동안 자신의 죄를 보았나, 마찬가지로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더 이상 울고 있도록 가두어 둘 수 없었다. 지난 밤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하니 온 도시가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났다. 상관들과 관리들도 잠을 못 잔것. (유대인이라는 명목으로 가둔 것) - 따라서 부하들에게 일러 놓으라고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풀어주십니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날이 새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진 않는다.
내 죄를 본다는 것은 나를 정죄하는 것과는 다르다. 용서받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인해 우리 죄는 없어지지만 죄패가 달린 우리의 십자가는 항상 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죄패는 중요한 것.
죄패를 다시 생각하면 상대방을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다. 죄패는 우리의 마패와 같다. 평생을 기억하면서 타인을 구원시키도록, 나를 엎드리게 하는 '암행어사 출두요'의 마패이다. 내 죄는 용서받았지만 내 죄패는 상대방을 용서하는 마패.
내 죄 한 번 가지고? 나 이렇게 별거 아닌 죄 지었는데 너네 그럴거냐? 라는게 우리의 가해자적 마음. 그러나 이건 가해자가 할 말은 아니다. 피해자가 해줄 용서다.
그리고 우리의 죄패를 보면서 그 죄를 절대 용서해주지 않는 것. 단절해버리고 정죄하는 것이 세상의 피해자의 우리에 대한 판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로 해야한다. 우리는 용서받고, 용서받았지만 그 죄를 본다. 나의 죄는 용서받았지만 죄를 본다. 그 죄를 보며 남들을 용서하고 거룩을 지키고 가정을 지킨다.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목장에서 내내 나의 죄를 고백하며 내 십자가를 끝까지 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억한다.
예수님의 죄패 = 유대인의 왕. 사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 유대인의 왕은 멸시하는 칭호.
우리 중에 나는 죄없다 할 사람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항상 말한다. '제가 뭘요, 제가 뭔 죄를 지었다고, 남편이,,아버지가,,' 하지만 예수님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예수님에 비하자면,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슨죄가 있어서 이런 죄패를 지고 수치스러움을 견디고 모두의 앞에서 죄패가 달린 십자가를 지시고 그 언덕을 오르셨을까?
그러나 '날이 새매'가 온다. 분수령적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것은 내 인생에 예수님으로 볕들날, 행복의 날이 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다시 나의 죄를 보면서 나를 못 박고 새로 사명의 삶을 살아갈 기회가 온다는 의미이다. 날이 새는 것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놓치는 것
적용질문
-평생에 이마에 붙이고 가야할 죄패는 무엇입니까?
-혹은 시기마다 날이 새매 죄패의 종류가 달라집니까?
2. 특권의식을 내려놓습니다
36절: 살아난 간수는 = 평안히 가라 (히브리어로 샬롬, 그리스어로 에이레네 - 기독교적인 용어) 상관들도 보내주려고 한다.
근데, 바울이 안 나간다고 하면서 로마사람인 우리를 때리고 가두더니 모시고 내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가라고 하니? 라고 한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를 중죄인으로 다루고 채찍으로 때리고 옥에 가두었던 그들은 판도가 바뀌어 반대로 그들이 중죄인이 된다.
그런데 바울은 왜 이제 와서야 자신이 로마시민임을 밝혔을까? 진작 밝혔으면 괜찮았을텐데.
바울의 죄목은 귀신들린 여종을 자유케 해주어서가 아니라 '유대인이어서' 로마사람인 우리를 정신사납게 해! 라는 것이 빌립보 유지들의 기소내용이었지만 정작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고 '유대인이어서' 가 죄목, 결과적으로 이건 지역감정이고 인종 차별이다.
바울이 만약 아고라의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와중인데) '나는 로마시민인데 너네 이럴래? ' 라고 했더라면 그 앞에 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와 저 매국노! 맘대로 유대인이라 했다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네!'라고 생각했을 것.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로마시민권을 밝히면 안된다. 그 특권을 버렸다. 그래서 온갖 고초를 받는다. 이 땅에서의 특권은 오직 구원을 위해 써야하고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한다. 감추는 것도 한 생명을 위해, 드러내는 것도 한 생명을 위해 하는 것이다. 항상 훗날을 생각해서 원칙대로 적용해야 구원을 이루는 과정이 된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반짝반짝 하늘의 권세를 들이미셨다면 우리가 우리 죄를 마음 찢어지는 죄책감으로 보았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끝없이 낮아지시고 고초를 기꺼이 당하신다.
바울도 이렇게 값을 일단 치른 뒤,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귀신들린 여종을 위해, 루디아를 위해,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이런 모습에서 사람들은 바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또 여기에서 '그럼 계속 말하지 말던가 왜 말은 해?' 라고 생각하는 꼬인 생각에게..
그 당시 비인격적으로 판결도 없이 개패고 괴롭혔던 비인간적임을 그들의 죄를 드러내고, 바울은 이제 빌립보를 떠날 것이기 때문에 상관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여기서 복음 전파를 이어나갈 사람들을 위해. 사실 이렇게 해놓고 고발하지 않고 빌립보를 떠났기 때문에 상관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 그리고 만약 그냥 로마시민임을 밝히지 않고 떠났더라면 탈옥수처럼 되어서 앞으로의 복음 전파 활동에 걸림돌이 되었을 것.
중요한 것은 언제나 모든 결정에서 한 사람의 구원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일을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
그러나 죄인은 구원을 모르기에 적용하는게 천차만별이고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갇힌 자 되어 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적용을 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자신들의 죄를 보도록, 깨닫도록 도우실 것이다.
로마시민권 따위, 주님을 위해 구원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면 쓰레기와 같은 것. 그게 바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절대 자기 특권을 쓰지 않다가 구원을 위해서만 쓴다. 전도 도입부에 필요할때만, 목사님이 '서울대'를 쓰시듯이.
적용질문
-부모의 특권, 자녀의 특권, 상사/시민권자/부자 로서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특권의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잘난 척만 합니까? 아니면 그것을 필요할 때만 사용해 공동체를 섬기는데 사용합니까?
3. 끝까지 말씀을 가르칩니다.
상관들이 비굴할 정도로 바울이 조용히 떠나주기를 간곡히 청한다. 구원을 위해 적용하고, 이 땅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을 때, 그리고 스스로 갇힌 자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지어 세상에서도 높이신다.
루디아는 바울에게 자기 집에 머물라 하였고, 귀신들린 여종을 졸졸 쫓아다니고, 간수는자기 집에 초청한다. 자기 손에 쥘게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그를 모신다.
그러나 이 상관들은 (로마인을 비인간적으로 대한) 바울을 좋은 집에 모시긴 커녕 떠나기를 종용한다. 그들은 잃을게 많았다. 예수 믿는다고 밝히면 잃을 게 많습니까? 그건 '상관의 두려움'
빌립보에서 천금같은 한 사람. 그 많은 상관들은 돌이키지 않고 오직 그 간수 한 명만 돌이키니까. 그래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어렵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되려 가진 게 없기에 쉽게 가능하다. 성령의 높임은 결국 환경에서, 세상에서 높이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에 묶인 자 되는 것이 결국 자유로워지는 진정한 성령의 높임이다.
신앙의 반댓말은 불신이 아니라 자기열심.
육체적인 질병이나 세상적인 환경에서 놓이는 것이 놓임이 아니다. 말씀안에서 구원받는 것이 진짜 놓임임을 기억하자. 질병을 얻었으니 자기연민을 갖는게 아니라 구원받고 내 죄 보는 기회되었음이 놓이는 시간임을 떠올리자.
빌립보 교회가 시작된다. 감옥 안에서 내 옆에 실라 한 명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간수와 모든 죄수들이 교인이 되어 마지막까지 바울과 함께 하게 된다.
형제들을 '위로'했다고 하는데, 이건 권면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 이 세상에 최고의 위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그것으로 권면하는 것이다
내가 로마시민인걸 숨기고 감옥에 갇혔는데 말이야- 근데 결국 지진나고 풀려나고 이런 무용담을 풀어놓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도 말씀을 당장 묵상하고 가르치는 것.
이것이 모든 환경에서 놓임을 받는 비결이다. 우리는 죄인이라 조금만 놓아주면 흘러 떠내려 간다. 참된 성령의 놓임은 모든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에 안 드는 것으로부터 놓임받는게 아니라, 직접 스스로 매인자 되는 적용. 벗어나지 않는 적용을 할 때, 오히려 세상의 권세가 내게 와서 제발 놓임 받으라고 자신들을 떠나라고 얘기를 하게 되는게 성령의 놓임이다
적용질문
-끝까지 하고 싶은 것이 여전한 방식의 목장참여이고 목자입니까? 아니면 여행이고 쇼핑입니까?
(= 높임받고 싶은 부분이, 내가 싫어하는 환경에서 놓여 내가 원하는 자유로움 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매여서 그로 인해 성령의 높임을 원하는지)
평안히 가라고 집에 초청했던 간수가 놓아줌에도 감옥으로 돌아간다. 자청해서 감옥으로 돌아간다.날이 새매. 는 세상적으로 놓이지만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다시 옥에 들어가는 매임. 세상에서 놓였지만 나는 떠나지 않는 것. 그래서 갇히고 구원을 위해 사명을 위해 적용하는 것.
4/4 주일 오프라인 목장
참여자 : a,b,c,d (e는 현장예배 후 귀가, f는 오늘 부득이하게 불참하여 연락했음!)
a - 모태신앙이라는 것이 예수님 만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매일 그자리에서 들었던 것이 내려놓아야 할 특권의식. 자녀로서 부모님에게 요구했던 것이 내려놓아야 할 특권의식이자 교만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유익때문이었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최근의 사건들을 통해 붙어있음을 경험해야할것. 나의 자리에 계속 붙어있으면서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하나님이 말씀해주시길. 교만이 있기 때문에 아빠를 무시했었는데, 요즘 깨닫고 있다. 바울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한 영혼을 살리는 바울이 대단하다. 아직까지는 그게 안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많이 느껴진다.
b - 음란, 교만의 죄. 요즘은 안그런데 과거에 무시가 되는 마음이 많이 들었고 그 이후로 그 사람을깔보게 되는.. 제가 제일 짊어지고 가야할 죄패인것 같아요. 전도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선뜻 먼저 전도하기가 힘들다. 참 어렵다. 저번주에 죄를 오픈하고 나서, 잊고 살았었는데 후련함이 생겼다. 다시 그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a - 죄를 지었더라도 말씀에 잘 묶여있고, 잘 쓰임받을 수 있는것. 죄에 묶인게 아니라 말씀에 묶여있는것이 중요한것 같아. 오픈을 통해 말씀에 묶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심에 감사하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b - (3번 적용질문) 제 행동을 보면 쇼핑과 여행인데,, 노력해야죠.
c - 죄패는, 너의 성품으로 하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렸을때부터 참는 습관이지 그게 제 성품은 아니에요. 참다가 터질때가 있는데, 재작년에 한번 터졌어요. 그 모습을 보시더니 놀랐던. 그만큼 화도 안내고 고등학교때는 너무 힘들어서 학교가기 싫었는데,, 그래서 힘들다고 화를 냈다. 왜 자꾸 언니랑 오빠한테만 신경써 나도 힘들어 엄마한테 화를 내봤어요. 엄마가 그 사건에 충격을 받으셨던. 제 의로 참으려던 것도 많고 제 의로 하려던 것도 많아서 요즘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걸 깨닫고 있다. 예전에는 다 내 의로 할 수 있다 생각했었던 죄패가 있다.
a -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왜 많이 참는 것 같나? 너의 감정을 잘 드러내길. 목장에서 감정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기를.
c - 그렇지는 않다. 그 사람의 시선을 바꿀 순 없으니까. / 어렸을 때는 아빠가 되게 화가 많으셨던. 그 대상이 항상 언니였다. 언니가 워낙 성격이 세서.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스타일. 항상 언니가 많이 혼났던. 언니는 나에게 항상 하소연을 했다. 그 얘기를 들어주다 보니 나라도 가만히 있어야겠다 싶어서 아무말 안했던. 그게 커서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게 짐이 되는 것 같아져서 못했던. / 요즘은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에요. / (3번 적용질문) 여행을 안좋아해요. 혼자서는 여행 안갈 것 같아요. 저는 집에만 있을 것 같아요.
d - 신앙의 반댓말이 불신이 아닌 자기열심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나에게 있어 놓임이 말씀안에서 구원받는 것임이 인정이 된다. 이번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파서 약을 먹게 되고, 교제가 깨지고, 친구들과 멀어지는 사건 속에서 많이 낮아졌고 이것이 성령의 놓임이구나 오늘 말씀듣고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열등감과 교만이라는 정반대의 죄패가 있는데, 어릴 적 유학시절에 많은 무시를 당했었고 그것이 내 인생에 분노가 되어 인정욕심이 심해졌다. 그래서 대학을 좋은데 가야 무시받지 않겠지 싶어 공부하고 꾸미고 사람들과 잘 지내려 노력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교만이 있고 열등감이 있다. 어제 밤에 동생과 이야기 하면서 동생이 친구가 몇명 없는것이 이해가 안되고 답답했는데 그것이 동생의 방식이구나 이해가 되고 내 생각으로 사람을 판단했음이 인정되고 동생에게 미안했다. 이 죄패를 계속 나누며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기를.
<기도제목>
c -
엄마가 취미를 가지셨으면 좋겠다. 취미로 우쿨렐레를 오래 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언니가 이번에 있던 사건 오래 맘에 담아두지 않기를
b -
발목이 계속 아픈데 병원가면 아무 문제 없다고한다. 발목 낫도록
브런치카페 알바 붙었는데, 빡세다. 허리가 안좋은데 무리하지 않도록.
아빠 월급이 올라갔으면. 행복을 누리고 싶다.
a -
가족과목장 정신 육적 건강
할아버지 간호하는 엄마 잘 버티시기를
취업준비. 취업의 때를 잘 열어주시기를. 준비 잘 하기
교만과 욕심 잘 내려놓기
신교제 신결혼
d -
무료한 느낌 없어지기를 (집안일 열심히 하기)
가족건강, 본인 건강
신교제의 때를 열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