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1. '성령의 찬송' (행 16:16-25), 김양재 담임목사님
여러분은 언제 찬송하는가? 바울이 성령의 거절 맛보고 사명의 돛을 달고 성령의 직행하고, 순풍 주셔서 감사하고 기뻐서 찬송이 저절로 나왔을까? 바울 사도가 등장하면서 바울사도가 찬송했다는 이야기가 오늘 처음 나온다. 얼마나 기쁘면 이렇게 찬송하는가? 바울이 어떤 때 찬송했는지 오늘은 성령의 찬송을 하게된 과정을 따라가 보기를 바란다.
1.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 입니다.
16-18절
무리가 루디아 가정에 며칠 유했다. 그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기도하러 가는 중에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찾아가 만난 것이 아니다. 루디아도 기도할 곳 찾다가 만났다. 그러니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큐티하면서 생기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그 여종과 만나게 해주셨다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가 말씀과 공동체를 신뢰하면 생기는 모든 일들은 역풍이나 순풍이나 하나님이 모두 직행으로 사명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이 여종은 단순히 귀신들려 힘들어하는 여종이 아니었다. 여종의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다. 귀신이 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점을 쳐 미래를 예언하는 자였고 이것으로 주인은 많은 소득을 벌었다. 그러나 여종은 주인들에게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재산적 가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종속된 소유였고 돈 버는 기계, 소득의 원천이었다. 어떠한 자유도 의지도 없는 매여있는 불행 그 자체였다.
우리들 교회에도 신내림 받은 자매가 있었다. 신내림은 자기가 원해서 받는 사람이 없다. 너무 고민하다가 가족 친구도 다 떠나서 무당이 된다고 한다. 그 이후의 삶은 신내림 받았으니 귀신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르심 받은 사도나 제자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 처럼 신내림받은 귀신들도 귀신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그분들은 돈이라도 벌었다. 그러나 여종은 주인이 모든 것을 다 가로채 간다. 여종의 생각과 감정과 계획은 다 짓밟히고 다 무시당했다. 그러나 이 여종이 기도하러 나오는 사도바울 일행을 본다. 수많은 미래를 점 치고 사람의 심령을 점치며 꿰뚫어 보며 예언했기에 바울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며 깜짝 놀라며 소리 지른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써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한다.이단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정말 많다. 말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자들이 많다. 우리가 그들에게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탁월하다. 그러나 지식으로 믿는 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유명한 네 자신을 알라 라는 격언은 델포이 신전 입구에 적혀있던 말이다. 델포이 신전은 앞날을 점쳐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근데 이 델포이 신전의 주인공은 철학과 예술의 신 아폴론이었다. 당시 최고 문화였던 헬라 문화의 상징인 신이다. 퓌톤은 이 신전을 지키던 뱀이었다. 그러니 이 퓌톤의 영, 즉 점치는 귀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미신적인 것 보다는 당시 로마시민을 포함한 온 세상이 우러러보는 헬라의 지성과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요새 아트홀에서 정부고관 다 불러놓고 무속잔치하는 것과 같다. 이는 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엄청난 영적 힘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데오스이다. 이 데오스가 빌립보에서는 제우스를 의미했다. 그러니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 빌립보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니 제우스의 종이라고 들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니 자신을 알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네 죄를 알라고 하니 비슷해 보인다. 그러니 사모드라게의 여러 철학자들을 하나님 보다 더 존경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람들이 어떻게 듣던 상관없이 바울 일행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복음을 들어 안 것이 아니다. 타락한 영으로 하나님에 대해 귀신들도 하나님에 대해 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귀신에 사로잡힌 까닭에 바울을 분별했다. 믿음과는 다르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여인의 외침이 어떻게 들리는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써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하는 외침이 어떻게 들리는가? 나 좀 살려달라고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것으로 들리는가?
귀신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도바울은 당연히 그렇게 들었다. 그녀를 불쌍히 여겼다. 그러나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지나쳤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사명이 있고 앞으로 계속 복음전해야 하는데 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쫒아내면 감옥에 갇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수일을 유하며 빌립보 문화를 깨달은 것은, 로마는 재산과 소유에 대해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근데 여종은 재산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듯이 수많은 문화와 민족을 그들이 다스릴 수 원동력은 강력한 법이었다. 근데 이 여종 주인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었다. 빌립보 성의 유력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복채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부자동네였으니 가만히 있어도 돈이 콸콸 들어왔을테니 주인들의 소유인 여종을 자유케 하면 큰 소동이 일어나고 강력한 법으로 다스리는 이곳에서는 당연히 감옥에 갇힐 것이 뻔했기에 바울은 계속 지나치려고 했다. 정말 듣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종이 계속 여러날을 따라다니면서 이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계속 외치는 것이다. 그러니 18절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것도 여러날을 했다고 한다.
심히 괴로워하다라는 말은 괴로움이 부풀어 올랐고 마음이 심히 아팠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주인된 인간들의 불의를 보고도 묵인해야 하는 아픔이 있고 한 인격이 무너지고 귀신과 주인에게 이용당하는 여종의 모습이 불쌍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 여종을 고쳐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누구를 전도해도 얼마나 힘든가? 바울사도도 계속 그런 것이다. 자기가 복음 전하다가 죽는 것은 괜찮은데 남의 재산 문제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선교가 여기서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여종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못하는 갈등에 마음이 아팠고 영원히 귀신에 매여 있을 수 밖에 없는데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날 묵상하면서 한 영혼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과 중독과 장애와 가난과 미움과 원망과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매여 신음하고 있는 우리 인류를 위해, 한 영혼을 위해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 때문에 이 길을 목숨을 내버리고 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길을 가야 한 것이다. 그래서 드디어 한 사람, 귀신들린 사람, 여자, 종인 사람을 위해 자신이 죽기로 결단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육신과 같은 것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선교가 여기서 끝나도 좋다 여기고 한 여종을 위해 자신이 갇힐 것을 각오하고 외친다. 명령했더니 귀신이 즉시 나왔다.
우리들교회 목회자세미나 1회 할 때 정말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 다음날의 목회자 세미나를 앞두고 성령의 직행으로 달려왔는데 늦은저녁 집에 들어가다가 교회가까이에 있는 상가 거리에서 뭘 살것이 있어 거리를 지나갔다. 근데 어떤 여자분이 목사님 아니시냐며, 울면서 시간 내 달라고 했다. 근데 막 외치면서 계속 따라왔다. 저는 쉬어도 부족한 때였고, 추웠는데 여름옷을 입고 있었는데 계속 외쳤다. 잠깐만 이야기 해보라고 했더니 불륜으로 소문나서 치리로 인해 교회 못다니게 되었다는 눈물의 외침을 듣게 되었다. 결국 한시간 넘게 사연을 들었는데, 결론은 상대방 부부가 우리들 교회 다닌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다 듣고 이 자매를 살리려면 당분간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교회 오라고, 그래서 회복 되어 돌아가라고, 뭐라고 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초청에 그 자매는 눈물을 뚝 그쳤다. 결국은 모두다 정착 잘 해서 두 가정이 다 살아났다. 미리 오신 목자 권찰님께 복음이 들어가니 관계 정상화가 일어났다. 정말 훌륭하셨다. 그래서 제 말대로 다 되었다. 제가 날마다 간 떨어질 행동을 골라서 한다. 좋은 죄인 나쁜 죄인이 어딨겠는가? 우리 모두 100프로 죄인이다.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그날 완전히 감기걸린 날 목새 못할 뻔 하게 목이 많이 쉬었다. 그때는 많이 목쉬었다. 근데 굉장히 은혜를 많이 부어주셨다. 정말 제가 날마다 두렵고 떨리지만 구원 위해서 적용할 때 죽을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구원을 이루어주셨다. 내가 몰매 맞을 일을 한다. 근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 상상도 못할 적용과 상황이지만 교회가 구원의 공동체 죄인의 공동체 아닌가. 와서 복음이 들어가서 구원이 되면 모든 관계가 정상화 된다. 제일 사랑하는 방법이 교회로 불러서 복음 전하는 것이다. 그 일이 우리들 교회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그 많은 간증을 하시는데, 성령의 간증이기에 지켜주셨다. 그리고 그 자매는 그 후에 간증했다. 상상이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그러면 안된다.
전승에 의하면 이 귀신들린 여자가 빌립보 교회의 두번째 성도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과부 루디아, 두번째는 이 귀신들린 여종, 이들로 유럽의 첫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많다. 우리들 교회도 문자 그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돈 귀신 음란귀신 각종 귀신들린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우리의 본성의 불안함을 부추겨서 세상의 것을 의지하게 하는 모든 유혹들이 귀신이다. 우리 믿음을 흔드는 이런 괴롭힘을 당할 때 우리는 피할 일도 아니고 넘어가서는 절대 안되는 일이다. 나는 괴롭힘을 이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죄인임이 인정될 때 까지 괴로움을 인내하며 지나가야 한다. 특히 나를 괴롭히는 가족 이웃에 대해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을 깨닫고 그들을 구원의 관점으로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래서 그 누구도 우리처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구할 수 있다.
그 날 교회와야 다 살아날거라 생각했지만 어떻게 교회 올 수 있었겠는가? 택자니 그랬다. 저도 못 믿었다. 근데 와서 다 살아났다. 괴롭힘을 통과하면서 전적 무능을 고백할 때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게 된다.
눅 13:11에 18년 귀신들려 꼬부러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똑같이 귀신들렸는데 한쪽은 꼬부라져 있고 한쪽은 돈을 번다. 어디가 좋은가? 아무리 귀신들렸어도 돈을 벌면 그것 때문에 심각하지 않다. 우리가 예수 안믿으면 우리 모두 귀신들려있다. 그래서 귀신같이 뭐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귀신같이 잘하면 기도도 안한다. 우리 모두 귀신들려 있다. 그러나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하는 지체들이 기도제목을 낸다. 기도하기에 모두 성령의 찬송을 할줄 믿는다. 귀신들려도 돈 벌고 있으면 주인들도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적용) 점을 쳐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불안은 무엇입니까? 귀신들린 사람의 외침이 나 좀 살려달라고 들립니까? 피해자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 것을 믿으십니까?
2. 대신 값을 치루게 하실 때입니다.
19-22절
드디어 사도바울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외치니 귀신이 즉각 나갔다. 그러나 생각한 것 처럼 깊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여종의 주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빌립보 성의 유력한 자였고 돈이 많았기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 관리들에게 즉시 끌고갔다.
주인들은 자신들의 여종이 귀신이 나가서 건강해지고 온전해 지는 것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 오직 한 사람의 고통의 문제보다 더 유익인 것이 나에게 유익이냐 하는 것이다. 다 이익인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말을 다 못한다.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다. 그런데 주인들이 심하게 손해 봤다. 그러니 아주 교묘하게 고발한다.
20절에 그들을 유대인이라는 죄목을 붙인다. 바울과 실라만 유대인이다. 디모데와 누가는 이방인이다. 이들 가운데도 이간질 하고 인종적 편견으로 자극한다. 왜냐하면 헤롯 아그립바가 충이 먹어 죽은 사건으로 황제와 유대인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글라오디아 황제가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유대인에 대한 감정이 나빠있었다. 거기에다 이들을 고소한 내용은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는 것이다. 폭동을 선동한다는 뜻인데, 수많은 나라를 다스린 로마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다. 바울 일행을 정치적으로 선동하며 폭동 일으키는 자로 고발하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여론으로 폭동이 일어날까봐 무서워한다.
지역감정 인종차별 전쟁 폭동 삼아 고발하면 사람들은 사리분별을 잃어버리게 되고 한 쪽으로 치우쳐서 선동이 된다. 이럴 때 복음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결국 온 무리가 선동되어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즉시 매로 치게 된다.
관리는 허리춤에 다양한 몽둥이와 채찍을 여러 개 달고 다녔다. 그 몽둥이와 채찍 중에서 예수님 채찍으로 칠 때도 그 채찍 끝에는 갈고리 달린 긴 쇠붙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채찍질 하면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십자가 까지 가면 거의 다 죽어있다고 한다. 게다가 유대인의 법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때리라고 법으로 정했지만 로마법은 무제한으로 때리게 되어 있다.
죄명이 폭동을 일으키고 정치적 선동을 일으켰다는 말이다. 바울과 실라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너희가 왜 잡혀왔냐고 물으면 대답이라도 할텐데 죄목이 유대인이다. 상대방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일제히 달려들어 옷을 찢고 기절할 때까지 매를 때린다. 레위기에서 제물의 가죽을 다 벗기고 각을 뜬다고 한다. 이것이 전부 거룩으로 가는 것, 예수님이 제물이 된 것과 똑같다. 바울과 실라는 대답할 경황도 변명할 틈도 없고, 순식간에 매질에 의해 떨어져나가는 살점에 대해서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23-24절
셀 수 없이 많이 친 후에 깊은 옥에 가두었다. 1층에는 경범죄자를 가뒀다면 지하 감옥에는 중 범죄자, 사형 앞둔 자를 가둔 곳이다. 천재 지변이 일어나도 나올 수 없는 곳에 차꼬를 채웠다. 기댈 수도 없고 온몸이 피투성이라서 누울 수도 없고, 손과 발이 다 묶여있고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는 깊은 옥에 떨어졌다.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귀신들린 한 여종 살려주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 아닌가? 한사람을 살리려면 이런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것도 한 영혼에 대해서 그렇다. 너무 중요하다.
바울이 어떤 심령이었겠는가? 거절 당하고 거절당하고 순풍을 만나 여기까지 왔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햇빛 하나 들지 않는 깊은 옥에 있는 것이다. 온 몸은 성한 곳이 없고 숨 쉴 때 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을 것이다.이 때 바울은 매질 당하고 온몸 결박 당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근데 여기서 가장 위로 받은 것이 옆에 실라가 함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위로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1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바나바와 전도할 때는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죽일 때 항상 바나바는 그 자리에 없었다. 바나바는 돌에 맞았다는 이야기가 없다. 바나바는 유대인이나 부자이고 워낙 존경받고 박수받고 인정받았기에 유대인들이 건들지 않은 것 같다. 다시 사도행전을 묵상하니 바울은 바나바와 다니기 힘들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낯선 나라의 칠흑 같은 감옥에는 옆에 실라가 있다. 함께 고통 당하는 지체가 있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당해도 같이 아파하는 지체가 있다. 우리는 매일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바울의 찬양이다.
예수님이 내 옆에 있지만 기가막힌 고난에 옆에 실라를 허락하셨다. 우리들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자들 다 오라 했다. 이 지체 때문에 그 밤을 지낼 수 있다. 어떤 억울함도 이겨낼 수 있다. 어떤 아픔도 함께 나눌 지체가 있으면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하는 힘이 생기는 줄 믿는다.
저는 평생에 교회 다녔지만 말씀 나눌 실랑 한 사람이 없어서 이혼을 생각하고 죽으려고 했다. 그래서 실라가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적용) 억울하지만 변명도 못하고 대신 값을 치러주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절망하고 있나요? 하지만 이 고난을 함께 나눌 실라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3. 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입니다.
25절
내 모든 환경이 억울하고 깊은 옥이지만 내 옆 지체가 있으니 같이 나눔 할 수 있다. 같이 말씀 묵상하고 나눔하는 것이다.
여기서 THINK
그들의 아픔이 같이 해석된다. 감옥에서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천국 아닌가? 그래서 목장에서 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천국이다. 남편이 바람펴서가 아니라 지체가 없어서 지옥이다.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서로 고백하니 유지하고 반복되니 양육이 되어 모든 고백이 나의 입술의 묵상, 기도가 되니 찬송이 된다. 그러니 지체가 얼마나 중요한가? 한사람의 지체라도 해석해 줄 수 있는 지체와 응답해주는 지체가 있다면 성령의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온다.
여기서 찬송하다 는 시22편에도 나온다. 엄청난 고난을 다 열거한 후에 예수님께서 죽음의 깊은 옥으로 내려가는 이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시며 절망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하신다는 것이다. 히2:12에도 같은단어다. 교회가 듣도록 찬송한다고 한다. 우리의 성령의 찬송은 교회가 듣고 성도가 듣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가 부르는 찬송은 깊은 옥임에도 부르는 찬송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옥에 갇혀있기에 부를 수 있는 찬송인줄 믿는다. 여러분의 깊은 옥이 이런 성령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비결이 된다. 짧은 인생이다. 고난 타령 그만 하고 하나님 만나시길 바란다.
결정적으로 이것을 죄수들이 들었다. 의인들은 못 들었다. 마음이 낮아져 살 소망까지 끊어진 자들이 듣는 것이다. 듣다로 번역한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이 곳에서만 쓰인 단어이다. 평범한 단어가 아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것이고 뜻밖의 기쁘고 반가운 이야기가 들려서 너무 놀라 집중해서 기뻐서 듣는 것을 말한다.
바울 사도가 매맞고 그 환경 가운데에서 자기 죄를 보는 대화를 했다. 그렇게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다 들었다. 이들이 얼마나 놀랐으면 성경에 한번밖에 안 나오는 단어를 들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오늘 설교를 들으러 와서 놀라서 귀가 커져서 듣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18년이 되어도 안 들리는 사람이 있지만 처음에 와도 살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회적으로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죄수들도 있지만 빌립보와 로마의 가장 핵심 그룹들이 전부 몰려있는 감옥이다. 수많은 정치인과 관료들도 모여있다. 이들이 바울이 찬송하니 상상하지도 못하게 바울의 복음을 다 들었다. 그러니 성령의 직행이다. 하나님이 다 모아주셨다. 이들이 매맞고 살점이 다 떨어져나가는데 그렇게 찬양하고 있으니 눈과 귀가 크게 열린 것이다.
바울과 실라의 심정은 우리가 나가서 선교해야 하는데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선교를 멈춰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즉 자기 죄를 알고 직면하는 자는 어떤 감옥도 가두지 못하는 줄 믿는다. 왜냐하면 그 죄로 인해 죽으신 예수를 만나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울은 또 거절당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모두에게 받는 거절은 매를 맞아도 찬송함으로 직행이 되게 하신다. 그러니 구속사를 모르면 어찌 인생을 해석하겠는가? 인생이 짧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기뻐해야 찬송할 수 있겠는가? 바울이 드로아 사모드라게 네압볼리 다 지나쳐서 왔는데, 게다가 과부 전도하고 귀신들린 여종 하나 때문에 이렇게 감옥에 들어가 매까지 맞았는데 바울이 처음으로 찬송했다는 표현이 나왔다.
이런 것이 구속사의 놀라운 반전이다. 이 땅이 짧기 때문이다.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찬송할 수 있다. 내 노래와 기도를, 내 옆의 죄인들, 내 가족 내 자녀가 다 듣는다.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아 함께 갇혀 있는 그들이 다 듣는다. 구속사의 노래가 한밤중에 울려 퍼진다. 말할 수 없는 땅끝까지 내려갔을 때 내 노래가 울려 펴진다.
적용) 여러분은 고난의 한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있습니까? 옥에서 풀려나기만을 기도하면서 분노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들리는 죄인입니까? 상관없는 의인입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분노하는 것은 성령의 찬송이 아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미운 사람이 많으면 안된다.
부목자님 나눔 ampndash 손윗 동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관계가 멀어졌는데 화해한 나눔
말씀 맺음
성령의 찬송은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 나오게 하신다. 대신 값을 치뤄야 한다. 오늘 어마어마한 값을 치루는 것을 봤다. 그것을 못하니 이것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내인생의 한밤중이라도 들려지는 찬송이 있다.
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할 때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줄 믿는다.
[ 기도제목 ]
* 이지현
1. 전도축제 vip에게 교회 올 마음과 환경을 허락해주시길
2. 한 영혼 위해 기도로 값을 잘 치르도록
3. 발 진단 잘 받고 낫도록
4. 안 되는 환경이 감옥이라 낙심 말고 눈을 들어 주신 것을 보며 찬송할 수 있도록
* 김교희
1. 구원의 대상 위해 인내와 돈과 감사표현의 값을 잘 치를 수 있도록
2. 가족과 함께 현장예배 드릴 수 있도록 엄마와 특히 동생의 마음을 열어주시도록
3. 삶의 질서 잘 세우고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4. 회사에서 이타적으로 업무 하도록
5. 우리목장 지체들 모두의 진짜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