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찬송
공통 기도제목:
내 주위의 귀신들린 자의 나 좀 살려달라는 외침을 잘 듣게 하시고, 댓가를 잘 치루게 도와주세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피해자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 것을 믿게 도와주세요
고난의 한밤중에 부르는 찬송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가족과 목장이 함께 성령의 찬송을 부르게 도와주세요
승영언니
1. 부모님의 건강, 언니의 매장, 남동생의 진로.. 믿음을 흔드는 불안과 세상 유혹의 괴롭힘을 ..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드리고, 나누며 통과할 때 성령의 찬송을 하는 은혜주시길.
2. 구원을 위해 대신 값을 치루게 하실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시길.
(동생, 목장, 직장)
3. 의인의 교만을 버리고 제발 말씀이 들리게 하시길... 내 죄가 깨달아지게 하시길..
4. 지윤이 세금내는 적용에 순풍을 허락하시길, 양육을 준비하는 지체들에게 실라와 같은 양육자, 동반자 만나게 하시고, 진리의 성령님이 모든 것이 깨달아지고, 생각나게 하시길.
한나
1. 피곤하다는 핑계로 게으름에 빠지고
싶은데 흘러 떠내려가는 한 주가 아닌
말씀 묵상으로 후회함 없는 한 주 잘 보내도록
2. 아빠가 예수님 믿으시길!!
은영
1. 체력 회복하도록.
(텐텐 잘 챙겨묵고 운동하기)
2. 엄마, 동생 전도축제에 발걸음 인도해주시도록.
지윤
1. 짧더라도 매일의 큐티를 할 수 있도록
2. 조금이라도 내 안에 들린 귀신들 말씀보며 쫓아낼 수 있도록
3. 지난주보다 조금만 더 잘 살아보도록
4. 취미를 녹취 정리로 해서 집안일에도 적용 해보도록
여러분은 언제 찬송하세요? 바울이 성령의 거절을 맛보고 사명의 돛을 달고 성령의 직행하시고 그리고 순풍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찬송이 막 저절로 나왔을까요?
그런데, 바울 사도가 등장하면서 바울사도가 찬송했다는 얘기가 오늘 처음 나오는 거예요. 얼마나 기쁘면 이렇게 찬송을 할까요? 그래서 바울이 어떤 때 찬송을 했는지 오늘은 성령의 찬송을 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 가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는, (아유... 처음부터 수상해요)
1.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입니다.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입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 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써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 이같이 여러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무리가 루디아 가정에 며칠 유했죠. 그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기도하러 가는 중에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찾아가서 만난게 아니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도 기도할 곳 찾다가 만났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예배드리고 큐티하고 기도하면서 생기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그들을 그 여종과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말씀과 공동채를 신뢰하면 그 생겨지는 모든 일들은 역풍이거나 순풍이거나 하나님이 모두 직행으로 사명으로 책임 지신다는 것 입니다. 이 여종은 단순히 귀신이 들려 힘들어하는 여종이 아니었어요.
그 여종의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자였는데 귀신이 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점을 쳐 미래를 예언하는자였고, 이런 능력으로 주인들은 많은 소득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여종은 주인들에게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재산적 가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종속된 재산이었고 소유였으며, 그저 돈 버는 기계, 소득의 원천이었습니다.
어떤 자유도 의지도 없는. 매여있는 그의 삶은 불행 그 자체였어요. 우리들교회도 이제 신 내림 받은 자매가 있었는데, 여러분.. 열이면 열 신내림은 자기가 원해서 받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너무 고민하고 결국 가족도 친구도 다 떠나서 무당이 된다고 하죠. 그 이후의 삶은 신내림 받았으니까, 귀신의 명령대로 살아가는거죠. 어떻게 보면 우리 사도의 부르심받은, 사도나 제자도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신내림 받은 무당들도 귀신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 분들은 돈이라도 벌였죠. 모든걸, 그 사람들도 삼위일채가 되서 자기 의지가 있어야 되거든요. 정성을 들여야 되고, 신이 감동을 해야되고. 삼위일체가 되야지 답이 온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 학교 어디 갈까요? 이번에 중간고사 잘 보게 해주시고.. 승진이 될까요 안될까요? 이사는 ? 결혼은 언제할까? 궁합보러 가고 사주 보러가고. 날마다 복채 받아내고 중요한 일일수록 수 천만원.. 정치는 사람들도 그렇게 갔다가 내고. 유명한 무속인들 많죠?
아주 용한 점쟁이 일수록,. 그래서 이제 돈이라도 벌었어요. 그런데 이 여종은 주인들이 모든 걸 가로채어 갑니다. 이 여종의 생각과 감정과 계획은 전부 짓밟히고 다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기도하러 나오는 사도바울 일행을 봅니다. 수많은 미래를 점 치며 사람의 심령을 꿰뚫어 보면서 예언을 했기 때문에, 바울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
이단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정말 말씀에 대해 자구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들과 대하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탁월한 거예요. 그런데, 지식으로 믿는 건, 아니죠? 김양재에 대해서 어느 학교를 나오고 키는 몇 센치고 아무리 알아도.. 그게 믿는 건 아니잖아요? 또 큐티 모임 몇번 와봤다고 다 아는건 아니잖아요. 여기 10년 다녀도 또 저를 믿지 않을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점 치는 귀신은 피톤의 영이라고 하는데요.
뱀의 영이다. 이런 뜻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유명한, 네 자신을 알라는 격언이 사실 델포이 신전 입구에 적혀 있던 말인데, 이 델포이 신전이 앞날을 점 쳐주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이 델포이 신전의 주인공은 철학과 예술의 신 아폴론이었어요. 당시 최고의 문화였던 헬라 문화의 상징인 샘인데요, 피톤은 이 신전을 지키던 뱀이였어요. 이 피톤의 영은 곧 점치는 귀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미신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로마 시민을 포함해서 온 세상 사람이 우러러보는 헬라의 지성과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이었어요.
요새 아트홀에서 그런 무속잔치라고 요새 좀 그러잖아요? 유명한 정부 고관 다 불러다놓고. 그러니까, 이건 이제 유럽에 도착해가지고 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엄청난 영적인 힘을 대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데우스인데, 데우스는 이 빌립보에서는 제우스를 의미 했어요. 그리스 신화의.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면 빌립보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니까, 제우스의 종이다.. 이렇게 들을 수 있죠.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 그러는데, 우리 하나님은 네 죄를 알라. 비슷해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사모드라게에, 아리스토파네스, 플라톤등 철학자들이 거기 있어서, 다들 너무 존경하고 하나님보다는 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해요. 이 시대가.
그런데 이 여인은 사람들이 어떻게 듣던, 어쨓든, 바울 일행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복음을 들어서 안게 아니라, 타락한 영으로 하나님에 대해 귀신들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아요.
그런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귀신에게 사로잡힌 까닭에 바울을 분별을 했습니다. 믿음하고는 다르지만. 그런데 여러분은 이 여인의 외침이 어떻게 들립니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렇게 외치면 어떻게 들리세요? 나 좀 살려줘요.. 영적으로는 귀신에게, 육적으로는 악한 주인들에게 매여있는 나에게 구원을 배풀어주오.. 라고 들립니까?
그런데 귀신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당연히 그렇게 들었어요.
그녀를 불쌍히 여겼어요. 그러나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지나쳤어요. 왜냐하면 자신들은 사명이 있고 앞으로 계속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면 감옥에 갖힐게 뻔하기 떄문에. 수일을 유하면서 빌립보 문화를 깨닳은 것이, 로마는 재산과 소유에 대해서 엄격한데, 그 여종은 재산이잖아요. 그죠?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수많은 문화와 민족을 그들이 다스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강력한 법 인거예요. 근데 이 여종의 주인이 한 둘이 아니고 여럿이예요. 그리고 빌립보성의 유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채를 잘 맞출수록 굉장히 많이 갔다 내고 이 빌립보성이 또 부자동네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1분에, 또 5분에 예언 하나씩 하면 돈이 콸콸 들어오는데, 그 주인들의 소유인 이 여종을 자유케 하면은 큰 소동이 일어나고 강력한 법으로 다스리는 이 곳에서 당연히 감옥에 갖힐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바울은 계속 지나치려고 했어요.
정말 듣고싶지 않아.. 그런데 여종이 계속 여러날을 따라다니면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외치는 거예요. 이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니까, 오늘 18절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했어요. 이것도 여러날을 했다고 했어요. 심히 괴로워하다 라는 말이 뭔가 하면, 아주 괴로움이 부풀어 올랐어요. 그리고 마음이 심히 아프다는 거예요. 아니,. 왜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는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마음이 아픈거예요. 그 주인 된 인간들의 불의를 보고도 묵인 해야되는 아픔이 있고. 그리고 한 인격이 무너지고 귀신과 주인들에게 이용당하는 그 여종의 모습이 너무 또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므로. 이 여종을 고쳐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예요.
우리 누굴 전도를 하나 하더래도 이 사람 앞뒤에 죄 진걸 다 보고 나하고 어떻게 관련이 되고.. 이런 전도 한 번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쪽 전도하려면 저쪽에서 욕할 것이고. 저쪽 전도 하려면 이쪽에서.. 바울 사도가 계속 .. 왜냐하면 자기가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건 괜찮은데, 남의 재산 문제로 감옥에 갖히게 되고 여기서 이 선교가 중단되고. 그런데도 그 여종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못하는 그 갈등에 마음이 아팠고. 영혼이 귀신에 매여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여러날 묵상을 하면서 한 영혼에 집중을 하게 된거죠.
예수님이 죽음과 중독과 장애와 가난과 미움과 원망과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매어 신음하고 우리 인류를 위해서 한 영혼을 위해서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그 예수님 때문에 지금 이 길을 가는거잖아요? 사도바울이 목숨을 내버리고. 예수님 전하려고 이 길을 가는데 예수님의 길을 가야 하니까. 그래서 드디어 한 사람. 그것도 귀신들린 사람, 그것도 여자, 그것도 종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이 죽기로 결단을 내렸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육신과 같은 원리죠. 사도바울은 자신의 선교가 여기서 끝나도 좋다. 한 여종을 위하여 자신이 갇힐것을 각오하고 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명령했더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할렐루야)
우리들교회 목회자 세미나 1회 할 때, 정말 굉장히 긴장이 많이 됐습니다. 내일 당장 목회자 세미나 큰 사명을 앞두고 성령의 직행으로 달려왔는데 제가 이렇게 늦은 저녁 집에 들어가다가 교회 가까이 상가 거리에서 뭘 살게 있어서 잠깐 차를 세워놓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분이 목사님 아니세요!? 그러는거예요. 그래서 아., 네.. 그러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울면서 시간 좀 내주세요.. (안되는데요) 막 외치면서 계속 따라오는 거예요. 저는 내일의 거사를 위해서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어도 부족한 때였는데, 차를 세워놓고 갔기 때문에 그때가 굉장히 추웠어요. 여름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계속 외칩니다. 그래서 5분만.. 아니 1분만 , 잠깐만 그럼 얘기를 해보시라고 섰더니만,. 이제 불륜으로 소문이 나서 치리로 인해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는 눈물의 외침을 듣게 되었어요. 결국 한 시간 넘게 거리에서 사연을 들었는데, 결론은 상대방 부부가 우리들교회를 다닌다는 거예요. 이거 안 설수가 없죠?
다 듣고요. 그래도 이 자매를 살리려면 당분간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교회 오라고.. 그래서 회복되어 돌아가라고. 뭐라고 한다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상상할 수 없는 그 초청에 그 자매는 그냥 눈물을 뚝 그쳤어요. 그런데 결국은 그 모두 다 엘리트들이시고 지금 모두 정착들을 잘 하시고 두 가정이 다 살아났습니다. 이런 원수 같은 관계가 없는데, 정말 미리 오신 지금 목자.. 권찰님,. 정말 복음이 들어가니까 관계 정상화가 일어났어요. 사실 너무 훌륭하시죠. 그래서 제 말대로 다 됐습니다. 제가 이렇게 날마다 간 떨어질 행동을 골라서 합니다.
좋은 죄인 나쁜 죄인.. 여기 다 원수처럼 여겨야 되는데, 나쁜 죄인이 어딨겠어요. 우리 모두 백프로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에는 차별이 없는 거예요. 그 날 완전히 감기 걸려서 목새를 못할 뻔하게 목이 완전히 쉬었습니다. 그 다음날 하는데 목이 ...... 이렇게 되가지고, 여러분들 제가 목 쉰거 들은적이 없죠? 그 때 완전 쉬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서 목이 많이 쉬셨나 해서 굉장히 목새에 은혜를 많이 부어주셨어요 (웃음)
제가 날마다 두렵고 떨리지만 구원을 위해서 적용 할 때 죽을 거 같은데 지나고 보면 구원을 이루어 주셨어요. 내가 몰매 맞을 짓을 날마다 해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상상도 못 할 적용과 상황이지만 교회가 구원의 공동체랑 죄인의 공동채 아니겠습니까? 와서 복음이 들어가서 구원이 되면 모든 관계가 정상화가 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게, 제일 사랑하는 방법이 교회로 불러서 복음 전하는 거예요. 뭐 만나지 마라.. 이딴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 일이 우리들교회에선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많은 간증들을 하시는데 성령의 간증들이기 때문에 지켜주셨어요. 그리고 그 자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 후에.
이렇게 상상이 안될 간증을 하는데도, 날마다 옳고, 그르고.. 그사람은 어떻고 이러시면 안되는 거예요. 이 전승에 의하면 이 귀신들린 여자가 빌립보 교회의 두 번째 성도가 되었다는 말이 있어요. 첫째는 과부 루디아. 두번째는 귀신들린 여자. 이렇게 유럽에 첫 교회가 시작이 됩니다.
그 때도 지금도 세상은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들교회도 성경대로, 문자 그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뭐 돈 귀신, 음란 귀신, 수 많은 각종 귀신 들린 사람들이 수 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불안함을 부추겨서 세상의 것을 의지하게 하는 모든 유혹들이 영적으로는 귀신 인거예요. 그래서 우리 믿음을 흔드는 이런 괴롭힘을 당할 때, 우리는 피할 일도 아니고 넘어가서는 절대 안되는 일입니다. 나는 이 괴롭힘을 이길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죄인임이 인정 될 때까지 괴로움을 인내하며 지나가야 합니다. 특히 나를 괴롭히는 가족, 이웃에 대해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을 깨닿고 그들을 구원의 관점으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우리처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인 거예요. 우리는 감당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 날 추운것도 다 잊고 그냥 교회 와야지 다 살아날거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택자니까... (어떻게 교회를 올 수가 있겠어요) 진짜 이게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저는 목새를 너무 은혜 가운데 눈물로 치렀더니 그 응답으로 왔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왔을 때 나두 못 믿었어요. 어떻게 왔나.. 해가지고. 믿음이 없어요.. 올까? 올까?
다 살아났어요. 양 쪽 가정.
괴롭힘을 통과하면서 전적 무능을 고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의지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3:11 ampndash 18년 귀신들려서 꼬부라져 종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잖아요? 18년을 그렇게 묶여 있었지만 여기는 귀신 들려서 예언을 하고 돈을 벌어주는 여종이 있네요?
똑같이 귀신 들렸는데, 한쪽은 꼬부라져 있고, 한 쪽은 돈을 버네요. 어느쪽이 좋아요?
아무리 귀신 들렸어도, 한쪽은 돈을 벌면 그것 때문에 심각하지가 않잖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 안 믿으면 우리 모두 귀신 들려있어요. 그래서, 귀신같이 환자 잘 보네, 이래요. 귀신같이 피아노 잘 치네. 완전히 귀신같이 문제를 잘 풀어. 우리 다 귀신이예요.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귀신같이 잘 하면 기도도 안해요. 다.. 우리 모두 귀신들려 있습니다. 예.
그래서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하는 지체들이 이번 주일에도 기도 제목에 조현병 언니가 지금 연락 두절이고, 또 알코올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 전문 병원에 입원을 했고. 여든 여덟살 아버지가 800만원 주지 않았다고 아들에게 주먹으로 맞아서 재판하려고 한다고 하고. 또 중3 딸이 팔을 컷터 칼로 17번이나 ..전부 다 귀신 들린, 귀신들에게 괴롭힘을 받지만은 오늘 이렇게 기도 제목에 등장하고 우리가 기도하기 때문에 모두가 성령의 찬송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귀신 들려서 돈을 벌고 있으면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아요. 주인들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는 거죠.
적용: 그러므로 점을 쳐서 라도 해결 하고싶은 불안은 무엇입니까?
귀신들린 사람의 외침이 나 좀 살려 달라는 것으로 들립니까?
모두 구원의 관점으로 불쌍히 여겨야 해요. 피해자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 것을 믿으십니까?
성령의 찬송은
2. 대신 값을 치르게 하실 때합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 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 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드디어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외치니까 귀신이 즉각 나왔지만 사도바울이 생각 한 것처럼 깊은 옥에 갖히게 됩니다. 여종의 주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빌립보성의 유력자들이었고 돈이 많았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 관리들에게 즉시 끌고 갔어요. 주인들은 자신들의 여종이 귀신이 나가서 건강해지고 온전해진것에 하나도 관심이 없어요. 오직 한 사람의 고통의 문제보다 더 우선이 되는 것이 나에게 유익이냐.
이 자매를 전도하는게 우리 교회에 유익이냐 아니냐 이런걸 따지겠죠? 그렇죠? 그 다음날이 목새인데 제가 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들었어요. 다 이익인가 아닌가. 그래서 말을 다 못 하잖아요.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는거죠. 근데 주인들이 심하게 손해를 봤어요. 그러니까 아주 교묘하게 고발을 합니다. 그들을 20절에 유대인이라고 제목을 갔다 붙여요. 바울과 실라만 유대인이예요.
디모데하고 누가는 이방인이예요. 이들 가운데도 이간질을 하고 인종적 편견으로 자극 하는거죠. 왜냐하면 헤롯 아그립바가 충이먹어 죽은 사건으로 황제와 유대인 관계가 악화되었고,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축출 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감정이 아주 나빠져있었어요. 거기다 이들을 고소 한 내용은, 20 ampndash 우리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는 거예요. 이게 폭동을 선동하다, 흔들어놓다. 인데, 수많은 나라를 다스리는 로마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것이, 폭동인거예요.
즉 바울 일행을 로마제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선동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로 고발을 한 거예요.
정치가들은 다 여론을 무서워 하잖아요. 폭동 일어날까봐. 이렇게 지역감정, 인종차별, 전쟁이나 폭동을 삼아서 고발하면 사람들은 사리분별을 잃어버리게 되고, 한 쪽으로 치우쳐서 선동이 됩니다. 이럴 때 복음을 유지하기가 어렵죠. 결국 온 무리가 선동이 되어서 일제히 일어나 고발을 하니까 바울 일행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이들을 즉시 매로 치게 됩니다.
관리. 여기서 관리는 허리춤에 다양한 몽둥이와 채찍을 여러 개 달고 다녔는데, 그 몽둥이와 채찍 중에서도 예수님 채찍으로 칠 때도 그 채찍 끝에는 쇠붙이인데, 그냥 쇠붙이가 아니고 나비 모양의 갈고리 같은 쇠붙이가 (한 2미터 정도 되는 긴 채찍이 되서) 달려서 한번 맞으면 갈비뼈를 맞으면 갈비가 다 없어지고.. 그래서 십자가까지 데려가려면 거의 반쯤 다 죽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채찍질을 했고, 한 번 내리치면 살점이 다 떨어져나가게 되어 있는거죠. 이거 유대인의 법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하라고 법으로 정해 놨는데, 로마법은 그것도 없어요. 무재한으로. 때리게 되어있는 거예요. 폭동을 일으키고 정치적 선동을 했다는 거예요. 죄명이
저도 맨날 여러분들이 저보고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바울과 실라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왜 잡혀왔냐 라고 묻는다면 대답이라도 할 탠데 죄목이 유대인이예요.
상대방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일제히 달려들어 옷을 찢고 기절할때까지 매를 때리는데 레위기에서도 그 제물을 보면 가죽을 다 벗기잖아요.. 벗기고 각을 뜨고. 이러잖아요. 이게 전부 거룩으로 가는 예수님이 재물이 된. 이것과 지금 똑같아요. 바울과 실라는 대답할 경황도 변명할 틈도 순식간에 눈 앞에서 이뤄지는 매질과, 매질로인해 떨어져나가는 살점에 대해 어떤 말도 지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23-4절에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셀 수도 없이 많이 친 후에 또 깊은 옥에 가둡니다. 1층은 경범죄들을 가뒀다면, 지하의 감옥에는 아주 중범죄자들. 사형을 앞 둔 자들을 가두는 곳이예요.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나올 수 없는 곳.
그것도 그냥 가둔게 아니라 차꼬를 채워서. 기댈 수도 없고 온 몸이 피투성이래서 누울 수도 없고. 손과 발이 다 묶여있고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고. 깊은 옥에 떨어졌어요.
여러분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귀신들린 한 여종 살려주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을 살려주려면 우린 이렇게 대가를 치러야 되는거예요. 그것도 한 영혼에 대해서. 너무 중요합니다. 바울이 어떤 심정이었 겠어요. 거절당하고 거절당하고 이어 순풍을 만나 여기까지 왔는데, 사방을 돌아보니 햇 볓 하나 비치지 않는 깊은 옥에 있는 거예요. 온 몸은 성한곳이 없고 숨 쉴 때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몰려오는데, 전 이걸 느꼈어요. 우리가 금식을 하면서 마지막쯤 되면 막 한 시간, 한 시간을 기다리잖아요. 이 시간이 언제 가나.
저 같은 경우는 위도 안 좋고 이러니까, 시간 가기만 기다리고. 그게 쉬우면 금식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항암을 해보니까, 그 6개월 동안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누울수도 없는,. 그래서 전 지옥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유황불이 있는. 항암을 제가 힘들게 했어요. 금식도 힘든데.
그니까, 이 때 바울은 매질 당하고 온 몸을 결박당한 우리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당연히. 그런데 여기서 가장 위로 받은 것이, 옆에 실라가 함께 있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위로인거예요. 우리가 알다싶이 1차 선교 여행때 루스드라에서 바나바와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와서 돌로 쳐서 죽일 떄, 항상 보면은 바나바는 그 자리에 없어요. 바나바는 돌에 맞았다는 얘기가 없어요. 바나바는 유대인인데, 부자고 워낙 존경받고 박수받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건들지 않은 것 같아요. 다시 사도행전을 열심히 묵상하니까, 바울은 바나바하고 다니기 참 힘들었겠다.. 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낮선 나라에 칠흙 같은 감옥엔 옆에 실라가 있는 거예요. 바울이 쓸 수 있는 게 입이 있잖아요. 입이 결박되지 않았잖아요. 함께 고통당하는 지체가 옆에 있는 거예요. 함께 고통당하는 지체가 금보다 더 귀한 우리 목장이죠.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당해도 앞에 아파하는 지체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돈도 잘 벌고 우리들교회 맨날 이런 얘기만 해. 이게 오늘 바울의 찬양이라고 했어요. 바울의 찬양) 그리고 홀로 아픔을 겪은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예수님이 사실 내 옆에 있지만, 우리 인간이 연약한데 이 기가막힌 고난에 옆에 실라를 허락 하신거예요. 우리들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 외쳤어요. 환란당하고 빛지고 원통한 자들아 다 오라. 그래서 이 지체 때문에 그 밤을 지낼 수가 있어요. 어떤 억울함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아픔도 함께 나눌 지체가 있어야 피투성이라도 살아야하는 힘이 생기는 줄 믿습니다.
저도 시댁의 감옥에서 평생 교회 다녔지만 옆에 말씀으로 나눌 실라 한 명이 없어서 이혼을 생각하고, 죽으려고 했지요. 저는 이 실라가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적용: 억울하지만 변명도 못 하고 대신 값을 치뤄주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절망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이 고난을 함께 나눌 실라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지체가 없으면 지금 돈이 억만금이 많고 자녀들이 공부 잘하고
돈 벌어도 여러분들 앞으로 남고 뒤고 밑지게 돼 있습니다.
성령의 찬송은, 대신 값을 치뤄주고 감옥에 들어가니까,
3. 한 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을 하게 됩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ampndash 내 모든 환경에 억울하고, 깊은 옥이지만, 내 옆에 지체가 있으니까. 가장 복은 같이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같이 말씀 묵상하고 큐티 하면서 나눔을 하는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띵크를 할 수 가 있는거죠. 텔링부터 해봅시다.
마음열기: 바울이 실라에게 말했어요. 아프냐. (t)
아이고 뭔 고생이오.. 낯선 땅까지 와가지고.. 그 귀신들린 여자를 우리가 끝까지 못 본채 했어야제..
실라: 아이고 바울 형님.. 그래도 잘 하셨슈.. 그러나 우리 선교 여행은 여기까지 인가봐요..
홀리파잉: (h)
바울: 실라야.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게 어디냐.. 빌립보서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ampndash 처럼
난 사실 내가 이들과 똑같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여서 나는 진작 죽었어야 할 목숨이라고 생각해.. (이거 왜 하냐면, 지금 옆에서 듣고 있잖아요 ? 가정)
해석 (i)
바울: 그래도 우리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게 어디야.. 예수님도 우리 대신 이렇게 고난 받으셨을탠데 이 고난이 없으면 우린 예수님 안 믿을 죄인이여.. 난 평생 그 기독교인들 죽이며 살았을거야..
실라: 맞습니다. 형님. (해석이 되니까 널씽해요)
돌봄 (n) 서로 돌보게 되고, 그들의 아픔이 함께 해석이 되니까, 더 이상 감옥이 감옥이 아니예요. 거기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거, 이거 천국 아니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거, 이게 천국이예요.
남편이 바람펴서 지옥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나눌 지체가 없어서 지옥이예요.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서로 이렇게 고백을 하니까, 킵핑이 되어서 유지하고 반복되는
유지 : (k) ampndash 양육이 되어서 나의 입술에 묵상이 기도가 되니까, 찬송이 되는거죠. 그러니, 지체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사람의 지채래도 해석해 줄 수 있는 지채와 응답해주는 지채가 있다면 성령의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찬송하다는 시편 22편에도 나오는데요.
(비탄의 시)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러고 그리스도께서 당한 엄청난 고난을 열거한 뒤에 바로 22절에 :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주를 찬송 하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깊은 옥으로 내려가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절망과 원망을 하는게 아니라, 찬송을 하신다는 거예요. 히브리사 2:12 :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ampndash 교회가 듣도록 찬송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성령의 찬송은 교회가 듣도록. 성도가 듣도록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가 부르는 찬송은 깊은 옥임에도 부르는 찬송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옥에 갖혀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찬송인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옥이 이런 성령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거예요. 짧은 인생길이예요. 고난타령 그만하시고 하나님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결정적으로 이걸 죄수들이 들었어요. 의인들은 못 듣죠. 그죠? 마음이 낮아졌어요. 낮아진 그들, 살 소망까지 끊어진 자들이 듣는거예요. 듣다 로 번역한 헬라어는 성경 전체에서 이곳에만 쓰인 아주 아주 드문 단어예요. 평범한 단어가 아니예요. 그냥 듣는게 아니라, 귀를 쫑끗 세우고, 뜻 밖에 너무도 기쁘고 반가운 이야기가 들려서,. 너무 놀라서 집중해서 지금 기뻐서 듣는걸 말해요.
바울사도가 매맞고 그 환경 가운데서 자기죄를 보는 대화를 했잖아요.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찬송하는걸 다 들었어요. 이들이 얼마나 놀랐으면은, 이렇게 성경에 한 번 밖에 안나오는 단어로 들었겠어요. 어떤 사람은 오늘 여기 설교를 들으러 와도, 놀라서 귀가 이만큼 커져서 듣는 사람이 꼭 있어서 우리들교회가 여기까지 왔어요.
18년이 되도 안들리는 사람이 있지만, 처음 왔는데도 살 소망의 끝까지. 살 소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그니까 여기 가장 밑바닥인 죄수들이. 사회적으로 더 내려갈 곳 없는 죄수들도 있지만, 빌립보나 로마의 가장 핵심 그룹인, 그룹들이 전부 몰려있는 감옥이예요. 여기는 수많은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모여있어요. 그러니까, 이들이 바울이 찬송을 하니까 상상치도 못하게 바울의 복음을 다 들었잖아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성령의 직행인거예요.
이들을 놓고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어요. 하나님이 다 모아주셨어요. 그러니까, 이들이 너무 놀라가지고 저렇게 매맞고 살점이 다 떨어져나갔는데 그렇게 찬양하고 있으니까, 눈과 귀가 크게 열려가지고 바울과 실라의 심정은, 우리가 나가서 선교 해야되는데..!! 어쩌냐!!! 이런게 아니고,
여기서 선교를 멈춰도 감사하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고. 이런 얘기를 계속 하는거죠. 그러니까, 자기의 죄를 알고 그 죄를 직면한 자들은 어떤 감옥도 가두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로 인해 죽으신 예수를 만나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울은 또 거절을 당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받는 이 거절은 매를 맞아도 찬송을 함으로 직행이 되게 하세요. 그러니 구속사를 모르면 어찌 인생을 해석하시겠습니까.
인생이 짧은데. 이런 상황에서 어찌 기뻐하여 찬송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이 드로아와 사모드라게 네압볼리 다 지금 지나쳐서 왔는데, 게다가 과부 전도하고, 귀신들린 여종 하나 때문에 지금 이렇게 감옥에 들어가서 매까지 맞았는데, 바울이 처음으로 찬송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거예요.
저도 이번 주일이 꼭 고난주일 같아 가지고 설교 준비하면서 너무 많이 눈물을 흘렸어요. 이런것이 구속사의 놀라운 반전입니다. 이 땅이 짧기 때문이예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찬송할 수 있어요. 내 노래와 내 기도를 내 옆에 죄인들이, 내 가족이, 자녀가 다 들어요.
결코 변할것같지 않아 함께 옥에 갇혀있는 그들이 다 들어요. 구속사의 노래가 내 인생에 한 밤중에 울려퍼지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땅끝까지 내려갔을 떄 내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거예요.
적용: 여러분은 고난의 한 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있습니까?
옥에서 풀려 나기만을 기도하면서 지금 분노하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여러분들이 분노하는 것은 성령의 찬송이 아니예요. 바울처럼 지금 변명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예수님처럼 변명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예수 믿으면서도 그렇게 미운 사람이 많으면 안돼요.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는 죄인입니까? 상관없는 의인입니까?
한 부부목자님이 손윗 동서 회사 직원으로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피해자의 마음으로 살았는데 말씀이 들려 죄를 보고 손윗 동서에게 연락을 해서 용서와 감사를 전달한 나눔이예요.
사업이 망하고 목장 처방으로 용접을 배워가지고 근무를 하다가 손윗동서가 하는 회사에 입사요청을 받고 그도 목장 공동체에 묻고 동서 회사의 일을 배워서 영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손윗동서가 다른 공장을 짓는 가운데 2년 반동안 직원으로 일 하다가 나왔어요. 그런데 2년 반 동안에 받은 스트레스와 그로인한 우울증으로 약까지 복용하는데 회사를 나와서도 서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거예요. 저는 저 나름대로 손윗동서를 피하고 손윗동서는 저를 피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부인들과의 관계는 좋아서 우리들교회에 왔으니까
(아내가 믿음이 좋아서 중심을 잘 잡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지금까지 밥 먹고 살 수 있는것도 손윗동서의 도움인데, 저는 온갖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며 지금까지 피해자의 마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또 잠시 말씀이 들어가면, 잠시 또 용서가 되었다가도, 또 이제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3월 2일에 하나님께 속한 자 큐티 이후, 마음속에 손윗동서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우리가 이렇게, 말씀이 있으면 걸려가지고. 아까 우리 집사님 세금 다 냈다고 그러잖아요. 그게 우리, 적용의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세요.) 손윗동서에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적용에다가 쓰잖아요 적용하기. 그러고는 적용을 안하시죠 여러분은?) 몇 번 신호가 가다가 안받으면 끊어야지. 받지마라.. 받지마라 이러면서 전화를 했는데, 신호가 울리자마자 받았대요. 그런데, 손윗동서가 반갑게 받아주는 목소리에 마음이 녹아내려서 바로 그동안 죄송하다고 고백하면서 그동안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이 나와가지고, 눈물로 울먹이며 전화를 하게 되었고, 동서가 마음을 녹이면서 저를 다독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서로를 용서하며 통화한 것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내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내가 피차 복종해야 할 사람이 바로 손윗동서 였어요. 앞으로도 구원을 위해서 나의 입장만 고수하지 않고 백프로 옳으신 하나님을 믿으며 자신을 낮춰 잘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적용들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성령의 찬송이라고 생각 합니다. 바울이 아주 땅 끝까지 최대한 내려가서 최고의 고난 속에서 처음으로 찬송했다는 표현이 오늘 나왔다는거.
그랬잖아요. 찬송은 이럴 때 하는 거예요. 이게 성령의 찬송이고 구속사의 놀라운 반전 이예요. 어떤것도 예외가 없어요. 이 죄인은 안되고, 저 죄인은 되는 이런 게, 없어요. 예수 믿으면 다 똑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고 죄를 사해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그래서 성령의 찬송은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 찬송이 나오게 하세요.
귀신들린 여종을 도와주려면 대신 값을 치뤄야 하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값을 치르는 걸 봤어요.
바울이.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못 하니까, 이것 때문에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값을 치르겠어요.
그러면은 어떤 내 인생에 한 밤중에라도 들려지는 찬송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띵크하고 탤링하고 인터프리팅 하고, 킵핑하고.. 이거 옆에서 한 사람이 처음 목장 갔는데, 그게 성령의 찬송인 거예요. 한 밤중에 들려지는 여러분들이 찬송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줄 믿습니다. 항상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ampndash 찬송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