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4 성령의 직행
사도행전 16:11-15
바울이 당한 거절은 생각할수록 기가막힌데요. 바울은 항상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한 영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때 그 한 사람 디모데를 배려하고 베드로를 인정한 후 강한 깨달음이 와서 회개가 되니까 자발적으로 아시아를 떠나게됐죠. 그러니까 내가 깨닫는 것은 천지가 놀랄 일 맞습니다. 바울의 이 이타적인 깨달음으로 유럽이 복음을 받고 온 세계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 한 사람이, 죽은 사람 한 사람 살아나는 거보다 얼마나 더 큰 열매입니까? 그러므로 자기 죄를 보는 것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위대한 것 맞습니다.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몰라요.
그런데 마게도냐 한 영혼의 외침에 한 마음이 되고 바울과 우리가 드로아, 아시아를 떠나기를 힘쓰니까 이번에는 직행을 하게 하시는 거예요. 지난주에는 막고,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고, 거절의 복을 주셨는데 이번주에는 직행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이 직행이 어떻게 어디로 향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령의 직행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어요.
1. 순풍도 허락하십니다. (11절)
바다의 순풍인데요.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가장 빨리 가려면 배로 에게해를 떠나야 했습니다. 최단항로는 드로아에서 네압볼리로 가는 길인데요. 당시에 배는 순전히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였기 때문에 바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역풍이냐 순풍이냐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에게해 북부는 일년 내내 북동풍이 불어서 역풍이 되어서 자꾸 배가 먼 바다로 밀려 가니까 제 때 가지를 못하는 거에요. 거리가 불과 240km 남짓 되지만 20장에 보면 돌아오는 길에 닷새나 걸리는 항로인 거예요. 그런데 이번 항해는 남동풍의 순풍으로 단 이틀 걸렸다는 거에요. 이건 기적인 거예요. 그래서 누가는 이걸 직행했다고 합니다. 직행이라는 단어는 뱃길을 통해서 이리저리 돌지 않고 곧장 똑바로 달려갔다는 뜻인데요. 이 단어는 신약에서 사도행전에서만 딱 두 번 쓰인 드문 단어입니다. 일반 문헌에서도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예요. 왜 그럴까? 또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바울에게 미안한 삼위 하나님이 총 출동해서 특별히 남동풍의 순풍으로 직행하게 하셨는데요. 신자는 인내가 믿음의 결론인데 그만큼 이 직행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하는 단어인 거예요. 불신자에게는 그런 십자가의 직행은 아예 모르니까 거의 쓰이지도 않아요. 우리 생각으로는 거절은 싫고 순풍은 좋습니다. 내 인생에는 순풍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멋진 항구로 거침없이 가고 싶고, 또 우리가 가고 싶은 돈의 항구, 쾌락의 항구, 성공의 항구, 건강의 항구에는 남동풍이 불면 진짜 순풍이 아닌 거예요. 거기는 영생이 없어요. 그러니 그런 행복의 항구로 직행하게 하는 순풍은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거절 받는 역풍이 오히려 순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거 오해할까봐 두 번 밖에 안 쓰인 게 아닌가. 순풍에 돛단배는 지금 이제 바울 같은 상황에서 특별히 쓰일 수 있는 단어인 거예요. 사명의 돛을 달아야 순풍인데 우리는 고난이 축복인데 질그릇이 깨져야 보배가 보인다고 그러는데 갑자기 지금 직행이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이 단어가 많이 쓰이지 않았다는 거죠. 육이 무너질수록 영이 세워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 단어가 쓰였어요. 그러므로 이 순풍에 또 걱정되시는 주님은 지나쳐야할 곳, 그곳은 세상적으로는 아주 매력적인 곳들인 거죠. 그래서 떠나야할 곳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제가 좀 생각해 보겠어요.
드로아하면 우리는 다른 것도 많지만 트로이 목마로 유명하죠. 트로이는 총각인 트로이 왕자와 유부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 때문에 스파르타 왕이 그리스 연합군을 모집해서 트로이를 침략하는데 글쎄 10년간이나 이 전쟁이 이기지를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대한 목마에 특공대를 숨겨서 위장전술로 트로이 진입해서 그리스군이 승리한다. 이 얘기가 호메르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거기가 이 전쟁 얘기거든요. 그래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해서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씁니다. 이것도 굉장히 교훈 받아야 할 게 많은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거 교훈 받으려면 남의 가정사가 세계대전의 이유가 됐구나 우리는 환상인데. 그러니까 이 가정사가 나라를 살리는지 몰라요. 그런 가정사의 주인공이 임금이 됐을 때 이런 세계 대전이 되는 거예요. 가정의 살리는 게 나라를 살리는 거예요. 그래서 드로아는 직행하면서도 지나쳐야 될 곳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을 했는데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에개해 북동쪽에 위치하는 사모드라게는 바다의 이정표가 되는 1600km의 높은 산이 있었고, 12개의 위대한 신들의 사원이 있어서 신비의 섬으로 불리는데, 그러니까 여기는 굉장히 영험한 데에요. 여기는 굉장히 이정표, 높은 가치관. 그러니까 있어도 누가 뭐라 그러지도 않는 그런데인데, 사모드라게의 니케라고 승리의 여신상 아시죠? 얼굴도 두 팔도 없는데 비너스와 더불어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상이라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교통의 요지인 그곳을 떠나면서 승리하려고 저런 신상에다 절을 한다는 거죠. 잠시 이곳은 하룻밤 기항하고 역시 떠납니다. 그리고 이틀만에 네압볼리로 갑니다. 네압볼리는 네아폴리스로써 새로운 도시라는 뜻인데요. 당시빌립보시를 위한 항구도시였어요. 그때 버가로 가는데 앗달리아를 지나쳐서 갔자나요.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그 로마의 길, 대로 에그나티아가 시작되는 지점이었어요. 그러니까 바울 선교팀이 가기에는 여기가 얼마나 선교로써 환상적이에요. 길이 좋자나요. 하지만 바울 일행은 이곳에서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의 외항인 실루기아를 지나쳤듯이 네압볼리를 또 지나칩니다. 늘 바울은 아름다운 항구를 지나치더라고요. 이 모든 아름다운 항구는 대 사도 바울이 지나갔다는 거, 참 그 도시로서는 슬픈 일 아닐까요? 그러니 내가 아름다워서 바울 사도를 지나치게 하는 드로아와 사모드라게와 네압볼리는 아닐까 좀 생각을 해보세요. 그래서 유럽에 가면 네압볼리에 바울 도착 기념 교회인 성 니콜라스 교회에 거기에 성령이 환상 그림 성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가 마게도냐임을 잊지 않았어요. 순풍으로 밀어주셔서 직행하게 하신 곳이 사모드라게도 네압볼리도 아닌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의 첫 성이 빌립보이기 때문에 빌립보에 도착할 때까지 직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순풍에 돛 단듯이 직행하려면 이렇게 지나쳐야 할 곳들이 탁탁 분별되야 합니다. 그것은 지난주처럼 성령의 거절을 많이 맛보아야, 거절하고 거절하고 또 거절이 돼야 내가 떠날 곳, 있을 곳이 딱 분별이 됩니다. 좋아보이는 명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열심과 노력이 순종을 능가해서도 안 됩니다. 말씀을 앞세워서 순종할 때 성령의 직행을 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이 곳들을 떠날 수가 있는 게, 오늘 11절 첫 서두에 우리가 떠났자나요. 공동체가 너무 중요해요.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없으면 떠날 수가 없습니다.
[적용] 순풍에 돛 단 듯 직행하고 싶은 인생의 목적지는 사명의 마게도냐입니까? 불륜의 드로아, 높은 이정표 같은 사모드라게, 로마로 통하는 네압볼리입니까?
2. 정해 주신 사명의 자리에 수일을 유해야 합니다. (12절)
네압볼리에서 빌립보까지는 걸어서 4시간 거리, 16km 정도 됩니다.
누가는 빌립보가 로마의 식민지라고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이 얘기를 왜 썼을까요? 주전 42년에 빌립보의 한 계곡에서 전투가 일어났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삼두체제가 부루투스와 전투를 해서 승리를 했어요.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황제 아우구스트가 된 기념으로 빌립보에서 전쟁을 했기 때문에 빌립보를 로마의 특별시, 로마의 직할시, 리틀 로마로 완전히 승격을 시켜서 입법, 사법, 행정이 전부 로마하고 똑같이, 공휴일도 똑같고, 뭐든지 시민권도 똑같고, 황제에게 자기 목숨을 구명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심지어 누가가 합류한 드로아도 로마의 식민지인데 누가는 로마의 식민지 그런 소리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빌립보만큼 로마적인 특성이 물씬 풍기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로마는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자나요.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의 궁궐이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그야말로 땅끝나라가 로마의 황제의 궁궐인데 이 로마를 가장 충성스럽게 대표하고 있는 빌립보에 와서 보니까. 거기는 로마의 퇴역장군들을 다 보내가지고, 500명인가 보내 가지고 완전히 로마처럼 살게 해줬기 때문에 로마에 대한 충성이 대단한거죠. 자기 눈으로 확인을 해보니까 로마로 가서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렇게 보니까 하게 된 것 같아요.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은 없이 수일을 유했다고 합니다. 전도를 하려면 빌립보를 연구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본래 다소성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헬라 문명에 대해서 아주 익숙했어요. 어디를 가든지 외국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빌립보에 들어가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구나 딱 느껴가지고 빌립보를 전하려면 여기를 이해를 해야 되겠구나 다른 문화권 다른 삶을 만난다면 이해를 해야 되자나요. 내가 살아온 경험이 나한테는 너무 기가 막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나의 경험으로 막 얘기를 하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웃고, 울고, 고통 당하고 하시면서 같이 사셨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리는 거자나요.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서는 수일을 유하는 시간이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수일을 유하다가 바로 디아트리보인데, 맡겨 주신 사명의 자리에 딱 앉아서 윤이 나도록 비비고 문지르는 게 디아트리보라고 그랬자나요. 어떤 자리든 주께서 맡기신 자리면 떠나지 않고 잘 지켜야지 왜 이런 곳에 보냈나 그러지 마시고 그곳이 보내신 자리라면 우리는 잘 닦고 비비고 문지르면서 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도리어 시간을 아끼는 직행의 비결이 되는 거예요.
[적용]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목장에서, 직장에서 수일을 유하며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비비고 문지르고 있습니까? 나와 너무 문화가 다르다고 뒷담화하며 욕하고 있습니까?
3. 기도하니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13-14절)
바울은 무엇보다도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을 거예요. 알렉산더 대왕처럼 보이는 마게도냐 사람 한 명이 우리를 도우라고 했는데 빌립보에 와서 보니까 뭐가 보이냐면 로마의 권세만 밝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위축이 되고 바울과 동역자들이 도울 수 있어 보이는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기도를 했지만 우리는 기도를 또 공동체와 같이 좀 하고 싶자나요. 늘 바울은 기도할 너희와 우리에게 기도 요청을 하는 거를 우리는 서신서를 통해서 많이 읽었자나요. 수일을 기다리면서 연구를 해보니까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많지를 않아서 회당이 없는 거예요. 그럼 여기는 왜 유대인이 지금 없는가? 우리가 얼마 전에 읽었던 헤롯 아그립바가 충이 먹어 죽은 후에 유대인 핍박이 엄청 일어났자나요. 로마와 유대인의 관계가 악화됐는데 여기가 로마 직할시자나요. 리틀 로마. 그러니까 유대인 추방 명령을 당연히 내렸고 빌립보에는 남자 유대인이 없는 상태였어요. 회당을 세우려면 유대인 남자가 10명은 있어야 돼요. 그래서 회당이 없는데 유대인들한테는 회당 설립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손을 씻고 정결례를 행해야 되기 때문에 기도처를 늘 강가에 마련해서 모이고는 했어요. 마침 그곳에 여인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데 그들에게 드디어 처음으로 바울은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지금 다 직행하면서 갔는데 복음을 전하려면 그 사람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일을 유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그런데 알렉산더처럼 영향을 행사할 거 같은 왕 같은 사람을 만나야 되는데 강가에 모여 예배 드리는 소수의 여자를 만나게 되는 거예요. 진짜 화려한 여자의 모습도 아니고 시골의 강가에 모여서 기도하는데 연구를 했으니까 그들의 눈높이와 언어, 문화,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구원을 생각하면 연구를 하셔야 돼요. 바울이 깨달은 것은 부모가 없는 고아에게 부모의 사랑을 주제로 복음을 전해서는 안돼죠. 자녀를 잃어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자신의 자녀를 예를 들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정말 상대방의 문화를 진짜 모르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약재료가 이때 빛을 딱 발하는 거죠. 바울도 고난으로 제압을 했을 거 같아요. 중심에 자기는 이제 스데반을 죽인 살인자이고 죄인 중의 괴수고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됐는지 복음을 전하니까, 아브라함 우상쟁이였고 야곱도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그렇게 쭉 내려왔는데 세상에 그 사울 가문의 베냐민 지파에서 나온 바울이다. 이런 얘기를 아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 앉아서 말을 전했자나요. 앉아서 남자가 여자들 놓고 얘기를 하다보니까 거기 필요한 얘기가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또 쓸 수 없는 얘기가 있었을 거를 생각을 하는데 왜냐하면 이 루디아가 너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했을까 생각을 해 보니까 나는 아내와 이 선교 사역에 영육으로 같이 할 수 없었고, 아내가 무섭고, 내가 예수 믿고 나서 얼마나 세상적으로 보이기에는 꼬이는 일 밖에 없는지 모른다. 돌에 맞고. 그런데 남편이 없는 루디아가 얼마나 공감을 하며 들었겠어요. 그런데 이런 얘기는 또 무서워서 성경에 못 쓰는거야. 아내가 읽을까봐. 식구들 얘기가 없자나요. 그래서 그 연약함과 수치와 죄패를 간증했을 거예요. 눈물을 겪은 자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고, 왜냐하면 그 여자들하고 여기 앉아서 얘기했다고 그러자나요. 서서 설교할 때는 그런 얘기가 안나와요. 철푸덕 앉으니까 바울도 썰을 푸시는 거죠. 그래서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고 그래서 서로 맞았는 거 같아요.
자기 눈물의 간증을 가지고 했을 때 마음을 열게 되자나요. 아웃 리치 갔을 때 우리 아픔을 간증하면 문화가 달라도 아프리카 교도소에서도 놀라서 듣더라고요. 우리의 약재료와 아픔을 십자가 앞에 해석하고 전할 때 주께서 다른 문화권인 한 사람의 마음을 영시는 거예요. 문화권은 꼭 나라가 다른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예요.
[적용] 말 못하는 내 아픔과 연약함은 무엇입니까?
말 못하는 내 아픔과 연약함으로 인해서 내가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전하는 이 말씀을 루디아가 미완료로 계속 듣고 듣고 또 들은 거예요. 아니 들렸어요. 그런데 다른 여자들은그렇게 편안하게 얘기를 해 주는데도 안 들리는 거에요. 바로 이 루디아 한 사람이 성령의 직행이 종착점인 거예요. 다른 여자들은 환경이 안 좋아도 그 여자한테는 안 들려요. 믿음은 선물이죠 순풍으로 시작했다고 전도가 척척 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빌립보로 왔다고 엄청난 사역의 열매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게 성령이 직행이 아니고요. 바울이 만나는 사람은 화려한 군인도 아니고 도시 여자도 아니고 그 당시 숫자에 치지도 않았던 여인인데, 게다가 이방인, 게다가 과부, 게다가 여자가 돈 벌어먹고 사는, 낯선 땅에 돈 벌로 오는 자주장사였죠. 그런데 이 여인을 어떻게 만나게 했냐면 여전한 방식으로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러 나온 여자였던 거예요. 여전한 방식으로. 그녀는 돈은 벌었지만 비단 치마 속의 넝마 같은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교회는 나가는 경건한 인생이나 주님은 만나지 못한. 말씀이 꽂혔어요. 곤고하니까. 마음이 열렸어요. 진짜 바울이 루디아를 만났어요. 말씀이 들리니까 마음을 여셨어요. 그러면 바울의 말을 따르게 되는 거죠. 루디아는 또 생각하지 못한 한 사람이에요. 루스드라에서는 생각지 못한 어린 혼혈아인 디모데를 만났는데 바울이 만나는 한 사람은 늘 이런 사람들인 거예요. 그 대단한 유대인들 중에는 하나도 못 만나고.
[적용]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이 안 들려서 입니까? 사람이 싫어서입니까? 누구의 마음이 열리길 가장 고대하시나요?
4. 동역자를 허락하십니다. (15절)
말씀이 들리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집이 열려요. 그러니까 우리 목장 예배 처소로 내기 싫은 것은 여러분들이 마음이 안 열렸고, 그건 말씀이 안 들렸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직행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세상 직행만 생각하니까 그런데 마음이 열리니까 루디아와 그와 그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루디아로 인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됐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여리고 기생 라합 한 사람의 결단과 희생으로 빨간 줄을 내린 그 집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듯이 루디아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집의 모두가 세례를 받고 그 집이 열려 빌립보 교회가 되는 거예요. 지금 한 사람이 너무 너무 중요한 거예요. 말씀이 들리면 우리가 이렇게 집이 열리고 말을 듣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목장의 처방에 순종하게 되는 거예요. 집이 예배의 처소로 열린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열렸나 안 열렸나 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집안 식구 전체가 믿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루디아가 바울 일행을 자기 자기 집에 머물도록 강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숙소와 생계를 다 책임지겠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거절을 했죠. 그러니까 강권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죠. 바울은 텐트메이커하면서 누구한테 요청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직 빌립보에서는 신뢰 관계가 허락됐는지 여기에서는 받아들이죠. 그런데 강권하는 이유가 중요해요. 여기 유하라는 거하다는 뜻이 디아트리보하고는 다릅니다. 바울과 함께 주 믿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에 함께 참여하는 동역자가 되겠다. 굉장히 신분이 달라졌다 이거예요. 사실 타지에서 온 남자 4명을 자기 집에 들이는 것은 여자인 루디아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자나요. 아마도 일대일이 아니고 일대사니까 부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부탁을 받더라도 피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일인데 오히려 강권을 하면서 부탁을 했어요. 그 집에 머물게 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직행은 곤고한 한 영혼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집이 열려서 말씀의 동역자로 세워지는데까지 나갑니다.
참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아시아에 살던 루디아를 유럽에서 만나게 됐다는 거예요. 거절하심에 순종을 하니까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보면 만날 사람을 다 만나게 하시는 거예요. 너무 가고 싶은 아시아였는데,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그렇게 직행하며 나아가니까 거절을 받았는데 아시아에서 살던 루디아를 지금 유럽에서 만나게 하시는 거예요. 내 자녀, 내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달려갈 때 내가 보고싶은 사람을 그 집에서 만나는 거에요. 내 자녀의 심령과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죠. 그리고 그 천국에서 보고픈 얼굴들을 만날 것이라는 하늘 소망이 확실해지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이 장소, 이 시간 이것만 고집하니까 슬픈건데 빌립보서 1장 5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죠.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첫 날이 루디아가 집 연 날이고 이제는 3차 여행 끝나고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6절에는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먼 이방 땅에 와서 장사를 하며 온갖 고난을 겪다가 인생을 마칠 그 집이 복음으로 인해 성령의 그 집이 되고, 바울과 함께 이 위대한 사명을 이룬 빌립보 교회가 되었고, 이 일을 예수께서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거예요. 목장으로, 예배 처소로 말씀이 들려서 우리 집을 열고 성도들을 맞이한다면 우리 집이 라합처럼 가나안의 길목을 열고 유럽의 포문을 열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교회가 되고 빌립보 교회가 되며 이 가정에 속한 모든 이들이 세례를 받고 구원의 기쁨에 들어간다고 오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만나지 못한 그 보고 싶은 사람 또한 이 집, 여기가 교회자나요. 이 땅에서 못 만난다고 해도 이것이 교회고 공동체고 결국은 영원한 집에서 다 만나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아시아에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사람을 유럽에 와서 만나는 것처럼 우리가 천국에서 내가 기도했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그냥 내 자녀 때문에 그러지 말고 다른 자녀 위해서 힘쓰면 언제나 보고픈 얼굴들을 만나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바다에서의 순풍에 이어 만남에서의 순풍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어요.
[적용] 우리 집은 예배의 처소로 첫날부터 지금까지 활짝 열려 있나요? 여러분은 교회의 동역자인가요? 방관자인가요? 훼방자인가요? 복음의 동역자로서 도와야 할 지체는 누굽니까?
기도제목
보련
만물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큐티로 채워져서 내면이 성숙하여 위로 받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양육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인생의 방황이 그치고 살아 계신 예수님 만나 참 평강 누릴 수 있도록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 주시고 발걸음을 계수 하셔서 성령님 동행하여 주시도록
다인
지속적으로 배가 아파서 일과 예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픈 마음을 위로하시고 치료하셔서 예배가 회복 될 수 있도록
예선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한주 잘 살아 내도록
지금의 자리에서 윤이 나게 반짝반짝하게 디아트리보 하도록
지화
나와 상대방에게 방관자가 아니라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여서 회개하고 인격적인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돌발성 난청 잘 치료받고 회복되어서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결혼 준비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의 예수님 만나는 것임을 알고 매일 큐티로 회개하고 약속의 말씀 붙잡을 수 있도록
현경
드로아같은 현재 상항에서 해결이 아니라 말씀으로 해석되어 그 한사람을 찾아내도록
시마다 때마다 직장에서 큰 어려움이 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켜 주시고 모든 방해로부터 보호하셔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편히 자고 쉴 수 있도록
은우
나의 교만과 가지쳐야 하는 것들에 성령님 직행하셔서 회개하고 불쌍히 여김 받도록
붙여 준 지체들 위해서 기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