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07일
사도행전 16장
6절~10절
'성령의 환상'
'김양재 목사님'
6절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절 -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절 -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절 - 밤에 환상을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절 -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굉장히 많은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환상은 신기루 라는걸 알게 하시고
성령의 환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그동안 가정에서 목장에서 성령의 동역자 되고있습니까?
동역자의 원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창조부터 시작해서 각 사람의 구속까지
늘 함께 이루는 동역자를 이루어 구속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디모데를 동역자를 얻은 바울과 실라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를 비롯해 갈라디아 남부의 교회를 계속해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요. 굉장한 심방의 열매가 있는거예요.
바울의 복음은 율법과 할례로 구원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르는
죄사함을 받고 간단한 복음과 최소한의 규례를 지키라고 했는데 너무 열매가 많아서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이 파워풀 한지 남,녀 둘이 차타지 말고, 밥먹지 말라고, 그 말씀을 듣고 이혼을 생각했던 타교회에 성도님들께서
모두 이혼을 접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복음이 살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역을 잘하는데 이제는
심방이 1차 전도여행에 행로를 고민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팀들을 환상으로 인도하십니다.
특별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총 출동하시어 바울을 인도합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특별한 인도하심을 보여주시며 이것이 성령의 환상입니다.
성경으로 해석되고 그 당시 신약성경이 없었습니다. 바울의 갈길을 환상으로 인도하십니다.
환상은 신약에 12번이 나오는데 사도행전에 11번이 쓰였어요.
오늘은 성령의 환상에 대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삼위 일체가 다 등장 하셨거든요.
첫 번째, 성령 하나님이 효과적인 거절로 인도하십니다. (6절)
effective power
갈라디아 남부 심방을 마치고 바울이 잘 닦인 로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더 나아가려했습니다.
서쪽에서 약 400km를 두 주일정도 부지런히 걸어가면 아시아의 최대 도시인 아시아의 강남 에베소가 있었습니다.
아시아가 동일어가 강남이라고 하는 에베소가 중심지 였습니다. 지도를 봅니다.
소아시아의 비시디아 안디옥 거기에서 에베소로 가려고 합니다.
보이십니까? 보이시지죠?
당연히 그곳에는 디아스포라인 유대인이 살고있었고 유대인의 회당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애당초 에베소에서 전도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바울의 아시아 전도을 계획을 못하게 하십니다.
거절을 하십니다. 말씀 전하는 일에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계속해야 합니다.
지속해야 할 사명 아닙니까? 그런데 성령님께서 거절 하시다니 바울이 이상한거죠.
여기서 못하게 하시다는 것은
강력히 반대하다 거절하다 라는 의미로 매우 강력한 의미로 쓰여진 단어입니다.
성령께서 강력히 반대하신것을 볼때에 성령께서는 바울을 깨닫게 하시는 분명한 아시아의 전도 사역을 막으심이 분명합니다.
큐티를 왜 하십니까? 성경에 그 이야기가 안나옵니다. 왜 나온지 모릅니다.
그것을 성경이 침묵하고 있어요.
제가 큐티 할때는 그 침묵의 뜻을 찾아내다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나타난 결론을 가지고 큐티를 했습니다.
문자적으로 큐티하면은 성령님께서 막으시면 기도하면서 떠나면 됩니다.
도덕과 율법으로 안읽어집니다. 성경이 침묵하는데 왜 성경을 막았을까? 생각합니다.
지난주 에베소 사진을 봤습니다. 거기 아데미 여신들 화려한 도시이다.
지금으로 보면 바닥에 대리석이 쫙 깔렸고, 우상이 대단합니다.
그 대단한 에베소를 전도하러 가는데에베소가 처음 가려는 지역인데 막 따라나선
어린 혼혈아 디모데와 초보의 길을 걷고 있는선교팀에게는 실라하고 그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이 에베소입니다.
그동안 1차선교여행을 돌아보면 이제는 새로 시작하는 선교인데 처음부터 너무 강적을 만나면은 시작도 못할 수가 있어요.
더군다나 바나바가 떠나고 난후에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혼혈족인 디모데를 데리고 가면은 나이도 어린데
이것이 아닌거 같아 깨달아집니다. 디모데를 호호 불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된것은 수많은 사건을 겪었습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모든 시험을 감담합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배신도 당하고 돌로 죽임을 당할뻔도 한 바울입니다.
이런가운데서 복음의 전사가 되었는데요. 지금 디모데가 무엇을 알겠나요?
디모데는 이런 사건들을 안겪어봤습니다.
시작도 안하고 선교팀이 돌아갈수도 있겠다고, 선교자체가 안될수가 있다고 생각했을수가 있을거예요.
왜냐하면은 이것이 디모데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한영혼을 주목하게 하니까 강력하게 성령님이
막으신 것을 깨달을수 있을꺼라 생각해요.
한 영혼에 주목하는 바울입니다.
항상 큐티는 그 당시로 돌아가서 생각하라입니다. 결과로 하는것이 아닙니다.
되어지는 일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 당시 저자는 생각하여 큐티를 하는것입니다.
후에 2차 전도 여행 끝나고 훈련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일꾼들이 준비되어졌을때 3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에서 2년이나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아시아를 무조건 안가게 하는것이 아닙니다.
디모데가 처음 따라 나섭니다. 위축 될수가 있습니다.
위축될까 내놓고 하기도 어려웠을것 같아요.
바울은 '디모데 때문에 에베소에 가면 안됩니다. 에베소에서 선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내놓고 하기 어려웠을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그런말이 없습니다. 침묵한것 같고 침묵입니다. 그래서 아예 기록 자체가 없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십자가 지혜이며 지혜는 타이밍이듯이 우리는 내 옆에 연약한 자들 위해 말씀을 전하지 않고 끝까지는
아니고 전하지 않고 기다릴 때도 있어야 합니다.
지난주 설교에 피해자 인내가 가해자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가해자가 용서를 강요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지난주 김성우 목사님 설교 후 어떤분이 저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을 양해해야 하기 위해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적용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폭력과 강간을 8살에서 12살까지 당했습니다.
성폭력과 강간을 친아버지께 당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파괴하는
친족 성폭력입니다.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죄악중에 소름끼치는 죄악입니다.
죄송해요 쓰여진 대로 읽어드릴게요.
정말 괴물들이 사이코패스가 아니고 평상시 멀쩡히 정상인처럼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만만한 친딸에게 그런 구역질 나는 범죄를 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아닌 괴물들을 용서할수 있나요?
나의 정체성이 얼마나 혼동으로 처절하게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는지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릅니다.
친아빠 라는 사람이 가족이니까 용서해야 한다고 원룸에 찾아와서 문을 강제로 문을 뜯어서 칩입한다고
소동을 피우셔서 저는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 충격, 분노, 생색은 지금도 생생해서 고통스러운 기억입니다.
용서해야 한다고 하시니 저는 충격과 분노와 생색이 납니다.
어떻게 용서하라는 것을 용서를 하라고 하는것을 강제로 용서를 하라고 협박할수 있죠?
어떻게 자녀들의 책무입니까?
이렇게 편지를 써주셨는데 정말 외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편지로 외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너무 마음이 정말 아픕니다.
이것이 너무 힘든일이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의 총 출동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장 힘든일이기 때문에 용서한다는것이 동성애가 돌아온다는 만큼 어렵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됩니다. 생각보다 이런분들이 많아요.
우리들교회는 이런것들을 오픈하니까 정말 많이 힘든일이예요.
이런일을 당하고 나서 용서하기 조차 어려운것입니다. 용서 하기조차도 어렵습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면죄부가 아닌 피해자의 영혼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용서는 가해자가 부모든지 배우자든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요 하는것이 아닙니다.
가해자가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가해자 라는것을 깨달으면 그 다음에는 피해자가 용서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당신은 나를 용서해야됩니다' 라고 가해자가 감히 말할수 없습니다.
'너가 예수 믿는데 용서해야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해자가 하면 안됩니다.
성령이 효과적으로 거절하게 하십니다.
그때까지 성령이 나에게 말씀을 못하시게 한다면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성령이 말씀을 못하게
하신다면 성령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구원을 성령이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인도하셔서
서로에게 거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피해자는 거절을 겪어봤고,
가해자는 후에 예수를 믿었어도
거절을 계속 경험을 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거절은 성령님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인도하시는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피해자도 이미 거절감을 맛보았고 가해자도 피해자에게 거절감을 맛보았습니다.
예수 믿어도 거절감을 서로 맛봅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도 형들과 화해하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결국 성령님은 항상 우리를 효과적으로 돕는데 아시아 전도가 가장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깨달았습니다. 디모데랑 갈데가 아닙니다.
무조건 가려고 했는데 우리는 선교를 갈때에 배경이랑 이런것을 알고 가야합니다.
무조건 가는것이 아닙니다.
적용
아직도 연약한 지체 앞에서 말씀을 멈추고 잠시 기다려줘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용서와 사랑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피해자인 연약한 그들도 가해자인 나도 효과적인 거절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거절을 서로 맛봄으로서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눔이 올라왔습니다.
큐티가 몸에 베지 않은 아내가 남편이 매일 큐티를 하자고 하니까 큐티가 끝나고 보상으로
고스톱을 보상으로 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처음에는 참 한심하게 여겼는데 고스톱은 비본질이니까
그래서 해주기로 했습니다. 적용을 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즐겁게 큐티를 하고 있다는 나눔을 읽었습니다.
아내는 오직 고스톱을 한다는 생각에 큐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것도 다 옳은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후에 바뀌시겠죠? 빨리 바뀌시길 바랍니다.
고스톱은 노름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노름하기 때문에
우리 시댁의 가훈이 노름하지 말라 가 있더라구요.
오늘 여러분이 어기시면 되겠어요? 이제 빨리 끊으시기를 바랍니다.
effective power 첫 번째가 성령이 효과적으로 막았다면
두 번째, 낮아지신 성자 예수님의 영으로 거절하십니다. (6절 하반절)
바울은 성령님의 거절에 대해서 성령님께 묻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말라고 하니까 서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주저없이 북쪽으로 돌리게하십니다.
향하게 하였습니다. 6절 하반절 입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삼위 하나님 성령이 나왔고 예수님의 영이 나왔습니다.
북쪽을 지나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면 무시아 지역이 나옵니다.
지도를 보실까요?
소아시의 각주인 아시아 갈라디아 비두니아와 갑바도기아 등등 나오죠?
지방으로는 드로와 무시아와 부르기아 등이 보이시죠?
부르기아와 무시아의 경계에 이르러 바울은 계속 북진해서 비두니아에 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150km를 더가면은 비두니아의 중심부에 이를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니코메디아와 니케아라는 두 개의 대도시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회당을 중심으로한 유대인 공동체도 있었구요.
에베소에서 펼치지 못한 계혁을 여기에서 개혁이라기 보다도 계획을
자기의 계획을 이룰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이번에도 바울의 계획을 거절합니다.
이렇게 애쓰는 바울의 계획을 거절하십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세요.
아시아에 이어 비두니아까지 남쪽으로 북쪽으로 다른일도 아니고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이
그냥 성령님 예수님이 전부다 막으신거예요.
그런데 성령은 여기에서 특별히 예수의 영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러니까 전도 계획을 두 번이나 거절을 당하면서 바울은 띵크를 하면 항상 생각을 하잖아요.
예수님을 생각했던것 같아요.
두 번의 전도의 영이 거절합니다. 예수를 생각합니다.
유대인회당 중심으로 유대인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계획을 여기서 이룰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습니다.
주님은 이번에도 바울의 계획을 애쓰는 바울의 계획을 거절하십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다른일도 아니고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계획이그냥 성령님 예수님이 전부다 막으신것입니다.
성령을 특별히 여긴 예수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전도 계획을 두 번이나 거절을 당하면서 바울이 띵크를 하면서
항상 생각하면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잔멸하려고 위기등등 하다가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런 바울을 예수님이 만나주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너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당시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고 거절함으로써 예수님을 박해하고 거절합니다.
예수님이 바울에 의해 거절을 당했던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만들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바울에게 거절을 당하시다니요.
이것이 얼마나 큰 낮추심인지요,
바울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 의해 거절당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만드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거절을 당하시다니요.
낮추심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죄인중에 괴수인 자신에게 거절을 당하신으로 낮추신 것에 비하면 자신이 거절을
당했다는 것은 그 거절은 아무것도 아님이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생각하면은 구속사적으로 생각합니다.
내 삶에서 순종합니다.
성경을 깊이보면 한가지 순종하면은 그 한가지가 깨달아집니다.
순종을 해야지 깨달아 집니다,
저의 경험입니다.
바울은 이후에 빌립보서 2장 8절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두 번 거절을 당하며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했기에
특별히 예수의 영이 거절 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때문에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니까 바울도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적용을 합니다.
8절 -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갑니다. 내려갔다는것은 해변가입니다.
내려갔을수도 있지만
지도를 다시 보실까요?
소아시아의 각주 아시아 갈라디아 비두니아 갑바도기아
지방 다시 이건 굉장히 지도가 중요한것 같아서 여러분들 좀 머릿속에 익히라고 드로아가 있고
무시아가 있고 브루기아 다 보이시죠?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갔습니다.
지도를 보면 굉장히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건 굉장히 지도가 중요한것 같아서 머릿속에 여러분들 익히라고 드로아 있고 무시아 있고 브루기아 다 보이시죠?
무시아 통과해서 서쪽으로 가면은 해안지대인 드로아가 보이시죠?
내려간다고 하지만 이렇게 영적인 의미로 내려갔다는 의미도 있는것 같아요.
계획이 막히는 일을 두번이나 겪고 화를 내거나, 포기하려고 '왜 내 일을 막는거야?
더러워. 안해. 안가. 포기하려고 하는것.' '내일이 왜 막히는거야' 라고 하는것은
자기의계획이니까 스스로 올라가려는것입니다.
'사방이 막히니까 안살아. 안가. 못가. 두 번이나 참았어.' 합니다.
항상 정해주신 경계대로 주어진 사명대로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나아가려고 하는것이 낮아지신
예수님을 따라 드로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영이 막았잖아요.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들어가지 않은 바울의 순종을 깊이 생각하면은예수님을 따라 낮아진 바울을 볼수가 있습니다.
아시아 비두니아 좀 더 깊이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낮아진 바울의 적용은 무엇일까요?
애썼는데 무엇으로 낮아지는 적용을 했나요?
다니고 지나치고 예수의 영이 낮아지니 막은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생각해봅니다.
성경에 이유가 기록안이 안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아시아와 비두니아가 함께 나오는 이유 딱 한번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2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하노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지도를 다시 보시면 계속 똑같은것을 보고 있는데
소아시아에서도 똑같은것을 보고 있는데요.
베드로가 자기 형제 지체들에게 편지를 썼는데본도 비두니아와 갑바도기아입니다.
베드로가 편지 보내는 지역이 1차 전도여행을 다닌 토로스 산맥 지역 주변에
남 갈라디아를 제외한 소아시아 일대입니다.
베드로가 이지역에서 전도했다는 내용은 성경에 안나오지만 없지만
이 편지로 이 넓은 지역의 흩어진 오순절때 설교하는
디아스포라 설교로 이편지로 미뤄볼때 흩어진 교회들을 직관적 사고로 알고 있는것입니다.
직접 보지는 못햇어도 수석 사도 베드로의 인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에 관해 중요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5장 19절~20절 말씀에는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라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 이야기가 무엇이냐면 많은 많은 유대인이 살았던
아시아와 비두니아에는 바울의 전도 이전에 이미 복음이 전해져 있었어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5000명 돌아왔는데, 다 흩어졌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베드로가 최고의 사도였습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하다 보니까 지금 아시아와 비두니아에게 편지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요.
쉽게말하면 여기는 베드로 나와바리라 이것입니다. 베드로 구역입니다.
아시아 전도를 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은 이것을 막기가 참 힘들었지만은
바울이 전도할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뜻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면은가뜩이나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유대인의 사도인 베드로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사이에서
경쟁 한듯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이야기들을 성경에 쓸수 있었겠습니까?
하늘같이 섬기는 여기는 베드로 사도의 나와바리 인데요.
이쪽은 베드로가 잡아서 할수 있는 곳입니다. 라고 성령의 깨달음이 왔겠죠.
그러나 2차때는 에베소가 남의터 라고 하면은
3차때는 가서 가르친곳이 그때는 베드로하고 긴장관계가
해소 할수 있었고 때에 따라서 남의터 내터가 바뀔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가지 않은 것은 순종임과 동시에 아주 낮아지는 적용입니다.
2차때 남의 터 3차때 가르칩니다.
주님이 정해주신 경계를 지키면서 6절에서는 디모데를 배려했고, 7절에서는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했죠.
결국 이것이 전체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일터에서 각자 맡기신 구원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정이 막힐때가 있습니다. 나는 교회 가기 싫고, 회사 가기싫고, 집에도 가기 싫고,
이 길 그만 가고 싶고, 알콜 중독자 보기 싫고, 나는 이길을 그만가고 싶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이혼을 할거라고 뒤로 돌아 가야 가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결혼 그만하고 싶어. 이 직장 그만 다니고 싶어.
새출발 할거야. 아버지 딸이 아버지를 고발했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하지만 거절의 사건은 그만 두라고 주신 사건이 아니라 낮아지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길을 따라 가라고 주신 사건입니다.
어떤 거절이라도 그것을 통해 낮아지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따라 가게 된다면 그것처럼 복이없습니다.
그야말로 거절의 복입니다. 남편이 저를 거절해 줘서 복을 받잖아요.
그때 나를 다 받아줬으면 오늘날의 내가 없는것처럼말이예요.
하여튼 큐티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면 그게 이제 거절의 복이 될수 있어요.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 때문에 여기를 안가게 생겼는데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는 지라 3인칭 복수이기 때문에
지금은 바울과 선교팀이 다 똑같이그것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은것을 깨달은것입니다.
그들은 깨달았지만 사람들에게 말할수가 없는것입니다.
베드로 사도 때문애 안가요. 이럴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Think 하고 이런것을 깨달으면 포기했겠구나. 양보했겠구나. 순종하게 됩니다.
그 다음날 구속사적으로 깨달으면 순종과 적용을 해야지 하지만 그 다음날 깨달음을 가르치려고 하니까
그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이 애쓰셨는데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셨는데 왜 허락하지 않음을 아시겠나요?
약간 이해가 되시나요?
설득이 되어야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설득이 안되면 무조건 십일조를 해야지 복받아 안되는 것입니다,
왜 십일조 하는 것입니까? 말씀으로 설득해야지 되는것입니다.
저도 젊었을때에 남편이 거절해 줘서 이렇게 목회를 하게되었습니다.
큐티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면서 거절의 복이 될수가 있습니다.
젊었을때에 30대때 혼자가 되었었는데,
어찌하여 30대때 젊었을때 그때 목회를 하지 않게 하셨을까,
그때는 목사와 관계가 없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자 목사 안수 주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불같은 천민같다고 할 생각이 없는것입니다.
그러니까 날보고 신학을 하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를 아무도 안써줬습니다.
나중에 할수 없이 사람들이 모여서 50세가 되어서 신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전도사의 길이 다 막혔습니다. 교회에서는 저를 전도사를 써주지 않았습니다.
저의 소원은 파트 전도사와 협동 전도사만 해도 너무 좋을것 같았는데 주중에 큐티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미 믿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 구원입니다.
이왕이면 주일에 불신자를 만나고
싶은데 저는 불신자들에 대한 엄청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50이 될 때까지 막으시더라구요.
저는 그래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늙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영어도 못합니다. 컴퓨터, 운전 다 못합니다.
할줄아는것이 없습니다.
행정과 컴퓨터를 모르는데 어떻게 목회를 하겠어요?
비전교회에 들어가서 다른 사역은 교회가 하고 큐티만 오로지 큐티만 사역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막혔습니다.
어려서부터 막혀서 어머니와 시어머니 등등 목회도 다 막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짜 막히는것 뿐입니다.
좋은일을 하는것인데 영적인 직분도 막히는가
바나바와 바울이 다툰것도 오직 구원 때문입니다.
오직 구원때문에 디모데를 배려하고 베드로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서 아시아 비두니아는 베드로의 구역입니다.
남의 터입니다.
우러러 보는 베드로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서 빈손을 들고 떠나는것입니다.
구원때문에요. 진짜 짧은 인생입니다. 아무 이해타산이 없이 그런말을 할 수가 없어서 침묵합니다.
모든 전도지를 내버려 두고 빈손을 들고 떠날 수 있는것이 구원 때문입니다.
진짜 짧은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런말을 성경에 적을수 없어서 침묵을 했지만 바울과 선교팀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기록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왜 떠났는지 알았죠?
성경 구절로 이갸기를 해주었잖아요.
그죠?
여기에서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은지라 는 주어의 3인칭 복수의 이 선교팀들은 다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글로는 쓰지 않고 입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목회도 선교도 목회도 내 터 남의 터 분간 못해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모든 일을 지금 막으신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가지고 큐티를 하니까 성경에 안나오니까 막혔으면 믿음으로 나아가면 된다 이러는데
큐티는그 당시의 이유를 찾는것으로 저자의 입장으로 계속 생각하고 뜻을 찾는 것이 큐티입니다.
그 당시 어땠을까를 생각해 봐야지가 큐티입니다.
제대로 큐티하는것은 성령의 환상을 보는것입니다.
모든일이 막혔다면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목사님 혼자서 스토리 쓰시네 생각하나요?
아니면 오 맞다 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강단에 등단하는 순간 여러분은 어렵겠구나. 골치 아프기 시작하네. 합니까?
고정관념입니다. 그동안 너무 좋았는데 그죠?
적용
더 낮아지기 싫어 그만두고 싶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직장, 자녀 부모자식간의 도리인가 남편 아내 부하 하기도 싫고 따지지 싫어서
이혼입니까 무엇입니까?
돌아가고 싶은 동쪽은 어디입니까? 이혼입니까? 무엇입니까?
바울은 지금 서쪽으로 서있는데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따르기를 얼마나 원하십니까?
예수의 영이 낮아짐으로 보이심으로 바울을 사울을 효과적인 거절로 돕는것은
성령님의 좋은 일로만 돕는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거절로 인도하십니다.
제가 막히고 막혀서 성경을 보고 이것을 깨달아요. 이것을 이걸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요 이미 몇십년 전에
사도행전 할때에 이렇게 강의를 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석성경에 없었습니다.
그런걸 깨달으면 바울이이렇게 해서 조용히 떠났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남편한테 순종이 잘되고 시댁에 잘 머물게 되고,
적용이잘되니까 그 다음에 순종을 하니까 또 한가지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한가지 순종을해야 성경이 열리는거예요.
공부로 가르치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8절)
이 경륜은 마지막 결론이 우리가 우리 공동체가 한사람의 구원을 돕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결론은 삼위 하나님의 결론은 한사람의 구원을 돕는것입니다.
공동체가 한사람의 구원을 돕는것이 결론입니다.
8절 - 드로아로 예수의 영으로 낮아져서 들어갑니다.
'지나는'이란 지나쳤는데 라는 뜻입니다.
힘쓰고 애쓰고 계속 지나쳐서 바울이 너무 열심히 지금 이제 드로아로 예수의 영으로 낮아져서
내려갔어요. 얼마나 그동안 다니고 애쓰고 엄청난 적용으로 들어갔는데 가봤더니 갈곳이 없습니다.
드로아에 내려갔는데 바다가 기다립니다.
동쪽 북쪽 남쪽으로 다 막으십니다. 나 엄청나게 적용해서 나왔는데
나 선교 해야 하는데, 막고 막으시니까 저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 선교를 나가야 하나 애를쓰고
하는데 막으시니까 사도바울이 서 있는 곳은 사방이 막힌 선교입니다.
사도바울이 드디어 사방이 막힌 드로아입니다.
지금까지 포기하고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서 적용해서 달려왔는데 이렇게 막혔나? 싶습니다.
사도바울이 벼랑 끝에 섰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어찌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왜 막으시는가요?
길이없는것은 이세상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막다른 길이란 이말이 없습니다.
큐티를 안해서 길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막다른 길이라는것이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때 밤에 9절과 10절에 성령이 막으시고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신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감추어진 경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입니다.
Hidden Will of God. 입니다. 그것이 그러니까 엄청난 포기하고 사역입니다.
내려놓고 적용하였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이 무엇입니까?
너가 수가 많아져서 박수 받는 것이 아니고너가 가야 할 곳에서 고난 받는 한사람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그 밤에 이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 밤이 축복입니다.
더 이상 길이 없는 그 밤에 축복입니다.
고난 받는 한 사람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막힌 그 밤에 그 밤에 그 밤에 이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 밤이 축복입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야 환상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 밤에 사도바울이 환상을 보는데 어떤 환상입니까?
밤처럼 어둠이 짖게깔린 두려운 상황에서 환상이 창세기 15장 1절에는 아브라함이 두려움중에 환상으로 나타나셨고,
창세기 46장 2절에는 야곱이 이상중에 환상을 보여주시고, 오늘 바울에게 같은 단어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전혀 하나님을 하나님을 알지도 들어보지도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이방인 마게도냐 사람이 한사람이 서서 불릅니다.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부르는것도 아니고 한사람이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것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것이다. 한사람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혐오스럽고, 보기만 해도 힘들지만 그 마게도냐 사람이 서서 그 사람을 도우라고 하는것입니다.
지금까지 2차 전도를 막고 막고 막고 막아서 한사람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바울의 생각이 무너지고, 드로아는 모든것을 하나님이 막으신 땅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바다가 활짝 열린 땅이었던 것입니다.
내 생각은 오직 동쪽 북쪽 남쪽만 가려고 했는데 내 생각과 달리 바다라는
장애물을 넘어서 서쪽인 유럽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의 땅입니다. 그때 까지
우리가 할 일은 순종 순종 순종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곳이 드로아입니다.
나를 다 막으셔서 가정중수와 말씀묵상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들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순종이 우리가 할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 순종 순종 입니다.
여러 문화권을 이해하고 그러기 위해서 언어가 가능한 디모데와 실라를붙어줌에도
성령이 막아도 예수의 영이 막아도 바울은 깨닫지 못하니까 바울에게 계속 말씀하고 말씀하시고
말씀하시고 말씀하시고 말씀해도 바울이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환경과 이미지도 내 환경에서
내 눈에 보이는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한 나로 한사람으로 찾아오십니다.
1차 선교 여행때는 지역의 한계에 갇힙니다.
한 사람을 향해서 나가니 지역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나로 한계가 필요합니다. 우리들교회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태동된것이 아니라
가정중수와,말씀묵상 때문에 이제 이런 지역의 한계 없습니다.
이런 교회 한계가 애초부터 우리는 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저는 북쪽에 남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걸 막으셨습니다.
산맥의 길을 넘었는데 한사람에게 사도 바울을 보이십니다.
생각하니 도저히 길이 없다고 생각한 바다에 길을 내십니다.
사역이 아닌 사람입니다.
행사가 아닌 예배 인 것입니다.
다수가 아닌 한사람입니다.
항상 길이 없다는 사람에게 길을 내시고 살아나는 것을 보게하십니다.
오늘도 보게 하면은 딸 결혼후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를 고소하고 어머니는 이단에 속하다가 오셨습니다.
길이 없어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안들렸습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회복합니까? 예배로 회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길이 없는 사람만이 말씀이 들립니다.
길 있는 사람은 말씀이 안들립니다.
바울은 길이 없으니 환상이 보였습니다.
다 적용하고 애쓰고 힘쓰고 가고 자기 사역에 방향을 깨닫지 못합니다.
바울은 계속 이방땅을 가야 하는데 비두니아 아시아 그 유대인 그 지역만 가는것입니다.
유대인 회당만 갑니다. 베드로를 불러줍니다.
아무도 없는 이방땅에 가야 하는데 자기도 몸에 베어서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에 오면은 길을 내시고 살아나는것을 보게 하시죠.
바울에게도 길이 없는것을 마게도냐 한사람이 보이는 것입니다.
길이 없으면 예수님만 보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한사람의 환상이 보이고 난 후에 보고 사아나게 하십니다.
편지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살아난 것이라고 믿습니다.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본 뒤에 마게도냐 한 사람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그 한사람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두번이나 바울팀도 10절에 나옵니다.
바울과 실라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 글은 사도행전으로 글을 쓰고 있는 누가가 이 선교팀에 합류합니다.
끝까지 바울 그의 곁을 지내면서 누가는 의사이며 학문과 문화의 능통합니다.
누가가 저자인데 자기의 이름을 겸손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끝까지 지키면서 수행원의 역할을 합니다.
바울에게 누가를 얻은일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가 떠나도 누가 하나를 당할수가 없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과 누가복음 썼습니다. 누가는 신약의 27%를 감당하는 이사, 헬라 문학에 능통했습니다.
헬라 중심부에 들어가야 하는 바울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동역자 이방인 누가를 보내주십니다.
1차 여행에 동역자였던 바나바는 바울을 떠났지만 실라 한사람을 데리고 출발 했지만 누가가 합류 하였는데
사람이 많다고 우리가 되는것이 아니라 소도 잡고 말도 잡을 한사람을 붙여주십니다.
내가 순종하면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인 우리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를 보면 어린 혼혈아 디모데입니다.
유대인들 보기에 유대교에서 나옵니다.
실라는 이방사람이고 바울 옆에는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붙어나지 못하잖아요.
악성 루머가 돌지 않았겠어요?
바울은 어려운 사람입니다. 바나바를 내쫓고 등등 Think입니다.
제가 Think를 해도 욕을 먹다 보니까 압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총출동 하셔서 바울의 선교를 환상으로 분명히 인도하실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우리를 닮은 공동체를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적용할 공동체에 우리를 주십니다.
네 사람이 우리를 주셔서 환상에 대해서 의논하십니다.
어떤 결론을 내십니까?
마게도냐 한사람에게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으로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다 인정했습니다.
단서를 내서 인정했다는것이 고난이 말씀으로 해석이 된것입니다.
어떤 개념입니까?
경렬한 논쟁 끝에 내가 설득당했습니다.
설득한것입니다, 여러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바울을 또 설득하고 설득하고 설득하고 설득해서
사도바울의 의지와 그의 길을 내려 놓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의 열심을 누가 내려놓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것이 하나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꿈을 만들어 가시는게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동화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비전이 되고 찬양도 있습니다.
큐티가 안되고 말씀이 안들리는분들은 환상을 보고 싶어 합니다.
성령의 환상입니다. 차원이 다른 환상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말씀이 안들리면 환상을 보러 다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주신 말씀으로 사건이 해석되니 그들이 들은 말씀대로 즉시 적용합니다
곧,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적용합니다.
이해 타산이 없고 계산도 안합니다.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즉시 결정합니다.
공동체와 더불어 삶을 해석하니 저절로 즉시 적용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환상의 결론입니다.
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들교회 가는길이 힘들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계속 동요 하십니다.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한 가정만 살아나도 그 가정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교회는 한가정만 살아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단의 방해가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들교회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식구들을 구원으로 이끌라고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하고
설득당해서 저와 같이 가는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계속 거절하셨잖아요.
너무 좋은일로 거절하셨잖아요.
바울이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성령께서는 왜자꾸 거절하시나. 다른길로 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디모데 한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베드로 한사람을 생각했습니다.
한사람을 늘 생각하는 오직 구원 때문에 엄청난 복음을 전하라고 불러 놓고는 전도하고 있는데
그 거절을 하신 것이 너무 미안하신 하나님이 6절에서 10절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달려 들어서 도운것입니다.
호호 불어서 예수의 영이 성령의 거절해도 삼위 하나님이 도우시면 끝이 없는것이 도우시는것입니다.
끝이 없을 정도로 바울은 다 털립니다.
선교지에 가지 말라고 하고 이사람 저사람 구원 때문에 빈손으로 떠납니다.
모든 것의 결론은 한영혼의 외침에 귀 기울이라고 박수를 받는것이 대단한것
그리고 문제 가 아니라 한 영혼에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감추어진 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성령의 해석은 건강한 하나님의 해석입니다.
말씀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어떤 환상도 꽝입니다.
십자가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적용
계속 막혀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룬 것은 무엇입니까?
(한영혼, 일, 사역 입니까?)
하나님께 설득당하기 위해 성경을 제쳐두고 더 구하고 있는 환상이 있습니까?
환상도 사랑과 주식과 성공을 말하는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이쁘기만 하면은 결혼을 잘할것 같고, 아파트 당첨되면은 목장예배 처소를 내놓고 20평
아니고 30평 되면 목장예배 처소르 내놓는다고 합니다.
사람을 외모와 돈으로 환상을 가집니다.
도우라는 한사람 간청이 세상에 드로아를 떠나고 나서 오늘날 유럽 전도를 가져옵니다.
항상 미장원 엄마의 간청과 재수생 아이들의 간청으로 오늘날 우리들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지금도 한사람 간청에 늘 답하십니다.
못할수밖에 없을수도 있지만 지난주 한교회에 다녀왔습니다.
큐티인 천권을 구입했습니다. 일면식이 전혀 없었는데 그 교회에 갔습니다.
한영혼 구원을 받으라고 구입을 하셨습니다.
말씀밖에 결론이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아셨나 물어보니 옆집에 사시는 여의사께서 사모님께 큐티인을 선물했습니다.
사모님이 목사님에게 건내셨고 일면식도 없었던 목사님이 그 큐티인을 보고는 이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우리들교회도 모르고 아무도 전혀 들은 소식도 없는데 큐티인 소식을 보고 이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교회가 큐티인을 다샀습니다.
처음에는 온교인이 큐티인으로 큐티하기로 결단했답니다.
거기로 가봤는데 여의사 선생님이 타교인입니다.
우리들교인이 아닙니다.
큐티인으로 수없이 전도하고 정기구독을 하시고 우리들교회에 새벽기도 설교 하면서 목사님 이름을
기억하시고 알게 모르게 성령의 환상을 해석하셔서 곳곳에 우리를 도우라는 순종하는분들이 계시어 큰 도움이 되십니다.
한사람 중요합니다.
우리들교회 김자옥 집사님 목원께서 박상아집사님이 힘들어 하시니 큐티인을 드리고
자기 죄를 보라고 자기 죄를 보셔야 한다고 하셨답니다.
박상아 집사님께서는 우리들교회에 나오셨고, 말씀이 들리셨습니다.
화려한 탤런 트 박집사님이 2년 8개월의 남편의 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순수하게 집안의 살림을 하시고 본인이 은혜를 받아서 감옥에 갇힌 남편에게 큐티인을 나눠주었습니다.
지탄을 받게되니 활자루만 봐도 은혜를 받으십니다. 남편께서는 감옥에서 2년 8개월 동안 제 책을 다 읽으셨습니다.
출소한날이 어찌나 사모하시는지 수요에배에 그날 오셨습니다.
그니까 이제 우리들교회에 오셨는데 다니는지도 몰랐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저를 아는척 안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살기가 바빠서 남을 쳐다보는 여가가 없습니다.
연예인 이신데 연예인으로 안봅니다 나중에 시험이 들겠다고 하십니다.
Think 양육을 하시면서 마지막에 숙제를 잘하셨답니다.
마지막 한가지 소원이 부모님의 구원이라고 하셨습니다.
박집사님의 부모님은 굉장한 불교십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우리나라에서는 길이 없다는것을 아십니다.
곤고한 마음으로 날마다 회개하면서 예수의 증인으로 사시면서 권력이 허무하다고 전하시겠다고 그길을 가신다고 하십니다.
극동방송에서도 이번에 인터뷰를 하십니다.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 말을 못하실수 있나요?
박상아 집사님이 옆에서 랄랄라 해야 할듯합니다.
목원이 큐티인 한부를 전해준것입니다.
저는 전도도 한번을 안했는데 우리나라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이렇게까지 낮아지니 저는 우리들교회가 감당하니까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을 전도해야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곳에 큐티인 한권으로 가면은 놀라운 역사가 이번주간에 이렇게 일어납니다.
이분은 걱정도 은혜도 받아도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같이 나가야하고 마게도냐 사람이 거창하게 섰는데 와서
도우라 하면 도와야 하지 않나요? 이것이 왠일인가요?
한사람이 너무나 중요하고 이 사도바울의 6절 10절까지의 사도바울의 사역이 힘들고 어려워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출동해서 도우십니다.
오늘 이것을 결론으로 그 결론은 우리가 한 영혼을 한영혼의 외침에 귀 기울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유럽이 기다립니다.
한영혼 때문에 가면은 지경이 저절로 넓어집니다.
때로는 순종하고 포기하고 내려가야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제가 이름없는 우리들교회 목자도 아닌 평목원이 전한 큐티인 한권으로 전도 되는것이 마게도냐 사람
사는것이 달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유명한 사람이라고 전도 안합니까?
우리는 100% 죄인 아닙니까? 극동방송에서 인터뷰까지 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바울도 우리가 되었습니다.
나는 저런 사람은 싫어. 라는 말은 말도 안됩니다. 우리들교회가 감당할수 있어서 보내는 곳입니다.
내가 감당할수 있다고 우리가 되어서 우리가 기도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우리 이제 부부가 될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환상은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 수준이 높으시니 효과적인 거절로 계속 인도하십니다.
아이들도 효과적으로 거절해야지. 맨날 너가 옳다. 옳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리고 낮아지신 성자 예수님의 영으로 거절 하고 모든지 안됩니다. 너 낮아져라. 십자가져라.
안되는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면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으로 공부하고 잘먹고 잘사는 경륜이 아니고,우리가 한 사람의 구원을
도와야 하는것 성령의 환상입니다.
공부를 해도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취직을 해도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결혼을 위해서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여기다가 초점을 맞추면 여러분은 가만히 있는 유럽으로 지경이 넓어진 것입니다. 이런일이 여러분의 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 밤에 칠흙같이 어두운 그 밤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없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 밤에 유럽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 영혼의 구원의 외침에 귀 귀울이면 됩니다. 한국 여자 목회자의 그 길이 막힙니다.
똑같은 말도 내가 하면 의심합니다.
사방이 막혔는데 한영혼의 외침에 귀 기울이니 하나님은 이렇게 열매 맺게 하십니다.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주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아멘.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이번에 너무나 진짜 옆집 사람에게 하나 전해준것이 한 교회에 큐티인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교회가 살아나서 정말 놀라운 인도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한사람이 전해준 우리 60명의 간증이 들어간 것너무 놀라는 것이예요.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뭐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구요.
우리가 여러사람을 살리게 해달라고기도하시고,
이 모든 나의 인생에 삼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것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이제 우리가 연약한 디모데를 품고, 베드로의 터와 권위를 인정해서 빈손들고 떠난 바울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이해타산을 떠나서 가라하면 가고,
그래서 이 모든 것에 결론은 한 영혼의 외침을 듣게 해달라고기도하시고,
우리가 성경을 제쳐 놓고 돈, 사랑, 주식, 성공 이런 모든 것들로 환상을 버리게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정말 한영혼이 중요하다면 태아생명 보호법은 꼭 구체적으로 재정되어야 되고,
평등법은 통과되지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바울의 정말 기가막힌 이 선교 사역을 우리 하나님 막으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어떻게 말이 안나오고 그래서 삼위 하나님이 총출동 하여서 오늘 바울사도를 돕는것을 보고 있고 들었습니다.
주님 그런데 바울이 깨달았어요.
돌에 맞아서 몇 번이나 죽을뻔 하니 깨달아 졌던것 같아요.
그래서 디모데를 배려하고,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하며,
빈손들고 그 떠난 오직 구원만을 생각하는 바울의 적용을 이제 보았습니다.
날마다 눈을 뜨면 이해타산에 정말 매여서 성령이 환상이 아닌 세상의 환상을 쫓아서 이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며
전도를 해도 사람을 차별을 하고 저런 사람은 전도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들 많은데
바울이 수많은사람들 전도하고 돌에 맞아 죽을뻔 하고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스데반을 죽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때마다
이렇게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여기까지 저도 온것이 막히고 막히고 막혀서수많은 디모데 와 베드로를지나게 하시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환경이 그래서 왔지 제가 어찌 올수가 있었겠습니까
주님, 참으로 바울 사도를 생각하며천국가는 그날까지 이렇게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포기하고
성령 예수님이 효과적으로 거절하는 예수의 영으로 거절하시는보고 듣고 순종할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은 특별히 성폭력 피해 아버지 친족간에 그런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오니
성삼위 하나님 총출동 하여서 도와주시옵시고, 안수하여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만져 주셔서 위로가 될수 있도록
주여하나님의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승리 할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할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안수해 주시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그들을 괴롭혔던 모든 가해자들도 주님 찾아가셔서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이땅이 떠나가기 전에 회개하여 할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것에 한 영혼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태아생명 보호법이 재정되고
평등법이 통과되지 않는 것이오니 이 기도제목을 들어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장 기도제목]
윤지혜
- 영육간 말씀으로 회복되고 주님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 을 누릴수있기를
- 나에게 허락해주신 공동체와 지체들, 한 영혼의 구원위해 함께 나누고 잘 묻고 기도할 수 있기를
- 우선순위 잘 세우고 내 자리 잘 지킬수 있기를
김다혜
- 가족구원
- 결혼예배 통해 안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 기를.. 구원의 통로가 되길..
- 말씀을 우선순위로 놓고 사소한 감정 생각도 기도하며 품기
김자영
- 연수원 잘 다녀오고 주말 당직 잘 서길
- 새 업무 할 때 지혜 주시길
오찬미
- 학교과제 성실히할수있도록
- 말씀으로 인도받고 갈수있도록
- 하루마무리감사기도 꼭하고잘수있도록
- 동생한사람의구원을위해 낮아지신 예수님의 영과 성령 하나님의영의 거절을 잘받으면서 성령의환상을 보며가기를
탁미나
- 잠을 자야할때 잘 자고 깨어있을때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주님이 힘주시길 기도부탁드립니당
- 때에 맞게 주어진 거절과 거절감을 잘 감당해서 겸손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은실
- 화요일날 부사장님 면담때 자리 및 사건 이야기 담대함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도록
김성은
- 지금의 내 환경에서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모습으로 저도 낮아지는 모습으로 직장에서 윗질서에 역할에
순종할수 있도록
-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다음주에는 꼭 예배 참석 같이 하도록
- 신교제 신결혼 주님의 가장 선한방법으로 인도해주세요.
* 공통기도제목
신교제와 신결혼에 대한 소망갖고 잘 준비되어지고 말씀으로 인도받도록
다혜 결혼 전주라 같이 축복해주고 기도해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