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2월14일 주일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성령의 동역자
사도행전16장 1절~ 16장 5절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주님 우리가 동역자라고 말만 들어도 마음이 뛰는데 주님 우리가 진정한 성령의 동역자가 되기를 원합니다.어떻게 되는 것인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제1차 전도여행에서 수행원의 포기한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한 바울이 인정으로 생각하며 너무 매몰찬 것 같아요 독불장군처럼 보일 수 있어요 성경 전체를 보면 바울은 동역자로 귀하게 여겼어요 신학에13번이라고 동역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동역자라는 단어 자체가 바울의 단어입니다.하나님도 혼자서 일하지 않으셨잖아요 나아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셔서 일하게 하십니다.실라를 통해서 같이 갑니다.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해도동 역자가 필요합니다.디모데를 오늘 이제 발탁합니다.오늘은 성령의 동역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수행원이어야 합니다.
1절 상단입니다.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1차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출발해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교회들을 심방하며 견고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16장4절에도 나오는데41절과4절은 미완료로 쉴 새 없이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길리기아 루스드라 더베가 나옵니다.이때는 바나바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돌아셨죠 그러나 바울은 길리기아 지방에 다소가 있지만 고향에 갔다는 말이 없습니다.기쁜 소식이 복음인데 아무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할 말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겸손한 사람이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다고 하는데 바울에게 애통함으로 잠시도 힘들다고 쉬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유대인 전체가 바울을 대적하니 없었을 것 같습니다.힘쓰는 수고를 하게 하십니다.아까 말했듯이 길리기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산맥을 넘어야만 했습니다.갈라디오로 가기 위해서는 토러스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높고 험한 산맥을2개 넘어서1차 여행의 종착지였던 더베에 도착했습니다. 380킬로 이상을 걸었습니다.
거기서 다시100킬로를 더 가서 루스드라에 이릅니다.이때 실라를 데리고 다녔지만 바나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아무리 의지하지 않는다고 해도동 역자가 필요합니다.더 외로웠을 것 같아요 루스드라는 어떤 곳이죠 바나 바와 바울의 팀워크가 빛을 바랐던 곳이죠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 했잖아요.그런데 그곳에서 바울은 또 돌에 맞아죽을 뻔 했어요 열광과 비난을 너무나 징하게 받았죠사명이 아니면 오기 힘든 곳입니다.그냥 지나서 높고 험한 산맥을 두 개를 넘어서 바나바도 없는데 여기를 안 갔으면 어떻게 디모데를 만났겠습니까 말씀 인도대로 가는 것입니다. 16장부터 이어지는 누가의 표현을 보면 실라의 위치는 바나바처럼 바울과 대등한 동역자가 아니라 수행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두 사도로 불렀던 것과 같은 호칭이 없습니다.바울만 단독으로 기록을 합니다.동역자를 향한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이전에 정말 바나바를 의지했습니다.잘 들어보세요.바울과 바나바를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생각해보면 1차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바나바가 설교 한번 했다는 기록이 없어요.그러니까 설교도 안 하고 있는데 매사에 바울은 바나바를 모셔야 했을 거예요.바울이 설교는 바울 몫이잖아요 설교하라 전도하랴 배척하는 유대인 섬기느라 바빴지만 마가처럼 바나 바가 수행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바울은 바나바까지 섬기느라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앉은뱅이를 고쳐도 바나 바가 영광을 받고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연히 바울은 모든 일이 더해서 바나바까지 섬겨야 됐을 것 같습니다.그런데 그게 억지로 된 게 아니라 늘 섬기려고 했는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압도적이니 저절로 리더십이 갔잖아요.바나바가 전하면 아무도 회개가 안되고 그러니 설교한 편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바나바도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바울에게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돌아와서 이방인과 밥을 안 먹은척하는 외식 사건이 일어났어요.바나바는 이럴 때는 입을 다물고 있는 거예요 확신이 없는 거예요 바나바가 바울을 아무리 이해했어도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무슨 차이일 가요?바울은10년 이상 수고했어요 눈이 멀었었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쪽저쪽에서 인정받지 못해 무너졌고 사람이 그렇게 죽이려는 고난은 아무나 당하는 것이 아니에요. 늘 인정을 받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바울은 인정받지 못하는 거예요.같은 유대인이 죽이려고 해요 그러면서 바울에게 사람 보는 눈이 생겼어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 줄 서는 문제 아니고 구원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고난을 거치지 않으면 결정적일 때 분별이 안 돼요.
여호와를 경외하는게 지혜를 아는 거라고 하지만 머리로만 이해되고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구원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바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안타까운 사람이 일을 해야 성공합니다.그래서 전도한 곳도 돌아보자고 하고 안디옥은 머물러 싶은데 떠나고 예루살렘은 가기 싫은데 가고 구원의 열정이 없으면 못합니다.이런 것들이 원어를 안 봐도 이렇게 다 묵상이 되는 거예요.윤여정 씨 보고 어떻게 연기를 잘하냐고 하니까 아이들 데리고 살기 힘들어서 연기가 잘 된다고 합니다.눈물의 빵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그러니까 지금까지 오면서 이제 바나바를 동역자로 모시기에는 너무 바울이 힘이 들게 되는 거예요.
2차전도 여행 때 그렇다고 안 모시겠다 할 수 없죠.지금까지 제가 알려드린대로 때마다 얼마나 바나바를 신경 써야 합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예요.그렇다고 안 갈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바울에게는 전족으로 돕는 수행원이 필요합니다.이제 이해되십니까 여전히 바나바가 좋데요.나눔을 보면 말이죠.이게 너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동역을 하려면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하는데 머리를 하나여야 하는데 둘입니다 죽습니다.머리가 둘인 뱀이 있었는데 절대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머리는 하냐 여야 합니다.가정에서는 남편이 머리여야 합니다.성경적인 원리입니다.남편을 절대로 인격이 아니라 역할에 순종하는 역할을 우리가 부르짖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가정이 살아나고 있잖아요 바나바와 바울이 생각이 너무 다른 거예요.
그럼에도 지난 주일에 원어를 보니 바울은 구원의 초점으로 마가를 책임지는 생각으로 데려가고자 하지만 자기 주제를 알아 단번에 거절한 거예요.인간적으로 보니 매정한 거예요.바나바는 책임도 안 지면서 무조건 데리고 가자고 하잖아요 우리가 이런 걸 어찌 분별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잠시 뒤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책임지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기 싫어합니다.바나 바가 바울의 말을 들었으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도라고 생각했기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라섰습니다.이러니까 다투게 된 거예요 결론을 보면 바나 바는 사람들한테 너무 착해 보이지만 착한 게 악한 거라는 결론이 나옵니다.바울이 못돼 보이지만 가장 선한 것은 구원이잖아요 가장 선한 선택을 한 것이 바울이고 바나 바는 착한 것 가지고는 안됩니다.바나바는 사도에서 사라지잖아요.어찌해서 여러분은 바나바를 좋아하실 수 있어요.
바울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게 안돼 이래야지 전부 바나바를 편들고 있습니다.바울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오늘 제가 이렇게 해서 안 들릴 수 있어 요구 속사가 없으면 말씀이 안 들릴 수 있어요.목장마다 그런 분들이 있죠.유교적인 우리 문화에서는 신정적으로 바나바를 지지하게 되죠 그래서 구속사가 힘듭니다. 1+1이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이런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와야 깨달아집니다.바나 바도 안 깨달아지는 게 있으니 쉽게 설명해도 안 깨달아지고 유대인이 보면 바나바가 훌륭해 보이고 제가 욕을 먹게 됩니다.때마다 깨닫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 다시 나누어보세요
여러분은 어디서나 수행원입니까?대접 받으려는 사도입니까?
그러나 부목자들 중에서는 보고서를 쓰지 않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양육도 안 받는데 안 쓰신 분들이었어요.성령의 동역자가 되어 쓰시기 바랍니다.자기 일을 잘하는 게 수행원으로 잘하는 건지 모릅니다.직 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힘이 들지 이거라 하라 저거 하니까요
2.제자여야 합니다.
1절 중단입니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바울이 열심히 다녀서 모든 교회가 부흥했다고 해요.여기에서 그 많은 교회를 다녔는데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디모데 이야기만 있는 거예요 그 많은 방문을 능가하는 것은 디모데 제자라는 거예요 디모데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을 지닙니다.미완료입니다.오래전부터 제자로 있었다는 거예요.제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 복음의 가르침을 받을 뿐 아니라 복을 따라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자기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는 제자가 필요합니다.바나바같이 명령하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다시 그림을 그려보니까 이해가 되죠?
목자를 해본 분들은 이해가 되는 거예요 같이 옆에서 명령하는 부목자가 있으면 괴롭잖아요 역할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내가 부목사 노릇 잘하면 목자가 돼서 갚으시면 돼요 루스 드라에서 제자들이 그를 둘러쌓다고 했어요.
그 제자들 중에 디모데가 있었겠죠.모든 고난을 직접 보았습니다.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것을 본 바울이 주님의 수행원이 된 것처럼 바울이 돌에 맞은 것을 보았잖아요.삶으로 변론한 바울을 보면서 스데반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오랫동안 제자로 서있었어요
3.가정에서부터 말씀으로 양육되어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1절 하단입니다.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인데1차 여행 때 예수를 믿게 되었겠죠 그 어머니의 이름이 유니게에요.유대인인데 헬라인과 결혼했다고 해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흩어졌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결혼이 자유로웠어요 이거는 분명히 불신 결혼인 거죠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한 거죠.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반대하니 어떻게 칼을 대냐라고 한 거겠죠.그러나 할례는 행하지 못해도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쳤어요.
어머니 유대인인 유니게는 성경 지식만 가르친 것이 아닌 성경대로 살게 가르친 것 같아요.이방 땅에서 이방인 남편과 살면서 구원을 위해 삶의 본을 보여주니 따라 한 게 있었을 거예요.가정에서 양육대로 했기 때문에 결국 동역자가 되었는데 남편이 안 돌아와도 본을 보이 이는 엄마가 있으면 믿음으로서 서게 됩니다.그런데 여자가 안 믿을 때는 자녀가 믿기가 힘듭니다.한 사람의 좋은 어머니는 백 사람의 학교 선생님보다 뛰어나다고 합니다.디모데는2절에 보니 칭찬도 받아요.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믿는 자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디모데가 혼혈족이잖아요 유대인이 가장 싫어하는 게 혼혈족인데 형제들로 칭찬을 받았다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동역자의 조건인 거예요.디모데는 어쩌다 칭찬을 받은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칭찬을 받았다는 거예요 교회가 인정하고 지원할 만한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성경대로 살도록 양육을 해준 증거가 되겠습니다.하나님만 알아주면 됐지 사람에게 칭찬받는 게 인간적인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합니다.복음을 전하면서 욕도 먹어요 칭찬도 반드시 받게 되어있어요.칭찬도 욕도 같이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디모데는 루스드라 사람일 때30킬로 떨어진 이고니온에서도 평판이 좋았다는 것은 동역자로서 좋은 자격을 가졌다는 거예요.초대교회에서도 칭찬받는 자들을 택했다는 거예요.우리는 구속사는 전체를 보잖아요.어렸을 때 칭찬받다가 그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칭찬을 받았는데 육이 무너진 경험이 없어서 결론적으로 그렇게 된 겁니다.성경의 인물 구속사라는 게 이렇게 사람에 대한 인물을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거예요.좋은 평판이나 칭찬이 덕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냥 믿는 사람에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루스 드라 이 고니원에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거예요.말씀대로 하면 흥할 것은 흥하게 하고 망할 것은 망하게 합니다.우리는 원칙을 지키고 살려면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명절을 지나며 불신자나 가족에게 칭찬받을 일이 있었나요?
4.부르심에 순종하고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어머니의 좋은 양육에 믿음이 들어가 있는 디모데를 바울은 마음에 쏙 들었어요 바나바도 마가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는데 바나바는 되고 바울은 왜 안돼요?라고 하는 거죠 물론 그 대상이 전도여행이 사역을 저버렸다는 마가는 확실합니다.바울과 바나바의 태도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바나바는 마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고집했죠.
바울은 디모데가 나서면 좋겠다는 의사를 단 한 번 표현했어요.바나바는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한편 바울은 디모데의 의견에 맡겼어요.
그 결정은 한번 이야기했지만 결정은 디모데에게 맡기고 하나님에게 맡겼습니다.디모데가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순종에 대한 과정은 파송도 포함됩니다.바울도 안디옥교회에서 떠날 때 파송을 받았잖아요.디모데도 루스더라 교회에서 파송을 받습니다.바울이1차 여행을 마치가 귀환하면서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것을 기억하시나요?이러니 아 루스 드라 교회 장로들이 파송하며 안수했을 것입니다.디모데에게 예언을 주신 것 같아요.디모데가 자기가 결정한 것이에요.그리고 바울의 부르심도 있고 파송도 있고 주님이 직접 주신 은사도 있습니다.바울을 따라 나섰습니다.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발을 내딛는 순간입니다.가장 먼저 할 일은 할례를 받은 일입니다.바울이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 때문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갑자기 디모데에게 할례를 왜 행할까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유대인으로 보는 거예요 할례를 안 받았기 때문에 동역자로는 흠인 거예요.유대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방인을 위한 편지 같은 거예요.유대인들이 그렇게 비난을 하고 있는 바울이잖아요.유대인들은 바울이 정체성을 무시하고 훼손한다는 오해를 했기 때문에 할례를 행하는데 할례 가구원과 상관없다는 것을 확실히 했어요.할례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에는 아무것도 역할 못하는 것이라고 했어요.이방인들은 할례받을 필요가 없는데 유대인이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할례를 안 받아도 된다는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여 형제들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했어요본질적인 사역을 위해 비본질적인 할례를 양보한 거예요.바울은 구원 때문에 타협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할례를 행하게 했어요.바울과 실라와 디모데3사람이 성령의 부르심으로 성령의 동역자가 되어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루스드라 더베 이고니온으로 다녀가면서 그 교회뿐만 아니라 전체를 여러 성을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 이방인의4가지를 가르쳤고 다른 율법을 이방인에 가르치지 말고 괴롭히지 말라고 했어요.
이것을 지켜야 하겠기 때문에 디모데가 할례를 행해 아만 했습니다 삶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에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바울의 적용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디모데입니다.할례의 고통은 굉장한 거라고 했잖아요 그 당시에는 마취나 진통제나 항생제가 없었으니까 디모데가 당하잖아요 유대인으로서 할례의 규례를 적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순종하는 동역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부르심에 응답해서 교회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최고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자신의 세속적인 것을 포기했습니다.바울이 사역하는 동안 따라다닌 사람은 디모데였어요
바울이13통의 서신서를 썼는데 그중2통이 디모데에게 쓴 거예요.디모데는 편지를 안 쓰고 디모데서를 남겼어요.
형제나 아들이라는 표현을 썻어요. 디모데에게는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거에요. 디모데는 전도여행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녔고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했던 사람이 디모데였어요. 언제나 바울 주변에서도 왔고 함께했던 것이 디모데였습니다.
정말 디모데를 만난 것이 모든 사역 중에 중요한 일이 맞습니다.한 사람의 동역자가 없기 때문에 교회가 망하는 것입니다.이 한사람을 만나게 하신 거예요 사람이 없으면 주의 일은 되지 않는 거예요.교회가 크다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15장40-절부터4절까지 내용에서 미완료로 표현해서 쉴 새 없이 성을 다녀간다고 하니 굳건해진다고 했습니다.교회가 굳건해진다고 했습니다.전도를 하는 교회가 굳건해지는 거예요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굳건해지는 것이 아닙니다.믿음이 굳어지고 수가 더해지는데 말씀을 날마다 날마다 적용하니 수가 굳어지는 거예요.제자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공동체의 성장을 하나님이 저절로 주시고 성장이 없으면 죽은 교회입니다.우리들 교회가 너무나 성장하기 힘든 환경에서 날마다 한 절한 절 큐티하고 적용하니 성장하게 해주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적용해보세요.
가정과 일터에서 구원을 위해 양보해야 할 비본질적인 일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빼놓지 않고 반드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그 중에 말씀 묵상은 몇 번째입니까?
우리는 대단한 사람만 동역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동역자는 수행원이야 합니다.제자여야 합니다.가정에서 양육되어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부르심에 순종하여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이것이 그냥 한 사람 품고 가고 이것이 아니라 내가 말을 하며 상대방이 변화가 있어야 하고 회개를 불러일으켜야 합니다.바울이 바나바를 버렸습니까?바나바가 이해되지 않아요?여러분이 바나바니까요.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온라인 예배가 끝난 이후에 Zoom으로 목장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동안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였던 김푸른솔 형제가 오늘 우리 목장에 참여하였습니다. 환영합니다.~ 설 명절인데도 목장 진행을 이끌어준 목자 재영이형 그리고 상호 푸른솔 형제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 오늘은 zoom으로 1시간 45분 정도 나눔을 진행하였습니다.
참석인원: 양재영, 김태규, 박상호, 김푸른솔
적용질문
가정과 일터에서 구원을 위해 양보해야 할 비본질적인 일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빼놓지 않고 반드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중에 말씀 묵상은 몇 번째입니까?
재영이형
우선적으로 매일큐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기도제목으로도 올리지만 게으르다 보니까 늦잠을 자게 되고 항상 회사에서 출근을 늦게 하게 된다. 회사 직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는 간절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출근을 하게 되면 지금 회사에 일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계좌를 먼저 본다. 돈이 어디서 들어오고 나갔나 법인 카드를 얼마나 사용했나 등 이런 거를 우선적으로 반드시 화인하는 것 같다. 이 질문을 보았을때 나는 아직도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안정적인 것은 돈에서 나온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고, 구원이 우선순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2순위도 아닌 내 모습을 보게 되면서 회개가 되었다. 아직도 변함없이 믿지 않는 우리 가정과 구속사가 없는 돈이 우상이 되는 일터에서 기도나 말씀적용없이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회개가 된다. 말씀묵상이 항상 우선 순위를 두는 삶을 살고 싶다.
태규
날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은 아침 큐티와 기도이다. 물론 주말 혹은 휴일에는 아주 가끔씩 빼먹을때도 있지만 빼놓지 않고 하려고 노력한다. 큐티기도회에 들어가서 기도제목 올리는것도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빼먹지 않고 있다. 집사님들의 기도 댓글을 보며 힘든 순간을 감사히 버티며 살고 있다. 나는 타인의 구원보다는 내가 정말 두렵고 힘든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큐티하며 기도를 한다. 내 삶의 일상 중 한 부분이 되어서 습관처럼 하게 되는 것 같다. 가족과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렇게 애통하게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내 가족, 특히 동생과 내 주위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지금 내 앞에 놓여진 교제와 결혼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한 기도에만 집중을 하고 있다. 이제 3월 8일이면 파병을 가는 동생을 위해 기도를 해야하는데 그냥 간단하게만 기도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면 부끄럽고 교회를 떠난 내 동생의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는것이 현재 나의 수준과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말씀 묵상을 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구원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 것이 현재 나의 수준이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다. 타인의 구원을 위한 말씀 묵상을 하고 싶은데 주님께서 인도해주셨으면 한다.
상호
많이 반성하게 되는 질문인 것 같다. 지금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 장애 청소년들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직장이 기독교 재단이다 보니까 나나 아이들이나 교회 출석을 기본으로 한다.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로 출석을 하지 못하다보니 학생들이 말씀과 멀어지고 교회도 하나님도 안믿어요 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실에서 우리들교회 특송이나 찬송을 틀어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미없어 했지만 계속 틀어주다 보니까 관심을 가지게 되어 계속 듣게 되고 스스로 유튜브에 우리들교회를 검색해 찬송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아이는 다시 하나님을 믿어야겠어요 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이걸 보면서 내가 믿음이 부족하지만 아이들 덕분에 구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가끔 아이들이 성경에 대해 질문할 때 뻘쭘하기도 하고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내가 말씀이 너무 멀어져있고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큐티를 하면서 매일 말씀을 봐야 하는데 생각만큼 지켜지지 않아 많이 힘들다. 우선순위가 찬송이긴 하지만, 항상 나는 이거 가지고는 안되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는데 주변에서는 믿음이 있다고 말해주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지금 일하는 환경으로 인해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데 내가 과연 믿음이 있는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신앙생활을 보면 성에 차지 않고 말씀이 들리고 은혜받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푸른솔
날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은 일이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티비를 보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여자친구가 와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두번 쉬는데 그때 여자친구랑 같이 노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일을 한다. 지금 내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말씀 묵상은 나에게 많이 어렵다. 부모님은 우리들교회를 다니시는데 방에서 큐티도하시고 녹취하셔서 가족들 단톡방에 올려주신다. 부모님은 그걸 보라고 권유해주시는데 나는 그 말조차 듣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 말씀과 거리가 멀다.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말씀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는 십일조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굳이 내가 왜 교회한테 내 돈을 1/10이나 줘야하나 라는 거부감이 있는데 만원에서 오만원 정도 헌금을 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든다.
기도제목
재영
1. 매일 큐티하고 적용하기
2. 주신 공동체와 환경을 위해 기도하기
3. 규칙적인 생활 하기
4. 가족구원
상호
1. 매주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는데 본인 뿐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이 코로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2. 일상에서 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도록
3. 큐티 밀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태규
0. 제가 만날 믿음의 반려자에게 강하고 담대하며 지혜로우며 서로의 구원과 꿈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 사람의 아픔과 삶을 공감해줄 수 있는 배필이 되어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 가장이 될수 있게 주님 저를 인도해주세요.(훗날 내 배우자와 자녀에게 니가 어떤 선택을 하던 너를 지지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하나님께 내 감정을 솔직하게 내어놓고 간절히 묻는 기도를 매일 할수 있기를(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2.치매 초기증상으로 힘들어하시는 외할아버지 옆에서 걱정하시는 외할머니 두분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3.부모님이 입주하신 새 집에서 건강히 생활하실 수 있기를, 3월 8일에 동생의 해외파병이 거의 확정되었는데 파병을 준비하는 동생을 주님 지켜주시고 함께해주세요.
4.항상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시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부모님처럼 흐트러지지 않게 독립 생활할 수 있기를
5.내 주위 지인 지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6.몸 컨디션 생각하며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관리 하기 .
7.이직 가운데 인도하여 주시고 조급함과 감정적으로 회사를 선택하지 않게 인도해주세요.
8.우리 목장 지체들과 초등부 지체들 양교지체들 수련회때 만났던 지체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항상 함께해주시기를
9.이번 큐페온에서 지체들과의 만남 허락해주시고 좋은 인연 좋은 추억 쌓아갈수 있기를
10.개인작업과 피아노 레슨 연주때 어린아이 같이 즐기면서 할수 있게 즐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11.나라경기가 침체되어 많은 가정들이 힘들어하는데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가정들을 살려주시기를
12.재확산중인 코로나가 멈추고 오프라인 예배가 열릴 수 있기를
성빈
1.이번주도 의미있는 한주가 될수있도록
2.보건대 지원한것 무사히 합격할 수 있도록
3.그림공부 계속 이어나갈수있도록
성민
1. 코로나 진정되길
2. 재택근무 시에 힘내길
기도하기
하나님 오늘 온라인 예배와 목장모임을 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서 설 연휴기간인데 그래도 온라인 예배와 목장모임을 통해 서로의 삶의 나눌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한상태에서 온라인으로 밖에 지금 나눔을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 시간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 시간을 통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성령의 동역자가 될수 있게 주님 인도해주세요. 동역자가 되는 과정이 비록 험난할지라도 사도바울이 불가능했던 전도여행을 완수하였던것 처럼 우리도 그 과정 가운데 항상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갈 수 있게 주님 함께 동행하여주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세요. 코로나 확진을 막기위해 정부부처 관계자들과 질병관리청 사람들 그리고 각 지자체 공무원들이 최선을 다해 방역활동을 하고 있는데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 한사람 한사람 지켜주시고 백신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연구진들에게 지혜를 부어주셔서 하루빨리 백신이 나와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님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차별금지법과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게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설득하여주세요. 오랜시간동안 우리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의 생사를 결정하였는데 이것이 죄인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우리의 죄를 회개하니 이제는 더 이상 인권을 앞세워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념갈등으로 인해 분열되어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제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보다 존중과 배려를 해줄수 있는 사회가 될수 있게 주님 이끌어주시고 이념갈등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위로해주시고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주세요. 코로나로 인해 많은 가정이 힘들어 하고있는데 힘들어하는 가정에 찾아가주셔서 위로해주시고 하나님 곁으로 인도되어 편안함 누릴수 있게 그분들을 인도해주세요. 이제 월요일부터 한주가 시작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사역지안에서 주님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때로는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사도바울처럼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 목장이 될수 있게 매순간 마다 우리와 함께해주세요. 우리 목장 지체들 재영이형 저(태규) 성은 상호 성빈 성민 푸른솔 태규 한사람 한사람 주님 붙들어주시고 인도해주세요. 이번 큐페온 많은 지체들이 참여하여 서로에게 성령의 형제가 되어주고 나눔을 하며 서로를 잘 보듬어주고 좋은 인연이 될수 있난 만남을 허락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