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7 사도행전 15:36-41 (성령의견고함)
1.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입니다.
안디옥교회가 할례문제때문에 흔들리고있었습니다. 견고하게하다는 말랑말랑한것을 단단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흔들리지않게 튼튼한 지지대에 붙인다는것입니다.
이렇게 흔들리지않게 한것은 유다와실라가 전한 위로와 권면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을때 단단히 나타나는현상은 형제의식입니다.
1차 전도때 전도한 형제들을 다시 가서 돌아보자고 바울이 제안했습니다. 성령이 강권적으로 1차선교여행으로 보내셨지요. 2차때는 자신이 전도한 형제들을 돌아보자는 소박한마음이었습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참 견고함인것같습니다. 형제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성령의 결정을 하면 주시는 축복이 형제의식은 축복입니다. 바울에게 항상있는 형제의식은 이방인도 유대인도 전도한자도 전부형제입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진짜입니다.
바울은 전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예루살렘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허나 이모든것을 몇일만에 내려놓고 또다시 길을 가려합니다. 이것이 견고함입니다. 바울의 초점은 항상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위한 마음이 형제의식입니다. 형제의식이 없다면 돌봄이 자기의가 되서 괴로움으로 변합니다.
*적용: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 날 견고케하는것은 형제의식이라는것이 얼마나 인정됩니까?
형제의식이 없으면 가장먼저 떠나고싶고 무시가되는게 공동체입니다. 허나 이 목장에 붙어있다보면 대대손손 주시는 축복이있습니다. 내자식이 나의모습을 보고 붙어있을수있습니다. 돈주고도 못사는 말하는연습,듣는연습,경험등이 있습니다. 이 목장에 잘붙어서 훈련을 하면 세상에서도 잘 가면서 복을 받을수받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섬김을 손톱만한것도 다 기억하십니다. 청년부의 나눔의 이 알량한 나눔도 축복하셔서 결혼하면 남편.시어머니의 나눔도 들을수있고 아무도 이혼안하는 우리 청년부입니다. 목장은 위로받으러가는게 아니라 이상한걸 들으러 가는겁니다. 이걸 들어내면 못들어낼것이 없습니다.
*적용: 나는 목장에서 어떤 목원이고 어떤 목자인지 나눠보세요 끊임없이 돌보고있습니까? 돌봄을 받고있습니까?
2.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따라 떠나기로 했는데 마가를 데리고가겠다고 합니다.
마가는 부자에다 금수저에다 예수님당시에 있던 엘리트입니다. 마가가 토르스산맥앞에서 못간다며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바나바는 마가가 힘들었을테니 수치를 회복시켜주고 싶은겁니다. 헌데 바울은 딱 반대를 합니다.
바울이 판단하기에 마가의 배신은 자신들을 배신한것도있지만 이방선교에 대한 사명에 대한 배신이라고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안디옥같은 교회들이 얼마나 휘청거릴줄 아는데 이런 배신했던 흔들림있는 마가를 데려가는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바울의 단칼같은 냉정과 바나바의 맹목적인 애정이 충돌을 했습니다.
바나바의 관심은 마가보다는 자기의 체면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한번더 기회를 주는것에 관심이 있는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하는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울과 다른 차이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바나바에게서 마가를 데려가는것은 한번 데려같다 오는것뿐이지만, 바울에게 이방선교에서 데려간다는것은 마가를 데려가면 끝까지 가야하기때문이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것이고 바나바는 한번의 기회를 주자는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바나바의 원함과 바울의 분별이 충돌한것입니다.
바나바는 감성적인 혈연에 얶매여서 접근하고 바울은 이성과 구원으로 접근하니까 이 대립은 좁혀질수가 없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대한 마가의 객관적판단의 거절을 섭섭하다고 얘기하는것입니다.
인본적인 사람일수록 앞의것밖에 모릅니다. 불신교제가 안된다고 해줘야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실망을 하여서 각자 다른곳으로 갈라섭니다. 하지만 이두사람의 갈등은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에서 시작됐습니다. 베드로도 간증하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밥먹다가 유대인이 오니 이방인들과 어울리지 않는척했다고 얘기했는데 그때 바나바도 같이 외식했지 않았습니까? 이때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했는데 이 책망은 자신의 죄와 핍박했던 과거 또한고백하고 자신을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에 책망할수있는것입니다. 허나 이때 이미 섭섭했겠지요. 이런 두사람이 갈라서는 것은 옳고 그름의 도적인것이 아닙니다. 인본주의적으로 보면 한사건만보면서 봐주지않는 냉정한 바울이 틀렸습니다.
허나 이 갈라섬의 사건은 이방선교를 해야하는 바울에게 있어야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너무 외롭고 핍박받던 바울에게 바나바는 자신을 믿어줘서 교회로 불러주고 다들 살인자라 할때 편들어주고 이방선교를 함께했던 너무나 믿을만한 좋은 사람인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이방선교를 위해서는 바나바를 분별하고 바나바에게서, 사람에게서 의지하던 마음을 돌이키고 떨어져야 하는겁니다.
이 바나바의 외식사건은 1차선교 이후에 있던 외식사건이었기에 심각한것입니다.
이렇게되니 바울에겐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는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견고하게 하심은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하는것이 성령의 견고함인것입니다.
바나바는 이방교회를 돌아보자고 했던것도 아예 없이 화나서 혈육과 고향을 선택했습니다. 어찌 바나바가 이럴수있습니까? 허나 그 과정에서 마가를 양육했기에 마가가 그후 회개했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마가복음도 썼지만 이길로 사도행전에서 바나바가 사라집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것입니다.
*적용: 바나바처럼 바울처럼 내가 절대 의지하고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의 기준은 감정입니까? 정의입니까? 이성입니까? 정입니까?
3.주의은혜에 맡기는겁니다.
바나바가 액션을 취하고 먼저 떠났습니다. 형제들이 주의 은혜에 부탁한사람도 바나바가 아니고 바울이고 누가는 바나바를 더이상 쓰지않았고 바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럼 바나바가 없으면 어떻게합니까? 이때 성령님은 제때에 있어야할 사람을 두십니다. 바나바가 떠난자리에 실라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지도자자리를 내려놓고 바울을 따라갑니다. 주의 일은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너무 의지했던 바나바였기에 먼저 떠나서 버려줘야하는것입니다. 바울은 못버리니 바나바가 버려줘야하는것 바나바는 여기까지가 바울을 돕는 역활이 끝인것입니다.
*적용: 의지했던 사람과의 심한 다툼이 우리를 견고하게 하는게 인정됩니까?
바울과 바나바도 다툰다고 내 다툼을 합리화하고있진 않습니까?
목장나눔
경아기도제목
1. 화요일에 교수님뵐 때, 이미 그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2. 운동도 다시 하기 싫어지고 몸이 안 좋은 느낌이 드는데 약도 잘 챙겨먹고 관리해서 회복하도록
3. 가족들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하여
하나기도제목
1.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하고 일 하도록
2. 목장과 가족을 위해 매일 중보하는 한 주 되도록
3. 설 명절에 동생과 가정예배 드릴 때 숙제하듯 해치우지 않고 성령의 견고함을 경험하는 시간되길
다님기도제목
1.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영육을 견고히 세워주시길
2.육적고통을 줄여주시고 다시 일어날 힘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