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2월7일 주일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성령의 견고함
사도행전15장 36절~ 15장 41절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절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주님 우리가 참 견고하기를 원하는 데 견고하기가 어렵습니다.믿음도 견고하고 모든 삶이 견고하기를 원합니다.성령의 견고함에 듣고자 하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로 쪼개질뻔했지만 위기를 넘겼습니다.이제 결정을 했으니 룰루랄라 했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네요 가장 큰 갈등 상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갈등 충만은 성령 충만입니다.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요동함이 없게 됩니다.성령의 견고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입니다.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안디옥교회가 할례 문제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여러 교회를 세우고도 했는데 공격받아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무시해야 활자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견고하게 하다는 말랑말랑하게 한 것은 딱딱하게 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의미입니다.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딱 붙이는 것입니다.이 흔들림을 멈추게 한 지지대가31절부터 유대와 실리가 전한 권면의 말이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말씀이 들리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말씀이 들리는 것이 중요하죠 바울과 바나 바도 유다와 실라가 전한 말씀에 다른 사람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침을 전파했습니다.말씀을 제대로 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계속 강조되는 형제 의식이 생깁니다.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안디옥교회를 말씀 안에서 뿌리내리고 전하던 중에 다시 가서 돌아보자고 바울이 제안을 했습니다.며칠 후에는 문자적인 날짜는 길어야 두세 달이지만 돌아온 이후 사도바울이 개인적인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매진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며칠 만에도 이제 나가야겠다 하는 거죠 안디옥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인으로 칭함 받을 때 전도여행을 보내셨죠
2차 전도여행 때는 성령이 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이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이 전도한 형제들을 다시 돌아보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떠난 그에요. 이런 끊임없는 형제 의식이 참으로 견고한 것 같아요성령의 역사이긴 하지만 끊임없는 형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머리로는 알겠지만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리 형제 의식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 나오는 목적이 형제 의식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요동합니다.관계에서 평안해지는 것이고 성령의 결정을 하면 가장 주시는 말씀이 형제 의식의 축복입니다.목사만 설교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유대인의 회당도 마찬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들만의 형제 의식은 대단했지만 바울의 형제 의식은 다 같은 형제입니다.진정한 형제 의식이 참 견고한 거라고 생각됩니다.현재에서도 성도를 직접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어요1차 여행에서도 그는 심방하기 위해 더 짧고 편한 귀향 길을 마다하고 온 길을 그대로 따라서 다시 돌아왔잖아요 이방인의 할례로 시작된 갈등이 해소되었지만 이미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는 곳이니 얼마나 큰 공격이 있었을지 상상이 됩니다.
상황을 매우 염려했습니다.안정이 되어 인정받는 위치가 되었습니다.그렇지만 며칠 다 내려놓고 떠나고자 합니다.이것이 견고함이라고 생각합니다.바울의 재방문은 에피케스토마이 영혼을 돌보기 위한 심방을 한다고 합니다.성령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을 괴롭히려 했던 죄의 돌이켜 마음의 문을 열고 이방인에게 향하는 교회의 적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이 단어만 나오면 마음이 뭉클합니다.부정 과거를 쓴 거 역시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단번에 돌이키는 이런 모습을 강조할 수가 있습니다.바울의 관심은 항상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요.형제 의식이 없으면 무서운 의가 됩니다.우리는 형제 한 면 베드로와 야고보의'형제들아'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거친 파도가 와도 날 견고하게 하는 것이 형제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되세요?
여러분은 목장에서 어떤 목자이고 어떤 목원인지 나누어보세요
끊임없이 돌보고 있습니까?돌봄을 받고 있습니까?
이 세상 어떤 모임에서 밥해주며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며 들어주겠습니까? 서로 서로가 형제입니다.그럼에도 목장에 붙어있는 것 때문에 주시는 축복은 대대손손 내려갈 것입니다.저희 어머니는 변소 청소를 드리면서 시루떡을 하셨어요.먹기만 하지 말고 싸주기도 하고 그러셨습니다.남의 집에 가서 발레를 해주셨어요 그것 때문에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제가 이제 어렸을 때부터 본 게 그거밖에 없어요.탈선이라는 것을 안 해봤는데 우리 엄마가 탈선을 하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게 무시하다가 보고 배운 게 무서워서 기준을 두니까 엄마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러니까 톡 까놓고 세상 모임에 가면 이런 영양가 있는 나눔을 어디서 하겠습니까 목장은 천국 공동체이기 때문에 최고의 훈련소입니다.이 훈련은 축복받을 수 있는 훈련입니다.이게 실제적으로 검증되고 있습니다.요만큼도 못 들어줘요 이런 이야기를 목장에서 듣잖아요.우리 어머니는 열매를 못 보고 가셨지만 사명자가 되어 걸어갑니다.형제 의식은 후손으로라도 여러분의 섬김을 하나님은 다 기억하십니다.그러니까 자꾸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됩니다.
2.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그래서 이제 바나바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기로 했습니다.문제가 있는데 마가를 데리고자 합니다.마가 요한은 알다시피 예루살렘 출신이에요 다이아몬드 수저에요.마가가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열두 사도를 보고 베드로를 보고 바울을 보고 헬러 아를 잘하고 어머니 마리아도 집을 다 예수님의 유월절 장소로 내놓고 그런 사람이에요.그래서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어요 바나바의 사촌동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마가를 잘 세워주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수행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마가는 수행원의 의미를 모르고 종의 의무를 저버리고 밤빌리아 버가에서 포기하고 돌았겠습니다.그러니까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후에 한마디만 더하면 이러면서 떠났죠 바울이 계속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한 발자국도 못 간다고 하여 부끄러웠을 겁니다.바나바는 헤아려서 바울의 제안을 듣자마자 마가를 생각했습니다.맞는 것 같잖아요.그랬더니 바울이 반대를 하는 거예요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을 자기를 버린 것으로 기억합니다.자신들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이방 선교에 대한 사명이라고 말합니다.한번 배신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지역이 유대주의자들의 공격 때문에 휘청이기 때문에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는 겁니다.바울은 이렇게 거절했어요.바나 바의 애정과 충돌했어요 누구 편을 드시겠습니까?바나바 손 들어봐요.!바울 손 들어봐요!동수가 나왔어요.하여튼 가차없는 거절과 애정이 충돌했는데 둘의 차이가 적다면 적고 크면 큰 차인데 큐티를 예전에 할 때도 저는 이제 원어의 뜻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36절37절 원어로 살펴보겠습니다.둘 다 데리고 간다고 했어요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의미를 모르잖아요
37절에 데리고 가고는 부정 과거로 즉시 마가를 데려가자고 생각했고 데리고 가고에서는 미완료이기 때문에 바울에게 지속적으로 말했다는 거예요 전도여행을 할 만만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사촌동생에게 기회를 주자는 관심이 있는 거예요.그런데38절에 바울은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은 형제 부정법으로 말하는 거예요 여기는 과거라고 말했습니다.과거인데 현재 부정법으로 말해서 지속적인 행위로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나바와 바울의 큰 차이 중 하나입니다.한번 데리고 가는 정도의 별수롭지 않은 문제이지만 바울에게 있어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은 끝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습관적이기 때문에 여기 현재 부정사가 신뢰가 없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문제를 우리가 이제 읽을 수 있습니다.바울은 옳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고한 생각으로 말했어요.바나바는 마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그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바울은 단회적이라고 했습니다.요즘 제가 사도행전에서는 이렇게 이제 데리고 가고 이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 있을까 찾아볼 수밖에 없습니다.큐티할 때 저자의 뜻을 아는 게 중요해서 원어를 인용하는 것을 양해를 해달라고 말해야 할지 사도행전에 들어와서 원어를 씁니다.
그러나 제가 원어 모를 때도 전체를 한절씩 묵상을 했기 때문에 문맥을 따져서 깨달았습니다.원어를 몰라도 큐티할 수 있습니다.주님을 만나 형제 의식을 깨닫기 때문에 저절로 깨달아져요.바울은 마가에 대한 평가를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이 대립은 좁혀질 수 없습니다.가족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바나바는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으며 야속하다고 했을 것이고 구속사의 귀한 사역을 위해 믿을만한 데리고 가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한 바울은 유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바나바에게 실망했을 겁니다.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이방인의 눈에게 보일 정도로 단짝이었던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됩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바나 바도 외식의 유혹되었다고 합니다.이런 바울의 신앙고백이 있었기때문에 그래서 책망을 한 것이지 인본적으로 베드로를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바나바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바나바는 이방 선교까지 한 사이고 그런데 외식을 하니 마음이 안 좋았겠죠바나바가 보기에 바울은 자신의 행위를 감히 비판할 수 있냐 원망했을 것 같아요바울은 이렇게 한 게 정확한 성격보다는 복음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바나 바는 정이 중요했기 때문에 결국 갈등의 터진 것이죠.
두 사람의 이런 갈라섬은 있어서는 안 될이죠.복음을 전한 두 사람이 결국 싸우고 갈라선 사건은 기복적은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습니다.얼마나 싸운지 몰라요.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본다면 갈라섬의 사건은 두 사람에게 특별히 이제 이방 선교를 이어가야 하는 바울에게 있어야만 하는 사건입니다.우리가 살펴봤지만 바울은 외로웠어요 유대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열심히 있던 사람인데 유대인에게 시기와 미움을 온몸으로 받고 있어요.바울은 자기가 전도한 사람밖에 없어요 바나바가 유일한 친구였어요 바나 바가 있어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고 안디옥교회도 갈 수 있었어요.예루살렘 교회에 호소할 수도 없었어요 바 바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이런 바울이라도 이런 아무리 강직한 바울이라도 바나바가 의지되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바나 바가 해결해 주니까 앞으로의 구원 사역을 보니 목숨을 걸고 하는데 외식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그러고 이제 마가 사건에서 인본적인 태도를 보이는 실수를 바나바가 하잖아요 성품의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하십니다.따라서 사람을 의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성령 깨서 견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바울과 바나 바가 심히 다투었다는 것은 결별했다는 뜻입니다.이 같은 뜻이 한 번 더 쓰였는데 같은 단어가 사람과 선행을 강해 게 일으키는 것 그 말은 이렇게 다투고 해어졌어도 사랑과 선행의 자극제가 되었습니다.이제 의도지 않았던 갈등으로 믿어지지 않았지만 바울보다는 마가를 선택했어요.마가를 선택하고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이방 교회를 돌보는 대신에 혈육과 고향을 선택합니다.그러나 바나바는 배 타고 떠나면서 사도행전에서도 퇴장합니다.예루살렘 교회에 칭찬 존경을 받은 바나바 아닙니까?무엇보다도 바울과 함께 이 밤 선교의 주역이었던 바나 바가 떠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인정받는 사역만 했으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겠습니까?성경을 앞뒤를 읽으면 묵상이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원어로 정확하게 밝혀드립니다.
적용해보세요
바나바처럼 바울처럼 내가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기준은 감정입니까?이성입니까?구원입니까?정입니까?
3.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 입니다.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절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여기서 견고한다는 단어는 신학에서 사도행전에서4번 나오는데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선 일이 교회들을 견코게 하는 일이 된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세계적인 선교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9절에 먼저 마가를 데리고 떠났기에 먼저 누군가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누가가 쓴 의도는 바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보입니다.형제들이 부탁한 것은 바울입니다.바나바는 이 사건 이후에 누가의 기록에서 사라집니다.이 사건을 통해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되는 것을 깨달아도 홀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양육이 필요한 사람을 택하시죠 바나바가 떠난 자리에 거기의 실라가 있는 거예요 실라도 로마 시민이에요 예루살렘에서 편지를 가지고 오면서 은혜를 받게 되는 거예요.지도자 자리를 내려놓고 바울과 같이 안디옥에서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유다와 신라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인데 유다는 가고 실라는 남은 거예요 그래서 짝으로 손색이 없는 거에 요주의 일은 사람이 없으면 안 돼요 사람을 꼭 허락하십니다.돈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처음에는 1차 전도여행이었던 구브로 섬으로 출발했지만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떠났기에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육로로 가는 길로 심방을 했습니다.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갔는데 바울은 위쪽으로 육로로 가서 루스더라 더베 바나바는 구브로 섬으로 마가 데리고 갔다는 거예요.바나바의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바나바가 계속 감정적으로 움직인 것이 보이더라고요.자기가 먼저 구브로로 떠나고 바울이 못 오게 막은 거예요 이렇게 해야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부르심의 사역을 쓰임을 받았습니다.은사가 다른 거예요.구원의 양은 바울이 엄청난 거예요.성품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겁니다.성품이 착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그런데 구원의 일은 다른 데 있어요.세상은 이 이야기를 못하죠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이 얼마나 큰일을 했습니까?
적용해보세요.
의지했던 사람과의 심한 다툼이 지나고 보니 우리를 견고하게 한 일이 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도 다툰다고 내 다툼을 합리화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견고함은 끊임없는 형제 의식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죠 주의 은혜에 맡기는 거죠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온라인 예배가 끝난 이후에 Zoom으로 목장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지체가 우리 목장에 왔습니다.~ 이름은 이성은입니다.~ 우리 목장에 태규가 두명이네요 ㅎㅎ 새로오신 태규형제 환영합니다.~ 잘부탁드려요~!!!^^
오늘 참석인원은 총 3명입니다. 나눔시간은 1시간 20분 입니다.
참석인원: 양재영, 김태규, 이성은
적용질문
거친 파도가 와도 날 견고하게 하는 것이 형제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되세요?여러분은 목장에서 어떤 목자이고 어떤 목원인지 나누어보세요끊임없이 돌보고 있습니까? 돌봄을 받고 있습니까?
재영이형
저번 주 말씀을 들을 때만 해도 나에게 주신 공동체, 가족, 목장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바울이 했던 적용처럼 더 많은 전도해야될 사람들을 보고 가는 것이 형제의식이라고 하셔서 내가 그동안 잘못알고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형제의식을 가져야된다고만 생각하고 적용한 것 같다. 낙태법이나 차별금지법 등 사회적인 이슈나 일반 사람들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구원을 위해 당연히 기도도 물론이고 조금도 안타까운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아직 수준이 부족한 것 같다. 이제 나한테 누가 욕을 해도 잘 받을 수 있다고 돌보고 있다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직도 돌봄을 받고 있고, 돌봄 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
태규
견고하게 사는 것은 부모님과 지체들 집사님들의 형제의식 덕분이다. 공격적이었고, 조금이라도 내 기준을 넘어서면 칼로 치는 사람이었고 선을 그었다. 학창 시절과 군생활에서 따돌림과 같은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공격적이고 깐깐한 성격으로 변했다. 우울증 사건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의 고난과 수치를 지체들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같이 옆에서 체율하고 울어주니 적대적이었던 마음이 변하고 지체들 덕분에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생겼다. 나의 상처를 우습게 여길거라고 했는데, 버텨줘서 고맙다라는 말과 기도를 받으니정말 힘이 되고 형제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이직과 감정이 요동치는 상황 가운데 큐티기도회 덕분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인정된다. 이번 주 수요일에 예전에 다녔던 중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감정을 정리하는 적용을 할 수 있었는데 지체들과 집사님들의 기도로 견고해진 덕분에 가능한 것이 인정된다. 그럼에도 나는 지체들에게 끊임없이 돌봄받고 있는 부목자다. 목장에 있다보면 경청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 이게 정말 큰힘이 되는것 같다. 작년에 부모님과 돈 문제로 잠시 다툼이 있었고 전 회사에서 총괄실장이 모욕적인 말을 하였을때 피하고 싶었지만, 질서에 순종하고 지는게 이기는 거라는 처방으로 버틸 수 있었다. 최근 회사에서도 경력이 비슷한 디자이너에게 실력없다고 모욕당하기도 하고 중간에 때려치고 싶었지만 나가라고 할때까지 버텨야된다는 처방에 마무리를 잘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직 경청의 부분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경청의 연습을 할려고 한다.
성은
형제의식 이라는게 나에게 있어 너무 어렵다. 최근에는 혼자 놀아서 다른 사람과 거의 대화를 안하고 살았다. 지금은 가족들과 떨어져 있기도 하고 특히 공무원시험준비로 인해 시험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누군가와 만나 대화로 무언가를 푼다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말이 거의 없는 편이다 보니 관심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도 목장공동체라는 나눌 수 있는 환경은 나에게 있어 감사하다. 목장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떨어져 노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목장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계기가 있는데 그런 시간을 놓치는 것은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에는 목장에서 불편한 말을 듣기가 싫어 회피한것 같았다. 목장에서 진심으로 충고해주는 말을 잘 받아들여야 될 것 같다.
바나바처럼 바울처럼 내가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여러분의 기준은 감정입니까? 이성입니까? 구원입니까? 정입니까?
재영이형
지금 현재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회사동료들인 것 같다. 나는 진짜 의지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어렸을 때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혼자 무슨 일을 하면 불안하고 못 할 것 같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집착이 있다. 그래서 나의 기준은 감정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일을 할 때도 회사의 구성원을 다 지인으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많이 못 느끼지만 이런 나의 의지하려는 약한 모습을 안보이려고 노력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성향이 내가 말씀을 보고 사명을 감당해야 될 적용을 하기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심지어 나의 의지 대상이 목장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에 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목장공동체에서는 내가 돌봐줘야하니까 더 바르게 살려고 적용하는거라고만 생각하면서 열심을 부린다. 내가 정말 바울처럼 구원을 사명으로 끊어내야 할 관계는 회사동료와 친구들인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의지하고 있는 대상들을 좀 더 구원을 초점에 두고 관계를 해야할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더 만나고 목장공동체와 시간을 보낸다거나 기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태규
지금은 딱히 그렇게 의지하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있지도 않다. 어렸을 적에 사람에 대한 상처를 많이 받다보니 사람 자체에 의지를 하는 것이 싫었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주면 뒤통수를 많이 맞아 오랜 시간동안 관계에 대한 불신만을 가지고 살았다. 설사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준다고 하면 무슨 이유로 잘해줄까 나를 뒤통수 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관찰하고 선을 넘는 행위를 하면 관계에서 쳐내버렸다.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지체들 그리고 전 목자형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만나지 못하다보니 뭔가 소홀해지는 느낌을 받아 많이 힘들었다. 당시에는 직장에서도 총괄실장이 있는 자리로 옮기다 보니 긴장은 더 되고 힘들고 목자형도 힘들어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만남을 하지 못하다보니 울고싶었던 순간도 많아 졌고 목사님에게 전화해서 울고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던 내 모습 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기도하며 버텼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된 것 같다. 신앙생활 하기 전에는 너무 감정적이었고 그로인해 좋지 못한 결과들을 얻어 이성적이려고 한다. 요즘에는 감정을 기준으로 해결하려는것보다 이성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은
어렸을 적 부터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할 때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심부름하는 것도 그렇고 어느 것을 시작할 때도 혹시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대학 가는 것도 그렇고 알바 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의 말에 의지했고, 그것도 충고를 해서 듣는 정도가 아니라 이 일을 해라 라는 명령조까지 나와야 믿고 실행으로 옮겼다. 지금 공무원을 준비하는 것도 부모님이 하라고 권유하셔서, 그래 나는 할 것도 없고 공부하는 게 그나마 제일 잘하는 거니 하자 라는 정도인 계속 그런 의지하는 삶의 연장선상인것 같다. 공부 자체가 힘든 건 있지만 다른 선택지도 없어서 어떻게든 버티며 할려고 한다.
의지했던 사람과의 심한 다툼이 지나고 보니 우리를 견고하게 한 일이 있습니까?바울과 바나바도 다툰다고 내 다툼을 합리화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영이형
나의 대부분의 다툼은 의지했던 사람이랑 싸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너무 예민한 면이 있다. 친한 사람들의 대한 소유욕이 있고 보통 그런 것 때문에 어릴 때 배신했다, 의리없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에서 바울은 구원이 있었는데, 나에게서는 바나바와 같은 단순히 나의 감정만 있는 것 같다. 말씀을 보며, 사랑에 대한 정의와 방법에 대해 묵상을 해보니, 내 주변 사람들을 내가 사랑했다기 보다 소유하고 싶었다는 것이 인정이 된다.
태규
학창시절 따돌림으로 인하여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의지한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고 따돌림의 강도가 가장 심한 시기에 당시 담임 선생님에게 의지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선생님은 처음에는 감싸주었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나의 잘못이라고 몰아가는 것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하여 사람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였다. 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잘 맞는 친구끼리 의지하게 되었지만 한 친구와 싸워서 관계가 깨졌다. 당시에는 어떻게 나에게 라며 분노를 하였고 한달동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힘들 때 친구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나는 정작 친구가 힘들 때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함부로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언행을 조심하는 행동을 적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목자형과 심하게 감정적으로 다투었던 일이 있었는데 점차 목장에 소홀해지는 모습 그리고 교제와 결혼에 대해 많은 의지를 했으나 원론적인 말만하는 형의 모습때문에 나도 결국 감정이 폭발해서 목장 진행도중에 감정이 터져서 제대로 싸웠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나서 내가 잘못했으니 나 치리해달라고 목자형에게 말하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나도 너무 감정적으로 한 것 같아 지금 돌아봐도 미안하다. 그리고 목자형도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 목장을 이끌어 가고있는데 형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
성은
나의 의지의 대상은 부모님이다. 작년부터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다보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가족들 말고는 다른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거의 안하고 부모님에게 의지를 많이 하게 된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다른 사람들하고 노는 것도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감정적으로 나를 건드리는 것을 싫어한다. 저도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내 감정을 터치하려고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고 이런 부분으로 인하여 감정적으로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때부터 혼자 노는 성향이 강해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실패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데 무언가를 시도하려면 사전정보를 조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나는 사람들 만나는 횟수가 적다보니 부모님께 의지하게 되고 이게 결국 혼자서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엇보다 한번이라도 실패하면 다시 올라갈수 없을 것 같아 그게 제일 두렵다. 예전에 이 부분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그러면 너의 직업은 공무원이 맞는것 같아라고 말씀해주신 게 생각난다. 그러다보니 다툼이라기 보다는 항상 남의 말에 의존하는 것이 큰 것 같다.
기도제목
재영
1.매일 큐티하기
2.건강한 생활하기
3.신결혼
4.가족구원
상호
1. 회사 팀장님 병가로 현재 부재중인데 치료 잘 받을 수 있도록
2. 여자친구와 조금씩 큐티말씀두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질수있도록
3. 어린이 큐티인 잘 할수 있도록
4. 담당하고 있는 아이들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태규
0. 제가 만날 믿음의 반려자에게 강하고 담대하며 지혜로우며 서로의 구원과 꿈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 사람의 아픔과 삶을 공감해줄 수 있는 배필이 되어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 가장이 될수 있게 주님 저를 인도해주세요.(훗날 내 배우자와 자녀에게 니가 어떤 선택을 하던 너를 지지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하나님께 내 감정을 솔직하게 내어놓고 간절히 묻는 기도를 매일 할수 있기를(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2.치매 초기증상으로 힘들어하시는 외할아버지 옆에서 걱정하시는 외할머니 두분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3.부모님이 입주하신 새 집에서 건강히 생활하실 수 있기를, 3월 10일에 동생의 해외파병이 거의 확정되었는데 파병준비로 힘들어하는 동생을 주님 지켜주시고 함께해주세요.
4.항상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시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부모님처럼 흐트러지지 않게 독립 생활할 수 있기를
5.내 주위 지인 지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6.몸 컨디션 생각하며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관리 하기 .
7.이직 가운데 인도하여 주시고 조급함과 감정적으로 회사를 선택하지 않게 인도해주세요.
8.우리 목장 지체들과 초등부 지체들 양교지체들 수련회때 만났던 지체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항상 함께해주시기를
9.개인작업과 피아노 레슨 연주때 어린아이 같이 즐기면서 할수 있게 즐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10.나라경기가 침체되어 많은 가정들이 힘들어하는데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가정들을 살려주시기를
11.재확산중인 코로나가 멈추고 오프라인 예배가 열릴 수 있기를
성빈
1.이번주도 의미있는 한주가 될수있도록
2.보건대 지원한것 무사히 합격할 수 있도록
3.그림공부 계속 이어나갈수있도록
성민
1. 코로나 진정되길
2. 재택근무 시에 힘내길
기도하기
하나님 오늘 온라인 예배와 목장모임을 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서 2월 첫째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온라인 예배와 목장모임을 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비대면이지만 서로 얼굴을 보며 나눔을 할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길수 있는 우리 목장 공동체가 될수 있게 주님 인도해주세요. 계속되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부부처 관계자들과 질병관리청 사람들 그리고 각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확산을 막을수 있게 도와주시고 코로나 백신을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연구진들에게 찾아가주셔서 지혜를 부어주시고 힘을 주시기를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시고 위로해주세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평등법과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게 주님 도와주시기를 그동안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생명의 생사를 판단한 우리의 죄를 회개하오니 이제는 허락하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적용을 할수 있게 도와주시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서 한 생명을 지킬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념갈등으로 인해 양극화가 되어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찬 우리 사회 공동체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제는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보다 존중과 배려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회가 될수 있게 주님 이끌어주세요. 월요일부터 다시 한주가 시작되는데 한주 시작 되는 가운데 주님이 허락하신 삶의 사역지 안에서 물질과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우리 목장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때로는 정말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도망가지 않고 버텨가는 우리가 될수 있기를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친것처럼 우리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나아갈수 있게 강한 중심점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세요. 우리 목장 지체들 재영이형 저(태규) 성은 상호성빈 성민 태규 한사람 한사람 주님 붙들어주시고 지켜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