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주일예배 <성령의 결정>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15:22-35
모든 결정이 다 중요한 결정은 아니지만 어떤 결정은 인생을 바꿀 만큼, 심지어 인류 역사를 바꿀 만큼 중요한 결정도 있다. 바로 그것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결정이다.
1.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KO승이 아니고 판정승으로 야고보가 결론을 내렸지만, 심판이 손을 들어 결정을 내려야 승자가 된다. 그러려면 마무리가 중요하다. 온 교회가 심판관이 되어 결정하고 신뢰받는 지도자인 유다와 실라를 증인으로 안디옥교회에 파송하는 결정을 한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해도 마무리를 못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이런 결정을 하려면
1) 형제 의식이 었어야 합니다. (22-23절)
두 절에 형제가 세 번 나오는데, 보내는 사람은 사도들과 장로된 형제들이고 받는 사람은 이방인 형제고 보내는 증인들도 형제라고 한다. 편지는 그 모두를 형제라고 부른다. 편지를 쓰는 모교회의 지도자들과 이제 막 예수 믿은 연약한 이방인 신자들이 서로 형제라는 거다. 동등하다는 거다.
그런데 이 편지는 단지 안디옥교회만 위한 게 아니라 이방인 성도가 있는 모든 교회를 위한 결정이었다. 안디옥교회가 질문을 해서 이런 결정이 나게 되었으니 안디옥교회의 자존감도 높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2) 배려를 잘해야 합니다. (27절)
신뢰 받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증인을 세우는 게 배려하는 거다.
이 결정이 진짜라는 뜻으로 증인을 세웠다. 바울과 바나바 같은 자도 증인이 필요하더라. 어떻게 바울, 바나바 말을 안 들어?가 아니고 이게 배려다.
교회가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뽑아서 객관적인 이방인 신자들에게 말로 설명하도록 대단한 배려를 하는 거다. 이것은 구원 때문이었다. 그들이 충분히 신뢰하며 안심할 수 있도록 그들 입장에서 먼저 공감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3) 사과를 잘해야 합니다. (24절)
예루살렘 교회는 거기에 속한 일부 성도들 때문에 안디옥교회가 겪은 어려움에 대해 공적으로 사과를 한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편지해서, 유대주의자들이 너희 이방인 신자들을 곤란하게 했다고 사과했다.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다.
유대주의자들이 이렇게 괴롭히는 일을 왜 바울사도가 당해야 하나 싶지만 무슨 일을 당해도 택자는 결국 다 유익한 일이 된다. 지금 바울도 그랬기 때문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었고 역사적인 총회가 되었고 교회 회의의 롤모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게 된다. 그러니 구원을 위한 일에 우리의 의논과 의견을 가지고 형제 의식을 가지고 유리 그릇 다루듯이 배려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며 증인까지 세운다면,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결정을 하는 최고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세상에서도 문자적으로 마무리를 잘합니까? 시작만 잘합니까?
말이 안되는 상황에서 형제의식을 갖고 배려하고 공감하며 진정한 사과를 한다면, 여러분은 어디까지 했나요?
2. 한마음으로 내리는 결정입니다. (25-26절)
여기서 이제 만장일치로 번역한 헬라어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신약에서 열 한 번 쓰였는데 사도행전에서만 열 번 나온다.
여기서도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이 결정을 내렸다는 거다. 이렇게 한마음이 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변론이 있었는지 우리가 다 살펴보았다. 구원을 목적으로 성령의 의논을 하니까 모든 성도가 한마음이 되었다.
한 교회에서 만장일치가 되는 게 정말 어렵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만장일치가 됐다는 거는 대단한 일이다. 만장일치가 돼야 하고 마무리가 잘 돼야 한다. 안 믿는 사람을 위해서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돼야 하는데 믿는 사람이 일어나서 법을 어기면 안되는 거다.
예루살렘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 결정할 수 있었던 힘은 말씀에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우리는 말씀으로만이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거다. 영원한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를 한마음으로 모으는 줄 믿는다. 온 교회가 같은 본문으로 매일 묵상하는 게 정말 귀한 거다. 이렇게 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구원 때문이다.
[적용질문] 공동체에서 내가 아직 한마음이 되지 못하는 일은 영육 간에 무엇입니까?
3. 여전한 방식으로 옳게 살게 하는 결정입니다. (28-35절)
(28-29절)
여기서 옳은 줄 알았노니로 번역한 것은 앞에서 결정과 같은 말이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예루살렘 회의 전체 결정 중에서도 성령의 결정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성령의 의논을 걸쳐 성령의 돌보심을 통해 이룬 일은 성령의 결정이라는 거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성령의 결정이 중요한 거다.
각자 안식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자유해야 한다. 근데 책임부터 지워주며 교회 법을 들이대면 처음 믿는 사람은 무너지는 거다.
성도에게 잘되는 것이 무엇인가? 일이 뜻대로 잘 풀리고 만족할만한 대가를 받는 것인가? 그런 복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성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상급이나 대가가 아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이 상급이 되어주셨으니 최고의 상급을 받은 거다. 우리는 삶 자체를 잘 살아야 한다.
(30-33절)
그래서 이 편지를 가지고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읽혔더니 위로 받고 기뻐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마음이 상해있었던 거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가 취한 태도가 이 형제들 위로하기 위해서 형제 의식을 가진 거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인을 배려하고 공감하고 사과를 했다.
우리도 위로하기 위해서 문자로 카톡으로 메일로 줌으로 식사로 기도로 전화로 칭찬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성령의 결정을 위해 안 믿는 사람은 왕이다.
(35절)
그래서 결론은 갈등이 그치고 평안을 얻게 된 안디옥교회는 여전한 방식으로 일상을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비비고 닳고 문지르듯이 사는 삶이 제자의 삶이다. 여전한 방식으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게 최고의 결정이다.
여기가 사명의 자리인가, 이 학교가 이 결혼이 이 직장이 이게 최고의 자리인 거다. 절대로 하나님은 손해 보지 않으신다.
[적용질문] 여전한 방식으로 자기 삶의 자리에서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며, 비비고 문지르고 잘 사시나요?
#여전한 방식으로 자기 삶의 자리에서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며, 비비고 문지르고 잘 사시나요?
* 윤아
말씀이 충만하고 은혜로울 때는 삶의 자리에서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며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환경을 탓하며 여전한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나 습관대로 주일 설교를 다시 듣고 새큐 설교를 듣게 된다. 그 중에 주시는 말씀이 있어서 예전만큼 사건에 요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 번만 거룩하고 싶은데 끝까지 거룩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번 주는 여전한 방식으로 잘 살아내겠다.
* 현수
직장에서는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며 사는 것 같은데 가정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말씀으로 많이 해석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자기 열심으로 내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주 동안 역할의 경계를 잘 지키며 내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하겠다.
* 서영
고등학교 때까지는 목장에 잘 나갔었는데 청년부에 와서 목장에 잘 안 나가게 된다. 그래서 아직 죄패나 고난은 잘 모르겠다.
♡ 편한 마음으로 목장에 참석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