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19-21
성령의 의견
1.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절)
여기서 그러므로는 무슨 내용일까? 지난주에 들은 것처럼 유대인과 베드로와 바나바의 보고를 듣고 야고보가 말씀으로 정리를 했다. 그랬는데 이방인도 오직 성령의 선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의견은~' 모든 것을 다 들은 후에 그러므로가 나온다. 안디옥 교회 문제는 교리 문제였다. 예수를 믿어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된다는 것은 너무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교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나의 견해이자 내가 선택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선택한 것이 있으니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면에서 약간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교파별로도 장로교가 다르고 감리교가 다르고 주장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침례교도 조금씩 다르고. 그리고 초심자와 성숭자가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있을 수가 있고 믿음의 시기 별로도 받아들이는게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사도들은 다른 형제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들어보고자 했다. 유대인것도 들어보고 베드로, 바울.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궁극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확신하면서 들었다. 확실히 성령의 사람은 듣는 은사가 있다. 듣는 은사가 성령의 사람이다. 의장이 처음부터 자기 의견을 내세우면서 주장하지 않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들으면 들을 수 있는 말들을 다 들은 것도 성령의 의논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단지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고해서 성령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들은 것이 안 들은 것 보다는 훨씬 훌륭하지만 문자 그대로 판단의 기준이 내 의견이 되면 그 교리가 결코 진리에 가까울 수가 없다. 바나바와 바울의 놀라운 선교 보고도 베드로의 진심어린 간증도 평소 야고보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가졌던 생각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이 회의의 의장이라는 역할도 야고보의 의견을 성령의 의견이 되게 하진 못한다. 오직 그가 그 순간 기억한 아모스 9장 말씀이라는 구체적인 말씀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한낱 사견이 아니라 성령의 의견이 되었다. 우리말 성경에는 야고보가 개인적인 의견을 내는 것처럼 '내 의견에는' 그랬지만 원어에서는 '나는 의장으로 판단한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모두의 입장을 들어보고 야고보는 이 회의 의장으로서 말씀에 근거하여 최종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에는 인내와 말씀이 절대로 필요하다. 목장하면서 그러므로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들으셔야한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결론을 내야한다. 누가 막 욕을 하면 그러므로 들으세요.
적용> 여러분이 믿을만하다고 여기는 지식이나 정보가 각자의 취향에 따른 유튜브입니까? 아니면 그러므로 하며 모두의 말을 잘 듣고 말씀대로 분별하는 것입니까?
다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올해의 단어는 그러므로. 뭐라 그럴 때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마인드 컨트롤 해야한다.
야고보는 지금 양쪽의 의견을 다 듣고 양쪽을 지금 아우르는 메시지를 준다. 그것은 한마디로 유대인에게는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방인에게는 구원받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야 한다는게 오늘 주제다. 믿음으로 구원얻고 구원 얻으면 잘 살아야한다. 우리는 이 두가지를 다 들어야하는 교훈이다.
2. 율법이 제일이라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합니다. (19절)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까지 달려간 유대인들이나, 예루살렘에서 바울의 보고를 듣고 벌떡 일어나 반발한 유대인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으려면 율법적으로 유대인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 이방인이라고해도 유대인처럼 할례도 받고 모든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는다는 고정관념이 유대인들에게 뿌리깊게 있었다. 말하자면 율법 제일주의다. 그런데 이방인 입장에서는 할례와 율법에 대한 요구가 매우 괴로운 것들이었다. 괴롭게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현재부정사로 쓰였는데 이는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으로 괴롭힌다고 쓰였다. 유대인 그로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 인들을 가까이에서 습관적으로 괴롭혀왔던 바, 이제 그만두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할례와 율법 준수를 멍에를 지우는 일로 표현했다. 그런데 야고보는 괴롭게 하는 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방인 신자들을 율법 준수와 상관없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라고 하며 그 사람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해준다. 얼마나 괴롭혔으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혔다고 야고보가 언급하겠는가. 이 때를 위해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역할이 빛이 났다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고정관념을 깨줄 자가 없기 때문에. 지금 야고보가 지금 선포를 하는데 하나님이 아시고 상 주실 줄을 믿는다. 각자 처한 죄와 고난의 상황 가운데 정말 한줄기 빛처럼 비추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너무 좋아서 교회 나왔는데 계속 할례를 받으라고, 음식은 이걸 먹어야하고, 의복은 이렇게 입어야하고 하면서 생활양식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를 하니까 이방인들의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 이방인 중에서 믿은 자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모세의 율법가 할례가 특히 부담스러웠는데 유대인들은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니까 자기네들은 그게 얼마나 힘든지 공감을 못한다. 자기는 모르는 때에 받았다. 그런데 이방인들 중에 다 큰 어른들에게 그 당시 마취도 잘 안되는데 무서운 식칼을 들고 할례를 행하라고 하니까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런데 그걸 안하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하니까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괴롭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방인 성도들이 교회에서 이방인들을 보면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고 유대인들도 무시를 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지체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율법처럼 신봉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품에 대해서, 능력에 대해서, 자격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각자 자신이 세운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되라고 지체로 불러 주셨는데 자기 세운게 옳고 교회 들어와도 돈은 이렇게 해야하고 의복은 이렇게 입어야하고 음식은 이렇게 먹어야하고 시간은 이렇게 써야하고 그리고 성공한 사람은 말릴 자가없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옳은 기준이라고해도 그 어떤 기준이라도 하나님보다 높이 올라가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남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다. 바울도 율법이 그 자체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했는데 아무리 좋은 율법이라도 그것을 복음위에 두면 그건 공동체, 모든 지체들의 하나됨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도 복음위에 두면 장벽이 되는데 여러분의 가치기준을 그렇게 복음위에 두면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수님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고 처음부터 교회왔는데 방언해라, 금식해라, 헌금해라 이런 규례만 가르치고 봉사만 강요하면 복음이 아닌 것으로 사람을 속박하고 은혜보다 율법을 앞세우면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게 된다. 어렸을 때는 교회가 복음설교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윤리적, 도덕적 설교가 거의였다. 우리나라가 유교 국가였기에 그게 가능했다. 맨날 어떤걸 해야만 예수 믿는걸로 인정받고 복의 복을 받고, 아니면 예배 안드려서 천벌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이처럼 복음 설교를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인과응보의 예수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씀이 없고 가난했기 때문에 항상 교계나 사회나 잘 살아보세가 기도제목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난한 우리는 품에 안으시고 그 기도를 다 응답해주셔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적으로 매어있다 보니까 강요가 되고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독교인들 중에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졌다.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는 모두가 통했는데 이 시대는 지금 율법으로 괴롭히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 빨간 불이 들어온게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 시대의 교회가 기피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윤리적 설교를 듣고 복받을려고 나갔는데 아이러니하게 윤리는 안 지키는 일들일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게 어려서 강요로 지켰기 때문에 중2병이 다 생긴 것이다. 복음이 정확해야 건강해지는게 맞다. 그런데 이걸 안듣다가 들을려면 힘이 든다. 본문의 유대인들같다. 유대인들의 전통은 대단하다. 하지만 바울의 복음 설교는 못 드러낸다. 교회는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아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제가 구속사적으로 자기 죄를 보라고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보라고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죠? 그런데 저의 삶이 안 따라주기 때문에 괴롭힌다고 느끼는 것이다. 저 때문에 너무 감동하게 되면 그런 말이 안나오는데 감동이 안되고 제가 입으로만 얘기를 하니까. 저보다 더 성숙하신 분들은 제 삶보다는 말을 듣고 은혜받아서 적용하시는 것 같다. 기다려야하는게 맞는데 제 마음이 급해서 지금은 기다릴 때가 아니라고하면서 괴롭히고있는 것 같다. 물론 예수님의 식구들은 예수님의 생전에는 아무도 안돌아왔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똑똑하니까 예수님은 왜 식구들 눈높이로 못 내려가셨나? 그렇게 똑똑한 분들이 계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흠이 없으신데도 구원이 안됐다. 식구들이. 그러니까 우리는 흠이 많기 때문에 그런 수준은 안가니까 염려안해도 된다. 우리는 흠이 많아서 식구들이 안 돌아올지라도 예수님 생각하면서 자책하지말고 내 수준이 그 정도 안되니까 살아생전에 돌아오실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처럼 식구들이 안 돌아와도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열매를 맺고 계신 것처럼 우리가 안되는 것은 안되는 대로 놔두고 기다리시면서 대부분 살아서 모두를 심방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복음이니까 복음은 굿 뉴스다. 처음부터 들리는 분도 정말 많다. 그런데 오자마자 우리들 교회는 목장보고서 써야해요, 막 녹취해야하고 밥을 해야돼요. 그러면 자기집도 밥을 안해먹고 사는데 벽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 분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그러므로들으시길 바란다. 본질을 알지 못한체 괴롭히는 꼴이 되면 안된다. 우리가 모든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하는데 유대인으로 먼저 믿은 사람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은 참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데 백세 건강비결에서 김형석교수님은 최선의 건강은 최고의 수양으로 빚어진 인격의 산물이라고하신다. 그래서 거기서 김형석 교수님의 주치원장님은 복식 호흡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가 복식 호흡이다. 목장에서 날마다 심호흡을 하세요. 우리는 정말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게 정말 중요하다. 그 외에도 기도와 규칙적 생활, 수영, 일을 사랑하는 자세, 긍정적 사고, 사색과 고른 식사등이다. 선한 목표, 성실한 봉사정신 이런 요소를 살펴보다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어가 참사랑이라고 한다. 김교수님은 정서관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참 크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희망을 품게되고 기도하면 해마와 전전두엽에 자극을 줘서 뇌의 기능을 활성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치매 가능성도 낮아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때까지 살자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작은 도움이라도 우리 목장이 얼마나 큰 도움인가. 작은 도움을 넘어서. 매 주일 하는 거니까 이건 정말 큰 도움이다. 큰 도움을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만져주고 듣기 때문에 저는 우리 모든 교인들이 100세를 넘어 사실 것 같다. 듣기만 해도 장수 비결이고 듣는 것 만으로도 큰 도움이다.
적용> 유대인처럼 원칙주의자인가요? 하나님의 은혜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옳고 그름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20절)
다만 이 4가지 사항만을 이방인 신자들이 최소 올무 조항으로 지키도록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성경과 율법 조항 중에서 단지 4가지만 지켜라! 그러니까 처음에 최소의 의무조항을 주고 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사소한건데 초신자들은 뭐 시키면 싫어한다. 그냥 가만히 둬야한다. 거기에서 굉장한 자유를 느낀다. 이 4가지 것들은 유대인 신자들은 율법으로 절대적으로 금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방인 신자들은 예수믿기 전에는 다 자신의 우상을 가지고 있고 섬기고 있고 관습적으로 죄책감 없이 행하고 있던 것이다.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이런것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사갈 때 손 없는날, 결혼할 때, 입시볼 때 점보고 그러면서 나때문이 아니라 자식 때문에 보러간다 그런다. 그런데 그 문화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이건 물론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생활, 그러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를 돕기 위한 조건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유대인인과의 교제가 방해되지 않도록 자유는 무한대로, 의무는 최소한으로 이방인들에게 피해야할 최소한의 조건을 부과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러니까 처음에는 몰라서 4가지지만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가장 본질적인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음행은 신전에서의 음행만 의미하는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각종 음행, 성적 방종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20절에 보면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음행으로 이어지고 피를 먹지 말라는 생명 경시로 이어진다. 그런데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이 당시 우상에게 바칠 때 사용되던 고기를 뜻하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우상에게 바쳤던 재물인지 아닌지 고르는게 얼마나 짜증이 났을가.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게 우상에게 바친 재물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골라낸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 너는 왜 그것도 못골라내? 하니까 처음 들어왔을 때 교회 문화가 다 짜증날 수 있다. 그런데 계시록 2장:14)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을 먹는 것은 어떻게든 우상과 접촉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게 되거나 그런 재물을 먹음으로 마음이 우상에게로 기울여질 수 있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교도의 우상신전에는 창기들이 있어서 우상숭배가 음행으로 저절로 연결되는 것이다. 계시록 7개 교회중에 버가모 교회에게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게 있다. 두어가지는 아주 약간의 일들, 적은 발람의 교훈을 15절에 그것이 바로 니골라당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충성된 증인인 안디바가 순교한 바로 그 버가모에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니골라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지적한다. 그러니까 순교자의 믿음의 가문이라도 우리는 거기서 작은 일에서 시작해서 믿음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방인들에게 가르쳐줘야한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영혼만 귀하고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내가 교회를 다녀도 육체는 악해서 마음껏 행음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음행을 하고 그런것에 대해서 죄의식이 전혀 없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발람은 히브리인이 아니면서 선지자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축복을 했다. 그런데 모압의 왕 발락에게 저주해준다고 돈도 받았는데 축복을 하고 왔으니까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나. 모압왕에게 돈값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꾀를 생각해내서 모압인들의 축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했다. 오랫동안 광야에서 염증나고 시달린 이들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모압 여성들을 보고 넋이 나갔다. 결국 바알 숭배에 빠져서 이로 인한 음행으로 인한 전염병이 생겨서 2만 4천명이 죽었다. 발람은 손하나 안대고 코를 풀었다. 지도자의 타락이 이렇게 국민을 망하게 만든다. 지도자가 올무를 놓아서 교묘히 유혹하는데 백성들은 다 모른다. 그렇지만 올무를 놓는 것도 따라가는 것도 모두 악이다. 가나안을 향해 갈 때, 제일 위험한 것은 발람의 유혹이라는 것이다. 발람을 보면 기가 막힌다. 성경도 잘 알고 하나님 말씀으로 예언도 잘해, 큐티도 잘해, 아주 신명기 22장에서부터 보면 포기도 잘 하는 것 같고 말도 잘하고 어떤 회개를 하면 은혜스로울지, 어떤 사람이 이런것들을 좋아할까 다 잘 안다. 오죽하면 모압왕이 초청을 했을까. 모든 것을 다 잘한다. 적용도 잘 하는 것 같고 말씀도 잘하는 것 같고 사람들 마음도 홀린다. 그런데 오직 발람이 돈을 좋아한다. 결국 아무리 잘해도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서 구원의 상을 받지 못한다. 한번의 유혹을 잘 거절하면 내가 믿음이 좋다고 착각할 수 있다. 상대방도 나도 속는다. 그런데 집요하게 유혹하면 안넘어가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민수기에서 22장부터 3장이나 발람이야기를 바루면서 발람이 훌륭하게 보일 만큼 우리가 속는다. 돈의 유혹은 우리에게 그렇게 집요하게 온다. 결국 25장에 음행으로 이어진다. 그 음행은 한 장으로 지나간다. 음행은 결국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돈가지고 짓는 죄다. 여자도 돈이 없으면 유혹도 못한다. 너무 훌륭한 사람이 교묘하게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섭다. 유대인들도 이렇게 만세전부터 넘어졌던 우상숭배의 죄와 음행의 죄를 답습하지 말라고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처음부터 조심하라고 이방인에게 이 4가지가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전부다. 이방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지만 처음부터 이방인들은 그 뜻을 모르지만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다. 우상의 고기를 먹지 말라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목 메어 죽인 것과 피는 같은 개념이다. 목 메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는 것은 피가 빠지지 않은 고기를 그 피가 있는 상태로 먹지말라는 의미다. 레위기 17:11) 이스라엘 사람들이 엄격하게 지켜오던 것이다. 짐승을 잡을 때마다 그 피를 가지고 대속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인간이 악에 물들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을 잘하는 믿을 수 없는 피조물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없으면 필요한게 너무 많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몸무림을 친다.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이게 우리나라 문화고 늙어지면 못논다고 한다. 그러니까 놀다가 다 일찍 간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피라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도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가 나를 위해 죽었다고 해도 내가 절박하지 않으면 그게 하나도 고맙지 않다. 나를 위해 죽어졌다고 해도 저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에 박혀있을 때 도와주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평생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 이런 관계로 사회생활도 하고 신앙생활도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희생이 마음속에 들어온다. 이것이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고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이 먹고 마시고 뛰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찬양하고 의지할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웃어도 울어도 날마다 주님 앞에서. 그런데 그게 억지로 될까. 그건 기도할 수 밖에 없다. 동성애나 낙태 지지하는 바탕에도 이런 무조건적인 자유를 최우선적으로 삼는 세속적 고정관념이 깔려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이 성을 결정하는 것을 자유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파괴하는 것을 자유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유가 최고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계속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교만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잘 웃고 우는 교인들이 없다. 누가 그렇게 우리를 울리고 웃길 수 있겠는가.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예수의 피밖에 없다. 이것이 모든 것이 굴레와 억지가 되면 안되고 믿음이 감사와 자유와 사랑이 생기게 되는 이런 것이 진정한 자유다. 이렇게 울고 웃다가 요즘 코로나가 돼서 만나지 못하지만 전쟁터였다면 말씀도 못듣고 예배도 못 드렸을텐데 온라인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런데 천국에서 만나면 얼마나 감사할까.
적용>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은 사슴의 피도 벌컥벌컥 마시는데 이쯤이야하고 먹는 우상의 제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최소한의 의무는 무엇이고 최대한으로 누리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4. 성경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합니다. (21절)
구원과 성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유대인들은 음행을 안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모압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서도 유대인들은 주문처럼 여기에 해당하는 구절을 늘 낭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이게 본질이기 때문에 낭독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읽는 성경대로 이방인들은 행함으로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읽지만 너희들은 행함으로 음행을 멀리하라. 유대인들이 입으로만 읊어대니까 그들에게는 한계가 분명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낭독도 중요하다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의논이다. 그들이 아직 성령 받지 못했지만 낭독하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여기와서 졸지만 오는게 어디냐. 중요한점은 유대인 성도나 이방인 성도나 각자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끊으라고 말씀하시면 이방인, 유대인 모두 '제가 우상숭배를 하는 죄인이에요. 제 생각과 판단을 우상처럼 모시고 삽니다. 저는 음행을 우상처럼 모시고 있습니다. 이 죄를 끊기 원해요. 도와주세요.' 하면서 끊기를 결단하고 힘써야 한다. 음행에 대해서도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욕심에 대해서도 그냥 이렇게 늘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들으시면 된다. 전세계에 널리 세워진 회당에서 매주 율법이 전파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고 율법도 하나님이 친히 주신 것이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율법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율법에 우리는 사랑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율법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대로, 그리스도 없이 율법만 고수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면 율법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틀렸다 맞았다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성도들이 증가해서 이 순수성을 해치면 어떨까 하면서 걱정하겠지만 계속 유대인 회당에서 계속 유대인 회당에서 율법이 낭독되고 있으니까 그런 걱정 하지마라.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연약한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끝까지 설득하여 야고보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돌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의논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너무 이상하다. 믿지도 않으면서 맨날 성경만 낭독하는 유대인들. 그런데 그걸 이런식으로 돌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하고 들으라는 것이다. 우리들 교회도 음행을 원척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 남녀가 둘이 만나면 안되고 교사 이런거 필요없다. 같이 차 타도안되고 돈거래도 하면 안되고 꾸거나 꾸어준 자 모두 치리를 한다고 날마다 낭독을 한다. 너무 율법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낭독으로 거룩이 많이 지켜졌다. 음행의 직분자이건 아니건 모두가 미혹될 수 있다. 그래서 음행에서 해결되려면 기본적으로 날마다 목장가고 예배드리고 큐티하면 그런일이 있어도 공동체에서 해결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교회를 떠나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러니 야고보는 의장으로 양쪽에 모든 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고 자기의 의견을 끝맺는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된 야고보는 너무나 신중하게 잘 듣고 양쪽에 꼭 맞는 의견을 제시한다. 목장에서 이렇게 서로의 의견을 듣고 타진했으면 싶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 분량이 있고 이방이 분량이 있고, 초신자가 있고 성숙자가 있다. 조심조심 두드려 가면서 잘 들어야하는데 막무가내 목원도 있고 분노조절이 안되는 목자도 있다. 이게 울어도 눈물 많이 흘려도 힘써도 행실이 깨끗해도 착해도 죄를 씻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죄의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서로의 의견을 듣자고 하면 인내가 9단이여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의견이다. 야고보는 이 상황을 정리한다. 여러분도 야고보 목자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도 정리하는 목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하다 해도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여러분들에게 정죄감을 없을 것이다.
적용> 성경은 나에게 어떤 책입니까? 역사책입니까? 도덕책입니까? 경전입니까?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시나요?
성령의 의논은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유대인, 이방인, 베드로, 바울, 야고보 모두를 들었다. 항상 잘 듣자.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율법이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성경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적용질문]
1.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여러분이 믿을만하다고 여기는 지식이나 정보가 각자의 취향에 따른 유튜브입니까? 아니면 그러므로 하며 모두의 말을 잘 듣고 말씀대로 분별하는 것입니까?
2. 율법이 제일이라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합니다.
- 유대인처럼 원칙주의자인가요?
- 하나님의 은혜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옳고 그름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은 사슴의 피도 벌컥벌컥 마시는데 이쯤이야하고 먹는 우상의 제물은 무엇입니까?
- 여러분의 최소한의 의무는 무엇이고 최대한으로 누리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4. 성경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합니다.
- 성경은 나에게 어떤 책입니까? 역사책입니까? 도덕책입니까? 경전입니까?
-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시나요?
A
1. 큐티 세번이상 하기
2. 설교 잘 듣기
3. 알바구하기
4. 자취방 지출들 잘 해결 될 수 있길 + 절약하는 생활
B
1. 남자친구 전주 가는데 대해서 지혜롭게 잘 이야기할 수 있기
2. 큐티 3번이상 하기
3. 주일예배 꼭 드리기
C
1. 지금하고있는 줌 수업 할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하기
2. 친구관계에 있어서 시기질투가 사라질 수 있길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길
D
1. 이번 큐티한번하기
2. 알바면접, 대학면접 잘 볼 수 있길
3. 코로나 종식
E
1. 가족, 마을, 목장 건강
2. 아빠 가게 운영에 있어서 하나님이 항상 함께해 주시길
3. 수현이 동생과 우리 오빠 군 제대 건강히 할 수 있길
4. 이번주에 오지 못한 친구들 하나님 말씀 꼭 듣는 한주가 될 수 있길
5. 내가 옳다가 강한 내 모습 회개하고 목장과 공동체에서 성령의 의견을 나눌 수있는 내가 될 수있길. 그리고 말씀으로 이 시간들을 잘 통과할 수 있길
6. 안믿는 가족과 친구들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