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1년 01월 17일
본문: 사도행전 15:12-18
제목: 성령의 돌보심
이제 성령의 의논을 들었는데 성령의 의논을 하기 위해서 삼위일체 하나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의논하셨을 것. 역할대로 돌보셨을 것. 우리모두는 서로에게 돌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끼길 원하죠.
14절에 돌보심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해 병문안하고 방문하는 것. 돌봄을 잘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돌보게 되어있어요. 오늘은 성령의 돌보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12절) 지난번 7-11절까지 베드로의 형제의식에 관한 작렬한 변론은 온 무리를 침묵에 빠트릴 정도로 확실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용해졌어요.
베드로의 변론으로 두번째 보고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해 말했다고 합니다. 이건 믿음이 연약한 유대주의자들의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표적과 기사를 본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표적과 기사라도 있으니 조금이라도 믿었을 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장 22절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라고 했다. 유대인은 이렇게 표적과 기사를 이렇게 좋아했다. 남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도 짠하고 나타나는 기적이 너무 좋아한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의 박해로 쫓겨났고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도 돌로 침을 당하는데 그러고도 복음을 전한 것. 그리고 또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목표지가 바로 고향을 거쳐서 바로 눈앞에 있지만 그 지름길을 놔두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버가 굳게 세우고자 다시 돌아보며 오는 것 그것 자체가 표적과 기사가 아니었겠습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에겐 기복적 관점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났다던가 이런걸 보고했고 통하는 사도들에게는 8복의 사도들에게는 균형있게 눈높이에 맞춰서 했을 것이다. 이 대단한 보고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죄사함받고 의롭게 된다는 정통구원교리에 가장 강력한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바울. 그러나 그는 객관적 역할의 증인만 했다. 바울은 주된 증인의 역할마저 바나바에게 양보했다. 왜냐면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여전히 교회를 잔멸하던 자. 머니머니해도 머니인 바나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칭하면서 늘 바나바가 리더였는데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눈앞에서 열매가 보이니까 당장 13절부터 바울로 압도되었다. 성경의 한구절 한구절에는 이렇게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의 연애편지 맞다. 이것만 봐도 바울이 얼마나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는지 구원때문에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모든 돌보심은 자랑질하다가 망쳐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랑하다가. 이딴 자랑하다가 전부 망치는거예요. 바울처럼 절제해야 해요. 우리 자신이 중요하지 않아요. 상황속에서 주어진 역할이 바뀔수도 있고 안바뀔수도 있는데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도 이땅에서는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는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중요해서 질서와 상황은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순종이 안됩니다. 바울도 잘나서 절제하는게 아니라 성령이 돌보시니까 절제할수 있는거예요. 눈높이의 절제를 할수있는 방법은 오직 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팩트야 하면서 할말 다하고 앞으로 남고 뒤로는 구원에 밑집니다. 성령의 돌보심으로 나를 돌보면 그 돌보심으로 나는 가정을, 사회를, 나라를 돌볼수 있습니다.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자랑하고 싶은걸 참는게 얼마나 십자가인줄 아세요? 앞으로는 밑져야 뒤로는 남는 장사를 하게 됩니다. 각자의 눈높이에서 돌보심을 받고 돌보는 진정한 성령의 돌보심의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도 받은 사람도 할수 있듯이 돌보심을 받아봐야 돌봐줄수 있어요.
## 가정이나 회사에서 목장에서 눈치를 보십니까? 무시하십니까?
## 눈높이를 맞추십니까? 눈높이를 맞춘다면 구원때문입니까? 열등감 때문입니까?
2.하나님의 심방입니다.
1)야고보를 심방하십니다.
13절) 야고보도 베드로처럼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했던 베드로와 달리 '내말을 들으라' 고 합니다. 야고보는 공의의 의장이니까 이런게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어찌할수 없는 자신의 외식에 대해서 애통하며 외식하는 유대주의자들 보고 너희와 같은 형제라고 했는데 야고보는 왜 무슨죄가 있길래 형제들아 라고 했을까요?
항상 우리의 구속사는 예수님 없는 한 개인은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다는 것을 생각하는데서 시작해야 돼요. 주님이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다고 했기 때문에 사람은 대충 다 알수있어요. 악하고 음란해서 표적을 좋아한대요.
사람들은 서로가 기막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 고정관념의 최고봉은 유대인들. 아주 지독한 선민의식으로 이때 이방선교가 퍼져나갈 수 없는 거에요. 이때 예수님의 식구인 동생 야고보가 역할을 할게 있는거죠. 그러면서 야고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갈라디아 2장을 보면 기둥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에요. 왜 말도 안되는 유대인들에게 형제들아 라고 했을까요. 처음부터 그런게 아니라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유대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믿지 않았다. 예수님 식구들이 왜 안믿었을까? 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봤어요. 우선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예수님도 그냥 사생아. 처녀가 잉태했으니 돌로 맞아 죽을일이다.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배움도 없고 목수인 예수님이 자기를 메시아라고 하는 것.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식구니까 미친 형을 붙들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성령받지 않고는 어떤 배우자, 자녀, 부모라도 알아볼수 있는 비결은 없다. 예수님도 살아서 식구들을 어떻게 할수 없었구나 라는 것을 생각했다. 지금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경륜이었다.
예수님이 언제는 메시아라고 하고 언제는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까 위선자, 이기주의자 같다. 다른 욕도 아니고 예수님을 미쳤다고 한 이 한마디로 얼마나 싫어하고 무시하고 상처의 주범이라고 생각했을지 생각해봤어요. 복음만 전하면 뭐해, 메시아면 뭐해, 집안 식구들한테나 잘해 가 우리의 18번.
예수님도 형제들이 잘 믿었으면 좋았겠지만 하나님의 경륜은 예수님조차도 때에 순종해야 하는게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 5장 8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으로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이 고난을 우리앞에 받아주셔서 그가 성자 하나님의 역할을 해준 것. 예수님을 보며 형제들이 식구들이 다 미쳤다고 해도 슬퍼하지마세요.
베드로가 아무리 변론을 해도 어부 베드로가지고는 안되는게 있는데 이때를 위해서 최후판결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에 의장으로 이 판결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님이 부활하시고 주님이 야고보를 개인적으로 찾아가셨어요. 이게 하나님의 심방이 되어서 야고보가 한번에 변했어요. 때에 맞춘 하나님의 심방. 한번만 찾아가도 변하는거예요. 때가 되면 어느날 말씀이 들리는거예요. 예수님의 식구가 메시아의 식구이기 때문에 로얄패밀리가 되었어요. 로얄패밀리로 하실 일이 있어서 야고보를 심방하신 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온 인류의 이방선교를 위한 법적 판결을 야고보에게 맡기셨어요. 야고보가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예수님과 어린시절을 같이 보내고 모든 것을 보았다는 것은 상상할수 없는 특권, 환상. 유대인들은 그것들을 부적처럼 여기기 때문에 표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것은 아주 효력을 절대적으로 발휘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때마다 무너지기 어려웠다.
야고보도 이런 마음으로 형제들에게 마음이 같았다고 찾아갔어요. 이 세상에서 죄인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형제들아가 바로 나오는 것이다.
2)이방인을 심방하십니다.
14절) 베드로도 야고보도 그렇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심방해주시니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하나님이 돌보신 것이라고 정리한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쓰였다.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고 방문하셔서 구원을 하시는 전문용어가 여기에 쓰였어요. 창세기 21장에도 사라를 돌보셔서 이삭을 낳게 하시고, 애굽에서 탄식하던 백성을 돌보셔서 찾아가서 흑암중에 돌아보사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 주신 표적과 기사로 하나님의 따뜻한 돌보심의 심방으로 시작된다는거예요. 표적과 기사는 따뜻한 심방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기본이 출석체크. 이게 방문하시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목장보고서를 내야해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듯이 출석체크를 해야 찾아요.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가장 확실한 관심의 표현은 직접 찾아가서 돌보는 것.
우리의 목장은 기본이 믿음이 아니고 출첵, 그리고 출석하면 그 목장에 하나님이 심방하십니다. 야고보는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방문한 사건을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처음 방문하신 것이라고 기록했어요. 하나님의 심방으로 찾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을 위한 돌봄.
돌보신다는 말은 시공을 초월한 구원의 심방이고 약속의 심방이고. 그래서 권고하고 돌아보고 방문하시고 심방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로 우리가 힘들때마다 돌아보신다. 야고보도 이방인도 하나님이 심방하시니 기둥같은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방이 따뜻하게 느껴집니까? 귀찮습니까?
## 목자의 심방이 즐거우세요? 부담되세요?
## 마음에 안든다고 톡방에서 나간 적은 없나요?
3.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15절) 말씀, 기록. 그러나 주님은 다른 무엇보다 말씀으로 우리를 심방하시는 것에 일치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간증과 야고보, 바나바, 바울의 말이 똑같다는 것.
우리가 아무리 찾아간다고 해도 최종 결론은 말씀과 일치해야 해요. 돈으로 아무리 도와줘도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돌보심이 못되는 것. 이론으로는 성경을 인정해도 삶에서 하나도 안받는다면 삶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거죠.
16-17절)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가 되잖아요. 그러니 통하여서 선택된 유대에 남은자가 있어요. 유대에 남은자가 있고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장막을 일으키겠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에돔에 남은자들 까지 기업을 얻게 한다고 했는데. 에돔은 안믿는 사람들의 대표. 저주받아 마땅한 에돔의 남은자들까지 내 이름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업을 얻게 하신다고 한다. 야고보는 그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얻는 지식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주를 찾게 하신다는 것. 이것이 주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밝히시는 거예요.
지금 현실로 이방인 선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말씀의 일치. 바나바와 바울, 아모스 선지자가 한 말이 똑같다는 것. 시대는 다르지만 똑같이 말하는게 주의 말씀.
18절) 이것이 아모스는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고, 야고보는 주의 말씀이라고 썼다. 주께서 말씀하신다는 현재 직설법 동사. 800년전이나 2000년 전이나 현재적으로 말씀하신다는 의미.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거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올때 허다한 잡족이 섞여서 나왔다고 한다. 이방인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하나의 예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 바울과 베드로나 모든 것들이 똑같이 합하고 일치하고 말씀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는거죠. 남북 이스라엘이 망하고 헤어졌잖아요. 흩어진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하잖아요. 각자 자기 도시의 언어가 모국어가 되었어요. 로마가 제패하고 나서 헬라어라는 공용어가 생겼어요. 그래서 열두지파에서 사람들을 차출해서 그 어려운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구약성경. 이방인들이 더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썼겠죠.
야고보가 구원때문에 눈높이를 맞춘것이죠. 우리는 표적과 기사를 이렇게 보아도 아무리 돌봐줘도 돌봄을 받아도 성경과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열심은 이단이에요. 성경은 구원과 일치하는거죠. 우리의 간증도 체험도 놀랍지만 성경과 일치해야 하는거예요. 속으로 들여다보면 자기가 주인공이라서 꿔주고 받고 도와주는거예요. 베드로, 바나바, 바울이 똑같은 말을 했고 어제도 오늘도 동일하다는거죠.
## 말씀과 일치하기 위해서 온라인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를 잘 드리고 있나요?
## 온라인 예배 때 모니터에 열려있는 화면은 몇개인가요?
성령의 돌보심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죽어지고 썪어지고 밀알이 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이 심방하십니다. 내가 힘들때마다 방문하시고 권고하시고 돌보십니다. 그래서 말이 안되는 야고보를 이방인을 심방하셨어요. 그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내가 동정하고 사랑하는게 아니라 말씀과 일치하고 구함때문에 해야하는 거예요. 말씀으로 결론을 내야하는거예요. 하나님이 심방해주실 것을 기다리면서 내가 할일은 말씀을 보고 심방해야 하는거예요.
오단이목장 기도제목
단이:
-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위해 눈높이가 아닌 구원을 위한 눈높이가되는 적용을 할 수 있도록
- 목소리 회복
찬미:
- 센터 가기 전에 큐티할 수 있도록
- 주변사람들에게 관심가지고 연락하기
유빈:
- 가족 건강
- 나태해지지않도록
- 주일 예배 지킬수있기를
채원:
-큐티하기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 수 있도록
수연:
- 가족구원
- 나도 남도 잘 돌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