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성령의 주목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말씀 : 사도행전 14: 8~18
1. 한 영혼을 주목해야 합니다.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고 하니 그들이 도망하여 루스드라로 갔습니다. 루스드라는 당시 퇴역한 로마 군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조성이 되어 있어, 그들이 정복 전쟁에 갔다가 각지에 배워 온 것들을 많이 전파했기 때문에 그 가운데 미신적인 경향의 것들도 많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이나 이고니온에서와 달리 루스드라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어서 광장과 같은 곳에서 전도하였으리라고 봅니다.
이때에 바울은 한 앉은뱅이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의 눈을 주목합니다. 마치 성전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울도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는 구걸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았지만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이끌려 그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불치 상황에 놓여 전적 무능을 실감하고 있는 장애우였습니다. 장애를 입고 태어났어도 말씀을 듣고 전적으로 부패한 자신을 보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인생은 죄인이기 때문에 평강이 없게 되는데, 그런 불치 상황의 앉은뱅이가 오히려 가장 주님을 만나기가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바로 앉은뱅이에게서 자기 안에 있는것과 같은 성령의 기운을 느끼고 그를 주목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보고 두 발을 쭉펴고 일어서라고 외쳤습니다. 뱃속부터 완전히 마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어이가 없는 명령을 한 것 같지만, 그 사람은 즉각 순종했고 그 후 믿어지지 않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이 이적을 주위사람들이 보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곳 루스드라는 구약적인 배경이없는 곳이기에, 구속사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삶으로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루스드라 전도를 위해서는 앉은뱅이가 일어남과 같이 보이는 이적으로 전도를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시디아에서는 비시디아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 또 루스드라에서는 루스드라에 맞는 방식으로 우리의 전도 방법을 그때마다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치료불가의 한 영혼을 주목한 적이 있습니까?
2. 자기 주제를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의 헬라어 설교를 듣고 있던 루스드라 주민들은 갑자기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들의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그들 가운데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루스드라 지역에는 헬라의 주신인 제우스와 그의 전령신인 헤르메스 신을 섬겼었는데, 과거 제우스가 사람의 형상으로 그곳에 방문했을 때 한 사람 빼고는 아무도 영접하지 않아서 홍수로 그 지역을 멸망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설이 자기들의 시대에 삶의 현장에서 다시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 루스드라 사람들은 인물 좋은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비서같이 말을 하는 바울을 헤르메스라 여겨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또한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도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고자 하였습니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대접하지 않았다가 큰 홍수로 멸망을 당했다는 전설에 따라 이번에는 그 화를 면하고자 일치단결하여서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인간본성에서 비롯되는 종교성은 이처럼 기본적으로 기복적입니다. 복을 구하고 화를 피하기 위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숨쉴틈 없이 우상숭배를 향하여 돌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각자 자기 자신의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예배 중독자나 과학만능주의에 젖었거나 반대로 미신과 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우상 중의 하나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나 다 똑 같습니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제사 드리려는 행동을 취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옷을 찢고 사람들 앞에 뛰어나가 그렇게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인간의 죄는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돌아갈 경배를 대신 받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의 옷을 찢은 행동은 근심과 슬픔을 표시하는 유대적 관습에따라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가 되는 일을 목도했을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헤롯이 백성들에게 연설한 후에 자신의 연설이 사람의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반면,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여기며, 자기 옷을 찢었던 모습도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나 헤롯이나 스스로 자신을 왕으로 여기니, 그런 사람의 특징은 받지 말아야 할 칭송을 받거나 찢지 말아야 할 옷을 찢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거듭되는 고난가운데 지난날 스데반을 죽인 죄악을 기억하며 주신 말씀에 따라 영혼 구원의 사명을 위해 순종했기에 옷을 찢으며 애통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시고 죽으시고 낮아지시는 예수님처럼 창조주가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인정받아도 교만해지는 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입니다. 전자동으로 하나님께 갈 영광을 가로채고도 다들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사명을 위해서 왔다가 사명을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얘배는 왜 드리십니까? 자기 주제를 주목하려고 입니까? 화를 피하기 위해서 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드리십니까?
3.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신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섬기는 일은 모두 우상 숭배고 헛된 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헛된 일은 남을 속이는 쓸데없는 무가치하고 망령될 뿐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진짜 복음과 기쁜 소식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범죄를 방임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허용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닌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유대교 배경이 전혀 없는 이방인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서 같은 내용을 그들이 소화 할만한 표현으로 하였고, 또 성공적이었습니다. 구원까지 가져왔는지 그때는 모르지만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겨 제사드리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성공을 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주제를 주목한다면 자기들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최고의 주목이 될 것입니다.
적용) 자연계시와 일반은총으로 경험한 하나님을 나누어 봅시다.
[기도제목]
허준
1. 날마다 한계상황에 나의 전적무능을 보고 예배가 회복되고 성령을 주목할수 있도록
2.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고 여전한 방식으로 배척당할수 있도록
3. 운동꾸준히 할수 있도록
4. 목장이나 유아부 감사함으로 섬길수 있도록
5. 코로나가 종식될수 있도록
6. 유아부 5세반 아이들 코로나 가운데 잘 인내하며 회복할수 있도록
7. 신교제의 용기를 가질수 있도록
남동훈
1. 온순한 마음을 가질수 있도록
2.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3. 구하고 노력하는 일에 해답을 얻기를
4. 동료들과도 협업 잘 할 수 있기를
5. 근육통이 낫도록
6. 신교제 하도록
박정준
1. 교만한 마음 들지않고 순종할수있는 사람일수있기를
2. 여유있는 마음들고 주위돌아볼수있기를
3. 교회 목장 유아부 잘섬길수있기를
이진국
1. 휴무날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2. 모든 일의 시작을 기도로 할 수 있도록
3. 주신 QT말씀 가지고 하루를 살도록
4. 회사 교육 프로그램 만드는데 지혜주시길
5. 신교제, 신결혼
이광명
1. 나의 욕망이, 비전의 탈을 쓰지 않기 원합니다. 나의 방향을 잡아주세요
이인성
1 주어진 시간 계획안에서 헛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