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3일 주일예배 : 성령의 제자
성경의 순서를 쫒아가면 성령의 제자가 된다. 성령의 제자는 구원의 시각으로 반응한다. 가장 편한 명령은 나를 따르라. 가장 힘든 명령은 나를 부인하라. 가장 충격적인 명령은
와서 죽으라. 인데 성령의 제자는 부르심에 따라 이런 과정을 겪으며 되어간다.
1. 성령의 제자는 꽃겨나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함
유대인들이 그 지역 유력자들을(경건한 귀부인들) 선동해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낸다. 성령이 흥왕하니 사단도 흥왕한다.
하나님을 알고 교양과 예의있는 사람들이 돈때문에 유대인의 선동에 넘어간다. 이들에게는 보이는 외모가 중요했기 때문에
볼품없어보이는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냈다. (귀가 얇은 사람을 사단이 좋아하는데 남의 말 듣는건 선한것도 착한것도 아니다.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였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이 없으면 진짜 힘들때를 견딜 수 없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창기. 세리. 귀신들린 자들이 초대교회 직분자였고 어부였고 안디옥교회 직분자중엔 살인자도 있었다)
상대가 복음을 영접지 않을 때에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이 아무리 유력자라도 하나님 앞에서
티끌에 불과함을 알고 떨어버렸다. 유대인과 그 지역 유력자들에게 쫓겨났어도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놀라지 않고 이고니온으로 향했다.
성을 나가 발의 티끌을 떨으라는 적용을 어떻게 할까? 집을 떠날수도 있고 지역을 떠나는 문자적인 적용도 있지만, 집안의 문제나 안 믿는 가족, 남편, 아내의 돈
안락함에서 떠나는 적용일 수도 있다. 삶으로 돈과 집착을 떨어버리는 모습일수도 있다.
두 사도가 쫓겨났지만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다고 전도받은 이방인들이 말한다. 이들에게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다고 고난과 핍박이 없었을까?
(시기가득 유대인이 핍박함. 복음은 장차받을 환란) 시기, 반박, 비방을 당하고 유력자들을 선동해도 주의 일이면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고
나의 일이면 낙심이 충만하다. 바울과 바나바가 쫓겨났지만 주의 일은 성공했다.
적용: 내가 떨어버릴 세상 가치관 티끌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가? (주의 일 vs 나의 일)
2.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하고 배척당함.
박해에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 이고니온에서도 전도가 된다. 유대인에게 쫓겨났으나 평소대로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의 회당부터 가서 전도했다.
이에 유대인과 헬라인들의 큰 무리가 믿게된다. 원칙이 없었다면 여전한 방식을 버렸을 수 있다. 사마리아에서부터 땅끝까지 하나님이 말하신 순서대로
말씀에 순종해서 십자가를 길로 놓는 원칙을 지킬때전도가 열매를 맺는다.
유대인들이 핍박한다고 거기는 이제 가기 싫고 사람 많고 화려한 큰 극장에 가서 전도를 하는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말에
그렇게 했더라면 사실 그 속에는 욕심과 자기 의, 미움과 복수심이 있을것인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속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랬으면 열매가 막혔을 것이다.
여전한 방식은 진리중에 진리이며 이때부터 전도된 유대인과 헬라인들을 위해 문화와 언어적 구분을 두고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심)
유대인들이 또 다시 이방인 지도자들을 선동해 형제들에게 악감정을 품게한다. 누구를 향해 악감정을 품게 하는건 사단의 일이다.
그럴듯한 예기를 교양으로 포장해서 한다. 무조건 니편, 내편을 나누지만 복음편이 없다. 권력으로 죄인도 의인되게 하고 의인도 죄인되게 하는것이 세상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성령의 제자는 세상이 죽었다 깨어나도 감당 못할 적용을 한다. (바울이 유대인의 핍박에 신물이 날만한데도 유대교 회당부터 복음을 전한다.)
원수를 사랑하는 적용을 해야함.
*양육(교육은 반복이다) 반복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모고 최고의 교사다. 사람은 이게 어렵지만, 큐티로는 이것이 가능하다. 큐티는 반복이다.
매일 큐티를 하면 똑같은 삶을 사는것 같아도 예배에 가면 설렘이 있다. 성령의 인도로 오늘도. 오늘은 오늘의 말씀으로 살아야한다.
적용: 끝이 안보이는 반복에서, 끝이 안보여도 반복해서 참아야 할 일은 무엇이고, 몇 번 참았고, 몇 년 참았나요?
3.(그래서)전도할 때 양육이 필요하다.
두 사도가 오래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오래있어 는 크로노스: (넉넉히. 충분히 하나님이 오시는 시간까지 주의 시간을 기다림)
하루가 충분할수도 있지만 50년도 부족할 수 있다. 바울이 선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건 양육이었다. 전도는 양육을 통해서 완성된다.
전도는 미완성의 전도를 의미한다. 또 여기에 오래있어는 내 몸으로 비비고 문지르고 반짝반짝 윤이나며 닳도록. 의 오래있어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직접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내 몸으로 반짝반짝 비비고 문지르고 닳도록 살아내는 큐티 묵상과 적용이 있어야
양육이 되고 전도가 완성된다. 그래서. 양육을 잘 해놓으면 편이 갈린다.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사도들을 따르는 무리도 있는지라.
적용: 어디까지 양육을 받으셨나요?
4. 돌로치면 도망가야 할 때도 있다.
1. 쫓겨나며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다 했는데, 4번째는 돌로치면 도망가야 할 때도 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지난주부터 시가와 비방과 반박과 악감에 이어서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했다. 죽이려고 했다. (돌로침: 유대인의 관습) 이 일은 유대인이 주동이었다.
위해를 가하려했던 자들을 이방인, 유대인 관원들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해서 사도들에 대한 박해의 시도가 공권력을 동원한 조직적인 일이었음을 보여줌.
사단의 세력들이 얼마나 큰 위기감을 느꼈는지를 보여주고있다. (신물나게 괴롭힘) 아무리 괴로워도 바울 사도가 이렇게 살았다.
안디옥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에서는 스스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갔다고 나온다. 구원을 위해서는 옥문이 열려도 도망을 안 갈수도있지만 사명을 위해서는
수치를 무릎스고 도망가듯 피해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을 어떻게 알까?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분별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너무 괴롭히니 우린 유대인들 별로 없는 극장이나 광장에서 전도해요- 이렇게 말하는 것 우리는 이런것을 분별 못한다.
6절에 도망함으로 7절에 복음전도가 미완료형으로 적혀있다. 바울은 조건반사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어디에 있던지 바로 그 자리가 복음을 전하는 곳이 사명지이고 전도지가 된다.
(여전한 방식으로 날마다 끝나지 않을것 같은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면, 집 안에 있다가도 목장으로 교회로 자꾸 지경이 넓어지게 하심.)
(전도- 배척- 박해 -----> 순교하는 그 날 까지 계속 됨)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심. 좁은길이지만 바울처럼 이 길을 간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됐
다. 쾌락을 쫓아 살면 순간적 즐거움이 있어도 그것으로 끝이고 영벌이 있다. 복음으로 살면 그 끝에는 영생이 있다.
적용: 영벌의 쾌락의 삶을 살까
영생의 제자의 삶을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