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
사도행전 13:13-14 성령의 동행
1. 사람의 수행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13
바울일행이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에 있는 버가에 도착했습니다. 버가는 큰 배가 정박할 만한 항구가 없기에 앗달리아 항구에 도착해서 버가까지 걸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앗달리아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얘기가 없는 것이 앞 절 실루기야가 생각납니다. 밤빌리아주의 수도 버가는 아고라 광장과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있는 그 당시 만삼천명 정도의 대단한 규모의 도시였습니다. 이곳이 선교다운 선교지로 도착한 첫 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수행원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요한은 왜 돌아갔을까요?
1)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13절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 즉 수장이 바울로 바뀌었음을 나타냅니다. 왜 바뀌었나요? 마귀 바예수를 성령충만하여 주목한 사람은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의 진면목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3:10) 복음에는 타협이 없어야 합니다. 구원 때문에 무릎 꿇을 때도 있지만 전할 때는 타협이 없어야 합니다. 총독 서기오바울은 총애하던 거짓선지자 바예수를 야단치는 바울을 보며 신뢰하게 되어 주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보내심이 있고 성령님이 함께 동행하는 결정이기에 바나바는 바울을 영적 카리스마 리더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삼촌 바나바의 섬김과 위상은 바울과는 비교가 안되는데 바보에서의 일로 리더가 바뀌는 것에 인정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내 옆에 있는 것을 잊으면 이렇게 됩니다. 신분이 망각되는 것은 아주 순간의 일입니다. 수행원은 종입니다. 스스로 앞날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 내 마음속에서 수행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환경이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안디옥교회도 아닌 자기집(부잣집)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Q. 인정이 안되는 리더가 승진을 해서 사표 쓴 적이 있습니까? 그 후에 될 사람이었다고 인정한 적도 있습니까?
2)바울의 질병문제가 있었습니다.
14절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안디옥으로 방향을 전합니다. 버가는 지나치려고 들린 곳이 아니라 복음 전하려고 간 곳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실루기아와 앗달리아는 시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지나쳐야 되는 곳입니다. 이런 적용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착한 이곳은 저지대 지역으로 습한 환경이었는데 이것이 바울의 질병을 심각하게 발병하게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13 바울이 육체의 아픔으로 시험 들림) 비시디아안디옥은 평지로 돌아가는 길과 직선거리 산맥이 있었습니다. 평지는 저지대로 안전해도 바울의 질병을 발병하게 했기에 험한 길 토로스산맥밖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토로스산맥은 구불구불하고 거칠고 험악한 강도들이 늘 출몰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수행원 요한이 당연히 가야하는 상황인데 리더 바울이 인정되지 않아 싫고 힘든 토로스산맥은 더 싫습니다. 사실 죽게 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의 수행원을 하니까 천지를 지으신 성령이 동행해 주시는 것이 안보이는 것입니다. 수행원 요한은 결정적일때 안면 몰수하고 떠나 버립니다.
Q. 여러분은 가장 어려운 수행지에서 안면몰수 하며 어디에서 떠났습니까? 배우자와 직장에서 안면몰수 한 짓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수행원이 되어야합니다. 14
바울과 바나바는 요한이 떠나 앞이 깜깜했지만 더 나아갔습니다. 육체적 힘듦 보다 요한의 배신이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더 나가게 되면 그것이 영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 환경이 설득이 안 되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성령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자녀이면 모든 앞일을 성령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길이 없다면 성령님이 길입니다. 기막힌 상황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더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기막힌 상황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무조건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간다는 것이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목장예배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리더가 된 것은 고린도전서 15:9 작은 자로 뼈 속 깊이 죄인이라는 고백과 17년이라는 엎드린 훈련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모두 똑같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단지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모두 다 똑같이 종으로 아래에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6:16_휘페레테스=종=수행원) 바울도 요한도 노예입니다. 요한은 바울의 수행원이고 바울은 하나님의 수행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똑같은 수행원들입니다. 바울은 종과 수행원을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요한은 인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바울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트리지 못해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고 구속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였다고 생각하기에 죽을 때까지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명 받고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후에 요한이 이때의 일을 후회할 것이기 때문에 강도당한 사실을 쓰지 않았지만 고린도후서 11:26 여러 번 강도의 위험이 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간 버가에서는 돌아올 때 전도를 하게 됩니다. 특별히 산맥으로 간 이유 중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성령이 보내셔서 간 길에는 지나고 보면 완전히 성령님의 작품이었다고 찬양을 하게 됩니다.
Q. 삶의 역할에서나 기막힌 고난에서 하나님의 수행원으로 더 나아간 경험은 무엇입니까? 결혼, 직장, 자녀교육 등에서
3. 최고의 열매를 맺습니다. 14
이르러는 비시디아안디옥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앉으리라는 일반석을 말합니다. 회당은 일반석과 상석으로 나누는데 상석은 랍비들이 앉아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회당에 들어갈 때마다 바울이 가르쳤다고 합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율법학자에 바리세인 중에 바리세인이며, 바나바는 레위인이었기 때문에 랍비들의 상석에 얼마든지 앉아서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부터 들어갔다가 늘 이방인으로 선교를 나갔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세우심과 보내심은 너무나 절묘합니다.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버가를 지나치면서 전도하지 못했지만 비시디아안디옥을 갔기 때문에 갈라디아 이고니온등의 전도를 하게 하셨고 갈라디아 전도로 인해 바울 최고의 복음서 갈라디아서가 써졌습니다. 최고의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이후에는 알리라! 지나보면 알리라! 성령의 동행은 천지를 지으신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항상 진리의 성령으로 큐티하고 합심 기도하면 최고의 열매로 이루어지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Q. 성령의 동행을 하고 있습니까? 그로인한 최고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은우
안면 몰수하는 관계들이 있는데 저의 죄보다 못한 것을 알고 수행원으로 나아가도록
가고 서는 것과 사람을 분별하도록
예선
마켓관련한 일 나의 힘을 빼고 처소를 지키도록
양교의 때에 주님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말씀으로 잘 살아내기
다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접어두고 말씀보기
할 수 있는 것 까지만 하도록
겸손한 환경만 있는 것 알고 말씀으로 해석하고 회개하도록
보련
한주 말씀으로 잘 살기
영육보호하시고 매일운동하기
현경
하나님의 수행원으로 성령의 동행하심 바라보기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질서에 순종하고 위로 받도록
구직활동 중인데 인도하신 곳에서 성령의 동행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