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에스겔 19:1-14 애가를 지어 부르라 정정환 목사님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노래를 지어 부르라는 주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주님은 에스겔을 향해서 또 우리를 향해서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 애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애굽땅에 끌려가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1-4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합니다. 패역한 왕과 유다 지도자들에게 애가를 불러주라고 합니다. 여러분 애가가 무엇입니까? 슬픈 노래입니다.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말씀하실까요? 남유다의 패망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말과 행동으로 보여도 안 들으니 기억할 수 있도록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젊은 사자에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암사자가 키운 젊은 사자가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서 사람을 삼키다 잡혀 애굽 땅으로 끌려갑니다. 여기서 암사자는 유다이고 젊은사자는 여호아하스왕입니다. 젊은사자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먹이 물어뜯기 배워서 사람을 삼킨다는 점입니다. 짐승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삼킵니다. 이처럼 여호아하스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신을 숭배하고 폭정으로 백성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래서 열왕기하에서는 여호아하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합니다. 결국 애굽으로 끌려간 것은 자기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젊은 사자일때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고 삼키려고 하다가 암사자가 되어서는 허탄한 소망으로 또 새끼 사자를 키우려 합니다. 자녀를 좀더 잘 물어뜯고 삼키는 유능하고 용맹스러운 사자로 키우려고 합니다. 성령의 흥왕이 아니라 세상의 흥왕, 스펙의 흥왕을 꿈꾸면서 새끼 사자를 달달 볶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자에게 역으로 내가 물리고 뜯기는 날이 도래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뒤늦게 후회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온 젊은 사자인 여호아하스의 아버지는 요시야입니다. 유대 역대왕들 중에 가장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한 왕이었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배우기는 커녕 죄만 짓다가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 아니라 행복에 있다 보니 배워서 남주기보다는 배운것으로 사람들을 물어 뜯었습니다. 때로는 더 잘 물어뜯기 위해서 스펙과 지식의 바벨탑을 높였습니다. 집에서는 식구를 물어뜯고 학교나 직장이나 동료들을 판단하면서 물어 뜯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도 내가 들었던 말씀으로 지체들을 정죄하면서 물어 뜯었습니다. 이렇게 물어 뜯고 삼키려는 제 행동의 이면에는 세상성공에 대한 우상과 자기의와 허영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내가 가진 생각 내 기준이 맞다 라는 이런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견고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야생에서 사람을 삼키는 사자는 우리에 갇혀봐야 자기 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제가 그랬던 것이죠.
여러분 내가 갈고리에 꿰어서 애굽으로 끌려간 아픔을 겪을 때 그동안 얼마나 나의 완악함으로 사람들을 물어 뜯고 삼켜왔는지 그 실상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끌려가는 것은 심판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견인해 가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나 스스로는 절대 낮아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애굽이라는 겸손한 환경을 나에게 허락하심으로 나를 낮추시고 비천한 환경을 통해서 내 주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저를 갈고리에 꿰어준 직장의 상사도 종 살이 했던 애굽 시절도 나의 죄를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젊은 사자처럼 사람들을 물어 뜯고 또 삼키던 저에게 관계질서안에서의 순종을 배우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Q. 나는 요즘 누구를 물어뜯고 삼키려고 있습니까? 나의 완악함 때문에 갈고리에 꿰어서 끌려간 애굽은 어디입니까?
2. 바벨론의 옥에서 우는 소리를 그쳐야 합니다. 5-9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 알고 새끼 하나를 골라서 젊은 사자를 키웁니다. 여호아하스가 애굽에 끌려간 다음에 돌아오기만은 고대했던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서 자신들의 소망이 끊어진 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야김 후계자로 그 아들 여호야긴에게 다시 소망을 두지만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 또한 조상이 행했던 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악을 행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에 여호야긴이 아버지가 했던 모든 악한 행위를 답습했다고 하십니다. 첫번째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켰다면 두번째 젊은 사자는 사람을 삼킬뿐더러 궁궐을 헐고 성읍을 부수고 우는 소리로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아하스가 악을 행하다가 애굽으로 끌려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악에서 전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선왕들의 쇠락을 보고 그것을 경계로 삼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통치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이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말씀 앞에서 겸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음으로 멸망을 자초한 앞선 왕들의 초라한 뒤안길을 보았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살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결국 바벨론 감옥에서 37년간 갇혀 지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거하다가 심판의 사건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언제나 간증으로 듣습니다. 왜 그것을 듣게 하실까요? 돌이키고 회개함으로 멸망에 이르지 말라고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때마다 듣고 있는 이 모든 고백이 절절한 하나님의 애가입니다. 오늘 본문 6-7보면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키고 궁궐까지 헐고 성읍을 부스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지독한 자기애와 욕망대로 살고자 울었지 않겠습니까? 그 우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자신이 있는 곳 마저도 황폐하게 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사역자임에도 내 뜻대로 안되면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판단과 정죄 미움과 원망의 소리를 내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식구들의 성읍과 지체들의 궁궐들을 헐고 황폐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예배때마다 담임목사님께서 불러 주시는 애가를 듣고 또 단에서 성도님들이 매주마다 부르는 애가를 들으면서도 나는 내 욕망과 자기연민에 쩔어서 우는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걱정과 근심의 옥 두려움의 옥에서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얼마전에 교통사고를 통해 찾아오셔서 또다시 애가를 불러 주셨습니다. 사고당시 큐티말씀이 열왕기하 17장 예후의 떠나지 않는 죄였습니다. 여전히 떠나지 않는 죄가 내 속에 있고 그 우상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예후처럼 망하게 한다고 그날도 주님은 애가를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공동체에서 불러주는 애가를 듣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애와 나르시즘에 빠져서 걸핏하면 우는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나 자신도 황폐하게 합니다. 주님은 애가를 부르라고 하시는데 애가는 커녕 내 서러움에 울고 생색이 나서 울고 탐욕에 사로잡혀 울고 분노에 차서 웁니다. 그 우는 소리로 밤낮 내 곁에 있는 궁궐을 헐고 지체들의 성읍을 부습니다. 원망의 소리, 정죄의 소리, 비난의 소리, 판단의 소리, 남 탓하는 소리를 내면서 내 가정과 공동체를 황폐하게 만드는 주범은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에게 바벨론에 사로잡힌 환경을 허락하심으로 우는 소리의 실상을 알게 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바벨론의 옥에 갇히는 그 환경에서 비로소 옥중광채 말씀이 나에게 임합니다. 그 말씀이 나를 향한 애가로 들려지게 될 때 비로소 내 죄가 보이고, 우는 소리가 그 쳐지는 것입니다.
Q. 내가 강포함으로 갇히게 된 바벨론의 옥은 어디입니까? 그 옥에서 말씀이 들려 내 죄가 보입니까? 내게 주신 이 애가의 말씀을 듣고 이제 멈춰야 할 나의 우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3. 권세 잡은 자의 규를 붙들어야 합니다. 10-14
이스라엘은 물가에 심겨진 포도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를 맺고 가지도 무성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지들 중에 하나가 다른 가지보다 키가 유달리 높고 뛰어나 보였습니다. 그 가지는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면전에서 선포해도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백성들 까지도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선지자를 욕할 정도로 악했습니다. 결국 포도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땅에 던져진 것처럼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끌려가서 눈 앞에서 두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두 눈도 뽑히게 되었습니다.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하나도 없게 되고 열매가 모두 불에 탈정도로 유다의 왕권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처참한 일들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 애가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시드기야와 유다가 망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이스라엘 고관들에게 주어졌지만 역대하 36장 시드기야는 목을 곧게 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언제나 자기가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되려고 합니다. 아신교의 교주가 되어서 자기 확신을 숭배합니다. 결국에는 뿌리가 뽑히고 동풍을 맞아서 메마르고 불에 타는 사건이 찾아와야 내가 교만했다고 깨닫습니다.
올해1월 청년부에서는 전국 수련회인 큐티페스티벌이 있었습니다. 1600여명이 넘는 청년들이 은혜가운데 집회를 마쳤습니다. 큰 행사를 치르고 나니 제 마음속에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청년들이 영육간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뛰어나 보이기를 바라는 인정우상과 교만함이 있다 보니 제가 자랑하고 픈 것을 뿌리채 뽑히고 동풍에 마르고 불에 타버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가 한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맺게 하신 열매인데 내가 스스로 맺은 열매라고 생각했던 거죠. 열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메마르고 황폐하게 된 것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이란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제가 애굽 땅에 끌려가고 바벨론의 옥에 갇히고 분노 중에 뽑혀서 동풍에 마르고 불에 타기도 했던 모든 사건들을 겪었던 까닭은 교만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면 망한다는 오늘의 이 애가를 부르기 위해서 였던 것입니다. 교만하고 자기애로 가득 찬 저의 죄악을 보라고 연약하고 아픈 지체들이 아직도 저렇게 수고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불이 가지에서부터 나와서 그 열매를 모두 태워버린 것처럼 문제는 환경 탓도 아니고 지체 탓도 아니고 내 문제이고 내 탓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십니다. 내 속에 있는 교만함과 완악함과 시기심 탐욕 허영심 이런 죄악들로 인해서 내가 사람들에게 자랑처럼 보이고 싶었던 열매 조차도 불타고 가지들이 꺾이는 사건은 있어야만 했습니다. 나정도면 괜찮은 포도나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땔감으로 불에 태워지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교만에 빠져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는지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열매를 태우고 인생을 태우는 불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죄에부터 발화되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되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지식 경험 스펙을 강한 가지로 여기며 그것을 의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메마르고 가뭄이 든 땅에 심어 주시고 그분이 친히 권세 잡은 규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비록 지금 내가 광야에 심겨졌다 할 지라도 나의 권세 잡은 영원한 규가 되신 예수님 만을 굳게 붙잡을 때 다시 거기서 회복의 뿌리를 내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에게 그 광야에서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 내가 겪었던 재앙의 사건 현재의 고난 까지도 말씀으로 닦아서 고백하고 나누고 간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바로 그것이 오늘 내가 지어 부를 애가입니다. 모든 것이 까맣게 불에 타 그을렸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나의 규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나는 애가를 불러야 할 사명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이 끝내시기까지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이것이 애라가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하시는데 나의 완악함 때문에 애굽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탐욕으로 인해서 바벨론의 옥에 갇히기도 하고, 교만함에 모든 가지가 동풍에 마르고 불에 탈지라도 이것 까지도 애가로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기서부터 시작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애가를 지어 불러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나는 너의 하나님이여, 너는 내 백성이 됨이라는 언약을 매 순간 기억하기 위해서 입니다. 에스겔이 애가를 지어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다는 멸망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해서 시편126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지어 불렀던 눈물의 애가를 70년이 지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르는 기쁨의 찬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부르는 나의 애가가 훗날 내 식구와 자녀들과 내 곁에 있는 지체들이 부를 환희의 찬가가 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기쁨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나의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광야에서 내가 부르는 애가를 반드시 구원의 송가로 확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내 인생의 흑역사 망하고 수치스러운 그 어떤 사건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구원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내 수치와 고난 그 어떤 것 하나도 주님께서 쓰시면 버릴 것이 없기에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Q. 공동체 안에서 나를 위해 불러 주시는 애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내가 지어 부를 애가는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를 위해 그 애가를 부르시겠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현재가 나의 완악함으로 온 시간인 것을 알고 바벨론 같은 마음 내려놓고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예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양교과정 잘 마치도록(스스로에게 칭찬과 위로의 말 건낼 수 있도록)
가족들 구원위해서 애통하는 마음 가지도록
나의 힘 빼고 하루만 말씀에 잘 살아내도록
다인
공동체 안에서 나를 위해 부르는 애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회사에서 열심이 올라올 때마다 말씀에 잘 내려 둘 수 있도록
만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 알고,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용기와 믿음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보련
공급자 보호자 구원자 되시는 주님 만나서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큐티에서 약속의 말씀 찾을 수 있도록
현경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을 알고 자기 확신 내려 둘 수 있는 용기 주시고 위로 받고 회복되도록
내 안에 혈기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지혜 허락해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