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7, '성령의 기대', 김양재 담임목사님 (행 12:11-17)
성령의 간절한 기도는 초대교회에서 서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래서 지나고 보니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일이 필요했다. 수준 높은 베드로 사도가 빡센 고난의 역할을 감당하니 교회가 기도하게 된다. 다른 분들의 고난을 보며 우리는 항상 옷깃을 여며야 한다. 나 대신 당하는 구나 하며 기도하면 그것이 성령이 기대하시는 인생이 되어 효과적으로 서로를 도와주신다.
성령의 기대는
1. 세상의 기대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11-12절
'정신이 들어 알겠노라, 깨닫고' 라는 말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는 죽음 직전에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구출되었다. 그런데 구출된 이후에도 한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기가 막힌 기적의 현장을 지날 때는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신앙은 철학이 아니다. 실재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은 못박혀 죽으셨지만 온 인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근데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 피가 내 맘속의 큰 증거가 되어 그 피로 내 죄를 씻어주신 것이 된다. 대단한 죽음을 할수록 먼 사람까지 은혜가 된다.
베드로도 그 당시는 감옥에서 구출될 것을 다 알고 논리적인 해결책으로 이 일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너무 큰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니 정신없었을 것이다.
저도 남편 구원받고 떠난 일이 하루 만에 일어났는데 어찌 정신차렸겠는가. 그래도 급히 일어나신발 신고 겉옷 입고 따라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훈련되어있었기에 제가 한 것은 구원을 위해 목사님께 전화 하라는 성령의 명령을 따랐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절대적인 일이었다. 주님이 이렇게 쓰셔야 하는데, 제가 성령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울기만 했다면 얼마나 성령이 탄식하셨겠는가. 그러니 하루하루 말씀 듣고 행하는 일이 최고의 구원을 이루는 일이다. 날마다 큐티하고 구원에 대해 생각하니 남편이 쓰러졌는데더 구원이라는 생각이 났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복음의 신발을 신고 전신갑주를 순간순간 입을 수 있었다. 그날 밤 그 무서운 철문이 열리는 구원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구원받자마자 저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지나고 나니 베드로의 쇠철문에 준하는 어마어마한 구원을 이루셨다. 근데 여러분 중에는 제가 구원 구원하니 떡이 생기냐며, 어떻게 쇠 옥문과 비교하냐고 하는 분이 계신다. 정말 구원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다. 베드로도 그런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깨달음이다. 무엇을 깨달았나? 정신차린 베드로는 이제야 참으로 헤롯의 손과 유대백성의 모든 기도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깨달았다. 이게 무슨 기대인가? 헤롯의 기대 유대백성의 기대가 베드로가 죽는 것인데, 단순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겠는가? 베드로가 이 죽음이 두려웠다면 어떻게 옥에서 그렇게 평안이 잠들 수 있었겠는가?
큐티할 때 생각을 많이 해야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은 헤롯으로 분한 사단이 나를 잡으려고 너무나 기대하고 있는데 그들의 기대에 벗어났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세번째 투옥되면서 이것이 사단의 궤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 넘어가지 않겠다는 성령의 깨달음이 온 것이다. 사단의 기대는 믿음 없는 헤롯 같은 이 세상 왕과 유대인 같이 믿음을 빙자한 세상사람이 내가 계속 방황하고 의심하고 원망하고 의욕에 묶여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권세 많은 아버지와 믿음을 빙자한 욕심 많은 어머니가 부러움의 대상이겠지만 조금 있으면 자녀를 사단의 기대에 부응해서 지옥의 나락에 떨어지게 하는 부모가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너를 기대한다고 하며 사단의 백성을 만들게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의 부모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피해준다고 아이들을 야단치는데 요즘은 이기지 못하고 성적 안나온다고 야단친다.
헤롯도 로마의 분봉왕인데 뭐가 부족했겠는가, 그런데도 베드로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헤롯도 모른다. 부모도 몰라서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고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사랑한다면서 지옥으로 끌어가는 미션을 부모들이 수행하는 것이다. 그 기대가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끝없는 세상 기대가 가족 사회 내 자신으로부터도 있다. 사단이 활동하는 곳이 좁고 더럽고 있기 싫은 옥이기에 원망이 나온다. 근데 돈이 많으면 사단은 음란 쾌락으로 곳곳에서 묶여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부모 자녀 회사 상사의 배후에 있는 사단의 궤계를 봐야 한다. 어떻게 보나?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보는 것인데, 그럼 우리 인생도 미리 볼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부터 알아야 한다. 사단을 물리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교회를 나가도 유대인처럼 기복적으로 하나님을 알면 사울처럼 하나님 믿는 사람을 죽인다. 그리스도인이 아는 것 처럼 알아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 찾고 명령 찾고 '왜?'를 생각하며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처럼 큐티하는 것은 사단의 궤계를 아는 최고의 방법이다.
저는 남편의 옥에 묶여있었다. 그때는 나의 훈련을 통해 묶어놓으셨다. 그러나 남편이 천국간 그날 밤 이후 하나님은 시간이 아까우니 저를 더 이상 옥에 둘 필요가 없어 옥에서 나오라고 곧장 사명으로 나가게 하셨다. 생각해보면 하루도 간병하지 않게 하셨었는데, 카이로스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을 헛되게 쓰지 않을 것 같아서 하나님이 상징적으로 하셨다는 생각이다. 제가 30년간 고통도 많았지만 뒤로 침륜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언제는 옥에 있는 것이 베드로의 훈련을 위해 필요할 때고 지금은 그것이 아니다. 정신을 차린 베드로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 갔는데 그 때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가장 먼저 보고 싶어한 집이 마가와 마리아의 집이었다.
베드로가 극적인 구원을 이루었다. 쇠문에서 나왔다.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 그럼 이걸 나눌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근데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감옥 갔다온 것이 너무 창피하다. 저 로 말하면 남편이 젊었는데 갑자기 죽은 것이 창피해서 그렇게 남편이 구원이 되었어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구원이 아니다. 구원의 기쁨이 아니다. 남편의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세상의 시각으로는 젊은 여자가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되었다. 이 때 남편이 구원되었다고 누가 그걸 기뻐할 수가 있겠는가? 형식적으로 큐티하며 나눈 것이 아니라 구원을 간절히 바라며 하던 그 큐티를 같이 한 지체들은 기뻐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도 다들 너무 놀라 저보다 더 정신이 없어했다.
베드로는 120문도가 기도하던 마리아의 집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이 일어났기에 그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큐티를 해도 구원을 향한 체험이 없으면, 큐티를 하지 않으면 정말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기가 어렵다. 베드로가 죽음에서 살아나서 나누고 싶은 목장을 찾아간 것 처럼 나에게도 영육간의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기뻐하는 공동체가 없다면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믿는 사람은 자기 공동체가 있다.
베드로는 이 사건으로 헤롯의 기대를 버렸다고 한다. 이것 처럼 세상의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으것 같다. 언어 하나를 무심히 보지 말라.
적용) 세상의 기대를 벗어났습니까? 아직도 한 몸에 받고 있습니까? 세상을 내려놓았는가, 아직도 움켜쥐고 있습니까?
부잣집 아들이지만 세상의 기대를 벗어난 마가 이야기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라고 한 것은 이 곳에만 있는 아주 특이한 것이다. 마가와 마리아가 다 중요하지만 아들 이름부터 이야기 하는 것은 굉장히 드물다. 그 아버지는 안 나오는데, 그 아버지도 마가복음에 보면 물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이 따라가는 곳에서 유월절을 베풀라고 나온다. 그 집이 마가의 집이라서 아버지도 믿음이 있었다고 보인다. 믿음 있는 아버지가 큰 집을 물려주고가서 유월절을 베푼 유명한 집이 되었다. 이 집은 행 1장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하던 곳이었고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난 곳이고 이후에는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로도 쓰임 받았다.
오늘 가장 위대한 일을 한 것은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잡힌 후에 이들도 다 잡혀갈텐데, 마가의 다락방에서 생명을 내놓고 기도회를 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집이 굉장한 것이다. 이 집은 유월절을 베푼 이후로 언제나 섬김이 한결같았다. 이런 마리아의 섬김이 마가를 낳게 했다고 본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이고 헬라어와 라틴어를 못하는 베드로의 통역도 해 주었다.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어머니의 믿음으로 성경에 올라간 것 같다. 부잣집 아들답게 바울의 1차선교여행 때 중간에 가버렸다. 다들 왜 갔나 하는데 부잣집 아들이어서 가버렸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의 아들로 칭함을 받고 바울도 자기의 유익이 된다고 완전히 회복한 사역자다.
이렇게 부잣집 아들이 선지자 제사장도 아닌데 마가복음을 썼다는 것은 너무 놀라운 일이다. 근데 전 이것이 마리아의 다락방의 섬김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 정도로 쓰임 받는 것은 수십년 넘게 큐티모임을 했고 우리들 교회의 태동이 시작된 우리집 모임의 섬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가는 애굽에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건립하고 그 감독까지 지내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그 당시 마가는 교회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이기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길게 수식어를 붙였다. 그 당시는 너무나 유명한 분이었다.
적용) 여러분의 섬김은 마가의 다락방처럼 한결같으십니까, 기복이 심하십니까? 목장 한번 하려면 눈치를 봐야 합니까? 너무 눈치를 보게 하는 다락방인가요?
2.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13절
로데 이야기
영접하러 나왔다는 말은 귀 기울이고 경청하고 명령 듣는다는 것이다. 로데는 말씀을 잘 들었다. 성도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다들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로데는 귀 기울이고 경청하며 하나님 명령 듣는 데 가장 선수였다. 가장 깨어있기 때문에 나갔다고 하는 것이 맞다.
14절
문밖에서 얼굴도 안 봤고 목소리만 들었는데 베드로인지 알았다.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문 열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바로 안으로 들어와서 소식을 알렸다.
15절
베드로가 밖에 와 있다고 하니 로데보고 미쳤다고 했다. 70인역에 보면 하나님이 내리신 전쟁의 심판의 공포 아래 열방이 미쳐 날뛰는 것을 묘사할때 이 단어를 썼다. 안 믿는 자 입장에서는 전쟁이 와서 미쳐 날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근데 같은 말을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그의 메시지를 부인하는 자들로부터 귀신들려 미쳤다고 할 때, 베스도가 바울에게 그의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할 때 쓰였고, 바울이 방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 그들이 필히 너희들을 미친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할 때 쓰였다. 즉 영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로데는 예수님께 미치고 베드로에게 빠졌고 미쳤기에 금새 목소리를 알았다. 로데가 알아들은 것은 영적인 것인데 간절히 기도하던 그들은 로데를 미쳤다고 헛것이 보였다고 육적으로 말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로데는 미완료 과거로 성도들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말했을 때부터 성도들이 그녀에게 미쳤다고 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힘써 말하며 확신에 차서 베드로가 왔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로데는 계집아이고 노예고 종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주님에게 또 베드로에게 푹 빠져있기에 금세 알아본다.
바울도 정오의 회심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이기에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누가 박해하고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 미쳐있기에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께 미쳐있지 않기에 괴롭고 힘들고 불평이 많다.
어디에 미쳐있을 때는 숨소리만 들어도 안다.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기에 사랑 찾아 삼만리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금세 끝이 온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 헤롯과 대제사장의 유대인이지만 성령이 기대하는 사람은 바로 노예이고 계집종은 로데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눈으로 보이는 곳에 기대를 걸기에 인생을 실패하는 것이다. 로데는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도 안다.
이전에 베드로는 자신을 겉모습으로 알아본 계집여종에게 고발당했다. 베드로는 그 여종을 무시하다가 그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 인생 최대의 배신을 행했다. 근데 세번 감옥에 갔다오니 똑 같은 나사렛 땅이지만 믿음으로 알아봐주는 여종을 만났다. 여종을 만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예전의 수치를 회복하게 하셨다. 이 여종과 너무 친밀했다. 베드로가 편견이 있는 유대인 중 유대인이나 여종과 친밀했기에 이 여종이 제일 먼저 알아봤다.
우리는 기대할 것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대하다가 세상의 옥 속에서 강력히 묶여있는 것이다.
명절이 가까워온다. 그런데 계속 부모형제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래서 옥 속에 갇혀있다. 어떻게 오빠가 언니가 그럴 수 있냐고 한다. 그러고 장유유서 서열 이런거 다 따지면서 묶여있다.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따지는 것이 많은가? 예수 믿으면 포기하고 내려놓고 이타적으로 살고 정직하라고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것이다.
옥 속에 묶여 살다가 전적인 은혜로 구출되어서야 노예이고 여종인 로데의 믿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런 옥에 갔다오니까 로데를 만나게 하신다.
제가 깨달은 말씀이 너무 신기해서 제가 이야기를 하면 저에게 은혜 받는 사람은 로데 같은 사람일 것이다. 내가 차별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밤새 깨달은 말씀을 좋아해 주니 저절로 친구가 된다. 근데 우리들교회를 다녀도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환경이 좋아도 어렵다. 우리가 마음이 부유하면 정말 말씀이 안 들리는 것 같다.
십일조 순종 못하는 집사님
성령의 기대는 스펙 없고 신분이 이상하고 주홍 같은 붉은 죄를 지어도 로데같은 자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여종이고 죄를 많이 지어야 하고 이상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고넬료 같은 사람도 있다.
적용) 여러분은 누구에게 미쳐있나요? 그리고 누구를 미쳤다고 하고 있나요? 영적 육적으로 잘 생각해보라.
모두가 미쳤다고 한다. 예수 믿는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는 것은 면류관이다. 그러나 헤롯 입장에서 미쳤다고 하는 것은 벌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입에서 미쳤다는 이야기가 언제 나오는지 이야기해보자
16절
출입문은 거리에 바로 노출되어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와 문 앞에 선 것이다. 서 있는데 당연히 헤롯의 군사들이 잡으러 나와 있었을 것이다. 굉장히 긴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로데가 베드로를 알아본것 가지는 좋았는데 문을 안 열어주니 계속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매우 아이러니 하다. 그 무서운 헤롯의 옥문은 저절로 열렸는데 내 사랑하는 동지가 있는 마가의 다락방은 굳건히 닫혀 있다. 우리는 언제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안 도와주고 안 도와줄 사람이 도와줄 경우가 있다.
문 두드리고 계신 주님을 세워두고 문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한 것 같다. 이와 똑 같은 일이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도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맨 처음 보고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이 의심하고 믿지 않았다. 사도들은 그 말이 허탄한 것처럼 들려서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14에 그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성령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
베드로의 생환을 알린 사람도 계집종이었다. 그러니 성령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은 기대할 것 없는 사람을 기대하는 사람이다.
제가 남편의 구원을 가지고 에스겔 말씀을 외칠 때 에스겔 말씀에 미쳐있었다 누가 뭐래도 에스겔 말씀으로 그날 그날 여호와 하나님이 제 인생을 해석해주니 너무 확실했다. 그런데 제가 간증하면 에스겔 말씀도 처음 들어보니 말씀도 부인하고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니 왠 젊은 여자가 안되었다고 하며 저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각계각층에서 골고루 만났다. 저는 에스겔 말씀이 너무 맞는데 여종보다 가진 게 많았다. 여종은 전혀 개념치 않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 슬프기도 하고 연민도 올라오고 내가 언제까지 에스겔 간증할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기에 여기까지 왔다.
적용) 여러분은 기대할 것 없다고 무시하는 로데가 누구인가? 기대할 것 없다고 하는 로데에게서 말할 수 없는 기적을 본 적이 있는가?
성령의 기대는 세상의 기대를 벗어버리고 기대할 것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헤롯을 떠나고 로데를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번째,
3. 잘 떠나는 것입니다.
17절
성도들은 베드로를 보고 너무 놀랐다. 그리고 베드로를 환영했다. 그러니 베드로가 조용히 하라고했다. 옛날 같으면 베드로도 흥분했을 텐데 정신 들고 깨달은 베드로는 완전히 자기 주제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호기롭게 주를 전할 때가 아니라 숨을 때인 것이다. 때마다 다른 인도를 받게 하신다. 그 동안 베드로를 보면 성전에서 앉은뱅이를 고쳐주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옥에서 전할 때 채찍질 당할 때 등등 그 동안 담대히 전했다. 그래서 삼천명 오천명이 돌아왔다. 근데 이번에는 옥문이 열렸는데 이것 간증하는 것이 아니라 숨는다. 나서지 않는다. 엄청난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헤롯왕을 넘어섰다. 주께서 하던 일만 말하고 이 말만 전하라 하고 떠났다. 전하라고 했다. 나는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셨으나 내 자랑 같아서 어디로 가도 안 전한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베드로에게 기적의 역할을 너무 많이 보이셨기에 이제는 바울의 단계인 말씀이 도입되어야 할 때이기에 자연히 숨게 하시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베드로가 야고보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라고 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안 믿었다. 근데 고전 15:7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야고보에게 특별히 보여주었다고 나온다. 동생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한번 나타나서 보여주시니 야고보가 믿고 똑똑해서 야고보서를 쓰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굉장히 영향력이 큰 지도자 역할을 했다. 그럼 예수님의 영향력이 크기에 야고보를 인해 이것도 흘러 떠내려가는 조선왕조가 될 뻔 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의 고난을 사도들에게 점점 옮겨주었다 야고보가 그러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일개 사교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베드로 또한 감옥에서 구출된 이후 죽음을 불사하고 결사 항전하면서 돌격했을 텐데 그 밤으로 떠나버렸다. 촛불이 바울에게로 옮겨지게 된다.
근데 간절히 기도했던 이들이 로데에게 미쳤다고 하며 불신앙을 보이는 것은 약간 성령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에게 내려온 기도의 응답은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갇히고 떠나고,,, 이런걸 생각하면 수준이 높다. 그래서 5절의 성령의 간절한 기도를 했다. 이 간절한 기도의 언어가 예수님이 겟세마네 기도하셨을 때의 그 기도와 같은 단어이다. 그러니 이것은 성령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면 큐티가 안된다.
베드로는 이때가 떠날 때임을 알았다. 4장에서는 베드로가 옥에서 나온 후 성도들이 기도하고 땅이 진동했다고 했다. 근데 여기에는 기도하고 나서 불신앙으로 로데를 미쳤다고 했다. 거기의 수장이 베드로이다. 그걸 보면 베드로도 성령의 기대에 살짝 못 미친것도 있기에 떠나야 하는 것도 있다. 여기까지의 베드로의 역할이라면 가장 큰 기적의 주인공으로 박수받게 해서 베드로를 떠날 수 있게 해주신 것이 베드로를 향한 엄청난 성령의 기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떠날 때를 아는 것은 성령의 기대를 가장 만족시켜주는 것 일수도 있다. 왜냐하면우리 인생은 다 똑같기 때문이다. 역할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무작정 자의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으로, 헤롯의 군사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찾을 것이기에 이 때는 피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으로 사인을 받았다. 그 전에는 죽이려고 자신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1-2년 후에 안디옥 예루살렘 공회에 잠시 나타났지만 사역으로는 여기가 끝이다. 물론 그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아그립바는 죽었지만, 그가 죽었다고 자신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뒷모습도 아름답게 사라졌다.
베드로가 그 대단한 옥문에서 헤롯을 물리치고 나왔는데 베드로가 마지막 떠나는 것의 연결점이 다른 사람이 아닌 계집 여종 로데였다는 것이다. 로데만이 이 때 베드로를 알아봐줬다. 얼마나 사람을 외모로 보는지 알아야 한다. 120문도도 있지만 로데가 베드로의 수호신 역할을 했고 알아본 사람이 로데밖에 없다. 나중에 나를 알아볼 사람은 로데 같은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적용) 가장 박수 받을 때가 떠날 때라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성령님이 너무 정확히 베드로를 올려주시고 베드로가 믿음 있으니 떠날 때를 아는 것이다. 이렇게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목사님 바람 - 광화문에 나가서 말씀묵상과 가정 중수를 외치는 대회 하고 싶음
말씀 맺음
성령의 기대는 세상의 기대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헤롯이 나를 죽이려고 해도 나는 헤롯이 너무 좋아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고 로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성령의 기대는 로데처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믿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친밀하다. 베드로가 멋있는 것은 마지막에 로데와 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떠나야 한다. 박수 받을 때 떠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박수 받을 때 떠나게 하셨다. 헤롯의 옥에서 구해주셨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성령의 기대가 있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다. 우리 주님은 정말 위대하시다 세상의 기대인 헤롯의 기대를 벗어나게 하시고 기대할 것 없는 자를 기대하게 하시고 기적의 주인공일 때 떠나게 하신다. 위대하신 주님이 아니시고는 아무도 이렇게 할 수 없다.
[기도제목]
* 이지현
1. 모든 헤롯의 기대가 무너져 갇힌 환경의 대표님께 광채의 말씀이 들려 이혼을 막아주시고 우리들교회로 인도될 수 있도록
2. 나는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으려는 자기우상과 나르시시즘의 죄에서 떠나도록
3. 옥에 갇히는 여러 환경을 미디어에 미쳐 회피하는게 아니라, 로데를 알아보고 목장을 온전히 섬기는 성령의 기대가 되도록
* 안무옥
1. 추석 가족 추도예배 주님 주관해주시기를(인도하는 아빠에게 구속사가 들리기를)
2. 부모님 건강 회복 (엄마 고관절 수술, 아빠 폐섬유화 약 복용 지속할 수 있기를)
3. 향후 진로에 있어 주님께 그리고 목장에 묻자와가로되 하며 갈 수 있기를
* 김교희
1. 내가 모든걸 바꿀수 있다는 마음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더 크게 인정하게 되도록
2. 근무지 이동 관련하여 소문에 휩싸이지 않고, 내 유익보다 예배와 구원을 위해 근무지를 두고 기도할 수 있도록
3. 엄마 목장 의미없다 하시는데 그래도 붙어가실 수 있도록, 동생 구원 위해
4. 인정중독 애정결핍 등 여전한 내 모습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들어주시지 않아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 주 보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