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간절한 기도
본문: 행 12:4-10
설교: 김양재 목사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기도 제목에 큐티하시는 타 교회 분의 조카가 며칠 전 아빠가 보는 앞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불신자 가정인데 어떻게 해석할까? 코로나로 경제와 가정이 무너지고 기도제목이 수천 개가 올라온다. 성령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요즘 교회는 성령의 박해가 있다. 교회를 다닌다면 다 똑같이 보며 노골적으로 싫어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박해가 되기 위해 성령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1.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기도한다.
4-5절,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이에는 성령의 박해를 말한다. 헤롯의 박해를 받고 야고보는 참수당하며 한 줄 순교를 했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다. 교회는 이미 두 번씩이나 베드로사도를 포함해 다른 사도가 옥에 갇혔던 경험을 했다. 사도행전 4-5장을 보면 한번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주께서 부활하신 분이라는 복음을 전했다가 갇혔고, 5장 18장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시기로 투옥되었다고 했다. 두 번의 위기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사도는 눈부시게 성령의 증언을 하면서 5장 18절에 채찍질을 맞으면서도 기뻐하면서 풀려났다. 그런데 또 다시 위기에 부딪쳤다. 더욱이 야고보 사도 순교 직후에 있었던 일이고, 교회를 암살하려는 헤롯의 음모가 분명히 드러난 시점이었다. 헤롯의 폭력적 행사에 교회가 유일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가 함께 기도하니까 합심기도 중보기도라고 하고 싶었으나, 본문대로 간절히로 했다. 단순히 이것은 헤롯의 폭력에 대항하는 게 아니라 교회를 말살하려는 강력한 영적 세력에 대항하는 영적 전투다. 그래서 오늘 갇혔고, 기도하더라는 늘 내가 말하는 미완료과거시제다. 헤롯 편에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베드로 한 사람을 열여섯 명에게 지키게 하고 최선을 다해 지속적으로 했고, 교회도 마찬가지로 계속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옥이 얼마나 지독한 옥인가 하면 4절에도 옥에 가두고 5절에 옥에 갇혔고, 6절에 옥을 지키니, 7절에 옥중에 광채가 10절에 옥에서 나오니로 짧은 본문에 네다섯 번 나온다. 헤롯이 물셀 틈 없는 경계로 하루를 4등분해서 4명씩 각각 교대로 지키게 했다. 헤롯은 로마에서 철저히 헬레니스트로 유다에서는 유대인으로 철저히 변신하며 권모술수에 자신도 감탄했을 것이다. 굉장한 정치가다. 이런 헤롯의 지시로 베드로가 옥에 갇힌 것이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다.
우리도 시기마다 각자의 감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옥이 예수의 환란이 되어야 간절한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에서와 같이 예수의 환란과 나라의 참음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 안의 환란과 참음은 무엇을 뜻하나. 예수를 믿는 것이 사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 자신이 통치받고 통치해야 하기에 오는 어려움을 견디는 것을 말한다. 환란 때에 외부에서 오는 환란보다 예수님 때문에 그 환란을 내가 해석하고 자유의지로 자발적으로 인내하는 것이 내 자신을 통치하는 것이다.
나의 환란으로 참으면 아직은 아니다. 코로나가 왔는데, 내 환란으로 그냥 참으면 얼마 못 간다. 그것이 예수님의 환란이 되어야 한다.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되어야 한다. 예수의 환란을 거치지 않는 자는 아무리 교양으로 포장해도 사건이 오면 옥에서 두려워한다. 내 옆에 무서운 열등감을 가진 한 사람 때문에 일생 갇힐 수 있다. 로마의 권력을 가지고도 헤롯처럼 열등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럼 헤롯에게 왜 열등감이 있는가. 이두메 족속으로 원조가 에서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방인보다 더 무시하는 게 혼혈족이다. 그들은 대대로 이스라엘 앞길을 가로막는 족속이 되었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는 에서가 칼 들고 막았고 출애굽할 때 그의 후손 아말렉이 막아섰고, 바벨론에 잡힌 이스라엘을 죽이려는 하만이 아말렉에서 나왔고, 그 후손인 헤롯대왕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영아를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였다. 대대로 왕을 해도 로열패밀리지만, 포악하고 음란하고 살인을 밥 먹 듯한다. 헤롯 가문의 열등감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다. 우리 옆에도 더 높아지고자 옆에 모든 사람을 초토화시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도 오늘 헤롯 가문처럼 서론 본론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헤롯처럼 이 땅에서 왕으로 누리기까지 하면 대대로 믿는 자를 박해하며 누리고 있는 악한 그들처럼 천국 가기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헤롯이 구속사적으로 보면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바이런은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1천년도 부족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한 시간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시간의 개념이 카이로스의 시간이 아니면 잘사니 못사니 한다. 우리가 바라는 종착역은 천국이기에 헤롯에게 죽임당한 야고보가 승리한 것이다. 아멘.
(한 목자님의 나눔) 직장에서 세속적인 박해를 받았다. 지난 월요일 한 통의 이메일이 왔는데 내용은 1번부터 9번까지 나의 험담이 있었다. 너가 얼마나 잘났냐, 겸손해라, 너랑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느냐며 인격에 대해 욕을 써놨는데 이메일 내용이 참기가 힘들고 수치스러워서 출력하고는 지워버렸다. 마음이 요동치며 어찌할 줄을 몰라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우연이란 없기에 이 또한 하나님 섭리라 생각하며 기도하며 마음이 요동하지 않게 해달라고 큐티기도회에 기도제목을 올리고 나니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경고의 흉한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메일 내용을 크게 복사해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회사 창문에 크게 붙여 놨다. 우리들교회 다녔다고 나에게 해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 같다. 먼저는 내게 주시는 흉한 경고의 말씀으로 받게 되어 교만하고 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내려오게 한다는 말로 들었고, 피하지 않고 내 수치를 드러냄으로 자유함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보면 감사할 내용인 게 업체와 만나서 술 먹고 돈 받은 내용이 아니라 잔업을 하려면 혼자해라, 아침 조회 하지마라, 오너가 원하는 상의 내용이었다. 그래서 흉한 경고의 메일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내가 악한 길로 갈 때 돌아오게 하는 기념비로 저장했다. 부족하지만 말씀의 영으로 해석하여 반대의 영으로 행하게 함에 주님의 말씀을 항상 듣고 있으라는 경고의 말씀으로 듣겠다. 이것이 헤롯의 영에 반대의 영으로 대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니까 말씀이 착착 달라붙는 게 말씀이 아주 잘 들렸다고 한다. 이게 바로 예수의 환란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분이 큐티기도회에 기도를 올렸다고 하니, 교회의 간절한 기도를 받았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기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2-3천 명이 기도 제목을 소리내어 읽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교회의 합심기도 중보기도가 이때 필요하다. 영적전투의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이와 같은 성령의 간절한 기도이다. 그러면 모두가 성령이 임해야 할 것이다. 진리의 성령님이니 말씀을 알고 성령이 임한 성도들이 한 번에 소리 내어 읽어주면 아주 파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용, 어떤 곳에 갇혔는가. 나의 환란으로 인한 옥인가, 예수의 환란으로 인한 옥인가. 큐티 기도회에 몇 번 들어오는가? 다들 큰소리로 읽고 있는가? 지금까지 교양 있게 기도 제목 아 내놓은 사람이 내놓으면 좋겠다. 자기 죄를 보며 내주시기에 읽는 그 자체가 은혜가 된다. 큐티 적용처럼 기도 제목을 내주면 좋겠다.
2.손을 쓸 수 없는 그 밤에도 평안을 주신다.
간절한 기도에 어떻게 응답했는지가 6-10절 내용이다.
6절,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누워 자다라는 단어는 죽다는 의미도 있다. 죽은 듯이 깊은 잠을 잤다는 것이다. 두 군인이 양쪽에서 쇠사슬을 한 사람씩 묶어놓으니 뒤척일 수도 없다. 팔도 벌린 채로 자야한다. 파수꾼도 밤중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야할 것 아닌가. 두 명이 뒤척이니 잘 수가 없다. 파수꾼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뒤척이면 베드로가 죄수인데 대접했겠는가. 물론 4교대로 지키니까 파수꾼도 잠을 잘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쇠사슬로 묶어놨는데 하며 잠을 자는데 뒤척일 때마다 조롱했을 것이다. 사실 파수꾼은 유대인인데, 예수님 오기 전에 다 같은 교회 다녔다. 그런데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그런데 그들도 나라의 녹을 먹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나는 것은 예수님도 유월절 만찬을 베푸시고 조롱받으며 십자가 지셨다. 그리고 침 뱉음을 당했다. 그런데 지금 유월절이다. 베드로에게 누가가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 전날 밤은 직역하면 그날 밤이다. 유대인의 하루 개념은 그날 저녁부터 시작해 그다음 날 저녁까지이다. 출애굽도 그 밤에 있었다. 사형이 내일이면 집행되면 그 밤인 것이다. 처음부터 풀어주거나, 아예 안 갇히게 할 수도 있는데, 이 하나님의 섭리는 알 수 없으니 순종하면 된다. 택자는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출애굽기 12장부터 부면 그때부터 430년이 되던 그 밤이다. 29절에 밤중에, 30절에도 그 밤에 31절에도 밤에도이다.
출애굽기 12:29 - 31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드디어 그 밤이 왔다. 손을 쓸 수 없는 날이 일어난 그 밤이 430년만에 일어난다. 도망갈 길이 없는 그 밤이 온다. 택자라면 도망갈 길 없는 그 밤이 온다. 그 밤을 위해서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밤, 하지만 미리 얘기해주셨다. 430년이라고. 그래서 그 밤이 되기 전에 내 자녀, 바로에게 계속 전해야 한다. 이 밤이 바로에게는 심판의 그 밤이고, 여호와께서 치신 그 밤이다. 그럼에도 애굽의 백성은 바로의 말을 듣고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심판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다 바로의 말을 듣는다. 집안에서도 믿는 어머니 말보다 안 믿는 아버지 말을 듣는 자녀가 많다. 그러다 하나님이 치시면 살아남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믿는 어머니를 다 핍박한다. 누구의 말을 듣는가가 심판과 구원을 구분한다. 인간은 다 악하고 이기적이라서 많은 있는 데에 붙는다. 다 썩고 넘어져도 아직도 살 돈이 있고 집이 있기에 안 믿는다.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 기사에서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는 말이 20번 나오는데, 하나님이 주어가 된 게 10번이고 바로가 주어가 된 게 10번이다. 그런데 바로가 강퍅한 게 하나님이 주권으로 된 것이다. 주어가 달라도 똑같은 이야기인데 모두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헤롯을 강퍅하게 하신 게 하나님의 섭리라고 해석하는 게 구속사다. 아무리 악하고 못됐어도 하나님의 섭리라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인내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 밤을 지나서 천국 백성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게 너무 쉬운 것이다.
한 반에 60명이 있는데 매를 맞아야 한다. 처음 맞으면 59번은 너무 쉽다. 그러나 60번째 맞는 사람은 59번을 놀란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다. 기다리기가 쉬운 것이다. 먼저 매를 맞고 나면 59번 맞는 게 너무 쉬운 것이다. 이걸 모른다. 그래서 장차 받을 환란이 축복이다.
베드로가 암담한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은 채 편안히 잠을 잔 것은 이미 이것이 구원의 사건이고 가두고 죽이려는 헤롯에게는 심판의 사건인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모르는 비밀이다. 그는 이미 죽을 걸 알았다. 예수님으로부터 순교자의 죽음으로 죽을 걸 들어서 알았다. 복음이 장차 받을 환란이라는 건 얼마나 위대하고 위력적인지 모른다. 날마다 우리가 늘 구속사의 말씀을 듣는 게 위대한 일을 만드는 것이다.
야고보는 금세 순교했고 예수님도 그 밤이 지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벌써 두 번이나 감옥에서 구해주셨으니 이제는 자기 차례라고 생각된 것이다. 예수님 가신 그 길인데. 그래서 육신도 이제 피곤하니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이것이 비밀이다.
적용, 손 쓸 수 없는 그 밤이 구원의 날이 되었는가? 아직도 심판 중에 있는가? 아직도 올까봐 두려운가?
3.옥중광채인 말씀으로 찾아오게 하신다.
7-8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얼마나 깊이 단잠에 들었던지 쳐 깨워야 할 지경이다. 최고의 기도의 응답은 평강이 맞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는데 베드로는 어떻게 저렇게 같이 기도도 안 하고 잠만 잘 수 있는가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이 문자주의고 경건주의다.) 기도했기에 불편하고 협착란 곳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기도했기에 자식의 감옥 부도의 감옥에서 있어야 할 일이 왔다고 할 수 있다. 편안하게 항암할 수 있다.
주의 사자가 빛으로 나타나서 빛이 감옥 안을 비췄다는 걸 말한다. 빛은 물리적 광채일 뿐 아니라, 주님은 빛으로 말씀으로 생수로 오시고 빛이고 생명이기에 빛으로 온 것은 말씀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빛이 보이는 건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다. 광채가 빛나면서 뭐라고 하냐면 급히 일어나라고 하고, 8절에는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으라고 한다. 명령을 다다다 하신다. 말씀이 들리니 명령이 들린다. 쇠사슬이 손에서 벗어지게 하신다. 명령하시는 주님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명령을 따라 순종만 하면 이렇게 길을 인도하신다. 쇠사슬이 벗어지게 하신다.
8절 천사는 주의 사자와 같은데, 베드로는 잠에서 덜 깬 듯 느리게 반응한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의 사자가 상세하게 일일이 계속적으로 명령을 내려준다. 에베소서 6장에 진리로 띠를 띠고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고 겉옷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이다. 주님이 초자연적으로 도와도 사람이 할 일이 있다. 사람이 할 일은 하찮아 뵌다. 초자연적으로 홀연히 빛을 비춰서 쇠사슬을 벗겨주셨다 하면 이걸 내 이야기로 어떻게 듣겠는가.
아들의 동성애 옥에서 일상의 큐티가 옥중 광채이고 전신갑주를 입는 순종인지 보여주는 나눔이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을 찾아 대단한 해결을 하려고 하는데, 다윗이 날마다 양치기로 연습한 몰맷돌이 골리앗을 이겼듯, 목장에서 나눔이 모든 곳에서 이김을 주실 것이다. 띠 띠고 신발 신으라고 하는데 허접해 보여서 목장에 가서 물어보라는데 절대 안 물어본다. 목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순종했기에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목장 나눔) 아들이 열다섯인데 그동안 유튜브로 동성애를 접하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는 실제로 동급생 중 마음에 드는 애가 있다고 해서, 더 이상 치료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 문제를 상담받았다. 엄마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그 밤에 일어난 사건인가. 호르몬 검사를 받았는데, 이상이 없었다. 상담받은 병원이 기독교재단병원인데도 담당의사가 아이의 인권 문제라며 아이의 엄마인 나를 이상하게 몰아갔다. 그래서 교회에 오픈하고 상담받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니 아들이 죽을 것처럼 싫어하다 지난 1년간 큐티를 해왔고, 동성애가 죄임을 인정했기에 결국 상담을 받기로 결단했다. 그래서 급히 일어나 중등부 목사님 전도사님과 부장님께 상담을 4시간 상담했는데, 부모 따로 아들 따로, 결국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라는 것이 나타났고, 아빠가 의붓아버지 아래 자라다보니 하나님 사랑을 알기가 어렵고, 아들이 덩치 좋고 씩씩하면 좋겠는데 부드럽고 섬세한 게 마음에 안 드는데, 그걸 표정 눈빛으로 온몸으로 표현하니, 아들이 아빠는 무섭고 힘든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술에 취하면 죽도로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올바른 아버지 상을 보여주기 위해 아빠를 이해하라면서도 실제 아빠 상과 괴리가 있는 것이다. 아빠가 좀 달라져야 하는데... 그래서 부장님이 아빠가 아들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아빠가 퇴근하고 오니 아들이 영어 공부를 하는데 내 기준으로 열심히 하지 않으니 예전에는 못마땅해 온몸으로 표현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아내가 말씀하신대로 친절했으나 그 처방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일 저녁 우리 큐티예배 드릴 때 아들에게 사과하면 좋겠다. 상담하면서 지적받은 것은 아들을 대하는 내 말투와 태도다. 아들에게 늘 하는 대로 했는데,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내 대화가 아들, 오늘 게임 많이 했나용? 넹? 오늘 많이 덥나용? 유치원생 대하는 말투인데 인지하지 못했다. 인격적으로 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존댓말만 쓰는 건 아이가 굉장히 어렵다는 뜻이다. 부모가. 그게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시고, 다른 중학생 엄마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남편이 목사님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라고 했는데, 나는 부드럽게 권찰은 좀 거칠게라고 처방했다고 한다... 이렇게 상담받고 나니 아들이 간수치가 나쁜 것이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인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것이 하나하나 말씀 듣고,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따르라. 명령이 나오지 않았는가. 하나하나 명령들은 게 아닌가. 중학생 동성애를 인권이라며 병원이 이상하게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안 된다. 말씀만이 만병통치약이다.
감옥에서 초자연적 사건이 나타났지만 파수꾼은 그 누구도 천사의 소리는 물론 빛도 보지 못했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교회 다니면서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린다. 사울도 정오의 빛을 보고 음성을 들었으니 옆에 동행하는 사람은 못 본다. 이렇게 간증하고 설교해도, 부부간, 부모자식 간에도 물리적으로 가까워도 들리고 들리지 않는 일이 있다. 이번 주에 목장 모임에 보니 왜 낙태법을 허용하지 않아야 하냐, 그건 엄마의 인권이 아니냐 하는 성도가 있었다. 17년 동안 매주 부르짖었는데도 안 들린다. 정말 설명을 잘해줘야 하는데, 설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기도 제목도 올라왔다. 아들이 성전환수술을 원하고 호르몬을 복용하고 있다. 아들 마음에 긍휼함으로 찾아가주시고 온전해지길 원한다고 했다. 엄마인권을 요구하는 사람은 같은 질문을 한다. 성폭력으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적용, 목장에서 처방하는 즉시즉시 순종하는가?
누가 쇠사슬 벗기라고 했는가. 신발 신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목장이 시시껍데기여도 하나님이 목장을 불쌍히 여기신다. (목장이 너무 루즈해졌다. 목자고 누구고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옥에 갇히고 말씀이 들리면 성령의 간절한 기도는
4.저절로 옥문이 열리게 하신다.
9-10절,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그럼에도 이 일은 베드로는 과거에 욥바에서 비몽사몽간에 본 환상이 아닌가 그치지 않고 생각했다. 이것도 미완료다. 첫째와 둘째 문이 있다는 건 그것도 파수꾼이 있고,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과 철통같은 감시를 했음에도 저절로 쇠문이 열렸다. 저절로의 원어는 신약에서 단 두 번 나온다. 마가복음 4:28에서 식물이 때가 되면 자라고 열매를 맺듯, 육중한 쇠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열렸음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마가복음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우리의 인생도 성령의 간절한 기도가 있다면 지키는 자가 있고 꼼짝도 못하게 해도, 내가 그 옥을 탈출하는 게 아니고 그 옥에 광채가 찾아오셔서 비춰주셔야 한다. 쇠문을 지키는 남편, 상사가 있는데, 그들을 날마다 욕하고 발길질해선 안 된다. 자기 힘으로 안 되는 걸 발버둥 쳐야 되겠는가.
여호야긴이 옥에 37년간 갇혀 있어도 머리를 들게 하신다. 왕이 난리를 치지 않았다. 37년간 옥살이 해야 되는 그만큼 교만한 죄다. 절대로 포로로 가지 않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다 망했다. 그게 얼마나 교만한 건지 모른다. 말씀 안 듣다 다 망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 옥에 갇혔다. 그러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섭리란 하나님은 미리 다 아신다는 것이다. 옥에 가두고 지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고 있으면 저절로 코로나 옥이 열릴 줄 믿는다. 하나님이 심판하셔야 할 것은 하실 것이다. 억지로 열려면 안 된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다들 인정하기 위해서는 믿는 우리가 본이 되어야 한다. 옥문이 열릴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본이 되어야 한다.
로마카톨릭 중세의 천 년대... 기막힌 우상단지를 섬기는 카톨릭을 종교개혁한 마르틴 루터가 영성상담 편지에서 어떤 글을 썼냐면, 치명적 전염병에서 도망해야 하는가의 일부 내용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비심으로 고쳐주시라고 하고 소독하여 정화하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꼭 만날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이웃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주님이 나를 데려가신다면 죽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 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디든 누구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갈 것이다. 보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또, 영국의 유명한 청교도 목사 리처드 백스터의 109문 요리문답을 보면 모임에 대해, 통치자가 공공의 안전 같은 큰 유익을 위해 적의 공격이나 화재로 인해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건 순종해야 하는 게 의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기에 형식이 아닌 내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왕들이 거룩한 예배를 방해하고 고정적으로 종교를 없앨 목적으로 방해하면 형식적으로 순종하는 건 합법적인 게 아니다.
[참고 URL]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935831&code=61221111&sid1=chr
적용, 저절로 열려진 감옥의 체험이 있는가.
성령의 간절한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 온라인 기도회에 올라온 기도제목이 오늘 설교다.
(기도회 기도 제목...)
(맺는 말씀) 성령의 간절한 기도는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한다. 교회 공동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미리 나가야지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그 밤에도 말씀이 있어야 기도 부탁을 할 것 아닌가. 교회 가서 목장에 가서 나누는 것은 70 평생, 80 평생을 쌓아왔어도 무너지는 건 한 시간이다. 그때 무너지지 않고 천국에 가려면 평생에 남을 위해 이타적으로 목장에 가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평생에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지 않고 천국에 가는 비결이다. 온라인 예배를 하니 지쳐서 목장에도 안 나가는가? 그러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말씀이 안 들리니까 울며불며 기도하고 날마다 설교했는데, 엄마 인권이라서 낙태법이 허용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목장에 나왔다는 것만이라도 그래도 점수를 주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양육을 받아야 한다. 양육을 받으면서 일대일로 자기 믿음을 점검해봐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손을 쓸 수 없는 그 밤은 택자라면 다 오게 되어있다. 그때 내가 찾아갈 교회 공동체가 있다면 성령의 간절한 기도를 받기 위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투자가 아니다, 힘든 일이 되면 내가 어떻게 이걸 하겠는가. 명예가 좋아 이 일을 하고, 돈이 좋아 이 일을 하겠는가. 사명이니까. 목장도 다 사명이니까 기쁘게 해나간다. 사명이 있는 분이 사명 없는 분을 이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든 가운데 옥중 광채로 찾아오신다. 드디어 말씀이 들린다. 그러면 저절로 옥문이 열린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목장 적용
김윤미: 이번 주에 도배를 했다. 화요일부터 했는데 엄마가 자기 물건에 손대는 걸 싫어하신다. 개인정보가 들어있다고...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러면 또 혼잣말로 욕을 하신다. 한번은 내 방에 들어와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셔서 같이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웠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나이가 드시니까 힘도 약해지고 일도 못하시고 반면에 나는 일 다니니까 거기서 나만의 권위가 생겼다고 할까. 돈 벌고 왔어, 일하고 왔어, 그런 게 있으니까 엄마에게 당당하게 지랄을 떠는 것 같다. (윤미와 어머님 사이에서 서로 비교하지 말고 포졸 같은 어머님의 박해 가운데 신을 신고 띠를 띠고 겉옷을 입어야 하는 적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우새롬: 나는 사람이라는 옥에 갇힌 것 같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다 사람이잖나. (가족이라는 옥에 갇혔네. 왜 그렇게 적용이 됐어?) 백수가 되고 나서 다시 아빠 일을 도우면서 청소부터 다시 하고, 일단 집에서 엄마랑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하는데, 엄마가 빨래하고 게우시는 건 감사한데, 생색낸다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있고, 한 달에 10만원씩 생활비를 내야하는 것도 있고, 엄마랑 같이 있으면 잔소리를 하니까 내 방으로 피한다. 동생도... 요즘 인생이라는 게 너무 힘들고 내가 헛 산 것 같기도 하고, 큐티도 안 되고, 큐티라도 되면 말씀을 먹고 살 텐데, 큐티 책이 보기 싫다. 심판의 말씀 같은 제목이 나오니까 마음이 어렵더라. 그래도 떠내려가지 않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진짜 기적인 것 같다. 내 생각엔. 오늘도 날씨가 좋아 밖에 나가서 놀고 싶었는데 예배 드리고 목장에 들어왔으니까.
하나님과 독대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내가 세상적으로 조금은 휩쓸려 간 것 같다.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그런 거 보니까.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한 것 같다. 지금은 세상으로 두 쪽 발이 넘어간 상태? 나는 내가 중심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 사람을 만나고 있고, 불신교제를 하고 있다 보니까 놀러 가는 거 생각하고, 불신교제 자체가 해보니까 어렵더라. 예수님 믿으면서 불신교제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고, 예수님을 택할 것인가 불신교제를 택할 것인가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이 사람을 교회로 데려올 거라는 교만함이 있었던 거다. 단호하게 말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나고, 내가 이 사람과 헤어지면 힘들고 울고, 삶이 무너지는 것 같이 그러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되잖나.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 사람에게 교회에 등록할 건지 의사를 묻고 안 한다면 여기까지라고 마음먹고 말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오히려 내가 끌려가는 것 같다. 내가 교회로 이끌지 못하고 내가 세상적으로 끌려가는 것 같다. 다시 이번에 만나게 되면 그렇게 기도해주고,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새롬이가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이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 많이 슬픈 것 같다. 새롬이의 끊어지지 않는 불신교제와 나의 끊어지지 않는 게으름과 나태가 다 같은 문제 같다. 같이 큐티기도회에 가서 기도하겠다.)
권보경: 갑자기 가족 구원에 대한 생각을 하니까 너무 짜증이 났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왜 구원하지 않으시지 하는 마음이 약간... 그래서 오늘 예배 드리기가 싫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틱틱 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가족들이 안 믿는 것도 불만이지만, 그럼 가족들이 다 믿으면... 그걸로 행복할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행복할까 하는 물음의 의미하는 바가 뭐야?) 가족들이 다 믿으면 지금이랑 뭐가 달라질까? 지금 안 믿는 데도 내가 안 힘들다. 행복하다. 그런 것도 있고, 내가 불만을 품었던 것은 신승윤 목사님 말 때문인 것 같다. 신승윤 목사님이 금요일 중보기도학교에서 우리 가족은 예수님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나눴더니, 목사님이 심각해지셔서, 너 상태가 심각하다. 왜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느냐, 이러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구원되지 않았는데,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데, 내가 심방 가서 가장 힘든 가정이 이런 집안이다. 너희 집은 아버지가 바람 피워서라도 예수님 믿어야 한다... 난 우리 집 불행해져서 예수 믿고 싶지 않은데, 약간 빡 치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 마음이... 행복이 뭔데? 예수 믿으면 더 행복해져? 우리 집 행복한데... 나더러 어쩌라고 이런 생각도 있고...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지적받는 게 너무 힘들다. 말씀이 없어서 너가 지금 화목한 거야, 이런 것도 너무 듣기가 싫은 거다. 진짜 무사안일주의이기도 하지만 그냥 행복하고 싶은 마음, 그런 나의 마음이 있는데, 너무 믿음이 없다는 게 느껴진다. 중보기도학교 하면서도 기도는 하는데 말씀으로 기도가 잘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닥치고 순종하자. 여기 이 자리에 있기로 하자. 핀트 나가고 싶고, 그런 나의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예배에 집중하려고 애쓰고 그랬는데, 아직까지는 이 말씀이 나의 말씀이다. 그런 게 없는 게 힘들고 아쉽다.
갑자기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려니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러면 안 되지만 짜증이 난다. 참 이해가 안 되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우리 집 성격이 나 잘 살면 그만인 것 같다. 나를 포기했나보다. 목사님도 보경이가 죽을 것 같이 힘든 상황을 나눌 수가 없잖아 그러는데, 우리 집 분위기는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너희 집의 화평은 거짓된 거야.) 음... 엄마는 돈 벌기에 바쁘고 여유가 없다고 할까.(네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집안의 평화를 저해하는 거라면 어때?) 동생은 놀리고, 엄마는 감추는 느낌이다. 엄마는 좀 창피해하신다.(엄마의 감정에 대해 넌 느낌이 어때?) 좀 미안하다. 나도 좀 자랑스러운 딸이고 싶은데, 건강보험이 엄마 밑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회사에서 물어봐서 엄마가 부끄러웠다고 하시는데, 속상했다. 내가 4대보험 들어주는 직장에 들어갔다면... 그런 이야기를 듣게 하니까... (어머님이 그 말씀하셨을 때 넌 뭐라고 했어) 나도 그땐 어쩌라고...(검을 주려고 오신 예수님이니까 목사님을 통해 그걸 받았으니 중보기도학교 잘 참석하고, 가족들에게 믿는 자로 서 있으려면 경제적으로 서가야 한다. 비빌 언덕이 집이 아니라 주님이 되도록.)
기도제목
김윤미
1.관계 가운데 말씀 보며 해석하기를
2.직장에서의 평안, 일과 관계에 지혜 주시길
3.엄마의 영혼 구원
권보경
1.중보기도학교를 통해 이타적인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2.매일 큐티하면서 말씀 잘 깨달을 수 있는 지혜 주시기를
3.신교제와 신결혼 인도해주시길
4.취직 인도해주시길
5.가족과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6.다이어트 위해 소식과 운동할 수 있도록
우새롬
1.매일큐티, 생활예배, 잘 드리고 주일성수할 수 있도록
2.주님께 기도로 진로 물으며 갈 때 인도함받도록
3.거짓아비마귀의 종노릇 하지 않고 주님께 쓰임받는 그 한 사람 되기를
정지영
1.말씀으로 해석하고 마음 가라앉도록
2.회사 출근해서 쫄지 않고 일하도록
이윤희
1.주님과의 선약 지켜 큐티와 기도 쉬지 않도록
2.작은 자임을 인정하며 혈기 부리지 않도록
3.학업에 집중력 주시길
4.사랑부 버디(유하) 예배 잘 드리고 주님 아는 기쁨 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