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제목: 성령의 박해
본문: 행12:1-4
설교: 김양재 목사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성령의 부조를 하고보니 박해가 일어난다. 복음이 허망해지면 곳곳에서 박해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믿었다고 다들 박수 쳐주는가? 초신자 때 그럴 때도 있다.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부조를 가져왔는데 하나님은 본산지 예루살렘 교회에서 박해가 맹렬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요즘 큐티 본문 에스겔 2장 6절처럼 가시와 전갈과 찔레의 박해라도 미리 먹은 애가와 애곡의 말씀이 있다면 두렵더라도 이마를 금강석 같이 하신다. 그래서 성도에게 박해는 필수 과목이다. 그래서 성령의 박해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세속 정치의 박해를 받아낸다.
1절,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그때는 안디옥 교회 부흥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왕성하게 전파되고 있던 때다. 한편 예루살렘교회는 힘들 때였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왔을 때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잘 가르치니 흉년의 예언에도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흉년이 심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고자했다. 그런데 바울이 그곳에서 본 것은 흉년보다 더한 박해였다. 여기서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다. 아버지 헤롯 대왕은 세례요한을 죽인 왕이고, 할아버지 헤롯 대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영아를 학살한 왕이었다. 그래서 헤롯 가문은 대대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가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안 부르고 통칭 헤롯이라고 한다. 성도가 있는 한 따라다니는 가문이라는 것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롯 대왕처럼 사치스럽고 간교한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로마에서 방탕하게 살다 디베료 황제 때 말실수로 감옥에서 끝날 뻔했지만 살아난 인간 승리한 왕이다. 의심 많은 로마 황제에게 잘 보여야 했고, 이두메 족속으로 유대인 피가 섞여있지만 유대인이 싫어하는 이두메 족속이고, 로마에서 살아서 유대인을 잘 모른다. 분봉왕이 되어 유대인을 알아야 했기에 유대인의 문화를 엄격히 지켜 경건하게 보이는, 그렇게 유대인과 친분이 두텁다 보니까 유대인의 골칫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고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정통도 없고, 지도자도 어부고 소수라서 무시한다. 바울은 흩어진 그들로 인해 유대교에서 떨어져나온 기독교가 더욱 부흥해가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제사장 무리도 다 가고 있었다. 조금 있다간 유대교가 망할 지경이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지만.
앓던 이를 헤롯이 제거해준다고 하니까 너무 땡큐한 것이다. 헤롯은 유대인과 하나가 되어 국가 권력을 가지고 정치적 박해를 함으로 기독교를 말살하고자 했다. 이렇게 채찍을 휘두르는가 하면, 정치가이니 당근 정책도 한다. 예루살렘이 불타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는데, 그게 500년이 되었다. 지을 때도 초라했는데, 성전 위주의 신앙이다보니 성전이 없으면 큰일 난다. 그래서 성전 건축이 숙원사업인데 500년이 지나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그 누구도 못한 것을 83년이나 거쳐 보석을 넣고 지어주었다. 채찍과 당근을 쓰고, 쓸 때는 이렇게 화끈하게 쓰니까, 백성들은 헤롯이 나쁘다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래서 왕이시여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기독교만 정상이고, 헤롯과 유대인은 악한 자들이다. 그러나 당최 분별이 안 된다. 그러나 그 기가 막힌 헤롯 성전은 완공 7년만에 티투스 로마 장군에 의해 돌 하나도 안 남고 무너졌다. 당근에 혹하면 안 된다. 불신결혼도 마찬가지다.
헤롯 가문에 대대로 이어지는 박해 가운데 사탄이 배후에 있는 걸 알고 반대의 영으로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박해로 받아내는 것이다. 이 박해 가운데 야고보처럼 죽거나 베드로처럼 구출될 수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providence. 하나님이 미리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 다 아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이렇게 성령의 박해로 받아내는 게 중요하다. 배후에 사단이 있는 걸 알고 흥분의 반대 침착으로 받아내야 한다.
부부 간에 문제가 있다고 동네방네 치부를 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혼이 답이 아니지 않는가. 나라가 잘못 되었다고 다른 나라에 치부를 알릴 수도 없다. 이혼 안 하고 잘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반대의 영으로 배우자의 신뢰를 받아 그가 예수를 믿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이다. 잘 먹고 잘살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믿는 자가 잘못한 것이고, 믿음이 더 좋은 자가 잘못한 것이다.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다 똑같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어디밴티지가 갈 것이 없다. 조금이라도 믿는 쪽이 십자가 지고 본을 보이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믿는다고 누가 알아주겠는가. 눈살 찌푸리게 하면 예수님만 방해받는다.
적용: 어떤 세속 정치의 박해를 받고 있는가? 친구나 부부 관계 직장 관계 나라 관계도 다 정치적이다. 이해타산이다. 생각해 보면 거창한 게 아니다. 끝에 가면 돈이 있다.
2.한 줄 순교의 상도 허락하신다.
2절에 보니까 야고보가 한 줄에 죽었다.
2절,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헤롯이 일벌백계로 그리스도인을 해하면서 이왕이면 지도자를 골라 야고보를 살해하는데, 예수님 형제가 아닌, 예수님의 가장 수제자 그룹의 야고보를 말한다. 이 야고보가 칼로 죽임을 당한다. 헤롯은 정권을 위해서는 못할 사람이다. 엊그제 김정은이 장성택 앞에서 그의 신복을 다 쏴 죽이는데 발목만 남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한다. 앞에서 내 수제자 부하가 형체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장성택은 물론 상당수 간부가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고 한다. 한 달 뒤 고모두 장성택을 똑같이 해서 머리를 잘라서 전시되었다고 한다. 평양시가 공포에 질렸고,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만 이런가? 여기도 숙부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았다.
수혜복구를 점검하며 인민에게 깊은 관심을 표현하는 사진이 나왔다. 오고가는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는 당근과 채찍의 정권 유지법이다. 헤롯은 바로 이런 것을 노렸을 것이다.
또 하나 살펴볼 것은 과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했을 때는 즉시 사도직을 복원해 맛디아를 채워 넣었다. 그런데 야고보가 죽었을 때는 그러한 조치가 없었다. 가룟 유다는 불명예스럽게 자살했고, 사도답지 못한 것이기에 이 야고보는 사도의 사명을 다하고 사도답게 순교했기에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선출이 불필요했다. 그 후에 나머지 제자가 다 순교했다. 그러니 사도직은 항종직이 아닌 한시직이 되어 다시 뽑지 않았다. 이 세상 어떤 직분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비교되지 않기에 다시 사도직을 복구하지 않았다. 최고의 상을 하늘나라에서 받고 있는데, 이 땅에서 직분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사모하기 바란다.
스데반의 순교가 그리스도 역사상 첫 순교였다면 야고부의 순교는 열두 제자 중 첫 순교였다. 그러나 누가는 이런 순교를 스데반과 달리 한 줄로 표현했다. 같은 누가가 썼다. 차별도 한참 차별 아닌가? 나는 이 비밀을 깨달으려고, 한 줄 야고보를 묵상하며 마음이 저리고 은혜도 많이 받았다.
야고보 요한은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성격이 급하고 불 같아서 예수님이 부르실 때 곧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따랐다고 했다. 아버지 세베데는 배를 가진 유복한 집안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걸 다 버리고 쫓았다. 너무 열심이었다. 변화산에도 있었고, 졸기도 했지만 겟세마네에서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마태복음 20장에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실 때에 주의 나라에서 우편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는데, 우리도 주님이 마지막에 원하는 걸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예수님이 눈앞에 있는데 주님밖에 관심이 없다고 할까? 우리는 명색이 예수님 제자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 영광 때문에 반드시 붙어야 하고, 승진되어야 한다고 할 것인가? 그러고 싶다. 우리가 열심히 살았으니 주님 우편 좌편에 앉아 잘되는 모델로 써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주님이 20장 22절에 너희가 구하는 게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진정한 학문은 회개다. 배움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을 알기 위함이다. 주님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생각도 안 하고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주님은 과연 너희들이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나의 잔, 주님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주신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그들은 오래지 않아 순교의 잔과 고난의 유배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주님은 그 약속을 이루어주셨다.
나도 멋도 모르고 30 몇 년 전에 에스겔 말씀이 나와 너무 같으니까 신기하고 신기해서 에스겔이 살아가고 하니까 에스겔처럼 살겠다고. 직통게시가 내려온 게 아니라 큐티하면서 내 인생과 같고 남편도 그날 가고 하니까, 에스겔처럼 살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뭘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어떻게 내가 그런 기도를 했겠는가. 진짜 그때로부터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야고보는 세 명의 수제자 그룹에 든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안드레 하나가 섞였는데 안드레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삼인방인지, 사인방인지...
그런데 야고보가 형이다. 동생인 사도 요한 때문에 한 번도 주목을 못 받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어머니도 요한에게 부탁을 한다. 언제나 베드로 요한에게 밀린다. 그냥 이런 야고보가 죽기까지도 빨리 한다. 그런데 내가 찾아본 성경으로는 야고보가 동생 요한을 시기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것이 야고보의 가장 귀한 성령의 박해를 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양육으로 불같은 혈기와 모난 부분이 정리되고, 급한 성품은 쓰였던 것 같다. 헤롯이 죽일 자를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뛰어나가 자기를 죽이라고 했을 것 같다.
제자들이 모두 숨기만 했다면 그것도 쪽팔렸을 것 같은데, 베드로도 뛰어나가지 않았는데, 첫 번째 순교의 상이 주어진 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요절해서 최초의 순교의 상을 받고, 한 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돌보려는 명을 받고 유배되어서 장수의 상을 받았다. 감옥이지 않은가. 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장수하는가?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이 미리 알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시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순교는 최고의 명예다. 조금 먼저 죽었을 뿐이지 제자들 모두 십자가에 참수에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서... 듣기만 해도 무섭다. 기독교는 피 흘림의 종교다. 그래서 피흘림 없이는 삶도 없다. (히브리서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의 열심은 십자가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야고보처럼 이렇게 한 줄의 끝나는 순교도 있다. 그런데 12 사도 중에 들어갔다. 스데반처럼 멋진 순교를 하는 것도 야고보처럼 한 줄 순교도 천국에 가면 똑같다는 걸 이번에 깊이 묵상했다. 왜 누가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을까?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이런 죽어짐도 하나님이 아시니까 순교다. 대단한 순교, 스데반처럼 알려지는 순교도 있지만 야고보처럼 왜 죽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순교는 최고의 순교다.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고난을 겪으면 얼마나 대단한 고난이겠는가. 유관순 언니, 이준 열사... 그것도 잠깐이다. 야고보는 2천년 동안 기억된다. 한 줄 순교인데, 아무것도 몰라도 2천 년 동안 기려지게 된다. 신사참배 거부하고 일본국회에서 일본은 유황불에 망한다고 소리치고 옥고 치른 안희숙 여사가 부러웠다. 나도 옥고를 치르는 멋있는 고난 좀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모르는 남편 순종하며 죽겠구나, 별 볼일 없는 이 순종이 나에게 죽을 고난이었는데, 대단한 감옥에 있지만 아무도 안 알아주고 아무도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의 바운더리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이 마지막에 산부인과 의사로서 낙태한 것을 회개했다. 이번에 묵상하고 있다 보니, 잘못했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회개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남자와 여자의 구조는 정말 다른 게 맞다. 우리 남편은 욕하고 때리고 윽박지르고 돈 안 주고 한 거 다 회개해야 하는데, 나는 참수를 당한 것 같은데, 잘못했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잖아 했다. 그것도 우리 남편은 굉장한 고백을 한 것인데, 나도 회개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중요한 건 아무것도 안 했구나,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까, 본인은 말이지 너무도 나를 사랑한 것에 거짓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가책이 안 든 것 같다. 그런데 본인으로서는 마지막까지 내 생각을 한 것으로 보면 맞는 것도 같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에게도 아들 노릇 못해서 죄송하다며 요한처럼 나를 부탁했다.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처럼 교만한 사람 주님 만나고 목사까지 됐는데, 그는 회개하고 기쁘게 천국에 갔다. 남편이 야고보처럼 불 같은 성격이라는 걸, 생각해보니까, 우리 남편 내가 말해서 알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에 묵상하면서 한 줄 순교는 남편이 했구나. 성품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해보면 전 재산을 형님에게 준 적도 있고, 큐티는 내가 하고 적용은 그 사람이 한다고 한 것처럼, 이 모든 게 쌓여서 상으로 하나님이 빨리 데려가셨구나. 하수상한 세월 안 보고. 야고보는 한 줄로 갔지만 2천 년을 기리게 하신다. 남편도 그렇게 하루에 갔지만 나에게 몇 십 년을 기리게 하신다. 그래서 야고보구나. 그러면서 갈수록 남편이 나보다 상을 진짜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스데반이나 야고보나 천국 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나는 얼마나 더 수고를 해야 상을 받을까 생각했다. 야고보를 생각하니까, 야고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같이 살기 힘든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너무나 자기가 살기 힘든 사람이었기에 주님을 붙든 것이다. 성품이 좋았으면 주님 붙들지도 못했다. 남편은 이혼할 생각이 터럭 만큼도 없으면서 날마다 끝이야를 외쳤다. 내가 그 말 듣고 끝냈다면 어떡했을까.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듣는 게 순교다. 날마다 상담이 오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 끝이다. 배우자가 끝이라고 할 때 내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순교다. 끝이라고 해도 말씀 앞으로 오면 길이 열린다. 야고보가 예수님 때문에 칼로 죽임을 당했는데, 끝까지 가정을 중수해서 노벨평화상보다 귀한 구원의 상을 받기 바란다. 예수 때문에 맞아 죽어도 아무도 안 알아줘도 하늘에서 보고 웃으신다.
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을 전했다. 마지막에 어딘가 자기 마음에는 고통이 있었다고 했다고 한다. 한계 상황적인 고통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 선한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려고 사랑의 수녀회를 만들었는데 조직이 커져서 전세계가 주목하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니까, 예수가 안 보여서, 어두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나도 힘든 일이 있지만, 나의 인생을 어둠과 고통이라고 하지 않는다. 죄가 많아도. 매를 맞고 시집살이를 하고 자녀가 속을 썩여도 집에서 하는 순종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나타나지 못하고 한줄에 끝난다 해도 하나님 때문에 내가 원하시는 순종을 할 때, 노벨평화상과 구원의 상은 비교가 안 된다. 노벨평화상 받고 구원받지 못하면 뭐하는가. 이게 한 줄 순교의 상이다. 한 줄 순교의 상이 이해되는가? 나는 정말 좌충우돌하고, 자기의 급함과 주목받지 못함과 그러므로 인하여서 그런 야고보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다. 모든 배우자를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로 내다보시기 바란다. 미리 보시라. 이 세상이 짧기 때문이다.
적용: 배우자가 끝이라고 할 때 뭐라고 하시겠는가. 동생보다 형보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예수를 믿기에 기쁘게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게 있는가?
한 줄 순교를 하려면
3.불의를 기뻐하는 동족의 박해도 받아낸다.
3-4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헤롯의 작전은 성공했다. 야고보를 죽이니까 지지율이 올라간다. 유대인들이 야고보를 죽이니까 너무 기뻐했다고 한다. 기뻐했다는 이 단어가 이 본문을 제외하고 기쁨을 받을 분이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다. 당시 유대주의자들은 사도를 죽이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열심을 넘어서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사울의 열심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헤롯은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대단한 엘리트와 부하들이 교회를 잔멸하는 부하가 되어 산헤드린 공회와 헤롯을 돕는다. 헤롯이 백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지도자가 어떻게 백성을 위하겠는가. 자기를 위해 백성을 파는 것이다. 국민의 뜻이라고 하지만 자기의 명예와 탐욕을 위한 자기의 뜻이다. 이런 헤롯은 여론 정치를 하며 자기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뜻을 조장한다. 그래서 야고보를 죽이면서 살짝 간을 보니까 지지율이 껑충 올라가니까 수장인 베드로를 죽이고자 한다. 그런데 유월절에 사형을 못 시키고 재판 못 하는 것도 안다. 그러나 유월절에 3-4만인 예루살렘 인구가 100만이 모인다는 걸 안다. 유월절 직후 죽이려고 열여섯 명을 풀어 지키게 했다. 대단한 정치가다.
불의를 보고 두는 건 대단한 악을 두는 범죄다. 웃음 한 번으로 헤롯으로 살인죄를 짓게 한다. 소위 믿는 유대인의 죄가 크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죽어도 그들의 선민주의는 깨어질 줄 모른다. 그러니 그때가 어땠겠는가.
고린도전서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정한 성도를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성도는 어디에 기뻐해야 하는가? 의를 알고 따르는 데 진정한 자유가 있다. 자기 행동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노예에 불과하다. 그 주인이 사탄이거나 죄면 그들의 종이다. 주인이 의라면 의의 종이 된다. 성령의 박해로 받아내려면 자유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너희가 자유하게 하리라 한 것처럼 자유를 알려면 진리, 말씀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헤롯은 자기 권리를 남용하는 걸 자유라고 생각한다. 진리와 진정한 자유를 모르기에 오직 정권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모든 박해를 성령의 박해로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자유다. 그래서 자유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홍정길 목사 발언)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 형상을 입었다는 것은 선행을 많이 하는 성품적 변화가 아니라 말씀을 보다 깊이 묵상하니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것은 자유였다.
C. S.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마 자유였을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하나님마저도 반역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맞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 그런데 아담은 그 자유로 하나님을 반역했다. 반역하는 자유까지 주신 것이다. 결국 무서운 저주를 받았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법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생은 버림을 받는다. 죄를 범한 인생들이 깊은 죄악에서 신음하고 고통당할 때, 자유를 가지고 반역했으니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 구속의 정점이 자유였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선포하신 게 자유였고, 인생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유밖에 없다. 예수님은 3년 만에 모든 사역을 끝마치실 때,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역 전체가 우리를 죄의 결박에서 풀고, 하나님의 자유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다.
자유는 완전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이 진정한 자유다. 자유보다 더 좋은 개념이 세상에 있는가? 자유의지 없이 사랑만 있다면 방종이고 집착이지 사랑일 수 있는가? 평화는 올바른 주님과의 관계에서만 있다. 무주공간에서만 평화인가?
자유가 없는 정의 거룩이 무슨 상관인가? 자유가 없는 평등은 빅브라더를 내세운 극단적인 구가주의와 다를 것 없을 것이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개념의 시작이다. 이 세상 어떤 철학이나 체제 아래서도 자유를 강조한 게 없다. 사서삼경, 무슬림, 힌두교에도 없다. 표준국어사전에서도 자유가 형용사로 사용되면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사용되고, 남용하는 사람은 자칫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자유주의가 탄압과 멸시를 받는다. 심지어 성경에도 진리가 너희를 놓아주리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그런 뜻이 아닌 무엇이든 하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가한 것이다. 무엇이든 네 생각을 펼치고 좋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놓아주리라는 것과 자유는 반대되는 개념 아닌가? 그 마지막의 판단은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우리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의존할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유 자발성은 너무 큰 상이다.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헤롯도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았고, 유대인도 사람의 생각에 매여 죄의 종노릇을 한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자유인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평등 정의를 부르짖지만 자유 의지가 없기에 이것을 다 남용한다. 그래서 균형 잡힌 국가가 아닌 극단적인 국가의 모습이 되어 간다. 이 나라가 모든 독재로부터 온전한 시점은 약 30년밖에 안 된다. 흔히 반만 년의 역사라고 하지만, 겨우 반백 년도 안 되는 30년 동안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세상의 어떤 자원보다 자유가 주는 창의성보다 더 큰 자원은 없다.
한 15년쯤 전에 헤르베르트 기르시는 세계 모든 학자들이 아시아의 시대가 온다고 전망할 때, 동양은 자유 안에서 나오는 창의성이 부족하기에 앞으로도 미국의 시대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한 없이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도 좀 많이 쇠퇴해서 잘 모르겠다. 우리는 엄청난 노력으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치르고도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한 나라가 되었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가 별로 없다. 그러나 자원도 없는 이 나라가 창의성 때문에 기적같이 10위권에 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창의성을 넘어서는 보물은 없다.
이 자유를 자녀 세대에 넘겨줘야 된다. 이것은 예수 안에서 밖에 없기에, 반만 년 동안 살아왔어도 수많은 왕정시대 겪었어도 창의성이 없다. 그래서 최빈국 시대를 살았다. 자녀들에게 이걸 넘겨줘야 하는데, 헤롯과의 싸움이 있다. 그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다윗은 평소 학원에 간 게 아니라 양치기 하려고 물맷돌이 준비한,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기에, 타이밍 맞춰서 정조준해서 무너뜨려야지, 그런 무기 없이 골리앗 앞에서 너무 억울하다 불공정하다 골리앗 물러가라고 울어댄다면 얼마나 조롱받겠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함부로 울어재끼면 안 된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울어야 한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넘어가면서 기독교에 자유를 주기 위해 제일 수고한 사람에 헤롯이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나를 죽이려는 헤롯이 죽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유를 모르는 헤롯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아는 게 구속사다. 다윗의 인생도 야고보의 인생도 너무 힘든 일을 겪었지만 구속사를 꿰어지니까 사건이 올 때 놀라지 않는다. 동족 유대인 사울 왕의 박해는 훨씬 힘들었다. 그러나 성령의 박해로 알고 끝까지 질서를 지키고 사울의 박해를 받아내고 예수 씨를 위해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 우리는 때가 될 때까지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 여기서 다윗을 본받아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 헤롯이 대단해 뵌다. 야고보는 실패한 것 같지만 아니다. 헤롯은 기리지 않아도 야고보는 기린다. 이런 신앙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사탄은 직장 상사로 친구로 분해서 오기에 이런 박해를 받아내기가 힘들다. 이 뒤에 사단의 궤계를 알아야 누구의 박해도 잘 받아낸다. 헤롯은 자유를 모르고 야고보는 자유를 안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리자는 야고보다.
야고보는 칼로 죽어도 성령의 박해를 받으며 찬란한 순교를 한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는 말씀을 듣고, 가정에서부터 박해를 잘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박해를 받아내는 것이 자유를 누리는 비결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자유다. 놓여나는 게 자유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 가면 남을 짓밟는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어도 예수가 없으면 또 죽이고 죽는 일이 세계 역사에 반복된다.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의 성령님을 사모하니 재미가 있다. 꼬이지 않았기에 재미있다. 그러니까 한량없는 창조적인 자유함이 분출이 되니까 이것이 말씀의 힘이다. 진리를 알지니... 헤롯이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오직 지지율밖에 모른다. 그런 사람이 다 똑똑하다.
적용: 자유의지로 남을 깎아내리는 것에 기뻐하는가? 자유의지의 창의성으로 남을 기쁘게 하는가?
성령의 박해는 그러므로 어떤 세속 정치의 박해도 받아낸다. 다 치사스럽다. 부부관계, 결혼, 연애부터 다 계산하고 정치적이다. 그래서 속이고 결혼도 잘 하려고 한다. 그것은 직장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박해를 한 줄 순교의 상을 허락하시는 주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자녀의 신분 어마어마한 걸 보여줘야 한다. 안 믿는 사람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신분을 보여줘야 한다. 이방인보다 동족의 박해가 정말 아픈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나도 잘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박해다. 유대인의 이름은 몰라도 야고보의 이름은 안다. 이런 성령의 박해를 받으려면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보혈의 능력밖에 없다.
목장 적용
정지영: 친하게 지냈던 동료 두 명이 일을 그만뒀다. 원래 그만두기로 예정되어 있다가 다시 일을 더하기로 했던 동료가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점심시간에 다른 언니가 둘 다 그만둔다고 갑자기 그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원래 그만두기로 한 동료는 사실 자기 것만 하고 일을 쉬엄쉬엄하는 게 불만이었는데, 그 옆에 있단 다른 동료는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함께 식사한 언니가 여기저기에 이간질을 시키고 다녀서 화가 나서 나가는 거라고 주임에게 말했나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 언니가 다 뒤집어 쓴 것이다. 한번은 그 언니가 이간질시킨다고 말한 동료와 함께 자리를 바꿔서 일한 적이 있다. 그 동료가 바꿔달라고 해서 언니는 하루만 그러는 줄 알고 바꿔줬는데 월요일에도 바꾼 자리에 그 동료가 앉아 있었다. 임의로 자리를 바꾸면 주임이 뭐라고 한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있었다고 한다. 나는 당시 자리를 바꾼 이유도 모른 채 나 때문에 뭔가 안 좋았나 싶어하며 그 언니에게 잘해주려고 나름 노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동료가 나가면서 언니가 힘들어해서 바꿔준 거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나와 그 언니가 수다 떠느라 일이 안 내려왔다고도 했다고 한다. 주임의 말을 들어보면 그 두 사람 편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일 자체가 직접 해봐야 아는 건데... 나는 상황을 알고 있고 떳떳하게 일을 했는데, 주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열정이 있어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더러는 수다 떠느라 못 내렸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렇다. 주임이 그 언니에게 도면을 가져와서 그만둔 동료가 12장을 꽂았는데 여기서는 10장을 꽂으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그때 상황은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주임의 생각은 그 동료가 능력이 좋아서 많이 꽂아졌다는 것이다. 12장을 꽂거나 10장을 꽂거나 막힘없이 내려갔다는 것은 둘다 속도가 같았다는 거 아닌가. 내가 불만스러운 것은 많이 꽂든 적게 꽂든 위에서 내려가지 않으면 도와주고 밑에서 막히면 또 도와주고 그러는 것인데, 그만둔 동료들은 안 내려오면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런 게 불만이었다. 언니는 안 내려오면 내게 와서 도와주고, 아래에서 막히면 또 가서 도와줬다. 그런데 그만둔 동료는 상관 없는 언니를 걸거 넘어져서 이간질하고 다녔다고 하고, 주임에게 나도 그런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주임은 그 동료가 해놓은 말이 있다보니 내가 왜 화를 내나 싶어한다.
내일 회사에 가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사장님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고, 회사 사람들이 듣기에 어떤 생각이 들까... 일단 주임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다닐 것이다. 그러고 다니면 나보다 그 언니가 억울한 상황이다.
(목자: 너는 왜 화가 나는데?) 처음에는 그만둔 동료가 나한테 상처줬던 말이 생각 나서 화가 났는데, 이 언니가 당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 언니를 이상하게 만들어놓고 나가버렸다. 그 언니가 당한 일에 대한 화도 올라오고, 내가 입 닥치고 하던 일 하고 있었어야 하는데 싶기도 하고...(목장 식구들 피드백 있었음)
권보경: 중보기도학교 시작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화상으로 하는 것에 대해 무슨 기분일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기도 제목과 나눈 이야기를 미리 올려줘서 내 기도 노트에 정리해서 기도를 하고 리마인드하고 만나서 그런지 친하게 느껴졌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교회 사람과 집 사람뿐이니까... 옛날 아웃리치 느낌이 드릭도 하고... 혼성이니까.
기억 나는 한 사람은 88로 같은 또래인데 작년 11월에 교회에 왔는데 반장이 됐다.(목자: 교회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직분을 맡았네? 왜 너가 안 하고?) 목자, 부목자 뺴고 할 사람이 몇 없었고, 나는 뭔가를 책임지는 데 있어서 부담스러워하는 게 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 같고. 예전에 아웃리치 갔을 때 한 언니가 중요한 역할이라고 하면서 내가 그런 걸 좋아할 것 같지 않고 안 하고 싶어할 것 같아서 시키는 거라며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서 열심해 했던 적은 있다.
나의 세속정치는 가족인데, 가족의 박해를 받아내고 있다. 칼로 죽임을 당하는 수준은 아니기에 이 박해가 그리고 장기화되었기 때문에 유연하게 넘어가는 게 있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넘어가는 게 있다.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 아빠가 좋아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오늘 목장하는 걸 아빠에게 알리면, '빵이(애완견)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지?' 우리 가족이니까. 그런 걸 들으면 아빠 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다. 아버지 마음이 기독교에 대해 오픈되어 있고, 긍정적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자: 아버님이 직접 전도를 받지 않으니까 그런 건 아니고?) ㅋㅋ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구원을 위한 길이 어려워지니까 머릿속으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핍박이 아닌데 응원인가, 격려인가...(목자: 기복이지) 맞네. 예수든 부처든 잘되면 장땡이다, 이런 거.
동생이 요즘 술을 많이 마시는 데도 안타까움도 없고, 맨날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심 갖지 말라고 말하는 게 기분 나쁘다. 조금이라도 카톡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싫어하는 게 마음 상한다.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었는데... 데이트하는 남자는 불신자인데 그 가족은 기독교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본인이 기독교인이 아니고 남자도 아닌데, 가족이 기독교인이면 화목한 가정을 꾸릴 것이라는 계획이 있는 느낌이다.
기도하는데 중보기도학교 시작하니까 포맷을 줬다. 기도제목과 소망 등을 나눔 전에 쓰라고 해서 줄줄이 썼다. 그런데 정정환 목사님 말씀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라고 해서 다 고쳐썼다.(목자: 줄줄이 쓴 거 다 기도해도 된다.)
김윤미: 내 일이 대면상담, 순회상담, 교육, 내방상담 등인데, 코로나 때문에 대면이 안 되서 일이 없고 앞으로도 2주간 일이 없을 예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 고난이라고 할 건 없다. 관계에서 어려운 것은 당연히 불편한 부분 빼고는 없고, 고민인 것은 내가 일이 없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줌으로 연수를 하거나 교육을 하고, 실장님은 나름 바쁘다. 실장님이 한번은 '일이 없으니 불편하시죠' 하며 일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다른 분들을 도와드리기도 했는데, 이게 맞나 싶다. 예를 들어, 실장님은 엑셀 파일을 추출하고 취합해서 달라고 하고, 다른 선생님 회의 모니터링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고, 전화 대신 받고 안내해주는 것 등인데, 내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데 이렇게 남을 도와주고만 있어도 돼나? 그리고 이쪽 공부가 파고팔수록 할 게 많아서 그런데 그걸 보고만 있으면 졸음이 오니까, 도와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계속 그러다보니 내가 조수로 왔나... 괜히 계약직이니까 눈치를 보고 있나 싶고... 다른 선생님들은 뭘 하나 슬쩍 보면 나름대로 뭘 하고 있다. 옆에 있는 분에게는 뭘 보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논문을 보고 있다고 했다.(목자: 공부하네. 너도 공부해.)
기도 제목
김윤미
1.관계 가운데 말씀 보며 해석하기를
2.직장에서의 평안, 일과 관계에 지혜 주시길
3.엄마의 영혼 구원
권보경
1.중보기도학교를 통해 이타적인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2.매일 큐티하면서 말씀 잘 깨달을 수 있는 지혜 주시기를
3.신교제와 신결혼 인도해주시길
4.취직 인도해주시길
5.가족과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6.다이어트 위해 소식과 운동할 수 있도록
우새롬
1.매일큐티, 생활예배, 잘 드리고 주일성수할 수 있도록
2.주님께 기도로 진로 물으며 갈 때 인도함받도록
3.거짓아비마귀의 종노릇 하지 않고 주님께 쓰임받는 그 한 사람 되기를
정지영
1.말씀으로 해석하고 마음 가라앉도록
2.회사 출근해서 쫄지 않고 일하도록
이윤희
1.주님과의 선약 지켜 큐티와 기도 쉬지 않도록
2.작은 자임을 인정하며 혈기 부리지 않도록
3.학업에 집중력 주시길
4.사랑부 버디(유하) 예배 잘 드리고 주님 아는 기쁨 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