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6 '회복의 약속' (열왕기하 25:22-30)우리들교회 주일 1부 예배 ampndash 최대규 목사님
저는 취학부를 섬기는 최대규 목사, M.S.G.의 미키 대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록 중의 하나가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없고 예수 믿게 해 준 부모가 최고다, 이건데요. 제가 어느 곳에 갈 때마다 이걸 항상 얘기합니다.
지난주에 우리 정목사님이 살이 쫙 빠진 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뚱뚱한 목사, 살 빠진 목사 없고 큐티하게 하는 목사가 최고다!
여러분 아멘이십니까?
우리 열왕기하를 묵상하는 가운데 취학부 큐페ON을 진행했습니다. 열왕기하의 적용으로 열왕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어요. 소개해드릴게요, 열왕마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왕들의 이름이 쫙 기록되어 있고 이렇게 아이들이 말씀으로 나누며, 또 함께 미션을 수행하면서 열왕기하를 몸으로 익혀 나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적용으로 아이들의 고백과 회개가 결론일텐데요, 잠깐 영상을 통해서 아이들의 결론의 이야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네. 성도님들의 기도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고 하지요. 히스기야는 보여준 것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므낫세가 히스기야의 악한 것만을 기억한 것일까요? 히스기야 이후에 므낫세부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은 계속 자행됩니다.
잠시 요시야의 성전개혁이 있었지만 애굽과의 전쟁 때, 사망한 후에 남유다는 갈 곳 잃은 배처럼 계속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종국에는 바벨론 포로라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번에 걸친 바벨론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성벽은 무너지고 성전은 더럽혀지게 되었어요.
요즘 목장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또 태풍 때문에 정말 성벽이 무너진 소식을 많이 듣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붙들기를 원하실까요? 또 우리가 어떤 회복의 약속을 붙들어야 할까요?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1. 남은 자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22절)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 땅에 남긴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열왕기하 24장 14절 이하에 보면요, 이 여호야긴을 비롯한 나라의 지도자들과 용사와 장인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기 때문에 남유다 땅에는 비천한 자 외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도 능력있는 자를 금세 데리고 가잖아요. 별로 쓸모없는 것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남겨지게 됩니다. 쓸모 없다고 데려가지 않으니까 얼마나 그들이 무시를 당했겠습니까?
이 비천한 자들을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관할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달리야의 조부인 사반은 요시야 왕 때 서기관으로 있었고. 그의 부친 아히감은 선지자 이사야와도 교류했던 사람이에요. 또 이 그달리야도 예레미야하고 깊은 좋은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비록 남유다는 망했지만, 아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축복인 것은 이 비천한 자들 가운데 예레미야가 함께 있었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40장 6절에 보면요,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전해줬잖아요. 그 비천한 자들에게 말씀이 계속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바닥으로 내려간다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유다 땅에만 말씀을 두지 않으시고, 여호야김 때, 1차 포로로 끌려갈 때, 왕의 자녀들과 귀족의 자녀들이 끌려갈 때에 그곳에 누구를 두셨습니까? 다니엘을 두심으로 하나님 말씀도 듣게 하셨어요.
또 여호야긴, 2차 포로에 끌려갔을 때, 하나님이 그곳에 에스겔 선지자를 두심으로 그발 강 가의 노력으로 괴로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다는 겁니다. (포로로 끌려 갔을 때 말씀이 들리게 된다. 꼭 있어야 할 사건)
우리는 오늘도 비천하게 여겨지기 싫어서, 바벨론처럼 힘과 능력을 구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없어서 비천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여서 저의 장인어른을 비천한 자로 여겼습니다. 바벨론처럼 강퍅한 마음으로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 라는 생각 때문에 속으로 많이 무시했었습니다.
저의 장인이 이북에서 홀로 내려오셔서, 17살 어린 장모님과 결혼하시고 세 명의 자녀를 낳았어요. 그런데 가정을 이루셨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만 하는 걸 좋아하셔서, 가정 경제는 뒤로 미뤄놓으시고 혼자 생활하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제가 결혼하고 처가에 가니까 두 평 남짓한 방안에 정말 책이 수북히 쌓여있고, 온갖 신문 스크랩이 가득 있는 거예요. 그것을 하루종일 하는 걸 기뻐하시는 거예요. 가장이 가정경제를 책임지지 않으니까, 아내랑 자녀들이 또 왕따를 시키지 않겠습니까? 힘들다고. 그렇게 여겨졌던 분이세요.
그런데 그러면 가장이 주눅이 들어야될 텐데, 장인어른은 이북 분이라서 카랑카랑 목소리로 성질을 부리시는 거예요. 돈은 못 벌어다 줘도 소리를 지르시니까 가족들이 어디 갈 때도 함께 가지 않고 멀리하게 되었던 거예요. 밥도 따로 먹고 외출도 따로하고.
저를 만날 때면 장인어른이 야, 이거 목사 새끼들이 기독교를 다 망친다. 이런 말을 늘 하시는 거예요. 제가 장인어른을 뵈면서 속으로 무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구원은 받아야된다는 생각 때문에 천국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담임 목사님의 책을 보내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그 책을 딱 보시더니, 아, 나 이 여자 기독교 tv에서 봤다구. 어우 서울 말씨가 낭창낭창 곱다야, 뭐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또 의외로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어요.
여든이 넘으신 연세에 폐섬유종에 또 골절까지 더하여져서 계속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전해도 항상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우리 오마니가 안 계신 천국은 천국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접할 생각이 없으신 거예요. 그런데 공동체의 간절한 기도로 어느 순간 어린 아이처럼 영접 기도 따라하셨는데요. 그리고 올해 1월에 요양병원에 계실 때에, 임종이 가까워서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임종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지께 외롭게 한 것을 다 회개를 하고 사과를 하고, 제가 목사니까. 아버님, 이제 천국 문 앞에 계시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걸 믿으세요? 대답을 못하시니까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우리 모두가 봤습니다. 그리고 30분 후에 소천하셨어요.
가족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천국 백성으로 계수된 분이 목사인 저도 아니고 전도사였던 장모님도 아니고, 아버지를 무시했던 자녀들도 아니고 우리 장인어른이 가장 먼저 천국 백성으로 계수 되셨던 것입니다.
제가 장례를 하는 동안에 복음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돈으로 판단했던 내가 오히려 비천한 자였음이 깨달아져서 예배를 드리는 내내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사람들은 제가 아들인 줄 알았을 거예요.
적용질문)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비천한 자라고 여기고 있습니까?
말씀이 없는 자가 가장 비천한 자임을 인정하십니까?
23절)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절)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그달리야가 총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남유다에는 비천한 자들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 40장에 보면, 바벨론 군사의 눈을 피해서 곳곳에 상류계층들이 숨어있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미스바로 몰려든 거예요. (숨겨진 네임드들)이들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마치 누구누구 회장의 아들인 것처럼, 딱 들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김계란, 감바스 등등).
23절, 24절을 자세히 보면요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자, 그들을 따르는 사람, 그들을 따르는 군사. 정말 이 말이 세 번이나 반복을 볼 때에 그들을 따른 사람이 꽤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실력도 있고, 힘도 있는 자들이고. 많은 수이니까, 또 이들이 바벨론이라는 고난을 좀 겪었으니까, 예레미야가 전한 이 말씀이 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 미스바는요, 과거 사사시대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선지자 사무엘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에서, 미스바에서 영적 각성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졌던 남유다 백성이 다 그곳에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를 기대하고 계시지 않으셨을까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우리 흩어져서 모이지 못하는 때입니다. 몸만 흩어진 게 아니라 교회들도 마음과 생각이 흩어졌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다 모일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때, 각자의 생각과 의견과 고집을 포기하고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모임이 되기를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대하는 것은 미스바에 모여서 영적 각성을 해야 하는것, 그런데 지금의 현상은 광화문에 모여서 교회를 자살시키는 것이다).
24절을 보니까요, 그달리야가 그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면 너희가 평안할 것이다.
그달리야의 말을 그냥 들어보면요, 민족의 배신자의 말 같고, 파렴치한 매국노의 말같이 들려집니다. 근데 이건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 거예요. 유대인들 자신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기 때문에 원수를 섬길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징계에 순종하고 잘 받는 것이 우리의 일).
여러분, 날 먹고 잘살고, 내가 주인노릇 한다고 평안한 게 아니에요. 내가 원수의 종노릇을 잘 할 때에 평안하다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일본때도..)?
내 원수를 통하여서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안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섬겨야 할 원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 생각만 해도 싫지 않아요?
섬긴다는 것은 자기 우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자기애의 우상, 자기신념의 우상, 자존심의 우상, 자기 이익의 우상이 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섬길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연녀 앞에서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본부인이 무릎을 꿇고 얘기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회사에서 정말 이간질시키고 앞뒤 말이 다른 그 사람 앞에서 웃으면서 섬기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적용이 역시 열매를 맺음)?
아니면 상식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그 사람들 때문에 나까지 싸잡아서 욕을 먹고 있다면, 여러분 분노가 나지 않겠어요?
하늘이 두쪽이 나도 안 돼, 못 해! 라는 것이 우리 모두 가운데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어야만 하는 사건이 와야 하는 거예요.
저희 목장에 헤어져살다가 10년 만에 재결합한 부부가 계십니다. 각자 잘 먹고 잘살았다면 왜 재결합했겠습니까? 딸의 수고가 있으니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딸만 살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재결합하겠다고 해서 재결합하셨습니다.
그 아내집사님이 지난주 이런 고백을 하셨어요. 히스기야가 기도하며 15년의 삶을 연장받은 그 은혜를, 그 기적을 경험하였는데, 자기 때의 신앙이 흘러내려 가지 못한 것처럼 자기도 나 때의 신앙이 멈춰서 자녀에게 신앙이 흘러내려 가지 못할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렵다고. 이런 나눔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 적용 질문을 드릴게요.
여러분은 교회에서 다시 모이기를 기대하십니까?
아니면 흩어진 지금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해,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 나아가서, 남겨진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돼야 할까요?
2. 해결이 아닌 회개가 먼저입니다.
25절 말씀을 우리 가정에서도 함께 읽어보세요.
25절)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이스마엘 이야기가 너무 중요한지 역대하, 예레미야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병행구절인 예레미야 41장에 보면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왕족 출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왕족이니까 아마 누렸던 특권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피식민지, 지배를 당하면서 백성이긴 하지만 그동안 익었던 익숙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참 어려웠을 거예요. 바뀌지 않는 악과 본질적인 교만이 있었을 겁니다.
그달리야가 초청한 식사 자리에서 이스마엘은 그를 쳐서 죽여버렸습니다. 이 쳐서 죽이고라는 단어가 바벨론이 남유다 사람들을 쳐서 죽였다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라고 해요. 마치 심판자가 되어서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쳐서 죽인 겁니다.
이 때가 언제냐 하면요, 칠월이라고 하죠. 자, B.C. 586년 오월에 남유다가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지나서, 칠월이 된 거예요. 아직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왜 그달리야를 죽였을까요?
예레미야 40장 14절에 보면, 이스마엘은 암몬의 사주를 받았다고 해요.
여러분,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통과할 때에 끊임없이 훼방을 했기 때문에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족속이 되었어요.
여러분, 이스마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는 자였다면요, 암몬의 사주를 받아서 동족을 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살해한 근본적인 동기는요,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달리야가 지금 앉아있는 총독의자리가 그렇게 탐낼 수 있는 자리일까? 아니에요. 어떻게 알 수 있냐면요, 예레미야 41장 4절입니다.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그가 정말 바벨론의 호위를 받는 잘 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죽은 지 이틀이나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자리가 그저 꼭두각시 같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은 너무 탐이 나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하지요 (사람이 탐나고, 자리가 탐나고, 물질이 탐나고. 십계명: 탐하지 말라).
제가 살이 많이 쪘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한다니까, 제가 이거 새로 하나 샀어요. 잘 어울립니까. 근데 와이셔츠를 못 사 가지고 목에 끼네요. 제가 백화점에 갔습니다. 층마다 코너가 있잖아요. 층마다 코너가 쫙쫙 있는데,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푸드코트예요. 그 많은 코너 중에 푸드코트가 딱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왜냐하면 제 안에 푸드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명품관을 지나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이스마엘의 눈에는요, 그달리야의 그 자리가 너무 잘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너무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여러분, 시기심 때문에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결하고 계세요?
이스마엘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으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제일 쉬운 방법이 치워버리는 거잖아요. 제일 쉬운 방법이 그냥 안 보는 거예요. 그냥 너무 싫으면 나가버리는 거예요, 보기 싫으니까 (재엽: 띃어져라 바라본다 / 도원: 여론몰이 및 정치질 / 역시 정치민족. 남을 깎어서 내가 올라간다.)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나, 이런 것보다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겁니다.
그런데 그달리야만 죽이면 될 줄 알았는데요, 그달리야를 죽이고 나니까 옆에 있던 갈대아인도 죽여야 되는 거예요. 갈대아인만 죽이면 되는 게 아니라, 또 아무 연관이 없는 유대인도 죽여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스마엘이 막 도망치거든요. 근데 예루살렘으로 순례 오는 70 명을 만납니다. 그때에 막 우는 얘기, 울어요. 제가 그 말씀을 보니까 연기 같은 거예요. 울면서 그들을 그달리야에게로 인도해 준다고 약속합니다. 이미 죽였는데. 그리고 끌고가서 죽여놓고 구덩이에 버립니다.
쉽게 해결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다 있습니다. 거짓으로 일을 풀기 시작하는 사람은 거짓을 계속 얘기해야 돼요 (또 자기가 힘이 있으면 힘으로 하려고 하고, 누르려고 하지, 햇빛이 아니고. 도원: '청소년부 하다보니 느낌. 내가 늙고 힘빠지면 애들이 지랄함.').
요즘은 해결 방식의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연락을 안 받는 것도 있더라구요. 잠수타는 거. 한 사람의 전화만 안 받을 수 없으니까, 부목자님 전화도 안 받고, 목자님 전화도 안 받고, 초원님 전화도 다 안 받는 거예요. 그런 방식을 계속 쓰는 겁니다.
여러분 적용이 반대로 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도원 & 재엽: 회피. 그래서 상담 다니고 있음). 이스마엘이 결국 암몬으로 도망가 버리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진 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참 악한자죠?
그러면요. 죽임당한 그달리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분명히 이스마엘은 악합니다. 그런데 그달리야도요,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미 예레미야를 보면요, 요하난이 이스마엘의 반역의 징후를 감지하고 그달리야에게 경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당신을 죽일 것 같습니다. 그달리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예레미야 40장 16절에,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여러분, 말도 잘하고 믿음도 있는 것 같고, 집안도 좋은 그달리야이지만, 자기 확신에 젖어서 요하난의 말을 그냥 무시해 버렸습니다 (재엽: 친절한 피드백을 들었는데 완벽주의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함 / 도원: 해야 할 것을 귀찮아서 미룸). 그런데 그 말 하나를 무시한 것이 사실 남유다 전체를 도탄에 빠뜨리게 된 거예요.
여러분, 지도자는 요, 자기 한 사람만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 분별 못하는 지도자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간에 되었다함이 없고, 누구의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 자기 말만 하고, 듣고자 하지 않는 이 남유다의 상황들이 지금 우리나라 전반의 현실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스마엘도 악하지만 영적으로 가장 악한 (개쌍) 사람 (놈) 은 어찌보면 그달리야입니다.
26절에 보면 또 한사람이 나옵니다.
26절)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자, 이스마엘은 사고치고 암몬으로 도망 갔습니다. 이제 나머지 사람이 남아있는 거예요. 이들 중에는 요하난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에 나와 있어요. 요하난이 이것을 뒷수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의로운 척을 해요. 사람드에게 관용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 또 묻는 척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결국에는 말씀을 불순종하고 애굽으로 피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인기 영합주의를 한다. 애굽으로 도망쳤대. 말씀에는 포로잘 하고 있으 라고. 여호야긴만. 포로생활을 한).마치 모든 사람을 위하는 척을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는 자가 요하난이었어요. 요하난이 도망치다가 예레미야를 만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레미야가 얘기했어요. 애굽으로 가지 마라. 남유다에 머물면 하나님이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실 것이다. 요하난이 또 물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레미야가 또 대답합니다. 애굽으로 가지 마라 (물어도 안 듣고 감. 답정너. 목장에서도 진짜 잘 묻는데 자기가 원하는 답들으려고 계속 묻는 목장 식구들).
요하난이 정말 잘 묻는 것 같은데 하나도 듣지 않고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도 애굽으로 같이 끌고 가버렸어요. 애굽으로 피하면 살 거라고 굳게 믿었지만, 바벨론 역사에 의하면요, 바벨론의 애굽 정벌 때에 유대인만 색출해서 다 처형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라가 정말 망하려고 하니까, 말씀을 듣는 자도, 말씀을 깨닫는 자도, 따르는 자도 아무도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반복하고 반복해서 말씀을 전하지만 정말 듣고 깨닫는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남유다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달리야도 이스마엘도 요하난도, 다 말씀을 떠난 자들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진 자가 되었어요.
여러분은 이 세 명 중에 누구와 같을 것 같습니까?
제가 이 말씀 설교를 준비하는 기간에 제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하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저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이 하나 있어요. 요즘 온라인 수업 때문에 집에 많이 있잖아요. 컴퓨터를 많이 하는데, 딸이 아내랑 저 모르게 채팅을 통하여서 알게 된 중학생 오빠랑 채팅을 한 거예요. 문자를 주고 받은 걸 엄마한테 들킨 거죠. 검열에 들어갔습니다. 대화를 보니까 욕이 많이 있더라구요. 저는 우리 딸이 이렇게 욕을 잘 하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거기 막 하트가 있고, 사랑해 이런 말도 있어요.
여러분, 자식을 키워봤자 소용 없다는 말이 정말, 가슴으로 와 닿았어요. 제가 그것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은요, 채팅 계정 없애버리겠다. 그랬더니 우리 딸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누가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자긴 너무 소중하다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안되겠다, 초장에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할데까지 했습니다.
대화를 했어요. 누구냐. 몰라요. 누군지 채팅으로 만났으니까. 서울에 살고 중학생 오빠라는 것밖에 모른다는 거예요. 너 요즘 세상이 어떤데! 위험한 세상인데,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게 오빠인지 동생인지 어떻게 알고. 고등학교 1학년일 수도 있어, 안 믿는 거예요. 오빠라는 거예요.
저는 칼을 들었습니다. 계정을 다 없애버리고 그 다음날 핸드폰 번호를 바꿔버렸어요. 제가 마음이 좀 무거워가지고 큐티책을 펼쳤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덮어버렸어요.
그렇게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어요 (해결이 안됨). 며칠이 지나서 딸아이의 문자를 아내가 보는데, 연락을 또 하고 있는 걸 발견한 거예요. 이 아이가 번호가 바뀌었잖아요. 번호를 적어놓고 연락을 먼저 한 거예요. 너무 소중해서 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더 실망감이 찾아왔어요. 니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엄마 아빠가 설득했잖아. 실망감이 밀려 왔어요.
제가 곧바로 드는 생각이 뭐냐면, 핸드폰을 없어버려야겠다. 그리고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게 뭐냐면, 요즘 온라인 수업이기는 하지만 컴퓨터를 다 없애 버려야겠다. 그리고 생각에 꼬리를 무는 게 뭐냐면, 머리를 그냥 삭발시켜야겠다.
제가 딱 이스마엘처럼 죽이는 걸로 가고 있더라구요. 제가 설교준비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고. 마음도 너무 심란하고, 그래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희 딸이 책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많이 보는데. 핸드폰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니까 뭐라고 안하는데. 아 외로워서 우리 딸이 책을 많이 보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제가 가정예배를 매일 드린다 드린다 하면서 드리지 않고 있는 제 모습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지도 않는 그런 아빠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사역을 핑계로 아내 몰래 카톡하고 지우고 이랬던 일도 떠오르고. 그러면서 야, 이거 내가 죄값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냥 내가 회개를 해야겠다. 내 안에 끊어지지 않는 이 악이 우리 딸한테 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 딸한테 전화를 했어요. 어떤 말을 할지 막 고민하고 전화를 했어요. 받았어요. 아, 제가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서, 제 딸의 이름이 가은이거든요.
가은아. 이렇게 딸의 이름을 부르는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가만히 있었어요, 딸이.
제가 많이 속상하지? 딸이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다른 말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아빠가 가운이한테 너무 미안해. 아빠가 너무 미안한 일이 많은 것 같아. 그러면서 제가 눈물이 막 나니까, 딸이 흐느끼면서 막 울더라구요.
아빠가 정말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다. 제가 이런 말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결말이 어떻게 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보여준 게 없어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또 우리 딸한테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난 2년 동안 청소년부를 섬기고 또 취학부를 섬기는데 사실 자녀들 때문에 속상하고 애태우시는 부모님들 종종 만납니다. 그분들 생각하니까 너무 죄송하더라구요. 내가 이것 가지고도 이렇게 힘든데, 아 그분들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제가 잘 체휼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더라구요. 당하지 않으면 깨달아지지 않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손쉽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폭력입니까, 폭언입니까, 돈입니까, 침묵입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내 상황에서 사고치는 이스마엘입니까, 뒷수습하는 요하난입니까?
말씀을 외치지만 분별 못 하는 그달리야입니까?
여러분, 이 셋 중에 무엇이에요?
여러분, 이 셋 다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더 나아가서요, 그렇다면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3. 종신토록 끊이지 않는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 갔지만 약속을 받음. 다른 이는 다 죽음).
27절)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월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절)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절)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절)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자, 열왕기하의 마지막은요, 여호야긴 왕이 B.C. 562년에 바벨론 왕에 의하여 감옥에서 풀려나 죄수의 신세를 벗고 왕족으로서 우대받고 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포로로 끌려간 왕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여호야긴에 대해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한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37년 간의 포로생활 이후에 그를 회복시켜 주셨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요 이렇게 부릅니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
그가 왕궁에 산 18년 보다 포로생활 37년이 더길었어요. 그런데 그를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남 유다왕 여호야긴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은혜입니까?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회복은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회복은 은혜의 선물인 거예요. 죄인 신분인 나를 먼저 찾아오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들교회도 사고치는 배우자를 공로자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속썩이는 자녀를 보석이라고부르지 않습니까? 부르는 것부터 구속사가 돼야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이 다가구 주택인데요, 제가 3층에 삽니다. 1층 아주머니가 참 친절하고 매너가 좋습니다. 지나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줌마가 갑자기 이렇게 얘기 합니다.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누구냐하면 교사랍니다. 여러분, 제 아내가 교사예요.
그러면서 이 아줌마가 신이 나서 얘기합니다. 자기의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누군지 아십니까? 목사래요. 아줌마가 잘 들으니까, 반응해주니까, 너무 신나서 저희 남편이 정말 또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부산 사람입니다. 이러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가족이 교사요 목사요 부산 사람입니다. 제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제가 아주머니한테,
아주머니 제가 목사예요. 제 와이프가 교사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산 사람입니다.
아주머니가 적잖이 당황하시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뒤부터 아주머니가 제가 목사라는 것을 동네에다 소문내고 다니셨어요. 4층 아저씨, 2층 아줌마, 지하 아줌마. 심지어 제가 얼굴도 모르는 옆에 있는 사람들도 제가 목사인 줄 알더라구요.
제가 주일 아침에 나올때면, 1층 아줌마가 나오셔서 이렇게 인사하십니다.
목사님, 교회 가세요? 잘 다녀오세요.
이 분이 하루는 제가 분리수거를 하는데요, 집에서 탁 나오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분리수거를 똑바로 안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자기가이거를 설치했습니다. 하면서 손가락을 가리키는데, 쳐다보니까 cctv예요.
제가 분리수거할 때요, 손이 벌벌 떨립니다. 혹시 뭘 잘 못 넣을까봐. 제가 우리 와이프도 안 무서워하는데, 1층 아줌마를 무서워해요. 하나님이 저 보고 잘 살라고. 분리수거도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 작은 거 하나도 제가 지금 벌벌 떨면서 하고 있어요. 잘 못 넣을까봐.
제가 1층 아주머니한테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오늘 말씀에 보니까, 회복되려면 사로잡힘의 사건이 있어야 된다 그래요. 이 사로잡힘을 통하여서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고백하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사로잡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로잡혀야 되는데. 우리는 정말 이 말이 학습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모든 걸 이겨야 되는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녀도 이겨야 되고, 남편도 이겨야 되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돼요 (즉 위에 서야 한다. 내가 너보다 낫다. 위다. 옳다).
전쟁은 나한테 속한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 속한 것이에요. 이 사로잡힘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꾸 힘을 빼시는데, 우리는 자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힘을 내세요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사로잡힌 분들한테는요, 이렇게 앞으로 좀 얘기를 해주세요.
아, 힘을 잘 빼고 계시네요 (똥꼬에 힘 좀 빼세요. 그래야 잘 나와요. 병 안나요).
37년 동안 여호야긴이 제대로 사로잡혔습니다. 여러분 36년 12개월도 안 돼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사로잡혀야 합니다 (재엽: 가정 학대로 인한 관계 고난이 있었지만, 그제서야 내가 자기 중심적이라는 죄가 보이고 말씀이 들렸다는 거. 있어야 할 일.예수 믿게 한 부모가 최고). 그때 하나님은 하나의 표징을 보여주시죠 (너에게 표징은 뭐니?). 여호야긴은 새로운 바벨론 왕을 통해서 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들게 해주셨습니다. 이는 그의 지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모든 왕보다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해요. 그가 왜 다른 공신왕 보다 특별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뚜렷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요,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죄수의 의복을 벗었어요. 그는 왕의 의복을 입었습니다. 바벨론 왕의 식탁에서 식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필요한 것을 공급받았습니다.
여러분,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살길을 찾겠다고 애굽으로 암몬으로 도망친 자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근데 열여덟 살의 나이에, 사실 아무것도 모를 그 나이에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게 그냥 항복하면서 나왔습니다. 어떤 반기도 들지 않고 그냥 나아갔어요. 죽겠다고 나아가니 하나님이 여호야긴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길을 찾겠다고 이혼합니다. 살길을 찾겠다고 제각각 생각한 애굽으로 도망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살길은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뿐입니다. 지질해 보이지만 사로잡히겠다고 적용한 자만이 하나님이 높여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운데 주시는 약속이라는 거예요. 여호야긴은요, 사실 죽을 때까지 바벨론에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왕으로는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호야긴을 묵상하면서, 37년 후 더 살았겠죠. 묵상하면서 이런 찬양의 한 구절이 생각 나더라구요.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포로의 삶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그 길을 가고자 했던 여호야긴이 그 길 끝에서 주님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정말로 그랬습니다. 다윗의 후손이자 여호야긴의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야긴은 구원의 계보를 잇는 자로 주님이 삼아 주셨어요.
저는 2016년 1월 31일 우리들교회 처음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그 중 참 신기하게도, 저희 가정에 남은 빚이 수천만원 있었는데, 빚의 감옥에서 나오도록 빚을 청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개월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역지를 찾고 있는 저에게 우리들교회 사역이라는 머리를 들게 해주셨어요. 목장에 가보니까 정말 그곳은 양식이 넘쳐나는 곳이더라구요. 제가 여자 집사님께 왜 이렇게 요리를 잘하세요, 이렇게 물으니까, 살짝 웃으시더니 저희 아내에게 반찬 가게를 소개시켜 주셨어요.
제가 목장에 처음 가고 얼마지 않아서 목자님이, 목사님, 사모님을 사랑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목원들은 막 웃어주면서 좋은 말로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4년 뒤에 그때 함께 목장했던 목원 집사님이 저를 만났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목사님, 그때 정말 이상하셨어요.
문자 그대로 저에게 가시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저의 주제를 깨닫고 내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고자 있어야 할 일들임이 인정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 때문에 절망하고, 또 세상 염려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구원으로 견인해 가시고, 예수님의 계보를 낳는 인생으로 세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여호야긴처럼, 제가 가는 이 길 끝에 주님이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시간은요, 여호야긴의 회복의 약속을 붙들며 살아가는 우리 취학부의 한 집사님과 아이의 간증을 잠깐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의 간증)
아빠-엄태범 집사)
네. 우리 집사님이 아내를 전도하려고, 재결합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계속 적용하고 계시는 중에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뚫고 들어와서 내 죄를 직면하고 끊임없는 회개의 고백이 터져나오는 것이 양식이 되어서 나를 먹이고 다른 사람을 먹인다면 지금 여전한 포로 생활에 있더라도 그것이 예수님의 구원을 이어가는 최고의 삶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적용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회복되기 위해서 3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데, 여러분은 어디까지 오신 것 같습니까?
1년이십니까, 5년이십니까, 10년이십니까, 20년이십니까?
한번 나눠봤으면 좋겠구요.
여러분의 머리를 들어주실 때까지 여러분이 기다려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변하지 않는 상황에도 여러분은 해석할 말씀이 있으십니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이 절망의 상황에서 붙들 회복의 약속은 남은 자에게 하나님 말씀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앞에서 해결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그 회개하는 자를 통하여서 예수님은 끊어지지 않는 약속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이시간, 아까 불렀던 찬양을 마음에 새기며,
지금의 삶이 포로의 삶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죽 걸어가다 보면, 우리 주님이 두 팔 벌려 안으시고,
그래 잘했다,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이렇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런 마음으로 이 찬양 하나님께 올려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기도제목)
남유다 땅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 있으십니까?
의지할 것 없는 이 비천한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붙들면 소망이 있음을 알기 원합니다.
말씀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포로로 끌려간다는 말씀이라도 아멘으로 받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끊임없이 해결만을 부르짖는 인생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하는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정말 사로잡힘의 이 사건 통하여 인내할 수 있도록, 그 길 끝에 주님이 계시면 그것을 상급으로 여기며, 애굽으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기를 이 시간 다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목장]
-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게 축복이고. 이런 공동체 환경이 주어진게 축복. 쓰임받는게 축복.
기도 -
재엽- 평범하게 천천히 한번에 한걸음씩만 일상속에서 큐티하기. 한번에 해결하려고 하지말고 (밀린거 다하려 하지 말고. 완벽주의네 ) 이거 내려놓게.
도원 ampndash 세미 폐인인데 일상생활 잘 회복. 그리고 뭔가 눌린게 있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를겠지만 잘회복. 상담 잘받고, 하루하루 잘살기. 가족 구원 건강. 앉아서 뭘 시작하는 적용필요.
목장회복.
적용 할거 ampndash
재엽 - 뭐할 때 내가 뭐했습니다 생색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기. 남이 물어 볼대 한일 팩트만이야기 하기. ( 내가 안한것도 내가 한것처럼. 참 사람이 그래. ) 남이 알아봐주지 않아도 하나님 상급이 되야 이게 되겠네.
도원 ampndash 앉아서 뭘 시작하는 적용. 누워있다가 인방보다가 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