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말씀: 사도행전 11장 27절~30절
제목: 성령의 부조
설교: 김양재 목사님
1. 성령의 예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은 교훈적일수도 예언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앞날을 내다보는 은사가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점쟁이가 되고 만다.
늘 예언받으러 다닌다고 하면서 점을치며 여기저기 다닐 수도 있다. 신약의 사도행전에서 처음 예언의 은사가 나왔다. 신약의
예루살렘 교회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이 임해서 충만할 때 박해받았기 때문에 왠만한 일은 예언하지 않으신 것 같다.
이미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승천 하셨기 때문에 앞날을 예언하는 은사는 비중이 낮게 다뤄졌다.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떤 앞날의 일도 점쟁이처럼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반대로 주님과의 만남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점쟁이 예언을 찾아다닐 것이다.
이제는 진리의 성령님이 장래일을 하게 해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면 모두 만인 선지자시대에 살고있기에
모두 선지자적인 예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흉년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구속사적인 흉년을 생각해보겠다.
아가보의 예언은 반드시 흉년이 있을것인데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가보는 장래의 흉년을 예언하기 위해 손짓 발짓으로
싸인주며 안타깝게 예언했을 것이다. 불신결혼 하지 말라고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신의 오장육부를 드러내며 간증 해야 하는지 모른다.
지금은 안들어도 후에는 알기 때문에 다들 목장에서 후일의 흉년을 성령으로 열심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베드로전서 1:21, 1:10-11까지 보면 선지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미리 증언하여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성령의 예언이다.
성령의 예언으로 무슨 말을 했을까?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이라고 했다. 장차 받을 환란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 환란을 얘기하시면
반드시 받을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28장 치명적인 우상숭배로 바벨론 포로로 갈 것을 예언하는 예레미야.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있다. 바벨론으로 옮겨간 성전의 기구를
다 가져오게 하고 포로들도 다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하니 예레미야는 평화를 예언하는 자는 그 말이 응한 후에 참선지자로 알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냐 선지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여호와께서 두 해가 차기전에 열방의 목에서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버리라
하셨느니라 고 말한다. 바벨론 왕을 다 꺾어버리겠다고 한다. 거짓선지자가 하도 확신 있게 얘기하니 예레미야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15-1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해서 하나냐에게 가서 이 말을 하라고 하신다.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기에,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냐에게 네가 꺾은 나무멍에를 절대로 꺾을 수 없는 쇠멍에로 바꾸어 반드시 바벨론 왕을 섬기게 하겠다고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참선지자는 우리가 당하는 이 일은 죄의 결론이니 포로로 끌려가 순종하라고 하는데, 거짓선지자는
결단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얘기가 좋겠는가? 흉년의 얘기를 하는 것을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흉년을 예언하는것이 어렵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의식이 있어서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안디옥교인들에게 흉년의 예언은 사울에게 말씀을 잘 배워서인지
우리에게 흉년은 없다 라는 말은 안하는 것이다. 사울은 정오의 회심을 통해 확실히 주님을 만나서 안디옥에서 흉년 얘기를 해도 안디옥교인은 싫은말
안하는 것이다. 천하는 언제든지 흉년들때가 온다. 이것은 무서운 얘기가 아니고 협박성 발언도 아니다. 복음은 늘 장차받을 환란이기때문에 미리 듣고
양육받으면 우리 모두 만인 제사장 시대에 살고있기때문에 각자의 글라우디오 왕 때가 되면 음 있어야 될 일이군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가보와
예레미야같은 선지자도 있고, 거짓선지자 하나냐도 있다. 분별을 잘 해야 한다.
말씀을 읽고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오실 예수님을 찾고 날 위해 죽어주신 오신 예수님을 찾으면 모든 예언의 완성이기에 우리모두 성령의 예언자가
되게하신다.
적용질문) 잘될것이라는 소리만 듣기 원하는가? 흉년의 소식도 잘 들어내는가?
2. 각각 힘대로 작정합니다.
힘대로는 각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여건이 되는대로 부조를 보낼 것을 작정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들의 탄탄한 실력을 볼 수 있다.
안디옥교인들은 흉년이 비켜간것이다. 예루살렘교회만 왜 흉년이 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복음이 전세계에 나가기 위해서는 선민주의가
깨져야 차별없는 복음을 보이게 하신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졌지만 기독교중에서도 선민의식이 생겨 오늘날 카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졌다.
유대교의 선민주의는 아직도 계속되어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선민주의가 이렇게 무서운데 안디옥 제자들이 유대 형제들에게 부조하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이다. 가르침이 확실해서 그렇다. 주님만난것이 확실하니 말씀이 정확하게 해석되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조는 공사로 번역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이다. 자선사업과 구제를 목적으로 교회 옆에 지은 건물을 뜻했다. 디아코니아는 자선과 구제의 의미를
표현한 말로써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남는 것을 보내는게 아니라 시중을 들듯이 고통분담을 했다는 뜻이다.
청지기는 극단적으로 재물을 포기하고 배척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재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자이다. 위험한 재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관리하는
자가 지혜로운 청지기인 것이다. 나누어주는 일은 소유물과 소유지가 없는 형제자매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십일조의 신앙고백이 없으면 각각 힘대로 부조를 할 수 없다. 느헤미야에서 십일조를 하게 하는데에는 즐겁게해주는 지도자가 절대적이라고 했다.
느헤미야 12:43절 부터 보면 백성들이 낙성식 후에 즐거워서 십일조를 쌓았다고 한다. 온 백성이 즐거우니까 십일조가 저절로 쌓였다.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는 첫째로 하나님을 섬기고, 둘째로 날마다 회개하고, 셋째로 하나님의 명을 행하고, 넷째로 최강의 예배 회복하며, 다섯째로 무슨 일에나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는 지도자라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지도자가 즐겁게 해주던 근심케하던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십일조 신앙을 가져야한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 앞에서 땅의 소산으로 응답
하는 구체적인 예배행위이며, 전 삶을 드리는 성도의 경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십일조의 신앙고백이 확실할 때 각각 힘대로 작정해서 부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적용질문) 십일조를 신앙고백으로 하는가? 의무적으로 하는가? 안하는가? 그러기에 나는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인가? 근심케 하는 지도자인가?
3. 잘 실행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이 부조를 예루살렘교회로 보냈다. 작정하고, 실행하여 보내니라는 말은 회중 전체의 뜻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보여주기식이 아니었다. 처음 세워진 이방교회가 부조를 하자 뒤에 세워진 이방인교회도 따라한다. 이렇듯 처음에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십일조가 신앙고백으로 드려졌으니 하나님의 성물이다. 그 성물을 잘 실행해서 잘 써야한다. 십일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쓰기도 잘 써야한다. 믿는 자는
먼저 믿는 자를 도와야한다. 교회가 교회 밖에 구제했다는 말은 별로 안보인다. 세상에 대하여는 복음증거가 먼저이다. 교회 안에서는 봉사와 사랑도
필요하다. 구제가 복음증거보다 우선시되면은 또 안된다. 구제도 교회 내의 구제가 교회 밖의 구제 보다 앞설수가 없다. 신앙고백으로 하는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구제헌금으로 선교헌금으로 다 쓴다면 자기 의로 선한 일을 열매를 쌓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사회에 부조를 하고 봉사하고 헌신해야한다. 누구보다 질서를 지키고 덕을 세워야한다. 물질과 언어로 사랑으로 부조해야한다.
때가되기까지는 악법도 법이라 지켜야한다. 영적 진실성의 결론은 인내이다. 성령의 부조란 자발적인 봉사를 말함이지만 자기 열심으로 하는 봉사는
아니한만 못한 봉사가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치우치지 않은 부조를 하려면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어딜 돕고 안도와야할 줄 알려면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한다.
십일조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재물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것이다. 기복으로 십일조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기복으로 한 것은 신앙고백으로 했다고
보긴 어렵다. 십일조 신앙으로 십일조를 했다면 늘 매사에 욕심으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기 때문에 본인의 실수로 망하는건 거의 없다고 보면 맞다.
날마다 신앙고백하는 자를 왜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시겠는가?
신앙고백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지도자처럼 감사로 통과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정이나 교회나 모든 집에 부조를 하는 것이다.
십일조는 신앙고백이 절대 맞다. 이 부조를 헌금과 연결시켰고 돈과 연결시켰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부조도 날마다 계산하고 또 계산해서 책임감가지고
벌금도 잘 낸다. 돈인가 하나님인가의 겨룸이 우리는 매주일 신앙고백으로 드려진다.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지시지 않을 수 없다. 신앙고백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영육간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 성령의 부조가 아니라면 나의 의로 부조했기때문에 금세 생색이 나고 조금만 환경이 나빠져도 남을 탓하고
불평하고 세상법을 안지킨다.
신앙고백으로 십일조 하는 성도님들을 기쁨이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분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적용질문) 십일조의 축복을 받은 경험을 나눠보세요.
[기도제목]
허준
1. 본질를 위해 비본질을 인내하고 치우치지않는 신앙고백을 할수 있도록
2. 사명을 잘 감당하며 성령의 예언을 하고 받을수 있도록
3. 운동꾸준히 할수 있도록
4. 목장이나 유아부 감사함으로 섬길수 있도록
5. 코로나가 종식될수 있도록
6. 유아부 5세반 아이들 잘 적응할수 있도록
7. 신교제의 용기를 가질수 있도록
남동훈
1. 온순한 마음을 가질수 있도록
2.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3. 맡은 프로젝트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4. 동료들과도 협업 잘 할 수 있기를
이광명
1. 인내하며 묻고 가길 원합니다.
이인성
1.직장 남은기간 잘 마무리 할수 있도록
장승호
1. 담배끊게해주세요
2. 찬양전도사 되도록
3. 특공무술 5단 따도록
박정준
1. 교만한 마음들지않고 항상순종할수있는 마음들기를
2. 시간없다라는 핑개로 할머니께 연락자주못하는데 연락자주드릴수있기를
3. 교회 목장 유아부 잘섬길수 있기를
이진국
1. 주신 QT말씀 가지고 하루를 살도록
2. 내 죄를 고백하고 예배가 들릴 수 있도록
3.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간을 가치있게 쓰도록
4. 운동 꾸준히 할 수 있도록
5.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