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그리스도인> 사도행전 11:22-26
광복 75주년을 맞았습니다. 어둡던 이땅이 밝아오네의 노래처럼 정인보 작사의 광복절 노래처럼, 1905년의 을사늑약부터 시작하면 40년 만에 우리의 흙을 다시 만져보게 되었습니다. 세계에 보람된 거룩한 빛이 예서 나리니- 인생의 목적이 거룩인데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이 우리나라에서 난다고 예언을 했네요. 우리 나라가 정말 작은 소수의 나라인데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제헌 국회가 성령의 소수가 되어 기독교가 자리잡았는데 기독교의 역사가 짦으니 문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오늘 안디옥 교인들처럼 진정한 성령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그리스도인은 첫 째로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입니다
22절-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지금으로 보면 안디옥 교회가 부자이고 스펙도 좋은 지역인데 무명의 성도가 안디옥에 주예수를 전파해서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렸어요. 원문에는 듣고-가 먼저 나오는데요직역하면 교회의 귀들에 소문이 들렸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보다는 그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개개인들이 안디옥 교회의 소문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들었음을 강조합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한다고 하면 그 교인들이 관심이 많은것 같아요. 사람 사이에서 소문보다 빠른것은 없다고 하지요. 고대 그리스의 희극의 작가 메난드로스는 남의 일에 대해서 지껄이는 것만큼 통쾌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악한 사람 선한 사람, 시끄러운 사람 조용한 사람 모두 소문은 나게 되어있습니다. 특히 성도는 세상에서 소문 나기 가장 좋은 대상이예요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4장 9절에 내가 생각하건데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와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처럼 성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과 같이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떄문에 내가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세계와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혼자서 굴 속에서 들어가서 살 수 는 없는 삶이에요.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나는 소문 나는 거 하나도 안두려워','나는 혼자가 좋아 사람이 싫어'라고 한다면 거기에도 다 소문이 납니다. 성도라고 할 수 없어요. 이왕 구경거리로 살아간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조롱도 받을 수 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좋은 소문이 됩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보면 예루 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의 공동체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니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어요.로마교회 성도들고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너희의 믿음이 온세상에 전파 되는도다- 했습니다. 좋은 소문이 나니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문은 중요합니다. 사람도 늘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이 있고 분쟁의 소문이 나는 사람도 있어요. 교회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우리에게는 좋은 소문이 이 세상에서 좋은 소문일 수 도 아닐 수 도 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진리는 세상에서도 진히는 좋은 소문으로 나게됩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문은 예수 잘 믿는 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교인들도 사도행전 1장 8절에 '세상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의 명령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땅끝까지 못갔지만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것 같아요. 물론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경험으로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편협함을 버리기는 했지요.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나서 좋은소문에 걸맞게 가장 좋은 소문의 주인공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위로의 아들, 권명의 아들이라는 그의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구브로 태생의 레위인이었죠. 무명의 성도 중에도 바나바와 동향인 구브로 출신도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출중한 교사, 산교사 였고 바울의 동역자로서 초대교회의 중심인물 이었어요. 구레네 사람 중엔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의 시몬도 있었죠. 그러니까 무명의 성도들은 자기들이 생각해도 안디옥 교회의 개척공신에 자기들의 이름을 올리기가 정말 황송했을 것 같아요. 저절로 남들이 보기에도 겸손한 자리가 겸손을 유지하기가 쉬운거 같아요. 바나바와같은 고향 구브로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바나바가 이곳에 간것은 아주 알맞은 파송이었던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형제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베드로가 안되는 것이 있다고 했지만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것은 아주 큰 역할 이었습니다.
적용질문-여러분은 가장 좋은 소문의 주인공이 예수 잘 믿는 소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까?그래서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습니까?
성령의 그리스도인 두 번째는 믿음과 삶이 일치되는 사람입니다.
23절에-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바나바가 가서 보니까 사도들이 아니라 무명의 성도들이 전했는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라면 같은 성령이니까 무조건 기뻐해야 하는것이 맞죠. 그런데 모든 사역자들이 다른 사역자에게서 은혜 받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죠. 저도 마찬가지겠지만, 천국가기 전에 제가 전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나타나는 하나님의은혜를 보고 정말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나바는 부자이고 마음도 좋은데 어찌 이리 믿음이 좋은지요? 다 절대치의 고난이 있지요. 바나바도 일단 스데반의 일로 핍박이 일어나서 다 흩어졌잖아요. 그래서 소수로서 뼈저린 아픔의 고난의 겪고 있지요. 그래서 안디옥이나 이곳이나 동일한 은혜구나-를 분별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은혜 가운데에 있어도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권하니-는 미완료 형태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권고했다는 말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는 한 목적과 뜻을가지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막 나타나서 보니까 사람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바나바가 간파했어요. 우리들 교회도 사람이 많이 올 때 사람을 세우는 것이 중요했잖아요. 제가 뭘 알았겠냐만은 죽어라고 큐티를 하다보니까 저절로 말씀이 사람을 세워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교회를 튼튼하게 하셨지요. 왜 이런 말씀의 양육이 필요할까요? 바나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그들에게 많은 박해와 시험이 도래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사람이 세워질 때 육이 무너지는 만큼 세워지는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여전한 법칙이기도 합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를 지나 네로 황제 때에 전대미문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고 사자밥이 되기도 하고 이런일을 겪을 것인데 굳건한 마음으로 머물러있으라는 것은 잘 붙어있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새가족 환영 때에 늘 붙어있기만 해라 그러면 수지맞는다는 말씀을 드리는데요, 과연 붙어있기만 하면 말씀이 안들리다가도 어떤 기회에 들리게 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붙어있기만 하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확고부동한 마음으로 주를 의지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말씀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서로 권고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굳게 붙어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광복절 노래에 '길이 길이 지키세 힘써 힘써 나가세' 라고 하는것처럼 광복이 되었어도 우리 나라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노랫말을 적었습니다. 그러려면 힘써 나가야 된다고합니다. 1949년에 정인보 선생의 노랫말이 당선이 되었습니다. 정인보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이 삼고초려를 하여 초대 감찰위원장을 역임하신 강골입니다. 문학자이자 역사학자이며 삼일전 광복절등 4절기의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4월 26일 광복절 노랫말이 정식으로 채택되고 두 달만에 6.25 전쟁이 터집니다. 김일성의 처남이자 정인보의 사위인 간첩 홍기무에 의해서 정인보 선생은 납북되어 처형을 당합니다. 사위는 남파 간첩이 되어서 같이 혁명사업을 하자고 하지만 정인보 선생은'너는 유물론자이고 나는 유신론자인데 어떻게 같이 혁명사업을 하겠냐' 고 답했습니다. 사위는 큰절을 하고는 장인이 절개를 지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인민정부에 반하는 것은 반동이라며 며칠 후 정인보 선생을 납북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 당시에는 공산주의가 매력이 있어서 다들 포섭을 당했습니다. 김일성의 마르크스 사상에 매료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식민지에서 독립이 되어서 기초가 없는 나라의 상태에서 지식인들이 모두 공산주의에 빠졌습니다. 광복이 된 후 실력이 더 있던 김일성과 인재들이 남침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한이라도 지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4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 지더라-바나바가 이렇게 권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있다는 것은 그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이 다 연동되는 얘기입니다. 굳이 나누자면 착한것은 인격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것은 영적으로 풍부한 은혜-믿음 쪽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바나바는 성품과 믿음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 입니다. 성령충만이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삶으로 증명되어 지니까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 지더라고 합니다. 바나바는 돈으로 인격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300프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일꾼이었어요.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하여서 교회의 부흥에 지도자 한 사람의 신앙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교회가 부흥했다고 지도자가 자신을 과시하면 무너지는 일은 순식간 일 수 도 있습니다. 이런말을 들을 때마다 두렵고 떨립니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내 자신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이 칭찬을 한다고 혹은 비난을 한다고 제가 그대로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저를 가장 잘 알기에 늘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알다시피 제 주제를 알아서 형편없다고 고백을 하면서 왔습니다. 큐티모임 때 부터 , 혼자 큐티를 할 때 부터 여러가지로 부족해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에스겔 큐티 간증부터 모든 간증이 너무 생소하다 보니 어디를 가나 인정을 안해주는 분위기에 직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듣는데 왜 인정받지 못하지-때문에 또 회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목회를 할 생각을 했겠어요, 엄두도 못내는 일이죠.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큰 무리가 주께 더해지게 되었어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제가 만약에 교회를 위해, 부흥을 위해 설교를 했다면 절대로 그런 설교를 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설교를 하는 분이 하나도 없고 목회를 하려고 큐티를 한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부흥을 했으니 거꾸로 추적을 해봅니다. 왜 부흥을 했는지 보니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 자기 죄를 보는 일이에요. 또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그건 오래가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죄를 잘 보는 사람도 아니에요. 바나바가 그랬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번주 한 목자님이 나눔에서 '목사님이 정치를 하는것이 아니고 이해해야 한다고, 이해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난주 설교에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마음대로 나누라고 해놓고, 마지막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이해못하면 나 말씀 안들림이라고 설교를 한거예요. 맞습니다. 내용보다 저의 태도가 틀린거죠. 마음대로 얘기를 하라고 해놓고는 믿음이 없다고 하면 누가 이야기를 하겠어요? 그러니 이렇게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것이 딱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연약합니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것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형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질이 좋아도 담아내는 그릇이 좋아야합니다. 사람들은 본질만 좋으면, 내용만 좋으면 다 괜찮다고 생각을 하지만 항상 아무리 진리가 바른것이어도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완고하고 불순하고 막말을 하면 본질이 호도됩니다. 형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과 삶의 일치는 정말 어렵습니다. 또 어떤분은 누가 주차한 차를 긁어놔서 수리하러 갔더니 아들이 얼마 전 설교에서 들은 말씀을 이야기하며, 돈을 받지 않고 큐티책을 준 전도사님 처럼 우리도 돈을 받지 말고 큐티책을 주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목자님이 난 그렇게 못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애들이 안듣는 것 같아도 목사님 설교를 다 듣는다는 것이 감사했대요. 자신은 매번 말씀을 잘 듣지만 적용은 못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그러니 아이들이 믿음이 없어도 듣는것이 중요하고, 적용은 아이들이 먼저합니다. 감동이 없어도 아이들은 온몸으로 듣기 때문에 어린이 주일학교에 가야 합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착하다는 소리를 듣습니까? 믿음이 좋다는 소리를 듣습니까? 둘 다 듣습니까? 둘 다 못 듣습니까?
성령의 그리스도인 세 번째는 오직 복음 때문에 동역자를 분별합니다.
바나바의 이런 훌륭한 인격이 결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것이 25-26절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가서-여기서 사울을 찾다는 애써서 찾았다는 뜻입니다. 바나바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가 잘 드러나는 단어를 썼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직접 찾으려고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다소까지 갔습니다. 자 사울이 등장한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지요? 9장에 나오는데 이제 11장을 설교하는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 똑똑한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다가 다메섹에서 정오의 회심 후에 3년 동안 아라비아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는데 여전히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믿지 못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그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멀리 떨어진 사울의 고향 다소로 보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서 1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 외로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정말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무엇을 했을까요? 스펙하면 따라올 자가 없고 출신도 따라올 자가 없는,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수저인 사울은 교회까지 열심히 다녀서 따라올 수 없는 열심으로 초대교회 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사울은 본인이 총명했던 시절 만큼이나 낮아짐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아라비아의 3년 가지고는 모두의 원한이 풀어지지가 않았어요. 이런일이 우리에게도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회개한다고 상대방이 금새 받아주고 달라지지 않지요. 오랫동안 묻혀있을 만큼 사울의 죄는 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면 그만큼의 세월동안 낮아짐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이방인의 회심으로 교회가 왕성하게 성장하는 이 시점을 위해 사울이 준비된 사람이라고 딱 믿었어요.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도저히 사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에게 사울은 꼭 필요한 사람이었고, 사울에게 드디어 공식적인 사역의 기회가 오게 된 것입니다. 소명은 부르심이 먼저입니다. 루저처럼 박혀있는거 같아도 성령님이 아시고 찾아오십니다. 3년을 숨어있다가 와도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유승준이 10년이 지나도 입국을 못합니다. 정말 우리나라가 무섭긴해요 예루살렘 교회도 무섭습니다. 사울이 딱 알고 박혀있습니다. 내가 먼저 뭘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성령님이 아시고 찾아오실 때까지 뭐든지 기다려야 합니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서 모든 의견을 표명했는데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법이 있어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돌봄으로 큰 무리가 주께더하여 지고 있는 그 때에 더 잘 가르칠 사람을 찾았다는 것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무엇이 유익한가만을 생각하는 바나바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원조를 구하거나 다른 지도자를 찾기위해 묻지 않았어요. 사울을 찾으러 갔다는 기록만 있잖아요. 바나바가 착해서 맨날 남의 말만 잘 듣는거 같지만, 이 사람은 지금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을 했으니 교회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다 지금 사울을 싫어해요. 그런데 바나바가 보기에는 적합한 일꾼입니다. 바나바가 맞았어요. 이럴 때가 있는거예요. 다 들어야 하지만, 바나바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어요. 옳고 그름으로 오직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물어보고 사울을 데려오는 과감한 결단을 할 때 도 있어요. 이게 참 어렵지만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한절 한절 분별을 해가야합니다. 제가 성경을 차례대로 읽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차례대로가 구속사이기 떄문입니다. 오직 복음 때문에 욕심을 내려놓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알려주시는것이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얼마나 간절하게 찾았는지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직접갔습니다. 왜 이렇게 직접갔을까 깊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큰 무리가 주께 더해지자 홀로 목회를 하는것에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가 씨앗이 보이니 자기 보다 더 훌륭한 목회자로 바울을 초빙한 것입니다. 안디옥이 대단 학문의 도시, 철학의 도시이기에 그들을 위해서는 변증을 할 수 있는 사역자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예루살렘에 흩어진 사람들은 안디옥 사람들이 무시할 만 했습니다. 가난하고 학문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에 사울이 딱 떠오른 것입니다.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한 것도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언제나 주를 위해 일하려고 하니까 사람을 분별을 잘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데반을 죽인 전과자같은 사울입니다. 너무 무섭고 두번 다시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래서 아라비아에서 3년이 지나고 돌아온 사울도 죽이려고 하니 사울이 도망을 갔던것입니다. 바나바가 오직 복음만 생각하니 사울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도 좁은 길을 가는데 워낙 인품이 훌륭하니 그의 한마디가 보증수표가 됩니다. 바나바같은 사람이되면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방선교의 획을 긋는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골라낸 사울이 너무나 탁월해서 자기가 고른 사울로 인해서 베드로도 바나바도 자신의 자리를 다 넘겨주게 됩니다. 13장부터는 베드로도 사라지고 바나바도 한번만 더 등장한 후 바울에게 자리를 넘겨줍니다. 우리는 내가 팽당할 것 때문에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세우시는데,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여러분이 여기까지 묵상을 해야합니다. 이런 바나바를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읽기만 해도 바나바가 훌륭합니다 그가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괜히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어 엄청난 선교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여러분 기억에 사울에게 착하다는 수식이 있나요? 사울에게는 착하다는 수식이 기억이 안나요. 물론 사울이 대단합니다. 인간이 다 죄인이에요. 바나바처럼 오직 복음을 위하여 동역자를 분별해야 하는데요,저도 바나바같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명실공히 바나바는 자신보다 탁월한 지도자를 소개했어요,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가장 탁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탁월함 중에 가장 최고를 뽑으라면 사울을 추천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런 탁월함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울의 탁월함은 수많은 고난으로 이어집니다. 사울은 자기 고향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잔멸자입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에 그 길을 갔습니다. 그 많은 고난을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스데반 사건만 생각하면 어떤 것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것을 스데반이 보았어요. 그 때 유대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돌로 치는 그 장면에 사울이 있었어요.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고난을 받아도 스데반의 그 장면이 생각나지 않았겠습니까. 뇌리에 박혀서 수 많은 고초를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주에 선교사님 말씀 중에 바울이 얼마나 스데반이 있는 천국에 가고싶었을까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정말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스데반을 죽여놓고 내가 선교하면 뭐하나..나도 스데반이 있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그곳이 훨씬 좋지만 너희들 때문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의 세팅은 신묘막측합니다.
26절에 가서 만나매-사울을 만났습니다. 안디옥에 데리고 돌아와서 둘이 교회에서 일년간 모여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사울을 애써서 찾은 결과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으로 인도를 했습니다. 사울도 예루살렘교회에서 가장 빛나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으니 얼마나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하고싶었겠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그들이 그렇게 무시하는 이방인 교회에서 사역을 하라고 하는거예요, 베드로는 사울만큼 극적인 체험을 하지 않아서인지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얼마나 가기 싫어하는지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가기 싫어요 싫어요' 하는데 사울은 예전이라면 무시하고 또 무시했을 안디옥교회를 감사해서 따라나갑니다. 즉시 따라갑니다. '나는 못가요'하지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난이 사울에게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만나서 제자훈련을 받는게 고난이었어요. 같이 다니면서 풍랑에 예수님을 시험하고, 귀나 잘라대고 하면서 나는 예수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는다는 소리나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든 사역자들이 아마 베드로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밑바닥의 인생을 살았던 사울은 쓰임 받는다는것에 너무 감사했을 거예요. 그래서 일년간 함께 모여서 가르쳤는데 일 년간의 간은 whole, 전체를 뜻합니다. 사울은 일 년간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일 년 전부의 시간을 온전하게 큰 무리를 가르치며 함께 했음을 나타냈습니다. 안디옥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제 막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앙교육,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 또 보혜사 성령님의 보내심, 재림 등에 대해서 배웠을 거예요. 이렇게 안디옥 교회는 좋은 목회자와 동역자, 좋은 성도들이 이루어낸 작품이 되어서 전세계 선교의 교두보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무명의 성도들이 전도를 했고 바나바가 파송되었고 사울이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그들의 말을 잘 들은 성도들에 의해서 안디옥의 성도들은 비로소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전하고자 했을 때에는 그들이 다 죽이려고 했는데 안디옥의 성도들은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 듯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안디옥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안디옥의 불신자들,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을 크리스티아누스라고 복수형으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유대인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라는 별명을 붙였을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이 신약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이 더 이상 어떤 유대교의 한 종파에 속한 사람들로 인식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이제 유대교와 구분되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령을 받고 초대교회가 생겼잖아요. 그들도 예루살렘 교회라고 하고 그들을 죽이려던 예루살렘 교회의 대제사장들도 예루살렘 교회라고 하고 두개가 늘 헷갈리는데 여기서 부터 유대교 기독교 즉 유대교 그리스도교로 완전히 다른종교로 부르게 된것입니다. 로마 시저의 군인들을 시저인이라고 불렀고 폼페이 군인들을 폼페이인이라고 불렀다면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도 그런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자, 그리스도의 군인, 그리스도의 종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불리워져 그들의 특징을 나타내었고, 신약에서 두번 더 나오는데 사도행전 26장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에 나타납니다. 믿어도 성경을 제대로 읽고 양육을 받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삶이 구분이 되어서, 그동안 베드로 시대였는데 사울이 일 년 간 가르치면서 혁혁한 공을 세워서 처음으로 불신자들에게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들어낸거예요. 그냥 선행 정도를 가지고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듣지 못합니다. 말씀으로 양육받고 적용하니까 밤접할 수 없는 권위가 생기고 매력이 생겼어요. 그들은 흩어진 유대인들로 가난했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안디옥 사람들보다 학문도 부족하고 핍박 받아서 나라도 없이 떠도는 그들을 안디옥 사람들이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불렀다는 거예요. 인도의 간디가 자기는 그리스도는 인정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그리스도인은 보기힘든 시대를 살고있습니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말로 썼는데 그들이 원낙 한결같으니 나중에는 존경하는 말로 바뀌었어요. 양육을 잘 받으니까 안디옥에서 이혼도 안하고 동성애도 끊고 세상사람들과 구별이 딱 되는거예요. 여러분들 예수믿으면 구별되게 살아야 해요. 무조건 교회다닌다고 코로나로 부터 지켜주는게 아니죠. 지킬것은 지키고 조심할 것은 조심하고 원칙을 지켜야합니다. 특히 생명을 가지고 눈살 찌푸릴 일을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교인들에게 붙인 별명이 칭호가 되었어요. 재수생 모임을 할 때 재수하는 것도 쪽팔린데 무슨 재수생모임이냐고, 재수생들이 다니니 양재학원이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오니 양재학원이 조롱하는 말에서 격상이 좀 되었겠지요? 그 때는 기분이 나쁘기도 했습니다. 요즘 기독교의 별명은 개독교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열왕기를 보면 왕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다른 나라를 섬기면 항상 앗수르나 바벨론이 쳐들어옵니다. 그러면서도 기도하면 사면초가에 있다가도 앗수르의 18만 5천명이 하루 아침에 죽어서 유다를 또 건져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경제 10위권 안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만해져습니다. 믿는 우리가 산헤립의 편지를 성전에 놓고 울며 기도해야 할 때가 왔어요. 그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사단이 괴롭힙니까? 사단의 참소를 주님 앞에 아뢰기 바랍니다.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1차 본회의 에서 그 당시 임시의장이신 이승만 박사는 여러말이 있지만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오늘을 당해가지고 이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가 성심으로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터인데 이운용 의원님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주시가를 바랍니다'하고 애국 의례 보다 순서에도 없는 감사기도를 먼저 했습니다. 이 때 이운용 감리교 목사의 기도 중에 이런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의와 용과 모든 덕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이러한 요소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역사의 첫 걸음을 걷는 오늘, 우리의 환희와 감격이 넘치는 이 민족적인 기쁨을 모두 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로 올리나이다.'로 시작한 제헌 국회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만든 헌법 전문은 지금 글을 쓴다고 해도 명문이라고 해요. 이승만 대통령은 공이 있고 과가 있어요. 그런데 남유다 왕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생하였으나 산당을 폐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해요. 저는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됐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우리 나라가, 믿는 사람들의 부족함으로 기독교가 폄훼가 되고있습니다. 정말 기독교하면 지금 눈살을 찌푸리는 거예요. 이럴 떄 일 수록 우리가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원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광복 75주년을 맞이하여 진정한 성령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적용질문> 사람을 분별할 때 오직 복음으로 합니까, 내 유익으로 합니까, 여러분은 다른 목자가 인도를 너무 잘한다고 하면 너무 기뻐할 수 있습니까?
<기도제목>
이미선
1. 개인 신앙 지키는데 더욱 마음과 시간을 들이길
2. 내 자신을 돌아보며 회피하지않고 지혜롭게 말씀으로 직면하길
3. 신결혼을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4.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가 정상화되도록
5.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6. 차별금지법 낙태법 등의 악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7. 코로나로 피해자가 되는 모든 확진자들을 위로해주시고 치료되길
한보화
1.여호와의 열심을 기억하고 실패의 불안함애서 벗어나 학업과 사업에 도전할 수 있기를
2.매일 큐티 꾸준히 할 수 있도록
3.목장중보와 가족구원 기도에 힘쓰도록
4.코로나 확산을 막아주시고 환우들을 치료해주시길
5.차별금지법 통과를 막아주시고 하나님의 올바른 가치관이 나라에 교육과 온 나라에 세워지도록
고은희
1. 매일큐티하기
2.가족구원(오빠와 오빠가정이 구원받을수있게)과 목장중보
3.믿음과 삶이 일치될수있길
4.코로나가 종식되고 백신이 빨리 개발될수있길
5.수해로 인한 피해들이 빨리 복구되고 수해자들을 위로해주시고 구원의 사건이 될수있길
6.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낙태법이 통과되지않길
조민정
1. 성령충만, 지혜충만, 영혼육 강건함, 매일 주님과 친밀한 교제나누기
2. 가족구원, 가족들 영혼육 강건함
3. 날 향한 주님의 계획하신 길을 알고 순종하며 나아가길(직장), 좋은 타이밍 잘 잡도록
4. 나와 잘 맞는 믿음의 배우자
5.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무너지고 올바른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수 있도록
손연정
1. 더위 잘 피하고 매일 성경 한구절이라도 읽기
2. 부모님과 오빠 가족, 한국에 돌아온 친척들 위해.
3. 휴식과 게으름의 경계선에 넘어가지 않게, 일대일양육 숙제, 매일말씀보기, 매일 단어외기
4. 다시 확산되는 코로나를 잘 이겨낼 수 있게
5. 더위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