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6. '성령의 세례' (행 10:44-48), 김양재 담임목사님
우리 인생이 그렇다. 내가 믿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될 일이 많아 보인다. 경상도의 어느 감리교 집회 갔는데 거기선 감리교를 이단 취급한다고 한다. 여자목사가 하는 교회는 말할 것도 없겠네요 했다. 고난 많아서 그런가 경상도 보다는 전라도가 저를 더 많이 초청하는 것 같다. 이렇게 잘못된 편견은 끝이 없다.
유대인은 선민사상은 이방인은 상종 못할 인간이다. 근데 고넬료 일행에게 가이사랴의 오순절이라 부르는 성령 강림이 이루어졌다. 성령이 내려오셨다. 그러면 어떤 문제도 게임아웃이 된다. 오늘은 이방이라는 특성에 맞게 임하신 성령세례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 말씀 중에 임하신 사건입니다.
44절
이 말 하기까지 어떤 경로를 거쳤는가? 하나님은 고넬료를 택하셨다. 근데 가장 걸림돌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이다. 우리의 편견이 무섭다. 그런 베드로의 선민의식을 설득하시고 고넬료를 소개하시고 만나서 깨닫게 하시고 본인이 성령이 증인이 되어 화평의 복음을 전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자기를 위한 상상 속의 하나님의 상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니 상상 속 우상의 하나님을 부숴버리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라는 것이다. 구속사의 과정에서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해 화목제로 죽어지는 헌신이었다. 근데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는가 하니 이것이 와닿지 않는다. 나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내가 죽어지는 고통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아무리 설교해도 성령님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다. 그래도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기에 듣다 보니 성령이 임하시기도 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내가 벌레보다도 못한 죄인임을 깨닫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야 그때부터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돕는다. 이것이 화평의 복음이고 이 복음을 들을 때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오셨다고 한다.
내려오시니 로 번역되는 단어는 부정과거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성령 강림이 예측하지 못한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식간에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주님과 같이 식탁교제도 하고 십자가 부활 다 봤다. 3년간 양육 다 받고 목격자가 되었다. 근데 베드로가 한 일은 물고기 잡으러 갔다. 성령이 내려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베드로의 3년의 양육 생활에서 자기 확신과 연약을 다 보여주셨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알고 교회를 다니고 수없이 설교 들어도 성령 받아야 앞으로 나간다. 베드로가 성령 받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유대인은 기다려서 받은 성령인데 이방인 고넬료 집에는 성령이 순식간에 내려오셨다. 자신에게는 몇 년간 일어난 일이 어떻게 눈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가? 근데 여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내려오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사시절에도 큐티 모임에 온 분들이 단지 그 모임만 왔는데도 성령이 내려오신 분이 많았다. 양육 받은 것도 아닌데 그랬다. 성령이 말씀 속에서 충만히 임재하신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말씀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고 성령은 말씀 안에서 활동 하신다. 십자가 질 때 효과적으로 도우셔야 하기에 진리의 성령님이 말씀 듣는 중에 내려오셨다. 그렇게 베드로를 설득하시던 하나님의 열심이 드디어 결실을 보신 것이다. 이방인 선교, 전도, 복음전파의 결실을 보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성령이 내려와야 한다.
청년부에서 산전수전 간증 다 하고 결혼한 전문인 자매의 부부목장 나눔
지난주 간증하신 예루살렘 명의 목자님 이야기
적용) 여러분은 말씀 듣는 중에 성령이 내려오셨습니까? 주일 목장예배 모두 성령이 내려오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니면 성령님이 아직도 하늘에 굳건하게 좌정하고 계십니까? 성령이 내려오셨습니까? 그대로 내려오셨습니까?
2. 편견을 철폐하신 사건입니다.
45절
성령이 내려오신 정도가 아니라 부어주셨다고 한다. 이것은 위로부터 선물이 넘치도록 아낌없이 붓고 흘리고 내리고 쏟은 것이다. 그렇게 성령이 철철 내려오셨고 부어주셨다. 이것은 고넬료와 상관없는 완전히 선물이다.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이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그러니 성령세례가 맞다.
이 동사의 시제는 완료로 표현되었는데,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놀란 것 보다, 성령세례보다 성령강림이 먼저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온전히 하나님 작품이다. 할례 받은 신자는 유대인이고 먼저 믿은 자를 말한다. 근데 안믿 는 자는 이방인이고 그들이 천히 여기는 자인데 고백도 안했는데 말씀 듣는 중 성령을 부어주시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놀랐다는 말은 기절할 만큼 놀랐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함으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전통과 율법을 가지고 있다. 이방인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 유대인은 너무나 대단한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없다. 근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베드로와 그 유대인들이 너무 놀란 나머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믿을 수가 없다.
양반들이 믿고 교회를 나갔는데 백정도 믿었다고 교회를 나왔더니 그 다음주 양반이 아무도 안나왔다. 홍문수골 교회를 세워서 나갔다. 성경에서 보니 종과 주인은 하나라고 하고 남자와 여자는 하나라고 한다. 너무 버거워서 적응이 안되는데 그 다음에는 양반과 백정이 하나라고 한다. 이것이 어떻게 이방인이 성령을 받을 수 있어 하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인정하려 해도 인정하기가 어렵다. 몸에 너무 배어있다. 편견이 우리의 거룩을 가장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 같다. 편견을 깨트리는 것이 죽을 때까지의 우리의 과정이고 거룩의 주제인것 같다. 성령의 증언으로 힘든과정을 거쳐 화평의 복음을 전한 후에도 여전히 놀라는 베드로와 할례받은 신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저도 평생 걸쳐 큐티를 했는데 어느 초신자가 믿자마자 구속사를 잘 깨달으면 놀라지 않겠는가. 인정이 안될 것 같다. 나의 경험 지식이 힘들게 겪은 것이니 내가 최고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편견과 아집에 근거해서 가장 완전한 진리를 터득한 것 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지고 있나?
초대기독교 어거스틴 시절에 펠라교수 같은 이단들이 너무 똑똑하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술먹고 방탕한데 펠라교수는 너무 똑똑하다. 우리는 펠라교수 하는 이야기가 진짜처럼 들린다. 또 중세의 로마 카톨릭은 보기만 해도 너무 신비하고 멋있다. 교양이 넘친다 너무 부자다. 너무 부자고 똑똑하면 진리가 되는 것이 있다. 그 앞에서 작아진다. 잘 믿으니 부자가 되었지 똑똑하지 하는 마음이 든다. 그 부요와 건물을 가졌다고 진리를 외치던 야누스를 화형시키고 갈릴레오를 이단아로 정죄했다. 근세와 현대에 들어와서도 과학과 이성만이 최고라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확신했던 그들도 한 지식 한다. 우리는 외모로 보는 편견에 늘 잡혀있다. 사람은 베드로가 외모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설교했지만 지금 자기도 차별한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는 잘생기고 이쁘면 착할 것 같고 똑똑하면 잘 믿을것 같고 부자면.. 이런 자연발생적인 본능이 있다. 공산주의를 복음으로 받아들인 많은 이상주의들도 그랬다.
우리는 조선왕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독립될 때 우리나라가 겪은 것은 독재와 전체주의였다. 반만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이때 등장한 공산주의는 매우 매력있었다. 그래서 그 때 기독교가 들어오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기독교는 다 바보같아 보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공산주의를 표장하는 나라는 저개발이나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요즘 중국의 2019년 기록을 보면 중국은 GDP는 2위지만 1인당 GDP는 66위라고 한다. 압도적으로 빈곤국가라고 한다. 북한은 데이터도 낼 수 없는 최하위의 나라이다. 그런 빈곤 지수를 보게 되면 한국만 괜찮아 보인다. 적어도 밥 굶지 않는 나라인 것이다. 현 주소이다. 대한민국은 반만년 만에 자유를 얻었다. 남녀가 같이 모여 예배 드린다는 것은 기적이다. 이 자유를 얻은 지 불과 얼마 안되었다..
목사님 이야기
일제 강점기 피해 서울에 왔다. 공산당 피해 부산으로 피난갔다. 압록강까지 다 뺏겨서 1.4 후퇴전에 제주도로 피난 왔다. 때마다 모든 재산을 버리고 피난을 왔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북한에서 서울 부산 제주도에서 때마다 집과 전토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 식구들의 남과 북의 선택은 운명을 뒤바꾼 선택이 되었다. 북한에 남은 식구는 그 선택으로 그 후로 예배를 못 드리게 되었다.
성령을 부어주신 것으로 세계에 유래 없는 나라가 미국과 남한이라고 한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을 안다.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표현이 맞다. 우리나라가 복음을 너무 잘 받아들이고 총명하니까 선교사들의 한국 사랑으로 미국이 끝까지 남한을 선택했다. 선택하지 않았으면 북한과 더불어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5천년 만에 3권 분립 된지 70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이 되려고 한다. 이 자유를 잘 지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걸 잊지 말자고 6.25에 태어난 아이를 6.25를 상기하자고 하며 상기라고 지었다.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물으면 간증하라고 그렇게 지었다. 손녀의 이름을 장난하라고 짓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음 세대는 생이별이 무엇인지 모르고 당하지 않았기에 모른다. 우리가 전쟁에 의해서 피난 당했기에 전쟁에 대비해 또 피난 대비를 했다.
우리가 평소에 가장 분명한 진리라고 믿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극히 주관적인 편견과 아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절대 진리는 하나님 말씀 밖에 없다. 근데 성경을 죽어라 읽어도 죽어도 이혼을 하겠다는 가정이 있다. 정말 믿음이 없다.
동성애자들도 성경을 읽는다. 같은 성경인데 동성애가 죄라는 이야기 없다고 한다. 다 성령을 보는데 그럼 누가 옳은가 할 것 아닌가. 편견을 철폐해야 하지만 분별은 해야 한다. 분별인지 차별인지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모른다. 성령이 임한 사람들끼리는 알아듣는다. 그래서 성령세례 받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청에는 젠더 특보도 있다고 한다.
적용) 하늘이 두 쪽 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편견은 무엇인가? 그래서 눈 앞에서 일어난 변화나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일은 무엇인가?
청년부 적용
어떤 자매는 형제 조건으로 연봉 100 대는 죽어도 안된다고 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눈 앞에 일어난 기적을 못 보는 것은, 믿음도 없는 목원이 결혼한다는 것이다. 결혼은 믿음이 좋은 내가 해야 하는데 왜 저것이 하나 하며 너무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질투 나서 결혼식도 안간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 근본적으로 말씀이 안 들리니 청년을 무시하는 발언들을 하는 것이다. 성령이 임해야 하지 사람이 잘난 것이 없다. 와서 말씀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아낌없이 축복해주라.
유대인은 이방인의 성령세례를 절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믿을 수 밖에 없는 징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요엘 2:28에서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하는 말씀을 주셨다. 근데 말씀은 읽는데 내 것이 안되니 깨닫지 못하니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파격적인 체험을 방언으로 주셨다.
3. 표적을 주신 사건입니다.
46절
할례 받은 신자들은 이방인이 과거 오순절에 성령 받았을 때와 똑같이 방언으로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성령 받았음을 명확하게 드러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관습도 모른다. 처음 복음을 전해 받은 것 뿐인데, 자신들도 너무 놀랐던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을 베드로와 그 일행이 들은 것이다.
방언은 행 2장에서 자세히 설명 했다.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라는 단어가 모두 현재분사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야기는 그 행위가 금세 끝난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성령세례가 임하고 있음을 베드로와 일행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완전히 철폐되었음을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방언에 대해서도 우리도 근본이 이방인이기에 고넬료 식구들처럼 문자적으로 여러분이 방언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기도할 때마다 연습해보시기를 바란다. 조금이나마 경험해보기 않을까 해서 방언하기를 기도합니다. 방언을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살아계신 성령님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경험하지 않을까 해서 방언하기를 기도한다.
방언을 사모하라. 말씀을 기억하며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가 짧다. 그러니 방언을 하며 기도를 쉬다가 다시 기도를 한다. 방언하면 기도가 좀 쉬워진다. 성령 받은 조건으로 방언 받기를 바란다. 그러면 기도할 힘도 생긴다. 기도도 내 힘으로 못한다.
근데 그렇게 방언 하면서 삶에서 전혀 본이 안 될 때는 방언이 눈살 찌푸러지고 무섭게 들린다. 근데 오늘 고넬료가 하는 방언은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근데 인권을 부르짖는 신학자들은 그러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의 권리를 좀 더 높게 두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것이 높아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랑하면 표현이 좀 될 텐데 그렇지 않다. 그러면 사람에게도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게 된다. 갑자기 언어의 할례를 받게 된다. 이것이 사실 가장 최고의 방언이다.
근데 어제까지 원수였다가 오늘 미안하다고 하면, 성령의 언어를 쓰면 인간이 죄인이라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서 불평만 들어도 알겠다고 하고 나오면 이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인 것이다. 이들의 언어가 방언,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가 사랑의 언어 따뜻한 언어 정결케 하는 언어로 관계가 해결되는 언어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다. 근데 이때 언어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어이다. 믿는 사람도 안되는 방언을 그들이 막 하니 베드로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팩트가 나오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성령 세례를 받은 그들에게 물세례를 베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적으로도 인정해야 한다.
47-48절
결국 베드로가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권능의 증인들은 다 세례를 줄 수 있다. 베드로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10장에는 하나님이 거의 20번 가깝게 등장하신다. 감취어진 하나님의 경륜이다. 삼위 하나님이 늘 역사하시는데 감취어진 하나님의 경륜이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의 못박힘으로 전보다 낮아져 겸손하게 오셨는데 그것을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 하나님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시고 죽으셨기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근데 오늘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생각해 보면, 고넬료는 성령세례가 먼저 임해서 나중에 물세례를 받았다. 에디오피아 내시도 먼저 성령이 임하고 물세례를 받았다. 예수님은 안받아도 되는 물세례를 받으시고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으셨다. 몸된 교회의 일원임을 표하기 위해서 공적으로 물세례는 받아야 한다. 회개하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들어오기로 작정한 자가 받는 것이 물세례이다.
사도행전 18장의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는 알았는데 성령세례는 몰랐다고 한다.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 성령세례는 모르고 못 받은 분이 많은 것 같다..
행 1:4절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가? 구원인가? 제자들이 모든 것 다 받았는데 구원 못받았다고 기다리라는 것인가? 아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 받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물고기 잡으러 갔다.
결혼식만 한다고 그 결혼이 충만한 기쁨이 보장되는 것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본질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 주님과의 만남도 결혼식인 공개적인 물세례라면 동행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사랑의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고 그것이 유지되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목장탐방을 가 보면 세례도 안받은 초신자에게 말씀이 들리며 전도까지 하는 것을 보게 되는 반면, 17년이 되어도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성령은 새로운 삶을 주시는 권능이고 평생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시작되게 하신다. 단회적으로 받아도 그때부터 성숙의 과정이 시작된다. 성령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이신 분이시기에 인간의 생각대로 역사하지는 않는다. 물론 본질적인 사랑도 결혼식 전에 올 수 있다. 이 성령은 사도행전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계시고 오순절에도 오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오실 성령님이시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성령은 물세례와 비교해서 불세례라고도 한다. 주로 불 같은 시험이 올 때 성령 세례를 받기 쉬울 것 같다. 우리는 능력 받기 위해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우리들교회가 말씀이 있는데, 물세례만 받지 말고 성령세례 받아 모두에게 권능이 임하면 좋겠다.
마지막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했다. 이것은 아주 간절히청한 것이다. 그들이 성령세례 받은 것이 확실하기에 베드로를 어부가 아닌 주의 사자라 생각하고 성령이 부어졌기에 성령의 사람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령받은 사람끼리 너무나 좋아서 간절히 청한 것이다. 이것도 성령세례 받은 사람의 표적이라 할 수 있다.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다.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도 달라졌다. 여러분은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가 누구인가?
지연 학연 아무것도 아니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끼리는 너무 좋아하고 기뻐하며 가는 것이 표적이다.
조화가 아무리 이뻐도 들꽃의 하나 생화와는 비교가 안된다.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고 걱정도 많다. 365일 보다 걱정이 있으나 화평이 조금 더 많다고 한다. 그러니 지겨워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안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에 대한 애통함이 있다. 그러니 예배때마다 기쁨을 주신다. 삶의 목표가 세워지니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적 지향자끼리 모이는 것이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끼리끼리인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있는 성적 지향이 무엇인지 국민들도 다수의 국회의원들도 모르기에 이것을 쉽게 생각하고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왜 그래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동성애와 동성혼을 반대한다. 그래서 그것을 의식해서 머리가 너무 좋은 그 사람이 그 말을 빼고 동성애를 빼고 포괄적이라는 말로 조용히 집어넣었다. 이미 우리는 그런 법이 있는데 이것을 넣고 거기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넣은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른다. 그것을 동성애와 동성혼이라고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다들 좋은 건데 왜 바꾸냐고 하는 것이다. 헌법도 양성평등이라고 되어있는데 성 평등으로 바꾸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강한 동성애 차별 금지법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차별한다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동성애는 성경에서 얼마나 죄라고 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죄라고 하는 것이다.
남녀 외 제 3의 성이 있다는 것도 심각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한 고용의 문제이다. 교회 신학교 모두 동성애 목사 안 쓰면 차별이 되는 것이다.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동성혼 허용되면 대리모 출산이 당연히 허용된다. 동성애를 위한 아들을 위해 대리모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럼 누구 아들이고 누구 딸인가? 그럼 옮겨가는 과정에서 엄마가 셋이 될수도 있다. 가정중수 하려면 절대 허용되서는 안된다. 가정을 해체하는 일이다. 순리를 역리로 바꾸면서 총체적인 난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근데 그걸 차별했다고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300만원 500만원 무한대로 가고 형사처벌 할 수 있는 악법이다. 시정할 때 까지 벌금을 매기고 안 매기면 형사처벌 하는 악법 중 악법이다. 혐오의 정의는 누가 하나? 국가 인권위에서 하는데 그들이 마음대로 한다. 그들이 혐오로 생각했다면 혐오인 것이다.
영국 여자목사님의 당부
하나님을 높이지 않으면 윤리와 도덕도 없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전쟁의 주인은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믿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해서 놀랄만한 방언을 하며 동성애가 잘못되었다 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을까. 반드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지 않아야 한다. 매주 이 말씀 드리는 것은 요즘이 너무 수상한 시대여서 그렇다. 나라가 없으면 이렇게 길게 설교하는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옆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소개하고 깨닫게 해야 한다. 길이 안보여도 성령이 내려오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면 가능하다. 저는 국회의원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그들이 이 실상을 구별하기를 바란다.
한 부목자님의 나눔 ampndash 매번 보석상자 나눠주다가 전도한 나눔
절대 안듣는다고 해도 부지런히 전하고 전도 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라 생각한다. 내 옆의 한사람을 변화시켜야 성령으로 이야기가 된다. 그래야 나를 신뢰하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들을 것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오늘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막는 비결이다. 이것이 자유를 지키는 비결이기도 하다. 우리가 놀라운 방언으로 표적을 보여줄 때 내가 전하는 그 사람도 놀라운 표적의 방언을 하게 될 줄 믿는다. 그리고 놀랍게 하나님을 높이게 될 줄 믿는다.
적용) 내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어찌할 것 같은가? 포과절 차별 금지법이 차별 편견을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것이 인식되는가? 몇프로 인식되고 몇프로 안타까운가?
말씀맺음
성령세례는 말씀 듣는 중에 임하신 사건이다. 그래서 주일예배 목장예배 수요예배 들어야 한다. 우리가운데 있는 그 편견을 철폐하신 사건이다 성령이 임하면 돌 같은 마음이 다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표적을 주셨다. 놀라운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본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해야 한다. 성령밖에 그 일을 하실 분이 없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표적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표적의 방언을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기도제목]
*이지현 기도제목
1. 내 환경이 부끄러워 다른 것으로 채우려 말고, 주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생기도록
2. 돈으로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는 편견이 깨지도록
3. 자기 전, 쓸데없는 웹서핑 등 절제하고 일정한 취침&기상 시간 지키도록
4. 예배의 간절함이 회복되도록
* 안무옥
1. 엄마 아빠 온전한 회복 (수술과 검사 결과도 주님께 의지합니다)
2. 장기전으로 가게될 엄마 간병 및 보호에 필요한 체력과 지혜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시기를
3. 8/8 강연 앞두고 있는데, 충분히 준비할 시간과 체력 허락해주시고 강연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4. 생활예배 우선순위 잘 지킬 수 있기를
*백서윤
1. 말씀 보고 묵상할 수 있도록
2. 가족 구원과 건강
3. 부지런해 질 수 있도록
* 김교희
1. 이번주 일에 너무 눌려 화평이 깨졌는데, 이를 통해 보는 불신앙과 인정중독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삶 살도록
2. 하나님과 말씀 기도로 교제하는 가운데 성령세례 받도록
3. 교통사고 합의 이번주에 하는데 순적히 합의할 수 있도록
4. 엄마 목장정착과 동생 구원 위해
5. 신교제 신결혼 위해 필요한 마음 주시도록